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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5 21:24:34

노홍철/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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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성격3. 외모4. 패션센스5. 헤어스타일

1. 개요

노홍철특징을 정리한 문서.

2. 성격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고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겁니다!
파일:attachment/nohongchul.jpg

한국에서 돌아이라는 표현을 대중화시킨 장본인. 사짜법인 '전국 돌아이 연합회(전돌연)' 회장. 그 외에도 사기꾼[1], 노찌롱(노홍철 → 노홍칠 → 노칠홍 → 노찌롱)[2], 외국인, 아침만 되면 나타나는 못생긴 러시아인 돌아이스키 3세, 걸어다니는 한라봉 등의 별명이 있다.

그리고 굉장히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아프거나 괴로워도 웃으며, 게다가 그 정도가 심할 수록 더 크게 웃는다. 덕분에 무한도전 멤버들이 초창기엔 벌칙같은 걸 할 때 얘가 아픔을 못 느끼나 해서 당황했다. 때려도 웃으니까... 물론 그런 그도 정말 심각한 상황에 처하면 아예 표정이 굳어버린다. 알래스카 특집에서 뿅망치 대결을 보면 안다. 혹은 독일 월드컵 특집에서 토고가 한국에게 골을 넣었을때나 스피드 특집에서도 홍카가 터졌을 때(물론 홍카로 위장한 가짜 차였지만)에도 아예 눈에 눈물이 고이며 굳어버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3]

과거 무한도전 75회 환장의 짝꿍 특집에 출연한 노홍철의 친형 노성철에 따르면, "저희 (가족이) 부산에 살았었거든요. 낚시를 하다가 (홍철이가) 물에 빠졌는데, (홍철이가 7살) 그때부터 약간 이상했다..." 라고 하는 것을 보아, 이런 독특한 성격은 꽤나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첫 방송 출연은 1997년 말 SBS에서 방영했던 좋은 친구들의 '모여라' 코너였는데 노홍철은 당시 고3이었다. 나중에 방송 내용을 본 유재석에 의하면 '지금의 노홍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2003년 말 MBC 생방송 화제집중의 '대한민국 수염짱을 찾아라'에 참가자로 다시 한번 방송에 출연했고,[4] 1년 뒤, 케이블 TV 엠넷에서 '닥터노의 KIN길거리'[5] 데뷔. 데뷔하자마자 인기를 타기 시작해 이후 곧 지상파를 타기 시작했으며, 마치 부모로부터 유전된 듯한 특유의 속사포 같은 퀵 마우스[6]와 오버스러운 행동, 유쾌한 성격과 분위기 띄우는 능력으로 데뷔 후 순식간에 급부상하며 인기를 누렸다. 평소 성격은 긍정적이고 밝긴 하지만 시끄러울 정도의 방송 캐릭터와는 달리 예의 바른 편으로 공공연히 얘기되나, 방송에선 방송용으로 오버하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방송용 목소리는 다들 흔히 아는 그 높은 톤의 정신 사납다 못해 골이 흔들리는 목소리. 사실 TV에서도 왜 이렇게 크게 웃냐는 질문에 돈 줘서라는 말을 했다. 실제로 폭행 사건 후 뉴스 인터뷰 땐 "정말 이게 노홍철 목소리 맞아?" 할 정도로 묵직하고 진중하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당시 그 목소리를 들은 몇몇 사람들은 원래 목소리로는 뉴스에 내보내기 그래서 성우 기용해 더빙한 걸로 오해를 했을 정도로 갭이 크다. 방송용 목소리가 아주 뇌리에 강력하게 박힌 게 원인.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의 ‘흔들어주세요’ 음원을 들어보면 노홍철의 목소리가 다른데 여기서도 방송용 목소리를 쓰지 않은 듯.

2010년경부터는 방송용 목소리가 예전보다 약간 낮아졌다. 물론 실제 목소리보다는 여전히 높지만, 무한도전 출연 초기와 중반 ~ 후반 시절의 목소리를 비교해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 때문에 2010년 텔레파시 특집에서는 택시 기사에게 노홍철 닮은 사람이라고 오해받았는데, 기사 선생님은 생긴 건 비슷한데 실제 노홍철보다 목소리가 너무 낮다고 평가했다.

다만, 방방 뛰는게 컨셉이라고만은 할 순 없는 게, 군대를 현역으로 입대한 것도 "내가 이 성격으로 사회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 사회화를 위해 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노홍철이 군대화가 된 게 아니라, 부대원들이 노홍철화 됐다. 군대가 노홍철을 바꾼 게 아니라 노홍철이 군대를 바꿨다고 한다. 제55보병사단에서 군생활을 보냈는데, 전입한 지 얼마 안 된 이등병 때 내무실 왕고를 보고 박수를 짝 치면서 "박 병장님!" 하고 외쳤다거나, TV 보는 선임 뒷통수에 손가락을 대고 "이게 어느 손가락이게요?"라고 물었다[7]는 일화는 말 그대로 전설. 선임보고 형님이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본인 말로는 당시 군대에 아직 구타 문화가 남아 있어서 이등병 시절의 약 2달 간은 계속 맞았는데, 아무리 두들겨 패도 돌아서는 즉시 똑같은 짓을 반복해대니 선임들도 질려서 그냥 포기해버렸다고 한다.

심지어 후임들한테도 이 기질은 유감없이 발휘되어서, 인터넷상에서 노홍철의 후임병 출신 네티즌이 밝힌 바로는 잠들기 0.1초 전까지 입을 닫지를 않는 통에 제발 좀 닥쳤으면 좋겠다고 수도 없이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노홍철의 선임 입장에서는 영창을 각오하고 패고 싶지만, 반대로 후임 입장에서는 시끄러운 것 하나만 감수하면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던 것.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호출되기까지 했다는데 자세한 것은 후술.

그런데 작정하고 진지하게 무게를 잡으면 사람이 달라진다. 정말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아래 앙드레 김 문상가서 찍힌 사진이나 패션 화보 등을 보면 진지하게 무게를 잡으면 정상인 중의 정상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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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증거사진. 오른쪽은 앙드레 김의 장례식장에 조문하러 가서 찍힌 사진. 동일인물이 당연히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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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증거사진 2. 입을 다문 사진이 없다.

저 이야기가 흔히 그러듯 허풍 섞인 이야기라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그시절 군대에서 저런 표정을 지은 윗 사진들을 보고는 진짜일것이라고 납득하곤 한다.

그리고 나 혼자 산다 15화에서 그의 군 시절 비하인드 스토리가 밝혀졌다

이럼에도 영창은 한 번도 안 갔으며, 대신 부모님이 아들 복무부대까지 불려 오셨단다. 군대에서 있었던 사건 중 위에 나오지 않은 사건을 노홍철 본인이 더 과거에 공감토크쇼 놀러와에 출연할 당시 직접 에피소드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노홍철이 군대에 있을 때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헤어진 뒤 시간이 흘러 병장이 됐다고 한다. 그 때 점점 외로움이 쌓여 있어서, 본인이 위병소 근무를 하다 위에 나온 상황을 이용해 부대에 방문하러 온 젊은 여성들이 보일 때마다 그들의 번호를 따려고 한 것인데, 그들에게 "병장 노홍철! 움직이면 쏜다! 전화번호! 전화번호!" 이러면서 한 손을 내밀어 전화번호를 달라는 제스처를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방문한 여성들이 장난인 줄 알고 웃었지만 노홍철은 계속 진지하게 소리를 높여 반복했고, 결국 이것도 여러 번 하자 부대 내에 알려져 간부가 "야, 노홍철! 너 이리 나와." 이러고 나서 면담 뒤에 영창갈 뻔하다가 그냥 부모님을 모시고 오게 됐다고 한다. 당시 노홍철이 "나이가 25살[15]이었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는 거야."라는 말을 한 걸로 보아서는 말년이었고, 제대를 얼마 앞둔 상황이었는데다가[16] 노홍철이 원래 장난기가 많은 걸 알고 있던 간부들이 봐 준 걸로 보이는데, 실제로 충분히 영창에 가고도 남을 일이었다.[17] 상식이 박힌 사람이면 절대 따라하지 말자.[18]

또한 유격 훈련 중 바지에 큰일을 봐 버린 일화도 있다. 덕분에 얻은 별명이 개싸. 훈련 중 바지에 볼일을 본게 알려지면서 똥싸개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한 고참이 같은 소대원들끼리 뭐하는 짓이냐며 똥싸개라고 부르지 말고 이를 뒤집은 개싸로 부르라고 한 것이 유래라고 한다. #

나이차를 불문하고 손윗사람 남성을 '형님'으로 부르며 붙임성 있게 다가가는 것이 말버릇이다.[19] 무한도전에서 멤버 하하의 아버지에게도 '형님'이라고 했을 뿐더러 김수로 특집에서 당시 최영근 예능국장에게 "형님!", 무한도전 100회 특집 촬영 현장을 응원차 방문했던 엄기영 당시 문화방송 사장에게는 "오, 큰 형님!", 한 프로그램 녹화를 위해 만났던 차범근에게도 형님, 2005년 9월 청계천 홍보대사로 위촉되었을 때도 당시 이명박 서울특별시장[20]과 만났을 때도 내뱉은 말이 '열심히 하겠습니다, 형님'이었다.[21] 이 모습이 예능 프로에서 회자되면서 많은 이들의 웃음을 자아냈었지만, 본인으로선 자신의 행동이 큰 실수였다 생각했는지 미니홈피를 통해 사과하였는데, 당시 이명박 서울특별시장이 노홍철의 미니홈피에다가 '난 자네가 형님으로 불렀을 때부터 이미 동생으로 받아주기로 했는데, 사과는 무슨.. 시간내서 이 형님 한번 찾아와요^^'라고 훈훈하게 답글까지 달아주었고,[22] 이게 인연이 되어 훗날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까지 받았다.[23] 심지어 베이징 올림픽 레슬링 편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핸드폰 번호까지 알고 있어 "내가 아는 형님들 중에 가장 성공한 형님"이라면서 통화(!)하려다 멤버들이 "프로그램 폐지된다!"고 말리는 바람[24]에 그만 뒀다. 위기탈출 넘버원 고정 출연 첫 날인 2007년 5월 5일 방송에서 처음 본 전문가 박사님에게도 형님이라고 불렀다. 장윤정이랑 사귈 때는 장윤정의 아버지를 만날 일이 있었는데, 장윤정이 노홍철에게 요구한 게 "제발 아빠 보고 형님이라고 하지 마"였다고 한다. 다행히 걱정과는 달리 굉장히 차분한 자리였다고.

의외로 겁이 많은 편이며, 두려운 상황이 닥쳐오면 말이 더 많아지고 빨라진다. 덕분에 레슬링 특집 WM7 당시 두려움 때문에 훈련에 성실히 임하지 않은 모습이 지적되기도 했다.[25] 뱀파이어 특집에선 정말 무서워서 주특기인 잔머리를 못굴리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반대로 겁을 내야 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는 무지막지한 자기 포장과 정신승리를 이용해 상대를 말려죽이기도 한다. 가끔 허점을 지적당해도 뭔가 변명거리를 만들어내며 절대 기 죽지 않는 모습을 보면 감탄을 넘어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 무한도전 타인의 삶(박명수 편)에서 옷 속의 맨살이 드러나고 확인사살까지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하며 살색 티셔츠라고 끝까지 우기는 모습이 대표적. 다만 자신이 진짜 찔리는 부분을 공격당하면 약간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무차별적으로 맹디스를 시도한다. F1으로 선출된 이후의 노홍철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지나치게 흥분했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 자기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얼굴 앞에서 손을 모아쥐며 정색하여 제정신을 찾는 특유의 동작이 있는데, 솔직히 제정신을 찾는다기보다 자기 안의 돌+I를 끌어내는 동작 같다. 이 동작을 하면 정색하면서 무서워진다. 본인 말로는 경망스러운 혼을 빼내는 동작이라고 한다. 무한도전에서는 노홍철이 이 행동을 할 때마다 변신이라는 자막이나 눈이 번뜩이는 CG효과를 넣는다.

다이나믹 듀오와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였으며(노홍철이 선배), 앨범에도 자주 피쳐링을 해주거나 작업을 도와줄 정도로 친분이 있고, 그로 인해 힙합쪽 랩퍼들과도 친하며,[26] YB와도 친분이 있는 등 특유의 유쾌한 성격과 들이댐으로 연예계 다방면으로 발이 넓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인근 학교의 축제마다 다이나믹 듀오와 함께 초청받아 노홍철이 사회를 맡고 다듀는 공연을 하는 등의 활동을 많이 했다고 하며, 정장 모델로 활동했던 경력도 있고 이벤트 회사(꿈과 모험의 홍철동산)를 경영한 적도 있고[27] 여러모로 발도 넓고 경험도 많은 인물.

정신과 의사 송형석에 의하면, 2004년 데뷔할 당시 전국의 정신과 의사들에게 저 인간의 진단명은 뭘까...?라고 생각하게 한 비범한 인물. 결국 무한도전에서 정신과 의사에게 진단을 받았을 때 어린 시절 ADHD를 갖고 있다가 어른이 되면서 사라졌으나, 그 습관이 남아 있다고 진단받았다. 성인이 어린아이의 행동을 보이는 피터팬 증후군도 언급[28] 동시에 조증 증세도 의심된다고 한다. 예전 <빨간 하이힐의 진실> 편에선 결벽증 비스무리한 증상도 보이는데, 이는 ADHD의 잔재 중 하나로 의심된다고 한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29],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비정상적으로 깔끔함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먼지 하나 없는 모델 하우스 같은 집에 냉장고 안의 음료수들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것이 종류별로 일렬종대로 정리되어 있다. 더군다나 사소한 펜 1자루의 위치와 머리 방향마저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멤버들이 테스트 삼아 살짝 어지르자마자 마하의 속도로 달려와 다시 정리하는 모습은...

한 번은 치료를 겸해 멤버 중 제일 더러운 정형돈과 하루 살아보기도 했는데, 노홍철이 씻고 있을 때 정형돈이 과자 부스러기를 온 집에 뿌리고 그릇을 뒤섞고 냉장고를 휘젓는 대참사를 일으켰다. 노홍철은 정말 기절 직전까지 가서는 혼비백산하며 밤새 치우고 정형돈이 씻으러 들어간 후에도 계속 치우고... 치료를 목적으로 정형돈이 만든 주먹밥 먹기, 정형돈과 하루간 씻지 않고 계속 입고 있던 옷을 서로 바꿔 입어보기도 했는데, 소란을 떨며 이거 입으면 피부병 걸린다는 둥, 안에 티셔츠를 몇장 받치지 않으면 정말 죽겠다는 둥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이후로도 그의 집 내부 모습이 공개될 때의 모습을 보면 결국 고쳐지진 않은 듯하다. 이후 2013년 MBC의 나 혼자 산다에서 새로 이사간 집이 공개됐는데 깔끔한 것을 넘어 인테리어까지 촬영 스튜디오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다만 결벽증은 어디까지나 집 안에서만 통용되는듯 하다. 외박 특집 등에서는 어디서나 벌렁 드러누워서 잘만 자며, 샤워를 안 하고 몸을 긁적거리다가 그냥 자기도 한다. 그리고 무한도전 술래잡기에서 추격전을 벌이면서 새똥이 가득한 한강 고수부지 부표 위를 맨발로 다니거나, 한강에 뛰어들기도 하는 등, 집 안에서의 노홍철과 집 밖에서의 노홍철은 위생관념이 다르다라고 할 정도로 갭이 크다.

무한도전 초창기에 했던 그림 심리테스트에 따르면

또한 무한도전 초창기에 몰래카메라를 진행했을 때의 모습을 봐도 알 수 있는데,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도 목소리 톤과 말투, 성격이 여전한 것으로 보아 완전히 '방송용'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냥 평소엔 침착하지만 흥을 타면 그리 된다고 봐야할 듯하다.

3. 외모

파일:nohongchul123.jpg
평소의 이미지와 달리 의외로 미남형 얼굴이다. 2009년에 방송한 엠넷의 프로그램 '트렌드 리포트 필 시즌4'에선 이런 모습누구세요...?도 보였다고 한다.

한국인에게 별로 익숙하지 않은 수염, 과도하게 웃는 표정과 방송에서 비춰지는 광기어리거나 우스운 모습 때문에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쌍꺼풀진 큰 눈, 높은 콧대 등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으며 단정한 스타일로 과묵하게 평범한 얼굴을 하면 호감형 인상임에는 틀림없다. 연예인들과 같이 있어서 얼굴이 크게 보이지만 키가 180cm기 때문에 실제로는 일반적인 동양인 평균을 약간 웃도는 정도의 키 대비 머리 크기를 가지고 있다.

무한도전에서 270mm 신발을 바로 옆에 놓고 봤을 때 거의 비슷한 정도로 동양인 기준으로도 머리가 큰 편인 것은 맞으며 대략 26~27cm 정도의 머리길이로 6.7~6.8등신 정도의 비율이다.[30]

다만 예능에서 묘사되는 만큼 키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머리가 큰 것은 절대로 아니며, 1970~1980년대 성인 남성의 평균 비율 정도로 과거 기준으로는 큰 편도 아닌 보통 수준이다.
7등신 초반대의 비율이 평균이 된 2020년대 기준으로도 키 대비 조금 크고 긴 정도로 넓게 보면 정상적인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현 시대 기준으로는 머리가 큰 편이기도 하고, 하필 연예계 사람이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 머리가 작은 사람들이 많은 데다가[31] 노홍철 본인이 개그를 위해 몸이 망가지는 걸 감수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주얼적인 면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지라 수염을 길러서 그걸 커버하고 있다. 마침 기른 수염 모양도 꽤 어울려서 무한도전 미남이시네요에서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이 부분을 거론하면서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칭찬해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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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2년 3월, 노홍철의 턱수염은 사라졌다. CF때문에에서 완전면도를 했다. 돈은 다시 벌기 힘들지만 수염은 다시 자라니까.[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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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한국 자체가 머리 크기에 대해서 가장 병적으로 집착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에 이러한 밈들 및 개그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탈리아 출신의 알베르토 론디는 이탈리아에서는 머리 크기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언급했으며 다인종이 존재하는 미국에서 온 마크는 비정상회담에서 머리크기가 다양하다(크기에 따라 구분하고 우열을 나눈다)는 것을 한국와서 처음 알았다고 한다. 물론 머리가 작고 다리가 긴, 소위 말하는 모델 체형의 표준이 잡힌 곳도 서양이기에 머리 크기에 대해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부분을 감안해도 한국 사회 자체가 머리 크기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상태임을 부정할 순 없다.[33][34]

2012년 8월경 머리를 짧게 잘랐는데, 새로운 수염 모양 + 짧은 머리 + 다이어트로 살집이 없어진 얼굴이 기묘한 시너지를 이루면서 무도 공식 미남에서 빡구로 추락해버렸다.[35] 무도 외에도 방송 여기저기서 늙었다 못생겨졌다며 폭풍디스를 당했다. 본인은 제이크 질렌할제일 큰, 또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내지는 토니 스타크라 우기고 있지만, 멤버들의 반응은 "넌 그냥 빡구야."

급기야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에서는 라면을 먹고 자서 얼굴이 붓는 바람에 더욱 더 못생겨져서 김범수, 김제동, 김C 등 내로라하는 비주얼 연예인들을 모두 못생긴 걸로 압도해버리고 영예의 못친소 F1을 차지했다. 사실 이는 단순히 못생겨진 것 때문이라기 보다 노홍철이 어그로를 많이 끌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적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투표 때까지 쉴새없이 공격당했기 때문에 노홍철을 찍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이후 2013년 3월 2일 방영분에선, 무도 공식 미남으로 뽑혔던 1년 전과 비교해서 외모는 물론 건강까지 퇴보해서[36] 진정한 역변의 아이콘이 되어 촬영 내내 다른 멤버들+자막으로 맹디스 당하기에 이르렀다.
파일:attachment/노홍철/노홍철3.jpg

하지만 2013년 중반부터 회복, 2013년 말엔 밀라노 모델 도전을 위해 1달 만에 15kg를 감량해 미남의 명예를 회복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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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일 때 다이어트 특집했다면 삭발 안 해도 됐을 텐데.

파일:attachment/노홍철/노홍철2.png
결국 도전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요요 현상이 와 전보다 더 이상해졌다. 유재석: 너 살 좀 빼! 얼굴이 왜 이래?! 정준하: 얼굴에서 감자가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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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0대 중반이 된 현재, 워낙 숱도 많고 털도 이쁘게 나는건지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있다. 나름 중년간지 뽐내며 자유롭게 욜로라이프를 살아가고 있기에,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들 중 위에 있는 사진처럼 감탄이 나올 정도의 포스를 날리는 사진들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4. 패션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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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에서 옷을 잘 입기로 유명하며 전체적으로 무한도전 초창기에는 슈퍼맨 옷을 자주 입었으며, 히피 느낌이 나는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는데, 매우 독특한 패션 철학으로 인해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편이다. [37][38] 자신의 마음에 들면 여성복도 거리낌없이 입는다고.

패션업계에서도 대체로 과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모양이며, 그와 같은 이유로 무한도전에서 가끔 패션 관련 특집을 하면 일부 게스트에게는 아예 worst로 꼽힐 때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이소라강승현. 한때 멤버였던 의 경우 "홍철아, 특이하게 입는다고 패션이 아니야."라고 일침을 놓아 드물게 공감을 얻기도 했다. 물론 이런 혹평에 대한 노홍철의 반응은 항상 "정말 패션 더럽게 모르시네요. 이게 패션이에요! 이게 트렌드라구요!" 막상 노홍철이 밀라노 타령을 할 때 업계 종사자들이 말하길, '노홍철의 스타일은 굳이 분류하자면 실험적인 파리 쪽에 가까운데 밀라노 얘기를 하는 건 패션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그래도 적당히 특징만 살려서 조화롭게 코디했을 땐 제법 잘 어울린다는 평도 있다. 노홍철이 예능에서 과하게 입고 나오는 건 나름 진지한 의도 반, 진짜 예능적으로 튀려는 의도 반쯤 된다. 밀라노 특집 때 모든 요소가 따로 논다고 지적받던 패션은 본인 딴에는 진지하게 입고 온 경우이지만, 공항에 동물잠옷을 입고 오는 건 패션철학과는 별개로 그만의 정신세계(?)를 표출하는 것이거나 예능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본인이 패션에 대한 열정이 강하며, 교수로서 직접 패션에 관한 강의를 하거나 옷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방송 출연 때는 협찬을 받지 않고 본인이 입을 의상을 스스로 코디한다. 무한도전 2012년 달력 특집 촬영 때는 평소 패션센스를 살려 멤버들의 옷을 코디해주기도 했는데, 다들 옷태가 상당히 좋았다. 웹상에선 유재석의 제복 패션이 호평받았다.

의외로 무도 내에서 패션 테러리스트 캐릭터를 밀던 정형돈과 이 주제로 엮이는 일은 별로 없었다. 대신 정형돈의 패션 어그로는 G-DRAGON이 죄다 가져갔다.

노홍철의 예능 전성기 이후 패셔니스타로 유명해진 아이돌들의 화려한 옷들이 몇 년전부터 이미 노홍철이 입던 스타일이라는 얘기도 나오곤 했다. 물론 노홍철이 하도 다양하게 입고 다녀서 다른 사람이 뭔가 입었을 때 겹칠 가능성 역시 그만큼 커진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2007년 3월 12일부터 노홍철닷컴이란 의류 쇼핑몰을 운영했는데, 직접 디자인에 참가하며 피팅 모델이 되고, 각 상품마다 본인의 의견을 올리고 상품 포장도 직접 하는 등 사이트 운영에 매우 열정적이었다. 노홍철의 쇼핑몰은 남녀 의상 사이트가 나뉘어 있었으나, 2010년 10월 무렵 노홍순 닷컴이 사라지고 노홍철 닷컴 하나로 통합됐다. 2015년 3월 23일부터 노홍철 닷컴이 옐로우 저널리즘으로 리뉴얼됐다. 노홍철 관련 굿즈나 노홍철이 있던 사진 대부분이 숨겨지거나 지워진 상태. 쇼핑몰 대표로 올라가있던 이름이 삭제됐다. 구글링하면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데 특유의 아스트랄함을 느낄 수 있다.본인 쇼핑몰도 흑역사 취급

과거 나 혼자 산다 출연 당시 찬 시계가 4470만 원이란 가격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품명은 IWC에서 제작한 포르투기스 퍼페츄얼 칼렌더이다.#

5. 헤어스타일

파일:hongchulhair.jpg
연예계를 통틀어서 노홍철만큼 헤어스타일을 다양하게 바꾼 연예인은 드문데, 무한도전에서 나온 헤어스타일만 수십 가지다. 특히 노란머리는 한때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만큼, 그에게 '외국인'같은 캐릭터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헤어스타일의 기반은 그의 많은 머리숱에 기반을 둔다. 사실 그의 스타일은 단순한 염색의 색깔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펌이나 스타일링 기술이 동원되는데, 머리숱이 적으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스타일링이 많다. 그러나 수염이나 몸에난 털만큼 머리숱도 많아 노홍철은 다양한 스타일링이 가능하다.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젊었을 때 훌륭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가 나이들어 탈모 때문에 외모의 가치를 잃어 안타까워진 미남들이 많은 것에 비해, 그는 그 수많은 염색과 펌에도 불구하고 나이들면서도 아직도 풍성해 탈모가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어찌 보면 진짜 외모인생의 승자.[39] 다이어트 실패로 삭발했을 때도 굉장히 머리숱이 많은 게 보였다. 삭발 이후로는 예전처럼 밝은 톤의 노란머리는 안 하고 있었다....가 2016년 중순부터 2019년 말까지 다시 금발, 은발 등 밝은 색의 머리를 유지했다.

그런데 2019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수상후 소감에서 밝히길 최근 탈색하다 문제가 생겨 머리카락이 녹아 죄수처럼 됐다면서 머리를 직접 공개했었다.

파일:Screenshot_20221217-232936_Instagram.jpg
2023년 40대 중반이 된 현재, 아직까지도 짱짱한 머리숱을 자랑하며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마다 여전히 풍성하고 건강한 게 보인다. 이 정도면 확실히 머리는 타고난 듯.


[1] 해피투게더 프렌즈란 프로그램에서 당시 MC였던 이효리가 "노홍철 씨, 어렸을 때 별명이 뭐에요?"라는 질문에 "사기꾼이요."라고 대답했다. 이 때 노홍철은 초등학교 동창들을 찾으러 나왔다. 초딩 때부터 싹수가 있었던 게야.[2] 지인들 이름 뒤집기를 즐겨하는 유재석이 붙여준 별명이다. 사실 이건 서울예전 출신 인물들의 공통적인 버릇이다.[3] 무도에서 노홍철이 몇 안되게 눈물을 보인 장면이기도 한다.[4] 좋은 친구들 출연은 골드미스가 간다에서, 생방송 화제집중 출연은 무한도전에서 밝혀졌고 이후 무한도전 '완전 남자다잉!' 특집에서 노홍철의 좋은 친구들 출연 영상이 다시 등장했다.[5] 본인 말로는, 당시 명절에 모인 일가친척들에게 신문 TV편성표를 보여주고는 자신이 TV에 나온다며 자랑을 했다고 한다. 근데 편성표에 '터'가 '처'로 오타가 나는 바람에 프로그램명이 '닥처노의 KIN길거리'로 표기가 됐는데, 평소 노홍철의 퀵 마우스를 제일 잘 알고 있는 가족들은 그 제목을 보고 그 누구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 하고 바로 '오...' 하며 수긍했다고 한다. 이 때 그를 처음 캐스팅한 사람이 SIXTEEN, 쇼미더머니 777, 탑기어 코리아,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등의 연출을 맡은 최승준 CJ E&M CP인데 노홍철은 무한도전 PD특공대 특집에 깜짝출연한 최승준 CP를 대두로 만들어버린다. 평범한 크기의 최 PD에 비해 대두인 자신이 머리가 부각되자 저지른 만행. 자막으로는 자기 머리더러 "평범한 머리에 비해 조막만한 머리"라고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넣었다.[6] 환장의 짝꿍 편에서 재등장한 친형도 꽤 말이 빠른 설정을 했고 저 말투는 유전이었구나라는 자막까지 넣어 부각시켜 줬다.[7] TV 감상시간에 어둠을 틈타 했다. 물론 결과는 빡친 선임의 호령으로 단체 얼차려 당했다.[8] 장성 흉내를 냈다고 한다.근데 더 어이없는 건 전화받은 상대방이 이에 넘어갔다는 것이다.[9] 이 경우 급한 전화나 중요한 전화를 통보받지 못 할 수도 있고, 유선전화인 만큼 북에서 전화 신호를 추적할 수도 있으니 자칫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혔다.[10] 복귀 신고를 하는데 어디서 낫냐는 대대장님 질문에 2천원 주고 샀습니다(....) 라고 했다가 엄청 혼났다고 한다. 심지어 대대장도 훈련을 안 받았던지 저 흉장이 없었다고.[11] 떼려고 해도 명찰처럼 찍찍이가 아니어서 포기한 듯.[12] 당시 서순오 소장.[13] 위병소 출입 관리 근무를 했던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보통 사단장급 VIP면 차량 번호를 보고(사단장 차인지 확인하고) 알아서 프리패스를 해준다.[14] 물론 이 말이 나오기 직전에 영창 가나 싶었다고 한다. 근데 FM대로 초병근무를 했는데 영창을 갈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상대가 투스타인데다 굳이 FM대로 해도 될 걸 오버액션까지 취해서 쫄아서 문제다. 참고로 이 사연은 놀러와에서도 밝힌 적 있다.[15] 세는나이[16] 당시 군복무 기간이 2년 2개월이었고, 노홍철이 과거 방송에서 2000년 겨울에 입대했다고 했으니 2년 2개월이라는 군복무를 마쳤으면 2003년 1~2월경 제대를 했을 것이다. 거기에 1979년생인 노홍철은 2003년에 25살이 됐기에 2년 넘게 복무하고 제대를 앞둔 시점이었을 것이다.[17] 군부대 내에서 탄창을 안 끼고도 총구를 사람한테 겨누면 간부든 병이든 크게 혼나고 경징계도 가능한 수준인데, 공포탄/실탄이 장전된 소총을 일반인에게 협박하며 겨눈 것만으로도 영창 갈만한 죄목인데 재수없이 방아쇠라도 당겼으면 영창이 아니라 군사법원 간다.[18] 즉, 군대를 가면 노홍철이 군 조직문화에 길들여져야 하나 오히려 군 부대원 전체가 노홍철화되며 그에게 동화되어 버린 셈이었다. 여담으로 노홍철은 군 입대의 계기가 "나 자신이 이 성격으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에 사회화를 기르기 위해서 입대한 것이라고 한다.[19] 손윗사람 여성들에게도 나이차를 불문하고 누님이라고 부른다.[20] 이후 제 17대 대한민국 대통령.[21] 노홍철 본인 말로는 평소 아무에게나 형님이라고 부르는 말버릇 때문에 이 시장을 만나기 전부터 '시장님'을 계속 연습했다고 하는데, 막상 이명박 시장을 만나고서는 평소 말버릇대로 '형님'이 나왔다고 한다.[22] 사실 이명박 입장에서는 일반 대중(특히 젊은 층)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싫어할 이유가 없다.[23] 후일담이 있는데,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집무실에 초대를 받고 놀러가서 책도 선물받은 뒤 정독했다고 한다. 아마 자서전인 신화는 없다로 추정. 이후 이명박이 개인 비리로 인한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자신이 진행하는 아침발전소에서 책의 '자신의 성공은 피와 땀으로 이룬 노력의 결과'라는 구절을 언급하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24] 그 박명수가 전화번호를 보곤 펄쩍 뛰며 기겁을 했고, 정형돈도 "우리 프로그램 없애려고 그러냐?!"라며 기겁을 했다.[25] 박명수가 더 불성실한 태도를 보인 것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간 묻히긴 했다.[26] 무브먼트 콘서트에 나와 같이 무대에 서기도 했다.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싸이에게 밝힌 바로는 대학 때 힙합 동아리 회장이었고, 부회장이 다이나믹 듀오개코였다고 한다.[27] 많은 사람들이 홍철이 여행사를 경영한 경력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대학 시절 같은 학교의 학우들을 대상으로 중국 여행 프로그램을 짜서 수익을 냈고, 이후 정식 등록을 하려 했으나, 여행사 정식 등록은 일정 이상의 자금이 필요했기에 정식 등록은 못했다. 본인 말로는 대신 다른 여행사의 사장님께 1달 동안 자신을 고용해달라고 부탁한 후 고용되어 자신의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수익을 냈다고 한다. PD특공대 특집 네 멋대로 해라 당시 인터뷰하러 간 골프선수 친구에 의해 폭로됐다. 결국 이 친구는 다시 한 번 그의 마수에 걸려들고 마는데(자기가 존경하는 친구의 장점에 대해 술술 불어놓게 하고 편집본에서 그걸 노홍철을 찬양한 것처럼 포장했다.)[28] 어렸을 적 너무 산만해서 집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아버지에게 바둑을 배웠다는 본인의 부가 설명도 있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29] 실제로 정신과 전문의도 노홍철의 결벽증은 극히 미약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심각한 결벽증 환자는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30] 대략 180cm로 키가 똑같은 김기수와 머리 길이가 비슷하다. 김기수의 머리 길이는 방송에서 쟀을 때 대략 26cm 정도가 나왔지만 측정자가 정수리보다 조금 아래에 손을 대고 쟀기에 실제 길이는 26cm보다 조금 더 길다.[31] 그 사람들 중엔 cf를 같이 찍은 원빈이나 방송 진행 mc를 같이 맡은 민호, 차은우, 윤아와 같이 일반인 기준으론 머리 크기가 극단적으로 작은 수준의 사람들도 있다.[32] 그러나 수염이 워낙 많이 자라는 체질이라 빠르게 지금의 노홍철의 이미지로 다시 돌아온다. 이후로는 수염 모양을 자주 바꾸면서 콧수염쪽이 이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기도 했는데, 가끔씩 방송에서 해외에서 사온 슈퍼 마리오 콧수염을 붙이고 등장하기도 했다(…).[33] 이는 다수의 외국인 방문객이나 근로자들이 신기하게 여기며 이야기하는 사실이다. 개중엔 머리가 작다는 이야기를 욕이라고 생각했다는 사람들도 꽤 많다.[34] 과거 6.7~6.8등신이 평균이었던 시절에 청년기를 보낸, 2020년대 기준 60~80대 어르신들도 머리가 크다는 것으로 고민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그 시절 한국 문화에선 머리 크기 자체가 미적 기준에 포함되지 않았기도 했고.[35] 8월 중순에 방영된 말하는 대로 특집까지만 해도 멀쩡해 보였으나 니가 가라 하와이 기점으로 머리를 짧게 자른 후, 9월 초의 약속한 대로 특집 때부터 늙었다고 놀림당하더니, 9월 말의 손연재 특집에서는 아예 빡구 CG까지 씌워지며 확인사살. 파업 기간동안 서서히 노화된 것도 아니고 파업 풀리자마자 1달만에 폭삭 늙어버렸다(...).[36] 건강검진에서 전년 대비 신체 나이가 4살이나 증가한 것이 드러나면서 팬들 사이에 무성하던 노홍철의 노화가 사실로 밝혀졌다.[37] 하하의 말을 빌리자면, ‘네가 옷 잘 입는다는 건 알겠는데 따라입고 싶진 않아!’ 길은 '홍철아 특이하게 입는다고 패션이 되는게 아니야.' 라고 일침을 날렸다.[38] 2007년 무도 드라마 특집 당시 촬영장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와서 인증샷을 남겼고, 무도 50회 특집에서 유재석이 그래도 패션 리더라고 치켜세워주긴 했지만, 대다수 멤버들의 반응은 "그게 무슨 패션 리더에요? 환자지."(...) 공주병 환자[39] 2006년 상반기에 레게 머리를 시도했으나 이후 건강관련 프로그램에서 모발건강 검진을 한 게 있는데, 거기서 이렇게 계속 땋는 머리 스타일을 하면 두피와 모발건강에 좋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고 하반기를 기점으로 레게 머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3년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퍼포먼스를 위해 다시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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