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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6:40:25

대한민국의 인터넷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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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강자였던 싸이월드
파일:SNS.png
2022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셜 미디어 서비스
1. 개요2. 역사
2.1. 1990년대 : PC통신의 등장2.2. 2000년대 초반: 초고속 인터넷과 과도기2.3. 2000년대 중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등장2.4. 2010년대 초반: 싸이월드의 쇠퇴와 마이크로 블로그의 등장

1. 개요

대한민국의 인터넷 문화를 서술한 문서.

1990년대PC통신의 등장과 함께 온라인의 개념이 처음 확립된 시기에 등장하였으며, 인터넷-스마트폰 시대로 넘어온 현재까지 많은 변화를 거쳤다.

전 세계를 통틀어도 최상위 수준의 IT 인프라를 가진 대한민국의 국가적 특성상, 인터넷 문화가 오프라인의 대중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매우 높으며, 특히 스마트폰의 시대가 들어선 이후에는 한국 대중들 거의 전부가 정보와 콘텐츠를 온라인으로부터 얻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 이후 전 세계 모두 상시 온라인 상의 정보에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시대로 바뀌었는데, 한국은 이러한 유비쿼터스 사회의 토대가 가장 잘 갖춰져 있는 곳이다.

한국의 인터넷 문화는 PC통신-인터넷 시절의 채팅과 동호회로 출발하여 2000년대 중반 사진과 동영상의 업로드가 대중화되며, 시류가 넘어간 블로그형 서비스의 유행, 이러한 블로그형 서비스가 모바일용으로 간소화되어 변화한 소셜 미디어의 뿌리로 내려가고 있다.

인터넷 문화의 유행은 보통 전 세계의 시류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은데, 2020년대 현재 한국의 인터넷 문화는 크게 소셜 미디어를 통한 온라인상에서의 소통과 교류, 유튜브 등 1인 미디어를 통한 정보 전달과 콘텐츠 제공으로 나눌 수 있다. 2010년대 초반까지 크게 유행했던 블로그형 서비스가 크게 간소화된 형태로 소셜 미디어로 넘어온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전의 인터넷 언론과 공중파 방송이 차지했던 정보 콘텐츠 제공의 역할이 유튜브 등 1인 미디어 서비스로 넘어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언론과 공중파 방송의 영향력은 아직 무시 못 할만큼 살아있고, 활발히 움직이는 편이지만, 1인 미디어의 영향력 역시 메이저 공중파 방송의 영향력에 비대할만큼 커진 상황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이제는 아예 공중파 방송이 유튜브 등으로 역진출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2021년 설문조사 결과, 대한민국의 미성년자 중 중•고등학생들은 스마트폰SNS 사용 비율이 99%에 육박하고, 초등학생 역시 83.8%가 스마트폰과 SNS를 사용하는 등 이미 인터넷 문화는 저연령층에게까지 내려간 지 오래다. #

이러한 디지털 정보전달과 콘텐츠에 익숙하고, 이를 즐기는 Z세대, 알파세대라는 새로운 세대구별로 부를 정도로 저연령층 사이에서 인터넷 문화는 사실상 이들의 삶 자체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 교육계에서도 디지털 방식의 교육과 수업, 코딩 등 IT 계통의 과목 수업을 강화하는 등 영향력 높은 온라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 세대를 위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2. 역사

한국의 인터넷 문화는 1990년대 초로 올라간다. PC통신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온라인\'이라는 정보 전달 공간의 개념이 처음으로 확립되고 소개된 것이다.

비록 전화선 모뎀을 이용한 방식으로 연결해 일일이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는 등 현재의 인터넷, 모바일 공간과는 매우 달랐지만, 무형의 정보를 공유하고, 온라인상에서의 공간에서 인류가 대화와 만남을 할 수 있다는 온라인의 특징이 처음으로 유행을 탔다.

이후,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과 이에 따른 인터넷의 발전,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한국의 인터넷 문화는 몇 차례의 유행적 변화와 발전을 거쳐왔다.

2.1. 1990년대 : PC통신의 등장

1990년대 PC통신 시절을 소개하는 영상

PC통신이 처음 대중에게 보급되었던 시기가 1990년대 초반이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인터넷은 커녕 컴퓨터조차 가정에서 보기 어려웠지만, 1992년 하이텔 단말기와 함께 낮은 가격에 보급되고, 이후 모니터가 가정으로 확대 보급되면서 이용자가 늘어나 온라인 공간이 처음으로 대중의 삶에 들어왔다. 온라인 상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네티즌', '누리꾼\'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던 시기도 이 때였다.

PC통신 시절 인터넷 문화의 주류는 동호회채팅이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 속도가 느린 모뎀(전화선)으로 인터넷에 접속해야 했고, 디지털 카메라조차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사진 같은 디지털 자료를 올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3대 PC통신 업체가 네티즌들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또한, 인터넷 상에서만 사용되던 인터넷 신조어가 등장한 시기도 바로 이 때. 지금 온라인용으로 사용되는 단어의 시초는 PC통신 시절 채팅방에서 쓰던 용어들에서 기원한 것이다.

여러 유행을 타며 현재는 사장된 단어들이 많지만, 온라인 상에서만 통용되는 네티즌들의 고유언어는 이 시기부터 유행을 타고 있었다.

2.2. 2000년대 초반: 초고속 인터넷과 과도기

2002년 개봉한 영화 <후아유>. 2000년대 초반의 인터넷 문화를 잘 보여준다.

1995년, Windows 95가 처음 런칭되어 한국에도 수입되어 왔지만, 당시만 해도 초고속 인터넷 선 하나 깔려지지 않은 한국에서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최소 1990년대 후반까지 한국에서는 PC통신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그 때 마침 불어닥친 IMF 여파로 인해 초고속 인터넷 사용은 희망고문이었다.

그러던 1999년, 국민의 정부국민PC 사업과 함께 초고속 인터넷 망이 전국적으로 깔리면서 한국에도 초고속인터넷 시대가 찾아왔다.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사이 정부초고속 인터넷 망 구축과 PC 보급을 국가적 과제로 책정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자한 결과, 한국은 2002년 11월 초고속인터넷 가입자수 1000만명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기타 국가들이 200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브로드밴드 이용자들이 모뎀 이용자들을 뛰어넘었던 것을 생각하면, 뒤늦게 초고속 인터넷에 뛰어든 한국이 몇 년 더 빠른 세대교체를 이룬 셈이었다.

초고속 인터넷의 부상과 함께 포털 사이트가 처음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다. 다음, 네이버, 야후!, 엠파스, 프리챌, 아이러브스쿨, 심마니, 다모임, MSN메신저, 버디버디, 세이클럽 등의 1세대 포털사이트들이 등장하였으며, 하두리처럼 웹캠을 이용해 자신의 사진을 공유하는 디지털 콘텐츠형 웹사이트도 처음으로 등장했다. 포털의 경우, 2000년대 내내 폭발적으로 이용자들을 끌어모으며 온라인 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다만, 2000년대 초반은 인터넷 문화 타임라인에서 일종의 과도기로 분류되고 있다. 이 때만 해도 여전히 인터넷 문화의 주류는 PC통신 시절과 마찬가지로 채팅, 동호회였기 때문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이전이라, 여전히 사진동영상 등 디지털 콘텐츠가 가미된 온라인 문화는 기대할 수 없었다.[1]

따라서 이 시기 프리챌, 아이러브스쿨, 심마니, 세이클럽, 버디버디 등의 포털 사이트들은 대부분 PC통신 시절과 마찬가지로 동호회, 채팅 서비스로 밥벌이를 했다. 또한, 이 시기만 해도 PC통신의 영향력이 아직 죽지 않았던 시기라 PC통신 3사인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역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와 PC통신 '텔넷(Telnet)\'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며, 이용자들을 유지했다.

이러한 과도기적 문화의 막바지였던 2003년에는 처음으로 포털 사이트가 언론부를 만들기 시작하고, 언론 기사에 사진이 제공되는 등 변화가 찾아오기도 했다. 2003년 연말부터 디지털 카메라가 폭발적으로 보급되면서, 한국의 인터넷 문화에는 변화의 조짐이 드리우고 있었다. 세이클럽, 버디버디, MSN메신저, 하두리 등의 기존 웹서비스들은 이 해까지 매우 건재했으나, 양 서비스를 병행해오던 PC통신 업체들은 하반기부터 PC통신 서비스를 완전 포기하고 포털로 갈아타기 시작한 것.

또한, 커뮤니티 쪽에서는 강자 포지션을 굳히던 프리챌이 유료화를 선언하면서, 블로그형 서비스였던 싸이월드를 이용객들이 이탈했다.

그렇게 PC통신 시절부터 이어져오던 채팅-동호회 서비스의 향수, 초고속인터넷과 텔넷(PC통신) 서비스의 병행이 이루어졌던 과도기적 문화는 2003년이 마지막이 되었다.

2.3. 2000년대 중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등장

2000년대 중반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싸이월드

2000년대 중반 대한민국의 인터넷 사회는 커다란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 디지털 카메라가 폭발적으로 보급되면서, 인터넷사진 등 디지털형 콘텐츠를 올리는 블로그형 서비스가 유행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볼로그형 서비스의 양대산맥이 바로 싸이월드네이버 블로그인데, 싸이월드의 경우 미니홈피 서비스의 유행 직전까지는 그저 쓰는 사람들만 쓰는 포지션에 불과했지만, 블로그형 서비스의 부흥 이후 곧바로 유행의 선두주자로 급부상해 2000년대 중후반 회원 4000만명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썼고, 네이버 블로그 역시 기존의 블로그형 서비스의 단점을 보완하며 선두주자로 치고 올라갔다.[2]

그외에도 이글루스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순위 10위안에 드는 등 큰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2010년 초반까지 싸이월드네이버 블로그 전성기는 계속되었고 인터넷뿐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 자체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지금의 인스타그램보다도 더 큰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2.4. 2010년대 초반: 싸이월드의 쇠퇴와 마이크로 블로그의 등장

그러나 싸이월드는 2010년대에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의 돌풍으로 쇠퇴하기 시작한다. 스마트폰이 보급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모바일에 적합한 마이크로 블로그가 싸이월드를 대체하기 시작하고 만 14세 이하도 사용 가능하다던 싸이월드의 강점도 카카오스토리의 출시로 인해 만 14세 이하층도 흡수하여 2012년부터는 완전히 쇠퇴해버렸다.

네이버 블로그도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세에 멀어졌긴 하였으나 싸이월드의 쇠퇴로 인해 한국 블로그의 중심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어 싸이월드보다 큰 타격을 받지 않았으며 네이버 블로그는 현재까지도 정상적으로 서비스를 이어가고 있다.

미투데이는 초기엔 기세등등했으나 이후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게 밀려서 2014년에 서비스를 종료하였다.
[1] 하두리 역시 디지털 카메라가 없었던 시절, 웹캠으로 사진을 쉽게 찍어올릴 수 있다는 장점으로 뜨게 되었다.[2] 네이버가 현재까지의 건재한 위치에 도달하기까지 네이버 블로그의 역할이 매우 컸다. 또 다른 한가지는 지식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