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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음악/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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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1960년대: 태동기2.2. 1970년대~80년대: 청년문화로의 발전, 그리고 정권의 문화탄압2.3. 1990년대~2000년대: 전성기의 끝과 짧았던 펑크 붐
2.3.1. 실패의 원인
2.4. 2010년대: 그래도 생명력을 이어나가고 있는 인디 씬2.5. 2020년대: 도약의 발판이 되다
3. 국내에서 록 음악을 하는 가수들4. 일부 과격한 리스너들의 문제점(락꼰대)5. 결론

1. 개요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악 장르
※2021년 전국 4,822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Top 12 선정.
순위 장르 선호도 순위 장르 선호도
1 발라드 64.2% 7 클래식 11.7%
2 댄스 43.4% 8 트로트 10.5%
3 영화/드라마 OST 39.0% 9 록/메탈/일렉트로닉 9.4%
4 30.6% 10 재즈 6.9%
5 R&B 18.7% 11 인디 6.2%
6 힙합 16.4% 12 종교음악 6.0%
출처

대한민국 음악시장에서 록 음악의 역사를 정리한 문서.

한국은 전 세계 음악시장 사이에서 록의 불모지로 불릴만큼 록 음악의 입지가 크지 않고, 매우 불안정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사이에 잠시 부흥기를 타기도 했었지만, 시류의 변화와 여러 부침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주류 자리에 드는 데는 실패했다. 2010년대 이후로는 더 이상 록 시장에서 신인은 주목받지 못하고, 기존 밴드들도 이전보다 입지가 위태로워진 상황이다.

2020년대 현 시점에서, 록의 원조격인 서구권을 포함한 전 세계적으로 록 시장이 약해지는 추세기는 하지만 한국은 그 경우가 더 빨랐다고 할 수 있다.

2. 역사

2.1. 1960년대: 태동기

신중현
'비속의 여인' (1964)
신중현
'커피 한잔' (1968)

한국 록 음악의 태동기는 1960년대에 신중현[1]을 비롯한 한국의 1세대 록 뮤지션들이 등장하고 부터이다. 하지만 1960년대의 한국은 정치 상황도 전체주의 군사독재를 겪는 중이었던 데다가 아직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이었던 사회 분위기 때문에 당시 서구권에선 청년문화의 대표격이었던 히피 문화와 록 음악은 높으신 분들(정부)의 눈에는 단순히 탄압의 대상일 뿐이어서 한국엔 제대로 들어오지 못했다.

즉, 모든 서구권과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대부분이 록음악을 필두로 한 새로운 청년문화의 혁명에 휩싸여 있었던 1960년대에 한국은 그런 열풍에서 한참 비켜나 있었던 것이다.

2.2. 1970년대~80년대: 청년문화로의 발전, 그리고 정권의 문화탄압

산울림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1978)
마그마
'해야' (1981)
송골매
'모두 다 사랑하리' (1982)
들국화
'그것만이 내 세상' (1985)
부활
'비와 당신의 이야기' (1986)
티삼스
'매일 매일 기다려' (1988)
1970년대부터는 그래도 상황이 나아져서, 중류층의 가정에도 '전축'이 조금씩 보급되기 시작했고 '빽판'이라고 불리던 불법복제 해외음반들이 유통되기 시작했으며 신촌과 명동 등지의 음악다방에서 DJ들이 록과 팝음악을 트는게 유행하면서 한국에서도 조금씩 록음악 팬들이 많아지고 록음악 문화의 저변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70년대 초중반에 록음악을 듣고 자란 한국의 록키드들이 대학생이나 성인이 되어서 70년대 후반~80년대에 열풍을 몰고온 '록 그룹사운드'의 주력 멤버들이 되었다. 이렇게 서구의 원조 록음악을 들을 기회가 이전보단 훨씬 많아지고, 대학가 그룹사운드를 중심으로 록뮤지션들도 많이 생겨났지만 정부의 검열은 여전히 엄격해서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는 장애가 많았다. 물론 락음악은 미국의 음악이었기 때문에 민중음악처럼 빨갱이들의 음악이라는 식으로 밟지는 않았고, 그 대신 서구 퇴폐음악이라는 식으로 규제를 가했다.

1970년대에 대표적인 한국 록밴드로는 신중현과 엽전들, 산울림, 송골매를 들수 있다. 이들 70년대 밴드들은 독재정권의 탄압과 간섭이 극에 달했던 유신 시기에 활동을 했기에 각종 검열과 금지에 시달려야 했다.

1980년에는 하드록 밴드 마그마가 대학가요제에 나오면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이상하게도 유독 대학가요제에서 주목을 받은 록밴드는 정규한장내고 해체하여, 보컬이 솔로로 데뷔/장르 변경을 하는 패턴을 이어가 버리고 말았다.(대표적으로 마그마, 티삼스) 마그마의 등장으로 포크 록이 주류였던 한국에서도 하드록, 헤비메탈이 주목을 받는 시기가 온다.

이후 1980년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밴드 시나위, 백두산, 부활, 들국화도 데뷔를 하게 되었고 이들은 80년대 한국 록 밴드 3대장으로 불리며, 인기를 얻고 있었다. 대학가요제 쪽에서도 역시, 마그마 뒤를 이을 록밴드들이 주목을 받기도 하였으며 87년에는 티삼스, 88년에는 무한궤도가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는 록 밴드들이 지상파TV나 라디오 음악 순위 프로그램의 정상권에 자주 진입했고, 심지어 가요톱10 골든컵을 더러 수상할 정도로 록 음악이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의 위치에 제일 가까이 근접했던 시기였다. 일단 1970년대에 비해 1980년대에는 3S정책의 영향으로 대중문화와 프로스포츠를 장려했기 때문에 박정희 정권 때에 비해서는 규제가 상당히 완화되었기 때문에 가사검열은 남아있기는 했어도, 일단 락 음악같은 자극적인 컨텐츠도 널리 지상파에 나오는 것이 가능해졌고, 록 음악이 과거보단 인기를 얻게 된 하나의 원인이었다.

2.3. 1990년대~2000년대: 전성기의 끝과 짧았던 펑크 붐

N.EX.T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 (1994)
김경호
'Shout' (1998)
델리스파이스
챠우챠우 -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1997)
자우림
매직 카펫 라이드’ (2000)
크라잉 넛
'말달리자' (1998)
노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 (2000)
NELL
'기억을 걷는 시간' (2008)
국카스텐
'거울' (2008)
1980년대 밴드 붐 이후로 대중들에게 록 음악이 익숙해진 일본에서는 그 흐름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1990년대 J-Rock이 최전성기를 맞은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90년대 들어서 서서히 불씨가 꺼져가고 있었다.

주목 받은 신인 록밴드 가수로는 N.EX.T[2], 윤도현[3], 김경호, 걸, 이브, 델리스파이스, 자우림, 노브레인, 크라잉넛, 크래쉬, 체리필터 등 80년대에 비교하면 양적으로는 크게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1990~2000대 자유분방항 분위기 속에서 락밴드들이 태동한 이 시기를 한국 락의 전성기라 보기도 한다. 한국 대중음악이 댄스음악을 받아들여 인기를 얻고있던 시점에 수많은 댄스그룹을 제치고 1위를 달성한 걸이 있었고 넥스트는 애니메이션 음악을 담당하면서 외국의 음악잡지등에서 극찬을 받기도 하였으며, 김경호는 외국의 록보컬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가창력과 무대매너로 호평을 받았다. 기대주로 불리던 윤도현 밴드 역시도 4집이 입소문을 타며, 재결합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90년대에는 이들 외에도 선배 밴드들이 다시 새로운 전성기를 맞기도 하였는데 시나위 출신이었던 김종서는 솔로로 컴백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시나위는 김바다를 영입하여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부활 역시도 새로운 보컬 박완규를 영입하여 반등의 기회를 보고 있었다. [4]

하지만 음악계의 주도권이 발라드, 차트 댄스뮤직에 완전히 뺏겨버렸다.
다만, 인디에서는 약간 이야기가 다른데, 삐삐밴드를 시작으로 90년대 중반부터 인디씬을 중심으로 펑크 붐이 불기 시작했고, 조선 펑크의 선구자인 크라잉넛노브레인이 등장하면서 인디에서는 그나마 저항정신을 노래하는 한국 특유의 펑크 록 무브먼트인 조선 펑크가 싹트기 시작한다.[5] 1999년쯤에는 1세대 조선펑크 밴드들이 인디씬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으며 크라잉넛의 말달리자가 히트하면서 인디에서나마 꾸준히 수요가 생기나 싶었지만, 2000년대 중반에 터진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은 조선펑크 씬을 홀랑 말아먹었다.

한국 록 아티스트들의 현실도 암울하지만 해외 유수의 록 아티스트들에 대한 한국 대중 음악 소비자들의 인지도 역시 처참한 수준이다. 그나마 인지도가 높은 록밴드는 린킨 파크, 뮤즈, 오아시스 정도가 있다. 그래도 린킨 파크, 갤러거 , 뮤즈, 그린데이는 10대 층에게 심심찮게 인기가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공연 수입이나 앨범 판매 수입이 높은 밴드 중 하나인 콜드플레이의 경우도 내한 당시 수분만에 전석이 매진될 정도의 인지도는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인지도에 비해 한국내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콜드플레이가 누군데, 사람들이 이 난리 영광임? 솔직히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나 유명한 가수가 좋아한다고 공연장 간다니까 괜히 유행인거 같아서 분위기 타는거 아님?' 이라는 글이 올라올 정도이다. 하지만 보다 마니아틱한 장르들의 밴드는 록 발전에 끼친 영향력에 비해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매우 낮다. 2000년대 초반 록씬을 강타한 장르들 중 하나였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밴드들의 경우는 인지도가 바닥을 기어다닌다. 일례로 교보문고 본점 음반 판매 코너에서 그나마 한국내 인지도가 높은 편인 악틱 몽키즈의 앨범은 1집부터 5집까지 재고가 아예 없는 수준이다. 악틱 몽키즈는 런던 올림픽 당시 오프닝 공연을 했던 밴드이며 록 페스티벌을 통해 한 차례 내한공연까지 했다.

2.3.1. 실패의 원인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도어즈, 너바나. 이런 훌륭한 밴드들이 어디 하루아침에 나온 줄 아십니까? 대중음악이 발전하려면요, 밴드 문화, 프로그레시브한 밴드 문화, 이게 핵심입니다! 그런데 요새 애들이 밴드를 안 해요, 밴드를! 왜냐? 배고프니까. 돈이 안 되니까. 밴드에서 노래 좀 한다는 애들은 죄다 나와서 댄스곡 부르고 춤 추고. 이게 문제입니다!
- 박중훈,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6] #
결론부터 말하자면 록이 전 세대에 걸쳐 확실히 뿌리를 내려야 할 시점(1960~70년대)에 경직된 국가 분위기에 의해 실패했고, 세월이 지나면서 새로이 등장한 힙합발라드, 그리고 K-POP으로 대표되는 아이돌 뮤직이 당대의 한국 청년층들을 사로잡으며 가뜩이나 뿌리가 약했던 록 음악씬을 너무 빠르게 대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심지어 록의 근원인 미국과 록을 부흥시킨 영국조차도 흑인 음악계열 장르들에 의해 록이 밀리는 추세라서 원체 록 음악씬이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한국이 더 두드러질 뿐, 록 시장이 죽어가는건 어딜가나 마찬가지다.

전 세계의 많은 대중음악계에서 입을 모아 "록은 팝을, 팝은 록을 닮아왔다."고는 말하지만 한국 대중음악계에서는 조금 엇나간다. J-POP에서는 일렉트로닉 등 가상/전자악기가 대중화 된 현재에도 록 음악에서 파생된 기타-베이스-드럼 반주가 모조리 있는건 아니더라도 삽입되는 경우가 주류인 반면, 한국 아이돌 음악에서 기타-베이스-드럼 반주는 오히려 마이너하다. 아이돌 음악만 듣는 사람이라면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아예 모른다. SM, YG 등 대형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에 소속된 록밴드가 전혀 없다.[7] 이와 같은 현상은 현재 일본 아이돌과 한국 아이돌의 음악적인 근본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일본 아이돌의 시작은 1970년대 일본 록 뮤지션들의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이를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유럽권의 유로비트, 예예(Yé-yé)나 미국의 팝 뮤직이 조금씩 뒤섞여 순화된 음악을 바탕으로 한다. 80년대만 하더라도 소방차와 같은 초창기 한국의 댄스가수들도 사운드나 퍼포먼스면에서 이런 일본 아이돌 뮤직에 영향받은 장르를 주로 보여줬다. 당시 소방차의 무대를 보면 사운드는 물론이고, 안무 도중에 공중제비를 많이 도는 등, 쟈니스 사무소 계열의 남자 아이돌 음악을 거의 그대로 따오다 싶이 했다. 실제 그룹 이름도 쟈니스의 '소년대'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현진영의 등장으로 인해 동시대 영미권의 힙합과 뉴잭스윙, 댄스팝에 직접적으로 영향받은 새로운 댄스뮤직이 등장하여 기존의 80년대 댄스뮤직을 완전히 세대교체를 시켜버렸다.

한국 아이돌 음악의 뿌리는 1980년대 댄스뮤직이 아닌 서태지를 대표로 하는 1990년대 댄스뮤직이다. KPOP에서 힙합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 한국 아이돌 그룹이라면 한 두명씩은 꼭 있는 래퍼 포지션 멤버들이 그 증거이다. 그리고 빅뱅, 2NE1, 블락비, 방탄소년단처럼 힙합과 흑인 음악적인 요소를 대놓고 표방한 아이돌 그룹들도 수두룩하다. 일본 아이돌계에선 현재에도 래퍼 담당을 찾기 힘들며, 랩이 쓰이기 시작한 시점도 2000년대 이후 들어서이다. 오히려 한국 아이돌들이 한류 붐으로 일본으로 역수출 되면서 랩이나 힙합적인 요소를 띄는 그룹들이 2010년대 이후에 조금씩 생겼다. 이는 이미 1990년대 초반 서태지때부터 꾸준히 랩을 했던 한국 아이돌과 큰 차이점이다.[8]

난 알아요 문서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을 내는데 있어서 영향을 받은 밀리 바닐리와 같은 뮤지션들은 뉴잭스윙에 가까운 힙합, 랩댄스 장르의 아티스트였다. 오히려 록적인 성향이 섞이기 시작한 시점은 2집 이후로 보는 것이 옳다. 여담이지만 2집 하여가를 시작으로 록과 힙합이 뒤섞인 독특한 댄스음악을 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에 의해 H.O.T., 젝스키스를 비롯한 1세대 기획형 아이돌들도 '전사의 후예', '기사도'처럼 사운드적으로 과격하고 웅장한 음악을 많이 선보였다. 이것이 꾸준하게 내려오면서 현재 EXO나 BTS가 자주 선보이는, 정신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거친 사운드가 겹겹이 쌓인 댄스음악으로 발전한 것이다. 현재 아이돌들이 격한 퍼포먼스나 칼군무가 들어간 음악을 할때,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가사가 많은 것도 서태지와 아이들이 추구해온 사회비판적이면서 비유가 많은 가사법이 변형되어 내려온 것. 자세한 내용은 SMP 참조.

대중음악만 듣던 사람들 중 일부는 '그럼 록밴드들도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 사람들이 알아줄 것 아니냐.'라는 말을 하지만 한국 록의 인지도 부족은 음악성 부족이 아닌 록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와 선입견에 기인한다.

한국 인디씬은 1990년대부터 펑크록, 모던록, 헤비메탈, 사이키델릭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퀄리티 높은 음악들을 뽑아내왔지만 사람들이 몰라서 안 듣는다. 그 이유는 이미 수십년간 독재정권에 의해 박해를 받아오던 한국 록씬이 SM, JYP, YG 등의 대형 기획사들의 자본력을 따라가지 못하고 홍보, 방송 출연 입지 등 모든 면에서 제약을 받으면서 결국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부족한 자본력과 홍보에 대한 부분은 인정하더라도 이는 대중음악의 중요한 요소인 대중성을 간과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명반이라고 해서 모든 작품이 주목을 받고 많은 돈을 버는 단순한 구조라면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loveless가 레코드사를 망하게 만들었을까? 좋고 실력있는 음악이라 할지라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부족한 니즈나 감성을 채워주지 못한다면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리고 대부분의 음악 팬들이 간과하는 점이 았다면 Kpop장르 또한 록 앨범을 만드는 것 이상의 어마무시한 시행착오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대중들의 기대치는 우연성이 매우 크게 작용하고 이 우연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안무, 음악, 파트 분배, 코디까지 분석을 통해 철저하게 이루어진다. 무대 실수 하나하나와 의상의 노출도마저 잡아내는 완벽주의자가 바로 우리나라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밴드가 기대하는 음악과 대중이 기대하는 음악에 대한 중심을 잡아야 하며, 대중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요소가 있다면 열심히 주목해주고 역주행으로 이어준다. 밴드 중에는 잔나비, 혁오, 신현희와 김루트가 래퍼 중에는 창모, ASH ISLAND가 이를 통해서 사재기 대란 속에서 1위 내지는 탑 100 안에 오른 바가 있다. 그리고 그 정점은 데뷔 10년이 넘어서야 1위에 오른 브레이브걸스.

특히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의 여파로 인디 밴드들이 한동안 방송전파를 타지 못한 것이 화근인 것이 명백한 사실이기는 한데, 그 일을 2020년대 기준 기억하는 10~20대 대중들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16년이 훌쩍 넘은 시기인 데다가 2000년대 후반부터 장기하와 얼굴들, 혁오, 잔나비, 이날치 같은 밴드들이 지속적으로 지상파와 유튜브에 출연하여 이미지 쇄신을 한지 벌써 오래다.

또한 한국에서 록 음악이 몰락한 시기는 주거문화가 아파트 위주로 바뀌어간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즉 층간소음 문제로 인해 록 음악을 하기도, 듣기도 불리한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한국 아이돌 계열 아티스트 중 유일하게 록 메탈 사운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드림캐쳐도 마이너한 장르 때문인지 대중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여타 아이돌들에 비해 국내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

2.4. 2010년대: 그래도 생명력을 이어나가고 있는 인디 씬

K-POP의 낙수효과 덕분인지는 몰라도 인디밴드(롤링쿼츠 등)의 연주 영상 같은 게 올라오면 외국인들의 댓글을 심심치않게 볼수 있으며 차라리 이럴 바에는 한국에서 록 음악의 관심을 퍼트리는 것보다 외국에서 활동을 하는 게 낫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인디씬에서는 많은 밴드들이 해외 쪽으로 활동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인디밴드의 대부분은 다양한 장르의 밴드[9]보다는 대중적인 모던록과 7080의 유지를 잇는 포크 록(혹은 이에 기반한)으로 대표되는 팝밴드의 비중이 높다. (지방 출신의 밴드가 서울로 진출해서 설령 성공해도 힘든건 마찬가지이니 외국으로 가는 것이 낫다. 이는 K-EDM이라고 다르지 않다.) 국내보다 해외 활동 비중이 눈에 띄는 아티스트로는 잠비나이가 있다. 잠비나이는 심지어 국악 퓨전 록인데도 해외에서 러브콜이 잦은 특이 케이스.

올드 가수들 가운데 그나마 유명한 가수라고 해봐야 김경호, 박완규 등으로 나는 가수다 기준으로 그나마 인지도가 올라갔지만 여전히 신세대(20~30대)에게 많은 호응을 받기는 어려웠고 그나마 대중들이 많이 들어주는 곡은 록 장르가 아닌 록발라드 정도였다. 2010년 이후에는 R&B힙합, 당대 서양의 차트 EDM을 받아들인(다르게 말해서 주류로 수용된 K-EDM의 일부분) K-POP 주류 댄스음악의 열풍에 밀려 록발라드 조차도 사장되었다. 그나마 나가수 시즌 2에 들어서 국카스텐이 그나마 록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링크

2010년대 이후로는 인디 팝에 가까운 인디 밴드들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으며, 혁오잔나비같이 주류방송매체에서도 여러번 소개되어 사실상 '마이저'(마이너 출신이지만 그중에서 메이저) 반열에 드는 밴드도 어느정도 생기고 있다. 다만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의 여파가 아직까지도 커서 제대로 된 힘은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고스트스테이션 속 고스 인디 차트 같이 인디를 포함한 한국의 락 씬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신해철[10] 같은 올드 가수들도 별로 남아있지 않고, 신대철, 김태원, 신중현, 김창완 등이 남아있더라도 크게 힘을 못 쓰고 있는 상황이다.

2015년,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보이밴드 DAY6를 결성하였으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2019년에 발매된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가 K-POP 팬들에게 소수 알려지기 시작했다.

록밴드는 아니지만, 2017년 드림캐쳐컴퍼니[11]의 7인조 아이돌 드림캐쳐가 발매하는 곡마다 록, 하드 메탈 컨셉의 곡을 주로 내세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팬층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2.5. 2020년대: 도약의 발판이 되다

실리카겔
'NO PAIN' (2023)
QWER
'고민중독' (2024)
DAY6
'Welcome to the Show' (2024)
2020년, 한국 록 음악계에는 암흑기가 찾아왔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하여 페스티벌이 중단되었다. 그나마 라이브 공연으로 이어가던 소수의 인디밴드들 조차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라이브 공연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2019년부터 미스트롯 이후로 시작된 트로트 음악의 열풍은 안 그래도 설 자리가 없던 록 음악을 완전히 끝장내 버렸다.

국내 서브컬쳐 계에서는 달의하루가 2020년 3월 20일에 투고한[12] 염라가 2020년 9월,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 1000만을 달성하였다. 이후 너로피어오라를 투고하여 기세등등하게 성장하나 했으나, 2020년 9월 작곡가 ampstyle의 사망으로 사실상 활동 중지가 되었다.

2021년, JYP엔터테인먼트가 DAY6의 뒤를 이어 6인조 밴드 Xdinary Heroes를 데뷔시켰다.

코로나19가 끝나고, 중단되었던 록 페스티벌과 대학축제들이 재개되면서 음악시장이 다시 활기를 띄웠는데, 특히 DAY6가 군백기 이후 예뻤어,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등이 크게 주목을 받고 역주행하기 시작하면서 각종 행사, 대학축제에서 섭외되기 시작했다.

2023년, 유튜버 김계란이 기획한 최애의 아이들 프로젝트를 통해 4명의 멤버[13]를 주축으로한 걸밴드 QWER을 발표했다. 처음에는 반응이 미적지근했으나, 싱글 1집 Harmony from Discord의 타이틀곡 Discord가 발매 직후 멜론 음원 순위 9위, Youtube Music 3위로 올라오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24년 4월, 이 기세는 미니 1집 MANITO의 타이틀곡 고민중독이 발매되자 멜론 음원 순위 1위, Youtube Music, 애플 뮤직 2위로 등극하는 등 호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QWER이 출연한 것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유래없는 대성공으로 국내 록밴드들이 대거 주목받는 등 반등의 계기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기세에 힘입어 9월, DAY6와 QWER은 각각 미니 9집 Band Aid의 타이틀곡 녹아내려요와 미니 2집 Algorithm's Blossom의 타이틀곡 내 이름 맑음이 발매되자마자 멜론 뮤직, Youtube Music에 둘 다 1위를 하는 호성적을 기록하였다. 동시에 두 곡 모두 음악방송에서 1위[14]를 함으로써 인기를 이어나갔다.

3. 국내에서 록 음악을 하는 가수들

4. 일부 과격한 리스너들의 문제점(락꼰대)

국내 록 음악이 부진한 이유도 락꼰대로 불리는, 자기 자신만의 잣대를 딱 정해놓고 자기만 즐기는 록이 진짜 록이고, 다른 건 록이 아니라는 식으로 비난하는 풍조가 있다. 주로 유튜브 댓글이나 네이버 블로그를 비롯한 인터넷 곳곳에서 활동하며, 이들이 록 음악의 범위를 롤링 스톤즈, 딥퍼플, 레드 제플린 같은 소수의 매니아들이 즐기는 쪽으로 좁혀왔고, 그 범위 바깥에 있는 록밴드나 록 음악에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며 대대적으로 폄하해왔다. 이들의 폐해는 너무나도 광범위해서, 대한민국 록이 침체되는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락꼰대들이 주로 비난하는 레파토리는 "밴드가 아니다", "작곡을 안한다", "무슨 아이돌이 밴드를 하느냐", "락이 아닌데도 락인척 한다", "밴드도 아닌게 왜 락을 하느냐", "밴드가 왜 락이 아닌 다른 장르를 하느냐" 등 별의별 이유를 갖다대며 비난하고 있다. 락은 장르의 한 종류이고, 밴드는 가수의 한 종류일 뿐, 밴드가 락이 아닌 다른 음악을 해도 상관없고, 아직 락을 쓸 힘이 없을 때 대신 써줄 수도 있고, 밴드가 아니더라도 락을 부를 순 있는 걸 이들은 의도적으로 무시해 비난한다.

락꼰대들의 규모는 소규모이나, 장르 상관없이 듣는 대다수의 대중에 비해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비난을 해서 마치 이들이 대한민국 록 음악의 팬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행동이 오히려 대한민국의 록을 저해시키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5. 결론

사실 한국이 꼭 '록의 불모지'나 '록이 전혀 히트한 적이 없다'라고 말하기에는 어느정도 오해가 있다. 이것은 록 음악을 매니아 기준(딥퍼플이나 레드제플린 같은 하드 록이나 메탈을 원하는 매니아층)으로 정의를 좁게 잡았기 때문이다. 서구권이나 일본만큼은 아니더라도 한국도 부활, 김경호나 버즈와 같은 록 발라드나 들국화, 산울림 표 포크록을 제외하고도 의외로 많은 록 히트곡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아이돌 음악들 중에도 빅뱅의 맨정신, 처럼 장르상으로는 록이나 메탈에 해당하는 곡도 많다. 당장 드림캐쳐만 봐도 아이돌이지만 타이틀곡을 비롯해 수록곡은 주로 헤비 메탈 장르의 음악으로 꾸준히 곡을 내어주고 있다.

한국 대중 음악사에서 성인 가요의 뿌리에 해당하는 신중현의 음악은 블루스와 록에 기반을 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수많은 록밴드 들이 신중현의 음악을 리메이크하며 재생산하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한국 대중음악의 거물들이라 할 수 있는 조용필, 신해철, 서태지 등등 모두 록 음악을 했다. 조용필의 최고 히트곡 중 하나인 모나리자나 윤수일 밴드의 황홀한 고백과 아파트, 신해철의 데뷔 밴드인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등등 모두 엄연히 록 넘버이다. 흔히 말하는 뽕끼가 있긴 한데 그건 일본의 최고 록밴드 B'z와 다를게 없다.

서태지의 음악은 댄스 음악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음악이 록을 기반으로 만들거나 록의 요소를 차용해 왔다.[20] 자우림이나 버스커버스커 같은 밴드도 충분히 록의 범주에 들어간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록을 거칠고 날뛰는 이미지초고음만 내지르는 매니아 음악으로 치부하는 편견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시선만 좀 더 넓혀 보면 한국 가요계에서도 록 음악이 끼친 영향이 마냥 적다고 볼 수는 없는 셈이다.

2024년, QWER의 성공과 DAY6의 역주행은 국내 음악계에도 록이 잠재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런 모습은 YTN 뉴스에도 보도될 정도로, 유래없는 성공을 이루어 내고 있다.

이 상황에 대해 자조적으로 버스정보시스템에 '락은 사망!'(다른 각도)이라는 글이 나온 게 유머화되었다.


[1] 훗날 Fender사로부터 경의를 받게 되는 한국 록 음악의 대부이자 나아가서 한국 대중음악계의 대부이다.[2] 이 마저도 사실 이미 큰 명성을 누리고 있던 신해철의 새 밴드나 마찬가지인 취급을 초창기엔 받았다.[3] 2집부턴 밴드로 결성하여 활동하고 자신의 솔로 1집은 그냥 밴드의 정규 앨범으로 인식한다.[4] 다만 의견충돌로 인하여 김태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완규는 부활을 떠나게 된다.[5] 일찍이 주류로 편입되어서 골수 인디팬들에게는 초심을 잃어버렸다고 항상 까이는 노브레인도 초창기에는 <청춘구십팔>을 들으면 알수있듯이 펑크 특유의 저항정신이 강했었다.[6] 영화에서 박중훈이 연기한 캐릭터인 최곤은 인디밴드에서 활동하다가 매니저인 박민수의 눈에 띄어 솔로로 활동하게 된 이력이 있다. 그리고 라디오 스타는 2006년 영화인데, 2000년대나 2020년대나 연주자는 뒷전이고 보컬들만 데려가 댄스 가수나 댄스 그룹으로 데뷔시키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나름대로 변화하는 음악 시장의 상황을 관통하는 명대사라고 할 수 있다.[7] JYP에는 DAY6, Xdinary Heroes가 있다. 또한 중소 기획사 중 밴드 형식의 아이돌 그룹은 FNC씨엔블루, FT아일랜드, 엔플라잉이 있다.(댄스 그룹으로 바뀌긴 했지만 AOA도 포함.)[8] 이 처럼 일본 음악계는 록밴드에 의해 이끌어져 왔다는 점에서 일본 대중음악계는 한국 음악계와는 상당히 다른 경향을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현재 일본의 록씬은 굉장히 규모가 거대하여, 수천 개의 록 밴드들이 활동하며 공연하고 있고 전국의 공연 클럽 숫자, 그리고 그 록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어마어마하다. 세계에서 록씬 규모가 제일 큰 국가는 미국, 영국 다음에 일본이다. 경제적 규모로만 보면 영국과 거의 같다고 한다. 이건 굳이 록 음악 뿐 아니라 음악 시장 전반 규모로 봐도 마찬가지다. 특히 일본 음반 소비시장은 그 취향의 다양성으로도 유명한데 그로 인해 본국에서도 마이너한 아티스트들이 사실상 일본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다시피 하고 있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9] 물론 인디에서도 더 깊고 힙한 쪽으로 가면 한국에서도 익스트림 메탈같이 과격한 음악을 하거나 밀레니엄 전후로 인기를 끌었던 조선펑크의 명맥을 잇는 이들도 소수나마 있긴하다.[10] 신해철2014년 의료사고로 인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11] 결성 당시 해피페이스엔터테인먼트[12] 뮤직비디오 자체는 1월 31일에 선공개되었다[13] 쵸단, 마젠타, 히나, 시연[14] 데이식스는 데뷔 9년 7일 만에, QWER은 데뷔 11개월 26일만에[15] 다른 장르도 같이 한다.[16] 본래 밴드였지만 현재는 솔로다.[17] 이쪽도 본래 멤버가 여러 명 있는 밴드였지만 현재는 1인 밴드다.[18] 발라드 장르도 같이 하나, 혜성, 비밀번호 486, 사건의 지평선 등 락의 지분도 상당히 크다.[19] 원래는 R&B와 댄스를 위주로 활동했으나, 2022년부터 록 음악을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다.[20] 그나마 범주 외에 드는 댄스곡은 난 알아요Come Back Home 정도. 난 알아요도 브릿지에 헤비메탈 디스토션을 집어넣어 록의 색채를 입히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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