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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8 21:59:22

마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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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씨오상(馬氏五常)
백상 중상 숙상 계상 유상

촉서(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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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1권 「유이목전(劉二牧傳)」 2권 「선주전(先主傳)」 3권 「후주전(後主傳)」
유언 · 유장 유비 유선
4권 「이주비자전(二主妃子傳)」 5권 「제갈량전(諸葛亮傳)」 6권 「관장마황조전(關張馬黃趙傳)」
감부인 · 목황후 · 경애황후 · 장황후 ·
유영 · 유리 · 유선(璿)
제갈량 ,제갈교 제갈첨 동궐 번건, 관우 ,관흥, · 장비 ,장포, · 마초 ,마대, · 황충 ·
조운 ,조통 조광,
7권 「방통법정전(龐統法正傳)」 8권 「허미손간이진전(許糜孫簡伊秦傳)」 9권 「동류마진동여전(董劉馬陳董呂傳)」
방통 ,방굉 방림, · 법정 허정 · 미축 · 손건 · 간옹 · 이적 · 진밀 동화 · 유파 · 마량 ,마속, · 진진 ·
동윤 ,진지, · 여예
10권 「유팽요이유위양전(劉彭廖李劉魏楊傳)」 11권 「곽왕상장양비전(霍王向張楊費傳)」 12권 「두주두허맹래윤이초극전(杜周杜許孟來尹李譙郤傳)」
유봉 ,맹달, · 팽양 · 요립 · 이엄 · 유염 · 위연 · 양의 곽준 ,곽익 나헌, · 왕련 · 상랑 ,상총, · 장예 ·
양홍 ,하지, · 비시
두미 · 주군 · 두경 · 허자 · 맹광 · 내민 ·
윤묵 · 이선 · 초주 ,초수, · 극정
13권 「황이여마왕장전(黃李呂馬王張傳)」 14권 「장완비의강유전(蔣琬費禕姜維傳)」 15권 「등장종양전(鄧張宗楊傳)」
황권 · 이회 · 여개 · 마충 · 왕평 ,구부, · 장억 장완 ,장빈 장현 유민, · 비의 · 강유 등지 · 장익 · 종예 ,요화, · 양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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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謖
마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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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직위 면죽현령(緜竹縣令) 겸 성도현령(成都縣令) 겸 월수태수(越巂太守) 제1차 조위 북벌 참군(參軍)
성씨(馬)
(謖)
유상(幼常)
생몰기간 190년 ~ 228년(향년 38세)
고향 형주(荆州) 양양군(義陽郡) 의성현(宜城縣)
사망지 한중(漢中)
월수태수 재임기간 ?년 ~ 22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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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역임한 관직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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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한
,(유비 → 유선),
형주(荊州) 종사(從事) → 면죽(緜竹) 현령(縣令) 겸 성도(成都) 현령(縣令) 겸 월수(越巂) 태수(太守) 겸 참군(參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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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촉한의 참모이자 무장.

백미로 유명한 마량의 동생이다. 마씨 오형제 중 마량이 넷째, 마속이 막내라고 한다.[1]

2. 생애(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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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삼국지연의

"승상은 마속의 재질을 어떻게 보시오?"
제갈량이 대답했다.
"당세(當世)의 영재(英才)입니다."
선주는 베개 위에서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짐은 이 사람을 보니 말은 잘하지만 능력이 말만큼 뛰어나지 않아서 크게 쓸 인물이 못 되오. 승상은 깊이 살피시오."
연의 85회에서 유비가 제갈량에게 한 말.

연의에서는 85회에서 유비를 통해 언급된 뒤 남만정벌을 떠난 87회에서 등장하며, 91회 때 조비가 죽은 틈을 타서 유언비어로 사마의를 실각시켜 제갈량에게 더 큰 신임을 얻는다. 훗날 제갈량도 강등되게 만들지만... 그런데 정작 그 유언비어가 현실이 되었지. 그리고 마속을 가정에서 깨뜨리는 역할은 사마의가 가져갔다. 또한 가정 수비는 마속이 온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걸고 군령장을 쓰면서까지 자청한 것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정사에서 독단적으로 마속에게 맡겼던 제갈량의 책임을 어느 정도 배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마속의 최후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 대목을 읽고 '제갈량과 마속은 유비-제갈량과 비슷한 관계였나 보구나'하고 잠시 생각했다가 바로 뒤에서 패배와 참수형을 연이어 접하고 충격받는 전개가 되기도 하고.

최후도 드라마틱하게 각색되어 공개처형이 되었다. 96회에서 한중으로 퇴각한 제갈량은 곧바로 마속을 군법에 회부하고, 마속에겐 경솔하게 총사령관의 명령을 어기고 독단적으로 행동해 전쟁을 망친 죄로 간단하게 사형 판결이 내려진다. 그래도 스스로의 잘못을 자각하곤 있었는지 마속은 사형판결이 내려졌을 때 변명 한마디 없이 잘못을 인정하여 사형을 받아들인다. 마속을 아꼈던 제갈량은 가족을 돌봐주겠다고 하고 마속을 끌고나가 목을 자르게 한 후 통곡한다. 그러나 제갈량은 마속의 죽음에 안타까워한 것이 아니라 선황 유비의 말을 제대로 따르지 않아 1차 북벌이 실패로 끝났다는데서 좌절감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다시 유비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다.

연의 95회에서 마속이 가정을 위군에게 잃을 때 패턴은 연의의 앞 내용에서도 반복된 적이 있다.

4.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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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타

산에 집착하다 전쟁을 말아먹고 본인도 죽는 대참사를 낸 임팩트가 커서 등애와 함께 등산애호가, 산악인 캐릭터로 곧잘 희화화된다. 지분을 나누면 마속이 실패한 산악인, 등애가 성공한 산악인으로 정리할 수 있다. 등애는 목적을 위해 산을 탄 반면 마속은 오히려 산을 타서 전쟁을 말아먹었기에 마속이야말로 진정으로 산을 사랑한 남자, 진짜 산악인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니고 일본에서도 마속은 까고 등애는 빠는 경우가 많아[3] 마속과 등애는 중국을 대표하는 산악인이라고 칭한다.

5월가정의 달이므로 마속을 까야 한다는 개드립도 있다.

정사 삼국지 촉서에는 마속전이 없으며, 마속의 형이 되는 마량전에 마속의 이야기가 부속으로 조금 나온다. 단지 편의상 나무위키나 파성넷에서 임의로 마량전을 마속전과 마량전으로 나눴던 것이다.[4]

영락성 전투에서 서하군과의 전쟁에서 난전 중 전사한 서희와 비슷한 면이 있다. 서희가 부장 곡진의 말을 듣지 않고 전쟁에 임하자[5] 서하군과의 전투에서 패사했고[6], 마속은 왕평의 말을 듣지 않고 산 정상에 진을 치고 적과 맞서자 결국은 패했다.

6.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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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량과 마속의 세 형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량과 마속이 항렬에 따라 자를 쓴 것을 보면 적어도 그의 세 형은 백상(伯常), 중상(仲常), 숙상(叔常)이라는 자를 썼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2] 이 때문에 조홍은 (서황의 상세한 보고를 접한) 조조에게 친족이고 뭐고 참수형을 당할 뻔했지만, 그 다음에 마초가 기습했을 때 목숨 걸고 조조를 구해서 체면치레를 했다.[3] 사실 한 쪽은 대실패, 한 쪽은 대성공으로 끝났으니 당연하다. 그리고 등애는 진짜로 모험을 할 필요가 다분히 있었던 반면에 마속은 쓸데없는 짓을 하다 말아먹은 거다.[4] 촉서 9권은 동류마진동여전(董劉馬陳董呂傳)으로 진수가 묶어서 전을 썼는데 자신의 국가에 큰 피해를 입히고 책임회피를 하려고 도망가다가 잡혀서 죽은 마속이 동화, 유파, 마량, 진진, 동윤, 여예 같은 당대에 높은 평가를 받던 촉의 인재들과 나란히 묶일 리가 없다. 굳이 마속전이 들어가야 한다면 촉에 큰 해를 입혔거나 성격 및 처신에 문제가 있는 인물들을 묶은 10권(유봉, 팽양, 요립, 이엄, 위연, 양의, 유염)에 들어가는 게 맞다.[5] 수원 부족으로 인해 북송군은 말똥을 갈아 즙을 내어 마시는 등 상황이 심각하였다.[6] 서희 본인을 비롯한 이순거 등 20만 명이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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