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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9 10:53:27

미수교국

1. 개요2. 대한민국의 경우
2.1. 목록
3. 관련 문서

1. 개요

국가 간의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지 않은 국가를 지칭한다.

보통 두 가지로 나누는데 처음부터 일방 또는 쌍방이 상대국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부류와, 국가로 인정하기는 하되 여러 가지 외교적 문제로 수교를 하지 않는 부류이다. 수교를 맺지 않는다고 해서 교류 자체를 완전히 금하는 것은 아니며, 미수교국이더라도 경제, 문화적인 교류는 활발한 사례도 있다. 또한 미수교국에도 일정한 절차를 거치면 직접 방문이 가능하다.

미수교국에는 정식 대사관/영사관을 설치하지 않는 대신, 해당 국가에서 활동하는 자국민의 보호 및 대표를 위해 대표부를 설치할 때가 많다[1]. 이 대표부는 공식적으로는 대사관이나 영사관과 같은 외교적 특권을 가지지 못하나, 대표부의 성격상 암묵적으로 특권을 상호존중해 주고 있다. 해당 미수교국과 인접한 국가의 대사관/영사관에서 필요한 업무를 대행하기도 한다.

2. 대한민국의 경우

대한민국도 과거에 많은 미수교국이 있었는데 크게 세가지 경우였다.

그러다가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집권으로 소련이 개혁개방 노선으로 전환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냉전 분위기가 완화되었고 대한민국에서는 노태우 정부가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 공산권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북방정책을 내건 것이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부터 공산권 국가들과의 외교관계가 급진전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1990년 한국-소련 수교, 1992년 한국-중국 수교와 한국-베트남 수교, 2024년 한국-쿠바 수교 등으로 이어진다.

또한 남아공도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폐지하고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자 1992년 다시 수교를 맺었다.

냉전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남북간 체제대결도 사실상 대한민국이 앞서게 되면서 서울올림픽 이후 미수교국의 숫자는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대한민국은 1991년부터 UN의 일원으로서 거의 대부분의 UN 회원국과 수교를 맺고 있다. UN 회원국이지만 수교하지 않은 나라는 북한시리아밖에 없다. 시리아는 희박하지만 수교 여부 가능성이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북한은 특수한 관계를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은 이상 앞으로도 수교 가능성이 없다. UN 미가맹국으로 시야를 넓히면 미수교국 숫자가 꽤 되는데, 대부분 국제적 존재감이 작거나 당장 수교로 얻는 이익이 거의 없는 나라다. 대만(중화민국)은 한중수교로 인해 관계가 단절되었고, 코소보팔레스타인 같은 경우는 싫어하는 주변국들이 하필 대한민국의 주요 교역상대라 수교가 없다. 팔레스타인이 UN 참관국으로 들어올 때에도 대한민국은 기권을 했다. 그 밖에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소말릴란드, 북키프로스처럼 교류하는 그 자체로 국제적 오해를 살 수 있는 경우에도 먼저 관심을 표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출입국관리법에는 한국에 입국하고자 하는 미수교국 국민에게는 비자가 아니라 별지 형태의 외국인입국허가서를 발급하고 미수교국 국민으로서 외국인등록증이 나온 거주자들에게는 여권에 날인/스티커 부착하는 형식의 재입국허가증이 아닌 별지 책자 형태의 재입국허가서를 발급하도록 되어 있다.

2.1. 목록

2024년 현재 대한민국이 수교를 맺지 않은 국가들은 다음과 같다. 승인과 미승인 분류는 국제적인 평판이 아니라 대한민국 외교부의 판단을 근거로 했다.

2024년 2월 14일 한국과 쿠바와 수교를 맺게 되면서 미수교국은 전부 미승인지역이나 (출국금지) 여행금지지역만 남게 되었다. [5]

2.1.1. 승인

승인했지만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들이다. 현재 이 중에서 단교로 인해 미수교국으로 분류된 나라는 없다.

2.1.2. 미승인

대한민국이 승인하지 않아 수교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다.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단교 및 미승인한 대만 정도를 제외하면 서로간의 교류 명분도 거의 없고 외교적 실리도 없는 상태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밖에 자세한 내용은 미승인국가/목록 문서를 참조.

3. 관련 문서



[1] 이 경우는 국가승인을 전제하지 않으므로 일방 또는 쌍방이 상대국을 승인하지 않을 수도 있다.[2] 당시 분단 상태였던 서독동독도 초기에는 한국과 비슷했다. 서독도 연합군의 일원이었던 소련을 제외한 나머지 공산권 국가들과는 일체의 외교관계를 거부하는 할슈타인 원칙을 고수하였다. 그러다가 1969년 총리로 취임한 빌리 브란트가 공산권과 관계를 개선하는 동방정책을 추진하면서 동유럽 국가들과 수교하였고, 이런 외교적 노력이 훗날 동서독 통일로 이어진다.[3] 이때는 매년 언론에서 북한의 수교국 몇개, 대한민국의 수교국 몇개 이런 식으로 도표를 그려서 보여주었다. 특히 새로운 국가와 수교를 맺게 되면 무조건 9시뉴스에서 표로 보여주면서 꼭 앵커가 "대한민국은 XX개국가와 수교중이고, 북괴는 우리보다 한참 뒤쳐진 **개 국가와 수교중으로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격차를 벌리면서 앞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같은 멘트를 날렸다. 물론 지금은 남한은 바티칸과 쿡 제도를 합쳐서 193개국, 북한은 미승인국까지 합쳐서 161개국으로 많이 벌어져 있다.[4] 이런 수교경쟁 때문에 특별한 경제적 이익이 없는데 거액을 투자한 나라가 바로 아프리카의 가봉이다.[5] 쿠바는 수교 이전이나 이후나 어떤 여행경보도 발령되지 않았다.[6] 통상적으로 맺는 대사급 수교보다 한 단계 아래의 관계이다. 대개 정식 수교로 치지는 않는 편이라서 수교국 개수에는 영사급 수교를 넣지 않는다. 대한민국과 이집트 간 1961년부터 1995년까지 유지한 관계도 영사급 수교였다. 이집트와의 선례를 참고하여 영사급 수교를 합의한 듯 하다.[7] 당시 대한민국은 시리아와 관계 개선에 섣불리 나설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2000년대 중반에 한미관계가 별로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와 대북정책 등으로 양국간 입장 충돌이 잦아 별로 좋은 편이 아니었다. 또한 시리아와의 수교가 반기문유엔 사무총장 당선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여 소극적으로 돌변했다는 시각도 있다. 당시 한국은 반기문유엔 사무총장 당선에 혈안이 된 상황이었다.[8] 이미 북한은 소위 '남조선 미해방지구'를 '대한민국'으로서 외국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제1주적국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재는 남한만 '미수복지구'로 간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