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696969><colcolor=#fff> 미우라 켄타로 三浦 建太郎|Kentaro Miura | |
출생 | <colbgcolor=#ffffff,#2d2f34>1966년 7월 11일 |
치바현 치바시 | |
사망 | 2021년 5월 6일[1] (향년 54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성별 | 남성 |
직업 | 만화가 |
학력 | 니혼대학 (예술학부 미술학 / 학사) |
데뷔 | 1985년 만화 '다시' |
수상 | 2002년 제6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만화우수상 |
대표작 | 베르세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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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만화가.2. 생애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때 모작하며 영향을 받은 작가는 호소노 후지히코, 야스히코 요시카즈, 나가이 고 라고 하며 자신의 작화의 기본은 호소노 후지히코라고 한다. 부모님 모두 디자이너 였다. 학생 시절 유도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음에도 초단을 매칠 정도로 허리가 강했다고 한다.동인지로 작품을 내면서 상업지에도 작품을 내고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이 홀리랜드의 모리 코우지, 세스타스의 와자라이 시즈야. 얄궂게도 모리는 미우라 켄타로 사후 베르세르크의 연재 재개에 투신하게 되었다. 특히 모리 코우지는 베르세르크의 결말을 미우라에게 전부 들었고 그 이후로도 여러 번 협의를 했다고 한다.
이후 니혼대학 미술학과에 입학했으며, 대학 입학 후에 주간 소년 매거진에서 "또 다시", "플래쉬 매거진"에서 "NOA"를 연재하여 상업지 데뷔에 성공한다.
1984년 더 파이팅의 만화가 모리카와 조지의 임시 어시스턴트로 활동했다.
원래는 미술도 하고 싶었지만 그쪽에선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해 만화가가 되었다고 하며 이것이 마음에 걸려 "미술 같은 만화"를 그리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1988년, 이 발상으로 만든 "단편 베르세르크"를 코미코미 11월호에 냈고, 이것이 베르세르크의 시작품이 된다. 대학 졸업 후에 월간 애니멀 하우스(영 애니멀의 전신)에서, "왕랑", 왕랑전[2], 재팬[3]을 연재하면서, 그와 동시에 베르세르크를 집필했다. 참고로 미우라가 직접 스토리까지 구상한 건 베르세르크가 유일하다. 왕랑전이나 재팬은 미우라 켄타로가 작화만 맡았던 만화들이다. 스토리 작가는 북두의 권으로 유명한 부론손.
1992년 이후에는 베르세르크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가 밝힌 바로는 베르세르크의 주제는 '인간이 운명에 대항할 수 있는가?'이다. 아마 인터뷰 등으로 미루어 보아 자신이 더는 펜을 들 수 없을 때까지 연재할 생각인 듯하다. 그리고 완결을 내지 못하고 타계하면서 그 자신과 팬들 전부가 바라지 않은 형태로 이 생각은 이뤄졌다. 마치 베르세르크의 주제를 죽기 전까지 본인도 끝까지 찾고 증명해보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연재가 뜸한 편이지만 휴재왕처럼 컨디션 관리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기 보단 작업량이 많아서 생기는 문제. 그의 그림체의 완성도를 생각해보면 계속 연재하는 게 힘들어 보인다. 실제로 매일 8~10시간 정도씩 거르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하며 그 덕에 도중에 뛰쳐나간 어시스턴트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러니 팬들 중에 이야기가 늘어져서 진행이 느린 걸 걱정하는 팬들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연재가 연달아 이어지면 작가의 건강이 먼저 걱정될 정도. 작가가 먼저 죽나 독자가 먼저 죽나 완결이 먼저 나나의 승부라고 한다. 사실 베르세르크 팬들은 미우라가 쉰다 하면, 그동안 수고했으니 얼마든지 쉬어도 괜찮다 한다. 그저 완결 낼 때까지만 살아달라는 것이 대다수 팬들의 반응이었으나 결국...
작화 뿐만 아니라 작품의 시나리오나 메시지에도 심혈을 기울이기로 유명한데, 자신이 구축한 세계관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공들인 장면이라도 가차없이 단행본에서 빼버리거나 연재본에서도 흑역사로 만드는 일이 있다. 그리피스가 페무토가 되면서 '혼돈/세계'와 조우하는 장면을 완전히 삭제해 버린 일화가 유명하다.
덤으로 어시스턴트가 말한 비화 중 가츠의 흉터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미우라 켄타로는 가츠가 어떤 에피소드에서 상처를 입었을 경우 일일이 번호를 붙이고 상처의 종류에 따라 치료되는 과정을 그린다고 하는데, 실제로 작품을 보면 그 말이 맞다. 가츠의 상처들은 느닷없이 아무는 게 아니라 시간의 경과, 그리고 상처의 정도에 따라 흉터를 남기거나 덜 아문 상처를 남기는 등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다. 게다가 흉터만이 아니라, 가츠가 검은검사가 되고나서부터 두르고 다니는 단검의 숫자도 일일이 신경쓰는 듯 하다.
2013년 말부터 베르세르크를 잠시 휴재하고 영 애니멀에 신작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베르세르크를 갑자기 휴재하고 다른 작품에 들어갔다기 보다는, 건강 문제상 베르세르크를 쉬어가는 김에 시험 삼아 피로도가 덜한 작품을 그리는 것. 기간토마키아도 작화가 만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베르세르크보다는 작가에게 가는 부담이 덜할 것으로 추정되는 작풍이다.
제목은 '기간토마키아'. 1억년 후의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프로메[4]라는 소녀와 데로스라는 청년의 이야기라는 듯. 기간토마키아라는 뜻 대로 거인과 거인의 싸움이 중심소재다. 일단 6화 단기 집중연재라고 나와있는데, 애초에 6화짜리로 기획한 건지 단기 연재 중에 인기가 높으면 이어서 진행을 할 지는 모르겠다. 6화 정도면 딱 만화책 한 권 분량은 되기는 할 듯. 베르세르크 말고는 딱히 대표작이 없었기 때문에 베르세르크하고는 다른 작품에 대한 욕심이 있었을지도... 결국 6화 + 번외편 1편으로 완결. 기간토마키아 끝나고 다다음주부터 다시 베르세르크 연재 재개 예정이라 한다.
1년 이상의 연중 끝에 2014년 4월에 드디어 베르세르크 연재 재기!!... 였으나 다음화는 5월에 나오게 되었고, 기존엔 언제 연재가 재개되는지 알려준 것과는 달리 9월 연재분에선 연재일 미정이 떠버렸다. 그 후 10개월이 지난 2015년 7월에 연재가 재개됐고, 최신화와 이어지는 4회 분량의 100페이지 짜리 부속이 딸려온다. 하지만 12월에 부정기 연재로 전환한다는 소식과 함께 다음회 게재는 무려 16년 여름 예정.
그리고 꽃보라의 왕을 만나고 캐스커를 되돌리기 위해 그녀의 꿈 속으로 들어가 강마의 의식 도입부를 끝으로 다음화는 17년 초로 옮겨갔다.
마침내 17년 3월 캐스커의 꿈 속 심층 세계에 들어가 치유를 시작했지만, 클라이맥스를 앞둔 상황에서 또 겨울까지 휴재를 선언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된 연재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현재 상황에서는 월간 주기로 약 반 년 연재 후 약 3개월~반 년 휴재라는 공식이 세워진 상황.
- 2015년 - 7월 말 월간 연재로 재연재 시작. 잡지 연재 기준 338화 ~ 343화까지. 12월 말 단행본 38권과 전권 리뉴얼 작업, 신 애니메이션의 준비기간으로 인해 여름까지 휴재.
- 2016년 - 신 애니메이션 방영시점인 6월로 연재를 재개. 344화 ~ 347화 까지. 9월 신 애니 1쿨 완결과 10월 말에 출시 될 베르세르크 무쌍과 2017년 상반기에 방영될 신 애니메이션 2쿨 준비로 휴재.
- 2017년 - 신 애니메이션 2쿨 방영 시점인 3월 연재를 재개. 348화 ~ 351화까지. 6월 신 애니 2쿨의 완결에 맞춰 겨울까지 휴재, 연말인 12월 20일 352화 연재로 재개.
- 2018년 - 월간 연재 재개. 353 ~ 357화까지. 5월 23일자 356-2화로 휴재 후[5] 8월 23일자 357화 연재와 함께 휴재.
- 2019년 - 4월 23일 358화 연재 후 휴재. 8월 23일 359화 연재와 함께 신작 두르안키 발표.
그리고 2016년 여름에 3년만에 38권이(한국은 가을에), 그 다음해인 2017년에 39권과 함께 신생 매의 단 간부 그룬벨드의 과거사를 푼 소설 염룡의 기사를 출간했다.
카쿠 유지의 만화 지옥락 5권 발매를 기념하여 서로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2.1. 갑작스런 사망
2021년 5월 6일, 급성 대동맥 박리로 인해 사망했다는 소식이 5월 20일에 발표되었다. #출처사망과 발표시기간에 2주의 시간차가 있어서 고독사가 아니냐는 소리가 있으나 편집부 말로는 병원으로 후송할 때 도운 사람도 있었고 유족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미우라 켄타로가 격무에 시달렸다 해도 베르세르크 원고 작업을 당사자 혼자서 떠안을 리가 만무하다. 실제로 전용 작업실도 뒀기 때문에 고독한 삶과는 아예 상관이 없었다. 지난 14일간 장례나 남은 원고 처리 같은 뒷정리를 마치고 대중에게 공표했다는 설명이 올바를 것이다.
현세와는 담을 쌓은 듯한 과거의 권말 코멘트로 인해 생전의 건강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10여년 전부터 건강한 생활과 관리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전해졌다. #
BBC, CNN, 뉴욕타임즈 등 해외 주요 언론들도 그의 죽음을 알렸고,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전 세계의 많은 팬들이 애도를 표했다. 베르세르크 주역의 성우를 맡았던 칸나 노부토시, 미야무라 유코, 유키나리 토아 등이 트위터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모리카와 토시유키는 그리피스를 맡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다며 명복을 빌었다. 아카마츠 켄, 모리카와 죠지[6] 등 만화가들에 이어 그동안 베르세르크 관련 미디어 매체에서 꾸준히 OST에 기여했던 히라사와 스스무도 트위터로 추도의 말을 남겼다.
2.1.1. 만화계에 끼친 영향
비록 큰 비극이었지만 작가의 부고와 그 사망 원인은 많은 사람들이 다른 작가들의 건강 문제, 그 중에서도 과로에 의한 건강 악화에 대해 큰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어떤 작품이 휴재되면 미우라 켄타로가 상기될 만큼 휴재에 너그러워진 분위기가 강해졌다. 이 때문에 장기 연재 중인 작품의 작가들이 휴재를 하면 이제는 독자들도 대부분 이해하고 넘어간다. 대표적으로 원피스의 오다 에이치로, 명탐정 코난의 아오야마 고쇼, 주술회전의 아쿠타미 게게 등.3. 작품 목록
연재 기간 | 제목 | 원작 | 그림 | 비고 |
1989 | 왕랑 | X | O | |
1989~현재 | 베르세르크 | O | O | 연재 재개 |
1990 | 왕랑전 | X | O | |
1992 | 재팬 | X | O | 단편 만화 |
2013~2014 | 기간토마키아 | O | O | |
2019~2020 | 두르안키 | O | △ | 프로듀서 담당 연재 중단 |
4. 어록
マンガを描くのは実際、全部楽しい。マンガを描いていてつらいこと、苦しいことってほぼないですね。めんどくさいことはあるけど、そのめんどくさいことも楽しかったりするんです。じゃなきゃこんなに長くやってません(笑)。楽しいことばっかりだから1日中マンガのことばかりで、人らしい生活をいい加減にしちゃってるところがあります……あ、そういえば時間が欲しい。時間がない、寿命が来る、体力が落ちてきたというのは苦しみかな……。
(만화를 그리는 것은 사실 전부 즐거워요. 만화를 그려서 괴로운 일은 거의 없네요. 귀찮은 건 있지만, 그 귀찮은 것도 즐거우니 하는 거죠.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오래 할 수 없죠. 즐거우니까 하루종일 만화만 그리느라 인간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는 점은 있죠. 아, 그러고 보니 시간이 더 있었으면 해요. 시간이 없네, 수명이 줄어들고 있네, 체력이 떨어지네, 라는 느낌이 괴롭다고 할까요.)
코믹 나탈리(コミック ナタリー) 2019년 10월호에 실린 인터뷰 중에서. "(베르세르크를 연재하는 데) 괴로운 점은 없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한 대답. 번역 출처
(만화를 그리는 것은 사실 전부 즐거워요. 만화를 그려서 괴로운 일은 거의 없네요. 귀찮은 건 있지만, 그 귀찮은 것도 즐거우니 하는 거죠.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오래 할 수 없죠. 즐거우니까 하루종일 만화만 그리느라 인간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는 점은 있죠. 아, 그러고 보니 시간이 더 있었으면 해요. 시간이 없네, 수명이 줄어들고 있네, 체력이 떨어지네, 라는 느낌이 괴롭다고 할까요.)
코믹 나탈리(コミック ナタリー) 2019년 10월호에 실린 인터뷰 중에서. "(베르세르크를 연재하는 데) 괴로운 점은 없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한 대답. 번역 출처
5. 기타
- 54년 한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정상급 퀄리티의 만화를 그려내기 위해 장인정신 수준으로 많은 시간을 창작에 할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과 작업만 반복하는 생활을 몇 십년간 반복했다고 한다.
- 그림 퀄리티의 비결은 밑선을 엄청나게 많이 그리는 것이다. 마치 찰흙으로 테라코타를 빚듯 계속해서 선을 그어 다듬어가면서 엄청난 수준의 디테일로 그림을 그린다. 거의 하라 테츠오급으로 그림을 그린다.
- 의외로 여러가지 매체를 즐기는데, 새벽의 연화의 팬아트를 그린 적도 있었고 아이돌 마스터도 좋아한다. 2012년 1월에 니코니코 동화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베르세르크 극장판의 감독 쿠보오카 토시유키를 초청하고 미우라 켄타로와 전화로 연결해서 인터뷰를 했는데 중간에 인터뷰어가 왜 니코니코동화 프리미엄 계정을 샀냐고 물으니 아이돌 마스터 때문이라 대답했다. 그러자 쿠보오카 왈, "결코 제가 아이돌 마스터의 캐릭터 디자이너라는 이유로 미우라 선생이 저를 감독으로 추천해주신 건 아닐 겁니다". 이에 인터뷰어는 반신반의. 좋아하는 아이마스 캐릭터는 키사라기 치하야[7]라고 하며, 이유는 캐스커와 같이 스토익한 면이 좋아서였다고.
- 마법선생 네기마의 팬이기도 하고 그 중에서도 아야세 유에를 좋아한다. 유에와 노도카의 삼각관계가 본격적으로 도드라질 때는 '이 전개를 기다리고 있었다'라면서 한 컷 만화를 네기마의 작가 아카마츠 켄에게 보낸 적이 있다. 아카마츠 켄의 일기에 올라왔었다. 삼국지 붐일 때, 열심히 진 연희무쌍을 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리고 미우라의 사망 후 아카마츠 켄의 추도사가 올라왔다.
- 보컬로이드 카무이 가쿠포의 일러스트를 공짜로 그려줬다. 러프와 원화를 보자.
- 만화를 연재하는 동안 그림체에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1권부터 황금시대까지의 그림과 로스트 칠드런 이후의 그림은 그냥 다른 만화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림이 매우 다르다. 30년 가까이 연재를 해왔는데 그림이 마냥 똑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개중 여자의 그림체는 예외적으로 많이 달라졌다. 초반에 나오는 테레지아와 중반에 나오는 질을 비교해보면 뚜렷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 쿠샨 침공이나 매의 단에서 전쟁씬들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이때문에 혹자는 '십만 대군이 등장하면 십만 병사를 일일이 다 그린다면서, 디테일을 조금만 줄여도 베르세르크의 연재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 데뷔 초에는 부론손을 스토리 작가로 한 작품을 여러 개 그렸는데, 그 중 하나가 칭기즈 칸 =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설에 따른 만화(왕랑, 왕랑전 시리즈)다.
- 비실재 청소년으로 유명한 청소년 보호 조례 개정안에 대한 풍자 그림을 그렸다. 아래를 참고.
왼쪽 위에 현실의 소녀들이 있고, 거기에 달려드는 등에 페도라고 적힌 티를 입은 오너캐들을 소녀 캐릭터들이 방어선을 펼쳐서 막고 있는 그림이다. 한 마디로 오히려 가상 매체가 현실을 지키고 있으니 가상 매체 제재하지 말라는 그림. 이 외에도 코믹 LO를 보면서 수음을 하는 오너캐를 그리기도 했다.[8]
- 모리 코우지의 자살도 연재 초기의 작가의 말에다가 모리 코우지는 멋지게 "죽는 것, 살아가는 것, 그런 이야기를 그려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썼는데 바로 밑에 "아키바에서 피규어를 사와 미소녀 뎃셍의 수행을 거듭한 모리 선생님께 격려의 편지 좀"이라고 드립을 친 적도 있다. 그리고 다음 달에는 모리의 작가의 말은 '피규어, 꽤 좋은 물건이라고요'가 되어 있었다.
- 아래는 작가 활동 초창기 때 찍은 사진.
- 생전에는 평소 사진 노출을 꺼렸는지 공개적으로 찍은 사진이 드문 편이다. 페르소나 시리즈 제작진과 대담할 때도 사진은 빠졌었다. 실제로 본인으로 확인된 사진이 초창기 시절의 사진과 위의 프로필 사진(2019년 촬영) 외에는 거의 보기 힘들다.
- 히라사와 스스무의 열성적인 팬인 것이 계기가 되어 히라사와 스스무가 베르세르크의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OST를 전담하게 되었다.
5.1. 모리 코우지와의 관계
모리 코우지와는 일본 만화계에서는 유명한 자타공인 절친 관계. 고등학교 동창으로 만나 같은 대학교에 진학, 아마추어 시기는 물론 프로로 데뷔한 뒤에도 거의 일평생을 함께한 사이다. 미우라 켄타로 사후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단순한 절친한 사이를 넘어서 서로의 만화에 관해 20년 가까이 조언을 주고받고 은퇴 후 인생 계획까지 함께하기로 약속한 인생의 동반자 수준.젊은 시절 미우라는 모리에게 “뇌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다”라 말할 정도로 만화에 관해서는 거의 동업자 수준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베르세르크 문서에서 나오듯이 미우라 화실의 스태프들이 먼저 모리에게 찾아가 베르세르크 검수를 부탁할 정도라니 평소에 미우라와 모리가 얼마나 자주 왕래했는지 알 수 있다.
모리 코우지가 그린 미우라에 대한 추모 만화에서 나온 바로는 고등학생 시절, 모리가 미우라의 친가에 꽤 긴 시간 얹혀살았다고. 모리 코우지가 만화를 관두고 방황하던 시절에도 미우라 켄타로는 한결같이 만화에 관한 상담을 해왔고 오토바이 사고를 계기로 만화가로 복귀, 미우라 켄타로의 조언으로 그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홀리랜드를 그려 성공적으로 데뷔하게 된다.[9]
6. 관련 문서
[1] 사망일자 발표는 5월 20일.[2] 칭기즈 칸이 일본인이라고 왜곡 쩌는 만화. 제팬과 같이 대원에서 정식 번역되었다.[3] 세계문명이 망한 뒤로 일본을 백인들이 점령하고 여자들은 자발적 위안부로 나가며... 등등 뭔가 보기 거북한 게 줄줄이 나오더니만, 아시아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게 저팬이라고 이름 짓는다며 끝난다. 답이 없다.[4] 그리스어 프로메테우스의 준말인 것 같다.[5] 3월 ~4월 달 연재 된 분량은 356-1화와 356-2화로 친다.[6] 더 화이팅 작가. 젊은 시절 그가 그린 타카무라 마모루를 보면서 회고의 글을 남겼다. 서로 만나 만화에 대해 이야기한 걸 회상하면서 나중에 마지막 회를 보러 가겠다는 말로 죽어서도 만화를 연재하는 혼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7] 정확하게는 치하야 팬덤에서 자주 부르는 별명인 '치쨩'이 좋다고 답했다.[8] 각 캐릭터들은 앞줄의 우측에서부터 코코노에 린, 하치쿠지 마요이, 치르노, 후타미 아미·마미, 타카츠키 야요이, 루이즈, 이즈미 코나타, 히이라기 카가미, 하츠네 미쿠, 카가미네 린, 미야후지 요시카, 금빛 어둠, 나카노 아즈사, 아키야마 미오. 후열은 히나리, 슈리, 샤오렌, 링링, 알 아지프다.[9] 모리 코우지 입장에서는 인생의 은인 수준. 방황기에도 인연을 이어가며 프로 데뷔에도 큰 도움을 준 사람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아는 지인들은 미우라가 없었으면 모리는 죽었거나 교도소에 들어갔을 것이라 평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