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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8:40:30

히라사와 스스무

히라사와 스스무
[ruby(平沢 進, ruby=ひらさわ すすむ)]
파일:susumu_fuji21.jpg
이름 히라사와 스스무 (平沢進)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출생 1954년 4월 2일[1] ([age(1954-04-02)]세)
도쿄도 아다치구
거주 이바라키현 츠쿠바시
가족관계 부친 히라사와 키요시
친형 히라사와 유이치
직업 싱어송라이터, 그래픽 아티스트, 프로듀서
데뷔 1979년 | P-MODEL
1989년 | 솔로
레이블 POLYDOR (1989~1995)
COLUMBIA (1995~1998)
TESLAKITE (2000~)
소속사 MODEL HOUSE (1979~1989)
I3 프로모션 (1989~1996)
케이오스 유니온 (1996~)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개인]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공식] | 파일:Bandcamp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
2.1. Hirasawa Energy Works2.2. 응집하는 과거환현주의 8760시간2.3. 개인 미디어
3. 음악 스타일4. 사용하는 장비
4.1. 악기4.2. 컴퓨터
5. 디스코그래피6. 여담
6.1. 한국 관련6.2. 태국과의 관계6.3. 스텔스맨6.4. 서브컬쳐와의 관계
6.4.1. 히라사와 유이와의 관계6.4.2. 기타 서브컬쳐에서의 패러디 및 관계
6.5. 주변 인물
7.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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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hirasawa_fuji21.png
師匠
스승

[4][5]
逃げ惑う群れとは反対へ
허둥대며 도망치는 무리와는 반대쪽에
гипноза '109号区の氾濫 (109호구의 범람)' 中
일본의 뮤지션.

1979년 정월 도쿄 카츠시카구 카메아리에서 P-MODEL이라는 뉴웨이브/일렉트로닉 밴드를 결성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P-MODEL 해체 이후로는 솔로 활동과 P-MODEL을 원맨 밴드 형태로 계승한 프로젝트 핵(核)P-MODEL 활동을 현재까지 병행해오고 있다.

2.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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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부터 2014년까지의 모습.
오오 미청년 오오 미중년 오오 미노년
파일:DoLbe0sVAAEAj6N.jpg
맨드레이크 결성 직후 장발의 히라사와 (19세)

1973년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맨드레이크를 결성하고 레코드 회사가 앨범 발매를 권유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히라사와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봤고, 밴드의 음악 스타일을 포스트 펑크에 가깝게 변경해나가다 1978년에 이르러선 해체한다.

한편 1978년경부터 83년까지 야마하 신디사이저 교실에서 강의를 하며 수입을 얻었고 P-MODEL의 새 멤버를 여기에서 선출하기도 했다. 2001년 방영된 NHK P-MODEL 특집 방송에서의 인터뷰에 의하면 당시 P-MODEL 멤버의 조건은 연주실력보단 "얼마나 재밌는 생각을 하느냐"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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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데뷔 당시 히라사와 (1980)

P-MODEL에서의 자세한 활동에 대해선 P-MODEL 문서 참조.

1979년 P-MODEL의 리더로 메이저 데뷔한 이후에는 밴드 활동과는 별개로 각종 필명으로 여러 장르의 곡을 주문받아 작곡[6]하였고 나중에 그의 솔로 활동의 기반 중 하나가 된다.

1984년에는 실험음악 유닛인 슌(旬)을 결성.[7] 비정기적으로 싱글을 발매해오며 히라사와만의 음악세계를 확장해 나아갔지만 1996년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해체된 상태.

1988년 12월 동결 라이브를 개최하여 P-MODEL의 활동을 잠정 중지할 것을 선언하고 히라사와 스스무는 앨범 "시공의 물"을 발표하면서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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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데뷔 직후 히라사와 (1989)

90년대부터는 데토네이터 오건, 검풍전기 베르세르크 등의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을 맡으며 활동 반경을 넓혔다. 잠시 중단했던 밴드 활동도 1991년 P-MODEL을 해동. 재개하며 일렉트로닉 성향이 강해졌고 이후 솔로 활동과 밴드 활동을 병행하게 된다.

1994년에는 독학으로 키운 CG기술과 프로그래밍 실력을 활용해 마치 RPG 게임을 하듯 선택지, 세트리스트, 빌런과 전투방법, 엔딩 등을 관객의 호응이나 행동으로 정해 그날 공연의 향방을 바꾸어나가는 '인터랙티브 라이브(Interactive Live)'를 선보였고 이후 솔로 앨범 발매 때마다 열리는 히라사와만의 공연 형태로 자리잡았다.

후술하겠지만 90년대 초반 우연히 방문한 태국 방문을 통해 동남아시아, 특히 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태국 문화를 접하면서 작품 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1995년엔 바로 그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5번째 앨범 'SIM CITY'를 발매했으며, 이 시기에 사설 홈페이지와 공식 사이트를 개설하기도 하였다.

1996년엔 독자 레이블 'TESLAKITE'를 설립하고 앨범 SIREN セイレーン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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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로서의 마지막 라이브 (1999)

1999년엔 P-MODEL 데뷔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音楽産業廃棄物 ~ P-MODEL OR DIE'를 통해 일본 내 프로 뮤지션으로선 최초로 MP3 음원 판매를 시작하며 시대의 흐름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0년, 8번째 앨범 '현자의 프로펠러(賢者のプロペラ)'를 개인 소속사 '케이오스 유니온'에서 발매하며 음반회사로부터 완전히 독립해냈다. 그러나 P-MODEL은 12월 배양(培養) 선언을 하며 다시 활동을 중지. 사실상 해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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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콘텐츠 그랑프리 수상 당시 (2002)

2001년엔 'Hirasawa Energy Works'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후술.

2002년에는 '인터랙티브 라이브 쇼 2000 현자의 프로펠러' 활동으로 디지털 콘텐츠 협회 주최 '디지털 콘텐츠 그랑프리'에서 최고상인 '경제 산업 대신상'과 '엔터테인먼트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

같은 해 곤 사토시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천년여우의 사운드트랙을 담당. 이후에도 곤 사토시 감독과는 망상대리인, 파프리카 두 작품 더 협업하며 그의 음악적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하기도.

2003년, 살육에의 항의 전달을 발표하며 반전주의 메세지를 전달했다.

2004년에는 핵(核)P-MODEL이라는 이름의 원맨 밴드를 만들고 1집 앨범 'VISTORON'을 발매. 이후 기존 솔로 활동과 일렉트로닉 위주의 핵P-MODEL을 병행하고 있다.

2008년엔 태국의 쉬메일, 히라사와 본인은 '제 2의 여성'이라 일컬은 사람들에 대해 다룬 서적 'SP-2'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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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모습.

2009년엔 앨범 '점호하는 혹성 (点呼する惑星)'과 P-MODEL 데뷔 30주년, 솔로 데뷔 20주년을 맞아 자신의 곡을 현악기풍으로 재해석, 리메이크하는 프로젝트 '응집하는 과거환현주의 8760시간'을 발표했다. 환현주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후술.

2012년, 히라사와의 20세기 활동을 망라한 박스 세트 HALDYN DOME이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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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에 접어든 히라사와 (2014)

어느덧 나이는 60대를 넘기게 되었지만, 2013년 9년 만의 핵P-MODEL 앨범 'гипноза'의 발매와 2014년 'HYBRID PHONON' 라이브를 통해 여전한 그의 음악적 재능을 과시하였다. 이 시기부터 머리카락도 하얀색으로 염색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에진(会人)과의 합동 라이브 (2020)

2010년대 후반, 7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접어들며 어느 시점부터 시력 저하로 안경을 쓰기 시작했고, 예전보다 피부 노화가 더 진행된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에 팬들은 기량 저하나 은퇴를 걱정하고 있지만, 2021년 정규 앨범인 'BEACON'이 호평받으며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2019년과 2021년엔 후지 록 페스티벌에 참가하며 일본 내에서 다시금 주목받는 중.

2022년, 7년 만의 인터랙티브 라이브 'ZCON'을 개최했다. 인터랙티브 라이브로는 무려 13번째.

2023년 9월엔 약 9년 만의 히라사와 스스무/핵P-MODEL 합동 라이브 'HYBRID PHONON 2566'을 개최. 추가 공연이 결정되며 2024년 4월 30일~5월 1일 추가 공연 예정이다.

최근의 활동 추세를 정리하자면, 전국적으로 라이브 투어를 해오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1년에 1~2번 라이브 이벤트를 열고 있으며 이따금씩 라디오나 인터넷 방송, 잡지의 인터뷰 등에 출연하고 있다.

2.1. Hirasawa Energy Works

Solar Ray 2 Sim City 2

히라사와 스스무가 2001년 7월 발표한 참으로 특이한 컨셉을 가진 프로젝트.

그 컨셉이란 바로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모든 전력사냥한다는 것. 그것은 음악활동에 필요한 모든 전력을 태양 발전 등으로 대체한다는 프로젝트였다.
자택 스튜디오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8] 그 에너지만으로 제작된 음반이 SOLAR RA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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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프로젝트의 피날레라 할 수 있는 LIVE SOLAR RAY에선 새로운 악기가 등장하는데 영상에서 원판을 돌리며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악기인 그래비톤이다. 자전거를 개조하여 자체제작하였으며 원형 판넬을 돌려 전력을 생산, MIDI 트리거 스위치를 누르면 소리가 나는 방식이다. 한 마디로 자체 제작한 런치패드인 셈.

이 라이브는 아무래도 태양광 발전만으론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팬들 중에서 에너지 헌터를 선정하여 그들에게 발전 장비와 2차 전지를 나눠주고 전지에 전력을 사냥해오는 임무를 맡겼다.전무후무한 전기셔틀 모인 에너지의 양에 따라 단계별로 사용할 수 있는 악기들이 늘어났다.
레벨 1. 기타 솔로
레벨 2. 기타가 무선이 되어 스테이지 아래에서도 기타 솔로 가능
레벨 3. Miburi[9]를 쓸 수 있게 된다.
특별 레벨. 신디사이저(Roland JD-800)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할 수 있게 된다.

Miburi가 연주되거나 신디사이저가 사용된 것을 보면 전력이 많이 모인 모양이지만 공연 당일에 비가 내려 라이브에 큰 차질이 생겨버렸다.
그러나 히라사와와 스탭들은 이 상황을 예상하였는지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스피커를 포기하고 그 대신 FM신호를 쏘아보내 관객들에게 지급해준 헤드폰으로 소리를 전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라이브를 강행하였다. 영상에서 일반 라이브와 음질이 이질감이 드는 것이 이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아무 소리도 안들리는데 웬 아재가 정체불명의 몸짓을 하고 관객들이 열광하는 기괴한 풍경

이 라이브는 NHK BS2와 TBS에서 특집으로 다루기도 하였다.

2.2. 응집하는 과거환현주의 8760시간



P-MODEL 데뷔 30주년/히라사와 스스무 솔로 데뷔 20주년을 맞아 발표된 프로젝트.
8760시간, 즉 1년간 P-MODEL과 솔로 음악 중에서 앨범당 1곡을 선정하여 히라사와 스스무의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인 「전자음과 리얼한 현 섹션의 융합」을 극대화 즉, 현악기풍으로 리믹스하여 히라사와의 음악세계를 더 넓혀보는 프로젝트이다.

일단 그동안 나온 각 앨범에서 팬들의 투표를 통해 리믹스할 곡을 선정[10] 선정된 곡은 리믹스 작업을 하면서 리믹스된 음의 샘플을 통해 그 과정을 공개하고 트위터를 통해 진행상황을 알려주고 그동안 쌓인 P-MODEL/솔로 관련 자료들도 공개하는 등 다양한 기획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환현주의 앨범 돌현변이(突弦変異)변현자재(変弦自在)가 발표되었고 이 프로젝트를 위해 시작한 트위터의 팔로워 수가 3만명을 돌파한 기념으로 라이브 도쿄이차현공동(東京異次弦空洞)을 개최. 3개월의 연장을 거쳐 프로젝트는 종료되었다. 트위터는 프로젝트가 끝나고 중단할 예정이었지만 계속하기로 결정되었다. 본인도 팬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마음에 든 듯.

2.3. 개인 미디어

3. 음악 스타일

히라사와 스스무는 주로 노래를 부르면서 전자음과 일렉 기타, 외 첼로와 바이올린 등의 다양한 전자 현악기 및 보이스 샘플링(보컬로이드 포함)으로 악곡을 전개해 나간다. 크라프트베르크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측되는 P-MODEL의 성향이 솔로곡에서도 완전히 퇴색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히라사와 스스무의 노래를 처음 들은 사람들은 주로 이를 괴악하다고 여기기 쉽다. 본인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어 라이브나 유튜브 라디오 등지에서는 스스로를 '마이너하다'라며 자신의 노래를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 것을 심심찮게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악기 등을 메인으로 사용해 전자음이 절제된 곡이 있는가 하면 전자음과 일렉기타와 온갖 기묘한 샘플링으로 점철된 곡도 있다. 앨범마다 통일되는 악기가 있는 경우가 많아 하나의 앨범 안에서는 악곡들이 보통 비슷한 주제와 분위기를 연출하는 편이다. 일부 곡들의 경우 앰비언트 뮤직의 영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4. 사용하는 장비

4.1. 악기

라이브에서 주로 사용하는 악기로는 일렉트릭 기타[12], 신디사이저, 레이저 하프, 자체개발 악기인 그래비톤(본 사진은 신형) 등이 있다.

그의 상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는[13] 기타토카이의 '탈보(Talbo)'라는 모델인데, 바디가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는 게 특징이다. 1983년 초기 금색 메이플&은회색 로즈우드 모델부터, 1994년 페르난데스에 주문제작한[14] 나무 바디 탈보 카피 기타 'PHOTON(개조 전)(개조 후)', 주로 받침대에 고정해놓고 사용하는 크롬 도금 Ver인 'ICE-9'[15] 등 여러 모델을 갖고 있다. 그리고 2012년경, PHONON 2555 라이브 이후부터는 이케베 악기에서 제작한 알루미늄 기타인 'EVO'라는 기타를 탈보와 같이 쓰고 있다. 한편 일전에 쓰던 1세대 타르보는 수리를 받아 TALBO-ASTRO로 다시 태어났다.

탈보 이외에 그가 기타를 처음 잡았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2008년(인터뷰 당시)까지 그의 손을 거친 기타들에 대해서는 인터뷰(일본어)를 참고해 볼 것.
사실 저 인터뷰에는 누락된 기타가 있다. 3페이지 2번째 사진의 '랜덤스타'와 병행하며 사용했었던 검은색 Fender Mustang. 이 영상에서 그가 들고 있는 검은색 기타가 바로 머스탱이다. 그럼 아즈사가 아니라 유이가 머스탱 써야했던 거 아냐? 사실 히라사와 스스무도 '맨드레이크' 시절엔 Les Paul 유저긴 했다. 그레코에서 만든 3만엔짜리 짝퉁이긴 했지만. 솔로 9집 TOWN-0 PHASE-5의 기타 솔로 부분은 Stratocaster로 녹음했다고 한다. [16] 최근에도 TALBO 특유의 얇은 소리를 대체하기 위해 음원 녹음용으로 레스폴을 종종 쓴다.

이렇게 많은 기타를 써왔건만 정작 본인은 계속 기타를 싫어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유를 물어보면 그냥 손이 아파서 싫다는 이유부터 기타는 자신이 처음 일렉기타를 배웠던 시절과 달리 너무 흔해지고 막 쓰여서 진부하고 싫증난다는 이유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라이브 때마다 기타를 빼먹지 않고 기타로 현란한 연주와 묘기를 보여주고 개조까지 하는 걸 보면 진짜 싫어하는 건지는 의심이 간다.

신디사이저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일본에서 신디사이저가 발전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70년대에 신디사이저 강사까지 했던 사람이 이 사람이다. 비록 P-MODEL 시기에는 키보디스트 멤버들에게 신디사이저를 양보하긴 했지만, 곡 작업을 할 때에는 직접 신디사이저로 작업했던 듯 하다.
파일:external/pbs.twimg.com/CVsSa1qUkAAXQBU.jpg

ONE PATTERN 앨범 시기의 작업실. 히라사와의 앞에 있는 신디사이저는 KORG Polysix.[17] 이 Polysix는 1981년 출시되었을 때 '일본산 프로펫'이라는 평을 들으며 세계적으로 대 히트를 쳤던 모델이다.(2년 뒤 야마하에서 DX7을 출시해서 좀 빛이 바랬지만) 그리고 히라사와의 오른쪽(사진에선 왼쪽)의 아이보리색(원래는 검은색) 컴퓨터는 야마하 CX5라는 MSX 플랫폼의 뮤직 컴퓨터로, 아미가 이전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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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년 후(대략 1991~2년)의 STUDIO WIRE SELF. RolandJD-800이 보이는데, 이 신시사이저는 이후 그의 첫 인터랙티브 라이브는 물론이고 2001년 SOLAR LAY 라이브까지 사용된다.

이후 라이브에서는 하드웨어 신디사이저보다는 노트북에 소프트웨어 신디사이저를 깔아놓고 마스터키보드를 연결하여 사용하는 듯 하다.

2018년부터 기존에 사용하던 '그래비톤' 대신, Novation사의 Launchpad를 사용중인것으로 나타났다.

4.2. 컴퓨터

코모도어社의 컴퓨터 아미가의 팬보이로, 세계적으로 사용자가 거의 없다시피한 2000년대 초반까지 사용했다. 처음엔 CG가 그냥 컴퓨터 한대 있으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아키하바라 전자상가를 돌아다녔으나 CG 환경을 갖추는 데에 돈이 엄청 깨진다는 걸 깨닫고 단념한 상태였으나 컴퓨터 관련 일을 하는 친구에게 아미가를 소개받고 지름신이 강림해 친구에게 소개받은 수상한 아파트에 있는 가게에 쌓여있는 걸 값싸게 구해왔다고 한다.[18] 1989년 CG연하장을 가장한 저주비디오 겸 신세한탄 및 솔로데뷔 예고영상[19]과 해동(解凍)P-MODEL의 뮤직비디오가 아미가로 제작되었다. 1998년

이후 독학으로 이것저것 만져보거나 아미가 유저들을 만나면서 음악 제작과 공연 퍼포먼스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인터랙티브 라이브에서 공연 기기의 문제로 라이브 진행이 정지되었을 때에도 "이번 사고는 절대 아미가가 원인이 아닐 것"이라고 장담하여 팬력을 과시했다. 결국 소프트웨어 부재와 기기 노후화 등의 문제로 2006년 백호야를 마지막으로 아미가 사용을 중단한 상태. 2019년 기준으로 맥북도 병행하여 같이 사용하는중이다. 소프트웨어의 한계로 macOS에서 거의 모든 작업을 한다고 한다. 단, 라이브 때에는 윈도우10이 탑재된 랩탑을 들고 나온다.

5. 디스코그래피

5.1. P-MODEL

P-MODEL/음반 목록 문서 참조.
유닛 '슌(旬)' 활동과 '핵(核)P-MODEL' 활동도 이쪽으로.

5.2. 솔로

히라사와 스스무/솔로 문서 참조.

6. 여담

6.1. 한국 관련

의외로 일본의 히라사와의 팬들은 극우성향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데, 이러한 이유로 한때 혐한일 수도 있다는 근거모를 이야기가 2ch에서 나돌았고, 히라사와가 음악을 담당한 파프리카의 원작자인 츠츠이 야스타카위안부 망언을 한 것[26]으로 인해 애니메이션의 음악만을 담당했을 뿐인 히라사와를 포함한 주변인물이 모조리 혐한 취급당하며 트위터와 국내 언론에서 우익 내지 혐한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히라사와는 이전부터 트위터에서 이따금씩 한국에 대해 적의없이 언급하기도 하고, 작품 활동을 통해 혐한, 우익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왔다.

'UNDOをどうぞ'라는 곡의 가사가 과거 일본 제국시절의 대일본제국해군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어 히라사와가 우익일 수 있다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패퇴하던 일본을 위해 싸우다 희생된 군인을 추모하는 내용이 아니라 과달카날 전투에서 전세가 밀려 고립된 일본군이 궁지에 몰리다 못해 자신의 상관을 죽이고 그 고기를 먹으며 연명했다는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곡이다. 이에 곡의 제목을 더하여 생각해본다면 '전쟁 전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전쟁은 없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 볼 수 있는 것.

오히려 한국에 영향받은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의 또다른 곡 '세계 터빈'를 보면 백남준에게 영향받은 듯한 PV와 처음과 중간중간 인상적으로 외치는 "명금일하 대취타!"가 돋보인다.

그 외에 2000년 발표한 현자의 프로펠러(賢者のプロペラ)의 첫 소절에 '꽃이 불처럼 피어나는 나라'로 한국을 묘사하기도.

6.2. 태국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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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의 세계관과 태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처음엔 1994년 개인 사정으로 잠깐 와보는 정도였지만 점차 태국의 문화와 역사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작품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태국어 이름(วิวัฒน์ ธารา สงบ)도 만들고 사인도 태국어로 바꿔썼을 정도. SIM CITY 이후 정규앨범의 일부 음원을 태국에서 녹음하기도. 요즘도 예고없이 태국에 놀러가곤 한다. 게다가 그 어려운 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고 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진행해오고 있는 PHONON 라이브에 2550, 2566 등의 숫자가 붙는데 정체는 바로 태국에서 사용하는 불멸기원이다.[27] 예를 들어 PHONON 2550 라이브에는 라이브가 이루어진 해 2007년의 태국불기인 2550년을 붙여 사용한 것.

또한 태국의 쉬메일들과 교류하면서 그들과 여행이나 봉사활동을 하며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시키곤 한다.

처음엔 그들을 카투이라고 불렀지만 이것이 비하적 의미라는 것을 알게된 이후 주변에 사용을 자제, 수정할 것을 요청하고 그 대신 제2의 여성을 의미하는 SP-2[28]라는 새로운 호칭을 사용한다. 2008년엔 SP-2에 대해 다룬 서적을 발매하기도 했다.

6.3. 스텔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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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2011년 6월 24일, P-MODEL 시절의 곡 'BOAT'를 현악기풍으로 어레인지하고 개사해 노래한 곡 '원자력(原子力)'이라는 노래가 배포되었다. 다만 히라사와 스스무 본인은 '나는 6월 23일 새벽에 스텔스맨이라 자칭하는 자에게 뒷머리를 둔기로 구타당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묶여 있었던 데다 PC의 바탕화면이 'ス'가 그려진 그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후 내 공식 사이트 일부를 점거당해서 음원이 배포되었지만 스텔스맨과 나는 아무 관계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물론 눈가리고 아웅하는 말이며 (애당초 경찰에 사건 접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부터 말이 안된다) 이는 누가 봐도 히라사와 스스무 본인이다. 아무튼 공식적으로는 해당 음원은 스텔스맨이 만든 것이며 히라사와 스스무와는 관계없는 것이 되어 있다. 히라사와 스스무 본인은 해당 음원에 대해 '히라사와를 표절한 것(平沢のパクリ)'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단, (들어보면 알겠지만) 해당 노래는 원전 및 그것을 장려한 주제에 문제점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가사가 상당히 과격한 편. 사이트에서의 음원 공개는 2011년 6월 29일에 종료되었다.

이후 히라사와는 스텔스맨의 명의로 곡을 발표한 적은 없지만 현재까지도 개인 X에서 자신을 곧잘 '스텔스'라고 일컫고는 한다. 또다른 별명으로 자리잡은 듯.

6.4. 서브컬쳐와의 관계

6.4.1. 히라사와 유이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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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나는 히라사와 스스무라고. 히라사와 유이가 아니야."
@hirasawa
팔로워 수가 2000명이었을 때부터 말해뒀다만. 너희들 팔로워할 사람 착각한 거 아니야? #

케이온!의 원작자인 카키후라이의 공식 입장은 없지만 히라사와 유이와 방과 후 티타임의 모티브가 히라사와 스스무와 P-MODEL이라는 설이 팬덤에서는 유력하다. 스스무(進)에서 책받침(辶)을 입 구(口)변으로 바꾸면 유이(唯)가 된다. 사용 기타가 다르지만둘 다 기타리스트고, 소속사인 케이오스 유니온을 줄이면 케이온!이 되는 것도 비슷. 게다가 방과 후 티타임의 멤버들인 아키야마 미오, 코토부키 츠무기, 타이나카 리츠, 나카노 아즈사도 각각 P-MODEL에 속했던 적이 있었던 멤버인 아키야마 카츠히코, 코토부키 히카루, 타이나카 사다토시, 나카노 테루오와 대응된다는 점도 있다.

이 때문에 히라사와 스스무가 트위터 계정을 등록할 때 닉네임을 그냥 hirasawa로 등록했다가 이를 히라사와 유이로 착각한(?) 많은 덕후들로 인해 팔로워 수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히 Hirasawa Susumu로 정정했지만 팔로워 수가 멈추긴 커녕 계속 늘어났다. 이후로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계속 늘어나는 제군"과 같이 서두를 떼며 자학 개그를 하는 경우가 있다. # 본인은 이런 사태의 원인이 된 히라사와 유이를 지긋지긋한 뮤턴트(忌々しいミュータント)라고 부르는 듯. 이 때 나는 히라사와 스스무라고. 히라사와 유이가 아니야.(私は平沢進だぞ。平沢唯じゃない。)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

이후에도 니코니코 동화에선 히라사와 부녀 네타나 히라사와 스스무의 곡을 방과 후 티타임이 연주하는 MAD가 다량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2012년 니코니코 생방송에 나와서 본인이 직접 이런 MAD영상들을 감상하는 등, 케이온과 엮이고 있는 중.대표작 트위터에서도 "케이온에 나오는 애들 중에서 누가 가장 좋으냐"는 등의 질문도 종종 받는다. 이런 질문엔 "케이온은 본 적 없습니다."등의 대답으로 일축.

아이러니하게도 이 경로로 히라사와와 P-MODEL을 알게 된 사람도 꽤 된다. 2011년 라이브 MC 도중 "생각치 못한 반응이 많았던 트위터 때문에 자신을 처음 본 사람들도 꽤 있을 것 같다"고 발언하기도 했고.

6.4.2. 기타 서브컬쳐에서의 패러디 및 관계

니코니코동화에서 장르 불문하고 많은 패러디가 일어나는 추세인데, 가장 많이 엮이는 쪽은 당연하게도 케이온![29]이고, 그 다음으로는 아이돌 마스터와 많이 엮인다. SUSUMU HIRAS@WA라고 불리는 듯. 그 외에도 히라사와 스스무가 음악을 담당한 베르세르크의 작가 미우라 켄타로가 아이돌 마스터를 좋아하다보니 미우라 선생님 호이호이, 휴재의 기법[30]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이 외에도 히라사와 유토라는 조연 패러디 캐릭터가 등장하는 우타프리, 앙상블 스타즈![31], 논리공군이 아닌 논리해군, 馬骨乱舞(말뼈난무), 주문은 버츄얼 래빗입니까? 등 별의별것과 다 엮인다. 대체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데 왜 엮는 거야. 19년 들어선 누군가가 만든 big brother, LAB 01의 쿠키 계열 음매드 버전 덕분에 쿠키☆음MAD로도 인기를 끌고있다. 이후 2021년에는 우마무스메의 등장 인물들을 활용한 소리 MAD가 속속 보이기 시작했다.[32]

2020년 이후로는 주술회전료멘스쿠나이타도리 유지와도 엮이는데 다름아닌 주술회전의 작가인 아쿠타미 게게 작가가 료멘스쿠나의 이미지송으로 히라사와 스스무의 곡인 Day Scanner를 언급하였기 때문. 이후에 팬들에 의해 고전 주술사 차림을 하고 있는 히라사와의 팬아트도 속속 등장하는 추세이며 팬들에 의하면 스승은 특급 주술사로 분류되는 모양이다.(...) 나중에 아쿠타미 작가가 자신의 최애곡이 세계 터빈(世界タービン)임을 밝히자 히라사와가 영역 전개하면 세계터빈 PV에 나온 정신나간 세계관이 열리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돌고 있다.

2010년대에는 케이온!으로 유명해졌다가 후반으로 갈 수록 점차 다시 인기가 식어가는 와중에 2020년대부터 주술회전을 통해 다시 인기를 되찾은 케이스이다. 케이온!과 달리 주술회전 작품 자체로는 히라사와와 작접적으로 관련되진 않았지만, 작품이 워낙 유명하고 아쿠타미 게게 작가가 작품 내에 히라사와의 곡을 인용하고 팬이라고 밝힌 순간부터 팬들이 호기심으로 히라사와의 곡을 찾아 듣고 거기서 입덕하게 된 케이스가 상당이 많아진 것. 과거 케이온 때와는 달리 이번 케이스는 여성 팬들의 입문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

pixiv에서 유독 팬아트가 활발하고 60대의 나이에도 모에화를 당하고 있다. P-MODEL 데뷔 당시의 모습은 알록달록하게 그려지고 최근의 모습은 어두운 톤으로 그려지는 편.

2021년 9월 23일 애니메이션이랑 합치는 것 좀 적당히 해라. 내 공적 이미지에 손상을 입는다는 트윗을 올리며 이러한 일련의 패러디 창작에 대한 불쾌감을 표현했다. 패러디를 제작하던 음MAD 제작자, 한여름 밤의 음몽쿠키☆ 팬덤, 우마무스메 팬덤, 등에서는 각자 조심하자는 이야기를 내면서도 각종 패러디와 MAD에 관용적이던 스스무가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태도가 변하게 되었는지 추측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도 전해지면서 드럭스토어에서는 관련 게시물을 전부 내렸다.[33] 2022년 후반 이후부터는 히라사와 본인이 직접 클레임을 걸어 영상을 내리고 있는지 '주식회사 케이오스 유니온으로부터의 저작권 침해' 신고로 내려졌다는 사례가 속출중이다.[34]

6.5. 주변 인물

7. 외부 링크



[1] 호적 상의 생일. 본인이 직접 트위터를 통해 실제 생일은 하루 전인 4월 1일이라고 밝혔다.[개인] [공식] [4] 그의 대표적인 별명이다.[5] 사진은 후지 록 페스티벌 2021에 참가했을 때의 모습.[6] 그렇게 외주로 만든 곡 중에 하나가 프로레슬러 쵸슈 리키의 등장곡 Power Hall이다. 어떤 의미로는 히라사와의 곡들 중 가장 널리 연주되는 곡 중 하나이기도 하나 이 시기 히라사와는 아직 계약관계를 잘 모르는 초짜 시절이었던지라 곡을 넘기면서 판권도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넘겨버리는 바람에 히라사와는 로열티나 판매수익 등을 전혀 받지 못한다고. 또다른 레슬러 슈퍼 스트롱 머신의 등장곡 Hurricane's Bam도 히라사와가 만들었고, 이쪽은 히라사와가 제대로 판권을 챙겼다고 한다.[7] 히라사와를 제외한 멤버는 유동적으로 바뀌었다.[8] 이 솔라 스튜디오(ソーラースタジオ)는 현재도 사용하는 중이다.[9] 사람의 신체에 장착해 착용자의 동작에 따라 신디사이저 또는 MIDI가 연주되는 방식의 악기. 참고로 미부리는 일본어로 '몸짓'을 뜻한다. 인지도 탓인지 연주방식의 어려움 때문인지 이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프로 뮤지션이 극히 적다고 한다.[10] 그러나 최종 결정권이 히라사와 스스무에게 있어서 그 외의 곡이 리믹스되거나, 또는 그 앨범 자체가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11] 니코동 계정을 필요로 한다.[12] 어쿠스틱 기타도 가끔 스테이지에 올려놓긴 하는데 많이 연주하지는 않는다.[13] 탈보를 사용하는 유명 뮤지션은 히라사와 스스무와 GLAY의 HISASHI 정도이다.[14] 이 때 당시는 탈보를 제작했던 토카이 악기 회사가 파산하고 사라진 뒤였기 때문이다. 히라사와가 이 제품이 미래적이라 대중화되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 딱 들어맞았다. 1990년대 후반에 와서야 토카이 악기가 부활하여 지금까지 탈보 신모델을 생산하고 있다.[15] 이름의 유래는 아이스 나인. 2020년 12월 이케베 악기에서 예약 한정 판매하기도 했다.[16] 기타 부분은 태국의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는데 스탭들 모두 히라사와가 들고 온 기타보다 스튜디오에 있는 스트라토캐스터의 사운드가 더 낫다고 밀어붙여서 어쩔 수 없이 사용했다.[17] 1981년 출시되었다. P-MODEL 스테이지에서는 키보디스트였던 타나카 야스미, 미우라 슌이치, 타카하시 요시카즈가 연주했었다.[18] 그 제품들은 코모도어 재팬이 사업철수를 하면서 창고에 썩힐뻔한 제품들로 재고가 유출되어 아키하바라 등지에서 거래되었다고 한다.[19] 이 연하장을 받은 업계 관계자가 이걸 일반에 판매하고 차기작도 만들자는 연락을 했다고 한다.[20] 일본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관용구. 참고로 히라사와는 1954년생 말띠다. 자학드립?[21] 참고로 말뼈다귀가 일본 도검난무 팬층에서 나마즈오 토시로호네바미 토시로를 떠올리게 한다고 하며, 가끔 팬아트도 나온다. 나마즈오 토시로는 말똥을 좋아하며 호네바미 토시로는 그의 이름에 뼈(骨:호네)의 한자가 들어가기 때문이다.[22] 대강 이런 식이다. "한계 돌파 생강이 11월까지 출고되지 않는 문제를 어떻게 경혈(経穴)하여야 마땅할지를 자문하던 도중 띵동, 딸랑딸랑 하고 현관문이 열렸으니 문간에는 무농약의 새 생강이 서 있었다. '굉장하지? 그리하여 11월까지 (그것보다 오래) 생강이 내 몸의 재료로 공급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 20년 9월 24일 트윗에서 발췌.[23] 80년대 초 샘플러의 가격이 비싸서[36] 키보드와 테이프 에코(원시적 형태의 딜레이)를 이용해서 자작한 샘플러라고 한다. 일종의 멜로트론인 셈.[24] 1981년 Potpourri 앨범에서는 아예 이걸 'Heavenizerのための例題(Heavenizer를 위한 예제)'라면서 히든 트랙으로 수록해 놨다.[25] #. 2024년 3월 17일 트위터 질답으로 원반권이 히라사와 쪽에 있는 곡의 스트리밍 서비스 공개 신청에 대해선 현재 허가를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으며, 그 이유는 소비자 여러분 자신이 생각해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26] 츠츠이 야스타카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사실은 츠츠이 야스타카도 혐한이 아니다. 생각이 많이 짧았을 뿐, 의도는 일본 우익을 낚기 위했던 것.[27] 참고로 태국의 불멸기원은 국내에서 사용하는 불멸기원보다 1년이 늦다.[28] SaoPraphetson의 줄임말[29] 붙는 태그는 방과후 P-TIME 또는 케이오스유니온(けいおスユニオん)[30] 솔로 앨범 중 하나인 구제의 기법과 발음이 똑같다.[31] 한때 앙스타에서 나오는 히비키 와타루라는 캐릭터와 엮이기도 했다. 이유는 무슨 히라사와가 트위터에 언급한 적이 있는 이름이라서 라고 한다.(...) (물론 앙스타의 와타루 말고 다른 동명이인의 아티스트를 언급한 것이다.) 거기다 아이러니하게 (초기 P-MODEL 시절의)히라사와와 비슷한 이미지이기까지 한다. 기인이라서 그렇다[32] 이런 경우 보통 ウマ娘にも容赦しないすすむおじさん(우마무스메도 용서하지 않는 스스무 아저씨)라는 전용 태그가 붙는다. 이는 앞서 언급한 쿠키☆와의 연관성이 니코동에 선례로서 미리 퍼져 있었음을 의식한 태그.[33] 현재 Big Brother를 사용해 제작한 이 합작은 다시 공개가 되었다.[34] 다만 MAD계에선 실력있는 제작자들의 경우 히라사와의 곡들 중 특히 많이 쓰이는 논리공군이나, LAB=01, Big Brother등은 아예 무반주로 제작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기에 존속중인 영상의 양이 여전히 매우 많다. 원곡이 음원에 사용되지 않은 무반주 영상들은 웬만해선 저작권 침해 신고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35] 대표적으로 ONE PATTERN이 있다.


[36] 당시엔 아카이나 다른 회사에서 보편적인(이라고 해도 10만 엔이 넘는) 샘플러를 출시하기 전이었던 데다, 샘플러 기능이 들어간 워크스테이션 신디사이저였던 Fairlight CMI나 뉴 잉글랜드 디지털社의 싱클라비어(Synclavier)는 당시 가격으로도 1천만 엔이 넘었고, 앞의 두 기종에 비하면 저렴했던 샘플러 E-MU Emulator 역시 거의 300만 엔에 달하는 고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