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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창간호 표지 및 '벙어리 삼룡이' 원본[1]
1. 개요
1925년 7월 발행된 잡지 '여명' 창간호에서 발표된 나도향의 단편소설로, 한국 신(新)문학사상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2. 등장인물
- 나
1인칭 서술자이되 주인공이 아니다. 작중 회상의 방식으로 주인공인 삼룡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는 역할.
- 삼룡[2]
1929년 영화판 배우는 나운규[3], 1964년 영화판 배우는 김진규, 1973년 영화판 배우는 김희라, 문예극장판 배우는 정동환, TV 문학관판 배우는 김영철.
오 생원네 하인 남자이다. 제목에서도 나와 있듯이 벙어리이기에 의사소통에는 제약이 있지만 성실하고 선량한 성품의 소유자이며, 주인집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충직하다. 오 생원에게 받은 대우가 좋아서인지 새서방이 아무리 본인에게 망나니짓을 하며 도를 넘어선 괴롭힘을 시전해도 신분상 제약도 있는데다 양반집 주인 아들이니만큼 꾹꾹 참아내고 그를 지켜주기까지 하는 대인군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배은망덕한 새서방에 의해 비참한 꼴을 당한다.
개인이 아무리 선해도 주변 상황이 따라주지 않으면 비운을 맞는다는 점이 아씨와 비슷하다.
- 오 생원
1929년 영화판 배우는 이금룡, 1964년 영화판 배우는 최남현, 1973년 영화판 배우는 허장강, TV 문학관판 배우는 양영준.
연화봉이란 마을에서 거주하는 부잣집 어른. 정확한 출신은 불분명하나 양반 행세를 하고 다녀 양반 취급을 받는다. 부지런한 성품에[4] 인심도 후하여 마을 사람들에게도 인망이 두터우며 벙어리 하인 삼룡도 무척 아껴주는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 그러나 삼대독자인 아들을 너무 오냐오냐 키웠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작중 본인의 문벌이 얕은 것에 대해 한탄하는 걸 봐서 양반 출신은 일단 맞는 듯 하나 썩 유서 깊은 가문은 아닌 걸로 보인다. 아니면 옛날에는 실제로 아주 잘 나갔으나 후에 몰락했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비록 몰락했어도 나름 유서 있는 집안의 딸을 삼만 냥이나 들여 며느리로 삼는다.[5]
- 오 생원의 부인
주인집 마님. 남편과는 달리 그래도 아들의 망나니짓을 고치고 싶어서 남편더러 혼도 좀 내라고 타이르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6] 그 외에는 별로 비중이 크지 않다.
- 오 생원의 아들(새서방)
1929년 영화판 배우는 주삼손, 1964년 영화판 배우는 박노식, 1973년 영화판 배우는 신영일, TV 문학관판 배우는 강태기.
삼룡에게는 주인집 도련님이다. 가문 삼대독자라는 귀한 신분이나, 나름 동네에서 명망이 좋은 양친과는 달리 망나니가 되었다. 너무 오냐오냐하며 키운 탓이라고는 하지만 지나치게 성격이 거칠고 매정한 걸 보면 천성부터가 글러먹은 것으로 보인다. 색시를 들인 후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못나서 잘난 색시와 안 어울린다는 말을 듣게 되자 화풀이로 애꿎은 아내를 괴롭히는 등의 가정폭력을 일삼고, 충직한 하인 삼룡에게도 별 시덥잖은 이유로 못되게 구는 개노답 인간 말종이다.
- 오 생원의 며느리(아씨)
1929년 영화판 배우는 유신방, 1964년 영화판 배우는 최은희, 1973년 영화판 배우는 윤연경, TV 문학관판 배우는 선우은숙.
삼룡에게는 주인집 아씨이자 공경하면서도 짝사랑하는 대상이다. 문벌은 높지만 이젠 몰락한 양반 가문의 무남독녀로, 아버지 사후 과부가 된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나 아직 고생을 별로 해본 적 없이 금지옥엽으로 자란데다 아름답고 성품도 좋은 엄친딸. 그러나 결혼 한 번 잘못하는 바람에 지독한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자살 미수 소동까지 벌이는 등 삼룡이 만큼이나 안타까운 인물.
3. 줄거리
원본 전문.이야기는 '나'라는 화자가 과거를 회상하며 시작된다.[7]
연화봉[8]이란 마을이 지금은 빈민굴이지만 14~16년 전에는 나름 잘 사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 중에 오 생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디 출신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늘 감투를 쓰고 다녀 양반이라 불렸고, 연말에 마을 사람들에게 북어나 김을 나누어주고 농사연장을 빌려다 쓰게 하므로 동네 인심을 얻었다.
그의 자택에는 삼룡이라는 이름의 충직한 하인이 있었는데, 벙어리에 청각장애도 있는 듯 하고[9] 못생기고 땅딸보다. 하지만 눈치가 굉장히 빠르고 민첩하며 힘도 좋고 부지런하고 충직하기까지 해서, 오 생원이 그는 특별히 잘 입히고 잘 먹여준다.
반면 이 집에는 망나니 아들도 하나 있었는데, 3대 독자라 오 생원이 하도 오냐오냐 키워서 상당히 버르장머리가 없는 개차반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후레자식이라고 욕을 했으며, 오 생원의 아내도 늘 이것을 못 마땅히 여겨 한바탕 혼구녕 좀 내 주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려서 그렇다고 말하며 오 생원은 매를 들지 않았고, 아내는 '그러다가 아이의 버릇이 나빠진다'고 한탄했다.[10]
이 주인집 아들은 삼룡을 벙어리라고 아예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 자고 있는데 입에 똥을 넣거나, 잘 때 손발을 묶어놓고 발가락 사이에 화승불을 붙이거나[11], 심지어는 그냥 주먹으로 때리는 등 온갖 악랄한 방법으로 괴롭혔다. 삼룡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주인집 아들 정도야 단번에 때려눕힐 수 있는 것을 알았지만 주인집 아들을 원망하기보다는 세상을 원망하였으며,[12] 주인집 아들이 동네 아이들과 싸움이 붙어 찌질하게 울고 들어올 때면 대신 나서서 싸워주는 등 충성을 다 하였다. 그러다보니 동네 아이들도 삼룡을 무서워해 주인집 아들에게는 그 누구도 덤비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주인집 아들이 장가갈 나이가 되었는데, 오 생원은 집안의 문벌이 얕은 것을 한스러워하여 어느 영락한 양반집의 딸을 돈을 주고 며느리로 데려오게 되었다. 비록 가세는 기울었어도 나름 양반집 딸이다 보니 행실이 바르고 품위가 있었고, 여러모로 흠잡을 곳이 없었다. 이는 그녀의 서방이 된 주인집 아들의 망나니 행실과 더욱 비교되어 동네에서는 '색시가 아깝다'며 수군거렸고, 아예 몇몇 동네 아낙과 고모 되는 사람은 대놓고 '네 처를 보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며 오 생원의 아들에게 타박을 주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 것이 독이 되어서, 저런 소리를 들으면서 반성을 하기는 커녕 오히려 아내를 질투하고 학대하기 시작했다. 혼인 며칠 뒤부터는 아예 합방도 거부하며 아내를 구박했다. 아씨는 늘 울음으로 날을 보냈지만, 남편은 울면 청승맞다고 때리고 말 없으면 말이 없다고 또 때렸다. 삼룡은 그 고운 아씨를 그리 구박하는 것이 천벌이라도 받을 일이라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종종 서방이 자신을 때리고 구박할 때 아씨가 차마 말은 못해도 자신을 측은히 여기는 눈빛을 보냈으며, 그걸 떠올리며 알 수 없는 감격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한 서방을 삼룡이 업어다가 방에 눕혀 준 일이 있었다.[13] 아씨는 이것을 고마워하며 삼룡에게 비단 헝겊 자투리로 부시 쌈지[14]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하필 서방의 눈에 띄어 아씨는 야밤에 마당으로 끌려나와 구타를 당하게 된다. 삼룡은 이를 보고 이성을 잃어 달려가 서방을 밀치고 아씨를 들쳐메 오 생원에게 가서 손짓발짓을 하며 사정한다. 그러나 잠시 후 서방은 삼룡더러 자기 여편네를 건드렸다면서 주인도 몰라보고 대드는 이런 놈은 죽어야 한다고 떠들며 무자비하게 구타해버렸다. 쌈지도 걸레짝처럼 찢어져 화장실에 던져졌으며, 그날부터 삼룡도 안채에는 출입금지 신세가 된다.
어느 날 서방이 또 술이 떡이 돼서 들어오더니 집안이 소란해진다. 삼룡이 무슨 일인지 한 하녀에게 물으니, 하녀는 '새 아씨가 다 죽게 되었다'고 알려준다. 불안해진 삼룡은 밤새 아씨 거처 주위를 서성거렸는데, 그러다가 문득 방 안을 보니 아씨가 명주 수건으로 목을 매려는 것을 발견하고 뛰어들어 말렸다. 하지만 하필 이것이 삼룡과 아씨가 정을 통하였다고 잘못 소문이 나 버린다.[15]
오 생원은 동네 창피하다고 드러누워 출입도 하지 않고, 서방은 삼룡을 죽기 직전까지 마구 매질했다. 줄에 쇠뭉치를 묶어 휘두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삼룡에게 추방을 명령하고 다른 하인들을 시켜 끌고가서 개천에 던져버렸다. 삼룡은 다시 일어나서 들어오려고 했지만 대문은 이미 잠겨 있었다.
그날 밤 오 생원의 집에 원인 모를 큰 화재가 발생했는데, 낮에 추방당했던 삼룡이 담을 뛰어넘어 들어갔다. 그는 사랑채로 달려가 집주인 오 생원 내외부터 가장 먼저 구해 불길이 오지 않을 만한 넓은 마당 한복판에 내려놓았다. 그 다음 불 붙은 서까래가 떨어져 본인의 머리를 덮치는 것도 모른 채 정신없이 아씨를 찾아 헤메었다. 도중에 만난 서방이 이제 와서 좀 살려달라고 찌질하게 애원했지만 뿌리쳐버렸고, 마침내 불타 죽으려고 이불을 둘러쓰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던 아씨를 찾아낸다. 삼룡은 가구가 쓰러져 자기 팔뼈가 부러진 것도 모른 채 아씨를 안아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 담 밖으로 힘껏 뛰어내려 어느 정도 떨어진 땅바닥에서 주저앉는다. 마침내 집은 다 타서 흔적도 안 남게 돼 버리고, 삼룡은 사랑하는 아씨를 품에 안고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숨이 멎는다.
4. 여담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어째서 삼룡이 쫓겨난 그날 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났느냐'란 것이다. 그냥 우연히 난 불일수도 있기는 하지만, 집이 불타는 모습이 누군가 불을 지르려고 준비한 것 같다는 서술이 있어서 방화일 가능성이 높다.당대의 작품 경향을 볼 때, 혹은 전후 묘사를 볼 때 삼룡 본인이 지른 불이라는 해석이 가장 많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없애버리고 자기도 또한 없어지는 것이 나은 것을 알았다'라는 구절이 그 복선이라는 것.[16]
90년대 청소년권장소설 전집의 작품 분석에서는 아무래도 그대로 불 타 죽으려고 이불을 덮어쓰고 있던 아씨가 범인일 거라고 분석하였다.[17]
1983년판 TV 문학관에서는 아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서 범인이 되게 하는 것으로 각색하였다. 삼룡이 얹혀사는 주막집 여주인의 딸로, 오 생원의 퇴짜와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련님과 밀회를 즐기다가 임신해버렸다. 그러고도 또 오 생원에게 퇴짜를 맞자 폭발하여 대뜸 집으로 찾아와 임신 사실을 죄다 폭로해버렸고, 이에 분노한 오 생원은 하인들을 시켜 술집의 물건들을 남김없이 싹 가져가버렸다. 그렇게 되자 오씨 가문에 적의를 품고 무언가를 저지를 것이라는 암시가 나왔고, 밤중에 그녀가 나가는 걸 보고 어머니가 말리지만 '바람 쐬고 오겠다'라고 하며 가버리고 이후 불이 난다. 여기선 그나마 이 망나니 도련님은 구해준다. 신상옥 감독의 영화에서도 새 서방과 불륜 중인 여자의 남편이 앙심을 품고 지른 것으로 각색하였다.
그렇게 불길 속에서 아씨를 구해내고 지붕으로 올라간 장면에서 원작이 끝나 삼룡과 아씨는 죽지 않았다는 해석도 있지만, 중간에 삼룡이 아씨를 구하기 위해 집을 뒤지면서 불에 타 피부가 쭈그러들고 기둥이 무너져 팔이 부러졌다는 묘사가 분명히 나왔으므로 상식적으로 이렇게 되면 죽기 직전까지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것은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나중에라도 불을 피해서 지붕으로 올라갔지만, 이미 내려오기에는 무리라는 것을 알았는데다 끝부분에 '그는 벌써 목숨이 끊어진 뒤였다'라는 문장도 나왔으니 삼룡의 죽음은 확정된 셈. 그나마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던 그녀를 찾아 안으면서 삼룡이 행복하게 미소지었다는 묘사가 있어서 다행히 죽기 직전에나마 작은 행복을 누렸다고 볼 수 있겠다.
기본적인 만악의 근원 격 인물은 주인집 아들(새서방)이지만, 숨은 진정한 만악의 근원은 오 생원이라는 해석도 있다. 애초에 옆에서 부인이 계속 아들 관리를 지적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오냐오냐 하기만 하며 아들의 인간성을 부모가 봐도 심각한 수준으로 망쳤고 혈통에 대한 허영 때문에 애먼 며느리까지 본인의 집구석 일에 본의 아니게 휘말리게 만들고, 며느리 자살의 불상사를 막아준 삼룡이에겐 일말의 해명 기회조차 안 주고, 그런다고 며느리에게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아들을 집안의 중심축인 큰어른의 입장에서 그간 어떻게 해 보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도저도 아닌 자세로나 있다가 상황이 영 좋지 않게 되자 그냥 드러눕기만 하는 등(...)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준다.[18]
작품의 등장인물이나 사건이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과 은근히 비슷하다. 장애[19]가 있는 인물이 아름다운 여성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자신의 윗사람에 의해 좌절되고 그 결과 남몰래 사랑하던 여성을 품에 안고 행복한 표정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는 것이 유사하다. 선량하고 아름다운 여성(에스메랄다, 아가씨)이 인간 말종 남자(프롤로 신부와 페뷔스, 주인집 아들) 때문에 인생을 망친다는 점 역시 비슷하다.
5. 미디어 믹스
벙어리 삼룡이 원작의 영화 | ||
벙어리 삼룡 (1929) | 벙어리 삼룡 (1964) | 비련의 벙어리 삼룡 (1973) |
출판 후 3번 영화로 만들어졌다. 첫 번째는 1929년작으로 제목은 《벙어리 삼룡》이다. 나운규가 제작했으며 삼룡이 역 또한 나운규가 맡았다. 새아씨 역은 유신방, 새서방 역은 주삼손, 오 생원 역은 이금룡 등이 각각 맡았으며, 그 외에 윤봉춘 등이 출연했다.
두 번째는 1964년 신상옥 감독이 제작해 큰 인기를 끈 《벙어리 삼룡》이며, 삼룡이 역을 맡은 김진규는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 외 출연진은 박노식과 최은희, 도금봉, 최남현, 한은진, 최성호 등이다. 1973년 변장호 감독에 의해 《비련의 벙어리 삼룡》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으며 삼룡 역은 김희라가 맡았다.
TV 드라마의 경우, 1972년 7월 28일 TBC <금요드라마> 명작씨리즈를 통해 처음 드라마화되어 각색은 신봉승, 연출은 최상현 PD가 각각 맡았고, 당시 삼룡이 역은 김희라가 맡았다.
1979년 5월 4일 KBS-TV 《문예극장》을 통해 또 드라마화됐다. 당시 극본은 최경식, 연출은 김충길 PD가 각각 맡았으며 배우 정동환이 삼룡이 역을 맡았다.
1983년 8월 13일 KBS1에서 방영한 TV문학관 판이 더 유명한데, 극본은 '한국 TV 드라마 시나리오의 대부' 윤대성, 연출은 맹만재 PD가 각각 맡았다.
영화판은 이말년의 조선쌍놈을 연상시키는 인물구도인 반면에[20] TV 문학관은 삼룡이 역의 김영철의 우직한 연기와 주인집 아들 역의 강태기, 그리고 아씨 역할의 선우은숙의 연기가 조화를 이룬 수작으로 평가된다. 그 외 배역들은 양영준과 서우림, 권기선, 박용식, 이원종, 오기환, 신원균, 정재순, 김소유, 류순철, 박상만, 전광열, 이난희, 권미혜, 봉혜숙, 관정희, 김창봉, 김효진 등이 맡았다.
윤승운 화백이 그린 한국단편문학 만화에서도 원작대로 진행되어 새서방이 삼룡아 날 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걸 뿌리치고 마지막 장면에 삼룡이가 아씨를 안으며 불타는 지붕 위에서 아씨가 '삼룡아 날 놔두고 가...'라고 하는 걸 듣지 않고 어버버버버(아씨를 만나 행복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미소지으며 숨을 거두는 것으로 그려졌다.
[1] 출처[2] 석 삼(三), 용 용(龍).[3] 당시 감독까지 겸직.[4] 아침에 돌아다니며 잔소리를 안 할 때는 오로지 아플 때 뿐이라는 언급이 있다.[5] 색시 맞이 조건 첫 번째가 문벌 높은 집안이라는 건데, 그의 집안 사정상 정말로 문벌 높은 세력가의 경우 딸을 줄 리가 만무하니 차선책으로 허울뿐인 혈통만 있는 집을 고른 것. 나름 양반 문벌에 대한 욕심이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6] 남편이 아들이 어리니 저런다고 하자 스무 살인데 뭐가 어리냐고 득달같이 까댄다.[7] 참고로 작품 초반에는 분명히 1인칭 관찰자 시점이었는데, 삼룡이의 내면을 더 심층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인지 갑자기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동된다. 작품 외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높고, 작품 내적으로는 현실에서도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 남에게 해주는 이야기꾼이 자기 이야기에 몰입하여 인물들의 내면 심리까지 자기 심정인 것처럼 말해주는 경우가 있으니 본작의 화자도 이런 식이었다고 하면 말이 된다.[8] 지금의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동. 작가 나도향의 실제 출생지이기도 하다. 화자는 "지금은 청엽정이라 부르는 곳"이라 하며, 참고로 町(정, 일본어로는 마치)을 마을 이름 끝에 붙이는 건 일본에서 온 잔재이다. 즉, 당시 빈민굴이 될 때 배경은 일제강점기라는 것.[9] 자신을 벙어리라고 부르는 것을 못알아듣고, 하녀가 손짓으로 지시를 알려주는 모습도 나온다.[10] 후술한 80년대 TV문학관에서는 무능한 인간이라는 속성이 추가되는데, 오 생원이 그를 시험할 목적으로 자기 대신 소작료을 걷어오라고 하는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은 도련님이 자기 휘하 소작인들에게 직접 찾아가서 밀린 소작료를 내라고 했더니 그들이 무시하는 걸 넘어 대놓고 배째라 식으로 나왔는데도 잘 대처하긴 커넝 아무것도 못 건지고 돌아가버렸다. 다만 그 소작인들이 오 생원의 아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던 것도 있었다. 이 장면이 도련님이 바보처럼 보이는 묘사에 치중해서 잘 부각되지 않아서 그렇지, 직업적/경제적 관점으로 접근해보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맞다. 왜나면 소작료로 먹고 사는 지주 입장에서 자기가 원하는 만큼 소작료를 내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는 소작인들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생계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어차피 후술할 비참한 결말이 아니었어도 나중에 아비가 죽고, 본인이 가주가 되어도 빠르게 몰락할 가능성이 이때부터 보였다.[11] 노끈이나 새끼 등을 심지 삼아 발가락 사이에 끼우고 그 끝에 불을 질렀다.[12] 주인집을 벗어나서 사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소설이 쓰여진 일제강점기 당시의 한국 사회에서는 법적인 신분제는 폐지되었으나 민간에서의 뿌리깊은 계급 의식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었고 천한 머슴에 불과한 삼룡이가 양반이자 지주, 지역 유지인 오 생원의 도련님을 때려눕혔다가는 마을에서 따돌림당하거나 심하면 린치까지 당할수 있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이런 민간의 계급 의식까지 사라진 것은 6.25 전쟁으로 인해 온 나라가 잿더미로 폐허가 되어 양반이고 지주고 상놈이고 너나할것 없이 다함께 싹 다 망해버린 이후에야 가능했다.[13] 새 아씨가 온 후 다른 남자 하인들은 내외하여 들이지 않았으나, 삼룡만은 그런 구분 없이 어디든 출입이 가능했다.[14] 담뱃불을 붙이기 위한 부싯돌을 담는 주머니. 반대로 담뱃재를 따로 싸가는 쌈지도 있었다.[15] 말을 할 줄 아는 일반인이라면 스스로 해명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삼룡은 벙어리라 불가능했다. 또한 아씨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도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서방이 대뜸 이렇게 단정지어버렸고 삼룡이나 아씨가 뭐라 하든 변명으로 치부해버린 것으로 보인다.[16] 또한 당대 작품 경향이 지배계급(지주, 주인)과 피지배계급(소작농, 하인)의 갈등이 살인이나 방화 등의 과격한 방식으로 끝맺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김정한의 '사하촌'. 이러한 작풍은 카프가 결성되어 절정기에 접어든다.[17] 아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주장에서는 아씨는 그저 불이 난 걸 발견했지만 이미 살아갈 의욕이 없어서 그냥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한 것이라 해석한다.[18] 다만 아씨의 자살 시도를 삼룡이 막았다가 불륜으로 오해받은 사건 당시에는, 상황을 본 게 아니라 말로만 듣고는 진짜로 불륜으로 오해해서 그토록 믿던 삼룡에게 실망한 것도 있어서 드러누웠을 수는 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집안이 개판이 된 것에 충격이 너무 커서 버틸 수가 없었을 수는 있다. 물론 아들을 이따위로 키운 것은 쉴드가 불가능하지만.[19] 삼룡은 벙어리에 귀머거리인 동시에 땅딸보, 카지모도 역시 귀머거리에 곱사등이, 앙가발이다.[20] 삼룡이가 미남 배우 김진규, 도련님이 악역배우 박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