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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1 01:59:06

신봉승

신봉승의 주요 수훈 및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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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자
파일:문화보관.jpg
<colbgcolor=#980000><colcolor=#EDE4D3> 연도 <colbgcolor=#EDE4D3><colcolor=#980000> 1998년
이름 신봉승
분야 시나리오
보관문화훈장(3등급)

파일:백상예술대상로고(1).png
파일:baeksangartsawards4.png
TV부문 대상
제21회
(1985년)
제22회
(1986년)
제23회
(1987년)
한국의 나비 신봉승
(조선왕조 오백년)
생인손
TV부문 극본상
제21회
(1985년)
제22회
(1986년)
제23회
(1987년)
나연숙
(보통 사람들)
신봉승
(조선왕조 오백년)
김상렬
(갈매기)

{{{#white 역대}}} 파일:bluedragonfilmawards_logo.png
파일:bluedragonawards3.png
각본상
제4회
(1966년)
제5회
(1967년)
제6회
(1969년)
한우정
(군번없는 용사)
신봉승
(산불)
이상현
(수학여행)
제6회
(1969년)
제7회
(1970년)
제8회
(1971년)
이상현
(수학여행)
신봉승
(봄·봄)
김수현
(필녀)

역대 파일:daejongfilmawards_logo.png
파일:daejongawards.png
시나리오상
제11회
(1972년)
제12회
(1973년)
제13회
(1974년)
김하림
(쥐띠 부인)
신봉승
(수선화)
오재호
(야녀)
}}} ||
<colcolor=#fff> 신봉승
(辛奉承, Shin, Bong-seung)
파일:신봉승 작가.jpg
<colbgcolor=#0F2116> 출생 1933년 5월 23일
강원특별자치도 강릉
초당(艸堂), 취영(璻影), 한월당(閑月堂)
본관 영월 신씨[1]
사망 2016년 4월 19일 (향년 82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자택
학력 강릉농업고등학교 (수료)
강릉사범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 / 학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 석사[2])
종교 무종교불교 (법명 : 법련거사)

1. 개요2. 생애3. 작품4. TV 드라마 극본5. 신봉승 사단6. 영화 시나리오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소설가이자 극작가. 본관은 영월(寧越), 호는 초당(草堂), 취영(璻影), 한월당(閑月堂). 종교는 원래는 무종교였으나, 후에 불교에 귀의해서 불교이며, 법명은 법련거사이다.

2. 생애

1933년 5월 23일 강원도 강릉군(현 강릉시) 옥계면 현내3리에서 중농 집안의 종손으로서 만주국 황실 소속 사진 기자로 근무하던 아버지 신만선(辛萬善, 1912 ~ 1981. 5. 31)과 어머니 강릉 최씨 최정애(崔貞愛, 1911 ~ 2001. 3. 7)[3] 사이의 1남 2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유학을 숭상하던 조부 신재문(辛在文, 1884 ~ 1950. 1. 1) 아래에서 한문을 수학하여 4살 때부터 천자문암송할 줄 알았다고 한다. 당초 강릉농업고등학교(現 강릉중앙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강릉사범학교(現 강릉원주대학교)에 편입해 졸업했고,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1983년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희대학교 졸업 후 1960년에 문단에 등장하였고(황순원의 제자), 1961년 영화 <돌아온 산하>의 시나리오 현상 모집에 당선된 것을 계기로 극작가로도 활약했다. 극작가 활동 초반에는 동양방송에서 활약했으며, 김재형(PD)가 제작했던 '이조여인 500년사' 등의 사극을 집필한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MBC조선왕조 오백년KBS1풍운. 전자는 1980년 당시의 철저한 고증과 연려실기술을 참조한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후자는 흥선 대원군을 소재로 만든 드라마.

조선 왕조 500년을 집필하면서 세조 ~ 연산군 연간과 개화기 시대를 아주 좋아해서 이후로도 다른 소설들이나 드라마에서도 이 시대를 다룬다. 신봉승이 조선왕조 500년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여러 문중 가문의 공격이었다고 한다. 애착을 보이는 대표적인 캐릭터는 한명회인수대비. 신봉승의 대표 소설이 한명회이다.

꽤 오래된 필력과 사극 극본을 맡은 것을 계기로 역사소설을 쓰기도 했고 역사 관련 저서도 저술하기도 해서 역사학자로 착각하기 쉬우나, 그는 엄연히 소설가이자 극작가이지 절대로 역사학자가 아니다. 아마추어 역사학자, 아마추어 역사 연구자라고 부를 수는 있겠다. 1972년부터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장, 1974년부터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를 역임했고, 1991년에는 한국역사문학연구소를 개업해 대표에 취임하기도 했다.

처음에야 조선왕조실록도 보면서 비교하기도 했으나, 결국 연려실기술 수준으로 후퇴했다. 물론 실록이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시대였음을 상기하자.[4] 결국 조선 시대 역사를 바탕으로 한 학술서 수준을 칭하는 아리까리한 에세이들을 몇권 내놓았다.

오랫동안 사극 극본을 맡은 경험 때문인지, 쪽대본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라고 한다.# 정동진역에 남아있는 시비도 그의 작품이다.

이 외에도 한양대학교, 경희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극영화에 대한 강의를 맡기도 했고, 2008년부터 추계예술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 영상시나리오학과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1996년 대한민국 예술원 영화(시나리오) 분과 회원에 가입했고, 1998년 보관문화훈장을 수훈받았다. 한국소설가협회 최고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2016년 4월 19일 오전 9시 30분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자택에서 폐암으로 별세하였다. 향년 84세.

3. 작품

4. TV 드라마 극본

5. 신봉승 사단

6. 영화 시나리오



[1] #. 부원군파(府院君派) 32세 승(承) 항렬.[2] 석사 학위 논문 : 역사소설 연구 : "단종애사"와 "춘원연구"를 중심으로(1983).[3] 최진태(崔鎭泰)의 딸이다.[4] 김별아에 따르면 <조선왕조 오백년>(1983년부터 1990년까지 방영) 집필할 당시 부족한 자료를 구하기 위해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서울특별시립 남산도서관 앞 나무 그늘 밑에 모여서 바둑 두고 계신 노인(어렸을 때부터 한학을 배워서 한문을 거의 네이티브 수준으로 읽을 줄 알았던)들에게 탁주 몇 사발, 담배 몇 갑을 선물로 드리면 <조선왕조실록>의 한문 원문들을 술술 풀어주셨다고.경향 신문 칼럼[5] 그동안 사극을 집필한 것과 다르게 현대물을 집필하였다.[6] 그 동안 사극을 집필한 것과 다르게 현대물을 집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