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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14:35:49

빌더버그 회의

빌더버그 회의
Bilderberg Meetings
파일:attachment/빌더버그 클럽/bilderberg.png
정식 명칭 빌더버그 회의
<colbgcolor=#1428A0> 영문 명칭 Bilderberg Meetings
국가 다국적
설립일 1954년 5월 29일
창시자 유제프 레팅거[1]
회장 앙리 드 카스트리
유형 이익집단
공식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세계 정복의 음모를 꾸미는 비밀그룹인가?3. 개최지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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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세계 엘리트 그룹의 비밀 회의.

빌더버그 그룹(Bilderberg Group), 빌더버그 회담(Bilderberg Conference), 빌더버그 클럽(Bilderberg Club) 등으로 부르기도 하며 최초 개최지인 네덜란드 현지 발음대로 빌데르베르흐라고도 한다.

주로 미국유럽의 왕실관계자, 귀족, 국제 금융계 인사, 국가수반, 정치가 등의 거물들이 1년에 한두번 고급 호텔을 전세내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정치, 경제환경 문제같은 다양한 국제문제를 논의한다.

멤버로는 데이비드 록펠러, 헨리 키신저, 조지 소로스, 벤 버냉키, 빌 게이츠 등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들이 즐비하며 대부분이 UN, 왕립국제문제연구소, 미국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삼극위원회(Trilateral Commission) 등의 멤버이기도 하다.

제1차 회의는 유제프 레팅거(Jozef Retinger)의 아이디어와 네덜란드의 베른하르트 대공[2]의 주도로 1954년 네덜란드 빌데르베르흐 호텔에서 개최되었다. 매번 120명[3] 정도가 참석하는데 거의 전부가 유럽인미국인이다. 이스라엘중동의 일부 인사만 참석했으나 2011년 회의에는 중국도 참가한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 대한민국은 1990년에 김대중 당시 의원이 참여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참석자의 약 3분의 2가 다국적 기업, 다국적 금융관계자, 국제 미디어관계자이고 3분의 1이 각국의 정치가들이라고 한다. 매년 미국에서 30명, 유럽 각국에서 80명, 국제기관 등에서 10명 정도가 참석한다고 한다.

유명인사들이 무더기로 모이는 것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이 회의를 전혀 보도하지 않았으며, 회의장소에 출입하는 것도 원천봉쇄되어 있었다. 1970년경부터 서서히 존재가 일반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회의의 내용은 여전히 비공개를 유지하지만 참석자나 의제는 언론들이 공개하고 있다.

2013년 5월 폴 헬리어 캐나다 전 국방장관이 공청회에서 외계인의 존재와 함께 그림자 정부를 구성하는 “카발”이라는 비밀단체들 중의 하나로 언급한 적이 있다. # #


2019년 회의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새 멤버로 참석했다.

2. 세계 정복의 음모를 꾸미는 비밀그룹인가?

빌더버그를 단순히 기업가들의 국제음모단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적 장벽을 무너뜨려 하나의 세계를 만들려는 뉴 월드 오더의 일환으로 보는 음모론도 있다.

다음은 빌더버그 회의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1991년 빌더버그 회의에 참석한 빌 클린턴아칸소 주지사에 지나지 않았으나 2년 뒤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르윈스키 스캔들의 핵심인물인 버넌 조던(Vernon Jordan)은 빌더버그 클럽 운영위원회 위원이라고 한다. 그의 영향력 덕분에 클린턴이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냥 그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대통령 당선의 가능성이 있다 판단해 초청했을 가능성도 높다. 클린턴은 캘리포니아텍사스 같은 큰 주가 아니라 시골 깡촌인 아칸소의 지사였고 대권 근처에도 없던 인물이었기에 부각된 듯하다. 하지만 미국 정치의 특성상 듣보잡이 유력 대선후보가 되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4]. 2020년 대선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피트 부티지지도 1년전까지는 인디애나 지방도시의 시장 정도로만 알려졌다.

위의 관점과는 달리 빌더버그 회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음의 세계대전을 막아보자는 취지와 대서양관계의 재구축을 위해 시작된 모임일 뿐이며, 기업가들이 많이 참가하고 또 철저한 보안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각국 정부에 기업가들이 경제정책을 알리기 전에 사전 조율을 하는 단순한 모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회의 참가자들도 이를 부정한다. 한 멤버는 뉴 미디어, 전자통신업계의 거물들이 죄다 빠졌는데 무슨 뉴 월드 오더냐고 코웃음친다.[5] 차라리 오프라 윈프리가 더 영향력이 높을 것이라고 말하는 멤버도 있다.[6]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힘있는 사람들이 그림자 정부를 통해 세상을 지배하고 통치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음모론적인 시각인데, 그렇게 돈 많고 힘있는 사람들이 굳이 골치아프게 뭐하러 그런 일을 하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다만 애초에 그럴 사람들이었으면 그냥 수십억 정도 벌었을 때 은퇴하고 평생 욜로나 하지 빌더버그 회의의 맴버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음모론이 다 그렇듯 너무 부풀려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빌더버그 회의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말 그대로 이익을 내기 위한 회의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익이 어디까지인지를 모른다는 것이고, 회의의 당사자들은 트러스트처럼 독과점이 가능한 수준의 집단이라 감시가 필요하다. 이들이 독점을 벌일 위험이 없다고 확언할 수 없고, 이익에 미친 사람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는 이미 역사가 반증하고 있다.

3. 개최지

4. 관련 문서



[1] 폴란드 유대인 난민으로 2차 대전 후 유럽통합을 주장하며 1948년 헤이그에서 유럽 평의회(Council of Europe)를 발족시켰다. 이를 계기로 세계 문제를 논의하는 비밀회의를 열자는 그의 제안이 주목받게 된다.[2] 네덜란드 베아트릭스 여왕의 아버지. 독일 귀족 출신으로, 네덜란드 율리아나 여왕에게 장가들기 전에 잠시 나치 친위대에 가입했지만 곧 탈퇴하고, 2차대전 중에는 오히려 자유 네덜란드군을 이끌면서 나치에 대항했다.[3] 상황에 따라 늘거나 줄기도 한다. 대체로 100~150명 사이로 볼 수 있다.[4] 애초에 클린턴은 우리나라 기준에서야 갑자기 나타난 돌풍 후보지만, 이미 1984년부터 부통령 후보로 주목받고 1988년에도 대통령 출마 러브콜을 받는등 유력주자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로치면 노무현이 듣보잡이었다가 비밀결사 지원을 받아 갑자기 대통령이 되었다 수준.[5] 데이비드 로스코프, 《슈퍼클래스》, 이현주 역, 더난, 2008, p. 440[6] 같은 책 p. 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