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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콘라트 뢴트겐

빌헬름 뢴트겐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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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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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하이네 게오르크 엘저 콘라드 두덴 제임스 라스트 우베 젤러
출처
같이 보기 :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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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ddd><colcolor=#fff,#000>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
Wilhelm Conrad Röntgen
파일:external/s2.germany.travel/W-C-Roentgen01_RET_1024x768.jpg
출생 1845년 3월 27일
[[프로이센 왕국|
파일:프로이센 왕국 국기(1803-1892).svg
]] 프로이센 왕국 렘샤이트
사망 1923년 2월 10일 (향년 77세)
파일:독일 국기(3:2 비율).svg 바이마르 공화국 뮌헨
국적 [[프로이센 왕국|
파일:프로이센 왕국 국기(1803-1892).svg
]] 프로이센 왕국(1845~1871)

[[독일 제국|]][[틀:국기|]][[틀:국기|]](1871~1918)
파일:독일 국기(3:2 비율).svg 독일국(1918~1923)
학력 김나지움 (퇴학)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졸업)
취리히 대학교 (박사)
업적 X선 발견
서명 파일:Wilhelm Röntgen signature.png

1. 개요2. X선의 발견3. 기타

[clearfix]

1. 개요

독일 제국물리학자이며 X선을 최초로 발견하였다. 이 업적으로 최초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2. X선의 발견


음극선 연구를 하며, 기존의 광선보다 훨씬 큰 투과력을 가진 방사선의 존재를 확인하였으며, 이를 다른 방사와 구별하기 위해 'X선'이라 명명하였다. 이로 인해 초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그는 매우 신중하고 신경증강박증이 있어 뭔가 기이한 현상을 보면 먼저 자신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고 일시적인 현상이나 증거가 부족한 현상을 부정하고 물리적인 증거만을 믿는 성격의 사람이었다. 1895년 그가 크룩스관을 이용하여 기체의 방전 현상을 연구하고 있을 때, 백금시안화바륨을 바른 마분지가 발광하는 걸 보고, 이 현상을 알아보기 위해 책을 차폐막으로 썼다가 책 안에 책갈피로 끼워놓은 열쇠와 책을 든 자기 손 뼈가 투과되어 비치는 X선 현상을 처음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이후 조수들도 다 내보내고 일주일동안 연구실에 처박혀 자신이 무엇을 실수했는가, 혹 자신이 미쳐서 환각을 보고 있는게 아닌가 끊임없이 고뇌하고 연구했다고 한다. 이후 부인 안나 베르타 루트비히 뢴트겐을 실험실로 불러서 음극선관에서 나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빛으로 부인의 손 사진을 찍어 감광지에 감광함으로써 손 안에 있는 뼈는 물론이고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도 선명하게 나타난 모습이 찍히는 것으로 물리적 증거를 확보하고 나서야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겨우 안심하고 수척해진 모습으로 새로운 방사선 현상을 발표했다고 한다. 안나의 손을 찍은 사진은 최초의 X선 사진으로 꼽힌다.
파일:X-ray_by_Wilhelm_Röntgen_of_Albert_von_Kölliker's_hand_-_18960123-02.jpg
알버트 반 퀠러의 사진[1]
그런데 부인 안나는 사진을 보고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사진으로 착각하고 이후 연구실에 얼씬도 안했다고 한다. 문제는 학계 발표 때 논문에서도 자신이 미친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을 다 떨쳐내지 못한 모습이 보였다는 것. 하긴 당시 시대상으로도 엄청난 발견이니 그 자신도 믿겨지지 않을 법하고, 자신의 발견에 설레발 치지 않고 의심하는 것은 과학자로서 당연히 옳은 것이다.

1869년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졸업 후 A. 쿤트의 조수가 되어 1872년 그를 따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로 옮겼다가 1874년 슈트라스부르크대학교 강사, 1875년 호켄하임농과대학교 수학·물리학 교수, 1876년 슈트라스부르크대학교 초청교수, 1879년 기센대학교 물리학 교수, 물리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1888년 뷔르츠부르크대학교 물리학 교수로 돌아왔다가 1900년 뮌헨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여기서 X선을 발견하였고 곧 뮌헨 대학교로 옮겼는데, X선의 발견은 당시 학계뿐만 아니라 세상에도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업적으로 1901년, 제1회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X선을 발견하고 특허를 내서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X선은 자신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을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온 인류가 공유해야 한다"며 특허 신청을 끝내 거절했다. 그의 이러한 대인배적 행보는 이후 X선을 이용한 각종 연구들을 통해 인류의 과학 기술이 크게 발전하는데 지대한 기여를 하게 되었다.[2]

X선의 발견은 이것에 뒤이은 라듐의 발견과 함께 19세기 말의 2대 발견으로 불린다. 또한, 그 후의 의학과 물리학의 발전에 중대한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또 결정 구조 연구의 응용에도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외에 뢴트겐 전류, 탄성, 결정내의 열전도, 기체의 열선 흡수, 자기와 편광, DNA 등의 연구가 있다.

3. 기타

111번 원소 뢴트게늄의 이름은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독일어에서는 X레이 촬영을 뢴트겐의 이름을 따 부르는데, röntgen이라는 단어 첫 글자를 소문자로 바꿔 아예 동사화했다. 독일어 동사가 -en으로 끝나기에 가능한 부분.[3]

일본어에서도 X레이 촬영 자체를 뢴트겐(レントゲン)이라고 하며, X레이를 찍는다는 표현 역시 レントゲンを撮る(뢴트겐을 찍다)라고 한다. 한국의 의사들도 이에 영향을 받아서 뢴트겐, 뢴트겐 사진이라고 쓰는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4] 시간이 지나고 의사들도 세대교체가 되며 지금은 거의 안쓰는 의학용어다. 다만 북한에서는 아직도 X선을 '렌트겐'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시점에도 영어권이나 유럽쪽에서도 x-레이라는 용어 대신 뢴트겐 사진이란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김나지움에서 퇴학 처분을 받았는데, 뢴트겐이 문제아여서가 아니라 순전히 웃었기 때문이었다.누가 웃음소리를 내었는가 한 친구가 뢴트겐에게 김나지움의 한 선생님을 우습게 그린 그림을 줬는데 그 그림을 보고 웃은 뢴트겐이 그 선생한테 딱 걸린 것. 학교 측의 강요에도 친구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가 졸업을 앞두고 퇴학 처분을 받았다.[5] 이후 뢴트겐은 고등학교 졸업이 필요없는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의 시험을 합격해 그곳에서 다니게 되었다.[6]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은 없었지만 부인의 조카(남자형제 한스의 딸)인 당시 6살이던 조제핀 베르타 루드비히를 입양해 돌봤다.

우습게도 프랑스에선 독일이 X선으로 유명해지자 자기들도 할 수 있다며 쇼를 벌였다. 1903년, 프랑스의 유명 물리학자 르네 블롱들로(Rene Blondlot/1849~1930) 교수가 새로운 광선인 N선을 발견했다고 발표했고 1906년까지 40여명의 다른 과학자들이 N선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보고했으며 총 300편의 논문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이듬해 미국인 학자 로버트 W.우드[7]가 블롱들로를 찾아가 확인한 결과. 블롱들로는 장치에 납종이를 끼우면 N선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N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하여 우드에게 납종이를 설치하거나 제거하게 하였다. 우드가 납종이를 설치했다고 말하자 블릉들로는 N선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였고, 납종이를 제거했다고 말하자 N선이 보인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실은 우드가 거짓으로 말한 것이었다. 즉 보이지도 않은 걸 보았다고 거짓말을 한 것을 끄집어냈다. 이게 네이처에 보도되면서 다수의 과학자들이 블롱들로의 유명세에 홀려 '집단환각'에 빠졌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우드가 사기꾼인 양 블롱들로를 옹호했다. 프랑스 과학협회는 르콩트상을 블롱들로에게 수여했다. 그러나, 이 상은 N선이 아닌 블롱들로의 모든 과학공로를 인정한다는 뜻으로 프랑스조차도 N선 결과를 믿지못했다.[8] 그럼에도 블롱들로는 자신은 N선이란 새로운 광선을 발견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프랑스 학자들조차도 X선에 다급해진 결과로 본 착각이란 주장으로 그를 비난했다. 그리하여 블롱들로는 대인기피증 비슷한 증세로 1909년 60살로 은퇴하고 잠적하여 죽을 땐 묻혀져서 알려지지도 못했다.


[1] 부인의 사진으로 알려져 있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진이다.[2] 만약 뢴트겐이 X선에 특허를 냈다면 특허가 만료될때까지 X선을 사용하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해야 했을 것이고, X선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게 되어 그만큼 관련 기술의 발전이 더뎌졌을 것이다.[3] 이렇게 이름이 동사화된 다른 인물로는 갈바니가 있다.[4] 일제 강점기 한국의 의사들 대다수가 경성제대(현 서울대) 등 대학에서 일본 교수 등 교육자에게 교육받고 현장에서도 이런 용어를 자연스레 쓰다보니 굳어져 버린것이다. 그리고나서 그 교수들이 제자들을 교육시 이런 단어를 그대로 쓰며 교육하며 지금에 이어진것.[5] 당시는 교사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강압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6] 훗날 뢴트겐과 마찬가지로 김나지움 졸업장이 없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같은 학교에 지원하게 된다.[7] Robert Williams Wood/1868~1955 존스 홉킨스 대학 물리학 교수이자 분광학 권위자로 유명하다. 더불어 세계 최초로 UFO 조작 사진을 만들어 사람들을 장난스럽게 속인 사람이기도 하다! 이걸로 돈벌어먹거나 UFO를 주장한 것도 아니며 사실 오컬트나 미스터리, 유사과학의 트릭들을 폭로하는데 앞장서던 회의론자이기에 한 짓이라고 한다.[8] 그나마 블롱들로는 소르본 대학의 교수이자 이전에 세계적으로 여러 공로를 인정받던 학자였고, 때문에 듣보잡이 갑자기 사기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듣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