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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00:34:34

서부 전선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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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이상 없다
Im Westen nichts Neues[뜻1]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뜻2]
파일:Remarque_Im_Westen_nichts_Neues_1929.jpg
1929년 독일 초판
<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373a3c,#dddddd> 장르 전쟁, 호러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출판사 Propyläen Verlag
발매일 1929. 1. 29.
쪽수 295

1. 개요2. 작가3. 줄거리4. 특징5. 등장인물
5.1. 파울네 학급5.2. 2중대 소속 주요등장 인물5.3. 기타 등장인물
6. 레마르크와 윙거의 비교7. 서술 오류?8. 미디어 믹스9.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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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Dieses Buch soll weder eine Anklage noch ein Bekenntnis sein. Es soll nur den Versuch machen, über eine Generation zu berichten, die vom Kriege zerstört wurde – auch wenn sie seinen Granaten entkam.
이 책은 고발도 아니고 또 고백도 아니다. 비록 포탄은 피했다 할지라도 역시 전쟁에 의해서 파괴된 어느 시대를 보고하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1929년 초판 서문>
1928년 11~12월 'Vossische Zeitung'에 연재되고 1929년 1월 출간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제1차 세계 대전을 다룬 창작물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2. 작가

레마르크는 독일 태생의 소설가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후에 나치가 집권하자 먼저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지냈고, 후에 나치가 몰락하자 유럽으로 돌아와 스위스에서 지냈다. 특이할 점은 찰리 채플린의 두 번째 처인 여배우 폴렛 고다드와 재혼했다는 점. 두 명 모두 세 번째 결혼이었고 이후 죽을 때까지 부부로 있었다.

레마르크의 소설은 이 밖에도 2차대전 직전의 파리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인 소설 "개선문"이 있으며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리스본의 밤', 2차대전 후반의 동부전선 병사들을 다루는 '사랑할 때와 죽을 때'도 명저로 꼽히며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1차대전의 서부전선을 다루고,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2차대전의 동부전선을 다루는 소설로 둘 다 빛나는 명저이다.

그 외 작품으로는 1차대전 종전 후 돌아가는 병사들을 다룬 다룬 '세 전우들', 귀향한 병사들의 방황을 그린 '귀로' 등이 있다.

3.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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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원작 기준이다.

4. 특징

이 소설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직접 참전했던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반전소설로는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이 작품, 그리고 같은 해 나온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로 인해 전쟁 소설은 그 형태가 완전히 정립되다시피 해, 1929년 이후 나온 전쟁소설들은 스토리가 죄다 그 나물에 그 밥이 되고 말았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나타난 과학의 신비 기관총, 독가스의 사용과 참호전의 생생한 묘사를 접할 수 있다.

반전적인 주제뿐만 아니라 독문학적으로도 특기할 만한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쓰인 대화들은 그동안 독일 소설에 잘 나오지 않던 생생한 속어체 문장으로 표현되었다. 게다가 군대에서 쓰이는 전문용어나 은어가 자주 나와 리얼리티를 살리고 있다. 그래서 독일어와 군 지식이 없는 한 원어 읽기가 매우 어렵다.

한국어 번역판은 일본어판을 중역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판이 있지만 번역체가 너무 심하다. 제목 자체부터 일본어 제목인 "西部戦線異状なし"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독어판에서 바로 번역한 판도 있는데 범조사의 1986년판 같은 경우 한국 독어독문학회 부회장을 역임한 박환덕 서울대 교수가 번역했다. 2009년에 출간된 열린책들 판도 독일어 직역판인데 독일어 번역가 홍성광이 번역했다.

5. 등장인물

5.1. 파울네 학급

20명이 담임교사의 선동으로 한꺼번에 지원했다. 물론 전원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5.2. 2중대 소속 주요등장 인물

5.3. 기타 등장인물

1중대 전담 취사병으로 파울에 의해 저런 토마토보다 훨씬 나은 녀석이라며 언급만 된다. 겨울 햄스터처럼 살이 쪘지만 포탄 무섭다고 급식차 안 댄 하인리히와 달리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참호까지 직접 밥이 든 통을 들고 오기도 하는 등 일을 잘하고 평가도 좋은 걸로 보인다.

6. 레마르크와 윙거의 비교

엄밀히 따져 이 두 작가가 동렬에 놓일 수는 없다. 레마르크는 당대 잘 나가는 독어권 통속 소설가 중 한 명에 머물렀으나 윙거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독일 우파들을 이끌었던 보수혁명 담론의 주요 주창자이자 독일내 민족 볼셰비즘에 영향을 미쳤으며 나치와 반나치에 모두 영감을 주고 영향력을 행사한 독일 지성사의 거물이라서 일생 전체로 보면 윙거가 훨씬 논쟁적이면서 비중있는 인물이다.

다만 같은 전쟁을 다루면서 상반된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두 작품에 한해서는 비교가 가능하다.

전쟁의 참상과 영웅적 리얼리즘을 결부시켜 전쟁찬미를 서술한 에른스트 윙거의 최초 작품인 <강철 폭풍 속에서>가 나온 시기가 1920년이다. 윙거는 푸르 르 메리트 무공훈장의 최연소-최후 서훈자로서 줄곧 서부전선의 최일선에서 분투한 전쟁영웅이다. <서부전선 이상없다>와 <강철 폭풍 속에서> 두 작품은 전장체험이 모두 반전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사례이자, 보수적인 사회에서 반전문학이 나오는데 (여러 이유로) 시간이 꽤 걸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만 에른스트 윙거의 에세이가 영웅주의적인 사관에서만 서술되었다는 건 책 안 읽어본 이들의 흔한 편견이기도 한데, 서부전선 이상없다가 전쟁이라는 현실이 인간을 어떻게 파탄내는지를 묘사한다면, 윙거는 그러한 삭막한 파국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간성 및 강한 자아를 묘사하고 있다.

안 읽어본 이들의 막연한 상상과 달리 강철 폭풍 속에서 본문 속에 전쟁에 대한 찬미는 없고 서술자인 윙거의 내면 묘사조차 희미하다. 개인의 감상을 배제하고 극도로 무미건조하게 피 튀기는 전장의 현실을 써내려간 쪽에 가깝다.

같은 참전 용사인 두 작가의 시각이 매우 대조적이다. 두명의 전쟁 경험도 극단적으로 다르다. 레마르크는 18세의 나이에 징집병으로 전쟁터에 끌려가고서 전선배치 1주일만에 중상을 당해서, 전쟁기간 내내 고통스러운 부상과 씨름하였고, 회복될 즈음에 부대에 복귀하였으나 바로 종전을 맞이했다. 반면 윙거는 징집병이 아니라 자원병으로 참전하였고, 개전부터 종전까지 여러번 부상을 입으면서도 서부전선에서 버텨내고 푸르 르 메리트를 받았으며 전후 군축 과정에서도 한동안 남아 보병교본 편찬에 참여했을 정도로 전술적 역량이 빼어나서 군에 남았다면 장군 진급은 당연했던 인물이다.

레마르크는 전쟁기간 동안 전선 한켠에서 물러서서 부상병동에서 여러 종류의 부상병들과 접하면서 전쟁이 인간에게 남긴 피해를 계속 접한 반면, 윙거는 전쟁기간 4년 내내 전선에 있으면서, 꿋꿋하게 국가체제에 봉사했으며, 그리고 그런 경험이 그에게 독일인이 좀 더 강한 자아의 국민이었다면, 전쟁에서 승리했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똑같은 1차대전 독일 참전용사였지만, 독일민족주의를 증오하게 되어 극좌로 전향, 전설적 소련 간첩이 된 리하르트 조르게와 오스트리아 출신이면서도 더욱 더 극단적인 독일 민족주의자가 된 아돌프 히틀러의 경우처럼 레마르크와 윙거는 대조적이다.

이런 성향 차이때문에 레마르크는 히틀러가 집권하자 위해를 피해 스위스로 망명해야 했지만, 윙어는 전통적인 독일민족주의자의 상징으로서 우익 일반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나치 정권과의 여러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치 정권은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윙거는 나치가 일으킨 전쟁에는 대체로 동조적이었으며, 이 때문에 본인의 작품마저도 매도당하게 되었다. 윙거는 2차대전에 현역으로 복귀하여 대위로 복무하였다. 그가 2차대전시에 주로 한 일은 헌병으로서, 탈영병을 체포-처형하는 일이었다. 본인이 나치가 아니었다고 해도 종전후 독일 국방군 자체가 흑역사가 되었기 때문에, 국방군에 근무한 그가 욕먹을 수 밖에 없었고, 그의 작품마저도 "우익소설", "전쟁미화소설" 이라는 딱지가 붙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대조적인 행보 때문에 레마르크는 전후에 서유럽 전체에서 일관된 반전행보로 칭송을 받은 반면, 윙거는 그 우익적인 지향 때문에 전후 상당기간동안 독일 문단에서는 금지어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레마르크는 매우 초기부터 중역이든 뭐든 번역이 되었지만 윙거의 '강철 폭풍 속에서'는 2010년대에 들어서서야 번역판이 나왔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동독의 좌파 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공산주의자들이 윙거를 위협하자, "윙거를 내버려 두라"고 옹호하기도 했다. 브레히트와 윙거의 정치적 지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베르히트는 윙거의 작품은 단순한 우익선동소설은 아니라고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1980년대가 되어 어느정도 전쟁의 상처가 치유되자, 서독에서도 윙거의 문학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고, 심지어는 1차대전 적국이었던 프랑스에서도 그가 초청되고 그의 작품이 번역되어 널리 읽혀졌다.

7. 서술 오류?

작중에서 알베르트 크로프가 흑인 병사를 사살했다는 서술이 있다. 독일어 원어 표기가 뭔지 알 수 없지만 "깜둥이"라고 적은 판본도 있고 그냥 검은 모습의 프랑스 병사로 나오는 판본도 있다. 그 흑인이 부주의하게도 무인지대로 정찰을 나와서 담배를 피웠기에, 그냥 빛나는 머리통을 조준해서 쏘면 되었다고 한다.이를 근거로 이들을 미군이라 단정짓고 "미군이 전투병과에 흑인을 처음 배치한 건 2차 대전 때가 아니냐, 오류인 것 같다"고 지적할 수도 있지만, 작중 시점인 1917년 이전에는 아직 미군이 서부전선에 오지도 않은 시기였다.

미군의 유색인종 전투 투입은 그 이전 남북 전쟁 때부터 있었으며, 1차 세계대전 말 미 원정군에도 많은 유색인종 미국인 병사들이 포함되어 전투를 치렀다. 그 예시로 영광의 깃발로 유명한 남북전쟁 당시의 제54 메사추세스 보병연대와, 배틀필드 1의 인트로 캠페인으로 널리 알려진 제369 '할렘 헬파이터' 보병연대 등이 있었다. 무엇보다 최초의 흑인 미군 명예훈장 수여자가 남북전쟁 당시에 나왔다.

게다가 프랑스군은 서아프리카 등지에서 식민지군을 데려와 전선에 투입하기도 했고, 본토에도 식민지 출신 유색인종이 매우 많이 살았기 때문에 프랑스군에 흑인이 끼어있는 모습은 그다지 이상한 장면이 아니었다.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유색인종으로 구성한 세네갈 티라이외 부대도 있었으며, 10만명 이상이 전사했다.

당시 유색인 부대 동원에 대한 상황을 보면 아래와 같다.
사실 고통 운운은 본토와 식민지 출신 병사들의 차이를 비교해 한 개드립일 뿐이다. 즉, 본토 사람이 예컨데 만 명 죽으면 본토 여론도 안좋아지지만 식민지는 만 명이 죽어도 그저 찍어누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도차이나 경보병 연대 소속의 베트남 출신 병사들도 마른 전투에 투입되었다.
2022년판 영화에서도 최후반부 전투씬에서 참호 속에서 쉬고 있는 많은 수의 흑인 프랑스군의 모습이 나온다.

8. 미디어 믹스

8.1. 영화

8.1.1.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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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되자마자 1930년에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에 의해 미국에서 영화(흑백)로도 제작되었는데,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원작을 읽어본 사람은 경탄할 정도로 원작의 주요 내용을 나름 세심히 옮겼다. 나중 영화판에서 빠진 병원에서 생긴 일도 재현할 정도였다. 이 영화를 제작 할 때가 1차 대전 참전용사들이 전역 후 한참 사회에서 활동할 정도로 많았던 시절이라 대단히 세밀한 고증을 자랑하기도 한다. 영화를 잘 보면 초반부터 후반까지 독일군의 철모가 점차로 바뀐다는 것을 알려준다. 흔히 생각하는 뿔달린 헬멧에서, 몇몇 대원들과 엑스트라들의 뿔이 사라지더니, 휴가다녀온 후엔 헬멧 장식품도 사라진다. 79년도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속한 부대는 뿔달린 헬멧을 쓰고 있었으며 그 뒤에 오는 신병들로 이루어진 보충대는 슈탈헬름을 쓰고 있다. 나중에는 전원 슈탈헬름 착용.

하지만 영화의 반전 메시지가 심히 마음에 안 들었던 히틀러나치당원들은 영화관에 를 풀어버리거나 혹은 스크린에 물감풍선을 집어던져 영화 상영을 방해하곤 했다. 그 후 나치당이 정권을 잡은 후로는 패전 시까지 상영 금지 크리. 미국에서도 고립주의자들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전쟁 개입을 반대하기 위해서 내세운 영화가 이 영화와 <위대한 독재자>였다. 정작 이 두 영화가 강력하게 전쟁과 군국주의에 대한 반대를 주장하는 영화였음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

주연 배우 휴 아이레스는 이 영화의 영향을 받아서 양심적 병역거부나 반전 관련 활동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감독인 루이스 마일스톤은 2차 대전 당시에는 일본 비난 선전물 등의 국책영화를 꽤 만들었다. 그래도 전쟁 후 서부전선 이상 없다류의 허무한 전쟁을 고발한 한국 전쟁 영화 폭찹힐을 만들어서 명성을 얻었다.

느글느글한 부사관 카친스키(카트)를 연기한 루이스 불 하임은 후일 프론트 페이지라는 영화에 출연할 뻔 했는데 촬영 일주일 전에 뇌출혈로 사망한다.

8.1.2.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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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한 번 더 영화(컬러)로 만들어졌다. TV 영화인데도 이 작품 또한 명작으로 불린다. 웬만한 극장영화보다 낫고 한국에서는 주로 이 작품이 KBS를 통해서 소개되었다. 독일에는 이미 도시가 모두 현대화되어 있어 촬영할 만한 곳이 없어서, 공산국가였던 체코(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찍었다.

여기서 카친스키 역은 인어맨으로 유명한 원로 배우 어니스트 보그나인이었다. 원작의 친구 개념보다는 주인공이 아버지처럼 따르는 일병으로 나왔다. 정확히 묘사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워낙 나이가 있는 캐릭터라 좀 묘한데, 번역이 비교적 상당히 정확한 편인 EBS에서 방영했을 때 일병으로 번역했다. 다만 상당한 재량권이 있는 고참병으로 묘사된다. 후임병 교육까지 도맡을 정도. 애초에 하사관(현 부사관) 계급이 결국 병사 계급의 연장선에서 비롯된 것이고, 또한 해당 시점이 1차대전 즈음인 것을 감안하면 계급의 분화가 애매한 것에서 비롯된 현상일 수 있다.

원작과는 조금 다르면서도 30년 작품처럼 원작의 일부 내용을 잘 살렸다. 특히 거위 사냥 부분. 30년 작과 원작을 뛰어넘은 장면은 카친스키의 사망 장면. 일부는 30년대 작품보다 79년도 작을 더 명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배우들의 연기와 여러 특수 효과들도 30년대 작보다 휠씬 좋다. 원작은 부상당한 카친스키를 주인공이 후송하다가 그냥 날아가던 파편에 맞아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인데, 30년대판에서는 룰루랄라 가다가 비행기 폭격에 사망한다. 원작처럼 비장한 부분은 79년판에서 재현된다. 그런데 자네들 친척 아닌가?라는 대사는 30년판만 나온다 자세한 사항은 서부 전선 이상 없다(1979) 참조.

8.1.3.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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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토론토 영화제 출품작.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에선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했다.

원작과 다른 부분이 많은데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고위층 인사를 등장시켜서 주인공과 대비시킨다는 점이다. 시종일관 파울 보이머의 시각에서 사건을 전개하는 원작과 달리 2022판 영화에서는 정전 협상을 주도하는 사절단과 전쟁을 계속하려는 장군이 등장해서 일선의 병사인 파울의 처지를 더 극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또한 원작에 비해 액션성이 강화되었고, 작품의 결말로 향하는 전개 역시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원작에서는 카친스키가 죽는 시점에서 이미 주인공이 겪는 모든 갈등 요소는 목적을 잃어버렸고, 주인공은 아무런 드라마도 없이 그저 평온하게 세상을 떠난다. 이 시기가 전쟁이 끝나기 불과 얼마 전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언급은 되지만 그게 주인공의 죽음을 더 안타깝게 하는 느낌이 없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이미 전쟁이 진행되는 내도록 소중한 전우를 하나둘씩 거의 다 잃어버리면서 삶의 의미 역시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지속적으로 정전 협상이 진행되는 장면을 중간중간 연출해서 주인공이 어차피 끝날 전쟁인데도 굳이 벌어지는 최후의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첨예한 갈등 구조를 결말 직전에 드러내어 최후에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쓰러지고 마는 주인공의 죽음을 보다 극적으로 그려내었다. 조금씩 무너져가다 끝내 완전히 스러져버리는 모습으로 전쟁의 비참함을 보여준 원작과 달리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결국 살아남지 못하는 처지를 통해 강렬하게 반전 메시지를 호소하는 것이다.

자잘한 차이점으로 가자면 중대가 반절이 될 정도로 포격을 당한 직후에 배 터지게 밥을 먹으면서 시작하는 원작과는 달리 영화는 주인공이 입대하는 시점부터 다룬다. 또한 원작의 여러 에피소드를 순서를 무시하고 집어넣었으며 시간과 장소, 행위자를 바꾼 부분도 많다. 원작에서는 알베르트 크로프가 무릎 위에 총상을 입고 다리를 절단해서 자살을 생각하다가 그만두지만 영화에서는 프랑스군의 전차 공격에서 낙오되었다가 주인공이 보는 눈 앞에서 화염방사기에 불타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탸덴의 경우 원작에서는 생존하지만 영화에서는 다리에 부상을 입고 절망해서 포크로 목의 동맥을 수차례 찔러 자살한다. 카친스키 역시 원작과는 달리 주인공과 함께 농장에서 재차 거위알을 훔치다가 농장 소년에게 총을 맞아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으러 가는 중에 죽는다.

주인공이 프랑스군으로 참전한 인쇄업자 제라르 뒤발을 죽이는 부분은 생략하거나 변경하지 않고 매우 집중적으로 다루는데, 이로서 반전에 대한 메시지를 더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원작부터 이미 당대에 반전소설로 유명했던 작품이지만, 2022판 영화는 상술한 변경점이나 원작의 특정 부분에 대한 강조를 통해 한층 더 자극적으로 반전성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8.2. 음악

1981년에는 엘튼 존버니 토핀이 원작을 모티브해서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를 작곡했다.

9. 기타

이제는 고전 문학의 반열에 올라간 소설이지만, 딱딱하고 지루해보이는 선입견과는 달리 군필자나 밀덕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분량상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병영 생활은 군대가 다 그렇듯 밴드 오브 브라더스 같은 근래(1992)에 씌여진 군대 수기(TV드라마가 유명하지만 원작은 논픽션 수기이다)와도 유사한 느낌을 지닌다. 반전소설에서 흔히 연상되는 어둡고 침울한 내용보다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부분도 꽤 많다. 그러다가 동료가 하나씩 죽어나가면서 순식간에 어두워지지만. 물론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BOB가 위대한 승리를 다루는 것에 반해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처절한 패배를 다룬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작가인 레마르크도 한 병사의 개인적인 경험일 뿐 정치적인 메시지는 담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으나 소설 내에서는 끊임없이 전쟁의 본질에 관한 말들과 주인공 일행의 토론이 나온다. 소설에서 반전메시지가 거의 없거나 약한 편이라는 설명은 잘못된 것이다. 아예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고 주구장창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최종장의 파울 바우머의 전사를 통해 극대화된다.

이런 이유로 나치 정부는 레마르크와 그의 작품들에 심한 탄압을 가했다.1933년 괴벨스에 의해 그의 저작들은 금지되었으며, 분서갱유처럼 공공연히 불태워졌고, 레마르크가 독일인도 아니며 1차대전에 참전한적이 없다고 거짓 프로파간다를 하기도 했다. 때문에 레마르크는 미국으로 도피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거기서 지냈다. 또한 1943년에는 그의 여동생인 엘프리데 숄츠가 '사기를 꺾은 죄'로 체포되어 처형당하기도 했다.[5] 레마르크는 이 일을 계기로 나치 수용소를 다룬 '생명의 불꽃'(1952년)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본 작품은 1929년 발매 첫 18개월 만에 22개국에 번역되어 250만부 이상의 판매량을 올릴 만큼 베스트 셀러였다고 한다.

1930년도 작품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좋아하는 영화이다.#

드미트리 로고진 전 로스코스모스 사장이 이 제목으로 자신의 회고록을 출간했다(...). 정확히는 자신의 생일인 12월 21일에 출간했고, 자신의 생일 파티를 회고록 출간 행사도 겸해서 열고 있었다. 문제는 그 장소가 도네츠크 시의 한 식당이었고, 우크라이나군이 위치를 파악하고 타격하여 로고진과 부인 모두 중상을 입었다는 것(...). 어찌어찌 치료를 받고 생존하는데에는 성공했다. 다만 일설에 따르면, 성기 앞부분이 절단되었다고 한다(...).[6]


[뜻1] 서부(전선) 새 소식 없음[뜻2] 서부 전선은 완전히 고요하다[3] 모두에게 공평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주지사 아들인 줄 모르고 한 일이었다.[4] 힘멜슈토스가 일개 상병이지만 우리나라와 서방 군대에서의 상병의 개념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야 상병이 그냥 어중간한 병으로 분류되지만, 미군이나 영국군에선 상병부터 부사관이며 다른 유럽군대들도 상병은 병 중에선 가장 높은 경우가 많기 때문.[5] 레마르크는 전쟁 후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6]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서방권에서 드미트리 로고진은 얼마 전 타계한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급의 기행으로 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