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
Citroën SM[1]
1. 개요
프랑스의 자동차 제조사 시트로엥에서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생산한 그랜드 투어러이다.2. 역사
1961년 자사의 플래그쉽이었던 DS의 고성능 모델 버전인 프로젝트 S로 출발했으며, 이후에는 DS와는 다르게 완전히 새롭게 엔지니어링된 차량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시트로엥은 1968년 인수한 마세라티의 2.7 및 3.0L V6 엔진을 적용하여[2][3]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고자 했고, 거기에 더해 유압식 서스펜션과 코너링 램프도 집어넣었다. 디자인은 자사의 DS와 GS, CX와 아미를 디자인한 로베르 오프론이 담당했고, 자사의 차량들은 물론 마세라티 미스트랄과도 비슷한 스타일이 특징이었으며 뒷바퀴 일부가 펜더 스커트로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공기역학적인 디자인에 캄 테일 형태의 디자인이 특징이었고, 앞부분은 널찍하나 뒷부분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차체는 눈물의 형태와 비슷했다.그렇게 1970년 3월 개최된 제네바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였고, 당시 기준으로 수많은 혁신적인 기술들을 대거 적용한 하이 테크놀로지 차량이었다. 기존의 시트로엥 차들과는 차별화되는 고성능 쿠페를 지향했으며, 강력한 성능과 당대 시트로엥 차량답게 시대를 앞서간 여러 기능과 요소 등으로 좋은 차라는 평가를 받았고 현재까지도 계속 회자되고 있다. 판매는 동년 9월부터 프랑스에서 최초로 개시되었으며, 전량 좌핸들 사양으로 생산된지라 영국과 호주에서 판매된 차량은 현지에서 우핸들 개조를 거쳤다.
1971년에는 모로코 랠리에 참전했으며, 거기서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러 경기에 참여했으며, 레이싱에 특화된 숏 휠베이스 사양인 "브레드밴"(breadvan) 모델까지도 개발하였다. 1972년에는 4도어 컨버터블 형태의 프랑스 대통령 의전 차량 사양이 만들어졌고, 당시 임기를 맡고 있던 조르주 퐁피두부터 자크 시라크까지 이 차량을 사용했다. 또한 요한 바오로 2세 및 여러 국가원수들이 파리를 방문했을 때 이 차량을 타고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동년에 파생형 컨셉트카인 SM 프루아 컨셉도 공개되었는데, 당시 판매되고 있던 마세라티 메락의 스타일에 영향을 받은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1974년에는 4도어 세단으로 개조된 SM 오페라가, 1975년에는 2도어 컨버터블 형태였던 SM 미로드가 각각 7대와 5대씩 제작되었다. 그리고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II는 SM의 플로어 팬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졌으며, 6등식 헤드램프와 유압식 서스펜션 등 SM의 요소를 대부분 가져왔으나 4도어 세단의 특성상 전장과 전폭을 더 크게 키웠다.
미국은 SM의 주요 수출 국가를 목표로 삼던 국가였으며, 현지에서 판매되던 퍼스널 럭셔리 카나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지에서 수입되던 고급차들을 경쟁 상대로 삼고자 했다. 미국에서는 당대 차량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던 우아하고 혁신적인 디자인이 높은 평가를 받아 1972년 모터트렌드에서 뽑은 올해의 차를 수상하기도 했는데, 이는 수입차가 수상한 최초의 사례였다. 다만 다른 국가에서 선보였던 코너링 램프가 미국 법규에 맞지 않아 평범한 4등식 헤드램프를 대신 장착했고, 범퍼도 안전기준에 맞게 대형화되었다.[4] 그러나 초기에 호조세를 보이긴 했지만 SM의 유압식 서스펜션으로 인해 1974년 NHTSA가 새로 규정한 범퍼 높이 규정이 발효됨에 따라 강제 단종 조치를 맞았고, 당시 수입된 134대의 물량은 미국에 판매되지 못하고 일본으로 넘어가야만 했다.
출시 초기인 1970년부터 1973년까지는 나름 좋은 인기를 누렸으나, 1974년에 1차 석유 파동으로 인해 판매량이 깎여버렸고 이듬해인 1975년에 단종되었다. 총 판매 대수는 12,920대이고 북미에서는 2,400대 가량이 판매되었다.
단종 후에는 프랑스의 SM2A라는 기업에서 SM을 21세기 자동차 제작 규정에 맞게 재설계했으며, 가격은 대딩 23만 유로이며 연간 4대의 차량만 제작하고 있다.
3. SM 트리뷰트 콘셉트
SM 트리뷰트 컨셉트 |
4. 유명한 소유자
- 프랑스 내에서는 저널리스트 베르나르 피보, 요리 평론가 파스칼 레미,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의 친구이자 고위 공무원인 프랑수아 드 그로수브르[5], 코미디 스타이자 배우, 가수인 페르낭 레이노[6]가 SM의 소유주이다.
- 해외 유명인들 중에서는 캐나다 배우 론 그린과 미국 배우 리 메이저, 작곡가 존 윌리엄스와 존 배리, 음악가 카를로스 산타나, 작가 그레이엄 그린, 롤링 스톤즈의 드러머인 찰리 와츠와 베이시스트인 빌 와이먼, U2의 애덤 클레이튼, 더 킹크스의 데이브 데이비스, 콜드플레이의 가이 베리먼, 코미디 듀오인 치치 & 총, 같은 코미디언이자 TV 호스트인 제이 레노, 유고슬라비아 출신 크로아티아 가수 미쇼 코바치, 네덜란드의 축구선수 요한 크루이프가 소유하고 있다.
- 고위 정치인들도 이 차량을 소유한 적이 있는데, 선술했다시피 본국 대통령인 조르주 퐁피두부터 권한대행인 알랭 포에르,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프랑수아 미테랑과 자크 시라크까지 의전차량으로 운용했다. 1971년 10월에 소련 공산당 사무총장이었던 레오니드 브레즈네프가 파리에 방문했을 때 조르주 퐁피두의 권유로 메탈릭 그린의 SM을 받았으며, 소련으로 돌아가서도 정기적으로 운용했다. 그러다 1991년 소련 해체 후에 네덜란드의 한 수집가에게 재판매되었다. 또한 이란의 마지막 샤한샤(황제)였던 모하마드 레자 샤 팔라비도 SM의 소유주였다. 6.25 전쟁때 대한민국에 자국의 병력을 파병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는 에티오피아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도 한 대 소유하고 있었으며, 우간다의 독재자이자 학살자였던 이디 아민은 이 차를 엄청 좋아한 나머지 무려 7대까지 소유하기도 했었다.
5. 모형화
프랑스 내의 모형 제조사인 노레브에서는 1:12, 1:18, 1:43, 1:64 총 4가지의 스케일로 제작하였으며, 또 다른 회사인 마조렛에서는 1:65 스케일로 제작했다. 프랑스 바깥에서는 영국의 매치박스, 독일의 시쿠, 일본의 토미카에서 1:60대 스케일로 만들어 주었다.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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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트럭 부문 |
[1] Systeme Maserati, Sports Maserati, Série Maserati 또는 프랑스어로 여왕을 뜻하는 'Sa Majesté의 줄임말이라는 의견도 있다.[2] 원래는 V8 엔진까지 적용하려 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단종 때까지도 적용되지 못했다.[3] 그러나 시트로엥의 마세라티 인수는 나중에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고, 외에도 방만한 경영 문제도 덤으로 겹쳐서 골골거리다 1976년 푸조와 합병하면서 PSA 그룹 소속이 되었다. 한편 시트로엥이 인수했었던 마세라티와는 2021년 PSA 그룹과 마세라티가 속해 있던 FCA 그룹이 합병해서 스텔란티스가 되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4] 다만 옆 나라 캐나다에서는 코너링 램프에 문제를 삼지 않아서 그대로 판매할 수 있었다.[5] 차량을 구매한 1970년대에 미테랑과 이곳저곳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한다.[6] 다만 페르낭 레이노는 1973년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SM을 탈취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탈취당한지 이틀 뒤인 동년 9월 28일에 클레르몽페랑에서 열리는 노동자 행사에 가기 위해 자신의 또 다른 차량인 흰색 롤스로이스 코니쉬 컨버터블을 과속하면서 몰다가 리옴에서 승용차와 트럭을 들이받은 뒤 묘지를 들이받았고, 병원에 실려가서 입원하던 도중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