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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22:42:18

오차노미즈여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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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茶の水女子大学
Ochanomizu University
오차노미즈여자대학

파일:오차노미즈여자대학 심볼.png

<colbgcolor=#852222> 대학 정보
<colcolor=#fff> 국가
[[일본|]][[틀:국기|]][[틀:국기|]]
분류 국립대학, 여자대학
대학 설립 1875년 도쿄여자사범학교 ([age(1875-01-01)]주년)
1949년 오차노미즈여자대학 ([age(1949-01-01)]주년)
주소 도쿄도 분쿄구 오오츠카 2초메
총장 무로후시 기미코 (室伏 公子)
재학생 <colbgcolor=#852222><colcolor=#fff> 학부 2,075명 (2020년 기준)
대학원 890명 (2020년 기준)
교직원 교원 271명 (2020년 기준)
직원 105명 (2020년 기준)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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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1. 개요2. 연혁3. 학부·학과4. 부속학교5. 일본 황실과의 인연
5.1. 히사히토 친왕5.2. 키코 비의 박사논문
6. 해외 대학과의 교류7. 기타8. 출신 인물
8.1. 부속학교 출신 인물
9. 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파일:오차노미즈여자대학 캠퍼스 정문.jpg
▲ 오차노미즈여자대학
▲ 오차노미즈여자대학 소개 영상

お茶の水女子大学 / Ochanomizu University

일본 도쿄도 분쿄구에 있는 국립대학이다. 약칭은 오차다이(お茶大), 오차죠(お茶女).

한국여자대학이 모두 사립학교인 것과 달리 일본에는 국공립 여대도 있는데, 동일본(간토)의 오차노미즈여자대학은 서일본(간사이)의 나라여자대학과 함께 일본에 단 2개교뿐인 국립여자대학이다.[1]

전신인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일본제국 최초의 여자고등사범학교로서 동일본의 여자중등교원, 그러니까 고등여학교와 여자사범학교의 교원을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이었다. 구제고등학교관립대학 진학이 막혀있었던 당시 여학생들에게, 관립 여자고등사범학교는 최고 교육기관으로 기능했다.[2] 그리고 2차대전 패전 후인 1949년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를 모체로 하여 유이한 국립여대인 오차노미즈여자대학과 나라여자대학이 설립되었다.

이름과는 달리 오차노미즈[3]에 있지 않고 분쿄구 오오츠카에 있다. 본래 전신인 도쿄여자사범학교가 오차노미즈에 세워졌고[4] 1932-1936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는데, 1949년에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를 대학으로 개편하면서 원래 도쿄여고사의 이전 캠퍼스가 있던 지역인 오차노미즈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2. 연혁

파일:女子高等師範学校.jpg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 오차노미즈 교정(1893년경)
파일:m_pc0006-0002.jpg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 오오츠카 교정
파일:東京女子高等師範学校正門.jpg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 정문(1936년)
파일:1920px-Ochanomizu_University_Main_Gate_01.jpeg.jpg
오차노미즈여자대학 정문

3. 학부·학과

파일:ochanomizu-mini.png

4. 부속학교

부속보육원[8], 부속유치원, 부속초등학교, 부속중학교, 부속여자고등학교를 두고 있다. 중학교까지는 남녀공학이지만, 고등학교는 여학교이다.

보육원은 본래 어린 자녀를 둔 교직원, 학생, 연구원 등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2005년에 유아의 발달과정을 연구하기 위한 시설로서 대학 부속이 되었다.

1947년,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부속고등여학교가 오늘날과 같은 3년제 중학교와 3년제 고등학교로 개편되었다. 중학교는 남녀공학이 되었지만, 고등학교는 여전히 여학교 체제를 유지했다.

5. 일본 황실과의 인연

5.1. 히사히토 친왕

2006년 9월 6일, 일본 황실에서는 히사히토 친왕([age(2006-09-06)]세)이 태어났다. 아키히토 덴노의 차남 후미히토 친왕의 늦둥이 장남(셋째)인 이 아이는, 41년 만에 태어난 남자 황손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1965년 11월 30일 후미히토 친왕([age(1965-11-30)]세)이 태어난 이후로 황실에는 공주만 줄줄이 9명이 태어났고[9], 나루히토 황태자도 무남독녀 아이코 공주만 두고 있어, 이대로라면 장래 천황직을 계승할 수 있는 남자아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히사히토 친왕은 암묵적으로 황태손 대우를 받으며 귀한 대접을 받게 되었고, 그의 아버지 후미히토 친왕과 어머니 키코 비도 황태자 부부를 제치고 주목받으며 인기가 높아졌다.[10]

2010년 4월, 히사히토 친왕은 전통적 황족 학교인 가쿠슈인유치원이 아닌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유치원에 입학하여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다양한 또래 친구들과 폭넓은 교류를 하도록 하고 싶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마침 히사히토 친왕의 어머니 키코 비가 오차노미즈여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기도 했고. 같은 시기 히사히토 친왕의 큰누나인 마코 공주도 가쿠슈인대학이나 가쿠슈인여대가 아닌 국제기독교대학으로 진학하여, 남동생과 함께 화제가 되기도 했다.[11] 3년 후인 2013년, 히사히토 친왕은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유치원을 졸업하고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초등학교내부진학했다. 이전에도 가쿠슈인 유치원에 다니지 않은 공주들은 몇몇 있었지만, 가쿠슈인 초등과가 아닌 다른 초등학교에 입학한 황족은 히사히토 친왕이 처음이다.

그런데 (위에도 서술했듯이) 오차노미즈여대 부속학교는 중학교까지만 남녀공학이고 고등학교는 여고라서, 히사히토 친왕이 다닐 수 없다. 이에 '부속여고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하자'는 충격적인 방안도 논의되었으나 동문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고, 부속남고를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되었으나, 무산되었다. 일단 총장 무로후시 키미코(室伏きみ子)부터가 오차노미즈여대 부속학교들을 쭉 거쳐 오차노미즈여대 이학부를 졸업한 사람이라, 부속여고의 남녀공학 전환을 반길 리 없었다. 애초에 황족 하나 때문에 설립 150년에 가까운 전통을 지닌 여학교를 공학으로 전환한다는 발상 자체가, 특권의식이 내재된 상당히 독재적이고 오만한 발상이다.[12] 일본은 이제 더 이상 황족이 신으로 숭배를 받으며 국민들에게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는 시대도 아닌데다가 현재 황실의 인기도 낮고, 오차노미즈여대 동문들도 일본 사회에서 한 영향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국민의 세금으로 생활하는 일본 황족이 왈가왈부할 입장이 아니다.

2017년, 새로운 방안이 나왔다. 오차노미즈여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국립 쓰쿠바대학과 협정을 맺어,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초등학교 학생 몇 명을 선발, 무시험으로 쓰쿠바대학 부속중학교로 진학시킨다는 것이다. 히사히토 친왕 및 그와 친한 아이들 몇을 뽑아, 함께 쓰쿠바대학 부속중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하려는 듯하다.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학교와 쓰쿠바대학 부속학교 모두 합격하기 힘든학교이기 때문에, 노골적인 특혜로 보이는 이러한 조치에 대해 일본 국민들의 시선은 당연히 좋지 못하다.

그러나 히사히토 친왕을 쓰쿠바대학 부속중학교에 무시험으로 진학시키려던 계획은 취소되고, 2019년 2월 히사히토 친왕의 중학교 진학 계획이 확정 발표되었는데, 2019년 4월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중학교에 진학할 예정이라고 한다. 쓰쿠바대학 부속중학교 무시험 진학 계획이 취소된 이유는, 히사히토 친왕의 큰누나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 등으로 인해 차남 일가에 대한 시선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가족들뿐 아니라 히사히토 친왕 본인에 대해서도, 학교에 잘 등교하지 않는다는 등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다. 그래서 일단 중학교는 내부진학으로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중학교에 보내고, 고등학교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려는 것.

2019년 4월, 히사히토 친왕은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중학교에 입학했고, 1학년 국화반에 편성되었다. 입학식에서 히사히토 친왕은 114명의 신입생을 대표하여 선서하며 (좋지 않은 의미로) 화제가 되었다. 또한 4월 26일에는 히사히토 친왕을 노린 흉기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학년 국화반 교실에 있는 히사히토 친왕의 책상에, 누군가 흉기를 놓아둔 것. 범인은 곧 잡혔지만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역시 황족은 가쿠슈인에서 공부하는 것이 맞다", "가쿠슈인 중등과(남중)로 전학시켜라", "키코 비의 주작이 아니냐"는 등등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히사히토/중학교 참조.)

2022년 2월, 히사히토 친왕이 쓰쿠바대학 부속고등학교에 합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히사히토 친왕은 3월에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중학교를 졸업하고, 4월에 쓰쿠바대학 부속고등학교로 진학했다.

5.2. 키코 비의 박사논문

키코 비는 오차노미즈여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그녀의 문학박사 학위 논문은 국회도서관에도 소장되어 있지 않고, 오차노미즈여대에서도 비공개(열람 금지)라서, 여기에 대해서도 의혹의 목소리가 있다고 한다.

6. 해외 대학과의 교류

한국, 중국, 태국, 베트남, 대만, 미국, 영국, 캐나다, 러시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폴란드, 스웨덴, 핀란드, 루마니아,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호주, 뉴질랜드, 이집트의 여러 대학들과 교류하고 있다.

한국의 대학 중에는 숙명여자대학교(2000.2.14), 이화여자대학교(2000.2.28), 동덕여자대학교(2005.3.30), 한국예술종합학교(2011.1.17), 경북대학교(2011.6.22), 부산대학교(2012.3.21), 계명대학교(2013.7.9), 건국대학교(2014.3.21), 고려대학교(2015.2.24)와 교류하고 있다.[13]

7. 기타

8. 출신 인물

문화콘텐츠 참조

교사가 되려는 여자 일본유학생들은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와 나라여자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하였다. 1875년에 도쿄여자사범학교로 출발한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는 명문 사범학교로서 여자일본유학생들이 초기에 몰린 곳이다. 1890년에 여자고등사범학교로 승격되고, 1908년에 나라여자고등사범학교가 설립됨으로써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1922년에 가사과를 졸업한 손정규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출신으로서 모교로 부임하여 20년을 근속했다.

역시 가사과를 졸업한 송금선과 임숙재 또한 유학에서 돌아온 뒤 모교인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사생활을 하였다. 임숙재는 "조선의 가르치는 방법은 체계적으로 분해하여 연구하는 경향이 없다"고 비판하면서, 유학 경험자로서의 자신을 차별화시키기도 하였다. 이과를 졸업한 성의경과 함께 이들은 숙명 출신 여자고등사범학교 졸업생으로서 유명했는데, 1910-20년대 숙명여고보는 장차 숙명여자전문학교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학생들을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에 유학을 보냈다. 이들 졸업생들은 '여성교육계의 지도자'라는 사명을 가지고 '조선의 여성해방을 선도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었다.

8.1. 부속학교 출신 인물

9. 매체에서


[1] 여자고등사범학교는 1945년 4월 설립된 히로시마여자고등사범학교까지 모두 3곳이었으나, 히로시마여자고등사범학교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개교하여 존속 기간이 4개월에 불과했던 데다가 1945년 8월 히로시마 원폭으로 사실상 전멸한 뒤 히로시마대학 교육학부 후쿠야마분교로 흡수되었다.[2] 마찬가지로 고등교육기관구제전문학교에 속하는 여자전문학교보다 높은 대접을 받았다.[3] 분쿄구 유시마와 지요다구 칸다 일대를 가리키는 관습적 지명[4] 구 쇼헤이자카 학문소, 현재의 도쿄의과치과대학 유시마 캠퍼스 자리.[5] 당시 메이지 덴노의 정실인 쇼켄 황후도 개교식에 참석하고 종종 학교를 방문하는 등, 이제 막 시작되는 여성교육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6] 일본 최초로 치과의사를 양성하는 관립 고등교육기관으로 개교한 뒤, 1944년 의학과가 추가 설치되어 도쿄의학치학전문학교가 되었다가, 패전 후 현재의 도쿄의과치과대학이 되었다.[7] 2024년 신설 예정[8] 일본에서는 어린이집 정도에 해당하는 보육시설을 보육원이라고 부른다. 한자로는 保育園이라고 쓴다. (한국보육원은 保育院이라고 쓴다.)[9] 1969년 4월 18일 구로다 사야코([age(1969-04-18)]세), 1981년 12월 20일 미카사노미야 아키코 공주([age(1981-12-20)]세), 1983년 10월 25일 미카사노미야 요코 공주([age(1983-10-25)]세), 1986년 3월 8일 다카마도노미야 쓰구코 공주([age(1986-03-08)]세), 1988년 7월 22일 센게 노리코([age(1988-07-22)]세), 1990년 9월 15일 모리야 아야코([age(1990-09-15)]세), 1991년 10월 23일 코무로 마코([age(1991-10-23)]세), 1994년 12월 29일 아키시노노미야 카코 공주([age(1994-12-29)]세), 2001년 12월 1일 아이코 공주([age(2001-12-01)]세).[10] 반면 아키히토 덴노의 큰며느리인 마사코 황태자비는 아들을 낳지 못한데다, 오랫동안 일본 황실과 여러 문제로 갈등한 끝에 심신의 병(적응장애)을 이유로 칩거하여, 일본인들로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11] 작은누나 카코 공주는 2013년 가쿠슈인대학에 진학했다가, 중퇴하고 2015년 국제기독교대학에 새로 입학했다.[12] 이런 사례는 독재자가 통치하는 공산주의 국가들 중에서도 거의 없다.[13] () 안은 교류협정을 체결한 날짜.[14] 1922년에 조선여자청년회를 조직하는 등 대중운동을 펼치기도 했으며, 조선 여자 최초의 시학관으로 이름을 높이기도 하였다.[15]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뒤, 식모로 일하며 숙명여학교 야간부에 다녔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임숙재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숙명여학교에서는 임숙재를 일본으로 유학까지 보내 주었다. 임숙재는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 졸업 후 귀국하여 숙명여자전문학교 교수가 되었고, 숙명여전이 숙명여자대학을 거쳐 종합대학숙명여자대학교로 승격될 때 초대 학장/총장을 맡았다.[16] 3녀 멘코(めん子)는 아직 유치원에도 다니지 못할 정도로 어리다.[17] 결혼 전 성씨는 호리우치(堀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