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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저자 | 미상 요나[3] | |
기록 연대 | B.C. 5세기 말 ~ 4세기 초(성서비평학적 견해) B.C. 4 ~ 3세기경(소수설)[4] B.C. 760년경(전통적 견해) | |
분량 | 4장 | |
주요 인물 | 요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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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어서 저 큰 도시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외쳐라." 이 말씀을 받고도 요나는 야훼의 눈앞을 벗어나 다르싯으로 도망가려고 길을 떠나 요빠로 내려갔다.
요나 1장 2~3절 (공동번역 성서)
요나 1장 2~3절 (공동번역 성서)
하맛 어귀로부터 아라바 해에 이르는 이스라엘 영토를 되찾은 것은 그였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당신의 종인 예언자 요나를 시켜 하신 말씀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요나는 갓헤벨 출신으로서 아미때라는 사람의 아들이었다.
열왕기 하권 14장 25절 (공동번역 성서)
열왕기 하권 14장 25절 (공동번역 성서)
성경의 39번째/32번째 권이자 해당 책의 저자.
아미때(아밋대/아미타이)의 아들로, 북이스라엘 예로보암 2세 때 활동하였다는 예언자. 또한 그 이름을 제목으로 한 구약성경 중의 한 권이다. 다만 이 예언자라는 사람이 야훼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고 끝까지 객기를 부리는 것이 이 책의 키포인트. 요나는 쿠란에도 '유누스'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이슬람에서도 알라의 예언자로 인정하고 있다.
그의 에피소드인 요나서는 성경의 다른 부분과는 달리 굉장히 웃기다. 그래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경학교 교재의 단골 레퍼토리로 사용되기도 한다. 전체 4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길이와 높은 접근성도 인기에 한몫한다. 구약의 소예언서들이 분량은 적지만 시대상이 암울하고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경고의 내용으로 가득한데, 요나의 이야기는 주제도 이해하기 쉽고 분위기도 덜 무겁다 보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입문자도 읽기 편하다.
2. 내용
개신교 용어로 적힌 요약에 대한 내용은 히브리 성경/요약 문서
의 요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2.1. 1장
북왕국의 예로보암 2세 때 활동하던 예언자 요나는, 어느 날 야훼로부터 니네베[5]로 가서 야훼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6]을 받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으니, 니네베는 조국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아시리아의 수도[7]라는 점.[8]
애국심이 강했던 요나는 그런 잔혹한 놈들 그냥 멸해 버리시지 뭐 하러 이런 걸 시키시냐는 생각으로 야훼의 명령에 불만을 품고 니네베와는 정반대 방향인 타르시스[9]로 배를 타고 도망치려 한다.[10] 그리고는 그 배 안의 가장 구석진 곳에 숨고는 '여기 숨으면 신께서도 날 못 찾으시겠지' 하고 안심하고 있었다.
물론 기독교 세계관에서 야훼를 따돌리고 달아날 방법 따위는 세상에 없었으니 야훼는 폭풍을 일으켜 요나가 탄 배가 가라앉을 위기를 만들고, 이에 배에 탄 사람들은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며 선실에서 자고 있던 요나에게도 어서 당신 신에게 기도하라고 갈군다. 그 후 누구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따져보자면서 제비뽑기를 하는데[11] 결국 요나가 걸리고 만다.
자기 때문에 엉뚱한 사람들까지 물귀신으로 만들 수 없다는 생각에선지, 죽었으면 죽었지 적국 아시리아 사람들에게 야훼의 말씀을 전하고 구원의 기회를 줄 수 없다는 생각에선지 결국 요나는 "제가 야훼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서 야훼가 재앙을 내린 것입니다. 저를 바다에 던지면 폭풍이 멈출 것입니다."라고 말한다.[12][13]
사람들은 어떻게든 요나를 던지지 않고 폭풍에서 벗어나 보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14] 결국 "무고한 사람을 죽인 피가 우리들에게 오지 말게 해 주십시오!!"라고 빌면서[15] 요나를 바다로 던진다. 이후 거짓말같이 폭풍우가 멎자 뱃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당장 선상 제사를 드리고 야훼를 믿게 된다.
2.2. 2장
2 요나가 그 물고기 뱃속에서 하느님 야훼께 기도를 올리니,
3 요나가 입을 열었다. "그 숨막히는 데서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대답해 주셨습니다. 죽음의 뱃속에서 살려달라고 외쳤더니, 그 호소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4 하느님께서 이 몸을 바닷속 깊이 던지셨습니다. 물결은 이 몸을 휩쌌습니다. 밀려오다 부서지는 하느님의 물결이 제 위에서 넘실거렸습니다.
5 하느님 눈앞에서 쫓겨난 몸, 하느님 계시는 성전 쪽으로는 두 번 다시 눈도 못 돌릴 줄 알았습니다.
6 물은 목까지 차 올랐고 깊은 바다는 이 몸을 휩쌌습니다. 머리는 갈대에 휘감겨
7 저 땅 밑 멧부리로 빠져 드는데, 땅은 빗장들을 영영 내려버렸습니다. 야훼, 나의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그 구렁에서 이 몸 살려내셨습니다.
8 정신이 가물가물하는데도 야훼님을 잊지 않고 빌었더니 그 기도가 하느님 계시는 거룩한 궁전에, 하느님 귀에 다다랐습니다.
9 헛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하느님을 저버리지만,
10 저만은 이 고마움을 아뢰며, 서원한 제물을 드리렵니다. 저를 구해 주실 이 야훼밖에 없습니다."[16]
11 야훼께서는 그 물고기에게 명령하여 요나를 뱉어내게 하셨다.
요나 2:2~11 (공동번역 성서)
한편 야훼가 미리 준비한 큰 물고기가 나타나 바다에 던져진 요나를 집어삼키게 된다. 요나는 3일 동안[17] 물고기 배 속에 있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그러고서 이 물고기가 야훼의 명령을 받아 요나를 뱉어낸다.[18]3 요나가 입을 열었다. "그 숨막히는 데서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대답해 주셨습니다. 죽음의 뱃속에서 살려달라고 외쳤더니, 그 호소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4 하느님께서 이 몸을 바닷속 깊이 던지셨습니다. 물결은 이 몸을 휩쌌습니다. 밀려오다 부서지는 하느님의 물결이 제 위에서 넘실거렸습니다.
5 하느님 눈앞에서 쫓겨난 몸, 하느님 계시는 성전 쪽으로는 두 번 다시 눈도 못 돌릴 줄 알았습니다.
6 물은 목까지 차 올랐고 깊은 바다는 이 몸을 휩쌌습니다. 머리는 갈대에 휘감겨
7 저 땅 밑 멧부리로 빠져 드는데, 땅은 빗장들을 영영 내려버렸습니다. 야훼, 나의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그 구렁에서 이 몸 살려내셨습니다.
8 정신이 가물가물하는데도 야훼님을 잊지 않고 빌었더니 그 기도가 하느님 계시는 거룩한 궁전에, 하느님 귀에 다다랐습니다.
9 헛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하느님을 저버리지만,
10 저만은 이 고마움을 아뢰며, 서원한 제물을 드리렵니다. 저를 구해 주실 이 야훼밖에 없습니다."[16]
11 야훼께서는 그 물고기에게 명령하여 요나를 뱉어내게 하셨다.
요나 2:2~11 (공동번역 성서)
물고기의 정체에 대해 개신교 계열인 국민일보의 기사에서는 이 물고기가 백상아리라고 가정한 바 있다. 백상아리의 서식지가 요나의 지리적 배경과 비교적 일치하고, 백상아리가 사람을 삼킬 정도로 크며, 거북이와 같이 소화가 잘 안 되는 먹이를 삼켰을 때는 위에 그대로 저장하고 있다가 뱉어내는 습성이 있다는 이유이다.
반면 가톨릭에서는 바닷속 동물이 요나를 삼킬 수 있을 만큼 커야 했기에 '큰 물고기'라는 표현을 썼을 뿐 어떤 특정한 동물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슬람에서는 물고기를 고래로 추측하는데 터키 등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와 같은 이유로 고래를 먹지 않는다. 실제로 지중해에는 대형 고래류도 서식한다.# 만약 요나서가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이런 고래를 보고 모티브를 얻었을 수 있다. 물론 삼켜지는 동안 고래의 목구멍이 작살났겠지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고래에 삼켜지고 30초 뒤에 고래가 다시 뱉어서 살아난 남자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1조분의 1이라고 한다.# |
2.3. 3장
이렇게 사람들이 못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시었다.
요나 3:10 (공동번역성서)
요나 3:10 (공동번역성서)
결국 요나는 야훼의 지시대로 니네베로 간다. 요나는 "죄를 뉘우치지 않으면 40일 뒤에 니네베가 잿더미 됨"이라고 선언하는데, 원래는 도시 전체를 도는 데만 3일이 소요될 정도로 큰 규모였다고 한다. 하지만 요나는 단 하루 만에 일정을 끝냈다고 하니 별 성의 없이 편한 길로만 대충 돌아다니면서 외친 셈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된다. [19] 그런데 놀랍게도 모든 니네베 사람이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며 야훼에게[20][21][22]눈물로 용서를 간청했고 왕은 한술 더 떠 온 국민은 물론 가축에게까지 굵은 베옷을 입히고 금식 기도를 하게 했다.[23][24] 그렇게 니네베는 재앙을 피하게 된다.
2.4. 4장
사실 요나가 보고 싶었던 건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하는 게 아니라, 먼 옛날 소돔과 고모라처럼 니네베 전체가 불바다가 되는 스펙터클한 광경이었다. 도시 전체가 회개하는 모습을 본 야훼가 화를 거두면서 멸망을 피하게 되었고, 이에 실망 & 분노한 요나는 "아니 이러실 줄 알고 제가 타르시스로 튀려 한 건데 야훼가 관대해서 결국 재앙을 거두시네. 내가 이거 보려고 살았나 자괴감이 드니 그냥 죽여주시죠."이라면서 니네베가 불에 타나 어쩌나를 지켜본다고 성 밖에 움막을 짓는다.이때 야훼가 요나를 위해서 움막 옆에 큰 박넝쿨을 자라게 해 움막을 덮어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나 했지만 밤새 벌레를 보내 박넝쿨을 모두 갉아먹게 해 버렸고, 뜨거운 열풍까지 요나 쪽으로 불게 했다. 이에 약이 오른 요나는 "왜 이 무더위에 개고생하게 만드는 겁니까? 차라리 죽여주세요." 라고 짜증을 낸다. 그리고 여기에 야훼가 이렇게 말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너는 이 아주까리가 자라는 데 아무 한 일도 없으면서 그것이 하루 사이에 자랐다가 밤 사이에 죽었다고 해서 그토록 아까워하느냐? 이 니네베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12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25]
요나 4장 10~11절공동번역성서
요나 4장 10~11절공동번역성서
요나서의 특징인 열린 결말로 요나의 반응[26]이나 이후 행적에 대한 언급이 없이 마무리한 이유에 대해선, 기록자인 요나가 성경을 읽는 후손들에게도 이 질문을 던지고 싶어서가 아니냐는 신학자들의 해석이 있다.
3. 해석
요나는 잔뜩 화가 나서 퉁명스럽게 야훼께 기도했다. "야훼님, 제가 집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다르싯으로 도망치려 했던 것입니다. 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야훼께서 애처롭고 불쌍한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시고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으시어, 악을 보고 벌하려 하시다가도 금방 뉘우치시는 분인 줄 어찌 몰랐겠습니까? 그러니 야훼님, 당장 이 목숨을 거두어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요나 4장 1~3절(공동번역성서)
요나 4장 1~3절(공동번역성서)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주인공인 요나가 순수 유대인 혈통의 예언자면서도 야훼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말을 안 들은 것뿐이지, 야훼를 믿었다는 점. 그래서 더더욱 니네베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요나의 심정은 '나는 니네베가 불바다가 되는 것을 보고 싶지만, 야훼는 그럴 분이 아니시고 그들을 회개시키실 것을 믿기 때문에, 차라리 도망가 버리겠다!'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일이 벌어지자 '이제 야훼의 자비로움을 알았으니 차라리 날 죽여주십시오'라고 한 걸 보면, 하느님의 능력과 성품을 오히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태도를 보인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이토록 주와 소통하며 그 성품을 아는 면과 바다가 흉해진 것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징계인 야훼의 능력인 것을 인지하고 희생하는 부분은 선지자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아무리 그래도 조국과 민족을 괴롭힌 원수 국가가 회개하고 용서받는 꼴은 못 보겠다, 이놈들 심판받는 걸 봐야겠다 하는 인간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자신이 불순종해봐야 좋은 꼴은 못 볼 거라는 점이나 야훼의 권능을 이해하면서도 땡깡을 부리거나 도리어 제가 열이 받아서 죽어도 정당합니다 하고 화를 내고 따지는 등, 한편으론 그래도 자비로운 야훼신데 날 어떻게야 하겠어? 같은 심리도 은근히 보인다.
성경에 따르면 예로보암 2세는 예후왕의 증손자로 북이스라엘의 숙적 아람을 크게 쳐부숴 국가를 중흥시켰으나,[27] 호세아 선지자가 이 시기에 활동하며 경고한 것처럼 지배층도 백성들도 타락의 정점을 찍고 있던 시기이다. 어쩌면 요나는 자기 나라와 민족은 타락의 정점을 찍고 있는데 적대 세력인 아시리아가 회개한 게 아니꼬웠을지도 모른다.[28]
그리고 그와 대조적으로 요나와 함께 타르시스행 배를 탔던 외국인들이나 니네베 사람들이 더 야훼를 숭배하는 모습들과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아이러니. 특히 그 외국인들이 요나에게 "너는 왜 네가 믿는 신한테 기도하지 않느냐?"라고 던진 질문은, 비단 유대교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를 믿는 모든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한 번 이상 꼭 겪는 패러독스 중의 하나다.
열린 결말 역시 이 책의 특징. 맨 마지막의 저 한마디만 던져 놓고 아무런 마무리도 없이 그냥 모든 이야기가 끝나 버리는 결말인데, 이런 결말은 성경 전체에서 서사 구조를 지닌 책 중에서는 이 책이 유일하다.[29] 즉, 책의 주인공에게 뭔가 명예 회복을 시켜 주거나 하는 게 전혀 없다는 점이다.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내용은 역사적,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문학적인 스토리에 가깝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학자들은 외국인이나 다른 민족들에게 배타적으로 향하던 후기 유대교의 흐름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교훈 설화'의 형태로 요나를 썼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체로 당시 에즈라서로 대표되는 흐름에 정면으로 반발하는 또 다른 흐름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애초에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가 갈라져 나온 이유 중의 하나로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성에 반발한 것도 있었다[30].
성서학계의 중론은 이 이야기를 픽션으로 보고 있다. 어휘나 문체나 신학적 특징으로 보아 요나 당대의 기록은 절대 아니며, 요나의 생애는 물론 아시리아에서 일어난 사건도 다른 문헌과 교차 검증되는 부분도 없기 때문. 저자는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요나서가 쓰여질 당시에는 한참 전에 멸망한 아시리아를 무대로 삼아 우화를 썼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성이 아닌 신학적으로 볼 때에, 요나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유대 민족의 신이었던 하느님이 다른 민족의 신이 될 수 있다는 암시를 던지기 때문이다.[31] 다른 신을 믿던 뱃사람들이[32] 폭풍우가 그치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여 개종하는 것, 아시리아인들이 회개하여 용서를 받은 장면은 다른 민족 역시 야훼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33]
4. 신약 성경에서의 취급
예수가 요나를 직접 언급한다. 대략 자신을 적대하는 세력인 서기관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기적 좀 보여주세요!!!" 하고 말하자 "요나의 기적밖에는 보여줄 기적이 없다"고 적절하게 무시한 것.[34]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어 무덤에 묻혔다가 3일 만에 부활하여 정말로 요나의 기적을 보여 준다. 그래서 요나서는 예수의 부활을 미리 맛보기로 보여 주는 책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주류이다.또 요한의 아들인 베드로에게 예수가 '시몬 바르요나야[35]'라는 언급을 한 구절[36]이 있는데 이 '바르요나'라는 것은 '요나의 아들'이란 의미이다(앞서 언급했듯이 베드로의 부친은 '요한'이다). 혹자는 이것을 두고 요나가 이후 회개했고 그 마음을 베드로가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알아챈 예수가 '시몬 바르요나야'라고 부른 것이라고 한다.
5. 기타
- 후속작으로 구약 성경의 나훔서가 있다. 나훔서의 이야기는 요나의 이야기와 완전히 반대되는데, 앗시리아의 멸망 과정을 다루고 있다. 니네베가 회개한 지 100여년 후 나훔 시대에 이르러 다시 앗시리아인 (니네베 성 사람들)이 흉악해지고 교만해지자, 결국 야훼가 나훔을 통해 니네베 심판을 선언한다.
파괴되기 이전 모술의 나비 유누스 모스크 |
-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가 2014년에 요나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곳을 폭파했다. 하긴, 메카의 카바 신전을 파괴하겠다고 하는 놈들인데 그깟 선지자 따위가 대수랴. 그리고 이들은 2015년 니네베성도 폭파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전세계에 뒤지게 얻어터져서 산산조각났다.
- 팔레스타인 헤브론 인근의 할훌에도 요나의 무덤으로 전승되는 나비 유니스 모스크가 있다.
- 한국에는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해수욕장에 요나 성당이 있다. 천주교 대전교구 관할 성당이다.
- 인간의 모태 귀소 본능에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요나 컴플렉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 고래, 혹은 어떤 생물에게 '잡아먹혔다가'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에게는 '현대판 요나'라는 별명이 붙기도 한다. 아예 묘비명으로 남겨진 사례도 있을 정도. #
- 모비 딕의 초반 항구 마을에서 매플 목사의 열정적인 설교의 주제로 이런저런 살이 붙어서 해설되는데 이후 소설의 전개와 같이 생각해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다.
- 범선 시대에는 배가 폭풍을 만나면 선원들 사이에서 "이 배에 요나가 타서 폭풍을 만난 거야!!"라고 하며 평소 밉상이거나 왕따를 당하던 선원에게 더욱 더 집단 괴롭힘을 가했던 악습이 있다. 영화 마스터 앤 커맨더에 잘 묘사되어 있다.
[1] 약칭은 요나스(Ionas).[2] 유누스(يُونُس / Yūnus) 또는 유니스(يُونِس / Yūnis)로 발음되며 둘눈(ذُو ٱلنُّوْن / Dhul-Nūn)으로도 표현한다.[3] 전통적 견해[4] 안소근(편역), 『길 진리 생명 해설 성경: 예언서 편』, 성바오로(2021), 695쪽[5] 개역개정과 공동번역 성서는 니느웨라는 이름으로 나온다.[6] 죄가 많아서 죽기 싫으면 빨리 회개해야 한다는 내용.[7] 아시리아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굉장히 잔혹한 나라였다. 저항한 지역은 주민들의 씨를 말려 해골탑을 쌓고, 항복한 지역도 군주와 귀족들은 짐승처럼 코에 구멍을 뚫고 쇠사슬로 엮어 끌고 가 처형하고, 평민들도 먼 곳으로 강제 이주를 시키고 이 과정에서 거추장스러운 아이들은 바위에 머리를 박아 죽였다고.[8] 그런데 이는 사실 오류다. 예로보암 2세는 기원전 751년에 죽었는데 아시리아가 니네베를 수도로 한 것은 기원전 705년부터로 당시 수도는 님루드였다. 그냥 요나서를 작성한 사람이 아시리아의 수도가 니네베인 것을 보고 예로보암 2세 시절에도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9] 가톨릭/개신교 요나서 주석서에서는 타르테소스, 즉 현대의 스페인 안달루시아지방으로 나와있다. 한마디로 (당시 지중해 세계관을 적용하면) 세계의 동쪽 끝으로 가라했더니 이 양반은 세계의 서쪽 끝으로 튀려 한 것이다(...)[10] 혹은 니네베 사람들이 자신에게 해코지를 할까 봐 두려워서였다는 해석도 있다. 허나 이후의 야훼에게 항의한 내용들을 보면, 애국심으로 인한 니네베에 대한 혐오감 쪽이 더 해석이 자연스러운 편이다. 아니면 양쪽 다였을지도 모른다.[11] 당시 시대만 해도 제비뽑기의 운은 신이 결정한다고 여겼다. 즉 제비뽑기를 통해 신이 누구 때문인지 말하는 것인지를 들으려 한 것.[12] 그 와중에 야훼를 육지와 바다의 창조주라 칭하는데, 방금 전까지 배타고 도망갈 생각이었음을 감안하면 아무리 봐도 개그다.[13] 게다가 이후 선원들의 반응을 보면 알겠지만 이때 요나의 행동은 숭고한 자기희생이라기보다는 멀쩡한 사람들을 살인자로 만들어서라도 신의 사명에서 벗어나려는 이기적인 행위였다.[14] 사실 일반적으로 뱃사람들이 미신에 극도로 민감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멘탈이 강한 사람들이었을 듯하다. 더군다나 제비뽑기 결과 이게 다 요나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는데도 저랬으니.[15] 즉 "우린 그저 이 상황을 면하기 위해 이 사람 말대로 하는 것 뿐이니 저희를 벌하지 말아주십시오"란 의미이다.[16] 개역개정 기준 “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Salvation is of the Lord(KJV) Salvation is from the Lord(NASB).[17] 예수 역시 사흘 만에 부활했다. 예수 역시 이 사건을 자신의 부활의 상징으로 비유하며 종종 언급했다.[18] 니네베의 어원은 물고기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니네베에 가기 싫다는 요나를 니네베로 보내버린 것(…). 어쩌면 앗시리아의 수도를 '니네베'라고 한 게 이를 노린 것일지도 모른다.[19] 이건 번역에 따라 다른데, 공동번역성서에는 돌면서 외쳤다고 하며, 가톨릭 번역에선 돌고 나서 외쳤다고 한다.[20] 사실 야훼라는 것은 성경의 해석이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야훼는 아시리아 민족이 믿는 신도 아니고..[21] 다만 구약에서 야훼의 심판이 나타난 곳은 야훼를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도덕적이지 못하고 악을 밥먹듯 행해서라는 말로 수식되는 것을 보면 굳이 야훼에게 회개하지 않더라도 죄를 자복하고 바뀌는 행실이 보이면 지난날의 과오는 눈감아주는 야훼의 모습을 알 수 있다.[22] 신약성경의 인물인 베드로는 "지난 시대는 야훼 하느님을 몰랐고, 하느님께서도 타 민족들이 자기 길을 가게끔 방임하셨거니와 이제는 다르다."라는 말로 설교를 하기도 한다.[23] 그 당시에 개기일식이 일어나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해석이 있다. BC 763년 6월 15일.[24] 사실 기상이변이나 천체의 변화를 ‘신의 분노’로 여겼던 것은 고대 사회에선 흔한 일이다.[25] 정리하면 '여기에는 내 백성들이 어린애만 12만 명이 넘게 살고 있다. 네가 직접 심지도 기르지도 않았으면서 한낱 박넝쿨을 그렇게 아끼다 내가 도로 거둔 데 불만인 건 옳고, 내가 사람 12만을 아껴주는 건 그른 일이란 말이냐?' 라는 말씀.[26] 아동을 주 대상으로 잡은 성경 만화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27] 북이스라엘은 오므리 왕조에서 예후 왕조로 왕조교체가 이루어지는 와중 국경 수비가 허술해진 바람에 땅을 크게 잃었으나 여로보암 2세는 이를 모두 회복하여 결과적으로 여로보암 1세 시절의 영역을 거의 되찾았다. 사실 이스라엘의 중흥은 이미 여로보암 2세의 아버지인 요아스 대부터 이루어지고 있긴 했다. 이 때에도 아람을 상대로 3번 이겨서 많은 영토를 되찾기도 했다.[28] 다만 호세아와 요나의 활동기가 꼭 겹친다는 보장은 없다.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 시기에서 시작해 20년간 활동했지만 그가 활동을 하기 시작한 년도는 여로보암 2세 재위 말엽이기 때문. 심지어 이 20년간 온갖 막장극이 벌어진다.[29] 역사 기록에 중점을 둔 책들이나 각종 법을 다루고 있는 책 등을 제외한 것.[30] 유대인들의 소위 선민사상과 ‘구원은 오직 유대인들에게만‘이란 신념 때문에 타민족(유대인들의 입장에선 이방인)에게 하느님의 가르침이 전달되는것을 좋지 않게 여겼다. 바울로도 예수의 복음을 거부하고 반대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그들이 거부한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겠다고 선언하자 유대인들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31] 물론 이는 요나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라는 반박도 있다. 탈출기를 보면 야훼가 스스로 가난한 자들의 신을 칭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부터 민족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으로 보는 것. 애초에 히브리인이라는 단어가 어원적으로 떠돌이를 뜻하지 딱히 특정 민족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또한 애초부터 이스라엘을 따로 선별한 이유가 이들이 하느님을 잘 믿고 따를 때 받게 될 축복으로 인해 열방의 다른 민족이 하느님을 보고 돌아올 수 있도록 다리가 되는 제사장 나라를 삼고자 함이었다. 즉 이방인들 역시 구원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뻗어가는 것이므로 이들이 축복의 근원지가 된다는 점에선 확실히 은총을 입은 민족이었지만, 여러번 기회를 주었음에도 거듭된 실패로 인해 열방에 야훼를 전하긴 커녕 자신들에 대한 징계로 온갖 열방에게 침략당하고 얻어터지고 능욕당하며 그 이름을 더럽히기 일쑤였고, 결국 그러한 특권을 상실한 것이라는 것.[32] '각자 자신들의 신을 향해 기도했다'라는 문구를 통해 뱃사람들은 각자 믿고 있던 신들이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뱃사람이 요나를 갈군 것도 어느 신이라도 좋으니 좀 살려달라 청해라는 뜻이었고. 어찌 보면 그런 태도였기 때문에 간단히 개종한 것일 수도 있다.[33] 의미심장하게도 아시리아인들은 굉장히 빠른 시기에 기독교화된 민족인데 중근동의 다른 민족들이 아랍에 동화되는 와중에도 기독교 신앙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유지해 현대까지 이어져오고 있다.[34] 광야에서 악마가 돌을 빵으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켜 보라고 요구할 때, 예수 그리스도는 이 요구를 거절했다. 즉 기적을 일으킬지 말지에 대해서는 기준이 있는 것.[35] 개역개정에서는 바요나 시몬[36] 마태복음 16장 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