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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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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E0529><colcolor=#fff> 울산왜성
[ruby(蔚, ruby=うる)][ruby(山, ruby=さん)][ruby(倭城, ruby=わじょう)] | Ulsan Japanese Fortress
파일:울산성 전투 병풍화.jpg
울산성 전투를 그린 일본의 병풍화
형태 왜성
면적 59,678m²
건설 1597년 (선조 30년)
가토 기요마사
폐성 1598년 (선조 31년)
위치 울산광역시 중구 학성공원3길 54

1. 개요2. 역사3. 위치 및 구조4. 교통5. 여담6. 외부 링크7.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울산광역시 중구 학성동에 위치한 정유재란 당시의 왜성.

2. 역사

파일:external/www.topicsinkoreanhistory.com/Screenshot_2014-02-18-20-01-02.png
정유재란 당시 있었던 대전투 울산성 전투가 있었던 울산성이 이곳이다. 조명연합군의 포위로 가토 기요마사와 일본군은 식량과 식수가 떨어져 종이를 끓여먹고 말의 혈액과 소변까지 마시면서 버틴 것으로 유명하다.[1]

구한말 김홍조 선생이 울산군에 기증할 목적으로 1913년 땅을 사들여 각종 나무와 꽃을 심고 가꾸었고 1928년 울산공원(蔚山公園)이라는 이름으로 정식으로 개원했다. 현재는 학성공원(鶴城公園)이다. 물론 지금의 울산대공원과는 관계없다.

보물 제441호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이 여기에 전시되어 있었으나, 2011년 울산박물관 개관 이후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3. 위치 및 구조

파일:external/www.ksilbo.co.kr/309802_89891_5645.jpg
현재의 모습
파일:external/pds18.egloos.com/a0105007_4d266c6858754.jpg
KBS에서 방영한 역사스페셜에서 나온 임진왜란 당시 울산왜성을 상상한 CG
파일:울산왜성 지도.jpg
파일:p1065579535176843_421_thum.jpg
울산왜성의 지형[2]

1597년 정유재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 축성하였다. 지금은 약간 떨어져 있지만 원래는 태화강물이 바로 성 옆까지 들어차 배로 보급이 가능했기에 일본 본토와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지금 남아있는 부분 말고도 흙과 목책, 해자로 이중삼중의 방어를 폈지만 이미 도시화로 진작에 사라졌다. 일본군이 물러난 뒤에도 조선 수군이 한동안 썼다. 원래 대한민국의 사적 제9호였지만 당시 우리 문화재도 아닌 왜놈들이 남긴 왜성 따위를 왜 문화재로 보존하냐는 여론이 높았고, 결국 1997년 국가사적에서는 해지시키고 울산시 지방문화재자료로 재지정(사실상 강등) 되었다.

이전까지는 서생포왜성일본군 주둔지 거점으로서는 최동단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북동쪽으로 약 35km 정도 떨어진 울산에 성을 쌓아 일본군 최전방으로써 기능했다.

도시 한가운데에 있어 같은 울산에 있는 서생포왜성에 비하면 보존상태는 조금 떨어지지만 공원으로 잘 조성했으며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 일본식 누각터 등 일본식 성의 원형은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단 흔히 일본 성의 상징처럼 생각하는 천수각은 원래 없었다.

한편 외곽부의 바깥 3군데에는 데지로(出城)을 두었는데, 동쪽 데지로(반구정 보루)는 동천과 약사천(藥泗川)이 만나는 해발 20m의 작은 구릉 위[3]에, 북쪽 데지로(성황당 보루)는 학성산(현재의 충의사가 위치한 산)에, 서쪽 데지로(태화강 보루)는 태화루 옛터(현재의 태화루)에 위치했다. 데지로는 본성과는 다르게 석축을 쌓지 않고 목책으로 구성한 간략한 형식을 취하였다.

4. 교통


학남 정류장이나 학성공원앞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5. 여담

蔚 山 鶴 城(一名島山城)史蹟 第 9號ULSAN HAK SUNG (Crane Castle)
…or DO SAN CASTLE (Historic Spot No.9)
이 성은 선조30년(1597)정유재란 때 왜장 가또기요마사가 별성
으로 쌓은 성곽이다  동년12월 23일부터 다음해1월4일까지
아군과 명나라 원군의 총공격을 받아 성밖에서 싸우던
왜군이 패하여 성내에 들어갔으나 식량이 없어 소변을
마시고 말을 잡아먹으면서 성을 지키다가 원군이 와서
간신히 함락함을 면하였다. 왜군은 다시 성을 삼루로
개축하고 수비를 엄하게 하고 있었으나 1598년 8월에 다시
아군 및 명원군의 공격을 받아 백여일을 겨루다가 왜군은
밤을 타서 성을 불태우고 동남쪽 성문 밑에 있는 선입지에서
배를 타고 후퇴하여 갔다
THIS CASTLE WAS BUILT in the 30th Year of King Sun-Jyo (Yi
Dynasty-1597 A.D.) by Japanese General KATO KIYOMASA,
as a separate castle during the Jeong-Yew War.
From Dec. 23rd 1597 to Jan. 4th 1598, Korean
and Chinese troops attacked the outside
of the castle. The Japanese resisted until
auxiliares arrived. They reconstructed
the walls and existed on horse meat and their
own urine because of the scarcity of food.
The Korean and chinese joint forces attacked
again but after 100 days of fighting, the Japanese
fled at night to south-east after burning
the castle and escaped by boat.

6. 외부 링크

7.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

울산광역시 학성동에 있는 이 성은 신라의 계변성이라 불리던 성을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왜장 가또기요마사가 새로 쌓은 왜성으로, 우리측에서는 섬처럼 생긴 형상이라 하여 도산성이라 불렀다.

선조 30년(1597) 12월 23일부터 이듬해 1월 4일까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왜군은 우리군과 명나라 연합군에 밀려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식량이 없어 소변을 마시고 말을 잡아먹으면서도 성을 지킨 왜군은 구원병이 오자 성벽을 3중으로 쌓아 수비를 강화하였다. 하지만 이듬해(1598) 2차 전투에서 패한 왜군은 밤에 성을 불태우고 후퇴하였다.

이 성은 산정상을 중심으로 본성을 두고, 북쪽과 서북쪽에 2∼3겹으로 성벽을 쌓았는데, 성벽의 길이는 1.300m이고 높이는 10∼15m이다. 여기에 망을 보기 위해 높이 지은 망루 12개를 만들었으며, 남쪽을 제외한 3면에 흙으로 제방을 쌓고 다시 그 위에 나무 울타리를 설치하였다. 남쪽은 바다를 접하고 있어 배가 성 아래까지 들어와 정박할 수 있었다.

8. 관련 문서



[1] 이것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가토는 일본에 돌아가서 자기 성인 구마모토 성을 개조해, 다다미를 비상식량으로 사용 가능한 토란 줄기로 짜고 성벽은 조롱박으로 도배를 하고 우물을 120개나 팠다.[2] 밑에 있는 사진은 학성공원 내에 있는 울산왜성의 지형을 재현한 모습이다.[3] 現 반구동 한라그랜드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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