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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08:28:10

원순(북위)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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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제기(帝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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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서기(序記)」 2권 「태조기(太祖紀)」 3권 「태종기(太宗紀)」
탁발부 · 대나라 탁발규 탁발사
4권 「세조·공종기(世祖恭宗紀)」 5권 「고종기(高宗紀)」 6권 「현조기(顯祖紀)」
탁발도 · 탁발황 탁발준(浚) 탁발홍
7권 「고조기(高祖紀)」 8권 「세종기(世宗紀)」 9권 「숙종기(肅宗紀)」
원굉 원각 원후
10권 「효장제기(孝莊帝紀)」 11권 「폐출삼제기(廢出三帝紀)」 12권 「효정제기(孝靜帝紀)」
원자유 원공 · 원랑 · 원수 원선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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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열전(列傳) ]
13권 「황후전(皇后傳)」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도무선목황후 · 명원소애황후 · 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경목공황후 · 문성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풍폐후 · 효문유황후 · 효문소황후 · 선무순황후 · 선무황후 · 선무영황후
효명황후 · 효정황후
14권 「신원·평문제제자손전(神元平文諸帝子孫傳)」
탁발흘라 ,탁발제,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진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15권 「소성자손전(昭成子孫傳)」 16권 「도무7왕전(道武七王傳)」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虔) · 탁발순 · 탁발의열
탁발굴돌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17권 「명원6왕전(明元六王傳)」 18권 「태무5왕전(太武五王傳)」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9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20권 「문성5왕전(文成五王傳)」 21권 「헌문6왕전(獻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 · 탁발간(簡) · 탁발약 · 탁발맹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22권 「효문5왕전(孝文五王傳)」 23권 「위조등전(衛操等傳)」 24권 「연봉등전(燕鳳等傳)」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위조 · 막함 · 유고인 연봉 · 허겸 · 장곤 · 최현백 · 등연
25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26권 「장손비등전(長孫肥等傳)」 27권 「목숭전(穆崇傳)」
장손숭 · 장손도생 장손비 · 울고진 목숭
28권 「화발등전(和跋等傳)」 29권 「해근등전(奚斤等傳)」
화발 · 해목 · 막제 · 유업연 · 하적간 · 이율 · 유결 · 고필 · 장려 해근 · 숙손건
30권 「왕건등전(王建等傳)」
왕건 · 안동 · 누복련 · 구퇴 · 아청 · 유니 · 해권 · 차이락 · 숙석 · 내대천 · 주기 · 두대전 · 주관 · 염대비 · 울발 · 육진 · 여락발
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32권 「고호등전(高湖等傳)」
우율제 고호 · 최영 · 봉의
33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왕헌 ·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설제
34권 「왕낙아등전(王洛兒等傳)」 35권 「최호전(崔浩傳)」 36권 「이순전(李順傳)」
왕낙아 · 차노두 · 노노원 · 진건 · 만안국 최호 이순
37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38권 「조옹등전(刁雍等傳)」 39권 「이보전(李寶傳)」
사마휴지 · 사마초지 · 사마경지 · 사마숙번
사마천조
조옹(刁雍) · 왕혜룡 · 한연지 · 원식 이보
40권 「육사전(陸俟傳)」 41권 「원하전(源賀傳)」 42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육사 원하 설변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43권 「엄릉등전(嚴棱等傳)」 44권 「나결등전(羅結等傳)」
엄릉 · 모수지 · 당화 · 유휴빈 · 방법수 나결 · 이발 · 을괴 · 화기노 · 순퇴 · 설야저 · 우문복 · 비우 · 맹위
45권 「위랑등전(韋閬等傳)」 46권 「두근등전(竇瑾等傳)」 47권 「노현전(盧玄傳)」
위랑 · 두전 · 배준 · 신소선 · 유숭 두근 · 허언 · 이흔 노현
48권 「고윤전(高允傳)」 49권 「이령등전(李靈等傳)」 50권 「울원등전(尉元等傳)」
고윤 이령 · 최감 울원 · 모용백요
51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52권 「조일등전(趙逸等傳)」
조일 · 호방회 · 호수 · 송요 · 장담 · 종흠 · 단승근 · 감인 · 유병 · 조유 · 색창 · 음중달
53권 「이효백등전(李孝伯等傳)」 5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55권 「유명근등전(游明根等傳)」
이효백 · 이형 유아 · 고려 유명근 · 유방
56권 「정희등전(鄭羲等傳)」 57권 「고우등전(高祐等傳)」 58권 「양파전(楊播傳)」
정희 · 최변 고우 · 최정 양파
59권 「유창등전(劉昶等傳)」 6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61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한기린 · 정준 설안도 · 필중경 · 심문수 · 장당 · 전익종 · 맹표
62권 「이표등전(李彪等傳)」 63권 「왕숙등전(王肅等傳)」 64권 「곽조등전(郭祚等傳)」
이표 · 고도열 왕숙 · 송변 곽조 · 장이
65권 「형만등전(邢巒等傳)」 66권 「이숭등전(李崇等傳)」 67권 「최광전(崔光傳)」
형만 · 이평 이숭 · 최량 최광
68권 「견침등전(甄琛等傳)」 69권 「최휴등전(崔休等傳)」 70권 「유조등전(劉藻等傳)」
견침 · 고총 최휴 · 배정준 · 원번 유조 · 부영 · 부수안 · 이신
7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72권 「양니등전(陽尼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이묘 양니 · 가사백 · 이숙호 · 노시경 · 방량 ·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73권 「해강생등전(奚康生等傳)」 74권 「이주영전(爾朱榮傳)」 75권 「이주조등전(爾朱兆等傳)」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이주영 이주조 · 이주언백 · 이주도율 · 이주천광
76권 「노동등전(盧同等傳)」 77권 「송번등전(宋翻等傳)」 78권 「손소등전(孫紹等傳)」
노동 · 장열 송번 · 신웅 · 양심 · 양기 · 고숭 손소(孫紹) · 장보혜
79권 「성엄등전(成淹等傳)」 80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성엄 · 범소 · 유도부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 녹여 · 장습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하발승 · 후막진열 · 후연
81권 「기준등전(綦儁等傳)」 82권 「이염지등전(李琰之等傳)」
기준 · 산위 · 유인지 · 우문충지 이염지 · 조영 · 상경
83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84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상상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조충 · 노경유 · 이동궤 · 이흥업
85권 「문원전(文苑傳)」
원요 · 배경헌 · 노관 · 봉숙 · 형장 · 배백무 · 형흔 · 온자승
86권 「효감전(孝感傳)」
조염 · 장손려 · 걸복보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87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우제 · 마룡팔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88권 「양리전(良吏傳)」
장순 · 녹생 · 장응 · 송세경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배타 · 두원 · 양돈 · 소숙
89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이 · 이홍지 · 고준 · 장사제 · 양지 · 최섬 · 역도원 · 곡해
90권 「일사전(逸士傳)」
휴과 · 풍량 · 이밀 · 정수
91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연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강식 · 주담 · 이숙 · 서건 · 왕현 · 최욱 · 장소유
92권 「열녀전(列女傳)」
임성국태비
93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증흥 · 구맹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정엄 · 서흘
94권 「엄관전(閹官傳)」
종애 · 구락제 · 단패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진송 · 백정 · 유등 · 가찬 · 양범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95권 「유총등전(劉聰等傳)」
유총 · 석륵 · 유하 · 모용외 · 부건 · 요장 · 여광
96권 「사마예등전(司馬叡等傳)」 97권 「환현등전(桓玄等傳)」 98권 「소도성등전(蕭道成等傳)」
사마예 · 이웅 환현 · 풍발 · 유유 소도성 · 소연
99권 「장실등전(張實等傳)」
장실 · 걸복국인 · 독발오고 · 이고 · 저거몽손
100권 「고구려등전(高句麗等傳)」
고구려 · 백제 · 물길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고막해 · 거란 · 오락후
101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강 · 고창 · 등지 · 만족 · 요족
102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104권 「자서전(自序傳)」
위수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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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정 24사 관련 틀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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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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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원각 · 원후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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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왕세적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
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
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
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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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문열공(東阿文烈公)
원순 | 元順
시호 문열(文烈)
작위 동아현개국공(東阿縣開國公)
탁발(拓跋) → 원(元)
순(順)
자화(子和)
생몰 487년 ~ 528년 5월 17일
출신 하남군(河南郡) 낙양현(洛陽縣)
부친 원징(元澄)
형제자매 5남 2녀 중 장남
아들 원랑(元朗)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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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위의 황족. 경목황제 탁발황의 증손자. 임성문선왕 원징의 아들. 서출이라 장남임에도 작위를 계승하지 못했다.

2. 생애

원순은 9세가 되었을 때, 낙안(樂安) 출신 진풍(陳豐)에게서 글을 배우고, 처음에 왕희지의 《소학편(小學篇)》 수천 자를 쓰고 밤낮으로 외웠으며, 15일 만에 모두 통달하였다. 진풍은 그를 신기하게 여겨 원징에게 말했다.
"제가 15세에 스승을 따라 배운 이후로 백발이 될 때까지 보고 들은 것 중에 이와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강하(江夏)의 어린 아이 중 저 아이와 견줄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원징이 웃으며 말했다.
"남전(藍田)에서 옥이 나오는 법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원순이 16세가 되었을 때, 《두씨춘추(杜氏春秋)》를 통달하여 늘 제자들을 모아놓고, 그들과 함께 논의를 하며 견해의 차이를 토론하였다. 당시 사방에 아무런 분란이 없고, 나라가 부유하며 백성이 편안했으며, 호족과 귀족의 자제들은 대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즐겼으나, 원순은 장막을 내리고 책을 읽으며, 옛 것을 사랑하고 학문에 뜻을 두었다. 그는 성격이 곧고 직언을 즐기며, 영예와 이익에는 담담하였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였으며, 거문고를 타는 데 능숙하였다. 늘 긴 시를 읊고, 한탄하며 고독한 방에서 소리 내어 시를 읊곤 하였다. 선무제 재위기 때는 《위송(魏頌)》을 상주하였으나, 글이 너무 길어 대부분 실리지 못하였다.

원순은 초기에 급사중(給事中)으로 임명되었는데, 당시 상서령 고조는 황제의 외숙으로 권세가 막강하였고, 천하의 인사들은 그의 먼 발치에서도 엎드려 절하며 경의를 표하였다. 이런 시기에 한번은 원순이 서신을 품고 고조의 집을 찾아갔다. 이때 문지기는 그의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하여
"안에 귀한 손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라며 들이지 않으려 하였다. 이에 원순이 꾸짖으며 말하길,
"임성왕(任城王)의 자식이 어찌 천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하였다. 마침내 고조를 만나자 원순은 곧바로 책상 위로 올라가 손을 받들어 예를 취하였다. 왕공(王公)과 선배들이 모두 이를 이상히 여기며 무슨 일이 터질까 두려워했으나, 원순은 당당하게 말을 하며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행동하였다. 이에 고조는 여러 빈객들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이토록 호기롭다니, 하물며 그의 아버지는 어떠하겠는가!"
원순이 나갈 때, 고조는 더욱 공경하며 그를 배웅하였다. 원징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원순을 매질하였다. 그 후, 원순은 중서시랑(中書侍郎)으로 승진하였고, 이어서 태상소경(太常少卿)으로 옮겨졌다.

신귀 2년(519년) 12월, 아버지 원징의 상을 당하자, 원순은 관직에 물러나고는 슬피 울다 피를 토할 정도였고, 직접 흙을 나르며 장례를 치렀다. 당시 그의 나이 25세였으나, 이로 인해 이미 흰머리가 생겼다. 상이 끝난 후 그는 갑자기 흰머리가 모두 빠져버려 다시는 나지 않았는데, 세상 사람들은 이것이 효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겼다.

얼마 뒤, 원순은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郎)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영군장군 원차의 위세가 매우 컸기에, 관직에 임명된 자들은 모두 그의 집을 찾아가 감사를 표하였다. 그러나 원순은 단지 상주문을 올려 예를 표했을 뿐, 한 번도 원차를 찾아가지 않았다. 이에 원차가 원순을 찾아가 물었다.
"경(卿)은 어찌하여 나를 보러 오지 않는 것이오?"
그러자 원순이 정색하며 말했다.
"천자께서는 아직 어리시어, 정사를 종친과 보정 대신들에게 맡기셨으니, 숙부께서는 마땅히 지극히 공정한 마음으로 임하며 인재를 등용하고 나라를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 은혜를 팔아 사적인 감사를 요구하십니까? 이는 기대에 미치는 바가 아닙니다!"
이처럼 원순은 조정에서 논의할 때 항상 거리낌 없이 바른말을 하였고, 결코 아첨하지 않았으니, 이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였다.

원순이 평북장군(平北將軍)•항주자사(恆州刺史)로 임명되었을 때, 그가 원차에게 말했다.
"북쪽 변경은 혼란스러워 나라에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상건(桑乾)은 옛 도읍으로, 나라의 근본이 걸려 있는 중요한 지역이니, 도독(都督)의 직위를 임시로 맡겨 주셔서 나라를 지키는 방패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원차는 마음속으로 의심스러워하며, 원순에게 병권을 주고 싶어하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조정의 일이지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오."
이에 원순이 답했다.
"숙부께서는 이미 나라의 권력을 쥐고 계시고, 생사여탈의 권한도 쥐고 계시면서, 스스로 하늘의 운명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어찌 다시 조정의 일이 있겠습니까!"
이 말에 원차는 더욱 분노하며 두려워하였다. 이후 원순은 안동장군(安東將軍)•제주자사(齊州刺史)로 전임되었다. 그는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자부하였으나 조정에 머물지 못하자, 늘 답답한 마음을 품고 그 감정이 얼굴과 말에 드러났다. 그래서 결국 술에 빠져 즐거움을 찾으며, 정사에 신경 쓰지 않았다.

정광 6년(525년) 4월, 원차가 영군장군 직책에서 해임되자, 원순은 다시 급사황문시랑으로 중앙에 소환되었다. 친지와 친구들이 교외로 나와 그가 다시 조정에 들어가는 것을 축하하자, 원순이 말했다.
"들어가지 못할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까 두렵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전중상서(殿中尚書)를 겸직하고, 이후 시중(侍中)으로 전임되었다.

당초 원차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 중산왕 원희는 원차를 토벌하기 위해 거병했다가 실패하고 처형되었는데, 영태후가 다시 정관을 잡고 나서야 비로소 개장(改葬)을 허락받았다. 원순은 태후를 모시고 서유원(西游園)에서 앉아 있다가 태후에게 아뢰었다.
"신이 어제 중산왕 가문의 장례를 보고 왔습니다. 종친들만이 그들의 억울하고 참혹한 죽음을 슬퍼한 것이 아니라, 길 가던 남녀들도 그 일가의 일곱 번의 장례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슬픔에 젖어 울고 있었습니다."
당시 원차의 아내 호씨도 영태후 곁에 있었는데, 원순이 그녀를 가리키며 이어서 말했다.
"폐하께서 어찌 한 동생을 위해 원차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온 천하로 하여금 억울함을 품게 하십니까!"[1]
영태후는 침묵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주(營州)의 백성 취덕흥(就德興)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조정에서는 상서 노동(盧同)을 보내 이를 토벌하게 했지만, 노동이 도리어 크게 패하고 돌아왔다. 조정에서 노동의 죄를 논의하였는데, 이때 시중 목소(穆紹)와 원순도 여기에 참여하였다. 목소는 노동으로부터 저택을 빌려서 살았기에, 그를 위해 변호하기 시작하니, 원순이 벌컥 화를 내며 외쳤다.
"노동은 결국 죄가 없을 것이오!"
이에 영태후가
"어찌 시중(侍中)의 말처럼 될 수 있겠느냐?"
라고 물으니, 원순이 답했다.
"노동은 좋은 집을 조정의 요직인 시중에게 주었으니, 그가 어찌 자신의 죄를 걱정하겠습니까?"
목소는 이를 듣고 부끄러워 이후로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영태후는 치장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고, 자주 외출을 즐겼다. 한번은 영태후가 외출했을 때, 원순이 그녀의 면전에서 간언하며 말하길,
"《예기》에 따르면, 부인이 남편의 상을 당하면 스스로를 '미망인'이라 칭하고, 머리에서 구슬과 옥 장식을 제거하며, 화려하게 채색된 옷을 입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폐하께서는 천하를 다스리는 황태후이시며, 나이도 곧 불혹에 이르시는데, 지나치게 치장을 하시면 후세에 무엇을 보여주시겠습니까?"
라고 하니, 영태후는 부끄러워하며 외출을 중단하였다. 그녀가 궁으로 돌아오자, 원순을 책망하며 말했다.
"짐은 그대를 천리 밖에서 불러들였건만, 어찌 많은 사람 앞에서 모욕을 주려 한 것이냐!"
원순이 답했다.
"폐하께서 화려한 옷차림과 외모를 자랑하시며 천하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으시면서, 어찌 신의 한마디 말이 부끄러우시겠습니까?"

당초 성양왕 원휘는 원순의 재능과 명성을 흠모하여 그와 특별히 친분을 맺었다. 그런데 광양왕 원연이 원휘의 아내인 우씨(于氏)와 간통하여, 원연과 원휘 두 사람 사이에 큰 반목과 갈등이 생겼다. 이후 원연이 정주(定州)에서 소환되어 입조하여 이부상서(吏部尚書)•중령군(中領軍)이 되자, 원순이 조서를 작성했는데, 그 글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이를 두고 성양왕 원휘는 원순이 원연의 측근이라고 의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서흘(徐紇)과 함께 영태후에게 나아가 원순을 참소하였다. 그 결과, 순은 조정에서 쫓겨나 호군장군(護軍將軍)으로 임명되었다. 원순이 서유원에서 영태후에게 작별 인사를 올릴 때, 성양왕 원휘와 서흘이 모두 태후 곁에서 시중들고 있었다. 원순은 그들을 가리키며 영태후에게 말했다.
"저 자들은 우리 위나라의 재비(宰嚭)와 같은 자들이니, 위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절대 죽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서흘은 겁에 질려 어깨를 움츠리며 나갔다. 원순은 도망치는 서흘을 꾸짖으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네놈처럼 같은 글만 쓰는 소인배는 탁상에서나 일할 만한 자이지, 어찌 감히 병사로서 창을 잡는 지위에 있을 수 있겠느냐? 이는 나와 내 동생 원이의 도리를 이지러뜨리는 일이다!"
그리고는 옷소매를 휘날리며 일어섰고, 영태후는 이를 보고도 아무 말 없이 침묵하였다. 이후 원순은 성양왕 원휘 등에게 참소당한 것을 노여워하여, 마침내 《승부(蠅賦)》라는 글을 지어 자신을 모함한 무리를 파리에 비대며 비난하였다.

당시 아버지 원징이 여러 황제들을 보정한 공로가 회자되자, 조정에서 임성왕 원이의 식읍을 2,000호 늘렸고, 다시 원이의 식읍에서 500호를 떼어내어 원순을 동아현개국공(東阿縣開國公)에 봉하였다.

그 후 원순은 병으로 인해 집에서 요양하며 경조사 방문을 일절 끊었다가, 병이 낫자 다시 조정으로 돌아와 이부상서•상서우복야를 지냈다. 어느 날, 원순이 조회에 나아가, 계단을 올라 걸상을 향해 보니, 걸상이 매우 낡아 보였다. 이에 그가 도령사 서오기(徐仵起)에게 물으니, 서오기가 답했다.
"이 걸상은 선왕(先王)께서 앉으셨던 것입니다."
그러자 원순은 목이 메어 눈물이 흘러내렸고,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걸상을 바꾸도록 명하였다.

당시 삼공조령사 주휘(朱暉)는 평소에 녹상서•고양왕 원옹(元雍)을 섬겼는데, 고양왕 원옹은 주휘를 정위평(廷尉評)으로 임명하려고 여러 번 원순에게 부탁했지만, 원순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원옹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직접 명령을 내려 주휘를 정위평으로 임명할 것을 강요하자, 원순은 그 명령서를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원순의 이 같은 행위를 전해 들은 원옹은 크게 분노하였으며, 이른 새벽에 도청(都㕔)에 앉아 상서성의 관리와 승랑(丞郎)들을 모두 불러 모으고, 원순이 도착하기를 기다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를 굴복시키고자 하였다. 원순은 해가 높이 떠오른 뒤에야 도착하였고, 원옹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천자의 아들이며, 천자의 동생이고, 천자의 숙부이며, 천자의 재상이다. 사해(四海) 안에서 나만큼 친족으로서 존귀한 자가 없다. 그런데 원순이란 작자는 무엇이길래, 감히 내 명령서를 자신의 손으로 받아 놓고 그것을 땅에 던져버렸단 말인가!"
원순은 그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수염과 머리카락이 모두 곤두섰다. 그는 얼굴을 들어 천장을 바라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원옹이 다시 말했다.
"내가 승상(丞相)이고 녹상서(錄尚書)인데, 어찌 사람 하나를 관직에 임명할 수 없단 말인가?"
원순이 말했다.
"부엌에서 요리를 담당하는 사람이 그 일을 하지 않더라도, 제사를 맡은 사람이 제사 기물들을 내팽개치고 대신 요리를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전하께서 인사 선발에 관여하라는 별도의 명령을 받은 적이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소리 높여 이어서 말하길
"전하께서 반드시 이와 같이 하시겠다면, 저 원순은 이 일을 그대로 상주하여 폐하께 아뢰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원옹이 화를 풀고 웃으며 말했다.
"내 어찌 주휘(朱暉) 같은 소인 때문에 그대와 서로 원망하고 다투겠는가?"
그러고는 일어나 원순을 자신의 방으로 초대하여 함께 술을 진탕 마셨다. 원순의 강직함이 이와 같았다. 이후 원순은 정남장군(征南將軍)•우광록대부(右光祿大夫)로 임명되었으며, 상서좌복야를 겸직하게 되었다.

건의 원년(528년) 4월 13일[2], 대장군 이주영효장제를 받들고, 영태후와 조정의 백관을 모두 하음(河陰)으로 소집하였다. 이주영은 평소 원순의 강직함을 익히 들어왔기에, 주서(朱瑞)에게 특별히 말했다.
"가서 원 복야(元僕射)에게 전하라. 그는 조정에만 있으면 되니 굳이 여기에 올 필요는 없다."
그러나 원순은 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관료들이 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치다가, 능호(陵戶)에서 선우강노(鮮於康奴)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원순의 집은 네 벽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으며, 시신을 수습할 물건조차 없었고, 오직 책 몇 천 권만 있을 뿐이었다. 이에 문하통사령사(門下通事令史) 왕재달(王才達)은 자신의 옷을 찢어 원순의 시신을 덮었다.

효장제가 입궁한 후, 효장제는 황문시랑 산위(山偉)를 보내 수도를 순찰하게 하였다. 이때 산위는 원순의 장례에 참석하고, 깊은 슬픔에 잠겨 끝없이 애통해 하였다. 이윽고 산위가 효장제에게 돌아가니, 그의 모습을 본 효장제는 이상하게 여기며 물었다.
"황문시랑은 어찌하여 그리 슬피 울었는가?"
산위가 그 사정을 설명하며 답하니, 효장제가 시중 원지(元祉)에게 명령하였다.
"종실에서 죽은 자가 한둘이 아니니 모두에게 넉넉히 지원할 수는 없다. 원 복야(元僕射)의 청렴하고 고결한 절개는 죽음으로 더욱 빛났으니, 특별히 비단 100필을 증여하되, 그 외에는 예외를 둘 수 없다."
이후 효장제는 원순을 표기대장군•상서령•사도공(司徒公)•정주자사(定州刺史)으로 추증하였고, 시호는 '문열(文烈)'이라 하였다. 원순은 《제록(帝錄)》 20권과 시(詩), 부(賦), 표(表), 송(頌) 등 수십 편의 글을 남겼으나, 대부분이 현재로서는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훗날 서위 정권이 세워졌을 때는 태부(太傅)로 재추증되고, 시호는 '문간(文簡)'으로 다시 내려졌다.


[1] 원차의 아내 호씨는 영태후의 여동생이었다.[2] 무신년 정사월 경자일. 음력으로는 4월 13일이고, 양력으로 5월 17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