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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18 19:51:26

원회(빙익공)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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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제기(帝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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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서기(序記)」 2권 「태조기(太祖紀)」 3권 「태종기(太宗紀)」
탁발부 · 대나라 탁발규 탁발사
4권 「세조·공종기(世祖恭宗紀)」 5권 「고종기(高宗紀)」 6권 「현조기(顯祖紀)」
탁발도 · 탁발황 탁발준(浚) 탁발홍
7권 「고조기(高祖紀)」 8권 「세종기(世宗紀)」 9권 「숙종기(肅宗紀)」
원굉 원각 원후
10권 「효장제기(孝莊帝紀)」 11권 「폐출삼제기(廢出三帝紀)」 12권 「효정제기(孝靜帝紀)」
원자유 원공 · 원랑 · 원수 원선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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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열전(列傳) ]
13권 「황후전(皇后傳)」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도무선목황후 · 명원소애황후 · 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경목공황후 · 문성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풍폐후 · 효문유황후 · 효문소황후 · 선무순황후 · 선무황후 · 선무영황후
효명황후 · 효정황후
14권 「신원·평문제제자손전(神元平文諸帝子孫傳)」
탁발흘라 ,탁발제,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진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15권 「소성자손전(昭成子孫傳)」 16권 「도무7왕전(道武七王傳)」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虔) · 탁발순 · 탁발의열
탁발굴돌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17권 「명원6왕전(明元六王傳)」 18권 「태무5왕전(太武五王傳)」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9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20권 「문성5왕전(文成五王傳)」 21권 「헌문6왕전(獻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 · 탁발간(簡) · 탁발약 · 탁발맹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22권 「효문5왕전(孝文五王傳)」 23권 「위조등전(衛操等傳)」 24권 「연봉등전(燕鳳等傳)」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위조 · 막함 · 유고인 연봉 · 허겸 · 장곤 · 최현백 · 등연
25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26권 「장손비등전(長孫肥等傳)」 27권 「목숭전(穆崇傳)」
장손숭 · 장손도생 장손비 · 울고진 목숭
28권 「화발등전(和跋等傳)」 29권 「해근등전(奚斤等傳)」
화발 · 해목 · 막제 · 유업연 · 하적간 · 이율 · 유결 · 고필 · 장려 해근 · 숙손건
30권 「왕건등전(王建等傳)」
왕건 · 안동 · 누복련 · 구퇴 · 아청 · 유니 · 해권 · 차이락 · 숙석 · 내대천 · 주기 · 두대전 · 주관 · 염대비 · 울발 · 육진 · 여락발
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32권 「고호등전(高湖等傳)」
우율제 고호 · 최영 · 봉의
33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왕헌 ·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설제
34권 「왕낙아등전(王洛兒等傳)」 35권 「최호전(崔浩傳)」 36권 「이순전(李順傳)」
왕낙아 · 차노두 · 노노원 · 진건 · 만안국 최호 이순
37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38권 「조옹등전(刁雍等傳)」 39권 「이보전(李寶傳)」
사마휴지 · 사마초지 · 사마경지 · 사마숙번
사마천조
조옹(刁雍) · 왕혜룡 · 한연지 · 원식 이보
40권 「육사전(陸俟傳)」 41권 「원하전(源賀傳)」 42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육사 원하 설변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43권 「엄릉등전(嚴棱等傳)」 44권 「나결등전(羅結等傳)」
엄릉 · 모수지 · 당화 · 유휴빈 · 방법수 나결 · 이발 · 을괴 · 화기노 · 순퇴 · 설야저 · 우문복 · 비우 · 맹위
45권 「위랑등전(韋閬等傳)」 46권 「두근등전(竇瑾等傳)」 47권 「노현전(盧玄傳)」
위랑 · 두전 · 배준 · 신소선 · 유숭 두근 · 허언 · 이흔 노현
48권 「고윤전(高允傳)」 49권 「이령등전(李靈等傳)」 50권 「울원등전(尉元等傳)」
고윤 이령 · 최감 울원 · 모용백요
51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52권 「조일등전(趙逸等傳)」
조일 · 호방회 · 호수 · 송요 · 장담 · 종흠 · 단승근 · 감인 · 유병 · 조유 · 색창 · 음중달
53권 「이효백등전(李孝伯等傳)」 5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55권 「유명근등전(游明根等傳)」
이효백 · 이형 유아 · 고려 유명근 · 유방
56권 「정희등전(鄭羲等傳)」 57권 「고우등전(高祐等傳)」 58권 「양파전(楊播傳)」
정희 · 최변 고우 · 최정 양파
59권 「유창등전(劉昶等傳)」 6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61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한기린 · 정준 설안도 · 필중경 · 심문수 · 장당 · 전익종 · 맹표
62권 「이표등전(李彪等傳)」 63권 「왕숙등전(王肅等傳)」 64권 「곽조등전(郭祚等傳)」
이표 · 고도열 왕숙 · 송변 곽조 · 장이
65권 「형만등전(邢巒等傳)」 66권 「이숭등전(李崇等傳)」 67권 「최광전(崔光傳)」
형만 · 이평 이숭 · 최량 최광
68권 「견침등전(甄琛等傳)」 69권 「최휴등전(崔休等傳)」 70권 「유조등전(劉藻等傳)」
견침 · 고총 최휴 · 배정준 · 원번 유조 · 부영 · 부수안 · 이신
7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72권 「양니등전(陽尼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이묘 양니 · 가사백 · 이숙호 · 노시경 · 방량 ·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73권 「해강생등전(奚康生等傳)」 74권 「이주영전(爾朱榮傳)」 75권 「이주조등전(爾朱兆等傳)」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이주영 이주조 · 이주언백 · 이주도율 · 이주천광
76권 「노동등전(盧同等傳)」 77권 「송번등전(宋翻等傳)」 78권 「손소등전(孫紹等傳)」
노동 · 장열 송번 · 신웅 · 양심 · 양기 · 고숭 손소(孫紹) · 장보혜
79권 「성엄등전(成淹等傳)」 80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성엄 · 범소 · 유도부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 녹여 · 장습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하발승 · 후막진열 · 후연
81권 「기준등전(綦儁等傳)」 82권 「이염지등전(李琰之等傳)」
기준 · 산위 · 유인지 · 우문충지 이염지 · 조영 · 상경
83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84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상상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조충 · 노경유 · 이동궤 · 이흥업
85권 「문원전(文苑傳)」
원요 · 배경헌 · 노관 · 봉숙 · 형장 · 배백무 · 형흔 · 온자승
86권 「효감전(孝感傳)」
조염 · 장손려 · 걸복보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87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우제 · 마룡팔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88권 「양리전(良吏傳)」
장순 · 녹생 · 장응 · 송세경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배타 · 두원 · 양돈 · 소숙
89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이 · 이홍지 · 고준 · 장사제 · 양지 · 최섬 · 역도원 · 곡해
90권 「일사전(逸士傳)」
휴과 · 풍량 · 이밀 · 정수
91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연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강식 · 주담 · 이숙 · 서건 · 왕현 · 최욱 · 장소유
92권 「열녀전(列女傳)」
임성국태비
93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증흥 · 구맹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정엄 · 서흘
94권 「엄관전(閹官傳)」
종애 · 구락제 · 단패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진송 · 백정 · 유등 · 가찬 · 양범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95권 「유총등전(劉聰等傳)」
유총 · 석륵 · 유하 · 모용외 · 부건 · 요장 · 여광
96권 「사마예등전(司馬叡等傳)」 97권 「환현등전(桓玄等傳)」 98권 「소도성등전(蕭道成等傳)」
사마예 · 이웅 환현 · 풍발 · 유유 소도성 · 소연
99권 「장실등전(張實等傳)」
장실 · 걸복국인 · 독발오고 · 이고 · 저거몽손
100권 「고구려등전(高句麗等傳)」
고구려 · 백제 · 물길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고막해 · 거란 · 오락후
101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강 · 고창 · 등지 · 만족 · 요족
102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104권 「자서전(自序傳)」
위수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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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정 24사 관련 틀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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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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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원각 · 원후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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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왕세적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
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
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
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 ||
<colbgcolor=#dc143c><colcolor=#fff> 빙익혜공(馮翊惠公)
源懷 | 원회
시호 혜공(惠公)
작위 농서왕(隴西王) → 농서공(隴西公)
→ 빙익군 개국공(馮翊郡開國公)
원(源)
사례(思禮) → 회(懷)
불명
생몰 444년 ~ 506년 6월
부친 원하(原賀)
본관 서평군(西平郡) 낙도현(樂都縣)
아내 울씨(尉氏)
자녀 7남 1녀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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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위의 인물. 선비족. 농서선왕 원하의 아들. 광무간후 원연(原延)의 동생. 본래 휘는 '사례(思禮)'라 하였으나, 후에 '회(懷)'로 이름을 하사받았다.

2. 생애

원회는 겸손하고 공손하며, 너그럽고 우아하였으며, 도량이 컸다. 그는 문성제 탁발준 재위 말년에 시어중산(侍御中散)으로 임관하였다.

아버지 원하가 노쇠함을 이유로 벼슬에서 물러나자, 조정에서는 조서를 내려 원회에게 아버지의 작위를 잇게 하고 정남장군(征南將軍)에 임명하였다. 그리고 지절(持節)이 되어 군대를 감독해 막남(漠南)에 주둔하였다. 얼마 뒤, 원회가 중앙으로 소환되어 전중상서(殿中尚書)로 제수되었으나, 다시 외직으로 나가 장안진장(長安鎮將)•옹주자사(雍州刺史)를 맡았다. 그는 청렴하고 검소하면서도 은혜로운 정치를 펼쳤으며, 백성을 잘 보살펴 도적이 사라졌고, 떠돌던 유민들도 서로 앞다투어 돌아왔다. 1년 남짓 후, 그는 다시 전중상서로 임명되어 조정에 들어갔고, 시중(侍中)을 겸하여 도조사(都曹事)에 참여하였다. 또 한번은 여러 군대를 감독하여 유연 정벌에 참여하였고, 이때 여섯 갈래의 대장들이 모두 그의 지휘를 받았다. 유연 정벌 이후 원회는 상서령(尚書令)으로 승진하여 율령의 제정을 논의하였다. 그 후, 관례에 따라 공(公)으로 강등되었고, 사주자사(司州刺史)로 임명되었다.

태화 19년(495년) 정월, 원회는 효문제 탁발굉을 따라 남쪽 정벌을 수행하며 위대장군(衛大將軍)•중군사(中軍事)를 지냈다. 그러나 마침 어머니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났고, 비단 300필과 곡식 1,000석을 하사받았다. 이후 정북대장군(征北大將軍)•하주자사(夏州刺史)로 임명되었다가, 도독옹·기·동진제군사(都督雍岐東秦諸軍事)•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옹주자사로 전임되었다.

경명 2년(501년) 정월, 선무제 원각의 친정이 시작되자, 원회는 소환되어 상서좌복야(尚書左僕射)로 임명되고, 특진(特進)이 더하여졌다.

당시 간악한 관리들이 범죄를 저지르고도 대부분 도망하여 숨어 지내다가, 사면령이 내려지면 그제야 나타나 모두 처벌을 피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선무제는 조서를 내려 이제부터는 범죄의 경중을 막론하고 도망하여 숨은 자는 모두 먼 지방으로 유배시키고, 영구히 나타나지 않으면 그 형제가 대신 유배받도록 하였다. 이에 원회가 상소하여 아뢰었다.
"삼가 법령을 살펴보니, 도망한 관리들은 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성조(聖朝)의 은혜가 이전의 사면과는 다름을 생각해보면, 이미 유배된 자들도 도중에 돌아올 기회를 얻었는데, 아직 체포되지도 않은 자를 변경으로 유배보냄이 옳겠습니까? 지금까지 수령과 관리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한 경우가 많았고, 이들은 녹봉을 넉넉히 받으면서도 이러한 잘못을 저질렀으나, 사면의 은혜를 입어 결국 복직되었습니다. 이제 유독 이들만을 가혹하게 다스리는 것은 공평한 법이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신(臣)의 생각으로는 그들도 사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의 상소는 문하(門下)에서 이미 시행된 법령을 변경할 수 없다며 기각되었다. 원회는 다시 아뢰었다.
"법은 포괄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며, 다스림은 간명해야 합니다. 형벌과 법령은 죄인을 단속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치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면 지나치게 복잡할 필요가 없고, 시행이 원활해야 하므로 가혹한 제도를 둘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곧 고금(古今)의 올바른 정치이며, 세상을 구하는 보편적인 법도입니다.

조문을 살펴보면, 공훈이 있는 품계 이하의 관리가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하면 사면을 받지 못하고, 그 가족까지 유배됩니다. 이는 비록 간악한 자들의 길을 차단하려는 조치라 할지라도, 일반적인 법률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조문에 따르면, 관리가 직권을 남용하고 법을 어기는 경우는 유배 외의 처벌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구품(九品) 이상의 사람들은 모두 청렴결백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각 주(州)의 수령들은 청류(清流)로 간주되지만, 그중에서도 탐욕스럽고 부패한 자들이 있으며,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했음에도 사면을 받아 처벌을 면하였습니다. 그러나 공훈 품계 이하의 자들만이 이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이는 상류층에게는 관대하고 하급 관리들에게는 엄격한 법이 되어, 백성을 기르는 데 차별이 생기고, 은혜와 형벌이 균등하지 못하게 됩니다.

더욱이, 역모와 같은 천인공노할 죄도 가벼운 사면을 받는데, 관리가 사소한 죄를 저지르면 유독 사면받지 못한다면, 이는 대사면의 원칙이 통하지 않게 만들고, 생명을 살리는 길을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고대의 법에도 어긋나고, 현재의 법률에도 맞지 않습니다. 신은 삼가 어리석은 의견을 내어 이를 중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깁니다."
그의 상소가 올라가자, 선무제는 이를 받아들였다.

경명 2년(501년) 11월, 원회는 거기대장군(車騎大將軍)•양주대중정(涼州大中正)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남조제나라에서는 옹주자사 소연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큰 혼란에 빠졌다. 이에 원회가 아었다.
"남쪽의 적들이 강양(江揚) 일대를 떠돌며 반란을 일으키고, 패륜적이고 어리석은 행위를 점점 더 심하게 자행하고 있습니다. 적의 고위 관료와 중요 장군들 중에는 인재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간사하고 음험한 자들을 신뢰하고, 내시들과 친밀히 어울려 조정과 외부가 분열되었고, 친족들조차 서로 의심하며 배반하고 있습니다. 소보융은 형(荊)과 영(郢) 지역에서 제멋대로 황제라 칭하고 있으며, 그 옹주자사인 소연이 병력을 모아 동쪽을 공격하였고, 상류(上流)의 병력은 이미 제나라의 수도 근처까지 다가왔습니다. 광릉(廣陵)과 경구(京口)는 각각 군대를 유지하며 양쪽을 저울질하고 있고, 종리(鍾離)와 회음(淮陰)은 서로 대치하며 전세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말릉(秣陵)은 고립되어 위험에 처했으며, 정세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자든 소인이든 모두 재앙 속에 놓여 있어, 북쪽을 바라보며 도움을 기다리지만, 아침을 넘기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이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로, 적을 병합할 때입니다.

그들의 내부 분열을 틈타, 동쪽으로 역양(歷陽)을 점령하고 과보(瓜步)를 함께 겨냥하며, 강을 따라 진을 치고 수비대를 배치하여 형(荊)과 영(郢)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천둥과 번개 같은 위엄을 떨치고, 강산에 신뢰를 심는다면, 강서(江西) 지역은 무력을 쓰지 않아도 스스로 귀순할 것이고, 오회(吳會) 지역도 기한을 정해 점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 사치(士治)가 말하기를, '손호가 폭사하고 나서 어진 주군을 새로 세우고, 문무 관리들이 각자 직책을 맡는다면 강한 적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소연이 뜻을 이루어 위아래가 한마음이 된다면, 단지 이후의 도모가 어려운 것에 그치지 않고, 양주(揚州)를 맞대고 있는 우리의 변경도 직접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수춘(壽春)에서 건강(建鄴)까지는 700리밖에 되지 않으며, 산천과 수로 및 육로를 그들은 이미 숙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강(江)과 상(湘) 지역이 변란 없이 안정되고, 임금과 신하가 각자 직책을 다하여 수군을 이용한다면,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으며, 수춘은 스스로를 지키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강남(江南)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소보권이 도읍에서 붕괴 직전의 상황에 처해 있어, 제나라 변경의 성읍들은 지원 병력을 받을 기미조차 없습니다. 강남(江南)을 깨끗이 평정하는 것은 바로 오늘 실행해야 합니다. 신은 은혜를 깊이 입었기에 감히 입을 닫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선무제는 조서로 답하였다.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답지 못한 것이 강남(江南)의 오래된 폐단이다. 곡식이 있어도 먹지 못하는 상황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하늘이 장차 그들을 망하게 하려 하며, 여러 이민족 또한 그 땅을 차지하고자 하니, 인간의 일과 하늘의 도리가 서로 맞아떨어지는 것을 어찌 우연이라 하겠는가? 하나, 해악을 기르는 일은 어진 자가 할 바가 아니다. 더구나 10월 5일에 소연의 군대는 이미 대항(大航)에 도달하였는데, 소보권이 큰 타격을 입거나 소멸할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면 이미 오래전에 결판이 났어야 했다. 설령 하늘이 소보권을 벌하여 소연의 군대가 진격할 수 있다고 한들, 소연을 비롯한 그의 보좌진 역시 난세에 태어난 불순한 무리들이거늘, 황천(皇天)과 신령이 어찌 그들을 오래 보호하겠는가?

지금 측은하게 여길 것은, 바로 남쪽의 백성들이 덕을 기대하고, 변경에서 보내오는 보고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피폐해진 백성들을 마땅히 구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그렇다면, 양주(揚州)의 병력이 적지 않으므로, 신속히 임성왕 원징을 파견하여 그에게 처분을 맡기고, 별도로 위로와 격려를 더하여 변경을 다스리는 계책을 온전히 세우게 하라."
그러나 얼마 안 가 소연의 거사가 성공하자, 남쪽 정벌 계획은 중지되었다.

원회가 다시 표문을 올려 아뢰었다.
"옛날 세조(世祖)께서 승하하시고 남안왕(南安王)이 즉위하였으나, 동묘(東廟)에 나아가 예를 올리던 중 역신 종애에게 시해당하였습니다. 당시 고종(高宗)께서는 난을 피하여 궁원(宮苑)에 숨어 계셨고, 종애는 다른 꿍꿍이를 꾸미며, 황위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신의 돌아가신 아비이자 선대 신하인 원하는 장손갈후(長孫渴侯), 육려 등과 함께 표를 올려 고종을 영접하여, 미약해진 황통을 잇게 하였습니다. 이때 육려는 직접 황제를 부축하여 보호한 공로로, 무군대장군(撫軍大將軍)•사도공(司徒公)•평원왕(平原王)에 봉해졌습니다. 흥안(興安) 2년에는 고종의 즉위 공로가 논공행상되어, 선신(先臣, 원하)의 작위를 서평왕(西平王)으로 올려 주었습니다.

황흥(皇興) 말년에는 현조(顯祖)께서 장차 황위를 경조왕(京兆王)에게 전하려 하셨습니다. 당시 선신은 여러 장군들을 통솔하며 무천(武川)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소환되어 수도로 나아가 특별히 자문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신께서는 강하게 반대하였고, 현조를 오래도록 설득한 끝에 마침내 이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이에 선신에게 절(節)을 지니게 하여, 옥새를 고조(高祖)께 전달하도록 명하셨습니다.

태화(太和) 16년에 이르러, 육려의 아들 육예가 사적으로 올린 서장(書狀)에서, 그의 선친이 선신과 함께 고종을 보위하였음을 언급하였습니다. 이에 조정에서 이를 다시 인정하여, 육예를 거록군 개국공(鉅鹿郡開國公)으로 봉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신은 부모상을 치르며 초야에 묻혀 있었기에, 이 논공의 혜택을 입을 수 없었습니다. 태화 20년에 이르러 신이 옹주자사로 임명되었을 때, 신은 부임하기 위해 떠나면서 선제(先帝)께 고별 인사를 드리고, 선신의 옛 공훈을 아뢰었습니다. 그때 조칙이 내려져, 먼저 임지로 부임하되, 곧 따로 논의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태화 21년, 선제께서 옹주에 행차하셨을 때, 신이 다시 이를 아뢰었고, 당시 조칙을 내려 조정으로 소환하여 상을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제께서 붕어하시면서, 결국 그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신은 생각건대, 선신께서는 예전에는 고종을 보위하여 황실을 지켰고, 나중에는 현조를 보좌하여 황위를 안정시켰습니다.이는 세대를 초월한 공로이자, 특별한 업적입니다. 육려는 그의 부친의 공로로 하천(河山)의 상을 받았지만, 신은 가문이 세운 공로에도 불구하고 조정의 포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차별이 너무나도 크니, 바라건대 공정한 판단을 내려 주십시옵소서."
이에 선무제가 조서로 말했다.
"숙로(宿老) 원비가 말한 바에 따르면, 그대의 주장이 사실이라 한다. 사관(史官)에게 조회하도록 해보니, 또한 그러한 기록이 있다. 그러므로 비교하여 처리하되, 빙익군 개국공(馮翊郡開國公)으로 봉하고, 식읍 100호를 하사한다."


경명 4년(503년) 11월, 선무제가 조서를 내려 원회에게 사지절(使持節)•시중(侍中)•행대(行臺)를 더하고, 북방 변경의 육진(六鎮)과 항주(恆州), 연주(燕州), 삭주(朔州)의 세 주를 순행하게 하여, 빈곤한 백성을 구제하고, 풍속을 조사하며, 조정의 공과(功過)를 평가하여 시정의 득실을 검토하게 하였다. 그리고 모든 사무를 먼저 결정한 후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수도가 낙양으로 천도된 이래로 변경과 삭방 일대는 수도로부터 더욱 멀어졌고, 게다가 여러 해 동안 가뭄과 흉년이 이어져 백성들이 곤궁하고 피폐하였다. 이에 원회는 어명을 받들어 순찰하며 적절한 구휼책을 펼쳤고, 다만 수송과 유통을 원활히 하여 물자가 부족한 곳과 남는 곳을 서로 조달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당시 순황후 우씨의 부친 우경(于勁)이 권세를 휘둘러 조야를 압도하였고, 그의 형 우조는 원회와 예전부터 혼인으로 연을 맺고 있었는데, 옥야진장(沃野鎮將)이던 우조는 뇌물을 받는 일이 많았다. 이때 원회가 옥야진에 방문하자, 우조가 도로 왼쪽에서 그를 영접하였으나, 원회는 그와 말조차 나누지 않고 곧바로 탄핵하여 그를 면직시켰다. 또한, 회삭진장(懷朔鎮將) 원니수(元尼須)는 원회와 젊었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으나, 그 역시 탐욕과 부패가 심하였다. 어느 날, 그는 술자리를 마련하여 원회를 초대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 운명이 길고 짧은 것은 경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으니, 어찌 나를 관대하게 보아주지 않겠소?"
그러자 원회가 답하였다.
"오늘 이 모임은 원회(源懷)와 옛 친구가 술을 마시는 자리이지, 범죄를 심문하는 곳이 아니다. 내일 공정(公庭)에서야 비로소 사신이 진장의 죄상을 조사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원니수는 눈물을 흘릴 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후 원회는 곧바로 표문을 올려 원니수를 탄핵하였다. 이처럼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 흔들림이 없었던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

원회가 다시 표를 올려 아뢰었다.
"경명(景明) 이래로 북방 오랑캐 지역은 여러 해 동안 재해와 가뭄이 계속되었고, 높은 지대와 육지는 농경에 적합하지 않아 오직 수전(水田)만을 조금 경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장(主將)과 참료(參僚)들이 기름지고 좋은 땅을 독점하고, 메마르고 황폐한 땅을 백성들에게 배분하여, 이로 인해 백성들의 곤궁함과 피폐함이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진(鎮)의 수전(水田)은 법령에 따라 백성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고, 가난한 자를 먼저 하고 부유한 자를 나중에 하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배분이 공정하지 않아 한 사람이라도 원망하며 소송을 제기한다면, 진장(鎮將) 이하 연명하여 서명한 관리들은 각기 한 달 동안 녹봉을 삭감하고, 네 명 이상이 원망하여 소송을 제기하면 한 해 동안 녹봉을 삭감해야 합니다.

또한 북방 변경의 진(鎮)과 변방 오랑캐 지역은 중국 내지와 사정이 다릅니다. 과거에 관리를 배치할 때 전혀 차별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옥야진(活野鎮)만 해도 진장(鎮將) 이하 관리가 800여 명에 달하여, 백성들은 이를 불만스럽게 여기고 모두 번거롭고 낭비가 심하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변경 지역은 사건이 드물고, 수도 주변과는 사정이 크게 다릅니다. 그러므로 주수(主帥)와 이사(吏佐)의 숫자를 5분의 2로 줄일 것을 요청합니다."
이에 조서가 내려졌다.
"표문을 살펴보니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이 깊음을 알겠다. 이미 유사(有司)에게 지시하여 그대가 건의한 대로 시행하게 하였으며, 이를 영구히 준수하도록 하였다. 이와 유사한 사례 중 백성에게 이롭지 않고 정사를 해치는 일이 있다면, 빠짐없이 보고하라."
당시 가난한 백성들은 호강한 자들에게 핍박받아 오랫동안 억울함을 당하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이를 해결할 길이 열리자 하루에 100여 건의 소송이 접수될 정도였다. 이외에도 원회가 상주한 사항 중 북방 변경에 유익한 조항은 모두 40여 가지였으며, 모두 조정에서 기꺼이 채택받았다.

정시 원년(504년) 9월, 유연이 120,000기의 기병을 거느리고 여섯 길로 나뉘어 진격하며, 곧장 옥야(沃野)와 회삭(懷朔)으로 향해 남쪽으로 항(恆)과 대(代) 일대를 침공하려 한다는 고발이 있었다. 이에 조정에서 원회에게 본래의 관직을 유지한 채, 사지절과 시중을 더해주어 북방 변경을 방어하도록 하고, 전략을 지휘하며 필요에 따라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모든 조치는 편의에 따라 처리하도록 하였다. 또한 원회의 아들인 직침(直寢) 원휘(源徽)에게 원회를 따라 북방으로 가도록 명하고, 말 한 필과 정교한 갑옷 한 벌, 황제가 하사한 창 한 자루를 내렸다. 원회는 명을 받들어 절하고 마친 뒤, 뜰에서 안장을 걸치고 창을 잡아 말에 올라 큰 소리로 외치며, 빈객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내 기력이 비록 쇠하였으나, 아직 이 정도는 할 수 있다. 유연은 장사(壯士)를 두려워하고 노인을 가벼이 여기나, 나 또한 그렇게 쉽게 업신여길 상대가 아니다. 이제 태묘(太廟)의 승리 방략을 받들고 용맹한 군사를 이끌었으니, 충분히 그들의 우두머리를 사로잡아 조정에 포로로 바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원회의 나이는 61세였다. 이윽고 원회가 운중(雲中)에 도착하자, 유연은 도망쳐 사라졌다.

유연의 군대가 퇴각한 후, 원회는 항(恆)과 대(代) 일대를 순회하며 각 진영의 좌우 요충지를 살펴 성을 쌓고 수비대를 배치할 만한 곳을 측량하였다. 지형의 높낮이와 두께를 가늠하고, 식량과 병기를 비축할 적절한 방안을 검토하며, 성채 간 서로 지원할 수 있는 전략적 배치를 고려하여 총 58개 조항을 상주하였다. 원회가 상표하여 아뢰었다.
"유연은 제어하기 어려운 존재로, 예로부터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은 유랑하며 새처럼 모이고, 물과 풀을 따라 거처를 옮기니, 중원의 우환이 된 자들이 모두 이와 같은 무리들입니다. 역대 왕조들이 그들을 몰아내려 했으나, 끝내 제압하지 못하였습니다. 비록 저희 나라가 북쪽으로 유중(榆中)을 개척하고, 멀리 한해(瀚海)에까지 이르렀으나, 지략이 뛰어난 신하와 용맹한 장수들이 모두 힘을 다하여도 결국 피로해졌을 뿐으로, 오랑캐는 도망치고 중원은 지쳐버리는 형국이었습니다. 그때의 현명하고 명철한 이들은 천도의 이치를 깊이 생각하고, 생민(生民)의 습속을 살폈습니다. 중원의 백성들은 곡식을 먹고 성읍에 거주하며, 누에를 쳐 비단을 입고 학문을 익히며 느긋하게 걷습니다. 반면 변방의 오랑캐들은 날것을 먹고 피를 마시며, 새처럼 떠돌고 짐승처럼 거처합니다. 이들을 직접 비교하여 각각에 맞는 방어책을 세우는 것이 마땅합니다. 성곽을 튼튼히 하는 것이 일시적인 고생이지만, 길게 보면 영구적인 편안함이 될 것입니다.

황위(皇魏)가 평성(平城)을 도읍으로 삼은 이후 천하를 위압하고 덕망으로 온 세상을 감싸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도읍을 성주(成周, 낙양)로 옮겨 북방과의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그 틈을 타 여러 오랑캐들이 북쪽 국경을 위협하고, 고차족이 외부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며, 연이어 가뭄과 기근이 닥쳐 병력과 군마가 십중팔구 부족한 상황입니다. 작년에 다시 음산(陰山)에 진을 쳤으나, 모든 것이 허물어졌습니다. 이에 상서랑중(尚書郎中) 한정(韓貞), 송세량(宋世量) 등을 파견하여 요충지를 점검하고, 방어하기 좋은 지형을 확인하게 했습니다. 이때 그들은 회수(淮水)의 옛 진(鎭)의 동서 지역이 서로 마주 보도록 하여, 세력을 연결하고 성을 쌓아 수비대를 배치하며, 병력을 요충지에 나누어 배치하고 농사를 장려하여 곡식을 비축함으로써, 유사시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군사적 위세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또한 북방의 사막은 여름철에 물과 풀이 부족합니다. 가끔 작은 샘이 있지만 대군을 유지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만약 오랑캐들이 예상치 못한 공격을 감행한다면, 반드시 가을과 겨울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들이 움직이려면 구름 낀 날을 이용해야 하지만, 겨울이 되면 모래가 얼어붙어 기병이 공격하기 어려워지고, 성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오는 것도 불가능해집니다. 이처럼 대비하면 북방의 근심이 사라질 것입니다."
선무제가 이를 받아들였고, 이후로 북방 변경에 위치한 아홉 개의 성채가 이에 해당한다. 이후 원회는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으로 승진하였다.

정시 2년(505년) 12월, 무흥(武興)의 저족왕 양소(楊紹)의 숙부가 반란을 일으키자, 선무제는 이 틈을 타 원회를 사지절•시중•도독평저제군사(都督平氐諸軍事)로 삼아 저족을 토벌하게 하였다. 원회는 사태의 변화에 따라 군대를 마음대로 지휘할 수 있는 전권을 부여받았으며, 형만(邢巒)과 이환(李煥)도 그의 지휘에 따르도록 되어 있었다.

정시 3년(506년) 6월, 원회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63세. 선무제는 동위(東圍)의 비기(秘器), 조복(朝服) 한 벌, 의복 한 벌, 돈 20만 전, 베 700필, 밀랍 300근을 하사하고, 사도(司徒)•기주자사(冀州刺史)로 추증하였다. 이부상서 노창(盧昶)이 아뢰었다.
"태상시(太常寺)의 논의에 따르면, 원회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지녔으며, 공평하고 정직한 기풍을 가졌으니, 시법(謚法)에 '부드럽고 곧으며 생을 마친 자는 '정(靖)'이라 한다'고 하였으므로 '정공(靖公)'이라 시호를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습니다.

사도부(司徒府)의 논의에 따르면, 원회는 섬서(陜西)의 목(牧)으로 재임할 때 백성들에게 은혜로운 교화를 베풀었으며, 조정에서는 단정하고 충직한 보좌 역할을 수행하였으니, 시법에 '덕을 베풀고 올바른 의견을 주장한 자는 '목(穆)'이라 한다'고 하였으므로, '목공(穆公)'이라 시호를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습니다."
이에 선무제가 말했다.
"사도부와 태상시의 견해가 다르나, 모두 만족스럽지는 않다. 시법에 '백성을 사랑하고 널리 나눠주는 자는 '혜(惠)'라 한다'고 하였으니, '혜공(惠公)'이라 시호를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
이리하여 원회의 시호는 '혜공(惠公)'이라 하였다.

원회는 성품이 관대하고 간략하며, 번잡한 세부적인 일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늘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귀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세상을 다스릴 때에는 큰 줄기를 잡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지, 어찌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신경 쓸 필요가 있겠는가? 이는 마치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외관이 높고 웅장하며, 기둥과 들보가 반듯하고, 기초와 벽이 견고하여 바람과 비가 새어 들어오지 않으면 충분한 것이다. 대패질이 고르지 못하고 깎아낸 부분이 정밀하지 못하다고 해서, 그것이 집의 결함이 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하였다. 또한 본인은 술을 마시지 않았으나, 다른 사람들에게 술을 대접하는 것을 즐겼으며, 손님과 벗을 맞이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음악을 좋아하여 정묘한 음률에 능하였으며, 백발이 된 이후에도 연회나 한가로운 시간에는 스스로 악기를 연주하곤 하였다.

원회에게는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고, 장남 원규(源規)가 작위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