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1012e, #01013a 20%, #01013a 80%, #01012e); color: #ffc224; min-height: 34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조지 1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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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월폴 | 스펜서 컴프턴 | 헨리 펠럼 | 토머스 펠럼홀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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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캐번디시 | 토머스 펠럼홀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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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윌리엄 피트 | 오거스터스 피츠로이 | 프레더릭 노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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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1013a><colcolor=#ffc224> | |||
출생 | 1759년 5월 28일 |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런던 헤이스 | |||
사망 | 1806년 1월 23일 (향년 46세) | ||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런던 퍼트니 | |||
재임기간 | 제26대 재무장관 | ||
1782년 7월 10일 ~ 1783년 3월 31일 | |||
제16대 총리 | |||
1783년 12월 19일 ~ 1801년 3월 14일 | |||
제28대 재무장관 | |||
1783년 12월 19일 ~ 1801년 3월 14일 | |||
제18대 총리 | |||
1804년 5월 10일 ~ 1806년 1월 23일 | |||
제30대 재무장관 | |||
1804년 5월 10일 ~ 1806년 1월 23일 | |||
서명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1013a><colcolor=#ffc224> 부모 | 父: 대(大) 윌리엄 피트 母: 헤스터 그렌빌 | |
배우자 | 없음 | ||
자녀 | 없음 | ||
학력 | 케임브리지 대학교 펨브록 컬리지 (인문학 / 석사) | ||
종교 | 성공회 | ||
최종 당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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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제16, 18대 총리. 영국 최초의 부자 총리이자 최연소 총리였다. 나폴레옹의 프랑스를 상대로 대영제국의 패권과 위신을 지켜냈으며 팍스 브리타니카의 초석을 닦은 지도자였다.2. 생애
1759년, 잉글랜드 켄트 주의 하이즈에서 아버지 대(大) 윌리엄 피트와 어머니 헤스터 그렌빌[1]의 3남 2녀 중 넷째, 아들 중에선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병약하였다고 한다.케임브리지 대학교 펨브로크 컬리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고, 정계에 진출해 22세에는 서민원 의원이 되었으며 휘그당에서 찰스 제임스 폭스와 대립하여 갈라져 나와 토리당의 당수가 되었고, 당수로서 1783년 12월 24세의 나이에 영국 최연소 수상이 된다. 이때만 해도 사실상 정치 신인이 운좋게 정권을 잡은거라 피트의 안티들은 어린 그가 뭘 할 수 있겠냐며 내각도 금방 무너질 것이라는 식으로 비웃었지만, 세간의 예상과 달리 그는 17년간 정권을 잡는다.[2] 1792년 프랑스 혁명전쟁 이후부턴 휘그-토리 거국 내각을 이끌었다. 1801년 수상직에서 물러났으나 1804년 다시 선임되어 2기 임기를 시작하였고 1806년 1월 사망할 때까지 역임했다. 재무장관을 겸직하기도 하였다.
피트가 재임한 조지 3세의 재위기간 동안 유럽에서는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전쟁과 같은 큰 사건들이 있었다. 피트는 이런 전쟁들과 미국 독립 전쟁 이후 식민지 무역 단절 등으로 국가부채가 쌓인 영국의 경제를 재건하는데 힘썼다. 자유무역을 선호한 그는 프랑스 등과 낮은 관세로 협정을 맺었으며, 여러 간접세를 도입했고, 1799년에는 연 200파운드 이상 수입에 대해서 10%의 소득세를 도입해서 전쟁 비용을 충당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피트는 대프랑스 동맹의 중심이 되어 국내의 개혁 운동과 아일랜드 반란을 진압했다. 1801년 아일랜드 합병 과정에서 가톨릭 해방을 주장하다 이를 거부한 조지 3세와 사이가 멀어져 물러났지만, 새 내각의 실패로 1804년 다시 수상이 되었다. 그러나 거국 일치 내각은 지지부진했고, 1805년 10월 트라팔가 해전에서 호레이쇼 넬슨의 활약으로 큰 승리를 거뒀음에도 대프랑스 동맹은 12월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대패하고 만다.
이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후[3] 2개월이 채 안되어, 젊다면 젊은 40대 중후반의 나이에 사망했다. 물론 이 충격만으로 쇼크사했다기보단, 오랜 공직 생활에서 이미 누적된 과로에다가 평소 과도한 음주 등이 겹쳐 건강이 꽤 나빠진 상태에서 유럽 전선의 암울한 전망까지 겹쳐지자 심신이 버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세상과 하직하기 전 "지도를 치우게. 앞으로 10년 동안은 필요없을 거야."라고 탄식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유럽 전체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손아귀에 들어갈테니, 굳이 지도로 국경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 영국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이기고, 로스차일드 가문이 대불동맹 각국에 사실상 무기한으로 빌려준 막대한 자금 지원을 끼고도 대륙의 판세가 한방에 나폴레옹에게 넘어갔으니 충격을 안 받는 것이 더 이상하다.
3. 대중매체에서
- 윌리엄 윌버포스의 일대기를 다룬 2000년대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에선 윌버포스의 절친이자 지원군으로 등장해 의회에서 윌버포스의 노예제 폐지운동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인다. 배우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맡았다. 실제 피트는 윌버포스의 영국 흑인 노예제 폐지운동을 돕다가 끝을 못보고 사망했는데, 그가 사망하고 1년 후인 1807년 영국의 노예무역이 폐지되었고, 1833년에는 노예제 자체가 폐지된다.
- 나폴레옹 토탈워에서는 시작시 영국의 외무장관으로 등장한다. 다만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인물임에도 능력치는 3성, 평균에 불과하다. 아무래도 나폴레옹 전쟁 국면에선 큰 업적이 없는터라 그런 것으로 보인다.
[1] 8대 총리 조지 그렌빌의 여동생이다. 사촌인 윌리엄 윈덤 그렌빌 또한 19대 총리이다.[2] 이는 당시 영국 정계의 복잡한 상황과도 연관이 있는데, 일단 휘그당이 수십년 장기집권하던 시대가 마감되고 1770년 휘그당에서 나온 프레더릭 노스가 총리에 취임했지만 미국 독립 전쟁 등으로 민심이 악화되자 사퇴했다 얼마 안가 휘그당의 찰스 제임스 폭스와 연합해 이른바 폭스-노스 연합 정권으로 내각에 다시 들어오게 되는데, 급진적인 공화주의자였던 폭스를 싫어한 왕권강화주의자 조지 3세는 노스에게도 분노해 1783년 당시 정치 신인이라 할 수 있는 소 피트를 수상에 임명하는 정치적 모험수를 둔다. 허나 피트의 지지층은 의회내에서 소수였고 폭스와 노스의 지지자들은 당연히 이를 위헌이라고 생각해 수상임명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안을 계속해서 통과시킨다. 허나 이게 일종의 어그로를 끌었는지 어쨌는지 부패 스캔들까지 터져 휘그당이 쪼그라드는 1784년 선거를 기점으로 피트주의자들은 의회 다수파가 되고, 이후 찰스-노스 세력 vs 피트 세력간의 싸움이 18세기 내내 지속된다.[3] 아우스터리츠 전투 소식을 듣고는 24시간 동안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고 하며, 이를 딴 아우스터리츠 안색이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