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UEFA 유로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2px -12px"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1960 프랑스 | 1964 스페인 | 1968 이탈리아 | 1972 벨기에 | 1976 유고슬라비아 | |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
1980 이탈리아 | 1984 프랑스 | 1988 서독 | 1992 스웨덴 | 1996 잉글랜드 | |
11회 | 12회 | 13회 | 14회 | 15회 | |
2000 벨기에·네덜란드 | 2004 포르투갈 | 2008 오스트리아·스위스 | 2012 폴란드·우크라이나 | 2016 프랑스 | |
16회 | 17회 | 18회 | 19회 | 20회 | |
2020 분산 개최[1] | 2024 독일 | 2028 영국·아일랜드 | 2032 이탈리아·튀르키예 | 미정 | |
[1] 2021년 개최 | |||||
같이 보기: 역대 AFC 아시안컵, 역대 코파 아메리카, 역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역대 CONCACAF 골드컵, 역대 OFC 네이션스컵 | }}}}}}}}} |
UEFA 유로 2000 | ||
UEFA EURO 2000 Europees kampioenschap voetbal 2000 Championnat d'Europe de football 2000 Fußball-Europameisterschaft 2000[1] | ||
대회기간 | 6월 10일 ~ 7월 2일 | |
개최국 | 벨기에 네덜란드 | |
본선 진출팀 | 16개팀 | |
{{{#fff 대회 결과 }}} | ||
우승 | 프랑스 (2번째 우승) | |
준우승 | 이탈리아 | |
{{{#fff 수상 }}} | ||
MVP | 지네딘 지단 | |
득점왕 |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사보 밀로셰비치 (5골) | |
{{{#fff 연표 }}} | ||
이전 대회 | UEFA 유로 1996 (잉글랜드) | |
다음 대회 | UEFA 유로 2004 (포르투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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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제가인 E-Type의 Campione 2000. 이 주제가는 역대 최고의 유로 대회로 꼽히는 이 대회의 명성에 걸맞게 역대 최고의 주제가로 평가받고 있다.
2000년 6월 10일부터 동년 7월 2일까지 열린 11번째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대회 최초로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공동 개최하였으며 우승국은 프랑스였다.
개최국 벨기에가 조별리그[2]에서 탈락(12위)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조별리그 창설이래 최초로 개최국이 2라운드 실패다. 반면에 공동 개최국 네덜란드는 무난히 준결승에 진출하면서 희비가 교차하였다. 독일은 1998 월드컵의 부진을 계속해서 이어가며 조 4위 탈락(15위)의 수모를 당하며 최저점을 찍었다. 반대로 프랑스는 1998년 월드컵 우승 이후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하며 아트 사커의 전성시대를 열었다.[3]
명승부가 많았고 다양한 개성과 수준 높은 전술을 가진 팀들을 볼 수 있었던 역대 최고의 유로 대회로 꼽힌다.
2. 개최지
유로 역사상 최초로 2개국에서 공동으로 개최되었다. 네덜란드의 4개 도시 로테르담, 암스테르담, 아인트호벤, 아른험, 벨기에의 4개 도시 브뤼셀, 브뤼헤, 리에주, 샤를루아에서 개최되었다. 개막전은 벨기에 브뤼셀의 보두앵 경기장(RSC 안데를레흐트의 홈 경기장), 결승전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더 카위프(페예노르트의 홈 경기장)에서 열렸다.국가 | 도시 | 경기장 | 수용인원 |
벨기에 | 브뤼셀 | 보두앵 국왕 경기장[4] | 50,000명 |
브뤼헤 | 얀 브레이덜 스타디온 | 30,000명 | |
리에주 | 스타드 모리스 뒤프란 | 30,000명 | |
샤를루아 | 스타드 뒤 페이 드 샤를루아 | 30,000명 | |
네덜란드 | 로테르담 | 스타디온 페예노르트 | 51,000명 |
암스테르담 | 암스테르담 아레나 | 52,000명 | |
에인트호번 | 필립스 경기장 | 33,000명 | |
아른험 | 헬러돔 | 30,000명 |
3. 예선[지역예선] 및 본선[16개팀] 조 편성
1998년부터 진행된 예선은 개최국인 네덜란드, 벨기에를 제외하고 50개 팀이 5~6팀씩 9개 조로 나뉘어서 1위와 2위 중 가장 승점이 높은 한 국가는 본선 직행이고 나머지 2위 8개팀은 서로 홈 앤드 어웨이 플레이오프를 해서 이긴 팀이 16개국 본선 유로에 가는 방식이다. 그 결과 16개국 본선 유로 진출국은 아래와 같았다.각 조 1위: 이탈리아(1조 1위), 노르웨이(2), 독일(3), 프랑스(4), 스웨덴(5), 스페인(6), 루마니아(7), 유고슬라비아(8), 체코(9)
각 조 2위: 포르투갈(2위 중 최고 승점, 7조 2위), 덴마크(1)[7], 슬로베니아(2)[8], 튀르키예(3)[9], 잉글랜드(5)[10]
각 조 2위: 포르투갈(2위 중 최고 승점, 7조 2위), 덴마크(1)[7], 슬로베니아(2)[8], 튀르키예(3)[9], 잉글랜드(5)[10]
가장 큰 이변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3위로 마친 크로아티아가 16개국 본선에 진출 실패한것이다.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와 아일랜드하고 붙었으나, 플레이오프조차 못오르고 탈락하였다.
월드컵, 유로 사상 처음으로 3개의 노르딕 국가가 진출한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였지만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깨졌다. 또한 21년 뒤에 북마케도니아가 사상 처음으로 유로 본선에 진출할 때까지 유로에서 구유고 출신 나라 2개 이상 진출이자 非크로아티아 국가가 진출한것도 마지막.
시드 배정은 아래와 같았다. (점수 순 정렬. 개최국은 시드 1 배정)
시드 1 | 시드 2 | 시드 3 | 시드 4 |
독일 | 체코 | 프랑스 | 덴마크 |
벨기에 | 노르웨이 | 이탈리아 | 잉글랜드 |
스페인 | 루마니아 | 포르투갈 | 슬로베니아 |
네덜란드 | 스웨덴 | 유고슬라비아 | 튀르키예 |
그 결과 아래와 같은 조 편성이 나왔다.
A조 | B조 | C조 | D조 |
독일 | 벨기에 | 스페인 | 네덜란드 |
루마니아 | 스웨덴 | 노르웨이 | 체코 |
포르투갈 | 이탈리아 | 유고슬라비아 | 프랑스 |
잉글랜드 | 튀르키예 | 슬로베니아 | 덴마크 |
4. 참가팀 정보
자세한 내용은 UEFA 유로 2000/참가팀 정보 문서 참고하십시오.5. 대회 진행
5.1. 조별 리그[16강]
5.1.1. A조
팀명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승점 | 결과 | |
포르투갈 | 3 | 0 | 0 | 7 | 2 | +5 | 9 | 8강 | |
루마니아 | 1 | 1 | 1 | 4 | 4 | 0 | 4 | 8강 | |
잉글랜드 | 1 | 0 | 2 | 5 | 6 | -1 | 3 | 탈락 | |
독일 | 0 | 1 | 2 | 1 | 5 | -4 | 1 | 탈락 |
유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은 첫 경기 루마니아와 1-1로 비기며 불안하게 시작하였다. 2경기에서 잉글랜드 앨런 시어러에게 골을 먹히며 0-1로 패했고, 3차전 포르투갈에게는 세르지우 콘세이상에게 해트트릭을 내주며 허무하게 탈락(15등)해 버림으로서[12] 프랑스 월드컵부터 이어진 하향세의 최저점을 찍는다. 경기 영상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13]이 이끈 포르투갈은 황금세대였던 루이스 피구, 세르지우 콘세이상, 후이 코스타 등이 맹활약하며 3전 전승으로 16강 조 1위를 기록, 8강에 안착하였다.[14] 특히 전반 초반부터 폴 스콜스와 스티브 맥마나만에게 연속골을 먹고[15] 끌려가던 1차전 잉글랜드전을 피구의 환상 중거리포와 루이 코스타의 2어시스트로 3-2로 뒤집으며 전유럽에 황금 세대의 위용을 선보였다. 선수 생활 최후의 불꽃을 태우던 게오르게 하지가 이끈 루마니아는 2차전 포르투갈에게 경기 종료직전 추가시간에 코스티냐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0-1로 패배하여 마지막 3차전에서 반드시 이겨야 8강에 진출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정신적 지주 게오르게 하지마저 경고누적으로 3차전에 결장했다. 루마니아는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전반 키부의 선제골 이후 시어러의 페널티킥 동점골과 오웬의 역전골로 탈락 위기에 몰렸지만 후반 시작하자마자 잉글랜드 골키퍼 나이젤 마틴의 실수를 틈타 문테아누가 동점골에 성공했고 후반 막판에 필립 네빌로부터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비오렐 가네아가 극적인 페널티골을 넣으며 3-2 역전승에 성공해 조 2위로 8강에 진출하였다. #
결국 탑시드이자 유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이 조 최하위로 탈락(15등)하며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나마 독일과 함께 8강행이 유력했던 루마니아가 그들의 1승 제물로 유력했던 잉글랜드[16]를 3위로 밀어버리며 체면치레를 했다. 또한 A조에서 최약체로 평가받던[17] 포르투갈이 자신보다 체급이 높은 강호들을 줄줄이 격파하고 16강 조 1위로 8강에 진출하며 세계 축구계에 우승후보에 해당하게 되는 계기가 된 대회이기도 하다.
5.1.2. B조
팀명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승점 | 결과 | |
이탈리아 | 3 | 0 | 0 | 6 | 2 | +4 | 9 | 8강 | |
튀르키예 | 1 | 1 | 1 | 3 | 2 | +1 | 4 | 8강 | |
벨기에 | 1 | 0 | 2 | 2 | 5 | -3 | 3 | 탈락 | |
스웨덴 | 0 | 1 | 2 | 2 | 4 | -2 | 1 | 탈락 |
사실상 탑시드 이탈리아는 3승으로 무난히 조별리그를 통과하였다. 더불어서 UEFA 컵을 거머쥔 갈라타사라이 SK의 멤버들이 주축에 포진한 튀르키예는 8강에 진출하며 만만치 않은 전력임을 보였다.
그런데, 정작 개최국 벨기에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참사를 일으키고 말았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스웨덴에게 2-1로 승리하며[18] 무난히 다음 라운드로 갈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2차전에 이탈리아에게 0-2로 패하며 불안감을 조성하였다. 3차전 튀르키예전에는 무난히 이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0:2로 지면서 조별리그 창설 이래 최초로 개최국이 탈락하였다. 대회 전부터 지적받았던 허약한 수비력[19]이 문제였다.[20][21]
스웨덴은 그저 지못미..
5.1.3. C조
팀명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승점 | 결과 | |
스페인 | 2 | 0 | 1 | 6 | 5 | +1 | 6 | 8강 | |
유고슬라비아 | 1 | 1 | 1 | 7 | 7 | 0 | 4 | 8강 | |
노르웨이 | 1 | 1 | 1 | 1 | 1 | 0 | 4 | 탈락 | |
슬로베니아 | 0 | 2 | 1 | 4 | 5 | -1 | 2 | 탈락 |
전통의 강호 두 팀과 유로 데뷔전을 치른 두 팀(슬로베니아, 노르웨이)이 한 조에 묶였다.
축구 국제대회 조별리그 역사상 이보다 더 막장인 조는 없었다로 요약 가능하다.
1차전부터 어메이징이 난무했다. 톱 시드 스페인은 몰리나 골키퍼의 어이없는 실수로 노르웨이의 이베르센에게 헤딩골을 허용해 0-1로 패하며 어렵게 출발하였다.
뒤이어 과거 한 나라였던 유고슬라비아와 슬로베니아는 경기 전부터 각종 신경전을 주고받더니[22] 경기 내내 파울을 주고받으며 47개의 반칙을 함께 범한다. 슬로베니아는 팀의 에이스 즐라트코 자호비치의 두 골, 그리고 미란 파블린의 한 골에 힘입어 3-0으로 앞서나갔고.[23] 심지어 후반 15분에는 유고 측에서는 시니샤 미하일로비치가 퇴장까지 당했다. 누가 보기에도 게임은 끝난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후반 22분부터 후반 30분 사이에 수적 열세의 유고슬라비아가 세 골을 몰아넣는다![24] 조별리그 경기 중 하나뿐인지라 두고두고 회자되는 경기는 아니지만 경기 자체로만 보면 이스탄불의 기적은 훌쩍 넘어선 기적.
그리고 두 팀은 24년이 흘러 유로 2024에서 다시한번 붙게 된다.
기세를 몰아 유고는 2차전 노르웨이전을 1-0으로 승리하며 조 선두로 나서고, 다 잡은 경기를 놓친 슬로베니아는 스페인에게 2-1로 패하며 조 최하위로 몰린다.
이로서 승점은 유고 4점, 노르웨이와 스페인은 각각 3점, 슬로베니아 1점인 상황.
운명의 3차전, 노르웨이-슬로베니아 전은 양팀 모두에게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경기임에도 0-0의 졸전이 벌어졌고, 스페인은 비기면 승점이 노르웨이와 같은데, 승자승 원칙을 우선시하던 이 당시의 룰 때문에 비기면 탈락하게 되므로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결과가 나온다.
스페인-유고 경기는 '유고 골 - 스페인 골 - 유고 골 - 스페인 골 - 유고 골'로 진행되며 쫄깃한 시소를 타며 3-2 유고 리드 상황에서 인저리 타임에 접어든다. 그리고..... 스페인은 인저리타임에 페널티킥 한골, 필드골 한 골로 두 골을 넣으며 역전한다. 가이스카 멘디에타가 페널티킥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추가시간 5분이 주어진 상황에서 4분 50초가 지난 순간, 후방에서 펩 과르디올라가 정교한 롱패스를 연결했고, 이스마엘 우르사이스[25]가 이 공을 떨구자 교체로 들어갔던 스트라이커 알폰소 페레스가 하프발리슛으로 결승골을 뽑아낸 것. 이 어메이징한 마무리 덕택에 스페인은 탈락 위기에서 조 1위로 껑충 뛰어오르며 8강에 진출한다.
여담으로 유고는 3경기 모두 레드카드를 받은 선수가 나왔다. 그리고 노르웨이는 유로 2000을 끝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5.1.4. D조
팀명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승점 | 결과 | |
네덜란드 | 3 | 0 | 0 | 7 | 2 | +5 | 9 | 8강 | |
프랑스 | 2 | 0 | 1 | 7 | 4 | +3 | 6 | 8강 | |
체코 | 1 | 0 | 2 | 3 | 3 | 0 | 3 | 탈락 | |
덴마크 | 0 | 0 | 3 | 0 | 8 | -8 | 0 | 탈락 |
역대급 죽음의 조.
죽음의 조로 꼽혔던 D조였지만 우승 후보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2경기 만에 나란히 8강에 진출하면서 일찍이 교통정리가 되었다. 개최국 네덜란드는 체코와 덴마크 뿐만 아니라 프랑스까지 꺾으며 조 1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프랑스 역시 덴마크와 체코를 이겼지만 주전들을 대거 제외한 채 1.5군으로 임했던 네덜란드전에서는 2-3으로 패하면서 조 2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하였다.[26] 장신 골잡이 얀 콜레르와 월드클래스로 발돋움하고 있던 파벨 네드베드가 버티며 당시 FIFA 랭킹 2위까지 올랐던 체코는 세계 최강 반열의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상대로 초접전을 펼쳤지만 두 경기 모두 석패하며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프랑스 월드컵 8강 진출팀 덴마크는 무기력한 3패 탈락(16위)을 당하며 1998년 은퇴한 미카엘 라우드루프과 브리안 라우드루프 형제의 공백을 절감해야 했다.
5.2. 결선 토너먼트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A | 8강 1경기 튀르키예 0:2 포르투갈 | E | 4강 1경기 포르투갈 1:2 프랑스 | G | 결승 프랑스 2:1 이탈리아 |
B | 8강 2경기 스페인 1:2 프랑스 | ||||
- | |||||
C | 8강 3경기 네덜란드 6:1 유고슬라비아 | F | 4강 2경기 네덜란드 0:0(1:3) 이탈리아 | ||
D | 8강 4경기 이탈리아 2:0 루마니아 |
5.2.1. 8강
5.2.1.1. 1경기 튀르키예 0-2 포르투갈
튀르키예의 돌풍은 여기까지였다. 포르투갈은 누누 고메스가 44분, 56분에 골을 넣으며 2-0으로 승리하였다.튀르키예는 전반 29분 알파이 외잘란이 페르난두 쿠투에게 주먹을 휘둘러 다이렉트 퇴장을 당했고 전반 종료직전 얻어낸 PK로 동점골을 만들 기회가 왔으나 아리프의 슛이 비토르 바이아 골키퍼에게 막혔다. 이 두 가지 악재만 없었다면 최소 대등한 경기는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5.2.1.2. 2경기 이탈리아 2-0 루마니아
영원한 우승후보 카테나치오의 이탈리아는 프란체스코 토티가 33분에 골을 넣고, 필리포 인자기가 43분에 골을 넣으며 무난하게 4강에 진출하였다. 루마니아는 유로 사상 최초의 1라운드 통과에 고무되어 선수 전원이 자국의 상징색인 금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8강에 임했으나 인상적인 경기를 보여 주지는 못했다. 수비의 핵 포페스쿠를 부상으로 잃고, 단 페트레스쿠, 코스민 콘트라, 아드리안 일리에 등 주전 3명을 경고누적으로 잃으면서 타격이 컸다. 그리고 이는 게오르게 하지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되었고[27], 이후 루마니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다. 그리고 이 경기는 루마니아 황금세대의 마지막 경기가 됐고 이후 20년 넘게 메이저대회 본선에 2번만 진출하고 두 번 모두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하는 암흑기를 맞이했다.5.2.1.3. 3경기 네덜란드 6-1 유고슬라비아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의 공격력은 무서웠다. 파트릭 클라위버르트는 해트트릭을 달성하였고, 상대팀의 자책골과 빠른 윙어 마르크 오버르마르스의 2골을 묶어 유고슬라비아에게 6:1 대승을 거뒀다.[28]안 그래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독립하여 90년대 초의 최강 전력에서 내려온 유고슬라비아는 유로 2000 이후 또 다시 민족 문제가 발생하며 몬테네그로와 코소보까지 독립, 세르비아만 남게 되어 예전의 강인함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유고슬라비아는 8강 탈락했지만 조별 리그에서 맹활약했던 유고의 간판 골잡이 사보 밀로셰비치가 2경기를 덜 치르고도 클루이베르트와 더불어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그리고 이는 세르비아가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으로 치른 마지막 국제대회 경기가 되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탈락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4년 뒤..
5.2.1.4. 4경기 스페인 1-2 프랑스
98년 월드컵 우승의 프랑스는 강했다. 지네딘 지단이 32분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넣으며 프랑스가 앞서갔다. 가이스카 멘디에타가 39분 페널티로 골을 넣으며 동점을 만들었지만 5분 뒤 유리 조르카에프가 결승골을 넣었다. 그런데 후반 90분 프랑스의 골키퍼 파비앵 바르테즈가 반칙을 범하며 스페인에게 페널티킥이 주어졌다. 스페인은 동점을 만들며 또 한번 극장경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나 멘디에타가 경기중 교체되었기에 대신 키커로 나선 라울 곤살레스가 찬 공이 허공으로 날아가버렸다. 또한 교체투입된 우르사이스의 헤딩도 허공으로 날아갔다. 결국 더 이상의 상황변화없이 프랑스가 2-1로 승리했다.5.2.2. 4강
5.2.2.1. 1경기 포르투갈 1-2 프랑스
먼저 누누 고메스가 19분에 선제골을 넣으며[29] 포르투갈이 앞서갔다. 51분 티에리 앙리가 골을 넣으며 원점을 만들었고, 전후반에 경기가 끝나지 않아 이번대회 처음으로 연장전에 돌입하였다. 다 끝나갈 무렵인 117분 페널티킥을 얻었고, 지단이 성공하며 이 골이 골든 골이 되어 경기가 종료되었다. 페널티킥이 선언되는 과정[30]에서 루이스 피구는 판정에 항의하며 유니폼을 벗고 경기장에서 스스로 퇴장하고, 지단은 유유히 슛을 성공시키고 팀을 결승으로 안착시켰다.[31]
5.2.2.2. 2경기 네덜란드 0-0 (PSO 1-3) 이탈리아
대회 직전 주전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이 부상으로 빠진 이탈리아는 프란체스코 톨도가 계속해서 주전으로 출전했고, 특히 이 경기에서 영웅이 되었다. 전반 33분 잔루카 잠브로타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한 이탈리아는 안그래도 막강한 네덜란드의 파상공세를 막아내느라 수세에 가까웠는데 수적으로도 밀리게 되자 대놓고 수비만 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는 슈팅수 21:4로 네덜란드의 압도적 우위.
그러나 전후반, 연장전까지 120분 동안 네덜란드는 공격만 주구장창 하고 이탈리아는 수비만 주구장창하는데도 네덜란드는 골을 넣지 못했다.[32]
단순히 공격이 허접해서 골이 안터지는 거였다면 재미없는 경기였겠지만 절정의 폼을 자랑하던 오버르마르스, 젠던, 베르캄프, 클라위버르트가 보여주는 패스, 돌파, 슛 모두 하나하나 다 날카롭고 위협적인데, 그걸 다 막아서는 파올로 말디니, 파비오 칸나바로, 알레산드로 네스타가 보여주는 극한의 수비축구는 그야말로 탄성을 자아냈다.[33] 심지어 네덜란드는 경기 중 PK를 2개나 얻었고, 각각 주장 프랑크 더부르와 파트릭 클라위버르트가 찼는데 더부르의 페널티는 톨도에게 막혔고, 클라위버르트의 페널티는 골포스트를 맞고 나왔다.
결국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고, 골키퍼 톨도는 120분 동안 모든 슈팅을 막아내고도 승부차기에서까지 선방쇼를 펼쳐 스타덤에 올랐다. 클루이베르트는 경기 중 실패했던 페널티킥을 승부차기에서 만회했지만[34], 다시 한 번 막힌 프랑크 더부르와 골대를 넘겨버린 야프 스탐의 실축으로 그 빛이 바랬다.
국내 유로 2000 결산 방송에서는 네덜란드의 마지막 키커 보스펠트가 킥하는 순간 "'오늘의 주인공은 톨도였다'"는 멘트를 남겼는데, 그게 정말 이 경기를 정리하는 한 마디가 되어버렸다.
결국 승부차기 전패를 기록하고 있던 양팀 중 이탈리아가 먼저 그 징크스를 벗어나게 되었다.[35] 카테나치오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경기로 제일 먼저 꼽히는 명경기.
덧붙여 카드가 굉장히 많이 나왔는데 파울도 파울이지만, 할리우드 액션과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경고받은 선수들도 많았다.
경기 풀영상
5.2.3. 결승전 프랑스 2-1 이탈리아
- 결승전 선발명단
EURO 2000 FINAL | |||||||||||
프랑스 선발명단 (4-2-3-1) | |||||||||||
감독 : 로저 르메르 | |||||||||||
FW 12. 티에리 앙리 | |||||||||||
MF 21. 크리스토프 뒤가리 | MF 10. 지네딘 지단 | MF 6. 유리 조르카에프 | |||||||||
MF 7.디디에 데샹 | MF 4. 파트리크 비에라 | ||||||||||
DF 3. 비셴테 리사라수 | DF 8. 마르셀 드사이 | DF 5. 로랑 블랑 | DF 15. 릴리앙 튀랑 | ||||||||
GK 16. 파비앵 바르테즈 | |||||||||||
이탈리아 선발명단 (5-3-2) | |||||||||||
감독 : 디노 조프 | |||||||||||
FW 20. 프란체스코 토티 | FW 21. 마르코 델베키오 | ||||||||||
MF 18. 스테파노 피오레 | MF 14. 루이지 디 비아조 | MF 4.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 |||||||||
DF 3. 파올로 말디니 | DF 11. 잔루카 페소토 | ||||||||||
DF 15. 마르크 율리아노 | DF 13. 알레산드로 네스타 | DF 5. 파비오 칸나바로 | |||||||||
GK 12. 프란체스코 톨도 |
UEFA EURO 2000 결승전 2000. 07. 02. (일) 20:00 (UTC+1, CEST) 대한민국 표준시(UTC+9) 기준: 2000. 07. 03. (월) 04:00 | ||
스타디온 페예노르트 (네덜란드, 로테르담) | ||
주심: 안데르스 프리스크 | ||
2 : 1 | ||
프랑스 | 이탈리아 | |
90+3' [[실뱅 윌토르|{{{#000000,#dddddd 실뱅 윌토르}}}]] 103' [[골든골|{{{#f90,#dddddd (골든골)}}}]] [[다비드 트레제게|{{{#000000,#dddddd 다비드 트레제게}}}]] | 55′ 마르코 델베키오 | |
MOM: 프란체스코 토티 | ||
관중: 51,112명 |
프랑스가 경기에서 우세한 모습을 보이며 승리할거란 예상이 꽤 많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이탈리아는 생각보다 크게 밀리지 않았고 오히려 날카로운 공격은 이탈리아가 더 많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선제골도 55분 페소토의 크로스를 깜짝 선발로 기용된 델베키오가 넣으며 이탈리아가 앞섰다.[36] 이후 프랑스는 더 강력하게 공격했지만 이탈리아는 특유의 카테나치오 수비를 보이며 우세한 경기를 이어가 1-0 승리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델 피에로가 계속된 프랑스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버릴 수 있는 두번의 절호의 찬스를 남김없이 계속 말아먹은 끝에 후반 추가시간 4분에 윌토르에게 골을 허용하며 이탈리아로서는 원치 않았던 연장전에 돌입하였다.[37]
경기는 연장전으로 돌입하였고 연장 전반이 끝나갈 무렵인 103분 경. 교체로 들어왔던 로베르 피레스가 왼쪽 측면을 돌파한 후 크로스 하였고, 역시 교체 투입된 트레제게가 이를 발리로 꽂아넣으며 대회의 마침표를 찍었다.[38] 이로서 프랑스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에 이어 곧바로 2000년 유로 정상에 오르며 아트 사커 시대를 열었다.
또한 이 경기는 이탈리아 축구선수 프란체스코 토티의 대활약으로 유명하다. 유로 2000의 주인공은 지단이지만 유로 2000 결승전의 주인공은 토티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러 번의 킬패스로 프랑스 수비진을 괴롭혔다.[39] 이후 토티는 아주리 10번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하게 된다.
유니폼
프랑스 : 파란색 파란색 빨간색
이탈리아 : 하얀색 하얀색 하얀색
해당 골 장면 경기 풀영상
5.3. 우승
UEFA 유로 2000 우승 |
프랑스 (두 번째 우승) |
6. 최종 순위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1 | 프랑스 | 6 | 5 | 0 | 1 | 13 | 7 | +6 | 15 | 우승 |
2 | 이탈리아 | 6 | 4 | 1 | 1 | 9 | 4 | +5 | 13 | 준우승 |
3 | 네덜란드 | 5 | 4 | 1 | 0 | 13 | 3 | +10 | 13 | 4강 |
4 | 포르투갈 | 5 | 4 | 0 | 1 | 10 | 4 | +6 | 12 | 4강 |
5 | 스페인 | 4 | 2 | 0 | 2 | 7 | 7 | 0 | 6 | 8강 |
6 | 튀르키예 | 4 | 1 | 1 | 2 | 3 | 4 | -1 | 4 | 8강 |
7 | 루마니아 | 4 | 1 | 1 | 2 | 4 | 6 | -2 | 4 | 8강 |
8 | 유고슬라비아 | 4 | 1 | 1 | 2 | 8 | 13 | -5 | 4 | 8강 |
9 | 노르웨이 | 3 | 1 | 1 | 1 | 1 | 1 | 0 | 4 | 조별 리그 |
10 | 체코 | 3 | 1 | 0 | 2 | 3 | 3 | 0 | 3 | 조별 리그 |
11 | 잉글랜드 | 3 | 1 | 0 | 2 | 5 | 6 | -1 | 3 | 조별 리그 |
12 | 벨기에 | 3 | 1 | 0 | 2 | 2 | 5 | -3 | 3 | 조별 리그 |
13 | 슬로베니아 | 3 | 0 | 2 | 1 | 4 | 5 | -1 | 2 | 조별 리그 |
14 | 스웨덴 | 3 | 0 | 1 | 2 | 2 | 4 | -2 | 1 | 조별 리그 |
15 | 독일 | 3 | 0 | 1 | 2 | 1 | 5 | -4 | 1 | 조별 리그 |
16 | 덴마크 | 3 | 0 | 0 | 3 | 0 | 8 | -8 | 0 | 조별 리그 |
7. 토너먼트의 팀
GK: 파비앵 바르테즈(프랑스), 프란체스코 톨도(이탈리아)DF: 로랑 블랑(프랑스), 마르셀 드사이(프랑스), 릴리앙 튀랑(프랑스), 파비오 칸나바로(이탈리아), 파올로 말디니(이탈리아), 알레산드로 네스타(이탈리아), 프랑크 더부르(네덜란드)
MF: 파트리크 비에이라(프랑스), 지네딘 지단(프랑스),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이탈리아), 에드가 다비즈(네덜란드), 후이 코스타(포르투갈), 루이스 피구(포르투갈), 펩 과르디올라(스페인)
FW: 사보 밀로세비치(유고), 티에리 앙리(프랑스), 프란체스코 토티(이탈리아), 파트릭 클라위버르트(네덜란드), 누누 고메스(포르투갈), 라울 곤살레스(스페인)
UEFA 유로 2000 베스트 11 | |||
FW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 FW 프란체스코 토티 | ||
MF 지네딘 지단 | MF 파트리크 비에라 | MF 에드가 다비즈 | MF 루이스 피구 |
DF 파올로 말디니 | DF 파비오 칸나바로 | DF 로랑 블랑 | DF 릴리앙 튀랑 |
GK 프란체스코 톨도 |
8. 한국측 중계진
9. 기타
유럽에서 열린 대회인 만큼 아무래도 대한민국과는 전혀 무관한 대회 같지만, 알고 보면 상당히 인연이 많은 대회이다. 전임 국대 감독 세 명이 이 대회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우선 이 대회에서 포르투갈을 4위로 이끌었던 움베르투 코엘류 전 감독은 이후 2003년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서 1년간 재임했다. 또한 2014~17년 부임했던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은 당시 독일 대표팀 수석코치를 맡고 있었지만, 당시 독일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에리히 리베크 감독과의 불화로 대회 직전에 사임했다. 이러한 뒤숭숭한 팀 분위기가 반영된 탓인지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는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대표팀을 이끈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은 이 대회에서 4강 돌풍을 일으킨 포르투갈의 주전 미드필더로 이 대회에 출전했다.[40]이 대회 역시 잉글랜드를 비롯한 각국 훌리건들이 벨기에 거리를 난장판으로 바꾸어놓았다. 특히, 잉글랜드와 독일 간의 경기를 앞두고 경기가 열렸던 브뤼셀의 살루아 지역은 양 국가의 훌리건들의 패싸움이 폭동 수준까지 번지자 벨기에 경찰은 장갑차 물대포까지 동원해 진압 작전에 나섰고 결국 이 진압 과정으로 인해 사망자까지 발생하였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주목받았던 유로 대회이기도 한데 이 대회를 기점으로 유로 대회를 지상파인 KBS에서 대부분의 경기를 생중계하고 케이블/위성 채널까지 포함하면 전경기 생중계를 시작했기 때문.[41] 워낙 훌륭한 대회이기도 했지만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 확대되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해외축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KBS 역시 이런 열기에 대응하기 위해 서기철, 이천규 아나운서, 이용수 해설위원을 대회 초기 일부 경기와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간의 4강전, 프랑스와 이탈리아 간의 결승전에 파견하기도 했다. 또한, 기자 일부를 현지에 특파해 대회 내내 취재하도록 했다. 하지만 대회 조직위의 실수로 신분카드에 이들의 국적이 대한민국이 아닌 북한으로 잘못 기재되는 촌극이 발생하였다.[42]
1999년 현대자동차가 FIFA의 공식 스폰서로 자리매김함에 따라 유로 역시 이 대회부터 스폰서를 맡고 있다. 뒤이은 UEFA 유로 2008에서도 기아자동차와 함께 스폰서를 맡고 있다.
유로 2000 때부터 광고판 정중앙에 해당 대회 및 개최 경기장 지역이 들어가게 되었다.
이 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던 4팀(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포르투갈)은 모두 2년 후인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부진했다. 네덜란드는 아예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면서 본선 진출도 못했고, 프랑스와 포르투갈도 모두 32강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43] 그나마 이탈리아가 16강에 올라갔지만 조별리그에서 크로아티아에게 역전패를 당하면서 멕시코에 밀려 조 2위로 16강에 올라오는 등 부진했고, 16강에서 개최국이자 돌풍의 팀 대한민국에게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공식 주제가 <Campione 2000>가 매우 유명하다.
[1] 순서대로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2] 16강 조별리그[3] 하지만 이로부터 2년 뒤, 두 나라(독일 & 프랑스)의 처지는 180도 뒤바뀌게 되는데, 독일은 화려하게 부활해서 결승까지 갔지만, 프랑스는 개막전에서부터 세네갈에 진 것을 시발점으로 해서 부진한 성적을 내다가 1무 2패로 조 최하위(전체 28위)로 탈락하는 수모를 당하고 만다.[4] 1985년 헤이젤 참사가 일어난 경기장[지역예선] [16개팀] [7] 6조 2위 이스라엘에게 8-0 승리해 진출[8] 4조 2위 우크라이나에게 3-2 승리해 진출[9] 8조 2위 아일랜드와 1-1 동률, 원정골 우선 원칙에 의해 진출[10] 9조 2위 스코틀랜드에게 2-1 승리해 진출[16강] 조별리그[12] 포르투갈이 이 대회에서 독일을 상대로 거둔 3-0 승리도, 포르투갈이 독일을 상대로 거둔 마지막 승리이다. 이후 포르투갈은 독일을 만날 때마다 패배만 당하고있다.[13] 2003년 히딩크호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은 감독이다.[14] 심지어 체력 안배 차원에서 주전들을 대거 쉬게했던 3차전 독일전조차 3-0 대승을 기록했다.[15] 모두 데이비드 베컴의 어시스트였다.[16] 그러나 이들은, 이듬해 독일보다도 강한 전력을 갖춰 한일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또 독일과 붙었는데, 뮌헨 원정에서 마이클 오언의 해트 트릭을 앞세워 1-5로 대승해 독일을 플레이오프로 보내 버렸다. 다행히도 독일은 우크라이나와 맞붙어서 32개국 본선 월드컵에 간신히 진출했다. 이것이 잉글랜드가 독일을 상대로 2008년 11월 친선경기가 있기 전까지 독일에게 거두었던 마지막 승리이다.[17] A조에 편성된 국가들 중 유일하게 2년 전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다.[18] 이 때 벨기에가 기록한 두 번째 골이 핸드볼 파울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나 홈 어드벤티지 덕분에 무사히 넘어갔다(...).[19] 특히 골키퍼[20] 벨기에가 첫 경기에서 스웨덴을 2-0으로 이기고 있을 때, 벨기에 수비수의 백패스한 공을 필립 데 빌데 골키퍼가 발로 찍어서 받았는데, 그 순간 골키퍼가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며(...) 공을 스웨덴의 미얄비 선수에게 헌납했다. 스웨덴은 그렇게 영패를 면했다. 무승부만 거둬도 8강 진출을 이루는 3차전 튀르키예전에서도 전반 종료 직전 공의 바운드 지점을 포착하지 못해 하칸 쉬퀴르에게 어이없게 결승골을 헌납했다.[21] 첫 번째 개최국 동반 탈락은 8년 후 열린 유로 2008의 공동 개최국인 스위스와 오스트리아가 동반으로 탈락한 사례이며, 뒤이어 유로 2012 개최국인 폴란드와 우크라이나가 동반 탈락한다.[22] 9년 전이었던 1991년에는 슬로베니아 독립 전쟁(일명 10일 전쟁)까지 일어났었다.[23] 미하일로비치가 패스미스를 했는데 하필이면 문전에서 대기하고 있던 자호비치의 발에 걸려서... 자호비치는 그대로 골키퍼를 농락하며 득점에 성공했다. 그 후 본인도 심적인 여유가 생겼는지 우스꽝스러운 세리머니를 펼쳤다.[24] 사보 밀로셰비치가 두 골, 류빈코 드룰로비치가 한 골을 넣었다. 유고측의 크로스가 골포스트를 맞고 밀로셰비치의 발끝에 떨어져서 그대로 첫 번째 만회골이 들어갔다. 상당히 어이없게 골이 들어가버리니 슬로베니아 입장에서는 심적으로 페이스가 말릴 수밖에 없다. 결국 이 경기 이후 미하일로비치의 퇴장이 팀을 살렸다는 드립까지 나왔다고.[25]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대신 엔트리에 뽑혀서 논란이 되었었지만 이 어시스트로......[26] 이미 2승을 했기 때문에 체력 안배 차원에서 주전들을 대거 제외한 프랑스와 달리, 네덜란드 역시 똑같이 2승은 기록했지만 다득점에서 프랑스에게 밀려 조 2위를 기록한 상황이었고, 조 1위로 통과를 해야 8강전과 4강전을 자국에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전들이 대부분 출전할 수 밖에 없었다.[27] 1대1 상황에서 크로스바를 한 번 맞췄으나 이후 심판 판정 불복으로 퇴장당했다.[28] 0-6으로 경기가 마무리되어가던 후반 추가시간에 밀로셰비치가 골대를 맞고나온 크로스를 어찌어찌 밀어넣어 마지막 자존심을 세웠지만 골을 넣고도 맛이 간 표정으로 허탈하게 걸어갔다. 이 광경은 후에 미네이랑의 비극에서 오스카에 의해 섬세하게 재현된다.[29] 터닝 발리 슛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의 멋진 슛이었다. 천하의 바르테즈조차 멍하니 서 있었을 정도.[30] 포르투갈 수비수 사비에르의 손에 맞았으며 주심은 이를 보지 못했으나 부심이 봤기 때문에 페널티킥이 선언되었다. 이와 별개로 핸드볼 파울의 고의성이 있는지 여부는 애매해 보인다.[31] 페널티킥이 성공되어 경기가 끝났음에도 포르투갈 선수들은 심판진에 강력히 항의하며 분노를 표출했다.[32] 잠브로타의 퇴장 이후부터 이탈리아의 디노 조프 감독은 공격을 말 그대로 알아서 하게 냅뒀다. 피오레나 델 피에로 같은 흔들기 명인들이나 인자기 같은 한방이 있는 선수들의 자율적인 플레이를 조프 답지않게 용인했고, 특히 델 피에로 같은 경우는 드리블만으로도 네덜란드를 압박하는 장면을 꽤나 만들었다. 이후 후반에 교체로 투입된 토티 역시 특유의 배짱과 다이나믹함으로 네덜란드의 파상공세를 저지하는 역할을 했고, 역시 교체 투입된 델 베키오도 최전방에서 침투와 높이로 네덜란드 수비진을 압박했다.[33] 잠브로타가 퇴장 당한 후 이탈리아는 수비 진형을 말디니-율리아노-네스타-칸나바로 로 변경했고, 미드필더진도 델 피에로는 오른쪽 미드필더를, 후반에 교체 투입 된 잔루카 페소토는 평소 포지션인 측면 수비나 윙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 토티는 왼쪽 미드필더를 맡는 등 평상시라면 볼 수 없는 진풍경이 나오기도 했다.[34] 이 경기 중 네덜란드가 유일하게 성공시킨 페널티킥이었다. 경기 중 2개 + 승부차기 4개 = 도합 6개의 페널티킥을 시도했으나 그 중 성공한건 이거 1개. 결국 이 경기에서 네덜란드가 톨도를 뚫어낸 건 이거 하나뿐이다. 그래서 클루이베르트는 PK를 성공시켰음에도 경기 중에 이렇게 좀 넣을 걸이라고 생각했는듯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이 상황은 10년 뒤, 2010 남아공 월드컵 8강 경기 우루과이와 가나의 아사모아 기안에 의해 재현된다.[35] 네덜란드는 4년 후인 유로 2004 8강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처음으로 승부차기에서 승리를 거둔다.[36] 대회 내내 이탈리아의 주전 스트라이커는 필리포 인자기였으며 심지어 인자기는 대회 내내 준수한 활약을 했기 때문에 델베키오의 선발은 전혀 예상치 못한 기용이었다. 결과적으로 델베키오가 골을 넣었으니 이 깜짝 기용은 아주 성공적이었다.[37] 이 때 상황 묘사가 극적이었다. 당시에는 TV방송에서 추가시간을 표시할 때 카운트다운의 형식을 차용했는데, 프랑스 선수들이 역습을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1분 57초 가량 남아 시청자들의 탄식이 더 커져가고 있었다. 이 때 칸나바로의 헤딩 미스가 윌토르에게 연결되었고 윌토르는 어려운 각도에서 네스타가 몸으로 막으려 하는 상황 속에서도 슈팅을 성공시키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칸나바로의 키가 5cm만 더 컸으면..., 네스타의 다리 사이로 공이 빠지지만 않았다면..., 톨도가 애써 엎어지지 않고 공을 막으려 시도했다면...이라는 세 개의 떡밥이 이 순간 나왔다.[38] 당시 트레제게의 슈팅은 시속 81km로 날아가 멋진 캐논슛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년 후 국대 동료가 챔스 결승에서 이걸 왼발로 그대로 재현시켜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끈다.[39] 특히 당대 최고 미드필더였던 지단이 결승전에선 비교적 평범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데 반해 토티는 팀 에이스로서 이탈리아의 공격을 이끌며 대활약을 하면서 당시 축구팬들에게 큰 인상을 심어주었다. 게다가 당시 프랑스 대표팀도 주전으로 나온 리자라쥐-드사이-블랑-튀랑은 철의 4백으로 불릴 만큼 카테나치오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못지 않은 탄탄한 수비력도 가지고 있었다.[40] 그리고 4강전에서 프랑스팀에게 골든 페널티 킥을 준 심판에게 욕설을 했다가 UEFA로부터 5개월 출전 금지 처분을 받는다.[41] 이 대회는 KBS 지상파 텔레비전 두 채널과 KBS 위성2TV(現 KBS LIFE)를 통해 전경기 생중계가 되었다. 또한, SBS SPORTS 30 채널을 통해서도 중계되기도 했다. 특히, 송재익 아나운서가 MBC에서 명예퇴직 후 SBS로 이적해서 처음으로 맡은 메이저대회이기도 했다.[42] 참조.[43] 포르투갈은 첫 경기부터 미국에게 어이없게 패했고, 폴란드에게 대승을 거뒀지만 3차전에서 대한민국에게 패해 탈락했다. 프랑스는 더 심각했는데, 첫 경기부터 월드컵 신생국이었던 세네갈에게 충격패를 당했고, 우루과이와도 무득점 무승부에 그쳤고 반드시 이겨야 했던 덴마크전에서도 오히려 2골을 내주고 패하면서 디펜딩 챔피언의 무득점 탈락이라는 치욕스러운 기록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