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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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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국 상원 문장.svg 미국 연방 상원의원 (미네소타 주)
80~85대
에드워드 J. 타이
제86~91대
유진 매카시
제92~95대
휴버트 험프리
미합중국 제86-91대 연방 상원의원
유진 조셉 매카시
Eugene Joseph McCarthy
파일:유진 매카시.jpg
<colbgcolor=#0044C9><colcolor=#fff> 출생 1916년 3월 29일
미국 미네소타 주 왓킨스
사망 2005년 12월 10일 (향년 89세)
미국 워싱턴 D.C.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학력 세인트 존스 대학교[1] (문학사)
미네소타 대학교 (문학석사)
종교 기독교 (가톨릭)
의원 선수 5 (하원)
2 (상원)
의원 대수 81, 82, 83, 84, 85 (하원)
86, 89(상원)
정당

|

경력 연방 하원의원 (1949~1959 / 미네소타 4구)
연방 상원의원 (1959~1971 / 미네소타)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경선 후보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 (무소속)
배우자 애비게일 퀴글리 매카시 (결혼: 1945, 별거: 1969)
자녀 크리스토퍼 조지프 매카시
마이클 베넷 매카시
엘런 매카시
마거릿 앨리스 매카시
메리 애비게일 매카시

1. 개요2. 생애3. 선거 이력4. 여담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정치인, 전 상원의원. 조지 맥거번과 함께 1960~70년대 반전 좌파 진영을 대표했던 인물이다.

흔히 이름 때문에 조지프 매카시와 혼동되곤 하는데 유진 매카시는 강성 좌파 성향이었기 때문에 강성 우파 성향인 조지프 매카시와 상극인 인물이다.

2. 생애

1916년 3월 29일, 미네소타 주의 깡촌인 왓킨스에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청소년기에는 중고일관제 학제를 보유한 세인트 존스 대학에 다녔으며, 정계에 입문하기 이전까진 진지하게 베네딕도회수도자가 되는 것을 고민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장 배경 때문에 그의 정치적 기반에는 진보주의자 및 노조뿐만이 아닌 가톨릭 신자들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엔 미네소타와 노스다코타에 위치한 여러 학교의 교사직을 거친 뒤 모교인 세인트 존스 대학으로 돌아와 3년간 교수로 일했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전쟁부의 군사정보부대에서 암호해독관으로 활동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하자 미네소타 민주농민노동당에 입당, 1948년 연방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뒤 압도적 표차로 승리해 겨우 32세의 나이로 하원의원이 되었으며, 이후 미국 정계에서 중서부 출신 소장파 진보주의자들을 지칭하는 일명 '매카시의 패거리들'을 이끄는 등 빠르게 두각을 드러내었다.

하원에서 10년간의 세월을 보낸 뒤엔 상원에 진출, 곧바로 외교위원회의 일원이 된다. 상원의원 재직 당시엔 "휴버트 험프리보다 2배나 진보적이고 존 F. 케네디보다 2배나 가톨릭적"이라고 농담삼아 자칭할 정도로 강성 진보주의자로서 유명세를 떨쳤으며, 에드워드 케네디와 함께 1965년 미국 이민법 발의에 참여하는 등 주로 외국인 이민 관련 분야에서 활동했다.

상원에서 큰 인기를 얻자, 곧바로 196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 후보 등록을 신청해 하원의원-상원의원을 거쳐 대통령직에 오르는 로열로드를 달성하려 시도했지만,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에 뒤이은 군소 경선후보의 난립 때문에 진보 진영의 의견 결집이 실패하자 결국 주류 당원들이 '비교적' 중도적으로 여겨지던 휴버트 험프리에게 지지를 몰아주게 되면서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험프리의 애매모호한 베트남전 관련 스탠스가 1968년 대선에서 석패하는 결과로 이어지자, 강경 반전주의자로서 반사이익을 누린 매카시는 1972년 민주당 경선에도 참여하지만 당시 후보로 참여한 에드먼드 머스키조지 맥거번이 워낙 쟁쟁한 인물들이라 1대1 구도를 조성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광탈했으며, 이후 민주당을 탈당해 1976년 대선에 독자 후보로 출마하지만 단 1%의 득표율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대패하고[2] 그대로 정계에서 사실상 은퇴했다.

1980년 대선에서는 지미 카터에 반대하는 의미로 로널드 레이건을 지지하는 충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 여파인지, 1982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미네소타주 상원의원으로 복귀하려 했으나 경선에서 24%를 얻으며 낙선했다. 1980년대 내내 군소 좌파 정치 활동을 전개하며 보호무역을 옹호했다.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소비자당(Consumer)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0.03%라는 처참한 득표율로 낙선한다. 마지막으로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 했으나 저조한 지지율로 토론회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2005년 12월 10일, 워싱턴 D.C. 조지타운에 위치한 자택에서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장례식 추도사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낭독했다.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필요시 선거인단) 당선 여부 비고
1948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미네소타 4구

78,476 (59.43%) 당선 (1위) 초선
1950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59,930 (60.39%) 당선 (1위) 재선
1952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98,015 (61.71%) 당선 (1위) 3선
1954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81,651 (63.01%) 당선 (1위) 4선
1956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103,320 (64.07%) 당선 (1위) 5선
1958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미네소타 608,847 (52.95%) 당선 (1위) 초선
1964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931,363 (60.34%) 당선 (1위) 재선
1976 미국 대통령 선거 미합중국

[[무소속(정치)|
무소속
]]
744,763 (0.91%, 0명) 낙선 (3위)
1988 미국 대통령 선거
소비자당
30,905 (0.03%, 0명) 낙선 (7위)

4. 여담

그가 기회주의자가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1968년 당시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에 동참했던 철학자 노엄 촘스키는 언젠가 다음과 같이 진술한 적이 있다.
반전운동을 구축하던 어려운 시절에 아무도 유진 매카시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의회 내에서 전쟁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매카시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맥거번도 반대파가 아니었습니다. 웨인 모스, 어니스트 그뤼닝, 게일로드 넬슨, 기타 몇몇 인사들이 진정한 반대파였지만 매카시는 아니었습니다. 구정 공세 때까지 유진 매카시라는 이름은 아예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공세 무렵 미국 기업계는 베트남 전쟁 반대로 돌아섰고 대규모 민중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유진 매카시는 이런 운동으로부터 개인적인 권력을 얻을 수 있겠다고 판단하고 그때서야 "내가 당신들의 지도자"라고 소리치고 나섰습니다. 그 전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 중략 ...)
그는 1968년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했고 민주당 전당대회까지 나아갔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당대회 현장에 나타나 그의 캠페인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은 시카고 경찰로부터 구타당해 피를 흘렸습니다. 매카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그 젊은이들과 얘기조차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는 1968년 전당대회에서 이기지 못하자 사라져버렸습니다.
(... 중략 ...)
바로 그 때문에 그는 자유주의적인 영웅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완전 사기였으니까. 그처럼 완벽한 사기의 사례는 다시 찾아보기 어려울 겁니다.
노엄 촘스키,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中
이런 것을 보면 유진 매카시가 당시 진성 반전 좌파 운동가들에 있어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한듯 하다.

뉴욕 타임스에서도 2018년 매카시의 반전파 후보로서의 경쟁력을 평가절하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3]

다만, 노엄 촘스키라는 인물 자체가 상당히 좌파적인 시각에서 미국 정치를 바라본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유진 매카시가 1964년 카스트로를 만난 적도 있고 1980년대와 1990년대 군소 좌파정당에서 활동하며 정력적인 운동을 벌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촘스키의 비판은 다소 가혹한 면이 있다.

또한 로버트 케네디가 처음에는 반전파를 대표하여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것을 거부하였고, 매카시가 선전하는 것을 본 이후에야 비로소 경선에 뛰어들었음을 고려하면 오히려 매카시보다 케네디 쪽이 더 기회주의적이었다고 볼 여지도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2018년 매카시를 '진짜 반전파 후보(Real antiwar candidate)'라고 평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고, 위의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도 케네디의 출마가 기회주의적(opportunistic)이었다고 직접 언급했다.


[1] 국내에 잘 알려진 세인트 존스 대학교세인트 존스 칼리지와는 이름만 같은 지방대학으로, 미네소타 세인트조지프에 위치해있다.[2]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주인 오리건에서도 3.90% 득표에 그쳤다. 게다가 이 주는 유진 매카시의 표 가르기로 제럴드 포드가 0.16%p차로 승리하는 황당한 상황까지 일어난다. 매카시의 표 갈라먹기가 없었다면 메인, 오클라호마, 아이오와에서도 카터가 이겼을 것이다.[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