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유순 |
출생 | 1957년 6월 12일 ([age(1957-06-12)]세) |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진구 (現 부산광역시 부산진구)[1] | |
신체 | 180cm, 90kg |
학력 | 대구예술대학교 서양미술학과 |
직업 | 배우, 자영업자 |
소속 | 좋은 친구들 |
데뷔 | 1987년 영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
가족 | 누나 2명, 남동생 1명, 아들 2명, 딸 3명 |
종교 | 불교 |
반려동물 | 강아지 온리, 유리, 고양이 제키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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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 인상과 덩치에 어울리는 소위 어깨 배역을 전문적으로 맡는 배우로 조직폭력배, 군인, 경찰, 육체노동자 등 주로 힘을 쓰는 사람들 위주로 연기를 했다.2. 초기 생애
1957년,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진구(現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서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가 7살 때 아버지가 타계하여 홀어머니(김남순, 1927~2003) 밑에서 성장했다. 장남이라 국밥집을 운영한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일을 도와야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그는 학창시절부터 소위 일진으로 유명했다고. 특히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맨날 사고만 치고 다녀 어머니와 누나 2명, 남동생의 속을 많이 썩였다고 한다. 이후 부산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으며 1984년부터는 롯데 자이언츠의 사설 응원단장을 맡았다. 그리고 1987년 영화배우가 되면서 전국적으로 인지도를 쌓게 된다.3. 결혼 전적
총 5명의 배우자를 두고 8번의 결혼을 했다고 한다. 2017년 3월 12일 8번째 결혼의 식을 올렸다.유퉁은 1975년 19살에 첫 결혼을 했다고 한다. 첫 번째 아내와 결혼해서 낳은 두 아들이 벌써 40대 중반을 넘어섰다. 두 살 연상인 첫 아내와 이혼과 재결합을 반복하며 총 3번 결혼하였다.
네 번째 결혼이자 두 번째 아내는 장안의 화제였던 비구니 혜선스님(1972년생)과의 결혼(1995년~1998년)이다. 정확히는 그냥 유퉁이 하는 연극에 오디션 보러 온 여학생이었는데 유퉁이 쌍꺼풀 수술한 것을 두고 한 비난에 산에 들어간 걸 사흘간 머리만 깎은 걸 밤낮으로 설득한 거라고. 그는 "네가 파계를 하고 나한테 오면, 내 너에게 진정한 해탈의 열반을 시전해주마"라고 설교를 했다고 한다. 결혼 이후에는 불교방송 '108가요' 등 여러 프로그램출연했다. 이 당시 사고를 쳐서 아내는 15일간 옥바라지를 하기도 했고, 3년 만에 이혼했다.
다섯 번째 결혼이자 세 번째 아내는 2000년 스무살 연하(1977년생)의 어린 대구 아가씨 전은식과 3년간 동거후에 한 결혼이었는데 온갖 여성지에 도배하고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고 떠벌렸다. 또 전은식 씨의 부모는 유퉁과 결혼하기를 결사반대했는데 아예 한동안 연을 끊기도 하였다.
여섯 번째 결혼이자 네 번째 아내는 몽골인 아내 바상자르갈 씨(1986년생)와 하였다. 도전 지구탐험대에서 만났다. 2005년 바상자르갈이 20살 일 때 임신 후 딸을 낳았다. 그런데 이 시기는 전은식 씨와의 이혼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성기구 광고를 찍었다. 다만 장모와의 갈등[2]이 원인이 되어 이혼을 했다. 이 때 아내가 몽골로 가면서 잠수를 타버렸고 정상적인 결혼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결국 유퉁은 딸의 생활을 위해 재산을 분할하고 이혼을 선택했다.
유퉁의 일곱 번째 결혼이자 다섯 번째 아내인 몽골인 잉크아물땅 뭉크자르갈은 32살 연하이며 장모가 12살 연하이다. 유퉁이 1957년생이고 아내는 1989년생인데, 그에 말에 따르면 “우리처럼 영혼의 사랑을 하면 나이가 안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2013년 방송 촬영 중 지참금 문제로 인한 결혼식 무산되었다. 그 사이에 딸이 있다.
한 번의 결혼식 무산 후, 별거했으나 재결합하여 잉크아물땅 뭉크자르갈 씨와 2017년 3월에 결혼식을 올린다. 8번째 결혼식인 셈. 당시 그의 나이는 만 60세였다. 바상자르갈과의 이혼이 제대로 해결 되지 않은 것은 덤. 2017년 9월 부인과 딸은 딸의 학업문제로 몽골로 귀국하고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된다.
2019년 11월 뭉크자르갈씨와의 사실혼 관계를 청산했다. 유퉁은 한국에 거주하는데 몽골에 거주하는 아내가 유퉁과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남편이 생기면서[3] 이혼을 원했다고 한다. 그러자 유퉁은 몽골 전원주택, 아파트를 위자료로 넘겨주고 딸의 학비를 부담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것 때문에 뭉크 자르칼이 원래 몽골인 남친이 있었고 한국 국적을 원해서 유퉁과 결혼한 것이 아닌가라는 설이 있다. 중국, 동남아 다문화 결혼의 경우에도 남친이 존재한 상태로 나이 많은 한국 남자와 결혼으로 한국 국적을 얻고 이혼해서 남자를 대려와 결혼하여 남자에게도 한국 국적을 주는 경우가 꽤 있으며 이런 결혼 사기 행각을 벌인 은평구 중국인 여성 사건도 존재한다. 유퉁이 바로 한국국적을 뭉크자르갈에게 주지 않은 것은 신의 한수. 다만 뭉크자르갈과 요즘도 연락은 하고 지낸다고 한다. 막내딸을 생각하는 마음과 개인적으로도 이혼은 했지만 "아내의 결혼 사실을 모르고 살아온 내 탓"이라며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더 이상 결혼은 없다고 했다 한다. 이후 2022년에 이 8번째 부인이 유퉁에게 아예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결혼하고 출산까지 한 사실을 알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밝혔는데, 사랑이 식으면 이혼을 한다고 한다. 유퉁 본인은 여러차례 이혼을 하면서 위자료도 모두 정산하고 깔끔하게 헤어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평생 한 사람과만 사랑을 하고 살면서 이것저것 쌓이는 것이 많기 때문에 결국은 사이가 틀어지기 때문에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혼을 한다고 한다. 이런 권태기 부부들을 보면서 자신의 성격대로는 못 산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문란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결혼생활 중에는 아내만을 사랑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서로 사이가 틀어지고 여러 차례 부부싸움을 하면 "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이혼을 결정한다고.
본인은 사랑이 찾아오면 9번째, 10번째 결혼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러다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는지, 다시는 재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출처
9번째 사랑을 공개했다.
막내딸 미미를 몽골에서 한국으로 데리고 왔다. 미미를 한국 집에 데려온 유퉁은 "전 부인의 허락을 받고 공증서류까지 만들어 데려왔다"며 한국어를 가르치며 홈스쿨링을 진행했다. 관광비자를 받고 들어온 딸의 한국 국적 회복을 위해 출입국사무소에 방문하였다.
4. 여담
- 무명 시절이었던 1984년에 야구 경기를 관람하러 구덕 야구장에 갔다가 야구 팬들이 부산에는 가장 많은데 연극 보는 관객은 상당히 적기 때문에 연극 관객을 더 끌어들이기 위해서[4] 응원단장을 자처하며 롯데 자이언츠의 사설 응원단장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는데, 이후 이 사설 응원단장 문화는 KBO 리그의 구단 전속 응원단장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삐에로 분장을 하고 단장 일을 했는데[5] 누가 '뚱땡이'라고 본인을 부르자, "나는 어깨가 좁고 배 나온 사람이 아니고 어깨가 넓으니 퉁퉁하다."라고 했으며 이게 계기가 되어 아예 '유퉁'이라는 예명을 만들어 쓰게 되었다고 한다.
-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총 2번 입건되었다. 1997년도에 차 안에서 2차례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자신의 운전사와 함께 불구속 입건되었고, 2013년에도 같은 혐의(대마초)로 다시 구속되었다. 이후 동년 6월 27일에 징역 8월 및 집행유예 2년[6]을 선고받고 3일만에 풀려났다고 한다.
- 국밥집 사장님으로 유명하다. 전성기 시절 하루 매출이 1,700만 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연예계 활동은 가끔 부업 수준으로 나오는 정도로 이 국밥집 장사에 더 집중한다. 1997년부터 장사를 시작했으며 2000년 초중반에 국밥집 운영에 대한 책자를 여럿 썼는데 책자에서 대마초로 인해 잡혀들어간 걸 비난하며 나라가 담배나 술은 넘어가면서 대마초를 막는 걸 엄청 비난하기도 했다. 경남 양산에서 안경점도 운영했으나[7] 장사가 안 되었는지 폐업 정리하는 중이다. 또 최근에는 양재동에서 삼겹살집과 김해 삼계 곱창집을 오픈하였다. 또한 막창집(창원, 김해), 미술관(제주) +@의 사업을 하고 있다.[8] 또한 아내와 이혼할 무렵에 필리핀에 다녀왔었는데 이 시기에 리조트 사업을 구상하기도 했다.
- 현재는 코로나 19 때문에 막창집을 접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 실패로 그나마 있던 재산도 잃고 현재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밀양시 모 처에서 자신의 그림들을 모아놓은 작은 미술관을 열어 지내고 있으며 당뇨 합병증까지 와서 수척해진 모습이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풍채가 상당히 좋았던 점을 생각하면 병세가 심각한 듯.[9]
- 5번째 이혼을 하고 뉴질랜드에서 크게 사기를 당한 이후 몽골에서 한동안 생활했다고 한다. 죽을 생각을 하면서 몽골로 간 그는 몸에 호랑이와 용 문신을 새겼다. 죽었을 때 문신을 보고 한국 사람으로 생각하고 연락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 1박 2일 1기 대도시 특집에서 대구를 방문한 강호동이 이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길을 물어보던 강호동이 대구 주민에게 "저 누군지 알겠어요?"하니까,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팔공산에서 국밥집하는 유퉁씨가 아니냐"고 답해 큰 웃음을 안겨주었다. 신동도 이 사람으로 오인받은 적이 있다.
- 조폭으로 오해받게 된 배경을 본인이 밝혔는데, 나이트 행사를 뛰는 중에 건달이 행패를 부리자 마이크로 이 건달을 참교육하다보니 이런 오해를 사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때문인지 사회악인 조폭과 건달이 싫다고 한다.
- 벤츠 S클래스 구형 모델(8세대, W221)을 자가용 승용차로 탔었고 현재 차는 지프 그랜드 체로키를 탄다.
- 유튜브 채널이 있다고 한다. 유퉁TV
- 무명 시절 구덕 야구장에서 우연히 영화계 거장 이장호 감독을 만나게 되었고 유퉁의 재능을 눈 여겨본 이장호 감독에게 영화 출연 제의까지 받았다고 한다. 1987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않는다'로 첫 데뷔작을 열었으며 유퉁 본인은 이장호 감독을 지금도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며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 팬이 선물한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이름은 제키.
5. 출연작
5.1. 영화
- 이장호의 외인구단 2 (1988년) - 백두산 역
- 그들도 우리처럼 (1990년) - 최 형사 역
- 맨발에서 벤츠까지 (1991년) - 대포 역
- 머저리와 도둑놈 (1992년) - 동팔 역
- 키스도 못하는 남자 (1994년)
- 도둑과 시인 (1995년)
- 미스터 콘돔 (1997년) - 폭력배 역
- 삼인조 (1997년) - 편의점장 역
- 블랙잭 (1997년) - 정필상 역
- 꽃을 든 남자 (1997년) - 허 사장 역
- 인연 (1997년) - 방범 역
- 죽이는 이야기 (1997년) - 개형사 역
- 짱 (1998년)
- 자귀모 (1999년) - 레스토랑 지배인 역
- 조폭 마누라 2 - 돌아온 전설 (2003년)
5.2. 드라마
- 또래와 뚜리
- 까치며느리 - 오맹구 역
- 적색지대 - 고릴라 역
- 여명의 눈동자 - 일본군 장교 역.
- 한 지붕 세 가족 - 차유퉁 역
- 전원일기 - 오갑룡 역
- 조선왕조오백년 대원군 - 천희연 역
- 로망스
- 드라마게임 - 비 오는 날의 방문객
5.3. 보이스 트롯
6. 가족오락관
- 1992년 4월 19일
- 1995년 8월 24일
- 2003년 2월 8일
[1] #[2] 장모의 사치가 원인이었다고 한다.[3] 비자 문제가 꼬이면서 한국에 입국하지 못했는데 그 사이에 일이 생겼다고 한다.[4] 기존에는 음주와 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응원단장을 자청했다고 알려져 있었다.[5] 심지어 친척과 친한 동생도 못 알아봤다고 한다.[6] 추징금 1만 4000원[7] 남동생이 안경 전문가라고 한다. 이를 계기로 운영하게 된 것이다.[8] 이전에 거제에 국밥집이 있었고 조선소 특징상 국밥집이 인기가 좋아서 한때 잘나갔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사업이 안좋아졌는지 정리했고 국밥집이 있는 건물은 아예 철거되었다.[9] 2022년 인터뷰에 의하면 당뇨 자체는 30년 넘게 앓았다고 한다. 사실상 30대 초중반에 걸린 듯 하니 건강이 젊을 때부터 썩 좋지 않았던 모양. 애초에 당뇨는 생각보다 몸이 천천히 망가진다. 주사를 맞지 않으면 그냥 죽는다고 하는 1형 당뇨 환자의 평균 투병기간이 45년이라고 하니 그보다 좀 덜한 2형 당뇨 환자는 관리하기 나름에 따라 더 오래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