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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19:05:29

자이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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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이란 계통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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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나교
जैनधर्मः | Jai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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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계통 종교
창시 <colbgcolor=#f14a1c,#f14a1c><colcolor=#fff,#fff> 창시자 리샤바(리샤바나타)
마하비라[2]
창시 시기 기원전 9세기 이전
주요 신앙 지역 전 세계
인도, 유럽, 북아메리카
규모 약 500만~700만 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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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비라의 상

1. 개요2. 창시자3. 기본 가르침
3.1. 불살(아힘사, 不殺生)3.2. 카르마(업, 業)3.3. 금욕주의: 고행(Asceticism)3.4. 5대 서약(Vratas)
3.4.1. 불살생(不殺生, Ahimsa)3.4.2. 불소득(不所得, Aparigraha)3.4.3. 불망어(不妄語, Satya)3.4.4. 불탈취(不奪取, Asteya)3.4.5. 불음(不淫, Brahmacharya)
4. 경전5. 특징
5.1. 인본주의적 자력 종교5.2. 이원론적 세계관5.3. 마이너 종교?
6. 교파
6.1. 공의파(空衣派, Digambara)6.2. 백의파(白衣派, Śvētāmbara)
7. 음식8. 그 외9.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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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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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स्याद् अस्ति, ruby=syād-asti)]
옳을 수도 있다.
[ruby(स्याद् नास्ति, ruby=syād-nāsti)]
틀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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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정할 수 없을 수도 있다.
[ruby(स्याद् अस्ति अवक्तव्यः, ruby=syād-asti-avaktavyaḥ)]
옳을 수도 있지만 판정할 수 없을 수도 있다.
[ruby(स्याद् अवक्तव्यः, ruby=syād-nāsti-avaktavyaḥ)]
틀릴 수도 있지만 판정할 수 없을 수도 있다.
[ruby(स्याद् नास्ति अवक्तव्यः, ruby=syād-asti-nāsti-avaktavyaḥ)]
옳거나 틀리거나 판정할 수 없을 수도 있다.
- 스야드바다(स्याद्वाद)[4]
자이나교(Jainism)는 인도 지역에서 발원한 인도 계통의 종교로 명칭의 어원인 '지나'는 승리자라는 의미이며 '자이나'는 승리자를 따르는 사람이란 뜻이다. 영혼의 실재를 인정하고 그것의 해탈을 목표로 하는 종교다.

2. 창시자

자이나교의 '실질적인' 창시자는 마하비라. 출가 이전의 이름은 '바르다마나'로, 마가다 지방[5]크샤트리아에 속하는 꽤 높은 신분의 인물이었으나 적장자는 아니고 차남이었다고 하며 기원전 6-5세기 사람으로 석가모니와 동시대 사람이었으나 그보다는 연장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부모님은 그가 출가하기 전에 이미 자발적으로 단식[6]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마하비라가 자이나교를 처음부터 만든 것은 아니고 처음 자이나교를 창시한 자는 '리샤바'라고 한다. 자이나교에서는 이 리샤바부터 파르슈바나타까지 23명의 자이나교 지도자들을 완전히 깨달은 자, 즉 지나(Jina)라고 하였다. 자이나교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며 지나는 다른 말로 '티르탕카라'라고도 한다. 마하비라는 파르슈바나타의 가르침을 물려받고 12년간 수행한 후 최상의 지혜를 얻어 '지나'가 된 뒤 자이나교의 교리를 정립하고 종교의 체계를 갖추어 실질적으로 자이나교를 창시했다. 자이나교 교리에 따르면 창시자인 마하비라가 마지막 지나라고 한다.

마하비라는 고행을 버림으로써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와는 달리 12년간 계속한 극단적인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으며 단식하다가 굶어 눈을 감았다.

이후 자이나교는 마하비라의 유지를 이은 수다르만 등에 의해 계승된다.

3. 기본 가르침

자이나교는 윤회설을 믿고 있다. 삶과 죽음의 무한한 사이클에서 벗어나려면 올바른 지식(Samyak Gyana), 올바른 관점(Samyak Darshana)을 가지고 올바른 행동(Samyak Charitra)으로 이를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올바른 지식이란 존재 자체에 대한 올바른 탐구를 의미한다. 그릇된 관점으로 색안경을 쓰고 대상을 보면 대상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듯이 바른 관점을 가지기 위해서는 올바른 지식을 얻는 것이 필수적이다.

자이나교는 이 올바른 지식을 얻는 길은 무수히 많다고 보고 어느 관점이라도 삶의 진리를 파악하는 데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점이 유일한 옳은 길임을 주장하는 자들을 비판하였다. 그렇기에 자이나교는 타 종교에 대해 매우 포용적이고 잘 융화되는 장점이 있다.[7] 자이나교도 삶의 진리를 탐구하는 길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올바른 지식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서양에서 2500년 후에 나온 상대주의 철학과 다를 것이 없다. 올바른 관점에서 자이나교의 특징이 드러나는데 세상을 구성하는 원리인 '타트바'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생물(jiva)과 무생물(ajiva)이 영적으로 교류하게 되면(yoga)[8] 영적 요소가 생물에게 유입되는데(asrava), 생물은 이 영적 요소를 빠져나가지 않게 붙잡아두고 카르마로 만들어지게 된다(bandha). 그런데 선한 카르마면 문제가 없는데 악한 카르마인 경우 더 이상의 유입을 막고 이미 몸에 들어온 것은 없애야 한다.

악한 카르마의 유입을 막으려면 금욕을 행해야 하며(samvara), 극도의 금욕을 하게 되면 이미 들어온 악한 카르마를 없애준다(nirijara). 오랜 수련 끝에 카르마에 연연하지 않게 되면 자이나교 가르침의 정점에 이르러 윤회론에서 벗어나게 된다. 불교의 해탈과 비슷한 셈이다.

3.1. 불살(아힘사, 不殺生)

아힘사(Ahimsa)란 불살생(不殺生)의 계율을 뜻하며 자이나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교리다. 자이나교는 이를 대단히 엄격하게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인도 외부로 퍼져나간 불교와는 달리 인도의 토착종교이자 소수종교로 남은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엄격하다는 뜻이다.

농작물을 해치는 해충이나 잡초도 죽이면 안 되는 것은 물론 미생물을 죽이지 않도록 수돗물도 헝겊에 한 번 걸러 먹으며 고행의 강도가 높은 수행자들은 가급적 소독을 해야하는 수돗물보다 우물 등에서 길은 물을 먹는다. 소독을 하면 미생물이 다 죽고 그걸 마신다는건 더 많은 미생물을 죽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9] 벌레를 밟지 않도록 길을 걸을 때도 빗자루로 쓸면서 다녀야 하고 야간에는 앞이 어두워 벌레 등을 죽일 가능성이 더 커지므로 수행자들은 야간에는 되도록 걷지도 않는다. 식물조차도 식물의 생명력의 본질이 뿌리에 있다고 하여 감자, 양파, 당근 등 뿌리채소는 먹지 못하며, 오직 열매나 잎 등만 먹어야 한다. 벌레를 죽이지 않기 위해 벌레가 많이 꼬이는 과일이나 가지나 브로콜리 같은 채소도 피한다.

이 때문에 무소유의 계율에 의해 옷도 입지 못하는 자이나교 수행자들에게 허락된 몇 안 되는 소지품이 방울달린 빗자루(지팡이)와 헝겊, 입 가리기용 수건이다.

출가 수행자들은 음식을 먹을 때도 살생을 최대한 줄이고 고행하는 차원에서 하루에 딱 한 끼만 먹는데 그것조차 (그릇을 소유하지 않기 위해) 맨손으로 음식을 받아서 먹으며 먹다가 음식에서 벌레나 이물질이 나오면 식사를 중단하고 다음날까지 금식한다. 물속의 미생물을 최대한 죽이지 않기 위해 목욕도 하지 않고 하루 2~3잔 정도의 물로 최소한으로만 씻는다. 머리카락이나 수염 등 체모가 자라면 그곳에 기생하는 머릿니 등의 벌레를 죽이게 되므로 정기적으로 머리카락이나 수염을 제거하는데 칼이나 가위로 자르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일일이 뽑아낸다.

출가한 수행자들은 옷도 소유하지 않고 나체수행을 하며 일반 신도들은 그 정도까지는 실천하지 못해도 누에를 죽이지 않기 위해 실크 같은 동물성 섬유로 된 옷, 모피 등을 입지 않고 가죽으로 된 신발도 신지 않는다. 무슬림들이 할랄 푸드만을 먹듯이 자이나교도들도 엄격한 채식을 실천하기 위해 학생이 아닌 일반 성인도 집에서 도시락을 많이 싸서 다닌다. 앞서 말한대로 인도의 토착종교로 남은 이유도 이 아힘사 때문인데 행여나 어류 등 물 속 생물을 다치게 할까 봐 강이나 바다를 건너서 다른 나라로 가지 못한다. 교주인 마하비라는 벌거벗고 다닐 때 벌레들이 자신의 몸을 물어뜯고 기어다녀도 혹시 잘못 건드렸다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이것 때문에 자이나교에서는 먹는 것도 엄격하게 제한하며 생명을 최소한으로 해치는 범위에서만 식량을 구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자이나교에서 수행의 최고 경지로 치는 것은 살레카나-삼매사(三昧死)라고 하여 식물을 포함하여 아무 생명도 해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일체의 음식을 끊고 단식하다가 굶어죽는 것이다. [10]

자이나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 관해서도 다루고 있다. 교리에는 이 세상의 모든 공간, 모든 물체에 니고다(nigoda)라고 하는 아주 작은 미생물이 있다고 한다. 즉, 숨을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니고다가 죽어가고 있으며 걸을 때마다, 앉을 때마다, 누울 때마다 니고다들이 깔려죽는 것이다. 즉 자이나교도들이 보기에 모든 생명체들은 무슨 짓을 해도 살생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단, 자이나교는 살생에 등급을 두긴 한다. 의도적으로 죽이지 않았고 생물체가 아주 작고 미천한 경우 실수로 살생을 저지른다 하더라도 그리 악한 카르마를 많이 쌓지는 않는다. 하지만 악행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선행을 통해 악한 카르마를 상쇄시켜야 한다.

3.2. 카르마(업, 業)

자이나교, 시크교, 불교는 모두 그 기원이 힌두교 혹은 브라만교에 있기 때문에 이들 종교는 업(業), 즉 카르마(Karma)를 중요하게 여긴다.

자이나교는 '모든 생물은 고통을 느끼며, 고통을 매우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자이나교가 아힘사 즉 불살생의 계율을 중시하는 것은 죽음이야말로 엄청난 고통이며 만약 함부로 다른 생물을 죽이게 된다면 그 생물들이 고통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인 이들을 미워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이나교는 만약 생물을 죽이거나 고통을 주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로 인해 그 생물에게 미움을 받게 되면 그 미움이 카르마를 무겁게 만든다고 생각하였다.

또 우주가 인간의 형상으로 되어 있어 정수리는 천상의 세계이며 발바닥 쪽은 지옥이라고 생각하였으며 보통의 사람들은 허리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카르마가 무거워지면 사람은 우주의 발바닥 쪽으로 가라앉게 되어 점점 지옥과 가까운 세계에서 환생하게 된다고 믿었다.

게다가 미움으로 인한 나쁜 카르마는 끈덕지게 달라붙어서 잘 안 떨어지는 반면 선행으로 인한 좋은 카르마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에 선행을 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고 보았다.[11]

따라서 인간이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기 위해 극단적인 고행을 통해 영혼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나쁜 카르마를 흩어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힌두교의 카르마 개념과는 다른 것으로, 일단 힌두교에서 카르마가 쌓이면 뭔 짓을 해도 그 카르마는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 반면 자이나교에서는 극단적인 고행만 하면 나쁜 카르마를 가볍게 할 수 있다. 나쁜 카르마란 영혼에 붙어있는 일종의 먼지나 오물 같은 것이다.

만약 인간이 극단적인 고행을 하고 아힘사를 잘 지켜 영혼이 한 없이 가벼워지면 그는 우주의 정수리, 즉 천상의 세계까지 영혼이 떠올라 높은 곳에서 우주의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며 결국에는 열반에 이르게 된다고 보았다.

참고로 영혼이 엄청 가벼워서 우주의 정수리에 닿아 있는 사람들이 바로 지나(티르탕카라)다.

3.3. 금욕주의: 고행(Asceticism)

위의 '카르마' 항목에서 설명하였다시피 고행은 아힘사를 어기거나 나쁜 일을 함으로써 쌓인 나쁜 카르마를 없애고 영혼을 가볍게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행위다.[12]

고행의 핵심은 인간의 모든 욕망을 차단하는 것이며 소식(小食), 단식(斷食)[13], 굴욕[14][15], 고독 등의 '외면적 고행'과 예의를 지키는 것, 봉사하는 것, 무소유를 행하는 것, 묵상하는 것, 죄를 참회하는 것 등의 '내면적 고행'이 있다. 참고로 최고의 고행은 단식하다가 굶어죽는 것으로, 이것이 가능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성인의 반열에 드는 것이다.

3.4. 5대 서약(Vratas)

자이나교도에게 요구되는 다섯가지 서약이자 종교적 의무다. 승려나 수행자들에게는 보다 가혹한 수준으로 요구되기 때문에 Mahavratas(Great Vows)라고 하며 일반 평신도들에게는 세속에서 보다 금욕적으로 살라는 의미에서 수행자들보다는 덜 엄격한 기준으로 적용하기 때문에 Anuvratas(Small Vows)라고 한다. 이 금욕조항들은 자이나교만의 독창적인 것들은 아니며 자이나교와 근간을 같이 하는 힌두교와 요가학파들과 같은 인도 고대 종교의 5대 야마(Yama)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명칭까지 일치한다.

3.4.1. 불살생(不殺生, Ahimsa)

자이나교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서약.

3.4.2. 불소득(不所得, Aparigraha)

그 다음 중시되는 것은 불소득으로, 이를 지키기 위해 자이나교 승려와 수행자는 아무것도 가져선 안 된다. 불살생계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16]를 제외하면 옷조차 가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공의파) 자이나교 수행자들은 옷을 입지 않는다.[17] 역시 일반 평신도들에게는 금욕과 절제, 검소함과 청빈 등으로 완화되어 적용된다. 다만 참 웃긴 게 자이나교도들은 돈에서는 냉혈한, 구두쇠로 변모하며 인도의 유대인들이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3.4.3. 불망어(不妄語, Satya)

언제나 진실만을 말해야 하며 거짓을 말하거나 망령된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와 평신도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3.4.4. 불탈취(不奪取, Asteya)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고 남이 준 것이 아닌 물건, 즉 길 가다 떨어진 남이 잃어버린 물건도 취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누군가에게 음식이나 물건을 구걸해서 받을 때도 반드시 주는 자에게 재차 그 주려는 의지를 물어 허락을 구해야 한다. 수행자들은 불소득과 관련해서 애초에 남의 것이든 뭐든 가지려고 하면 안 된다.

3.4.5. 불음(不淫, Brahmacharya)

음란하거나 음탕한 것을 멀리해야 하는 것. 이 조항은 일반 신도와 승려, 수행자들 간에는 다른 기준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승려나 수행자들에게는 독신, 금욕, 모든 성적인 유혹이나 쾌락 추구를 멀리해야 하는 엄격한 조항으로, 일반 평신도들에게는 (당연히 그들도 가족을 이루고 애들도 낳고 먹고 살아야 하므로) 혼전순결과 결혼 이후 배우자에게만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이들 계율의 목표는 '욕구를 버리는 것'으로, 이를 위해 자이나교도는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다든가 하는 정신적인 욕구를 포함한 모든 기초적인 욕구까지 버려야 한다. 생존에 필요한 욕구인 식욕까지 버려야 최고 경지에 들어설 수 있다고 한다.

4. 경전

불교와 마찬가지로 자이나교도 초창기에는 문서화된 경전이 존재하지 않고 교조의 가르침이 구전과 암송을 통해 전승되었으나 기원전 4세기가 되면서 교파 사이의 이견이 생기면서 정경(正經)을 확정해야 할 필요가 생겨났다. 이러한 목적으로 기원전 4세기 말 경에 파탈리푸트라에서 집회가 열렸다. 자이나교 경전을 집대성하고 분류할 목적으로 하는 집회는 기원후 454년까지 계속되었고 700여 년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84가지 문헌들이 정경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되었다.

자이나교 정경으로 인정되는 것은 41종의 수트라(經) 및 12종의 주석과 한 개의 대주석(論) 등으로 이루어졌다. 자이나교도 역시 불교의 삼장에 해당하는 경, 율, 론 구분과 유사한 방식으로 분류된다고 이해하면 편하다. 해당 문헌들은 마가다 지방 방언들로 전수되었으나 이후 산스크리트어로 경전이 번역되었고 대승 불교와 마찬가지로 자이나교 역시 산스크리트어가 주요 언어로 자리잡았다.

5. 특징

5.1. 인본주의적 자력 종교

자이나교에는 창조주 혹은 절대신 또는 인격신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으며 깨달은 자의 초자연적인 능력 같은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 본인은 살아생전 신도들한테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우주적인 지혜를 가지는 건 예외로 본다.

5.2. 이원론적 세계관

모든 것은 생명인 지바(jiva)와 비생명인 아지바(ajiva)로 나뉘어져 있다고 믿었다.

아지바들은 그냥 비생명일 뿐이지만 지바 즉 생명체들은 자신의 영혼에 붙는 카르마에 따라 사후에 물속 미생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환생한다. 물론 이들의 최종목표는 영혼을 가볍게 하고 나쁜 카르마를 없애 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이 지바(생명체)들은 순수한 영혼일 뿐이지만 카르마에 의해서 오염되어 있는데 이 오염된 정도가 심할수록 영혼은 무거워져 지옥에 가까워지는 것이어서 모든 지바, 그 중에서도 특히 인간은 카르마가 쌓이지 않도록 5대 서약(특히 아힘사)을 지키고 고행을 하며 자신의 영혼을 가볍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일부분밖에 볼 수 없는 오염된 영혼은 고행과 계율의 준수를 통해 순수성을 회복하여 자신의 눈을 가리던 카르마들을 벗어던지고 이 세상을 한눈에 보고 우주적 지혜 혹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5.3. 마이너 종교?

전술한 교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이나교는 너무나도 까다롭고 엄격하다.

때문에 자이나교의 신자는 그렇게 많지 않으며 전 세계적인 신도 인구는 600만 명 정도인데 물론 이래도 세계 14위권 정도로 꽤 많은 편이긴 하다.[18] 이 중 400만 명 정도가 인도에 있다. 당연하지만 상술한 교리를 빠짐없이 다 지켰다간 일상생활에서조차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자이나교도들이 교리를 칼같이 지키는 것은 아니다. 인도 여행을 간 여행 전문가 이지상은 자이나교인은 다 이런 줄 알았다가 고기도 아무렇지 않게 먹거나 자이나교인이라면서 위에 서술한 교리를 무시하는 경우도 여럿 봐서 사람 사는 게 그렇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마이너하다고 해도 자이나교도가 인도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제법 큰데 그 이유는 농사나 짓고 물건 만들던 다른 인도인들과 달리 옛날부터 일찌감치 살생을 안 해도 생계에 지장이 없는 상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19][20]

이들은 상업에 관한 책을 저술하거나 상업에 관련된 교육을 받으며 살았으며 따라서 무역은 물론 외부 정보에 상당히 밝았다. 덕분에 인도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유대인도 백기를 들 노랭이들[21], 돈을 쌓아두는 괴물 등으로 부르며 심지어 이슬람 수니파 외의 종교를 죄다 탄압하여 힌두교시크교와의 대대적인 전쟁을 치르며 제국을 붕괴시키게 한 무굴 제국 황제 아우랑제브조차도 이들만은 건드리지 못했다. 무굴 제국 경제도 꽉 잡고 있었다.

당연히 현대에 이르러서도 고탐 아다니를 비롯한 인도의 대기업, 부자, 무수한 상권은 이들 자이나 교도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영국이 자신들의 막강한 군사력과 자본력으로 인도를 식민지배하던 시기에도 인도 경제의 절반은 자이나교도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오히려 현대에 접어들어서 자이나교도의 인도 경제에 대한 영향력이 감소했을 정도다.

이렇게 경제력이 받쳐주니 문해율 및 소득수준도 모든 인도 종교집단 중 압도적으로 높으며, 아마다바드 인도경영대학원 설립자이자 인도 우주계획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비크람 사라바이 박사도 자이나교도로, 경제계뿐 아니라 학계 등 사회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2000년대 와서는 전 세계 다이아몬드 사업에 뛰어들어 수백여 년 동안 유럽 다이아몬드 산업을 독점해 온 유대인을 몰아낼 정도로 투자와 규모가 늘어났다. 벨기에에 있는 안트베흐펜 다이아몬드 상거래 시장은 오랫동안 유대인이 독점해 왔는데 지금은 인도인, 자이나교도들이 장난 아니게 들어왔다. 유대인이 좌우하던 다이아몬드 기업 드비어스를 비롯한 업체 지분까지 야금야금 먹고 있다.

한 때 한국의 쌍용자동차를 인수했던 마힌드라 그룹, 옛 대우전자를 인수하기 직전까지 간 비디오콘 같은 인도 대기업들은 자이나 교인들이 줄줄이 차지하고 있다. 현재 인도에서 전체 인구의 0.42%에 불과하면서도 인도 세금의 24퍼센트를 이 사람들이 낸다.

6. 교파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시간이 지나자 흰 옷 하나 정도 걸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자이나교 종파가 생겨났는데 이 종파가 '백의파(白衣派, Svetambera)'이며 옷을 입지 않는 것을 고수하는 종파가 '공의파(空衣派, Digambara)'다. 세부적으로 더 많은 여러 종파로 나뉘긴 하지만 크게는 위 두 종파로 나뉜다.

6.1. 공의파(空衣派, Digambara)

나행파(裸行派), 나형파(裸形派)라고도 하는데 실제로 불소득의 계율을 지켜 옷을 입지 않고 지내는 건 승려들뿐이다. 일반 신도들도 조심하긴 하지만 옷을 입기는 한다.

백의파에서 전승되어 오는 경전을 인정하지 않고 4-5세기에 쿤다쿤다가 따로 지은 경전을 신봉하고 있다. 교도는 인도 각지에 퍼져 있으며 17세기 이래 비스판티파(派)·테라판티파·타라나판티파의 3파가 있다. 교파들끼리 크게 다른 건 없고 생활 양식만 조금 다르다.

뛰어난 사원 건축이나 조각으로 잘 알려져 있고 프라크리트어(語)인 자이나 샤우리셰니어로 된 2차 경전과 아파브란샤어로 된 경전의 방대한 문헌은 인도 언어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9세기 이후의 것은 주로 카나라어로 쓰인 것이 대부분이다.

공의파에도 출가한 여성 수행자는 있지만 이들은 남자 수행자들처럼 나체수행은 하지 않고 밑의 백의파처럼 8m에 이르는 기다란 하얀 천 하나로 온몸을 두르는 옷을 입는다. 남자 수행자들은 나체에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이지만 여성 수행자들은 천으로 감싸는 것은 허용된다.

6.2. 백의파(白衣派, Śvētāmbara)

자이나교에서 수행자는 계율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기 때문에 당초에는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수행하였는데 마침내 1세기경 백의를 걸치는 것을 허용하는 일파가 나타나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공의파(空衣派)와 백의파 둘로 나뉘었다.

보통 자이나교의 경전으로 자주 언급되는 경전 《싯다르타》는 백의파의 것이며 공의파(空衣派)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현재 백의파는 많은 분파로 갈려 서인도 지방에 널리 분포한다.

공의파와 백의파의 차이는 경전과 백의를 입느냐 마느냐뿐만 아니라 여성의 해탈이 가능한가 아닌가에도 있다. 공의파에서 여성수행자는 (나체수행을 하는 남자 수행자들과 달리) 백의파처럼 백의를 입는데 공의파는 여성신도는 남성신도보다 더 죄를 지어서 여자로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비록 수행을 하더라도 완전한 해탈을 이룰 수 없고 수행을 통하여 그 업을 씻고 (선행과 수행의 대가로) 남자로 다시 한 번 더 태어나서 (공의파로서) 나체수행을 해야 윤회의 업에서 벗어나 완전한 해탈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남자는 수행을 잘 하면 이번 생을 마지막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고 윤회의 업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여성은 한 번 더 태어나 고행을 해야 한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 반면 백의파는 여성신도도 남성신도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한다. 즉, 여성도 이번 생을 마지막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고 윤회의 업에서) 해탈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공의파는 여성사제나 여성을 위한 사원을 인정하지 않지만 백의파는 여성사제와 여성을 위한 사원도 인정한다.

7. 음식

불살생을 추구하는 자이나교 계율 특성상 당연히 고기와 생선 취식을 엄금하며 물이나 우유같은 액체류들도 안에 들어있는 미생물들을 같이 마시지 않도록 체로 거른 후 마셔야 한다.

채소에 관한 규정도 매우 엄격한데 양파, 마늘, 감자 같은 뿌리 식물은 금하며 꿀 대신 설탕만 먹어야 한다.[22] 무화과, 토마토 등 안에 씨가 많은 과일도 금지된다.

이들이 먹는 음식은 다른 인도인들이 먹는 음식과 상당히 다른데 인도 요리에는 원래 양파와 마늘, 생강 등 각종 향신료들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들은 조리에 양파 대신 코코넛, 양배추를 이용해 맛을 내며 마늘 대신 계피를 사용하고 감자를 넣는 요리는 감자 대신 빵나무 열매나 달지 않은 주식용 바나나인 플렌틴으로 대체해서 만든다.

물론 원래 계율이 이렇다는 거고 수도승을 제외한 일반신자들 중엔 고기와 양파, 마늘만 피하고 감자 정도는 먹는 사람도 많다.[23] 이들이 고기와 양파, 마늘을 먹지 않는 이유는 해당 식재료들이 성욕을 강화시켜 정신 건강에 방해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24]

8. 그 외

9. 관련 항목



[1] '자인 프라티크 치나(Jain Prateek Chihna)'라고 일컫는다. 극락의 존재, 인간, 지옥의 존재, 그리고 동식물을 상징하는 스와스티카 문양과 그 아래에는 불살생 및 비폭력을 상징하는 손바닥 모양인 아힘사의 상징이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2] 실질적인 창시자.[3] 신자의 대부분은 인도 지역에 거주 중이며, 인도 전체 인구의 약 0.4% 정도를 차지한다.[4] 자이나교의 핵심 논리학적 개념 중 하나로서 어떤 존재, 어떤 일 등 세상 만물을 판단하지 않고(무판단) 그저 듣고 보고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5] 오늘날의 비하르에 해당하는 지역[6] 자이나교에서는 이를 살레카나고 하여 최고의 경지로 치는데 때문에 자이나교는 거의 유일하게 자살을 용인하는 종교다. 단, 단식에 의한 자살 한정이다.[7] 자이나교는 이를 예화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6명의 맹인코끼리를 만지고 코끼리의 특성에 대해 설명하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다리를 만지고 코끼리가 베개 같다고 했고 꼬리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줄과 유사하다고 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서로가 코끼리의 다른 부분을 만져 코끼리의 수많은 속성 중 하나를 파악한 것 뿐이지 특정 주장이 맞고 틀리다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8]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요가가 맞다. 자이나교에서는 요가라는 수련이 대자연과 같은 무생물을 생물인 사람이 파악하는 과정으로 본다.[9] 당연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소독한 수돗물보다 우물물에 미생물이 더 많다.[10]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극단적 금욕으로 인한 평온한 죽음은 카르마의 경지를 벗어난 해탈의 지경이기 때문이다. 사실 해탈의 정의가 고뇌,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인 만큼 인간의 본능인 식욕이 극한에 이르른 상황에서도 평온하게 죽는다면 어떤 의미론 정의에 포함된다.[11] 아무래도 앞서 말햇듯 카르마를 무겁게 만드는 것이 불살을 어기는 것이며 자이나교에서는 불살을 가장 중요시하므로 반대로 불살을 어김은 가장 무거는 패널티가 주어질텐데 하지만 자이나교에서는 완벽한 불살이란 불가능하다. 물론 악의가 없는 경우는 카르마가 그렇게 무겁지 않지만 어쨌든 쌓이는 것은 같다. 불살을 지키면 상쇄가 아니냐 싶겠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의도적으로 안 죽이는거지 의도치 않게 죽이는 것은 못피한다. 불살이 불가능할진대 하물며 아래로 취급될 선행들이 불살을 지키기 못해 쌓이는 나쁜 카르마를 상쇄시킬만큼 강하다고 여겼다고 보긴 어렵다.[12] 물론 엄청나게 많은 선행을 해도 되지만 이런 선행으로 쌓는 좋은 카르마는 끈덕지게 붙어있는 나쁜 카르마와는 다르게 시간이 지나면 금방 흩어져 버린다.[13] 아힘사도 지키고 고행도 하고 일석이조이다.[14] 일부러 굴욕을 당하고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참는 것)이다.[15] 굴욕을 당하면 그에 따른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반응이 올라오기 때문에 그런 반응마저 고통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보고 그런 굴욕조차 '굴욕은 굴욕일 뿐'이라는 것으로 오로지 무감각을 지향해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16] 입을 가릴 수건, 물을 거를 헝겊, 빗자루, 방울 달린 지팡이 같은 것들이 있다.[17] 단 옷을 입지 않는 공의파에서는 여성의 활동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 수행자가 없다. 반대로 옷을 입는 백의파는 남녀평등 성향이 있다.[18] 과거 정교회와 쌍벽을 이루던 세계 주요 종교 중 하나인 조로아스터교가 현대에는 신자 수가 10만 명도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도의 많은 인구 수를 감안해도 규모가 있으며 후술하겠지만 자이나교를 믿는 재벌들의 자선 및 포교 활동도 영향이 있다.[19] 엄연히 불소득의 계율에 어긋나지만 그걸 까다롭게 일일이 적용해서 옷도 다 벗고 다니는 건 승려들이나 그렇지, 일반 신도들까지 그렇게 엄격하게 적용하긴 힘들다.[20] 힌두교는 교리상 바다를 건너면 반드시 정화 의식을 받아야 하는데 이걸 안 하면 브라만일지라도 바로 불가촉천민으로 강등된다. 당연히 힌두교 신자들은 배를 타야 하는 상업을 멀리하게 되고 그 자리를 자이나교도들이 자연스럽게 차지하게 되었다.[21] 16세기 스페인이 그라나다 지역을 차지하면서 종전 이슬람 지역에 공존하던 유대인들이 탄압받자 이들이 이주해 온 곳 가운데 하나가 인도였다. 기독교에 기반한 반유대주의가 없는 인도에선 이들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공존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인도 경제를 차지하지 못한 이유가 자이나교인들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오기 무려 1000년 전부터 이미 이곳의 지리와 무역에 관한 각종 정보들을 모조리 달달 외우고 독점하는 이들을 상대하는 일은 제 아무리 유대인들이라도 버거웠다. 그래도 일부 유대인은 인도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착실히 자리를 잡아서 지금도 일부가 부촌을 이루며 대대로 살아가기도 한다.[22] 뿌리 식물은 캐다가 흙 속의 미생물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고 꿀은 채취하는 과정에서 벌집을 건드려야 하기 때문인데 이 점 때문에 채식주의자들 중에도 꿀을 섭취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23] 애초에 뿌리 식물을 먹지 못하게 하는 계율은 인도에 감자가 들어오기 20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계율이다. 경전 내에는 감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으니까 먹어도 되지 않냐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24] 쉽게 말하면 불교오신채와 근거가 비슷하다.[25] 불교에서도 비슷하게 현재의 신분은 전생(들)에서 쌓인 업 때문이라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26] 어차피 자이나교에서는 열반에 이를 수 있는 지나에 오르지 못하는 이상 별반 차이는 없다. 이는 열반에 오를 수 있는 부처가 되지 않는 이상 마찬가지로 육도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불교와 비슷하다.[27] 다만 여기에서는 힌두교의 카스트도 같다. 카스트도 현생의 신분은 전생의 업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힌두교식 카스트에 따르면 아무리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도 현생의 업에 따라 다음 생에는 좀 더 나은 신분으로 태어날 수 있다. 그러나 힌두교식 카스트에 따르면 거기까지로 아무리 잘나게 태어나도 결국 다시 죽어 환생하므로 내가 좋은 자리에 앉았다고 끝이 아니라 다시 거의 영원히 반복될 환생을 거듭한다. 그러나 자이나교에서는 그것을 넘어 최고의 정점에 올라 더이상 카스트에 속박되지 않을 수 있음을 말한다.[28] 카스트 자체를 전면부정하는 데다 권위에까지 도전한 것이 바로 싯다르타와 후대에 나타난 시크교다. 특히 시크교는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체제를 인정하지만 건드리는 즉시 전쟁을 불사했는데 무굴 제국에게 저항운동을 하면서 제국을 무너트리는 데 일조했고 영국과 전쟁을 했으며 현대 인도에서는 총리를 암살할 정도였다.[29] Karen Armstrong,'축의 시대',정영목 옮김,교양인,2010[30] 박성래 외 2명,'과학사',전파과학사,2013,pp327-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