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적
역대 감독 전적 | |||||||
연도 | 팀 | 경기 | 승 | 패 | 무 | 정규리그 | 포스트시즌 |
2003 | SK 와이번스 | 133 | 66 | 64 | 3 | 4위 | 준우승 |
2004 | 133 | 61 | 64 | 8 | 5위 | - | |
2005 | 126 | 70 | 50 | 6 | 3위 | 4위 | |
2006 | 126 | 60 | 65 | 1 | 6위 | - | |
통산 | 518 | 257 | 243 | 18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무 | 정규리그 | 포스트시즌 |
2007 | KIA 타이거즈 | 1[1] | 0 | 1 | 0 | - | - |
2008 | 126 | 57 | 69 | 0 | 6위 | - | |
2009 | 133 | 81 | 48 | 4 | 1위 | 우승 | |
2010 | 133 | 59 | 74 | 0 | 5위 | - | |
2011 | 133 | 70 | 63 | 0 | 4위 | 4위[2] | |
통산 | 526 | 267 | 255 | 4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무 | 정규리그 | 포스트시즌 |
2015 | kt wiz | 144 | 52 | 91 | 1 | 10위 | - |
2016 | 144 | 53 | 89 | 2 | 10위 | - | |
통산 | 288 | 105 | 180 | 3 | |||
총계 | 1332 | 629 | 678 | 25 |
2. 경력별 상세
2.1. 코치 시절
삼성 라이온즈 배터리 코치 시절.
은퇴 이후 쌍방울 레이더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를 하였다. 쌍방울에서 박경완을, 삼성에서 진갑용을 국가대표급 포수로 조련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배터리 코치를 하던 시절인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했다.
2.2.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
강병철 감독의 후임으로 2003년부터 SK 와이번스의 제2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쌍방울과 삼성의 배터리 코치로서 쌓은 명성 덕분에 야구계에서는 감독감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SK에서 강병철 감독의 후임 감독을 선임하려고 할 때, 프런트 전 직원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적당한 감독감을 추천하라고 하자 가장 많은 표가 나온 사람이 조범현이었다고 한다. 이를 보고 당시 초대 SK 와이번스 사장인 안용태 사장이 조범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프런트가 추천하는 인물이니 그냥 과감하게 임명을 했다고. 정식 감독 부임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감독 제안이 처음 오고갔을 당시가 2002년 한국시리즈 무렵이었고 일반적으로는 코치에서 감독으로 부임이 영전인지라 축하해주는 것이 평범한 수순이지만, 2002년 한국시리즈가 워낙 처절한 접전이 돼버리면서 감독 영전 공식 발표 시기를 조율하였다. 결국 삼성의 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나서 조범현은 SK의 공식 감독으로 취임할 수 있었다.
2003년 초반에 1위에도 잠시 오르는 등 돌풍을 일으켰지만 시즌 후반부터 처지기 시작하면서, 결국 정규시즌 자체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4위 자리를 놓고 다투던 한화 이글스를 잡아내며 4위로 간신히 준플레이오프에 턱걸이하였다. 어쨌든 팀 창단 첫 번째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 그리고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에서 삼성과 KIA를 잇따라 스윕하면서 정규시즌 4위에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며 이른바 "돌풍의 SK"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도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3승 4패로 현대 유니콘스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1, 4, 7차전에 모두 등판해서 3승을 따낸 현대의 에이스 정민태를 공략하지 못한 것이 컸다. 43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감독직에 올라[3] 조범현이 지휘봉을 처음 잡은 2003 시즌의 예상치 못한 큰 성과로 당시 프로야구계의 감독 40대 기수론이 유행하기도 하면서 이듬해 롯데 자이언츠가 당시 43세였던 양상문을, 두산 베어스 역시 46세의 김경문을 감독으로 선임했고, LG 트윈스의 감독도 역시 40대의 젊은 그 분이 임명, 2005년에는 삼성 라이온즈가 42세였던 선동열을 감독으로 임명하는 등 프로야구 감독 평균연령이 확 낮아지기도 했다.
2004년에는 기존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5위에 그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4] 박경완이 홈런왕, 이호준이 타점왕, 이진영은 0.342의 고타율을 기록하며 생애 첫 골든글러브를, 베테랑 김기태가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등 팀 타격 성적은 좋았고, 그래도 감독 첫 해인 2003년에 보여준 예상외의 돌풍과 2004년 아깝게 4강을 놓친 것도 있었기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2년 재계약에 성공했다.재계약 첫 해인 2005년 시즌을 앞두고, LG에서 FA로 나온 김재현을 FA로 영입했고, KIA 구단과의 불화로 트레이드 시장에 나온 박재홍을 영입, 투수진 역시 현대에서 자유계약으로 방출된 위재영을 데려오는 등 대대적인 전력 보강이 이뤄졌다. 2005년 시즌을 앞두고 조범현이 이끄는 SK는 우승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전반기에는 기대치와 다르게 잠시 하위권에 머물다가 어느새 다시 정상궤도에 오르며 이제는 우승도 가능하다는 평가가 들려오기도 했다.
박재홍, 박경완, 이호준, 김재현, 이진영을 축으로 하여 신구조합이 완벽했던 타선은 충분히 리그 상위권이었고, 마운드에서는 베테랑 김원형이 171이닝에 14승을 올리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았고, 신승현이 선발진에 합류해 12승을 따내는 등 강력한 토종 선발 원투펀치, 정대현, 위재영, 조웅천으로 구성된 계투진 등 팀을 잘 꾸리는 등 팀 전력으로만 보면 충분히 우승팀에 맞먹는 수준이었다. 이 기세를 이어 후반기 최고 승률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하면서 정규시즌 마지막 날까지 선두 삼성에 2경기 차이로 시즌 2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즌 마지막 날 이미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된 LG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턱밑까지 따라와 있던 두산에게 역전을 당해 최종순위는 시즌 3위로 내려앉았고, 이 충격 때문에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게 2승 3패로 패하면서 탈락했다.
조범현이 이끄는 SK가 우승 최적기였던 이 시즌에서 허망하게 무너진 후, 2006년에는 초반 팀 타선의 핵이었던 외국인 타자 시오타니 가즈히코의 부상과 투수진의 붕괴로 미끄러지면서 6위에 그쳤다.
결국 2006년까지 감독 생활을 했지만 구단 측이 조범현과의 재계약 대신, 조범현의 스승인 김성근 감독과 계약을 맺으면서 첫 감독 커리어는 이렇게 썩 좋지는 않게 끝났다. 사실 성적 부진과 2006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 과정에서 구단과의 트러블이 결정적이였다. 애초 구단은 동산고의 류현진을 지명하려고 했으나, 조범현 본인은 인천고의 이재원을 지명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였고[5] 이 요청에 따라 SK는 결국 이재원을 택하게 되고 결과는...[6]
조범현 감독은 SK의 감독으로 있으면서 강병철 감독이 닦아놓은 토대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고, 기존의 이호준, 조경환, 김원형, 이승호, 조웅천 등 기존의 선수들과 박경완, 박재홍 등 외부 영입 선수들을 적절하게 기용하여 SK의 허접했던 약체 이미지를 벗겨내고 제대로 된 강팀의 기틀을 닦아 당당히 포스트시즌에 도전할 수 있는 팀으로 성장시켰으며, 김성근 감독 부임 후 SK 와이번스의 3차례 우승을 이끌었던 젊은 핵심 전력 정근우, 김강민, 최정, 박재상, 조동화, 정우람, 윤길현 등 팀의 미래를 책임지게 될 선수들을 1군으로 끌어올리는 등 결코 팀의 역사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내었던 바 있다.
다만 조범현이 이런 호성적을 낼 수 있던 시절에는 정작 조범현이 SK 시절 손수 육성한 선수들보다 외부 영입의 주효와 조범현 부임 이전 기존 선수들의 활약 덕분이었다. 롯데에서 20홈런 이상을 처낸 조경환, 현대 시절 이미 최고의 중간계투였던 조웅천, 해태 시절 장타력이 입증된 이호준,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출신인 아마추어 최고 유망주 정대현, LG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FA로 팀을 이적한 캐넌히터 김재현, SK 출신 신인왕 투수 이승호, 쌍방울 시절 최연소 노히트노런 등 꾸준히 활역한 김원형, 이미 현대에서 기량을 보여준 위재영, 기아와의 갈등 속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호타준족 박재홍, 그리고 견고한 수비의 베테랑 유격수 김민재와 KBO 리그 최고의 포수 중 하나인 박경완 등.
2.3. KIA 타이거즈 코치 및 감독 시절
이후 스포츠서울의 객원기자로 있다 2007년 6월 KIA 타이거즈의 배터리 코치로 취임했다. 이를 두고 당시 KIA 타이거즈 팬들 사이에는 서정환 감독의 후임으로 구단 측이 데려왔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물론 서정환 감독은 자신이 부탁해서 왔다고 말했지만 서정환 감독과 별로 인연도 없었던 조범현 감독이 선뜻 배터리 코치로 부임한 것은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전 프런트에 말에 따르면 조남홍 당시 기아자동차 사장 겸 KIA 타이거즈 사장[7]과 조범현이 인하대 동문이라서 KIA로 왔고 감독으로 선임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7년 10월 시즌 후 서정환 감독 대신 김응용 감독 이후 첫 非해태 출신[8] KIA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여담으로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2007년 말 취임하자마자 데뷔전 1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보통 정식으로 감독에 취임하는 시기는 정규시즌이 모두 끝난 뒤이므로 이례적인 사례인데, 이는 정식 데뷔전이 하필이면 슈퍼 한국시리즈였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실질적인 KIA 감독은 2008시즌 부터인데 전년 최하위 팀을 일단 6위까지 올렸다. 2009년 정규리그 우승과 2009년 한국시리즈의 우승으로 팀에 열 번째 우승을 안겨주며 일약 명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2010년에 지독한 16연패의 늪에 빠지는 바람에 지지도가 많이 떨어졌고[9], 2011년에는 전반기 선두를 달리다가 믿을 수 없는 주전들의 줄부상 속에 4위로 추락하면서 결국 2011년 10월 18일 KIA 타이거즈 감독직에서 자진사퇴하게 되었다. 사퇴 전까지 2012년 계획구상에 대한 기사가 나온 것을 보면 구단의 권고에 의한 사실상의 경질로 볼 수 있다.
2.3.1. 2010년
자세한 내용은 조범현/2010년 문서 참고하십시오.2.3.2. 2011년
전반기엔 잠깐 삽질을 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연승 행진을 이어가며 1위 자리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1위 자리를 삼성 라이온즈에게 빼앗기고, 미덥지 못한 불펜 운용으로 4위 자리까지 추락. 포스트시즌에서도 이만수의 SK 와이번스에게 2009년 코리안시리즈의 리벤지를 당하며 1승 후 3연패로 탈락하며 허무하게 가을 야구를 마감했고, 팬들의 성화에 밀려 결국 KIA 감독에서 물러나게 된다.자세한 내용은 조범현/2011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2.3.3. KIA 감독으로서의 총평
객관적으로 보면 상당히 유능한 감독이다. SK에서나 KIA에서나 팀을 중상위권에 고정시켰다. 특히 KIA는 조범현 부임 전, 유남호-서정환 때문에 해태의 이미지가 모두 갉아먹히고 엘롯기 시대를 연 약팀으로 일컬어졌으나, 조범현 시절에 이르러선 어쨌든 강팀의 이미지를 되찾게 되었고 삼성, SK 등과 더불어 우승후보에 거론될 정도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의 부임시기에 선동열, 김경문과 같이 개성있는 젊은 감독들이 맹활약한 탓에 존재감이 다소 밀린 데다가, 후임 감독인 김성근이 엄청난 성과를 낸 SK나, 비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라는 약점[10]이 있는 KIA에서는 자팀 팬들에게도 인정을 못 받은 탓에 저평가를 받았다.다만 한 박자 늦는 작전 타이밍, 혹사 등 투수 운용의 무리수[11] ,거기에 겹친 여러 선수들의 부상[12] 등등 약점도 뚜렷하게 보이는 면이 있었다. 이 때문에 2011년 전반기를 1위로 마감하고서도 후반기에 성적이 급전직하하여 팬심을 잃어버렸다.[13] 물론 이런 "운"이라는 요소도 감독은 그 여파를 최소화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결국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또 코치진 선정도 합리적이지 못하고[14] 3년간 현장을 떠나 있던 김대진을 별다른 설명도 없이 불러들이거나[15] 방금 은퇴한 최경환을 연수도 없이 바로 1군 타격코치로 올리는 등 주먹구구식 코치진 구성을 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2011년 한 시즌은 조범현식 야구의 축약판으로 볼 수 있는데, SK 시절이나 KIA 시절이나 계약 초반에는 잘 하다가 후로 갈수록, 그리고 주전 선수들이 무너지게 된다면 팀이 급속도로 약해져 가는 식을 반복하였다. 이런 것을 보면 막장화된 팀을 리빌딩하여 중상위권으로 끌어올리고 기회가 오면 상위권으로 팀을 도약시키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으나, 상위권 팀으로 올린 뒤 이 전력을 장기간 유지하는 면에서는 좀 서툰 것으로 보인다. 결국 주전 선수들을 받쳐줄 1.5군 선수 양성을 소홀히 했고 불펜 운용이 서툴렀다는 점 등을 이유로 팬들의 마음이 떠났고, KIA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16]
그렇게 팬들의 지지와 신임을 잃고 물러났지만, KIA 팬들이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과거의 영광을 잃고 2007년까지 약팀의 대명사인 엘롯기라 조롱을 당하던 KIA 타이거즈에 V10을 안기고, 해태 시절의 강팀으로 재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다져놓은 장본인이 바로 조범현 감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2009 시즌 우주의 기운으로 우승을 했다는 것을 감안해도 안치홍, 김선빈, 손영민 모두 조범현이 중용하여 타이거즈의 핵심 전력으로 만들었다는 것까지는 부인하지 않는다. 특히나 2009년 한국시리즈 당시에도 데이터를 중시하는 그답지 않게 부진하던 나지완을 밑고 끝까지 기용을 한 것 역시 감독의 전적인 결단이었다. 2009년 당시 19살 신인이었던 안치홍을 당시 무려 김종국이 버티고 있던 2루에 주전으로 밀어넣고 김종국을 백업으로 내린 결단도 조범현 감독의 뜻이었다. 증명되지 않았던 신인을 그 전해 113경기 785이닝 동안 실책이 단 2개[17], .996의 수비율을 기록한 선수 자리에 넣을 만한 감독이 얼마나 있을까? 그 후 불펜 위주의 운용을 하는 선동열 감독에 의해 이 선수들이 빛을 보지 못해 암흑기를 겪긴 했지만 이 핵심 전력들에 후임 감독인 김기태가 백업 멤버들을 강화시켜 지금의 탄탄한 타이거즈가 완성되었다. 물론 SK에서 맹활약하게되는 전병두를 트레이드로 보냈다는게 유일한 옥의 티다.[18]
더구나 인수 이후 사실상 야구단을 방치하던 모기업 현대자동차그룹이 2009년 우승 이후, 적극적인 투자로 돌아섰다. 현대자동차그룹의 후계자인 정의선(정몽구의 장남) 부회장이 우승 직후 축하연에서 선수들에게 '그동안 지원이 미흡했던 걸 인정한다. 앞으로는 달라질 거다'라고 직접 약속하였다. 200억 원을 투자해서 함평군에 최신식 2군 훈련장인 KIA 챌린저스 필드를 지었고,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 건설비에도 300억 원을 보태며, 총 500억원을 지역 야구 발전을 위해 투자하게 된다. 그리고 3군 체제를 처음 도입한 것도 조범현 감독 시절 말기의 일. 모두 모기업 변경 후 첫 우승인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부산물이다.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무난한 평을 받고 있다.[19] 아무래도 기나긴 암흑기를 물리치고 1997년 한국시리즈 이후 12년만에 V10, KIA 타이거즈로 인수된 이후에는 첫 번째 우승을 달성하게 해준 감독인지라... 더군다나 조범현 감독이 리빌딩 하기 전인 2007년도 라인업(소위 송산이 4번을 치던.) 짤만 뜨면 조범현 감독 찬양을 하는 갤러들도 볼 수 있다. 지칭하는 별명은 주로 버며니 어빠가 되는 듯.
2012년에 선동열과 이순철이 이종범을 사실상 은퇴 종용으로 나가게 한데다, KIA가 SK와의 개막 2연전에서 모두 패하는 등 지속적인 경기력 난조를 보이자 KIA 타이거즈 갤러리를 중심으로 재평가 운동이 일어났다.
2013년 시즌, 팀 최종 순위가 8위로 추락해 9위를 확정지은 한화 이글스와 함께 하위권을 형성, 투타에 수비까지 죄다 무너지는 총체적 난국을 연출하였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2000년대 롯데나 LG처럼 최소 수년의 리빌딩이 소요될 것이 분명해진 상황이라 KIA 타이거즈 갤러리 등에서는 조뱀을 깐 나 자신을 반성한다는 식의 자아비판까지 줄을 잇기도 했다. 호랑이 사랑방에서마저 조범현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했다.
선동열은 3년 계약기간이 끝난 2014년까지의 성과를 보면 정확히 김재박의 전철을 밟았고, KIA 타이거즈가 선동열 지휘 아래서 우승이나 4강권은 커녕 탈꼴찌를 걱정해야 할 수준으로 몰락한 시점에서 보면 2011년의 조범현의 계약 기간 내 경질과 선동열 선임은 프랜차이즈 선호에 눈이 먼 비(非)이성적인 팬덤 + 팬덤에 휘둘린 구단수뇌부의 경거망동 + 선동열에 대한 과대평가가 빚어낸 최악의 한 수임으로 판명되고 있다. 이 때문에 조범현에 대한 평가는 계속 올라가는 중이다.
2023년 기준으로는 타이거즈 역대 감독 중 타이거즈의 최다 우승인 9회 우승을 달성한 김응용 다음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감독이다.[20] 특히 조범현은 연고지부터 시작하여 비 프랜차이즈 스타이면서 해태-KIA와 인연이 없는 순수 외부자였음에도 타이거즈를 다시금 강팀으로 올리는데 기여했고, V10을 안겨줌으로서 평가가 계속 상승 중에 있다. 조범현 감독 이후의 선동열, 김기태, 윌리엄스는 평가가 모두 좋지 않고 김종국은 단순 역량부터 서정환급에 배임수재까지 일으켰기 때문에 금지어로 추락한 상황.[21]
2.4. 야인 시절 1(2012~2013)
삼성 라이온즈 포수 인스트럭터 시절.
2012년 한국야구위원회 육성위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전국을 순회하며 야구 유망주들을 지도하였다.
2012년 곯을 대로 곯은 한화 이글스에서 한대화 감독이 경질되면서 차기 감독 후보로 떠오르기도 했다. 리빌딩에 있어서는 최고의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화팬들의 지지를 꽤 받았다. 외에도 이정훈 북일고 감독이나 감독 대행을 맡은 한용덕도 차기 감독 후보로 꼽혔다. 한편 스승인 김성근은 고양 원더스와 재계약하면서 당분간은 프로로 복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하였다.
이르면 9월 말 신임 감독을 최종 결정한다고 한다.
9월 15일, 차기 한화 감독으로 낙점받았음이 밝혀졌다. # 일전에 언급된 시기보다 빨리 밝혀진 셈인데, 한화 구단은 예정 그대로 9월 말에 공식 발표할 예정이었던 듯 하나 정보를 미리 입수한 기자가 단독으로 기사를 낸 것으로 보인다. 기사가 뜨자 마자 한화는 차기 감독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다고 급히 사태를 봉합하였다.
9월 16일 한화에서 이런 서투른 행보를 한 이유가 다른 팀에서도 조범현에게 감독 제의를 했기 때문에 서두른 것이라는 기사가 떴다.# 한화 이외의 일곱 구단에서 경질될만한 감독이 없어보여서 그저 카더라에 그치는줄 알았는데...
9월 17일 김시진 감독이 넥센 히어로즈에서 경질되면서 분위기가 묘해졌다. 넥센 팬들은 구단을 성토하는 한편으로 은근히 조범현을 기대하는 상황이며, 한화 팬들은 반대로 김시진을 모셔오자고 하기도... 덕분에 '밀약'이라도 있던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한화 이글스에서 김재박 감독의 선임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 조범현 감독은 넥센으로 가는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화 이글스에서는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는 강수를 두고, 넥센 히어로즈에서는 염경엽 주루코치를 감독으로 내부에서 승격 시킴에 따라 두 팀의 감독으로 활동할 일은 없게 되었다. 그 탓에 감독직 대신 김응룡의 배터리 코치로 부임하거나[22] 앞으로 창단될 제 10구단 kt wiz의 감독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이런저런 하마평이 나오는 가운데 2012년 포스트 시즌이 끝난뒤 롯데의 감독이 사퇴하면서 롯데로 간다는 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롯데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짤린 김시진을 영입하면서 롯데 감독직 획득도 좌절.
결국 2013년 1월 초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 인스트럭터로 초빙되었다. 스프링캠프 때만 포수들을 지도하게 되었다가 아예 삼성 포수들을 지도하게 되었다. 삼성 팬들은 그가 이지영과 함께 김동명 등 2군 포수들의 실력을 향상시켜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이지영은 물론이고 2군 포수들도 노답에 전병호 코치와 유망주들만 홀라당 빼갔다[23][24]
그러나 2014 시즌 수술로 빠진 진갑용, 개막전 이후 부상으로 이지영이 결장한 사이 2년차 신인 포수 이흥련이 괜찮은 모습을 보이고 이흥련을 삼성 인스트럭터 시절 조범현 감독이 미친듯이 굴리며 담금질했다는 기사가 나와서 다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진갑용 시즌 말 복귀예정이고 이지영이 결장만 1달에 기존의 제 3 포수였던 이정식은 봉와직염으로 1~3포수가 죄다 아웃인 점을 감안하면 삼성 입장에선 이흥련의 활약이 천만다행인 셈이었기에.
2.5. kt wiz 감독 시절
2013년 8월 2일, 신생구단 kt 위즈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8월 5일 취임식을 가졌다. 이전에 감독으로 있었던 SK 와이번스나 KIA 타이거즈와 맞붙으면 어떤 모습이 나올지 기대를 받기도 했다.2014년 11월 28일 특별지명에서 KIA 타이거즈의 이대형을 지목하면서 정작 이대형이 20인 보호 명단에 없자 이대형이 무슨 병이 있나 해서 어리둥절했다고 하였다. 이에 KIA 타이거즈 갤러리 등에서 조리둥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대형을 보호명단에서 빼버린 김기태는 끝까지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아서 결국 KIA팬들은 실력 문제가 아닌 개인 감정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25]
2.5.1. 2015년
신생팀 감독을 맡으며 감독 생활 중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할 만큼 힘든 한 해를 보냈으나, 그런 와중에도 조무근, 김재윤 등 필승조 발굴과 김상현, 박경수 등 기존선수들의 재발견으로 팀의 기반을 잘 다져놓았다는 평을 받았다.자세한 내용은 조범현/2015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2.5.2. 2016년
2015년 후반 사생활 논란으로 중징계를 받은 장성우에 대해 부모가 자식에게 뭐라고 하겠나라며 대인배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장성우가 욕한 대상에 본인도 포함되어 있음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kt 위즈 팬들의 심금을 울린다는 평. 여기에 트레이드 상대였던 박세웅이 어느정도 기량이 성장하면서 개인성적보다 팀이 우선이라는 리더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2016년 kt 선발투수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부각된다.그런 와중에도 2016년 2차 드래프트에서 이진영을 얻어왔다. 이진영이 보호선수명단에서 빠진 것을 보고 놀라서 kt 프런트 직원에게 LG 트윈스 프런트에 전화하여 정말로 이진영이 빠진 것이 맞냐고 확인을 시켰다고 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어쨌든 단번에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고. 이대형 때도 그랬지만, 어쨌든 주전급 선수를 거저 얻은 격.
2월 3일 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장성우의 잘못에 대해 야구팬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며 머리를 숙이셨다. 본인 또한 뒷담화의 피해자이면서도 결국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는 부분에서 kt 팬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3월 13일 오정복이 음주운전으로 입건돼 징계를 받으면서 '조범현 감독님 수명을 얼마나 깎아먹을 셈이냐'는 드립이 베스트댓글이 되었다.
5월 말이 되면서 선발진이 완전히 무너졌음에도 6선발을 고집하는 것과 6선발 고집으로 인한 장시환과 고영표의 혹사, 부진한 상태인 김상현, 앤디 마르테 등을 과도하게 기용하는 것 등으로 비판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여기에 5월 말부터 6월 초 심재민을 9경기중 무려 8경기에 등판시켜 논란이 되고 있다.
7월 12일 이번에는 김상현이 약 한달전 익산의 2군 구장에서 경기가 끝난후 차내에서 밖에 서있는 여성을 보며 음란행위를 하여 수사를 받고 있음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쯤되면 조범현 감독 몸에 사리가 생기는거 아닌가 싶다 이번 사건에 휘말린 선수가 다른 선수도 아니고 KIA 시절부터 연을 맺었으며 올 시즌 죽을 쑤고 있음에도 무한 신뢰를 하며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시켰던 김상현이라 전보다 속이 엄청 많이 쓰릴 것이다.
전반적으로 위의 'KIA 감독으로서의 총평' 문단에 적힌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야구를 보여주면서 경기운영이 답답하다는 팬들의 성토가 나오고 있다. 또 본인의 재계약보다 팀 성장이 우선이라는 말을 했으나 선발투수가 조금이라도 흔들린다 싶으면 퀵후크를 남발하고 불펜은 그 반대급부로 지독하게 혹사하는 등 팀 성장에도 도움이 안 되고 성적을 내서 재계약을 노려보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경기운영을 반복하고 있다.
2016년에도 이창재와 고영표 등이 혹사지수 상위권에 올랐기에 유일신 김성근, 혹사에서도 콩라인인 김경문에 이어 혹사 3위, 혹은 인간계 혹사 2위라는 평가를 받으며[26], 이는 육성형 감독이라는 조범현 감독의 최대 장점을 크게 갉아먹는 요소이다. 비슷하게 경기운용에 꽤나 부족함이 있지만 미래의 팀을 잘 만들어놓았다는 김진욱 전 감독의 경우 혹사는 비교적 확실하게 배제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조범현 감독의 평가가 내려갈 수밖에 없다.[27] 특히 지금 데리고 있는 투수코치인 정명원 코치가 바로 두산 시절 김진욱 전 감독과 함께하던 코치이며 2군의 차명석 코치도 LG 시절부터 명코치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혹사에 관해서는 이미 다른 팀에서 전과가 있는 조범현 감독에게 제일 많은 비판의 화살이 쏠리는 편이다. 팬들의 인식만큼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니지만 김성근 선동열 김경문으로 대표되는 타이트한 불펜야구 시대에 감독을 하고 우승을 했던 것이 오히려 젊은 감각으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2010년대에는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시즌 초반 선전하며 좋은 출발을 보이는 듯했으나 여름 들어 영 시원찮은 경기력으로 결국 10위로 곤두박질친 팀, 불펜 혹사 논란, 선수들의 잇따른 야구 외적 사건사고 등 때문에 재계약은 힘들 듯하다. 8월 24일 이런 이유를 들어 '프로야구 kt wiz, 조범현 감독과 재계약 안할 듯'(경기일보)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되었다.
10월 12일 새벽 1시 30분경 결국 kt가 조범현 감독과 결별을 택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후임 감독은 김진욱 전 두산 베어스 감독.
2.5.3. kt 감독으로서의 총평
팀이 창단하자마자 주력 전력의 노쇠화와 유망주 투수들의 혹사로 인한 부상 및 수술 위험이라는 문제점을 남기고 떠난 감독. kt팬들과 팬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kt팬이 아닌 사람들은 기존에 알려진 바와 같이 조범현이 리빌딩의 달인이라는 멘트와 함께 구단이 투자를 안 해서 kt가 실패한 것이라며 조범현이 원했던 그림 중 제대로 된 게 하나 없다는 평가를 한다. 그러나 팀이 투자에 소극적이었고 사건사고가 지나치게 많았던 부분을 인정하더라도 조범현의 kt 운용은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히 있다.우선 상단 KIA 감독으로서의 총평 문단에도 언급된 '한 박자 늦는 작전 타이밍, 투수 운용의 무리'에 대해서는 kt 감독으로 있는 동안에도 전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투수운용은 팬들도 답답함을 토로할 정도로 교체 타이밍이 너무 늦는 경우가 잦았다. 딱 한 번 귀신같은 투수교체로 승리를 챙겼던 2015년 9월 21일 경기가 있긴 한데, 잘했던 것보다는 못했던 게 더 기억에 남는다지만 투수교체를 잘했던 경기의 대표적 예시로 꼽을 것이 이 경기뿐인 수준이다.
연패를 끊어내는 능력도 제로에 가까워 한번 연패에 빠지면 계속 무기력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팬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재주는 덤.
또 신생팀 감독으로서 전력의 내실화에 힘을 쏟아야 했음에도 조급증에 걸린 것처럼 유망주 선발투수가 조금만 흔들려도 바로 불펜을 가동시키고, 이는 불펜의 과부하로 이어져 장시환, 조무근이 2016년 들어서 전년도의 페이스를 완전히 잃었으며, 2016년 4월과 5월에 걸쳐 고영표와 심재민을 타자 수준으로 출전시키는 등 두 번째 해에도 이런 모습은 개선되지 않았다. 고영표와 이창재 등이 혹사지수 상위권에 랭크되었지만 한마디로 혹사지수보다도 더 혹사가 심하다. 2010년대 중, 후반 감독치고는 연투와 집중투에 무심한 편으로, 2013년 초반 김승회를 미친척하고 굴려서 후반기에 뻗게 만든 롯데의 김시진 감독이나 4월 송창식 애니콜 논란을 일으킨 한화의 김응용 감독처럼 시즌 끝나고 보면 등판횟수가 적어서 혹사가 아닌 것 같지만 단기간 집중적으로 무섭게 굴려서 여러 투수의 폼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저질렀다. 다르게 말하면 이건 김성근이나 김경문처럼 알고도 총 이닝을 많이 먹이는 혹사를 저지르는게 아니라 투수운용을 그냥 못하는거다. 이닝 천천히 고르게 먹였으면 아무도 혹사 안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정명원-차명석 등 다른 팀에서 좋은 의미로 검증된 투수코치 라인을 데리고도 과거 자신이 고집하던 투수운용을 그대로 반복했다.[28]
야수의 경우 주력선수들은 이적생 출신의 베테랑 타자들(김상현, 박기혁, 박경수, 이대형, 유한준, 이진영 등)이 대다수이고 여기에 트레이드했거나 팀 창단 시 뽑았던 노망주들(오정복, 하준호, 김사연 등)이 주전과 백업을 오가는 상황이다. 201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투수를 거르고 야심차게 1픽으로 지명한 남태혁조차 2016시즌 내내 모습도 드러내지 않다가 이미 순위가 다 결정난 시즌 막바지에 와서야 1군에 콜업되는 등 유망주로서 포텐을 터뜨린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야수 육성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2군에서 아무리 잘 쳐도 항상 베테랑 위주로 라인업을 구성하기 때문에 2군 선수들을 잘 콜업시키지 않으며, 어쩌다 올라와도 단 한 번의 기회만을 제공한 후 뭔가 보여주지 못하면 금방 내려버리는 식의 운용이 시즌 내내 반복되었다. 야수 주전 육성 0명이라는 결과는 조범현이 리빌딩과 육성을 잘하는 감독이라는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것으로, 조범현이 kt에서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단순히 결과만 좋지 않았다면 야수 자원의 부족이나 시간의 부족 탓을 해도 되지만, 조범현 감독의 경우는 그 과정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아무리 봐도 타격 컨디션이 별로인 김상현을 믿음의 야구로 일관하며 타율이 2할 초반대에 머무는데도 꾸준히 4번에 기용하거나, 기계적인 수준의 좌우놀이에 집착하는 등 현대야구 추세인 데이터 야구를 전혀 하지 않는 모습도 신생팀으로서 신선한 야구를 보여줬으면 하는 팬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오랜 경력에 비해서는 비교적 나이가 젊은 편이지만, 나이가 무색하게 확실히 옛날 야구를 한다.
박세웅을 보내고 장성우를 영입한 것도 후대엔 재평가가 될지 모르겠지만 2016시즌을 마친 현재로서는 실패한 트레이드에 가깝다. 박세웅이 롯데에서 쌓은 승수만큼 kt에서 기록한 투수는 외국인 중에도 없다. 반면 장성우는 인성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굳이 데려왔고 결국 사고를 내는 바람에 2016시즌 내내 전력외가 되고 말았다. 다 큰 성인이 자기 앞가림이야 자기가 하는 것이 맞지만, 선수들의 사건사고를 책임질 사람을 찾는다면 당연히 감독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박세웅이 2017시즌에 완벽히 성장을 하여 롯데의 우완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망한 트레이드가 될가능성도 충분하다.
신인지명에도 문제가 많았다. 2015년 특별우선지명에서 황금사자기와 대통령배를 석권한 서울고 우완에이스 최원태를 즉전감 필요하다며 거르고 주권과 홍성무를 골랐다. 주권은 '16시즌 한해 반짝이라도 했지 홍성무는 아무것도 없다. 이듬해 2차 지명에선 다들 야수 최대어 최원준 아니면 투수 김재영을 뽑을 걸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둘다 제끼고 나이 많고 수비 안되고 미국가서 루키리그에서 빌빌거리다 온 남태혁을 골랐다. 이러한 한심한 선택은 박세웅 트레이드와 함께 선발육성을 제대로 망쳐서 신생팀으로 여러 혜택을 받았음에도 김진욱 시대까지 키워낸 국내 선발이 고영표 한 명 뿐 이다. 박세웅을 남겨두고 관리해 주면서 최원태를 뽑아 고영표까지 3명을 묶어 선발 코어로 키우고 최원준을 지명해 고정 포지션주며 나중에 들어올 강백호와 함께 타격 리빌딩 코어로 썼으면 이 사단 안났다.[29]
해임 일주일 전에는 신인들과 잡힌 상견례에 참석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구단 직원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많은 팬들이 크게 실망했다. 비록 구단이 구두로 재계약 약속을 한 상황에서 김상현 사건으로 유야무야 넘어가버리는 등 조범현이 구단에 불만을 가질 만한 상황이 조성되기는 하였으나 진정 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신인들을 다독여주는 지도자로서의 책무를 다했어야 하는데 구단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꼬장을 부리는 듯한 행동을 보인 것.
조범현이 잘했던 점으로는 박경수의 포텐셜을 알아보고 홈런타자의 재능을 일깨운 것, 포수로 뽑은 김재윤을 투수로 전향시키고 필승조로 자리잡게 한 것, 방출된 선수였던 김종민과 이해창을 백업포수로 길러낸 것 정도가 있다.[30]
결국 성적 부진과 선수 관리 실패라는 표면적 이유로 단장과 함께 해임되었으나, 엉뚱하거나 불가항력적인 원인으로 인해 억울하게 재계약에 실패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실제 문제는 공식입장에서 언급된 것보다 훨씬 많았으며, 그를 그리워할 kt팬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라고 예측했지만 2017 시즌 초반 반짝 이후 오히려 퇴보한 경기력을 보이면서 KT 관련 기사마다 그의 이름이 간간히 보인다. 하지만 기사상의 이런 언급이 나와도 조범현을 절대 좋게 평가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인 것이, 드래프트 지명 문제와 함께 기존 투수의 혹사 단 두 가지만으로도 이미 조범현은 내실을 다지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 그 때문에 후임 감독이 덤터기를 더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결국 2017년의 최악의 시즌을 딛고 2018년에 후임 감독은 순위는 둘째치더라도, 팀 역사상 최다 승수를 찍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 이 때문에 kt wiz는 2018년을 기점으로 스카우트 팀이 완전히 물갈이되고 이강철 감독이 부임한 후에야 팀이 웬만한 타 구단과 맞불을 놓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을 정도로 팀의 내실을 다지는 시기가 굉장히 늦어지고 말았다. 그 이강철 감독조차 2020년을 기준으로 불펜진의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이 당시의 덤터기가 완전히 빠지려면 멀었지만 말이다.
2021년 그가 몸담았던 kt wiz가 통합우승을 하면서 이 당시의 덤터기가 그나마 좀 빠졌다. 그리고 후임인 이강철 감독과 조범현-김진욱 감독 시절 주장이었던 박경수가 우승 후 인터뷰에서 조범현과 김진욱을 언급하며 감사하다고 표했다.[31]
2.6. 야인 시절 2(2017~)
kt wiz 감독 퇴직 이후 스포츠동아 기고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비정기적으로 '조범현의 폴 인 베이스볼'이라는 Q&A 형식의 칼럼을 쓰고 있다. 전국의 학교를 돌아다니며 야구부 학생들을(특히 포수) 간간이 지도하고 있다.2021년부터는 중앙일보의 객원 논설위원으로 활동을 하였다.
2.7. KBO 국가대표팀 기술위원
2022시즌 KBO 국가대표팀 기술위원으로 오랜만에 KBO에 돌아왔다.조범현 전 감독, WBC 기술위원장 선임
2.8. 수원 파인 이그스 감독 시절
[단독] 조범현 전 감독, 수원 독립야구단 '창단 사령탑' 맡는다[1] KBO의 막장 리그 운영때문에 벌어진 촌극. 자세한 내용은 슈퍼 한국시리즈 문서 참조.[2] 준플레이오프에서 SK에게 패배[3] 감독직을 처음 맡은 2003년 당시 팀내 최고참 김정수와 불과 2살 차였다.[4] 당시 LG에서 갈등을 일으키던 이상훈을 데려와 기존 마무리 조웅천과 함께 더블 스토퍼로 기용하려고 했으나 이상훈의 은퇴 선언과 조웅천의 부진으로 인한 뒷문 부재가 SK의 포스트시즌 탈락에 한 몫 하였다.[5] 고성도 오갈 정도로 여간 심각한 게 아니었다.[6] 이로 인해 지도자 커리어가 하마터면 완전히 끝장날 뻔 했다. 다행히 같은 인하대학교 출신인 조남홍 기아 타이거즈 구단주가 낙하산 인사로 꽂아서 지도자 커리어를 간신히 다시 이어나갈 수 있었다.[7] 당시에는 기아자동차 사장이 KIA 타이거즈 사장을 겸임했으며 KBO 사장단 회의에서는 한화 이글스에 의사결정권을 위임하였다. 사장이 격무에 시달리니 야구단 일은 크게 돌보지 못 했고 단장의 권한이 강했다. 모기업이 크게 야구단에 관심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부분.[8] 사실 김응용 감독의 장기 집권으로 해태 - KIA는 40여년 세월 동안 단 11명의 감독만이 취임했다. 김동엽 - 김응용 - 김성한 - 유남호 - 서정환 - 조범현 - 선동열 - 김기태 - 맷 윌리엄스 - 김종국 - 이범호. 김응용 이후 非해태 출신 감독은 조범현, 김기태, 맷 윌리엄스 3명밖에 없다. 그나마 김기태 감독은 해태-KIA의 연고지인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광주일고 출신에 호남 지역 연고인 쌍방울 출신이고 맷 윌리엄스 감독은 팀 역사상 첫 외국인 감독이지만 조범현 감독은 연고지와도 전혀 상관없는 경북 의성군 출신인데다가 서울에 위치한 충암고 출신이다. 그래서 부임 초기에는 지역드립이 포함된 글도 간혹 나오긴 했었으나 이후 조범현의 업적으로 자연스레 사라졌다. 참고로 김동엽, 김성한, 맷 윌리엄스, 김종국, 이범호를 제외하곤 김기태까지 전부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은 적이 있다.[9] 그래도 5위였다.[10] 대구에서 태어나 OB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KIA 내지는 해태하고는 이렇다 할 접점이 없다.[11] 조범현 감독도 워낙 거물들에게 묻혀서 그렇지, 투수들을 혹사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2009년 한정 곽정철이 있고 KIA 시절 조범현의 투수혹사의 상징인 손영민도 그러했다. 특히 한기주는 고등학교 재학 당시의 혹사와 전임 감독인 서정환의 혹사로 2008년에 수술을 받을 예정이였으나 조범현의 반대로 수술을 자꾸 늦췄고, 결국 선수 생명을 단축시키고 말았다. 자세한 내용은 한기주 문서 참고.[12] 다만 부상 문제는 악명높은 광주 무등 야구장, 군산야구장과 2군 함평 야구장이 부상 선수를 양산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무등야구장은 심심할 때마다 선수 무릎을 아작내는 걸로 유명하고, 군산구장의 펜스도 사람을 여럿 잡았다. 논 한가운데 야구장 하나 덜렁 있는 함평 야구장은 고등학교 야구부의 야구장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거기다 막장 수준인 제휴 병원, 연고지 출신 투수 박충식이 맹디스했을 정도의 부실한 재활 시스템도 그랬다. 일단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 함평-KIA 챌린저스 필드의 건립 등으로 조금씩 인프라가 나아지기 시작했다.[13] 물론 연쇄적인 부상은 열악한 무등야구장의 환경 및 다른 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적은 우천 취소에도 원인이 있었다.[14] 우승 후 4일만에 조범현은 김종모 1군 수석코치를 해임하고 조범현의 최측근이던 황병일 1군 타격코치를 1군 수석코치에 앉혔다.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김종모가 밝히길 김종모 본인과 계약을 해지할 경우 꼭 미리 알려달라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며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축승회 때 정의선 부회장 옆에 서 있었으나 조범현이 김종모를 살짝 밀어내고 조범현의 측근인 황병일을 데리고 와서 인사시켰다고 한다.[15] 김종모 수석코치 해임으로 인해 격노한 팬들 사이에서는 식당 주인을 불렀다는 비난이 있었을 정도.[16] 다만 조범현의 경질은 구단 고위층에서 내려진 지시라는 설이 있다. 프런트는 큰 이변이 없는 이상 2012년에도 조범현과 함께 가려고 했던 듯.[17] 심지어 그 중 한 개는 주 포지션이 아닌 유격수 자리에서 실책한 것이다.[18] 물론 전병두는 2008~2010년까지 뛰고 부상으로 커리어를 마감하긴 했지만 그 3년이 SK 왕조시기였던만큼 그시기 SK 마운드의 한 축이었던 전병두의 공은 엄청난 것이며 부상도 혹사로 유명한 김성근 감독 밑에서 생긴 혹사의 여파인 만큼 혹사만 아니었어도 리그를 호령했을 투수가 됐을 거라는 건 많은 야구팬들이 아는 사실이고 전병두를 대신해 온 선수들이 다 제 몫을 못한 만큼 전병두 트레이드는 지금도 타이거즈 역사상 최악의 트레이드로 꼽힌다.[19]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비유하면 허정무 감독 정도.[20] 대충 삼성에서의 김응용 포지션이라고 보면 된다.[21] 여기서 김기태는 조범현과 함께 비 해태-KIA 출신으로 타이거즈의 우승을 이끌었음에도 호불호가 극히 갈리는 스타일이며, 조범현에 비해 평가가 좋지 않다. 그나마 호남권 출신 감독 최초로 타이거즈의 우승을 이끌었다는 게 의미있는 기록이지만.[22] 다만, 잘 알려져있듯 조범현은 학생시절부터 코치시절까지 김성근과 함께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과연 김응용이 코치로 기용을 할까라는 의견도 있었다. 다만 조범현은 2001년부터 2002년까지 김응용 삼성 감독 밑에서 배터리코치로 있긴 하였다. 실제 한화 이글스의 신임 배터리코치로는 조범현이 아닌 전종화가 부임했다.[23] 이로 인하여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 트로이의 조뱀, 산업스파이 취급 받았다.[24] 사실 선수들을 묶지 않은 류중일 감독과 코칭스텝의 책임이 큰데도 불구하고 정당한 방식으로 데려간 조범현만 억울하게 욕먹은 측면이 있다.[25] FA로 계약금까지 주고 데려온 이대형을 풀어버리는것은 금전손해도 상당한데 타팀으로 보낸것이다. 이후 김기태 감독의 행보를 보면 합리적인 추론이다.[26] 심지어 일각에서는 혹사지수는 누적스탯이기 때문에 김경문이 아닌 조범현이 인간계 혹사 1위라는 의견도 있다. 이번 시즌 kt 불펜은 번갈아서 혹사로 뻗어버려서 풀시즌을 못던졌고 그래서 혹사지수 상위권에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27] 애초 김진욱 감독의 운영 방침이 관리야구라는 점에 특히 더더욱 부각된다.[28] 그리고 이후 조무근은 결국 재기에 실패하고 황재균의 보상 선수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지만, 여기에서도 재기하지 못하면서 그대로 커리어 아웃의 위기에 놓였다. 사실상 이 시기의 혹사가 선수 커리어를 완전히 아작냈다는 것.[29] 결국 야수진 문제는 2018년 이후에야 황재균과 조용호 등 외부 영입과 함께 강백호가 지명된 이후에서야 제대로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으며, 선발 투수 문제는 김진욱 감독 시기만 해도 기회를 받은 고영표 단 한 명뿐이었다가 금민철, 김민, 배제성 등이 자리잡기 시작한 이강철 체제에서야 로테이션이 제대로 잡혔을 정도. 그리고 불펜진은 김민수 등이 합류하며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kt의 전력 빌딩이 굉장히 늦어진 이유가 이 시기 조범현의 삽질이라고 봐도 무방한 이유가 다 있었다.[30] 단 김종민은 장성우 사생활 폭로 사건으로 인해 사실상 땜빵으로만 뛰다가 2017년 시즌 중에 NC 다이노스로 이적해버렸고, 거기에서도 전력 외 취급을 당하고 있는 현 시점인 것을 생각하면 조범현이 키웠다고 보기에도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그 당시에도 고질적인 수비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이해창에게 완전히 밀려버리기도 했고. 그리고 김종민은 그 이후 NC에서도 방출되면서 커리어가 사실상 끝났고, 이해창도 얼마 못 가서 kt를 떠났기 때문에 조범현이 키웠다고 볼 수가 없게 되었다.[31] 조범현 감독과 후임 이강철 감독은 2009년 한국시리즈 당시 KIA 타이거즈의 감독과 코치로서 KIA의 10번째 우승을 합작한 바 있던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