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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시나/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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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국내 방송 출연3. 해외축구 팬4. WWE 챔피언 벨트5. 토탈 디바스 내 활약상6. Bing Chilling7. Unexpected Cena8. 아이 큇 (I Quit) 매치 전적9. 기타

1. 개요

존 시나에 대한 여담을 정리한 문서.

2. 국내 방송 출연

때는 2007년 2월, 주말 버라이어티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경제야 놀자' 코너에서 연예인 겸 모델인 '찰스'가 소유하고 있던 존 시나 신발의 가치를 감정했는데 "국내엔 레슬링 인지도가 떨어져 프리미엄이 없다"라는 이유로 7만원으로 평가해 버렸다. 사실 존 시나가 신던 신발도 아니었고, 상품 중 하나였으니, 이런 평가는 당연한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을 본 존 시나 팬들은 눈물을 흘렸고 존 시나 안티들은 환호했으며 이후 시나를 깔 때 '7만원 시나'혹은 '7시나'라고 부르게 되었다.
3년만에 다시 출연한 MBC. 대놓고 WWE 챔피언[1]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2010년 중순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의 라디오 스타 f(x) 편에서 그룹 내 랩퍼인 앰버에게 평소에 좋아하는 랩퍼가 누구냐?라는 질문이 주어졌는데 처음으로 답한 이가 존 시나였다. 사실 2005년에 랩 앨범 1장만 냈을 뿐, 먼 과거에 했었던 래퍼 기믹을 제외하면 래퍼보다는 사기 캐릭 프로레슬러로 인식되는 시나이기 때문에 꽤나 의외의 대답이 나온 셈.[2]
그리고 본인이 등판했다. 2018년 12월 21일 존 시나는 범블비 홍콩 투어 일정 중 연예가중계 인터뷰에 응하게 된다. 존 시나는 "WWE에서는 스포츠를 통해 이야기하는데 범블비도 비슷하다. 둘 다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위에서도 언급한 방탄소년단의 팬을 인증하는 영상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존 시나는 "BTS가 저에 관한 질문에 답해줘서 깜짝 놀랐고 SNS를 통해서라도 답해주고 싶었다"고 당시 상황을 얘기했다. 이혜성 아나운서가 "나는 A.R.M.Y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하자 존 시나는 깜짝 놀랐다. A.R.M.Y군대로 해석해서 말해야 하는 줄 알았지만, 그대로 읽어야 한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존 시나는 "나는 A.R.M.Y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랑해요 연예가중계를 시전했다 움직이는 토끼모자를 썼다.

3. 해외축구 팬

파일:attachment/존 시나/cena.jpg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토트넘 홋스퍼 FC의 열렬한 팬으로, 그것도 명예선수다. 명예선수로 부여된 등번호는 54번으로,[3] 2008년 1월 22일 아스날 FC와의 칼링컵 준결승전에 참석해 토트넘 팬들과 같이 응원하기도 했다. 결과는 5-1로 토트넘의 대승.

4. WWE 챔피언 벨트

파일:external/cdn3.ioffer.com/o_Belt_Cena_US.jpg
US 타이틀. 소위 Spinner 벨트의 프로토타입격으로 JBL과의 대립과정에서 올랜도 조던이 US 타이틀을 차지하자 링에서 태워버리는 방식으로 처리하고 원래 형태로 돌아갔다.

파일:external/www.wrestling101.com/wwe-belts-18.jpg
존 시나의 상징과도 같았던 Spinner Belt. 2005년에 그가 처음 WWE 챔피언이 되었을 때 당시의 기믹에 맞게 커스텀 되었다. 오른쪽 플레이트는 당시 그의 소속이었던 SMACKDOWN이라고 표기되었지만 시나가 2005년 드래프트 이후 RAW로 이적하자 RAW로 바뀌었다. 2008년 잠시 스맥다운 소속 챔피언쉽이 되었을때는 RAW 플레이트가 바뀌지 않았다... 스맥다운 지못미 주인이 바뀌자 원래 형태로 돌아간 US 챔피언십과 달리 에지가 챔피언으로 재임할때 Rate R 로고로 부분 변경되었던 것을 제외하면 주인이 바뀌어도 모양은 바뀌지 않았다. 2013년이 되어서야 더 락에 의해 리뉴얼 되었다. 해외 레슬링 커뮤니티에서는 그 이유 중 하나가 'WWE 타이틀의 모양이 바뀌지 않는 것은 존 시나가 언제든지 다시 이 벨트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실제 이유는 이 벨트 레플리카가 워낙 잘 팔려서(...) 도저히 바꿀 엄두를 낼 수 없었다고 한다. 2008년에 당시 챔피언이었던 트리플 H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호스트의 '마침 너님이 챔피언인데 그 장난감 벨트 좀 원래대로 바꿀수는 없나요'라는 질문에 '나도 그러고는 싶은데 이거 레플리카가 너무 잘 팔려서 되돌릴수가 없음ㅋ'하고 대답했을 정도. 2013년에 리뉴얼된 것도, 사실 리뉴얼한 주체가 시나에게 상품성에서 꿀리지 않는 더 락이었으니까 가능했던 것이다.

파일:external/www.wwe.com/cena_champinship_plate_040813.jpg
2013년에 리뉴얼 된 WWE 타이틀의 Side Plate는 OK 사인 로고와 You can't See Me 로고로 장식되어 있다. 존 시나는 더 락에 이어 2번째로 이 벨트를 차지하였다.

5. 토탈 디바스 내 활약상

여자친구인 니키 벨라가 주연급 고정 출연자인 관계로 꾸준히 함께 출연하고 있다.

토탈 디바스에서는 WWE에서 보여지는 바르다는 평소의 이미지와는 다른, 상당히 깐깐하고 인간미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니키가 약간의 투정을 부리기라도 하면 굉장히 교과서적인 답변과 돌직구로 할 말 없게 만들어버린다. 남의 창피한 일을 비웃는 니키에게 난 그것보다 더한 일도 있었다며 그러지 말라고 정색을 하며 무안을 주는 것도 다반사. 난 매주 경기 나올 때마다 야유를 받는다고!! 이미지 때문에 쓸 수 없는 F Word감탄사같은 거지만 매우 자주 쓴다.

하지만 시나라고 사고를 안 치는 건 아니다. 니키에게 먼저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동거를 제의해놓곤 이삿짐을 다 옮기니 '집주인이 원하면 48시간 내에 짐을 싸 나가야 한다', '금전적 손해를 입힐 시 그에 대응하는 물질적 보상을 해야한다' 따위가 적힌 동거 계약서를 내미는가 하면, 집에서 잠만 자듯이 사는 시나를 위해 꾸밀 소품을 사오고 요리를 준비한 니키에게 "밖에서 안 먹고 왜 준비했냐", "설거지할 때 물 튀기지 마라" 같은 잔소리를 해 니키를 질리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이혼을 겪었던 과거[4] 때문에 결혼과 자식에 상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있는 것으로 나온다. 자기 집으로 이사시키고, 가족 모임에 니키를 데려가기까지 했지만 대놓고 결혼과 자식을 생각치 않는다는 걸 니키의 오랜 후터스 동기 친구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까지 공표할 정도. 첫 데이트 때부터 저런 소리를 했다고 한다.

다만 토탈 디바스가 숨쉬는 것도 각본을 짠다는 미국식 리얼리티 쇼임을 감안하면 이것도 연기로 만든 캐릭터일 가능성이 높다. 결혼 얘기는 진심같지만

한국 시간 2018년 4월 16일, 니키 벨라와 시나가 파혼했음이 보도되었다. 쇼 중간중간마다 결혼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이 자주 드러났었고, 레슬매니아 청혼 세그먼트도 본인은 탐탁지 않아했다는 루머가 나와있었던 터라 그렇게 놀랍지만은 않다는 평가. 결국 두 사람의 결별은 토탈 벨라스[5] 시즌 3의 메인 주제로 다뤄졌으며, 니키와의 관계가 완전히 끝나면서 시나는 시즌 8부터 토탈 디바스에 출연하지 않고 있다.

6. Bing Chi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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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Unexpected C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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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이 큇 (I Quit) 매치 전적

WWE 아이 큇 매치에서도 무적 선역 기믹답게 단 한번의 패배 없이 5전 5승 0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상대 선수 개최 날짜 PPV 결과 비고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 2005년 5월 22일 WWE 저지먼트 데이(2005) WWE 챔피언십
존 시나의 타이틀 방어.
랜디 오턴 2009년 9월 13일 WWE 브레이킹 포인트 WWE 챔피언십
존 시나의 챔피언 등극.
바티스타 2010년 5월 23일 WWE 오버 더 리미트(2010) WWE 챔피언십
존 시나의 타이틀 방어.
미즈 2011년 5월 22일 WWE 오버 더 리미트(2011) WWE 챔피언십
존 시나의 타이틀 방어.
루세프 2015년 5월 17일 WWE 페이백(2015) WWE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챔피언십
존 시나의 타이틀 방어.

9. 기타

파일:external/www.celebritydetective.com/john-cena-home-sm.jpg
파일:external/www.allwrestlingnews.com/2k15-cover.jpg

파일:external/76a3c4983ff46f516092fe72747e4212a038337f738dc0129c3e3476ae8ce287.jpg

파일:external/cdn2-www.comingsoon.net/johncenatrainwreck1.jpg

Wwe의 1세대 아이콘 헐크 호건도 무적선역 기믹으로 역반응이 심해지자 악역전환했다. 그만큼 무적선역기믹은 수많은 기믹 중에서 역반응을 받기 쉬운 기믹이다.



대신 서바이버 시리즈에서는 매우 강한데 데뷔 시절부터 서바이버 시리즈 경기에서는 대부분 승리를 거두었고 메인 이벤트 장식도 많다.


[1] 이 에피소드가 방영된 날 WWE 챔피언은 셰이머스. 96대 챔피언이었는데, 95대와 97대 챔피언은 존 시나이다.[2] 여담이지만 이후에 선호하는 또 다른 래퍼로 린킨 파크의 마이크 시노다가 언급될 때까지는 MC들의 반응은 대략 "오...(그럴 듯 하네)" 정도였으나, "국내에선 어떤 래퍼를 좋아하나?" 하는 질문을 물었을 때 앰버가 MC몽을 답하자 MC들은 일제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임과 동시에 김구라의 한 마디 "특이한 래퍼들 좋아하는구만."[3] 시나는 커스텀 저지 등번호로 54를 붙일 정도로 54라는 숫자를 애용하는데, 이는 대학교때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했을때 등번호다. 대학풋볼 3부리그 소속인 매사추세츠주의 스프링필드 칼리지라는 대학교를 나왔고, 이 학교의 센터로 3부리그의 올 아메리칸 플레이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John cena college football등으로 검색하면 시나의 대학시절 사진이 나오는데, 대학시절 시나는 지금과 달리 머리를 다 밀었다.[4] 위의 동거 계약서도 그런 이유에서 나왔다. 대가족을 혼자 부양하는 상황에서 니키가 변심해 금전적인 어려움이 생길 일을 우려한 것.[5] 토탈 디바스의 스핀오프 프로그램.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벨라 트윈스와 그 가족들이 주인공이다.[6] 프로레슬러들이 링에 입장할 때 나오는 테마곡에 맞춰 나오는 일종의 뮤직비디오 영상이라고 보면 되겠다. 테마곡과 이 영상을 묶어 '타이탄트론'이라고 한다.[7] 사례 3의 주인공은 IB SPORTS에서 NXT의 중계를 담당하고 있는 정승호 아나운서다. 원래는 음악에 맞춰 "You can't see me?" 동작을 하려 했으나, 장인어른이 슬픈 표정을 짓고 있어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8] 존 시나가 에지(2006년)하고 랜디 오턴(2007년 & 2014년)과 대립할 당시 잠시 투입돼서 공격당한 적이 있다.[9] 반대로 동기이자 친구인 랜디 오턴의 경우, 시나와 반대로 데뷔할 때부터 유독 US 챔피언과 인연이 없다가 2020년대에 들어서 US 챔피언 벨트를 획득, 시나보다 먼저 그랜드 슬래머가 되었다.[10] 프로레슬링은 원래 상대와 합을 맞추는 종목인만큼 기본적으로 모든 움직임을 절대다수인 오른손잡이 기준으로 피로하도록 정해져있다. 굳이 WWE의 요청이 아니더라도 프로레슬링에서는 거의 상식에 가까운 불문율. 특이하게도 멕시코의 루차 리브레는 예전에는 왼손잡이 기준으로 맞춰져 있어서 타 지역의 프로레슬링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위화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이래저래 해외단체와의 교류가 많아져서 그런 지역색은 점차 사라지고있는 상태.[11] 사실 프로레슬러들은 집을 떠나있는 시간이 워낙 많다보니 가정불화를 겪는 경우가 많다. 선수 개인의 인성 이전에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적어서 생기는 프로레슬러 특유의 문제라 볼 수 있다. 절친 랜디 오턴도 딸이 생기자 딸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딸바보 아버지 모습을 보였지만 이런 이유 등으로 결국 비슷한 시기에 이혼했다.[12] 심지어 계단에서 밀어버리는 바람에 발목부상을 입은적도 있다고.[13] 거기다 이건 WWE에 안좋은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타일러 렉스의 일방적인 주장인데다가, 시나는 바티스타처럼 저 새퀴를 쫒아내라고 말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신빙성 면에선 떨어진다. 정말로 존 시나가 그랬는지는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성과 평판 부분에 적혀있지만 셰이머스는 시나를 옹호해주면서 "너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어서 못 떴지 애먼 사람 트집은 잡지 말아라."라는 말로 타일러 렉스를 디스했다.[14] 다만 라일리가 활약을 못한 것은 그가 심각한 유리몸이라 그렇기도 하고, 실제로 부상 이후 NXT에서 캐릭터 리빌딩을 꾀했으나 관중들의 호응을 받지 못했던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15] 이 부분에 한해서는 시나 본인도 인정한 사실이긴 하다. 넥서스 각본 당시 제리코나 에지 등의 베테랑 멤버들은 넥서스의 승리로 각본이 마무리 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시나는 완고하게 자신이 넥서스를 박살내는 각본을 고수했고 결국 시나에게 패한 넥서스의 위상이 떨어지자 너희들의 판단이 옳았다며 후회했다고 한다.[16] WWE에서 이례적으로 교제 중임을 공식 발표했다.[17] 그레이트 칼리는 미국 국적을 취득했고, 영어도 할 줄 안다. 영어를 할 줄 모른다는 기믹이라 통역사를 대동한다는 캐릭터였다.[18] 탈모라는 것이 유전적인 면도 있지만 스트레스성 탈모도 있기에 10년 넘게 야유받는 걸 견뎌내고 바쁜 스케쥴을 소화하느라 그 영향이 갔을 수도 있다.[19] 동료 레슬러들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는 '빅 존'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듯 하다.[20] 타이타닉같이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저예산의 제작비에 비해서는 초 대박을 친 게 맞다. 북미 1억불을 돌파했을 정도.[21] 유명한 미국 코미디언으로 한때 돌프 지글러와 연인 관계이기도 했다.[22] 참고로 스테파니 맥마흔도 추모 인터뷰에서 아버지 같은 분이라며 칭찬해줬다. 인터뷰 중 오열을 하면서 에디는 아들같으면서 남편이면서 동시에 친구같은 분이라며 칭찬해줬다.[23] 에디가 세상을 떠나고 2년 후 벤와는 아내와 자기 아들을 죽이고 자살까지 해버리는 바람에 WWE는 몰락 직전까지 갈 뻔했다. 크리스 벤와의 뇌상태가 알츠하이머 환자보다 심각한 수준의 상태였고, 무엇보다 거의 각별한 절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난 후유증과 트라우마도 있다.[24] 여기서 시나가 초반에 "Great man."말을 해석하자면 훌륭한 사람,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석 할 수 있다. 존시나가 처음 레슬링에 입문 했을 당시 에디가 이런저런 많은 조언도 해주고 도와줬으니 시나도 에디에게도 크게 감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된다.[25] 워드 라이프 기믹 버전은 당시 별칭 이었던 The Doctor of Thuganomics가 붙었는데 이를 건달학 박사로 직역했다.[26] '정녕 신세계의 신이 되고 싶다면 내가 좋은 방법을 알려주겠다'면서 네스츠의 기술력을 신약기술에 활용해 전세계 난치병 치료에 아주 큰 공헌을 하게 만든다.[27] 사실, 제이콥 토레토는 입체적인 캐릭터성은 피스메이커와 유사하지만 인물의 개연성, 서사, 개성, 임팩트와 같은 모든 면에서 피스메이커보다는 부족하다고 평가된다.[28] 21년 머니 인더 뱅크를 기점으로 시나가 WWE로 복귀했는데 이때도 결국 다시 기존의 네버 기브 업 기믹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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