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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5:18:50

케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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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후손격인 미국인
1.1. 케이준 혈통의 캐릭터
2. 요리 양식
2.1. 케이준식 요리2.2. 케이준을 이용한 패스트푸드

1.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후손격인 미국인

Cajun

케이준은 루이지애나 근방에 사는 프랑스계 미국인들과 그들의 문화 방식까지 아우르는 말이다.

케이준의 기원은 1620년 경 지금의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아카디아(Acadia) 지역에 이주해서 정착해 살던 프랑스인들이다. 이들은 1755년 영국인들에 의해 미국 루이지애나 지방으로 강제 이주하게 되었고, 이들은 아카디아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프랑스어 단어 'Acadian'(아카디앙)으로 지칭되었다. 그리고 미국 지역민들에 의해 'Cadien'(카디앙)으로 와전된 후 영어화와 구개음화를 거쳐 'cajun'(케이준)으로 부르는 식으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정착한 루이지애나 지방은 당대의 미국인 기준 척박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식생활은 모국인 프랑스의 요리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주변 환경상 필요한 재료를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변형시킨 토속적인 요리 '케이준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1.1. 케이준 혈통의 캐릭터

2. 요리 양식

원래 스페인/프랑스령이었던 미국 남서부 루이지애나의 토속 요리. 상술한 캐나다 출신 프랑스계 이주민 집단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 이들 외에도 인접한 멕시코 요리, 크레올 요리나 루이지애나에 원래 거주하던 프랑스계 이주민의 식문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원래 잉글랜드인을 비롯한 서유럽인은 중세 이래 전반적으로 밀가루 빵과 유제품과 쇠고기, 돼지고기를 주로 먹었다. 잉글랜드인들 중 일부가 아메리카로 이주해 미국인이 된 이후로도 그러한 식습관은 유지되었다. 그러나 북미 대륙 남서부 연안은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강렬한 햇빛과 소나기를 번갈아 받으며, 미시시피 강 하구의 범람 습지까지 끼고 있다보니 밀을 키울 건조한 들판이나 소를 키울 목초지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대안으로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요리해 먹었다. 당시 이들의 식탁에 오른 식재료는 옥수수, 소동물[2], 각종 수산물로 당시 서유럽인들이 볼품없는 2급 식재료로 여긴 것들이었다.[3]

그리고 구하기 어려운 버터를 대신하여 돼지기름[4]식용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5] 이 당시 루이지애나의 케이준, 크레올인들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조리용 유지류가 바로 돼지기름, 즉 라드였다.[6] 그리고 식재료의 잡내를 가리고, 아쉬운 풍미를 보충하기 위해 다양한 향신료나 양념용 채소를 넉넉하게 넣어 강렬한 향미를 내는 요리법이 발달했다. 흔히 말하는 케이준 스파이스에는 마늘, 양파, 칠리, 후추, 겨자, 셀러리 등 강렬한 맛과 향을 내는 재료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 케이준 요리를 food for survival, 즉 생존을 위한 음식이라 부른다고 한다.

사용되는 재료와 조리법 덕분에 케이준 요리는 자극적이고 독특한 풍미로 유명하다. 풍미 못지않게 중요한 특징이 또 있는데 재료를 아끼지 않는 요리법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동시대의 다른 지역(특히 유럽)에 비해 식량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기후와 토질 덕분에 채소의 재배가 수월했을 뿐 아니라 각종 곡물과 가축이 잘 자랐다. 그리고 대서양부터 카리브해의 해산물도 구하기 쉬웠다. 여기에 당시 인구 밀도도 낮았다.[7]즉, 먹을 수 있는 식량은 풍부한 반면, 인구는 많지 않다는 조건이 겹쳐 식재료를 전혀 아낄 필요가 없었다.

소시지 등의 월동용 가공육 제품을 구워먹지 않고 썰어서 부재료로 활용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기후가 무더워 음식이 상하기 쉬웠고 당시에 냉장고도 없었던 그 당시 돼지를 잡으면 소시지, 염장고기 등 보존식으로 가공하여 장기간 소비했다. 돼지고기는 덥고 습한 곳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강한 군내를 풍기기 때문에 운좋게 갓 잡은 돼지는 통구이로 해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엄청난 양의 다양한 식재료, 특히 19세기까지 유럽 내륙에서는 잘 안 먹던 쌀과 소동물과 해산물에 귀하게 여기던 각종 양념과 쉽게 구할 수 있는 라드를 듬뿍 넣어서 기름지고, 맵고, 짜게 요리한 것이 케이준 요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요리방식은 더운 기후에서 육체 노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던 크레올과 더 후대의 유럽 출신 이민자[8]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면서 대중화되었다.

싸고 빠르고, 양도 많고 칼로리도 높으며, 자극적인 맛이라는 점에서 패스트푸드의 원형에 가까운 요리라고 볼 여지가 있다. 실제로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하는 요리에 대한 묘사를 보면 당시 미국에서는 정통 남부 바이블벨트풍이나 크레올풍 식문화가 북부 식문화보다 더 풍부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이프를 꽂으면 그대로 서 있을 정도로 크림을 듬뿍 넣은 진한 야채 크림 소스[9]같은 묘사도 있었을 정도다.

흑인들이 먹는 음식인 소울 푸드와도 접점이 있는데 당시 흑인의 대부분이 미국 남부에서 노예로 착취당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케이준 스파이스와 비슷한 향만 내는 재료를 넣은 음식의 접두어로도 '케이준'이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케이준 버거, 군대의 케이준 샐러드 등이 그 예로 당연하지만 제대로된 케이준의 향은 나지 않는다.

2.1. 케이준식 요리

2.2. 케이준을 이용한 패스트푸드



[1] 보우레가르드(형), 페이몬(동생)[2] 주로 닭 같은 가금류.[3] 남북 전쟁 때 남부 노예주에서는 현지산 옥수수닭고기가 풍족했지만 정작 남부 사람들은 도저히 사람이 먹을 만한 음식이 없다고 불평했다. 이들도 밀과 소돼지 등을 주식으로 먹었고, 대부분 북부에서 나는 산물이라 전쟁으로 인해 수입이 끊기고 말았다. 쌀밥치킨을 즐겨 먹는 한국인으로서는 이해가 안 가겠지만 한국 상황에 비유하면 먹을 것이 깡조밥런천미트밖에 없는 것과 같다.[4] 돼지기름은 그냥 먹거나 빵에 발라 먹기도 할 정도로 맛좋은 식재료지만 동물의 비계에서 뽑은 기름인 이상 냄새가 약간이라도 날 수 밖에 없고, 버터에 비하면 맛이 깔끔하기는 해도 고소하고 달달한 풍미는 부족한 점이 아쉬운 식재료다.[5] 유럽인들이 즐겨먹는 양대 식용(조리용)유지(油脂)류는 버터올리브유이다. 소 목축에 적합하지 않은 기후에서 버터는 당연히 쉽게 구할 수 없고, 고온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올리브를 재배하기에는 '고온'이라는 조건은 맞지만 '다습'한 조건이 큰 걸림돌이 되어 재배가 이뤄지지 못했다.[6] 미국 남부의 기후에서 흔한 식용유로 면실유도 있지만 케이준 요리가 태동하던 시절에는 쓰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냥 목화씨에서 짜낸 기름은 화학적인 공정을 거쳐 정제하지 않으면 갈색에 냄새가 나고 유독하기까지 하여 식용유로 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즉 면실유가 본격적으로 대량생산되어 식용유로 사용된 것은 미국 남부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면화 재배가 대규모로 산업화되고, 그 부대산업도 발전한 이후의 일이다.[7] 17세기 경에 스페인인 탐험가가 미시시피강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전염병이 번지는 바람에 인구가 크게 줄어들었다.[8] 주로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건너온 이민자들이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고향에서 제대로 못 먹었던 것에 한이 맺힌 사람들이기도 했다.[9] 지금도 그렇지만 그당시 제대로 만든 크림은 상당히 비싼 식재료였다. 나이프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농도가 진한 소스라면 그 비싼 크림을 아끼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