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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티넨탈 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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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티넨탈 항공
Continental Airlines
부호 항공사 호출 부호 CONTINENTAL
IATA CO ICAO COA BCC 24[1]
항공권 식별 번호 005
설립 년도 1934년
소멸 년도 2011년 11월 30일[2]
허브 공항 클리블랜드 홉킨스 국제공항
휴스턴 조지 부시 인터컨티넨털 공항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
괌 국제공항
자회사 컨티넨탈 익스프레스
컨티넨탈 미크로네시아
컨티넨탈 커넥션
보유 항공기 수 348 + 92 (자회사 항공기 제외)
취항지 수 140 (자회사 / 코드셰어 운항 제외)
마일리지 OnePass
항공동맹 윙스 (1999-2004)
스카이팀 (2004-2009)
스타얼라이언스 (2009-2011)
링크 웹사이트

1. 개요2. 역사
2.1. 창립과 발전2.2. 시련2.3. 재건2.4. 유나이티드 항공과의 흡수합병
3. 특이사항
3.1. 특유의 기업문화3.2. 아일랜드 호퍼3.3. 기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선구자3.4.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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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컨티넨탈 항공의 보잉 747-100.jpg 파일:컨티넨탈 항공의 보잉 787-8.jpg
보잉 747-100 보잉 787-8[3]
파일:The.Shining.1980.US.DIRECTOR'S.CUT.REMASTERED.1080p.10bit.BluRay.6CH.x265.HEVC-PSA-0002.jpg
맥도넬 더글라스 DC-10-10CF / N68052[4]

1. 개요

미국의 항공사. 1934년 설립되어, 전성기인 1990년대에는 미국 내에서도 상당한 레거시 항공사로 성장하였다. 주 운항은 국내선 위주였으며, 보잉 737보잉 757을 주로 굴렸다. 하지만 2001년 발생한 9.11 테러와 기타 실속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됨에 따라 항공산업이 크게 위축되자, 실속을 위시로 하는 트렌드에 따라 2011년 유나이티드 항공에 합병되었다.

대한민국에는 1990년 11월부터 계열사 컨티넨탈 미크로네시아 항공(CS)이 괌-서울 노선에 취항했으며, 1993년에는 괌-타이베이-제주노선[5]에 취항했으나 1997년 외환 위기 시절 단항한 이후 정기편 운항은 없었다. 뒷날 무안국제공항보잉 737 전세기를 띄운 적은 있다.

2. 역사

2.1. 창립과 발전

1934년 텍사스에서 창립되어 그 해 7월 15일에 첫 운항을 시작했다. 창립 당시의 이름은 바니스피드 항공. 창립자 월터 토머스 바니[6]의 이름을 땄다. 1937년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 미 남서부에서 우편 및 승객 운송을 시작하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미국 남서부 뉴멕시코 주와 텍사스 주에서 세력을 강화해나가기 시작했다. 주 업무는 승객 및 우편 운송이었다.

1959년에는 최초의 제트 여객기인 보잉 707을 도입하였고 1966년에는 DC-9을, 1970년에는 보잉 747을 도입하면서 성장가도를 달렸다.

1963년 로스앤젤레스로 본사를 이전했고,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수송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1982년 휴스턴으로 이전하게 된다.

파일:external/cdn-www.airliners.net/0643941.jpg

1968년에는 전설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솔 배스[7]를 고용해 로고를 위와 같이 변경했다.[8] 이 로고는 1991년까지 사용되었다.

1985년에는 보잉 737을 도입했는데,[9] 상당히 늦은 도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플래그십 모델을 먹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컨티넨탈 항공이 유나이티드 항공에 합병되던 2010년에 보잉 737은 240대를 굴리고 있었고, 26대가 주문 중이었다고 하며, 소멸 당시까지 굴려왔던 737의 총합은 무려 352대였다고 한다.[10][11]

2.2. 시련

1978년 항공 자유화 정책이 도입되자 실적이 악화되었다. 1981년 컨티넨탈 항공은 1억 달러의 적자를 보았으며, 그해 11월 기업사냥꾼인 프랭크 로렌조에게 인수되었다. 1982년 텍사스 국제항공을 흡수한 후 휴스턴으로 본사를 이전하였다. 이어 계속된 경영 악화로 1983년 프랭크 로렌조는 파산신청을 한 후 직원을 전원 해고하고, 임금을 대폭 삭감한 고용조건을 받아들인 직원만 재고용한다. 상당히 거친 방법인데, 이 방법은 이후 기업 재건 전략의 하나로써 주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직원들의 반발을 샀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는지 1986년 완전히 회생하였다.

1987년 미국저가 항공사 몇몇을 합병하여 미국에서 3번째로 큰 항공사가 되었다. 하지만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경영상태가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1991년, 여기에 걸프전이 간당간당했던 컨티넨탈 항공의 재정에 직격타를 날려버렸다. 1991년 자회사였던 컨티넨탈 익스프레스에서 사고가 일어나자, 컨티넨탈 항공은 다시 파산 신청을 하였고, 여러 가지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1994년까지 경영진이 8번이나 교체되는 와중에도 회사는 전혀 나아지지 않으며 주가는 3달러 25센트까지 하락하였다. 또 1993년 야심차게 '컨티넨탈 라이트'라는 저가 항공사도 만들었지만 고작 2년 뒤에 망하며 1억 4천만~3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이 당시 컨티넨탈 항공에 대한 직원들의 불신은 상당히 대단했으며, 사내 분위기도 전체적으로 좋지 않았다. 직원들은 일이 끝나면 회사 배지를 즉시 떼어 버렸으며, 정시 도착률과 수하물 분실률은 가히 최악이라 할 만한 수준이었다. 당연히 승객들은 컨티넨탈 항공을 기피하게 되었다. 물론 서비스 수준도 좋을 리가 없어 JD 파워가 측정한 항공사 고객 만족도에서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꼴찌를 차지했다. 그 당시에 컨티넨탈 항공의 이미지가 얼마나 안 좋았냐고 하면 무려 2010년대의 유나이티드 항공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하면 말 다한 셈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경영진은 마지막 회생을 위해 고든 베이슨(Gordon M. Bethune , 1941~)이라는 전문 경영인을 영입한다. 그리고 베이슨은 컨티넨탈의 영웅이 되었다.

2.3. 재건

1994년 2월 고든 베이슨이 사장 겸 COO에 부임한다. 처음에는 부진했지만 그해 12월 CEO에 부임하면서 여러 가지 개혁에 시동을 걸기 시작하였다. 이때 그가 시작한 계획은 'Go-Foward' 계획이라 명명되었으며, 이 계획에서는 4가지 방침을 결정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Fly to win -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는 제품을 만듦
1. Fund to Future - 비용을 제어함으로써 이익을 높임
1. Make Reliability a Reality - 제품의 신뢰성을 높이기
1. Working Together - 직원을 소중히 취급하기

먼저 고든 베이슨은 회사의 재무구조를 개편시켰다. 투자액의 행방을 알 수 없었던 기존 시스템을 뜯어고쳤으며, 계약 중이던 A300의 주문을 취소시켰다. 노선을 개편시켜 수익성이 적은 노선에 대한 리서치를 하였다. 이후 도입한 것은 정시도착 보너스였는데, 1995년 미국 운수부가 발표하는 월별 정시 도착률에서 항공사가 5위 안에 들어갔을 때 전 직원에게 65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한다는 게 주 골자였다.[12] 이 정책은 직원들의 사기 진작과 함께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서, 1995년 2월부터 순위권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1996년1997년 약간의 변경이 있었다.[13]

이로 인한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났는데, 1995년 1월 컨티넨탈 항공의 주가가 6달러 50센트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47달러 50센트를 기록했는데, 거의 8배에 달하는 성장을 한 것이다. 당연히 서비스도 향상되어 JD 파워의 고객 만족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항공사로 기록되었다. 또 고든 베이슨은 1996, 1997년에 2년 연속으로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상위 25명의 글로벌 기업인 중 한 명에 이름을 올렸으며, 포츈지는 컨티넨탈 항공을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중 하나에 6년 연속으로 선정했다. 그리고 베이슨이 물러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컨티넨탈 항공은 5년 연속으로 포츈으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글로벌 항공사 1위로 평가받게 되었다.

1996년에는 항공기 소음 규제가 화두로 떠오름에 따라, 3년 간 항공기의 60%를 신 기체로 교체하였다. 1999년 컨티넨탈 항공의 항공기 평균 기령은 7.4년이었으며, 9.11 테러 당시 컨티넨탈 항공에서 손실을 그나마 적게 내는 데 일조했다.

1999년에는 친하게 지내던 노스웨스트 항공 측의 권유에 따라 항공동맹 '윙스'에 가입한다. 이 항공동맹노스웨스트 항공, KLM, 컨티넨탈 항공 이렇게 세 회사로 이루어졌으며, 양측에서 활발한 코드셰어가 이루어졌다. 2004년 이 항공동맹이 스카이팀에 흡수되면서 스카이팀 소속이 되었다.

2.4. 유나이티드 항공과의 흡수합병

노스웨스트 항공2008년 델타 항공에 흡수합병되어 사업 파트너가 없어진 컨티넨탈 항공은 유나이티드 항공과 업무 제휴를 시작하는데, 이로 인해 스카이팀을 탈퇴해 스타얼라이언스로 이적했으며, 기타 공항 터미널도 완전히 스타얼라이언스 터미널로 이동하였다.

2010년 이사회에서 유나이티드 항공과의 합병을 결정하고 미국 법무부에서 이를 승인하면서, 2010년 10월 1일 유나이티드 항공의 지주회사로 들어가면서 합병되었다. 사후 작업은 2011년 11월 30일까지 이루어졌으며, 이날부로 완전히 소멸하였다.

다만 흔적을 찾을 수는 있는데, 유나이티드 항공 항공기들의 도색이 컨티넨탈 항공 도색으로 바뀌었으며, 로고도 같게 바뀌었다. 또한 컨티넨탈 항공의 경영 시스템을 적용하면서, 대등 합병이라는 것을 명시하였다.

3. 특이사항

3.1. 특유의 기업문화

상당히 열린 경영을 지향했고, 사내 정보를 철저히 공개하기로 유명했다. 모든 부서에 'Go-Foward' 게시판을 설치하고, 전날의 정시 도착률/탑승률/수하물 분실 건수/주가정보 등을 표시하였고, 심지어 사내 큰 사건들도 여과 없이 붙였다. 엘리베이터 홀 같은 대기 시간이 생기는 곳에서도 전광판을 설치하여 전날 정시 도착률/탑승률/주가 정보 등을 내보냈다.

이러한 정보 공개로 컨티넨탈 항공은 상당히 투명한 경영을 할 수 있었다는 효과와 함께, 직원들의 순조로운 반응도 잘 이끌어 낼 수 있었다.[14] 부장급 이상에게는 개인 사무실이 주어지는데, 문은 항상 열린 상태로 유지하게 하였다. 이로써 경영진과 직원들 사이에서 소통이 용이해지는 효과가 있었으며, 사내 분위기도 상당히 유연해졌다고 전해진다.

3.2. 아일랜드 호퍼

컨티넨탈 항공의 자회사 컨티넨탈 미크로네시아는 호놀룰루에서 까지 잇는 노선을 마셜 제도의 마주로와 콰잘레인,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코스라에[15], 폰페이, 추크를 경유해서 가는 노선을 굴렸다. 한때 -마주로-호놀룰루도 있었지만 지금은 단항. 현재는 유나이티드로 계승되어 각역 정차 식으로 운행하고 있다. 물론 -호놀룰루 직항도 있다. 은 과거 컨티넨탈 항공의 허브로서, 지금은 유나이티드로 계승되었다. 보잉 737을 투입한다.

3.3. 기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선구자

컨티넨탈 항공은 IFE계에서는 시대를 앞섰다고 할 정도로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먼저 컨티넨탈 항공은 세계 최초로 기내 엔터테인먼트로 전자 오락을 즐길 수 있게 한 항공사이기도 한데, 정확히는 1975년 4월에 DC-10의 기내 라운지에 게임을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한다. 당시 광고 거기다가 보잉 707을 도입한 1959년에는 무려 기내 1등석 라운지에 텔레비전을 설치하는 서비스도 제공했다고 한다. 당시 광고 [16]

3.4. 사건 사고


1992년 10월 14일에는 대한민국 서울 김포국제공항에 착륙중이던 DC-10의 우익 플랩양천구 신월동 가정집 두 채를 덮치는 사고가 있었지만 천만다행으로 인명사고는 없었다.

2000년 7월 25일, 활주로에 떨어져있던 이 회사 DC-10의 부품을 그 다다음 이륙하던 콩코드가 밟으며 연료 탱크가 터져 에어 프랑스 4590편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17]

2006년 1월 16일, 컨티넨탈 1515편 보잉 737기가 엘패소 국제공항에서 주기된 상태로 엔진 검사를 받고 있던 중[18] 64세의 계약직 비행기 정비사도널드 진 뷰캐넌(Donald Gene Buchanan)엔진에 빨려 들어가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다. 비행 중 사고가 아니고 승객 피해가 없었기에 크게 다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사건 직후의 사진들을 보면 정말 끔찍한 광경을 확인할 수 있다.[19] 해당 사고기(N32626)는 엔진을 정비한 다음 유나이티드 항공에서 계속 쓰이다가 2014년 나이지리아 항공사에 인도되었다.


[1] 유나이티드 항공에 먹혔다.[2] 유나이티드 항공에 합병[3] 주문한 상태에서 합병되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이쪽에서 주문한 기체들은 유나이티드 항공의 신도색이 적용되었고, 유나이티드의 신도색은 기존의 '튤립' 마크에서 컨티넨탈의 지구본 꼬리날개를 계승했다.[4] 해당 기체는 그 유명한 영화 샤이닝에도 나왔던 기체로 이후에 페덱스 익스프레스 화물기로 개조되었다가 2007년에 운항을 종료하였다. #[5] 제주공항 최초의 외항사 정기노선이다.[6] 1888년 12월 26일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출생. 이 사람은 이전에도 항공사를 세웠다가 그 회사가 보잉에 합병된 적이 있다. 그 항공사는 유나이티드 항공의 전신이 된다. 1967년 1월 25일 작고.[7] Saul Bass, 1920~1996. 영화계에 타이틀 디자인 분야를 확립한 인물이기도 하며, 6년 뒤인 1974년에는 나중에 컨티넨탈 항공을 인수한 유나이티드 항공의 로고도 디자인했다.[8] 참고로 이 로고는 한눈에 보면 알 수 있듯 대우그룹의 로고와 매우 비슷한데, 그 때문에 표절 논란이 일기도 했다.[9] 상단의 기체는 단 30대밖에 팔리지 못한 보잉 737의 최초형인 보잉 737-100이다.[10] 그런데 그것도 2022년 12월 기준 사우스웨스트 항공에서 현역으로 굴리는 737 기체 총합(809개)의 절반도 안 된다.[11] 참고로 컨티넨탈 항공은 보잉 737 MAX 이전 737 세부 기종을 -400과 -600 빼고 모두 운용하여 도합 7종의 737 세부 기종을 운용했는데, 이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운용한 737 세부 기종 개수와 똑같다. 참고로 가장 많은 737 세부 기종을 운용한 항공사는 후에 컨티넨탈 항공을 합병하게 되는 유나이티드 항공(9종)이다.[12] 사실 이 65달러에는 고든 베이슨의 약간의 계산이 있었는데, 정시 도착을 못했을 때의 손실금 500만 달러의 절반을 직원 수로 나눈 금액이 65달러였다고 한다.[13] 1997년 바뀐 내용은 정시 도착 비율이 80%가 넘어갔을 때 순위 관계없이 무조건 65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하였다.[14] 일례로 9.11 테러 직후 정리해고 관련 협상 때 노동조합이 상당히 고분고분하게 나와 순조롭게 협상할 수 있었다.[15] 일부는 미경유[16] 참고로 당시 제트기에는 영화 상영 서비스조차 도입되지 않았는데,(제트기 내 영화 상영 서비스는 그로부터 2년 뒤인 1961년에 트랜스 월드 항공에 의해 도입되었다.) 그랬던 시절에 이 서비스가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혁명적인 서비스로 받아들여졌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참고로 1965년 7월 1일에 컨티넨탈 항공 12편(보잉 707-124)이 캔자스시티의 찰스 B. 휠러 다운타운 공항에서 활주로 이탈 사고를 일으킨 것에 대해 민간항공위원회(CAB)가 1966년에 작성한 보고서 9쪽에도 1등석 라운지에 TV 세트가 있었다는 언급이 있었다는 언급을 감안하면 이 서비스는 적어도 1965년까지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17] 콩코드가 이륙하기 전에는 에어 프랑스 747기가 이륙했다. 참고로 이 항공기는 FOD를 피했다.[18] 오일 누유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엔진 출력을 70%까지 올린 상태였다.[19] 절대로 검색해서는 안 될 검색어에서도 위험도 5에 등재된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