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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아메리칸 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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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항공사의 상표권을 인수해 탄생한 한국의 패션 브랜드에 대한 내용은 팬암코리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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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아메리칸 월드 항공
Pan American World Airways[1]
부호 항공사 호출 부호 (CLIPPER)
IATA[2] (PA) ICAO (PAA) BCC (21)[3]
항공권 식별 번호 026
설립일 1927년 3월 14일
운항 개시 1927년 10월 19일
운항 종료 1991년 12월 4일[4]
허브공항
[[미국|]][[틀:국기|]][[틀:국기|]] 내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마이애미 국제공항
미국 외

[[영국|]][[틀:국기|]][[틀:국기|]] 런던 히스로 공항

[[독일|]][[틀:국기|]][[틀:국기|]]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

[[일본|]][[틀:국기|]][[틀:국기|]] 도쿄 나리타 국제공항
보유 항공기 수 130[1967년], 226[폐업당시]
런치 커스터머 S-38/40/42/43, M-130, B307, B314, B377, DC-7, B707-120, B707-320, B707-320B, B747-100, B747SP, B2707, 콩코드[7]
취항지 수 남극제외 6대륙 86개국[1968년], 55[폐업당시]
콜사인 클리퍼(Clipper)[10]
마일리지 WorldPass
항공동맹[11] 무소속[폐업당시]
슬로건 “The System of the Flying Clippers” (1946–1953)
"World's Most Experienced Airline" (1953–1970년대 중반)
“Pan Am makes the going great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중반)
“Experience makes the difference” (1970년대 초반)
"Every country has an airline. The World has Pan Am." (1970년대 초반)
“Suddenly... you're somewhere else” (1970년대 초반)[13]
“America's airline to the world” (1970년대 중후반)
"Say Hello To Pan Am" (팬암-내셔널 항공 합병 당시)
“You can't beat the experience” (1980s)[14]
“팬암만의 세계를 경험해 보세요.” (1980s) [15]
“Die Flügel Berlins” (1980s) [16]
"Expect More From Pan Am" (일부 TV광고)
1. 개요2. 후대에 미친 막대한 영향력3. 항공계를 주름잡던 전성기4. 역사5. 이전 보유 기종6. 운항 국가7. 미디어
7.1. 드라마화
8. 사건 사고9. 여담10. 관련 문서11. 사진들

[clearfix]
1969년 보잉 747 첫 상업운항 광고.[17]
1982년 팬암의 일본 광고.
1984년 광고[18]You Can't Beat The Experience. Pan Am은 영상 17초 즈음에서부터 들을 수 있다.]

1. 개요

팬 아메리칸 항공은 1927년에 운항을 시작하여 1991년에 자금난으로 부도가 나서 망한 미국플래그 캐리어로, 초기 항공산업의 선구자이면서 전성기에는 지금의 맥도날드에 필적했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문화적 아이콘의 경지까지 올랐던 브랜드였다.

그러나 20세기를 주름잡았음에도 TWA하고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항공사이다.[19]

정식 명칭은 팬 아메리칸 항공(Pan American World Airways)이지만, 줄여서 팬암(Pan Am)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20]

2. 후대에 미친 막대한 영향력

팬암은 "비행기를 이용한 대륙간 국제 여행"을 처음으로 실현해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항공 분야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노선 개척 면에서 이러한 특징은 매우 크게 두드러진다. 다음은 팬암이 세계 최초로 운항한 항공 노선 목록이다.다만 북극 노선은 1954년에 스칸디나비아 항공이 처음으로 운항했다.

기체 도입 면에서도 항공 노선 개척 못지않게 중요한 족적을 남겼는데, 보잉이 제작한 제트기광동체 여객기를 세계 최초로 발주한 것은 물론, 직접 개발에 관여하기까지 했으며 최초로 운항하는 기록을 세웠다. 심지어 보잉 747은 아예 팬암이 보잉에다 직접 개발을 의뢰해서 만든 것이었다. 1963년에는 보잉 2707을 주문하여 최초로 초음속 여객기를 운용한 항공사라는 기록도 세울 뻔했으나, 보잉 2707의 개발이 취소되면서 이 타이틀은 후에 콩코드 여객기를 운항한 영국항공에어 프랑스가 가져가게 된다.

기술 측면에서는 지상과의 라디오 교신, 기상 예보를 비행에 활용, 안전 장비 기내에 비치, 객실내 경고등 고안, GPWS, 프로펠러 엔진 브레이크 설계, 기체 성능 분석을 위한 기내 컴퓨터 설치, 고고도 기상측정, 오토파일럿, INS, 위성 전화, 100% 순화물기, 여객기용 화물 컨테이너, 오버헤드 빈 등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뿐만 아니라 현대 ATC 코드도 팬암의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심지어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팬암의 라디오 기술이 미군 기술보다 앞서 미군의 라디오 통신 기술 또한 팬암의 ATC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한다.

서비스 측면에서는 미국 최초로 객실 승무원들을 배치하고 기내식을 데워서 줬으며, 1932년에는 세계 최초로 비행기에 갤리를 설치했고 1946년에는 최초로 기내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기내 엔터테인먼트를 정기 노선에 투입하기도 했다.[21] 그리고 세계 최초로 여행객을 위해 항공사 차원에서 호텔[22]을 설치, 운영하는 서비스와 항공사가 해외 여행 가이드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실시했고, 현대식 이코노미 클래스 서비스와 기내식에서 원하는 음식을 고르는 서비스 역시 팬암이 세계 최초로 제공했다. 그리고 미국 최초로 비즈니스 클래스 서비스를 제공한 항공사도 팬암이다.

인적 및 자원관리 측면에서도 미국 최초로 복수의 비행 승무원을 배치했으며, 세계 최초로 승무원 건강 검진과 승무원 제복을 의무화하고 팬암 아카데미를 통한 승무원 및 파일럿 양성을 하였다.[23] 뿐만 아니라 1962년에는 세계 최초 민간 GIS 시스템이자 컴퓨터 예약 시스템인 PANAMAC을 도입했다.

여러 항공사들의 창업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으로 남미에서 가장 큰 항공 그룹인 아비앙카 항공 외에도 아에로멕시코, 멕시카나 항공, 바리그, 쿠바나 항공, 코파 항공등 대부분의 중남미 항공사들이 팬암과 운항국가간의 합작법인 형태나 팬암이 운영하던 노선을 부여받아 탄생하였다. 아시아에서는 중화민국 정부와 1930년대부터 합작사를 운영하기도 했으며, 이후 해당 항공사의 물적/인적 자산은 중국의 중국민항과 대만의 민항공운공사로 분리되었고, 중국민항은 후에 중국국제항공으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1945년에는 IATA를 공동 설립하기도 했다.

3. 항공계를 주름잡던 전성기

Pan American World Airways 시절에는 그야말로 서방세계 최대, 최고의 항공사였다.[24] 당시 팬암의 유명세가 어느 정도였냐면, "세계에서 첫 번째로 유명한 로고가 코카콜라 로고라면, 두 번째로 유명한 로고는 팬암 로고다.", "어떤 곳에는 코카콜라가 들어오기도 전에 팬암이 있었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25]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여객과 화물 모두 서방세계 1위였던 회사인데, 전성기 시절에 노선망은 전 세계를 돌아 지구를 커버했고, 팬암이 파산한 이후 팬암이 전성기 시절 보유한 노선망의 규모를 넘은 항공사는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실제로 팬암은 아직 최초의 제트 여객기가 운항을 시작하기 3개월 전이었던 1952년 2월에 이미 83개국을 운항했다고 한다. 팬암의 최전성기로 꼽히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에는 80개국 이상 운항은 기본이였으며, 심지어 1967년에는 90개국을 운항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다.[26] 그리고 1980년대 중반에는 대한민국김포국제공항에도 취항했으며, 심지어 냉전 시대에 모스크바[27]를 비롯한 동구권, 베이징, 상하이에까지 취항한 적도 있다.

이렇게 팬암은 일개 항공사를 뛰어넘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고 항공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를 상징하는 하나의 문화 코드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미국의 항공 매니아들은 팬암이 파산한 지 30년이 넘은 오늘날에도 팬암을 그리워할 정도다.[28]

4.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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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전 보유 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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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운항 국가

6.1. 대한민국 취항

한국에 최초로 제트 여객기를 착륙시킨 항공사이기도 하다.[29] 1960년 3월 30일[30] 팬 아메리칸 항공 소속 보잉 707-320[31]김포국제공항에 착륙한 후 초청받은 참관객 108명을 태운 채로 50분 동안 서울-부산을 비행하기도 했다. 다만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은 남아있지 않다. 당시 기사

1983년 6월 18일부터 김포국제공항에 취항을 하던 항공사였으나[32][33] 1986년 초반에 태평양 노선을 유나이티드 항공에 넘기고 서울(김포) 노선에서 철수했다. 그래서 미국의 상징이었다는 네임 밸류에 비해, 최근의 항덕들에게는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34][35]


당시 한국 취항 TV광고[36][37]
(남 NA): 미국으로 가십니까? 이제 미국 여행이라면 팬암입니다.(팬~암~♬)
매일 미국으로 가는 항공, 팬암.
하와이, LA, 샌프란시스코, 뉴욕. 그리고 다른 주요 도시와 남미까지 단 한번의 수속으로[38] 즐겁고 편안하게 모십니다.
미국을 잘 아는 항공 팬암(팬~암~♬)
(여 NA): 팬암만의 세계를 경험해 보세요.

파일:external/blogfiles4.naver.net/IJH000179-toysher.jpg
1985년 당시의 잡지[39] 광고 #

독일 카보타지[40]과 함께 일본 이원권이 있는 관계로 대한민국에는 김포 - 나리타 연결노선을 운항했으며, 김포-나리타 노선에는 록히드L-1011을 투입했다. 초기에는 주 3회 운항하다가 이후에는 매일 운항한 듯하다.

광고에 기재되어 있는 시간표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41] 나리타에서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뉴욕, 워싱턴 D.C.(나중에 추가) 노선 등을 연결하는 환승 장사를 했다. 그래서 신문 광고에는 "동경을 거쳐 모십니다", "동경에서부터 747로"라는 문구가 있었다.

1985년 2월에는 김포 - 샌프란시스코 직항을 신설하였지만, 경영난으로 유나이티드 항공에 태평양 횡단 노선 및 이원권을 매각하면서 1986년 초에 대한민국에서 철수했고, 이 노선을 인수받은 유나이티드 항공이 이 시기에 대한민국에 입성했다.

이전에도 6.25 전쟁 시기에는 전세 편으로 서울(김포)과 부산(김해)에 취항하였으며, 1980년대에는 팀스피리트 훈련 등 대형 훈련이 있을 때에 오산 공군기지 등을 통해 미군을 수송했다고 한다.

7. 미디어

미국의 시대물을 다룬 영상매체에서 비행기 타는 장면이 들어가면 거의 단골로 등장한다.

7.1. 드라마화

2011년 9월 25일부터 2012년 2월 19일까지 미국 ABC에서 1960년대 일명 "제트에이지" 때의 바로 이 팬암의 위용과 그 곳에서 일하는 조종사들과 젊은 스튜어디스들의 삶을 소재로 한 시대극 "Pan Am"을 방영했다. 총 14부작. 홈페이지

주된 평가는 시대 재현 자체는 잘했지만 실제 역사의 사건들과의 링크와 첩보 플롯은 아무래도 억지스럽다는 평이다. 파일럿(...)부터 약간 막장드라마의 스멜도 난다. 그래도 항덕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43]

주연중 네임드는 크리스티나 리치 혼자였다가 로라 역의 마고 로비가 이 드라마 이후 뜨고 있다. 이 때문에 CG와 의상, 세트 등등에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다른 네임드 배우를 섭외할 수 없었다는 얘기가 신빙성있게 들린다. 연기자들의 연기력은 나쁘지 않으니 오히려 제작사 입장에서는 다행일지도. 참고로 리치가 맡은 매기 역은 사무장이며, 케이트 역의 켈리 가너는 위에도 언급된 에비에이터에 조연으로 나온다. 기장 딘은 폭풍우속에서 카이탁 국제공항착륙하는 능력자이며,[44] 부기장 테드 역시 해군 테스트 파일럿 출신에 빽도 빵빵하다. 케이트는 CIA에 선택될 정도로 능력있고 로라는 라이프 잡지의 표지모델이 되었으며 매기는 15개 나라 말로 맥주를 주문할 수 있다.[45] 먼치킨들만 탄 비행기에서 제일 고생하는 캐릭터는 콜레뜨[46]이다.

방송기간 동안 시청률이 정말 꾸준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항덕들은 종영되지만은 않기를 바랐으며, 소니가 워낙 투자한 돈이 많아서 그럴 일 없다는게 중론이었다.[47] 그리고 워낙 타임슬롯 자체가 셌다. CSI : Miami, 워킹 데드, 그리고 선데이 나잇 풋볼.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인지 아이튠즈 스토어를 통해 2011년까지의 방영분인 에피소드 9까지 무료로 배포한 적도 있었으나, 결국 6월 20일 ABC가 시청률 저조로 종영시켰다.

국내에서도 채널A를 통해서 방송된 적이 있다고 한다.

8. 사건 사고

64년의 역사 동안 겪은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는 총 48건이며,[48] 1961년 이후로 총 16번의 하이재킹을 겪었다.[49] 이 사고들로 총 1,676명이 사망했다.
유독 보잉 제트 여객기의 초도기를 많이 보유했다. 최초로 여객 운항을 시작한 보잉 747, 최초로 민간에게 인도받은 보잉 707, 심지어 최초로 제작된 보잉 707을 여객기로 보유했는데, 셋 다 사고 소실되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최초로 여객 운항을 시작한 707인 N711PA와 최초로 인도받은 747인 N733PA와 보잉 747의 첫 양산형인 N747PA는 사고로 소실되지 않고 무사히 퇴역했지만, 이들도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스크랩당했다. 게다가 기념비적인 N747PA는 한국에서 처참하게 스크랩 당했다. 이 때문에 국내 및 해외 항덕들 및 보잉 등 항공계에서 큰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자세한건 해당 문서 참고.

9. 여담

10. 관련 문서

11. 사진들

파일:B707-120.jpg
1959년 5월 16일 히스로 공항에서 찍힌 보잉 707.[52]
파일:1962년 707.jpg
1962년 9월 6일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찍힌 보잉 707.[53]
1966년 7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에서 찍힌 보잉 707.
파일:external/cdn-www.airliners.net/0278456.jpg
1966년 7월 스웨덴 스톡홀름 알란다 국제공항에서 찍힌 DC-8.
파일:1970년 747.jpg
1970년 5월 28일 히스로 공항에서 찍힌 보잉 747.
파일:external/cdn-www.airliners.net/1290240.jpg
1970년 10월 7일 호주 시드니 국제공항에서 찍힌 보잉 747.[54]
파일:N750PA.png
1971년 8월 30일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찍힌 보잉 747.
파일:external/cdn-www.airliners.net/1652726.jpg
1974년 3월 3일 히스로 공항[55]에서 찍힌 보잉 707.
파일:external/cdn-www.airliners.net/1348932.jpg
1975년 4월 30일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56]
파일:external/cdn-www.airliners.net/2353805.jpg
1980년 2월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정비 중인 보잉 747.
파일:external/cdn-www.airliners.net/0007074.jpg
1983년 9월 히스로 공항에서 찍힌 L-1011.
1984년 2월 마이애미 국제공항에서 찍힌 DC-10.[57]
파일:external/cdn-www.airliners.net/0475876.jpg
1990년 10월 20일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58]

[1] 약칭 Pan Am(팬암)[2] IATA 창설 기업이다.[3] 참고로 BCC는 first sequence가 20부터 시작하는데 20번은 바로 보잉 자체 코드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BCC 전체 1번을 가졌다는 의미. 한때 보잉의 계열사였던 유나이티드 항공도 22번인 것을 고려하면 당시 팬암의 위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4] 여담으로, 이 시기는 바로 앞의 블랙 프라이데이로 시작되는 쇼핑 황금기에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않는 세모가 가까운 때였기 때문에 대규모의 소비가 이루어지는 대목 기간이었다. 이런 호황기에 운 나쁘게 회사가 파산하여 퇴직해야 했던 직원들은 그야말로 눈물의 연말연시를 보내야 했다고 전해진다.[1967년] [폐업당시] [7] 팬암이 두 초음속기 모두를 처음으로 구매했지만 팬암의 취소를 시작으로 영국항공에어프랑스를 제외하고 며칠 이내로 경제성 문제로 모두 취소한다, 사실 에어 프랑스영국항공도 자국에서 개발하지 않았다면 불확실성을 감내하며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1968년] [폐업당시] [10] 19세기에 있었던 다수의 돛이 달린 쾌속 범선을 뜻한다. 이 콜사인과 함께 각 기체마다 Clipper ○○○○ 같은 식으로 세례명 비슷한 기체명을 붙여둔 덕에 팬암의 항공기는 테일넘버 대신에 Clipper 시리즈로 구분하기도 한다. 오히려 테일 넘버보다는 클리퍼로 부르는 사람이 훨씬 많아 그냥 클리퍼로 검색하는게 더 빠를 정도다.[11] 사실 이 회사가 사라지던 당시까지만 해도 항공 동맹의 개념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첫 항공 동맹인 스타얼라이언스가 결성된 해는 팬암이 폐업하고 6년이나 지난 1997년 5월의 일이었다.[폐업당시] [13] 영국 시장용[14] 팬암의 가장 잘 알려진 슬로건이다. 직역하면 "당신은 경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는 뜻이며 이를 조금 의역해 보자면, "당신은 이보다 더 좋은 경험을 하실 수는 없습니다.", "최고를 경험하실 것입니다" 정도 되겠다.[15] 한국 취항당시 국내 한정으로 쓰인 슬로건, 위의 "You can't beat the experience"와 병행하며 쓰였다.[16] 디 플뤼겐 베를린. 독일어로 “베를린의 날개”라는 뜻이며 1980년대에 한해 독일 내에서만 사용되었다.[17] 참고로 영상 속의 기체는 8년 뒤 불의의 사고로 소실되었다.[18] 80년대부터 폐업까지 쓰인 슬로건인[19] 단, TWA는 21세기의 시작이었던, 그리고 팬암이 망한지 딱 10년이 지난 2001년 12월에 폐업했다.[20] 다만 미국에선 팬 에이-엠이라 부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21] 이 서비스는 1950년대 초반까지 운영되었으며, 이후 한동안 폐지되었다가 1965년 5월 7일에 보잉 707에 다시 도입되었다. 다만 이미 4년 전인 1961년 7월 19일에 트랜스 월드 항공이 최초로 IFE를 제트기에 설치한 항공사란 타이틀을 가져가버린 상태였다.[22] 이 호텔이 현재 세계 5대 호텔 그룹 중 하나인 IHG그룹의 모체인 인터컨티넨탈 호텔이다.[23] 여담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팬암 전 부문을 군 지원에 트립 사장이 동원해 초기 항공산업의 파일럿은 팬암 출신이라고 한다.[24] 다만 세계 1위는 아니었는데, 당시 압도적인 세계 1위는 소련의 국영 항공사로 소련 국내선을 독점아에로플로트였다.[25] 참고로 두 번째 말이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닌 것이, 실제로 태국, 베트남, 아르헨티나 등의 국가들에서는 팬암의 첫 취항 후에 코카콜라가 처음으로 판매되었다고 한다.[26] 참고로 대표적인 거대 항공사로 인식되는 에미레이트 항공의 취항 국가는 2021년 3월 현재 85개국 정도이다.[27] 1962년, 정확히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끝난 이후 뉴욕-모스크바 노선을 운항하기 시작했다.[28] 미국인 뿐만 아니라 팬암을 이용한 적이 많은 유럽인, 일본인들도 팬암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29] 참고로 한국에 최초로 제트 여객기 노선을 운항한 항공사는 노스웨스트 항공으로, 1963년 8월 28일 서울-도쿄 노선에 이 기종을 시범적으로 투입했고, 그로부터 1달 뒤부터는 정기 노선으로 취항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기사[30] 팬암의 DC-8 운항 시작 3일 후이자 이승만의 하야로부터 약 1개월 전이다.[31] 따로 명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당시 기장의 기체 스펙 언급으로 보아 보잉 707-320으로 추정된다. 당시 기체 가격은 700만 달러(2024년 가치로는 7462만 달러)였는데, 당시 한국의 GDP가 39.6억 달러(심지어 이것도 실질환율보다 2배나 고평가된 공정환율로 환산한 것이었다)였으니 무려 한국 GDP의 0.18% 값어치나 됐던 셈. 달리 말하자면 제트 여객기 3~6대 값이 국가 GDP의 1% 가치나 되었을 정도로 한국이 매우 가난한 나라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지만.[32] 가끔씩 TV 광고나 신문에 전면 광고까지 하기도 했다. 아무나 비행기를 못 타던 그 시절의 대한민국에서 당시 비행기를 탈 정도이면 해외 출장을 다니는 사람이거나, 대단한 부유층 내지는 권력자 혹은 유학이나 취업을 위해 가는 사람들 뿐이었다. 이후 어느 정도 자유화가 되기는 했지만 이 역시 상당한 비용이 필요했다. 지금처럼 몇 만원이면 여권이 발급되고 해외 어디나 다닐 수 있게 된 것은 고작해야 30년을 겨우 넘었다. 그래서 당시 국내에서는 이를 대리만족하는 시설들이 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취항 시기도 유럽 항공사 최초로 입성한 에어 프랑스보다 1달 빠르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현재도 운항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 해에 사우디아 항공도 한국 노선에 취항했으나 중동 건설 붐이 종식되면서 1990년 철수했다가 현재는 복항한 상태. 그러나 사우디아 항공도 2024년에 한국 노선을 단항했다.[33] 마침 당시 한국이 막 중진국 안정권으로 접어든 시점이었다.[34] 오히려 팬암은 옆나라 일본 항덕들에게는 인기가 많은 없어진 항공사이다. 당장 이 항공사가 일본에 취항하던 시기는 일본의 경제 전성기 초기였기 때문이다.[35] 이런 이유로 한국 항덕들에게는 팬암보다는 더 오랜 한국 취항 역사와 경력을 가진 노스웨스트 항공의 인기가 더 많다.[36] 이후 1986년 초에 한국 노선에서 철수하게 되면서 한국에서 방영된 팬암의 TV광고와 바로 아래의 잡지 광고, 심지어는 아래에 언급한 잡지 광고조차 결국에는 처음이자 마지막 광고가 되었다.[37] 사실 1959년에도 신문에 광고가 존재했었다. 당연히 당시 6.25 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채 안 된 최빈국 한국에서 한국에 취항하지도 않고 일본에 가야 겨우 탈 수 있는 팬암을 탈 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상위 0.1%급 부자를 제외하면 전혀 없었다. 참고로 당시 광고들을 보면 팬 아메리칸은 '판 아메리칸'으로, 제트 클리퍼를 '젯트크리퍼'로 표기했다.[38] 도쿄에서의 환승을 숨기기 위한 말장난이다. 어쨌든 표는 한 번에 나오는데다가 입국심사가 필요하지 않으니까. 지금도 미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단 한번의 수속"은 나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데, 어차피 환승편을 타기로 했으니 환승 여부는 다 알테고, 중간 경유지에서의 입국심사를 받아야하느냐, 짐까지 찾고 재수속을 해야하느냐, 입국심사 안 받고 환승통로로 빠져나가도 되느냐에 있어 중요하기 때문이다.[39] 신문은 갱지를 사용하기에 저렇게 종이 색이 밝을 수 없다. 후면에도 상당히 큰 글자로 광고가 있는 것으로 보아 잡지가 맞다.[40] 이쪽은 일본의 이원권(5자유)에 더해 상대국 국내선 노선인 프랑크푸르트-서베를린 노선 영업이 가능했다. 연합국 특전[41] 목적지가 4개인데 출발 시간이 다 똑같다. 위의 TV 광고에서도 <단 한 번의 수속으로>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한번에 바로>가 아니라.[42] 재밌게도 디카프리오는 <에비에이터>에서는 팬암과 싸우는 항공사 (그리고 영화사) 사장인 하워드 휴스를 연기하게 된다.[43] 최초 한글 자막은 어떤 항덕이 만들어서 디씨인사이드 항공 갤러리에 최초로 올렸다.[44] 사실 능력자라고 띄워주기도 좀 그런게, 측풍이 너무 심해 활주로 옆 바다로 기체가 떨어질 뻔했다. 100명이 넘는 승객을 태운 비행기의 기장으로서 상당히 무모한 행동을 한 셈. 당장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가장 큰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보통 이렇게 기상이 지나치게 악화된 경우 부기장의 건의에 따라 복행하든지, 또는 다른 공항에 착륙했어야 했다. 적어도 부기장보고 닥치고 가만 있으라고 할 상황은 분명 아니다. 더군다나 7화에서는 부기장과 기관사가 잠시 조종실을 떠난 사이에 여승무원인 콜레뜨를 부기장 자리에 앉히고 조종간을 넘기기까지 한다! 이쯤되면 심각한 안전불감증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45] 여담이지만, 포르투갈어에 능통하다는 것은 거짓이었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46] 그것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포함한 4개 국어를 할 수 있는 능력자인데도! 하지만 어리숙한 로라, 드센 성격 덕에 종종 실수를 하는 매기, 동생에게 콤플렉스를 가진 케이트에 비해 가장 무난하고 성숙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주연들에게 밀리는 것[47] 항덕들이 많이 봐서인지 영국항공 광고도 나왔다고 한다.[48] 참고로 보잉 707을 도입한 1958년을 경계로, 1958년 전에는 28건, 1958년 이후에는 20건(후술할 하이재킹 사건들까지 포함해서)이 발생했다.[49] 그나마 팬 아메리칸 항공 841편 납치 사건과 팬암 816편 납치 사건은 납치범만 경찰에게 총살되었지만, 팬암 73편 납치 사건에서는 총격전이 발생하여 21명의 죄 없는 탑승자들이 사망했다.[50] 납치된 기체들 중 하나가 팬암의 747이었으며, 이후 납치범들에 의해 납치된 다른 기체들과 함께 폭파되었다.[51] 특히 항덕 계층의 반발이 심했다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대표하던 항공사였고 또한 대륙간 제트 여객기의 모태가 된 역사적 항공사가 겨우(...) 의류브랜드가 된 것이니 당연지사. 사실 미국에도 Pan Am Brands Licensing에서 운영하는 팬암 의류브랜드가 있으며 panam.com도 그 쪽으로 연결된다.[52] 최초로 상업 운항을 시작한 보잉 707인 N711PA다.[53] 옆에는 훗날인 1980년에 합병하게 되는 내셔널 항공DC-8이 보인다.[54] B747의 첫 시드니 운항에 찍힌 사진이다.[55] 사진이 찍힌 날, 런던 히스로 공항에 가려다가 추락한 비행기가 있다.[56] 착륙하는 항공기는 보잉 747, 유도로에 있는 항공기는 보잉 707이다.[57] 팬암의 모든 DC-10은 1980년에 합병한 내셔널 항공에서 가져온 것이다.[58] 이 사진이 찍힐 당시에는 이미 파산하기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