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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16:23:31

헤이케모노가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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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家物語(へいけものがたり)

1. 개요2. 줄거리3. 등장인물4. 구성5. 대중매체에서6. 관련 문서7. 참조 링크

1. 개요

일본의 고전 모노가타리.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하는 대표적인 군담문학(군기문학)이다. 배경상으로나 주제, 문체상으로나 앞선 군기 모노가타리들인 『호겐모노가타리(保元物語)』, 『헤이지모노가타리(平治物語)』 등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여겨지며, 군기 모노가타리 최고 걸작으로 칭송된다. 가나(문자)한문훈독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는 '와칸콘코분(화한혼효문: 和漢混淆文)'의 대표작이기도 하며, 주로 맹인 승려들에 의해 비와(琵琶) 연주와 함께 전승되었다.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라는 제목은 "헤이케(平家: 타이라 가문)의 이야기"라는 의미이다.

군기 모노가타리 걸작으로서 쌍벽을 이루는 후대의 『타이헤이키(太平記)』[1]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이 양대 군기 모노가타리에서 나온 전승 내용이 전국시대 무사들의 귀감이 되기도 했으며, 텍스트가 예수회 선교사들의 일본어 교재 구실을 하기도 했다.

시대를 초월하여 널리 사랑받은 영웅소설, 비극성, 역사성, 서사성과 서정성의 절묘한 혼재, 교양성, 교훈성, 인상적인 도입부 등의 특징을 갖는데, 이 때문에 중국의 『삼국지연의』, 서양의 『일리아스』에 비견되기도 한다.[2]

인기 만큼 판본도 다양하여 내용 차이에 관한 연구도 옛날부터 활발하다.[3] 대표적 이본으로 『겐페이성쇠기(源平盛衰記)』, 『겐페이투쟁록(源平闘諍録)』이 있다.

2. 줄거리

타이라노 키요모리(平淸盛)를 필두로 한 무사가문 타이라씨(平氏, 헤이시)가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의 종반에 일어난 호겐의 난(保元の乱)과 헤이지의 난(平治の乱)을 거치며 다른 무사집단과 황족, 귀족들을 누르고 권력을 손에 넣은 후 20여 년의 영화를 누리다가, 겐페이 전쟁에서 적대가문 미나모토씨(源氏, 겐지)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멸망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는 헤이케뿐 아니라 황가, 후지와라가, 겐지의 인물들 역시 각자의 비극적 운명에 처해지며, 인생사 너 나 할 것 없이 죄다 무상하며 애처롭다는 결말로 이어진다. 특히 겐지의 키소 요시나카,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등의 영고성쇠 이야기도 헤이케모노가타리 내에서 유명한 부분이다.

새로운 권력층으로 등장한 무사집단의 흥망과 헤이안 시대 후기 인세이(院政)의 등장으로 분열한 천황가와 귀족들의 쇠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 실존인물들의 이야기를 잘 그려내고 있다. 문체는 단조로운듯 하면서 당대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으며, 관조적이며 장중하다가도, 서사가 무르익음에 따라 점차 비극적 인물들에 대한 채 억누르지 못한 듯한 애수를 드러냄이 특징이다. 헤이안 시대에 발달한 일본 문학의 유려함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야기의 전체 주제적으로는 불교적 무상관과 인과응보의 이치, 유교적 명분론, 덕정론의 설득력 있는 설파로 귀결되어 수준 높은 교양성과 교훈성 역시 띠고 있다.

작자가 미상으로 전해져 왔다. 여러 기록에서 작자를 밝히고 있지만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아직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시나노노젠지 후지와라노 유키나가(信濃前司 藤原行長)라는 인물이 저술했다는 설과 하무로 도키나가(葉室時長)라는 인물이 저술했다는 설 두 가지가 가장 유력한데, 후자인 하무로 도키나가 설은 <헤이케 모노가타리>의 보궐(보충)편인 <츠루기노 마키>(剣巻)에서 밝히고 있기 때문에 유력설로 제기되어 왔다. 그런데 양측의 기록대로 선조를 추적해보면 둘 다 같은 인물을 조상으로 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쪽이든 후지와라씨(藤原氏)의 일족이 저술한 것일 확률이 높다.

서장의 제1구 기원정사(祇園精舎)는 군담 문학의 명문으로 손꼽히며, 노래로도 만들어지는 등 문학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제1구는 다음과 같다.[4]
平家物語 巻第一
헤이케모노가타리 켄 다이이치
(헤이케모노가타리 권 제1)

第一句 祇園精舎
다이잇쿠 기온쇼쟈
(제1구 기원정사)


祇園精舎の鐘の声(祈園精舍梵鐘聲)
기온쇼쟈노 카네노 코에
기원정사[5]의 종소리

諸行無常の響きあり(諸行無常響音矣)
쇼교무죠오노 히비키아리
제행무상의 울림이어라.

沙羅双樹の花の色(沙羅雙樹花英色)
샤라소오쥬노 하나노 이로
사라쌍수[6]의 꽃잎 빛깔

盛者必衰の理を現す(現理一世盛必衰)
죠샤힛스이노 코토와리오 아라하스(아라와스)
성자필쇠의 이치를 나타내누나.

驕れる者も久しからず(古來驕者不長久)
오고레루 모노모 히사시카라즈
교만한 자는 오래가지 못하니

唯春の夜の夢の如し(唯如一場春夜夢)[7]
타다 하루노 요노 유메노 고토시
한낱 봄날 밤 꿈과 같느니라.

猛き者も終には滅びぬ(古來猛者終局滅)
타케키 모노모 츠히(츠이)니와 호로비누
용맹한 자도 마지막엔 멸망하느니

偏に風の前の塵に同じ(偏同一個風前塵)
히토헤(히토에)니 카제노 마헤노 치리니 오나지
오로지 바람 앞의 티끌 같은 처지인 것을.
이후 권세를 믿고 전횡을 부리다 패가망신한 권신들로 중국의 조고, 왕망, 주이, 안록산 및 일본의 타이라노 마사카도, 후지와라노 스미토모, 미나모토노 요시치카, 후지와라노 노부요리를 열거하며, 이들의 행각도 놀랄 만한 것이었지만 그들조차도 타이라노 키요모리에게는 미치지 못했다고 하면서 본격적인 모노가타리의 서막을 알린다.
멀리 다른 나라를 찾아 보건대, 진나라의 조고, 한나라의 왕망, 양나라의 주이, 당나라의 녹산[8], 이들은 모두 구주선황(舊主先皇)[9]의 다스림에도 따르지 아니하고, 향락의 극에 달하여, 간언도 마음에 두지 아니하고, 천하가 어질러지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서, 민간의 비탄하는 바도 알지 못하더니, 오래가지 못하고서, 멸망한 자들이로다.
가까이 우리나라를 살펴 보건대, 쇼헤이(承平)[10] 때의 마사카도, 텐쿄(天慶) 때의 스미토모, 코와(康和) 때의 요시치카, 헤이지(平治) 때의 노부요리, 이들은 으스대는 마음도 드센 것도, 모두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으나, 가장 가까이로 로쿠하라(六波羅)[11]의 뉴도(入道)[12], 전 태정대신(太政大臣) 타이라노 아손(朝臣)[13] 키요모리 공이라는 이의 행적, 전해 내려오는 바야말로 생각도 말도 미치지 못함이라.
그 선조를 더듬어 보건대, 칸무 천황의 제5황자 1품(一品)[14] 식부경(式部卿)[15] 카즈라하라(葛原)[16] 친왕(親王), 9대째 후손[17], 사누키(讃岐)[18] 태수 마사모리(正盛)[19]의 손자[20], 형부경(刑部卿)[21] 타다모리(忠盛)[22] 아손의 적장자[23]라.
이후 키요모리의 가문인 칸무 헤이시의 분파 이세 헤이시의 내력을 간략히 다루고 전상암토(殿上闇討)[24]로 이어진다.

한국에는 문학과지성사에서 2006년에 전2권으로 번역 출간했다. 역자는 명지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오찬욱 교수. 이와나미 문고에서 나온 현대 일본어역 헤이케 이야기를 저본으로 삼았으며, 번역의 질은 나쁘지 않지만 원문에서 쓴 용어들을 현지화한답시고 고시라카와 법황을 '고시라카와 태상왕', 고토바 천황을 '고토바 임금'으로 적거나, 일본의 복식인 히타타레[25]를 '내갑의', 궁중 용어도 황후(또는 황태후)를 '중궁' 또는 '대비'(대왕대비)로 바꾸고 '친왕'을 '대군'으로 번역하고 있어서 읽다 보면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또 2권 부록의 계보도에는 오류가 있다.

이에 관한 일화가 하나 있는데 옛날에 명품 돌벼루를 애용하는 타케시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헤이케모노가타리>를 읽다가 조는데 갑자기 돌벼루에서 수많은 아시가루들이 나타나 타케시를 보고 고함을 쳤다. 알고 보니 이 돌벼루는 타케시가 사는 땅의 호족에 의해 멸망한 호족이 있던 땅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를 딱하게 여겨 제사를 지내주자 아시가루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다만 벼루는 아직도 어딘가에 남아있는데, 밤마다 아시가루들이 나타나 벼루를 지킨다고 한다. 그리고 가끔 벼루에서 <헤이케모노가타리>를 읊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고.

3.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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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성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찬욱 역 참조

5. 대중매체에서

5.1.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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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하타 이사오가구야 공주 이야기에 이어 후속 작품으로 헤이케모노가타리 애니메이션을 구상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견왕을 쓴 후루카와 히데오의 번역본이 히트하면서 사이언스 사루에서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이 견왕: 이누오를,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후루카와 히데오의 헤이케모노가타리를 원작으로 TV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인터넷 송신으로는 2021년 9월 16일, TV 방영은 2022년이다.

6. 관련 문서

7. 참조 링크


[1] 고다이고 천황, 아시카가 타카우지, 쿠스노키 마사시게 등의 일대기. 일본 남북조시대의 동란을 다뤘다.[2] 일본인의 자평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Japan and the Shackles of the Past』(2014)의 저자 R. Taggart Murphy 등이 이렇게 평가한다.[3] 참고적으로 헤이케모노가타리 시대부터 수단, 장소 등을 뜻하는 복합조사 にて(우리나라로 치면 '으로써', '에서' 등)가 で('으로(써)', '(에)서' 등)로 음편(音便) 표기됨이 활발해진다. 별것 아닌 변화 같지만 이런 요소가 군기 모노가타리 문체에 소소하게 현장성, 박진감을 더해주기도 한다. 이것이 현대까지 내려와 전자가 문어체, 후자가 구어체에서 잘 쓰인다.[4] 현대의 음송(+ 비와 연주)[5] 석가모니가 머물던 인도의 옛 절. 당시 코살라국의 영토였던 우타르프라데시 주 슈라바스티에 있었고 수닷타 장자의 보시로 세워졌다. <<금강경>> 등에서 나오는 기수급고독원이 곧 기원정사이다. 이후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면서 폐사지가 되었다.[6] 석가모니가 쿠시나가라에서 80세로 열반에 들을 때 주위에 있던 네 쌍의 사라수를 이르는 말.[7] 일본의 솔로 여가수 우타다 히카루의 'Traveling'이라는 노래에 인용되기도 하였다. 일본의 교사들이 헤이케모노가타리를 교육할 때 자주 인용했다는 일화도 있다.[8] 헤이케모노가타리의 저자는 마치 위진남북조, 당나라 때의 변려문처럼 대구적 운율과 형식미를 갖추기 위해 일부러 안록산의 성을 떼어 거론한다. 전체적으로도 다른 나라(중국) 이야기, 우리나라(일본) 이야기, 헤이케의 선조 이야기 등을 나란히 거론하는 것도 주목할 부분.[9] 옛 군주와 앞선 황제들. 즉 유교적 성왕(聖王)들.[10] 연호다. 죠헤이라고도 읽는다. 그러나 번역문 저본인 小學館(2007)판을 기준으로 한다.[11] 쿄토에 있다.[12] 불교에 귀의한 사람을 뜻한다. 키요모리도 숙적 고시라카와 천황처럼 머리 깎고 다니긴 했는데 잘 알려졌다시피 둘 다 딱히 진심은 아니었다(...).[13] 카바네의 하나인데 지체 높은 신하의 경칭이라 보면 된다.[14] 옛날 일본은 친왕의 품계와 관직 품계가 따로 있었다. 이건 친왕 품계다.[15] 우리나라로 치면 이조 판서와 예조 판서의 겸직쯤에 해당한다. 인사+의전 등을 담당했다.[16] 카즈라와라, 카즈라바라 등으로도 읽으며 기타 읽기례도 더 있다.[17] 달리 말해 카즈라하라 친왕의 8대손이라는 소리다. 1대, 2대, 3대...를 셀 때는 시조가 1대가 되므로 당연히 대수에 시조가 포함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손(代孫)은 시조를 제외하고 세고, 시조를 포함하려면 세손(世孫)을 쓰는 것이 널리 퍼진 관습이다. 그러니까 9를 살리고 싶으면 9세손이라고 해야 혼란이 적다(가장 인구가 많은 김해김씨 기준 대/세와 세손은 같은 숫자를 쓴다). 그러나 각 집안 족보마다 원칙이 다르기도 하며, 지금의 원칙과 고문헌상 원칙이 또 별개인 경우도 있다. 많이들 헷갈리는 부분이다.[18] 사누키 우동으로 유명한 지금의 카가와 현 일대의 옛 이름.[19] 키요모리가 아니라 이 사람이 친왕 8대손이고, 칸무 천황 9대손이다.[20] 타다모리가 아니라 키요모리를 가리킨다.[21] 형조 판서 비슷하다. 법무부 장관 격.[22] 카즈라하라 친왕 9대손, 칸무 천황 10대손, 사누키 태수 마사모리의 아들. 카즈라하라 친왕의 후손은 관직을 잘 얻지 못하고 몇 대 동안 지방을 전전했다. 그러다 키요모리의 아버지인 타다모리 때 황실에 발탁되어 중앙으로 재진출한다. 헤이케모노가타리 내 묘사에 따르면 인품도 되고 능력도 되고 기지도 뛰어나고 풍류도 겸비해서 토바 천황의 총애를 받지만, 눈깔이 사시에 출신이 천하다(...)며 중앙 귀족들의 온갖 인신공격과 시기를 받는다. 그래도 점잖게 넘기는데 아들 키요모리는 그러지 못해서나 같아도 그러지 못하겠다비극의 발단이 된다.[23] 즉 키요모리는 칸무 천황 11대손이다.[24] 밑 오찬욱 역본의 '암살 모의'에 해당. 키요모리의 아버지 타다모리가 뛰어난 기지로 귀족들의 시기와 간계를 물리치며 황실의 신임을 사는 내용이다. 이렇게 타다모리가 헤이케의 기틀을 다진다.[25] 갑옷 안에 받쳐 입는 무사의 예복 가운데 하나.[26] 키요모리의 소년 사병단인 카무로[27] 온조지[28] 시게모리 큰아들[29] 오찬욱 역에서는 상왕으로 번역[30] 오찬욱 역에서 법주사로 번역[31] 애니메이션 11화의 마지막 장면에 포함됨[32] 실제 역사에서 에도 막부를 세운 사람은 도쿠가와 이에야스.[33] 하이쿠 시인이다. 다만 출신지가 이가 닌자로 유명한 이가우에노고 기록에 여러가지 미심쩍은 점이 있어서 닌자였다는 설도 있다. 물론 본작의 정신나간 초인이 아니라 첩보원으로서의 닌자. 상세한 내용은 마츠오 바쇼 항목 참조.[34] 직역하면 '할복 의식'이지만 작품 특성상 일본어와 영어가 기묘하게 뒤섞인 번역문을 사용한다. 인살어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