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베이시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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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60012><colcolor=#fff> 제3-4대 신베이시장 허우유이 侯友宜(후우의) | Hou Yu-ih | ||
출생 | 1957년 6월 7일 ([age(1957-06-07)]세) | |
중화민국 타이완성 자이현 푸쯔진 | ||
국적 | [[대만| ]][[틀:국기| ]][[틀:국기| ]] | |
학력 | 자이현 푸쯔시 푸자초등학교 (졸업) 동스 국립중학교 (졸업) 타이완 자이고등학교 (졸업) 중앙경찰관학교 (형사경찰학 / LL. B.) | |
소속정당 | ||
경력 | 타오위안현청 경찰국장(2001~2003) 중화민국 내정부 경정서 형사경찰국장(2003~2006) 중화민국 내정부 경정서장(2006~2008) 중앙경찰대학 교장(2008~2010) 신베이시 부시장(2010~2018) 신베이시장(2018~) | |
서명 | ||
링크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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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화민국(대만)의 경찰 출신 정치인. 현 신베이 시장이며, 2024년 총통 선거 국민당 후보였다.중화민국 정치인으로는 특이하게 중앙경찰대학(한국의 경찰대학에 상응하는 특수대학)을 나온 경찰공무원 출신이다.
2. 어린 시절
1957년에 자이현 푸쯔진(현 푸쯔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역시 자이현에서 태어났으니 본성인이라 할 수 있겠다.그는 양돈업을 경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며[1], 어렸을 적 읽었던 탐정소설의 영향으로 경찰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중앙경찰대학에 진학했다.
3. 경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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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경력 초기인 1989년, 정난룽 분신자살 사건 당시. 사진 왼쪽 뒤의 검은 옷을 입은 모습 |
198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경찰 활동을 시작하여 내정부 소속인 경정서의 형사국(內政部警政署刑事警察局)에서 일하였다. 이 때 대만 사회의 골칫거리인 흑사회를 뿌리뽑는 데 두각을 나타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편 타이베이시 경찰 형사국에서 일선 책임자로 재직했던 1989년 4월에는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언론인 정난룽을 반역 혐의로 체포하기 위한 경찰 동원을 지휘하기도 했는데, 이에 정난룽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분신자살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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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경력의 정점이었던 경정서장 시절 |
이후에도 그는 경찰 내에서 승진을 거듭했고, 특히 2000년대 중반, 후반에는 경정서장과 중앙경찰대학 교장 등의 고위직을 차례로 역임해 경찰 경력의 정점에 이르렀다.[4] 그는 이를 발판으로 2010년 경찰을 은퇴, 중국국민당에 입당하여 본격적인 정계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경찰 경력을 시작했던 1980년대가 여전히 국민당의 권력 독점기였음을 감안하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행보였다. 국민당 입장에서는 '유능한 치안 전문가'였겠지만, 민진당 등 국민당 시절의 권위주의 시대에 항거했던 측에게는 '독재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한 악덕 공안 형사' 정도로 비춰졌던 인물인 셈.
그럼에도 천수이볜의 민진당 집권 시절에 경정서장으로 임명되었던 것을 보면, 적어도 경찰로서의 능력만큼은 그와 정치적 대립 관계에 있던 이들도 인정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허우유이의 청장 재직 시절, 대만은 경찰 내부의 부정부패를 완전히 뿌리뽑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대만 경찰은 동아시아 경찰 중 가장 청렴하고, 피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친절한 경찰로 평가가 높아졌다.
4. 정치인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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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베이 부시장 시절. 주리룬 당시 시장과 함께 |
주리룬이 2010년과 2014년에 연속으로 신베이 시장에 당선, 재임할 때 부시장으로 지명되어 8년간 재직했다. 말하자면 일종의 러닝메이트였다고 할수 있다. 이렇게 나름 행정가 겸 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을 쌓은 후, 2018년에는 주리룬의 뒤를 이어 신베이 시장에 국민당 후보로 출마한다.[5]
그리하여 2018년 11월 24일 실시된 2018년 대만 지방공직인원 선거에 신베이 시장 후보로 출마하여, 민주진보당 전 주석(당수)인 쑤전창을 꺾고 신베이 시장에 당선되었다. 주리룬이 2010년, 2014년 두 차례 당선되었을 때보다 훨씬 큰 표차로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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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지방 선거 당선 후의 모습[6] |
2019년의 총통 선거 기간에 같은 당의 후보로 선출된 한궈위 가오슝 시장에 대한 지원에 소극적이었고, 본업인 신베이 시장직의 업무에 주력했다. 이렇게 한궈위의 선거운동에 협조하지 않았던 것은 허우유이 본인이 롄잔파이고 한궈위는 반 롄잔파, 즉 국민당 내 계파가 달라서는 설이 강하다. 이후 2020년 1월의 선거에서 한 시장이 큰 표 차이로 낙선했는데, 역설적으로 선거에서 발을 빼고 있었던 허우유이가 당내 차기 주자로서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2024년 차기 대선에서 중국국민당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현재 라이칭더 부총통과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펼치고 있으며, 특히 당 내 후보군 에서는 80%가 넘는 후보 적합도로 독보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2022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할지 여부가 변수다.#
2021년 12월 18일에 열릴 4개 안건[7]이 걸린 2021년 대만 국민투표를 앞두고 국민당은 4개 모두 찬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했으나[8], 허우유이는 투표 기간 내내 관련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등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고, 국민당의 국민투표 전야제에도 참여하지 않았다.[9] 결국 국민투표에서 4개 안건이 모두 부결되었고, 그 때문에 국민당 지지자들에게 온갖 욕을 먹고 있다. 국민당의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3년 후의 대선 도전을 도모하기 위한 본인의 평판 관리 차원에서 해당 사안에 거리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2022년 11월 지방공직인원선거에서 신베이 시장직에 압도적인 득표를 얻어 재선되었고, 약 2년 앞으로 다가온 차기 총통 선거에 유력 후보로서의 입지를 재확인했다.[10]
2023년 5월 17일에 궈타이밍을 꺾고 제16대 총통 선거의 국민당 후보로 공식 지명되었다.# 하지만 후보로 공식 선출된 이후에는 여론조사에서 계속 부진을 면치 못하였고, 심지어 후보 지명 한달째를 맞은 6월 하순에는 제3 후보인 커원저 전 타이베이 시장에게도 밀리는 굴욕을 겪었다.
이로 인해 한때 후보 교체 가능성[11] 등이 언급되었으나 이후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면서 2위 자리를 탈환했고, 커원저와의 단일화 논의도 속도를 밟으면서 1위인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와의 격차도 좁혔으나 끝내 단일화가 무산되었고, 역전에는 실패한채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에 들어갔다.
그리고 2024년 1월 13일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그동안의 팽팽했던 여론조사 추세와는 달리 큰 표차로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에 패하였다. 특히 본인이 현직 시장으로 재임 중인 신베이시에서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에게 오히려 8만표 가량 뒤졌으며, 결국 당초 예상보다 크게 패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개표 4시간만인 밤 8시에는 직접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을 하였다.
총통 선거가 끝난 뒤 선거 운동을 위해 냈던 휴가를 종료하고 직무에 복귀했다. 여권 지지층에서 과거 한궈위 때와 마찬가지로 직무태만을 이유로 주민소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무시하고 우선 시정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4.1. 2022년 신베이시 영아 사망 사건
허우유이는 신베이 1기 시정 당시 2세 아이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논란이 되었다. 2022년 4월 14일, 신베이시 거주 소년이 코로나 19 감염 이후 혼수상태에 빠졌다. 병원으로 이송 되었지만, 치료 6일만에 사망했다. 시 보건소에 10차례 이상 연락했지만, 보건소에서는 전화를 한번도 받지 않았다. 이후 소방서에 연락하여 소방서 신고 40분, 첫 신고 1시간 40분 뒤에 구급차가 왔다. 당시 보건소 콜센터는 모든 직원이 통화중이라 연결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 사건 이후 유족 측은 소방서 측에 면담과 통화 내역 공개를 요청했지만 시 당국은 거절했다.시 당국의 책임 부실이 밝혀지면서 허우유이 시정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해졌다. 민진당 측에선 국민당 허우유이 시장을 향해 공세를 높여갔다. 그러나 오히려 민진당의 정치공세는 역풍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집권 민진당 정부가 방역에 실패해 심판여론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무리한 정치공세에 오히려 죽은 아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역풍이 일었다.
- 관련 문서 : 恩恩事件(중국어(번체) 위키피디아)
4.2. 신베이 공립유치원 마약 투여 사건
23년 6월 신베이 시 공립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마약인 페노바르비탈과 벤조디아제핀을 먹인 사실이 발각되어 논란이 되었다. 허우유이 시장 재임 중 일어 난 일이라 책임 공방이 일어나고 있다.한글기사 # #신베이 시 당국은 논란이 커지자 일단 시 소재 8개 병원에서 원아들에 대하여 무료로 진료를 받게 했다. # 해당 논란이 2024년 대만 총통 선거 중 일어난 일이라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에게도 영향이 가고 있다.
사건 발생 일주일 후 학부모들로부터 문의 전화와 우편이 쏟아졌으나, 시 당국으로부터는 어떠한 대답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모발검사에서는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
위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신베이지검에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관련자들을 불기소 처분하였으나 2023년 9월 대만고검에서 수사가 부실했던 것으로 판단하고 불기소 처분을 취소하고 신베이지검에 재수사를 지시했다.#
5. 기타
- 경찰 시절부터 줄곧 삭발한 것에 가까울 정도로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좋게 말해 강인한, 나쁘게 말하자면 위압적인 인상을 준다. 특히 민진당을 비롯해 과거 국민당 장기 집권기에 그와 악연이 많았을 대만 민주·독립 진영 인사들에게는 후자의 인상이 더 강할 듯.
- 비록 정난룽 체포 지휘 건 때문에 민진당 지지층에서 허우유이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꽤 있으나, 본성인 출신에다 중도적이고 온건한 성향으로 민진당 인사들과도 친한 편이며 중도층의 호감도가 높다. 또한 매우 청렴한 인물로 손꼽히는데, 민진당 측에서 "비리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며 이것저것 들추었으나 단 하나의 흠결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상술했듯이 경찰 관료 시절에는 천수이볜 정권에서도 중용됐고 민진당의 영입 제안을 받은 적도 있었다. 대신 이러한 타협적 성향 탓에 한궈위를 비롯한 국민당의 극성 지지층들은 그를 겉은 파란색인데 속은 녹색이라며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6.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18 | 대만 지방공직인원 선거 | 신베이시장 | | 1,165,130 (57.15%) | 당선 (1위) | 초선 |
2022 | 대만 지방공직인원 선거 | 1,152,555 (62.42%) | 재선 | |||
2024 | 제16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 | 중화민국 자유지구 | 4,671,021 (33.49%) | 낙선 (2위) |
7. 둘러보기
[1] 그의 아버지는 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 징집되어 비행기 제조 공장에서 일했으며, 그 경력으로 인해 일본의 패전 이후에는 중화민국군에 징집되어 국공내전에도 참전했다. 일본의 패전 이후 대만으로 귀환할 때 일본군 장교로 징집되었던 리덩후이와 같은 배를 타서 소소하게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2] 이때의 일로 훗날 2018년 그가 출마한 신베이 시장 선거에는 정난룽의 외동딸 정주메이가 허우유이의 경쟁 후보인 민진당 쑤전창 후보를 돕기도 했다. 정난룽의 미망인 예쥐란도 남편의 사후 민진당 소속으로 정계에 투신하여 입법의원, 행정원 부원장 등을 역임했다.[3] 한편 몇 년 후 그도 차량 화재로 유치원생 아들을 잃었다.[4] 특히 2006~2008년의 경정서장 시절 그의 나이는 불과 50대 초반이었고, 이는 대만 역사상 경정서장으로 임명된 최연소 기록이다.[5] 대만에서는 지방자치 단체장의 경우 재선까지만 허용하고 있어서, 주리룬의 3선은 불가능한 상태였다.[6] 사진 가운데는 같은 국민당 소속인 루슈옌 타이중 시장, 오른쪽은 민진당 소속인 정원찬 타오위안 시장. 당적은 다르지만 허우유이와 정원찬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7] 제4원전 재가동,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금지, 국민투표일을 대선과 연계, 타오위안 LNG 시설 건설 중지 및 이전[8] 민주진보당은 반대로 4개 모두 반대를 주장했다.[9] 이는 국민투표의 쟁점 중 하나인 제4원전이 자신이 시장으로 있는 신베이시 궁랴오 구에 위치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허우유이 본인의 성향 자체가 국민당에서는 가장 민진당과 가까운 중도파다.[10] 당의 지방선거 대승을 이끈 주리룬 주석이 잠재적인 경쟁 상대로 꼽힌다. 루슈옌 타이중시장도 출마할 것으로 보였으나 불출마를 선언했다.[11] 주리룬 주석이 거론된 것은 물론 심지어는 한궈위를 대타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