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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4:34:21

히라노 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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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f0003><colcolor=#ffffff> 히라노 아야
[ruby(平, ruby=ひら)][ruby(野, ruby=の)][ruby(綾, ruby=あや)] | Aya Hirano
파일:히라노 아야 프로필.jpg
본명 타니구치 아야 ([ruby(谷口, ruby=たにぐち)][ruby(綾, ruby=あや)])[1]
출생 1987년 10월 8일 ([age(1987-10-08)]세)
아이치현 나고야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성우, 배우, 가수
신체 157cm|O형
가족 어머니
소속사 스페이스 크래프트(2001~2011)
Grick(2011~2022.8)
프리랜서(2022.9~현재)
레이블 란티스(2006-2011. 05.)
UNIVERSAL SIGMA(현재)
활동 시기 배우|1998년~현재
성우|2001년~현재
가수|2006년~현재
취미 독서
학력 다마가와대학교 중퇴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Ameba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2.1. 성우 활동
2.1.1. 2000년대
2.1.1.1. 2006년: 스즈미야 하루히
2.1.2. 2010년대2.1.3. 2020년대
2.2. 결혼 후 이혼
3. 논란 및 사건 사고4. 여담
4.1. 안티팬
5. 출연작6. 음반
6.1. 싱글6.2.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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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성우, 가수, 배우. 2000년대 중반, 대표 배역인 스즈미야 하루히로 일본 매체에서 차세대 성우계 스타로 주목받은 바 있으며 2012년 이후로는 주로 뮤지컬 및 스토프레작 무대 배우로서 활동 중이다.[2]

2. 생애

2.1. 성우 활동

상당히 어린 나이에 스타 성우가 되었다. 당장 2010년대 들어서야 상당한 푸쉬와 인기를 과시하고 있는 카야노 아이가 그녀와 동갑, 히카사 요코가 그녀보다 2살 더 많고, 스자키 아야가 그녀보다 1살 더 많고, 코마츠 미카코가 그녀보다 1살 더 어리다.[3]

2.1.1. 2000년대

극단 소속 연극배우로 시작하여 2001년 "천사의 꼬리"를 통해 성우로 데뷔. 2002~2003년에는 요시다 유우키, 이토 아야카와 함께 Springs라는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첫 주 성적이 오리콘 차트 79위였을 정도로 실패했다. 모닝구 무스메 몰락과 함께 일본 여성 아이돌 자체가 몰락하던 시기라, 망한 아이돌만 수두룩하고 흥한 아이돌은 단 한 팀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후 한참 동안 무명으로 어렵게 지내며 간간이 작품에 출연했다. 샐러드 살 돈도 없어서 길거리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휴지를 받아 간장에 찍어 먹으며 허기를 달랜 적도 있었다고.
2.1.1.1. 2006년: 스즈미야 하루히
2006년에 방영된 메가히트작《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서 주인공스즈미야 하루히를 맡으며 갑자기 스타반열에 오르게 된다. 무엇보다도 전 아이돌 그룹 출신인 만큼 비주얼이 받쳐주는 성우인 점이 굉장한 시너지 효과가 난 것이기도 하다.

히라노의 인기의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얼굴이었다. 힙한 느낌의 비주얼에 노래까지 잘 불렀기 때문에 인기가 없을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러키☆스타 TV 애니메이션판이즈미 코나타[4] 역으로 굳히기에 성공, 인기작이었던 데스노트의 주역인 아마네 미사로도 캐스팅되어 승승장구하면서 2007년 12월 19일엔 홍보차 방한한 적도 있다. 그리하여 한때는 오타쿠 아이돌이라 칭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자랑했다. 잘 나가는 오덕작품은 다 패러디하는 TMA가 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이후로도 나름대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중 하나로 2007년에는 사진집을 내기도 했다. 제목이 히라노의 이름 첫 자의 이니셜을 그대로 따서 "H"라고 지은 덕에 일부에서는 "히라노 아야가 엣찌한 사진집을 냈다"는 소문이 돌았던 적도 있다. 그런 것처럼 활동영역은 넓어서 영역을 딱히 가리지 않는다. 특히 모에가쿠라는 어린이용 어학(?) 프로그램에서 성우 및 뽀미 언니 정도의 역할을 맡으면서 중소 방송국에 진출했다.

또한 간간이 각종 쇼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는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목소리를 사용하고 있어서 그게 히라노 아야의 원래 목소리인 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하지만 과거 무명시절의 생리대 광고나 아이돌 그룹 활동 당시의 모습을 보면 단순한 컨셉인 듯.

다만 급격히 뜬 반작용으로 안티도 많았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나 <러키☆스타>를 제외하면 다작을 하던 2006년부터 몇 년간의 연기[5]나 발매한 음반의 라이브 퀄리티가 대부분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고, 상품의 질적저하를 느낀 다른 성우 팬층이나 작품의 팬들이 하나 둘씩 안티로 돌아선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작을 그만둔 뒤에도 캐스팅된 시이나 타카시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 절대가련 칠드런의 주요 캐릭터 아카시 카오루의 캐스팅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작 무렵의 형편 없는 연기 정도는 아니었던 평가로 문제없이 넘어갔지만 아직도 논란의 중심이 될 소지는 충분히 남아 있다.

반대로 일부에서는 다작이 문제가 아니라 신인시절 쿄애니에서 연출한 하루히-코나타[6]를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연기 퀄리티가 안좋았다가 2008년대쯤부터 오히려 경력이 쌓이면서 연기력이 나아졌다는 반론의 주장도 있다. 아무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심이 시들해지고 성우 활동이 적어진 것도 있지만 초창기라면 몰라도 연기력으로 지적받는 일은 없어졌다.

사실 안티는 많아도 그만큼 관심도는 높아서 그 사례로 한번은 지인과 찍은 사진에서 왼손 약지에 반지를 낀 것이 발견되어 결혼설이 나도는 등 사소한 루머 하나로도 가십거리가 될 정도다. 그 탓인지는 몰라도 지나친 관심 때문에 부담이 되는지 가끔식 극도의 신경쇠약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교토 애니메이션이 제작 예정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소문에서부터, 심지어는 성우계를 은퇴한다는 소문까지 돌아서 수많은 오덕들의 간을 졸였다. 이는 뇌종양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심화되는 중이다.

2.1.2. 2010년대

2010년부터 소속사로부터 애니메이션 출연 금지령이 내려졌다. 다만 금지령이 떨어지기 전부터 참가했던 작품에는 나올 수 있다는 모양. 성흔의 퀘이사라든가 페어리 테일은 교체없이 나오고 있다.

2011년 5월 란티스와의 계약이 종료되면서 가수 활동도 접을 예정이라고 한다. 2011년 8월 20일로 소속사와의 전속 계약 종료가 확정되었다. 그리고 히라노 아야의 팬클럽 히라노쥬쿠도 활동을 접었고, 연회비는 남은 날짜에 비례해서 10월부터 환불하였다. 결국 스페이스크래프트를 퇴사하고 Grick으로 소속사를 옮기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바닝 계열이다.

2012년 1분기로 발표된 니세모노가타리부터는 오시노 시노부 역할이 사카모토 마아야로 변경되었다. 결국 한창 잘나갈 때인 2007년 언저리와 비교해서 2012년부터는 성우 쪽 일거리는 눈에 띄게 줄었다. 다작으로 형편없는 연기력을 피로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박 배역을 남길 정도로 재능이 있었으니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다 해도 안타깝게 느껴지는 점은 있다.

여성 성우치곤 목소리 변화폭은 좁으나 카랑카랑하고 목소리가 예쁘며 발성이 좋은 편. 대표 배역인 스즈미야 하루히는 물론 특히 루시 하트필리아는 이구동성으로 그녀의 연기력이 극찬받는 배역이다. 절친한 동료성우 쿠기미야 리에도 그녀의 루시 연기력을 칭찬했을 정도. 어찌보면 다작으로 형편없는 연기력을 선보였더라도 지속적인 푸쉬를 받았기에 연기력이 상승할 기회와 인기 성우로 자리잡을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아래 후술할 성우 개인이 벌인 논란거리들 덕에 입지를 잃어버린 게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 입장에서 아쉬울 뿐이다.

2019년 6월 23일 란티스 마츠리 2019에 스즈미야 하루히로 등장하였다. SOS단이 전부 모인 것은 대략 12년 만이다.

2.1.3. 2020년대

히라노 아야가 비중 있게 나온 작품은 기생수오른쪽이은혼이마이 노부메 정도며, 그 외에는 비중이 적은 조연 아님 단역이 다수를 차지하기에 전성기였던 2000년대 중후반과 커리어 차이가 많이 난다. 그래서 2010년대에 애니메이션 성덕이 된 사람들이 거론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또한 이상하니만큼 정상적인 캐릭터를 맡은 적이 드물어졌다. 단간론파 시리즈모나카라든가.

대신 연극 및 뮤지컬 배우로는 꾸준히 출연하고 있는 중. 블로그나 트위터를 보면 동료 성우들이 관람 와서 같이 찍은 사진을 가끔 볼 수 있다.

2022년 9월에 Grick에서 퇴사하고 프리랜서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2.2. 결혼 후 이혼

배우 타니구치 마사시결혼했다는 소식을 2024년 1월 3일에 전했다. 두 사람은 체인소 맨 무대판에서 마키마와 키시베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히라노 아야의 대표 배역과 타니구치의 성씨소속사를 상기해본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조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1년도 채 되지 않은 2024년 9월 11일, 트위터를 통해 협의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실 관계는 불분명하지만 주간문춘의 취재에 따르면 가정폭력이 원인이라고 한다.

3. 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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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담

4.1. 안티팬

시이나 헤키루 이후로 성우계에서 굴지의 안티를 가진 성우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래와 같다.

일본 위키백과의 히라노 아야 기사死ね(죽어)로 도배되기도 했다. 덕분에 심심하면 수정 제한이 걸려 있었다. 안티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는 항목. 다행히 2012년 들어서는 수정 제한이 걸리는 일이 줄어들었다.

2014년부터는 오른쪽이 등으로 연기력이 재평가 받았고, 인기가 사그라들자 냉정한 시선이 늘어 과한 성캐일치 등의 성덕들이 일으키는 문제들이 표면화되면서, SNS에서의 입방정 말고는 사실 그정도로 까일 만큼 잘못은 없지 않았나 하는 재평가 여론도 생겼다.

2022년 12월 16일, 트위터에서 애니 관련 활동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 "애니 일을 하면 아직도 살해 예고를 당해서"라고 밝혔다. 최근에도 경찰까지 불렀다는듯.

한편으로 히라노의 성우 활동량이 줄어들기 시작한 이후로는 사생활관련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성우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19] 그로 인해 2020년 이후로는 히라노 아야가 잘못한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최근 들어 이노우에 카즈히코, 노지마 켄지, 나미카와 다이스케[20], 스즈키 타츠히사, 사쿠라이 타카히로, 오카모토 노부히코, 할아버지뻘의 원로 성우인 후루야 토오루처럼 불륜과 여러 가지 논란을 일으키고도 자숙하는 선에서 끝내고 멀쩡히 활동 중인 남성 성우들은 물론 사이토 소우마, 우메하라 유이치로와 같이 선배 성우들을 뒷담화하거나 선배 여성우들을 상대로 성희롱을 남발하면서도 성우 활동에 타격이라곤 1도 없이 잘나가는 성우들이 많아지자 히라노는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재평가도 생기고 있다. 심지어 사소한 면으로 억까가 심하다 못해 제 마음대로 커리어를 이어가지 못하는 히라노와는 달리 상기된 성우들은 커리어에 타격도 별로 없는 파렴치하고 뻔뻔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히라노보다 더 죄질이 크고 사생활도 더러운 남성 성우들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봐주면서 왜 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히라노 같은 여성 성우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냐는 비판이 옛날보다 훨씬 많아졌다. [21]

그나마 위안인 건 팬들의 응원과 기대 속에서 뮤지컬 레이디 베스의 베스와 레베카의 이히, 체인소 맨마키마 역으로 출연한 것을 기점으로 그간 안티들의 만행 때문에 억울하게 욕을 먹어 커리어를 이어갈 수 없었던 히라노가 차근차근 성우계에 복귀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원피스의 비중 있는 조역 릴리스 역을 연기함에 이어 일본 순정 만화계의 전설적인 걸작 베르사이유의 장미 신 극장판에서 역사상의 주인공 마리 앙투아네트 역을 연기하게 되면서 활동 범위를 차차 넓히고 있으며 팬들도 히라노가 다시금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를 바라며 응원하고 있다.

5. 출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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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음반

6.1. 싱글

6.2. 앨범



[1] 혼인 후 공문서 상의 본명이 바뀌었다.[2] 뮤지컬 배우로써 인지도를 높힌 계기는 엘리으로 유명한 실베스터 르베이의 일본 토호 제작 뮤지컬작 레이디 베스의 타이틀롤과 2014년 토호판 모차르트에서 콘스탄체를 맡을 때부터이다.[3] 다만 카야노 아이, 히카사 요코, 스자키 아야, 코마츠 미카코는 히라노 아야보다 늦게 데뷔했다.[4] 드라마CD와 게임에서는 히로하시 료.[5] 캐릭터 송 포함.[6] 두 작품의 음향 연출 감독 츠루오카 요타가 특히 신인들의 연기를 빡세게 잡기로 유명하기도 했다.[7] 참고로 이 라디오의 게스트로 참석한 치하라 미노리는 5월 30일자 자신의 라디오에서 히라노의 한국어를 유창하다면서 칭찬하기도 했다.[8] 이 이야기는 콘서트에서도 했는데, れいめん(냉면)이 한국어로 뭐냐는 질문에 어떤 사람이 설렁탕이라고 한 걸 듣고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참사(?)가 있었다. 어쩌면 히라노 아야는 자기가 먹은 냉면이 설렁탕인 줄 알고 있을지도.[9] 고생물 학자들 사이에서 티라노사우루스의 유독 짧은 앞발의 용도가 무엇인가 오랜 기간 논쟁이 붙었는데, 교미할 때 자세 고정용이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10] 엘리자벳으로 유명한 그 르베이 맞다.[11] 엘리자베스 1세가 여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 팩션작이다.[12] 그런데 오디션으로 보고 합격해서 캐스트 된 것은 히라노 아야뿐이었다. 하나후사 마리는 연출감독 코이케 슈이치로가 제극에 데려와 르베이와 쿤체에게 재소개하여 캐스트 된 것 이다. 거기다 하나후사 마리는 일본 황실의 분가에서 태어난 딸이라 오디션을 보지 않아도 캐스트될 수 있는 위치였다. 히라노 아야는 오디션 당시 모차르트!의 콘스탄체의 넘버곡 '나는 예술가의 아내라(일: ダンスは止められない)'를 불러서 2014 모차르트의 콘스탄체로 먼저 캐스트 되었고, 그 다음 레이디 베스의 타이틀롤로 배역이 정해지게 된 것이다. 이유는 당시 레이디 베스의 넘버곡이 미완성이었기 때문이다.[13] 다카라즈카 가극단이나 극단 사계(시키, 四季)에 입단하고 거기서부터 활약해온 배우들을 말한다. 특히, 일본 뮤지컬이나 미디어계에서는 여성배우가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이면 대우가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며 오디션을 거치지 않고 특혜되듯이 캐스트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 때문에 토호 레미제라블의 팡틴이나 미스사이공의 킴이나 엘렌역 오디션을 보며 참여한 젠느출신자는 거의 없으며, 팡틴 역에 참여한 젠느 출신자는 굉장히 극소수이다.[14] 특히 극도의 다카라즈카 광신도들과 뮤지컬을 연극성이나 분위기로만 보는 극보수적인 이들에게 히라노 아야의 성우시절 필모를 빌미로 억지로 까는 경우가 상당했다. 주로 "소시민이 여왕이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비평이 있다던지.[15] 대표적인 예로 미야노 마모루, 박로미를 꼽을 수 있다. 이중 박로미는 2019년 토호 레미제라블 공연에 마담 테나르디에 역으로 출연했다.[16] 이노우에 요시오야마자키 이쿠사부로카토 카즈키 역시 성우일에 참여한게 2014년 이후이다.[17] 이 신장제한은 비엔나 정부와 VBW에게 권한이 있으며 정작 원작자인 르베이에겐 권한이 없다. 이유는 불명이나 르베이가 헝가리 출신이고, 여전히 생존중인 합스부르크 가문과 프란츠 요제프의 후손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실제로 합스부르크 가문은 현재도 오스트리아 정치계와 비엔나 예술계에 관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그 분가들도 다른 유럽국가에서 거주하고 있어서 영향력이 꽤 있는 편. 이런 엘리자벳을 포함한 여성캐스트의 지나친 제약을 주는 것 때문에 실베스터 르베이가 더이상 비엔나에서 뮤지컬을 작곡하지 않게 되었으며, 2006년 마리 앙투아네트 이후 일본 및 대한민국같은 아시아권에서 뮤지컬을 제작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르베이는 비엔나와 한국보다 일본에서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헝가리 출신 작곡가다.[18] 고소미를 피하기 위해 이름을 살짝 비틀었지만 첫 등장시 그녀가 회상하는 인생역정(하루히와 외모가 비슷한 캐릭터는 물론 남자친구와의 키스 사진 등이 나온다)을 살펴보면 히라노 아야 본인을 모델로 한 캐릭터가 맞다. 타무라 유카리, 호리에 유이, 탄게 사쿠라, 유카나, 토마츠 하루카 등의 쟁쟁한 성우들도 이름을 살짝 바꿔 나오며 히라노 아야처럼 푸쉬를 받았고 보다 더 잘 풀린 성우로 꼽히는 하나자와 카나히카사 요코 역시 등장한다. 이중 하나자와는 쓰레기같은 애니메이터 카와모리(카와모리 쇼지?)와 놀아나 임신당하고 복수를 꾀하기 위해 고용한 복수대행조직(하렘 엔드)을 통해 복수에 성공하지만, 애니메이터가 사망한 것을 안 높으신 분들이 고용한 사이코 오타쿠 탐정에 의해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다. 히카사 요코는 남편 오노 다이키(오노 다이스케?)에게 상습적으로 폭행당하는 불쌍한 여인으로 나온다.[19] 사실 이전에도 성우들의 사건사고나 구설수는 있기는 했지만, 인터넷이 활발하던 시대가 아니었고, 지금처럼 성우들이 얼굴을 노출하고 다니는 시대가 아니었다보니 사고를 쳐도 잘 걸리지 않거나 묻히는 시대였다고 보는 것이 맞다. 사실 성우들은 지금도 연예인들에 비하면 인지도가 낮아서 그로 인해 편의를 받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연예인이 욕먹을 발언을 하면 아예 기사화돼서 비판을 받는 것에 비하면, 성우들은 욕먹을 발언을 해도 크게 대두되지 않고 묻히는 경우가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20] 정작 나미카와는 히라노와 절친이다[21] 사실 모든 연예계 자체가 비슷한 사고를 쳐도 남자보다 여자에게 훨씬 엄격한 부분이 있는 편이기는 하지만, 성우계는 그것이 더욱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