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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7 18:03:38

노란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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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황색 리본을 한 여자 She Wore A Yellow Ribbon3. Going Home4.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5. 노란 손수건6. 국내의 사례7. 외국의 사례8. 여담9.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노란 리본.svg
🎗[1]

말 그대로 '노란색 리본'을 지칭하는 말이다.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의 관습으로 추정된다. 미국 남북 전쟁에서 영국의 청교도 군대가 노란리본을 전장에 묶어두곤 했다. 기사 민간전승에 의하여 재회, 혹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의미가 있다. 노란 손수건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옛 기성세대들에게는 아래의 팝송을 통해 이미 잘 알려진 상징이었다.

전장에 나간 군인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고 전사한 군인을 추모하는 용도로 널리 쓰였으며, 대한민국에서는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때 학생들의 귀환/추모를 바라는 용도로도 쓰였고 현재는 자살 방지 캠페인의 공식 로고로서도 사용되고 있다.

타다이마 오카에리와 정확히 일맥상통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상징 중 하나이다.

2. 황색 리본을 한 여자 She Wore A Yellow Ribbon

유럽권에선 약 4세기 전부터 재판이나 시험에 들게된 애인을 기다린다는 내용의 시와 노래인 'She Wore A Yellow Ribbon'(그녀는 노란 리본을 달았다네)가 존재해왔다. 이 노래가 청교도들을 통해 미국에 전파되고, 미 육군이 인시그니아등에 공식적으로 노란 리본이 사용되게 됨에 따라, 노란 리본의 의미는 점차 군인들의 무사생환과 연결되었으며, 19세기 말엽경에는 미육군 군가에 'She Wore A Yellow Ribbon'이라는 곡이 생길 정도였다.
존 포드의 1949년 영화인 황색 리본을 한 여자에 삽입된 버전. 가사가 없는 연주곡 버전.

3. Going Home

그후 점차 노란 리본의 의미는 넓어져 용서와 귀환에 대한 환영, 혹은 기다림 자체의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흔히 '집으로 돌아가는 전과자'의 내용을 담은 민담은 1961년 케년 J 스커더라는 교도관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글을 투고하며, 그 해 3월, 41페이지에서 44페이지에 이 이야기가 실리며 알려졌다.
감옥에서 복역을 마친 전과자가 집으로 가는 기차에 탄다. 오랜 복역 기간 동안 그는 그의 아내에게 편지로 자신을 잊고 살아가 달라고 부탁했지만, 몇년이 더 흘러 그가 가석방되자, 다시 아내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을 용서하고 다시 만나길 바란다면 그의 기찻길 옆 큰 사과나무에 하얀 손수건을 매어주고, 자신을 다시는 보기 싫다면 아무 것도 메어 놓지 말아 달라고 보냈다. 이런 사연을 알게된 옆자리 승객들은 마을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린다. 마침내 기차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 옆자리 승객은 조용히 '모든 나뭇가지마다 하얀 리본이 묶여져있어, 넌 정말 사랑받고 있구나'라고 말해준다. 기찻길 옆의 사과나무는 수없이 많은 하얀 리본으로 덮여 있었던 것이다. 전과자는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기차에서 내린다.

원본은 하얀 리본이었으나, 1971년 피트 해밀이 노란 리본과 오크나무, 그리고 버스가 나오며 승객 전체가 도와주기로 동의한 버전을 Going Home 이라는 제목으로 뉴욕 포스트에 투고하였고, 72년도에 리더스 다이제스트에도 투고한다. 결국 최종적으로 널리 알려진 버전은 피트 해밀 버전.#
나는 이 얘기를 뉴욕에서 만난 여성한테 처음 들었다. 그녀가 말하길 자기가 직접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책 제목은 잊었다든가, 진짜 자기 친구한테 있었던 일이라고 주장하는 지인이 해 주었다든가. 아마 이 얘기는 사람들의 집단적인 무의식 속에서 몇 년에 한 번씩 떠올라서, 이런저런 형태로 바뀌어가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도시전설 중 하나이지 싶다. 등장인물은 매번 바뀌지만, 그러나 메시지는 변함없다. 나는 이 얘기가, 정말로 언젠가 어디에선가 일어났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중략)
“감옥에 있을 때 나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소.” 빙고가 말했다. “감옥에 오래 갇혀있게 될 거라고 말이오. 아내가 용납할 수 없다면, 아이들이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라면, 그러면, 그냥 나를 잊어도 좋다고 말이오. 다 이해하겠다고 했소.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나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살라고 말이오. 아내는 정말로 좋은 여자니 얼마든지 새출발할 수 있을 거요. 나에게 편지같은 것도 쓸 필요 없다고 했소. 답장은 단 한 통도 오지 않았다오. 삼 년 반 동안.”
“그럼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집에 돌아가시는 거예요?”
“그렇다오.” 그는 부끄러운 듯 대답했다. “그러니까 지난 주에, 가석방이 확실해졌을 때, 아내에게 다시 편지를 썼소. 우리는 부른스윅에 살았는데, 거긴 잭슨빌 가기 바로 전이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큰 떡갈나무가 있소. 만약 아내가 나를 다시 받아줄 마음이 있다면, 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하나 매달아 달라고 썼소. 그러면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만일 아내가 나를 원하지 않는다면 다 상관없을 거요. 손수건이 없다면, 그러면 나는 이 버스를 타고 이대로 멀리 떠날 거요.”
(중략)
곧 부른스윅까지 십 마일, 곧 오 마일이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버스에 타고 있던 젊은이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야단법석이었다. 단 한 사람 빙고만 빼고.
빙고는 자리에 못박힌 듯 앉아 창 밖의 떡갈나무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나무는 노란 손수건으로 뒤덮여 있었다. 20개, 30개, 아니 몇백개가 넘는 손수건이 나무에 매달려 환영하듯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함성을 지르는 사이, 늙은 전과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의 앞문으로 나아갔다. 집에 돌아가기 위해.

이 내용에 영감을 받아 야마다 요지타카쿠라 켄바이쇼 치에코 주연으로 <행복의 노란 손수건>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한국에는 노란 손수건이라 하여 리더스 다이제스트나 여러 소소한 이야기를 엮어서 만든 교양서[2]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원복의 만화 사랑의 학교에도 '참나무에 빨간 리본을' 이라는 제목으로 나오는데, 이쪽은 머리와 꼬리를 손본 케이스[3]이며, 리본 색도 변했지만 사실 핵심이 되는 내용은 동일하다. 이쪽으로 먼저 접한 사람들은 리본 색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4.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한편 1973년 이 민담의 내용을 소재로 해서 만들어진 토니 올란도 앤드 던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라는 포크 음악도 굉장히 유명하다. 듣자마자 '아, 이 노래!'하게 될 굉장히 유명한 스탠다드 팝. 참고로 Ole은 오타가 아니라 Old의 구어체다.




한/영자막이 있는 애니메이션 버전.
I'm coming home I've done my time
형기를 마쳤으니 난 집으로 돌아간다오
Now I've got to know what is and isn't mine
이제 난 무엇이 내 것이고 무엇이 아닌지 알아야겠소
If you received my letter telling you I'd soon be free
내가 곧 석방될 거라는 편지를 그대가 받았다면,
Then you'll know just what to do if you still want me
그대가 아직 날 원한다면 어떤 일을 부탁했는지 알 거요
If you still want me
그대가 아직도 날 원한다면말요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오
It's been three long years, do you still want me?
벌써 삼 년이나 되었는데 아직 나를 원하시오?
If I don't see a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이 없다면,
I'll stay on the bus forget about us
난 버스에 그대로 남아 우리에 대해 모두 잊겠소
Put the blame on me
모두 내 잘못이라 여기겠소
If I don't se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만일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이 없다면 말이오

Bus driver please look for me
버스 기사님 나 대신 봐 주겠소?
'Cause I couldn't bear to see what I might see
내가 볼지도 모르는 것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소
I'm really still in prison and my love she holds the key
난 아직도 감옥에 갇혀있고 내 사랑 그녀가 열쇠를 가지고 있소
Simple yellow ribbon's what I need to set me free
노란 리본 단 하나면 난 풀려날 수 있을 거요
I wrote and told her please
그녀에게 부탁하는 편지를 썼소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오
It's been three long years, do you still want me?
벌써 삼 년이나 되었는데 아직 나를 원하시오?
If I don't see a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이 없다면,
I'll stay on the bus forget about us
난 버스에 그대로 남아 우리에 대해 모두 잊겠소
Put the blame on me
모두 내 잘못이라 여기겠소
If I don't se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만일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이 없다면

Now the whole damn bus is cheering
이제 망할 버스의 사람들이 다 환호를 지르고
And I can't believe I see
내 눈 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소
A hundred yellow ribbons round the old oak tree
오래된 떡갈나무엔 백 개의 노란 리본이 달려 있고
I'm coming home
난 집으로 돌아간다오

5. 노란 손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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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국내의 사례

6.1.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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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노란 리본을 애도와 무사귀환의 의미로 사용하자는 집단적인 행동이 일어났다. 사고 발생 당시에는 아직 '실종'이었기에 원래 의미 그대로 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한 것. 안타깝게도 사람들의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후 노란 리본은 세월호 침몰 사고를 추모하는 의미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 사실 이전인 2009년 5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 당시 한예종 비상대책위원회 학생들이 문화부의 부당한 감사 철회와 황지우 총장 등 징계 교직원의 복귀를 요구하며 교내 곳곳에 노란 리본 수천 개를 매달았던 적도 있다.

처음 만든 사람은 당시 통합진보당 당직자였던 조용신 진보당 공동 대표다. 참사 7주기 당시 인터뷰 2014년 4월 19일에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가 청계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는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연대하게 됐다고 한다. 사실상 ‘공식 디자이너’로 활동하게 됐다. 본래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4] 사고 직후 대학생들이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만든 노랑 나비가 화제가 된 것을 보고, 참사 후 첫 주말이 지나고 노란 리본을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이에 유방암을 예방하는 핑크 리본 캠페인의 리본 모양을 본땄고 노란색을 입혀 만들게 됐다. 일베에서 아래쪽을 뾰족하게 만들어 잘못된 의미로 쓰는 일이 발생하다 보니, 이를 막고자 리본 아래쪽을 넓게 만들기도 했다.[5]

세월호 참사 얼마 후부터 인터넷 상으로 한 동아리에서 제작한 노란 리본 이미지가 상당히 많이 퍼졌는데, 이 캠페인이 진행되자 이 이미지를 사용하는 데에 저작권료를 내야 한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이에 노란 리본을 제작한 동아리측은 이날 오후 누리집을 통해 "저희는 이 이미지는 모든 분들이 동참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모든 분들이 사용하라고 만든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저작권료 같은 건 절대 없고 사용하셔도 무관하다."라며 "지금 떠도는 저작권료 이야기는 모두 유언비어이니 마음내려놓고 사용해주셔도 된다."라고 밝혔다.# 이후 다양한 사람들이 제작한 노란 리본이 등장했다.

이후 강성태가 이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그 동아리는 ALT라는 공신 멘토, 멘티들이 상당수 소속되어 있는 동아리인데, 그 때문에 청와대에서 전화가 와서 구본석 학생은 정치적인 활동을 했으며 노란색은 노무현 대통령과 무슨 관계냐고 물었다고 한다. 어처구니가 없는 차에 검색어에 노란 리본이 떠오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그리고 그 후에, 노란 리본과 저작권 논란이 생겼다는 것에 경악했다고 한다. 즉 노란 리본의 저작권 논란 자체가 일종의 공작임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사고 후 며칠 간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노란 리본을 프로필로 내걸었었다. 현재까지도 4월 16일이 되면 그 날 하루 동안 프로필 사진을 노란 리본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노란 리본을 달며 추모하는 사람들을 비하하거나 공격하는 일을 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를 보이는 무개념 유저들도 있다. 반대로 일부 학교들에서 강제로 리본을 착용하게 하기도 하여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에 또 다시 역으로 리본을 강제로 착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학생에게 비아냥거리는 학교나 주위 어른들의 사례도 많았다. 착용할지 말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이다.

6.2. 이태원 압사 사고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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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추모

7. 외국의 사례

8. 여담

9. 관련 문서


[1] U+1F397 (Reminder Ribbon). Windows 7 이하의 OS, 안드로이드 5.0.2 버전 이하에는 이 문자가 보여지지 않는다.[2] 1970년대 오천석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수필을 번역해 외국 번역 수필집 사랑은 아름다워라를 낸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오천석이 지은 줄 알았다는 후문이 전해진다.[3] 범죄자가 어릿광대로 바뀌었다.[4] 중학교 때부터 미술 공부를 하고 싶었고, 부모님 몰래 전문대 산업디자인학과에 합격했다가 가로막힌 경험도 있었다고 한다. 고교시절엔 친구들의 이름 알파벳을 그라피트 형태로 써주기도 했다.[5] 조용신은 3주기까지 공식 포스터도 제작했다. 2015년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각기 다른 크기의 사진을 받아 영정 액자에 맞게 모두 같은 크기로 맞춰 달라는 요청을 받아 밤새 편집을 했다고. '모니터 속에선 살아있고 웃음기 있던 표정인 아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울컥했다. 괴롭고 잔인한 작업이었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