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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2 13:47:45

FC 바이에른 뮌헨/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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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레바뮌 | 분노의 영입 | 로베리
구단 시설 경기장 알리안츠 아레나 · 그륀발더 슈타디온 · FC 바이에른 캄푸스
훈련 시설 제베너 슈트라세
기타 뮌헨 연고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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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자취를 남긴 인물
1.1.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
1.1.1. 1930년대1.1.2. 1970년대1.1.3. 1980년대1.1.4. 1990년대1.1.5. 2000년대1.1.6. 2010년대
1.2. 기타 레전드
1.2.1. 1970년대1.2.2. 2000년대1.2.3. 2010년대
1.3. 거쳐간 인물
1.3.1. 1910년대1.3.2. 1920년대1.3.3. 1960년대1.3.4. 1970년대1.3.5. 1980년대1.3.6. 1990년대1.3.7. 2000년대1.3.8. 2010년대1.3.9. 2020년대1.3.10. 감독 및 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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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자취를 남긴 인물

FC 바이에른 뮌헨 XI
FW
지오반니 에우베르
FW
게르트 뮐러
FW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MF
로타어 마테우스
MF
슈테판 에펜베르크
MF
메멧 숄
DF
파울 브라이트너
DF
프란츠 베켄바워
DF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베크
DF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GK
제프 마이어

1.1.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

파일:attachment/FC 바이에른 뮌헨/관련 인물/fc-bayern-fan-world---hall-of-fame.jpg

파일:attachment/FC 바이에른 뮌헨/관련 인물/Hall_of_Fame_1_variant960x400.jpg

아래 항목의 선수들은 FC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등록된 선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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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Bayern München Hall Of F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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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Libero'
리베로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Der 'Kaiser'
황제

프란츠 베켄바워
Der 'Stratege'
전략가

파울 브라이트너
Der 'Chef'
지배자
슈테판 에펜베르크
Der 'Samba-Stürmer'
삼바 공격수
지오반니 에우베르
Der 'Erste Meister'
첫번째 챔피언

콘라트 하이트캄프
Der 'Macher'
창조자

울리 회네스
Der 'Titan'
거인

올리버 칸
Der 'Zuverlässige'
신뢰

필립 람
Der 'Titelsammler'
타이틀수집가

비셴테 리사라수
Die 'Katze von Anzing'
안칭의 고양이

제프 마이어
Der 'Leitwolf'
늑대사령관
로타어 마테우스
Der 'Bomber der Nation'
폭격기

게르트 뮐러
Der 'Bulle'
황소
프란츠 로트
Der 'Visionär'
공상가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Der 'Kaisers Leibwächter'
황제의 기사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베크
Der 'Rekordmeister'
기록챔피언

메멧 숄
Der 'Fußballgott'
축구의 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 ||

1.1.1. 1930년대

1.1.2. 1970년대

1.1.3. 1980년대

1.1.4. 1990년대

1.1.5. 2000년대

1.1.6. 2010년대

1.2. 기타 레전드

바이에른 소속으로 공식 경기 200경기 이상 출전, 혹은 단기간이더라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들만 기재할 것.

1.2.1. 1970년대

1.2.2. 2000년대

현재의 활약도와 위상으로 평가할 때, 2000년대 명예의 전당에 오를 선수들로 매우 유력한 선수들이다.

1.2.3. 2010년대

현재의 활약도와 위상으로 평가할 때, 2010년대 명예의 전당에 오를 선수들로 매우 유력한 선수들이다.

1.3. 거쳐간 인물

바이에른 데뷔 연도를 기준으로 현 선수단을 제외하고 위키에 등재한 선수들 위주로 가나다순 배열.

1.3.1. 1910년대

1.3.2. 1920년대

1.3.3. 1960년대

1.3.4. 1970년대

1.3.5. 1980년대

1.3.6. 1990년대

1.3.7. 2000년대

1.3.8. 2010년대

1.3.9. 2020년대

1.3.10. 감독 및 스태프



[1]UEFA 챔피언스 리그[2] A매치 최다 득점 기록은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기록한 71골로 이미 경신되었지만, 출장 횟수 대비 득점 기록에서는 가히 범접할 수 없는 기록이다.[3]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2012-13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당시 갑옷을 입고 빅이어를 들고 나온 노인이 바로 이 사람이다.[4] 86-87 유러피언컵에서는 4강에서의 경고누적으로 결승전에 출장하지 못하였다.[5] 근데 하필이면 마테우스 은퇴 바로 다음 시즌인 2000-01 시즌 바이에른은 UEFA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해버린다.[6] "루이스 피구? 그가 누구지? 잘 모르겠다.", "지네딘 지단산티아고 솔라리가 내 앞에서 개인기를 할 때, 그들의 다리를 분질러버리고 싶었다.", "베컴 - 그는 수염난 계집애 같았다. 놈의 따귀를 갈기고 싶었다." 등...[7] 칼루스헤 유스팀에서 데뷔해 바이에른으로 이적해 레전드로 성장했다는것도 나름 올리버 칸과 걸어온 길이 흡사하다. 포지션만 다를뿐.[8] 모두 더블 우승이었다.[9] 중원에 뒤른베르거가 뛰었고 파울 브라이트너는 처음에는 왼쪽 풀백이었다.[10] 수상에는 실패했다. 실력과 팀 성적으로는 발롱도르 수상에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나 투표가 기자단 + 감독 + 주장에 한해서 이루어진데다가 사상 초유의 투표 연장 사태가 일어나면서 사실상 인기 투표가 되어 버렸다. 비교적 객관성을 띄는 기자단 투표로만 진행했다면 리베리, 호날두, 메시 순으로 순위가 갈려 리베리가 수상했을 것이다. 리베리가 발롱도르를 강탈당한 2013년도의 발롱도르 수상 결과는 2010년도에 웨슬리 스네이더의 포디움 탈락과 함께 발롱도르 시상식 중 가장 큰 논란이 일어났던 사례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11] 임대조차 간 적없는 원클럽맨이다.[12] 특히 2012-13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에서 만난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그 당시 차비 에르난데스-안드레스 이니에스타-세르히오 부스케츠로 구성된 당시 최강의 중원으로 평가받은 세 얼간이 조합을 박살내면서 1, 2차전 합계 7:0으로 바르셀로나를 박살내면서 결승전에 진출한 경기가 가장 백미로 평가받는다.[13] 취소선으로 하그리브스를 비하하는 드립이 있었지만 사실 돌이켜보면 유통기한이 1년 정도 남은 선수를 맨유에 사기치다시피 팔아먹은 셈이다. 물론 하그리브스의 땡깡이 심했지만 하그리브스가 맨유, 맨시티에서 몇 년을 날린 것을 생각해 보면 유스 출신이라고 다이슬러처럼 몇 년을 안고 갔을 테니. 거기다 하그리브스의 이적료는 고스란히 리베리에게 투입됐다.유스가 아니고서는 발휘할 수 없는 깊은 충성심과 희생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