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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영화)

역대 키네마 준보 베스트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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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1위
제74회
(2001년)
제75회
(2002년)
제76회
(2003년)
얼굴 GO  황혼의 사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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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예고편3. 줄거리4. 원작소설과 영화의 차이 및 작품의 주제 해석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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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경선 따윈 내가 없애주마
(国境線なんか俺が消してやる)
"No soy Coreano, ni soy Japones, yo soy desarraigado."
(나는 한국인이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다. 나는 떠다니는 일개 부초다)[1]

2001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 나오키 상을 수상한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GO>를 영화로 각색했다.

감독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년)로 유명한 유키사다 이사오. 각본은 쿠도 칸쿠로.

주연은 쿠보즈카 요스케, 시바사키 코우, 오타케 시노부, 야마자키 츠토무 등.

2. 예고편


3. 줄거리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조선학교에 다니던 스기하라는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학교의 분위기가 싫어 일본 학교로 전학을 간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는 조센징이라고 시비를 거는 불량배들을 눕히고 일진이 되는데[2][3], 이 과정에서 야쿠자의 아들 카토를 건드리는 바람에 죽을 뻔한 위기에 빠졌다가[4], 카토와 친구가 되는 것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는 등 위태위태한 학창 시절을 보낸다.

스기하라의 아버지 히데요시는 파칭코를 운영하고, 어머니 미치코는 야키니쿠집에서 일한다.[5] 하와이에 가고 싶다며 조선적에서 한국 국적으로 옮기려고 한다. 아버지 쪽 가족은 스기하라 아버지의 동생이 재일교포 북송에 참가해 북한으로 넘어갔을 정도로 조선적 중에서도 북한을 지지하는 쪽인데, 국적 문제 때문에 조선적으로는 어디를 나가보기에도 힘든 상황이라 바꿀 수 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되도록이면 조선적을 가진 채로 한국을 갈 수는 없냐며 한국 대사관 직원과 싸우기도 한다.[6]

아버지가 고집하는 민족 정체성에 신물이 난 스기하라는 한국인이 되기로 하고 조선학교를 떠나 일본 학교에 온 것이었고, 일본인 여자애 사쿠라이와 처음 만나 교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민족학교 시절 친구들과의 교류는 그것대로 잘 이어오고 있었는데, 어느날 똑똑하고 공부하기를 좋아하던 스기하라의 민족학교 친구 정일이 치마저고리를 입은 민족학교 여학생을 건드리는 일본 불량배와 시비가 붙어 칼을 맞고 죽게 된다.

정일의 죽음을 접하고 방황하던 스기하라는 정일이 불량배를 상대로 보여준 용기를 떠올리며, 사쿠라이를 만나 관계를 맺기 전에 자신이 한국인임을 밝힌다. 그러자 사쿠라이는 어릴 적부터 주입받은 인종적 편견[7] 때문에 관계를 거부하고 스기하라를 떠난다.

아버지는 북한에 간 동생이 죽었다며 우는데, 택시를 타고 아버지와 돌아오던 스기하라는 언제까지 그런 것에 매달리고 살거냐며 짜증을 내고, 전직 프로 권투 선수 아버지와 스파링을 해 신나게 얻어맞는다.[8] 그리고는 "국적 따윈 옷 같은 것이다. 바꾸고 싶다면 바꾸면 그만인거다."며 민족 정체성에 대한 고집을 버린 아버지와[9] 약간은 화해하게 된 스기하라는 자신을 떠난 사쿠라이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맞이하게 된다.

4. 원작소설과 영화의 차이 및 작품의 주제 해석

참고로, 영화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원작 소설을 함께 읽는 것이 좋다. 소설과 영화의 표현 기술 차이 때문에 소설은 지문이나 내면 묘사 등을 통해 상세히 설명되지만 영화는 과감히 생략해버린 부분이 적지 않다. 사실 소설에서 설명하듯 영화에서 설명하려고 하면 상영 시간의 태반이 주인공의 독백으로 채워질지도 모르니 감독의 판단이 옳은 부분이긴 하다. 반대로 영화의 경우 영상과 대사를 통해 직관적으로 재미를 던져주는 부분이 많은 것이 장점.

다만, 영화에서 생략된 부분 때문에 작가의 주제의식을 명확히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위의 줄거리 설명 같은 경우도 소설판과 함께 보면 좀 다르게 읽히는 부분이 많으니 참조할 것.
이런 사례들을 보면 느낄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사실 부성애와,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외치지만 알게 모르게 아버지를 닮아가게 되는 부자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5. 여담


[1] 작중 등장하는 스페인어 문장으로, 이를 어떻게 번역할지도 흥미로운 문제이다. desarraigado 는 직역하면 '뿌리가 잘린(뽑힌)' 또는 '인연이나 유대가 끊어진' 이라는 뜻인데 정식 발매된 한국어판 원작 소설 및 영화에서는 이를 "나는 떠다니는 일개 부초다" 라고 멋을 부린 문장으로 의역해놓았다. 하지만 이하 문서 내용에서도 지적된 것처럼, 이는 지나치게 멋을 부린 문장, 즉 자신의 절망감과 고통을 어린이이도 알아들을만큼 쉽고 간단했다는데서 참맛이 나는 문장을 괜히 비유와 수식어를 사용하여 의역해서 명확함을 잃은 문장이 아니냐는 아쉬움이 있다. 또 아예 "yo soy desarraigado" 를 "나는 세계인이다"로 번역하려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지나친 오버센스로 의역으로 볼 범위도 벗어낫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결국 '한국인이 될 수도, 일본인이 될 수도 없었던' 재일 조선인 히데요시, 스기하라 부자(父子)의 고난과 방황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의 끝에서 찾아낸 답이 바로 '국적이란 그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그저 갈아입을 수 있는 옷과 같은 것이니, 거기에 집착하여 자신의 삶을 망가트리거나 타인을 편견으로 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이기 때문이다. 즉, 이야기 전체의 결론을 '세계인이 되자'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어느정도 말이 된다. 하지만 위의 문장은 부자의 아버지인 히데요시가 말한 문장으로, 아직 결론에 이르기 한참 전(히데요시의 젊은 시절로 추정), 한국인에도 일본인에도 속하지 못하는 재일 조선인으로써 그가 느낀 고뇌와 절망감을 '나는 뿌리가 잘렸다!', '나는 그 누구와도 유대가 끊어졌다!' 라고 토로하는 문장인 것이다. 이 문장 자체를 '그러니까 나는 세계인이 되었다!'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오버센스라 할 수 있다.[2] 이 과정에 대한 얘기도 나오는데 조선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차별과 이지메가 기본 옵션이기 때문에 악과 깡으로 뭉친 맹자들의 집합소 같은 곳이 되어있다고 한다. 즉 조선인 학교에서 일반고로 전학 온 주인공은 일진계의 엘리트로 일찌감치 찍혔다는 얘기.[3] 카토 이후로 계속해서 양아치들이 도전해오는데 이게 계속 이어지다 보니.. 스기하라는 일진들 사이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도전자들은 꼭 연장을 들고 오거나.. 심지어 칼까지 들고 오는 경우도 있는데 스기하라는 그들을 전부 격퇴했고, 스기하라의 승패를 놓고 도박판까지 벌어졌다.[4] 작중 스기하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카토는 '기념비적인' 첫 도전자다. 카토의 코를 뭉개줬는데 카토의 아버지는 야쿠자였다(..) 카토의 코는 수술을 해서 좀 더 보기 좋은 코가 되어 아무 일도 당하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고, 이후 절친이 되었다. 카토의 아버지는 사실 손가락이라도 잘라 받으려는 생각이었다(..)[5]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재일교포 1~2세대가 할 수 있던 몇 안되는 직업 중의 하나이다. 작중 묘사는 이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 수준.[6] 영화에서는 이 부분의 묘사가 바뀌었다. 아래 원작 소설과의 차이점 부분 서술 참조.[7] '아버지가 그랬는데.. 한국인은 피가 더럽대'라며 주인공 못지않게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8] 짤방 가드를 내리다니 멍청한 녀석의 원본이 바로 이 장면이다.[9] 히데요시가 스페인에라도 가보고 싶다며 흥얼거리는 노래가 그 예.[10] 일본에서 가능한 한 먼 곳에 가고 싶어서라고 한다. 한데, 히데요시가 '일본의 정 반대편은 아르헨티나인데 왜 하필 노르웨이냐'고 되묻자 '더운 건 싫어서'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히데요시는 그 대답을 듣고 스기하라가 철저히 이성적인 것을 알고 안심한다.(...)[11]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노르웨이로 가고 싶다는 스기하라의 발광은 '일본에서 가능한 한 먼 곳으로 가고 싶은데 더운 곳은 싫으니까 북유럽'이라거나 '예쁜 금발 아가씨'와 같이 별로 진지하지 못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고 정말 실행으로 옮기겠다고 치면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 국가의 이민 진입 난이도가 결코 낮지 않음도 생각해야 한다. 반면 히데요시는 (구체적인 정황까지는 묘사되지 않지만) (굳이 그 구절 하나만 일부러 달달 외워둔 것이 아니라면) 수십년 뒤에도 간단한 문장정도는 능숙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스페인어를 공부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 게다가 스페인어는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될 뿐 아니라 주 사용권 국가중에는 남미와 같이 상대적으로 이민 진입이 용이한 권역이 있다. (물론 이민을 위해 배워두면 가장 유리한 언어는 예나 지금이나 영어겠지만, 히데요시는 성향상 철저한 반미주의자일 것이 뻔하다는 점을 감안하자.) 즉 스기하라의 발광은 말 그대로 홧김에 소리 질러보는 발광일 가능성이 높은데 비해 젊은 시절의 히데요시는 훨씬 더 절박하고 진지하게 탈출을 고민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결국 작중 스기하라의 갈등과 고민은 젊은 시절의 히데요시가 겪은 고민과 갈등이기도 하고, 더욱 엄혹한 시대를 산 히데요시에게는 그 고민과 갈등이 더욱 절박했을 수도 있다는 것. 이 점에서 보면 "더운 건 싫어서" 라는 스기하라의 대답에 "철저히 이성적이군" 이라며 안심하는 히데요시의 반응 역시 단순한 안심이라기 보다는 비꼬는 것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고작 날씨에 대한 호불호 정도의 문제때문에 가장 현실성 있는 선택지를 배제하고 그보다 가능성이 떨어지는 선택지를 고르겠다고 하는 것을 보니 '이놈은 정말 탈출을 결심할 정도로 절박한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답답하고 스트레스 받으니까 악을 써 보는 것 뿐이구나. 이러다 기분 좀 풀리면 다시 조용해지겠구나' 라고 판단한 것이고,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상태에 몰려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안심감+하지만 더 고통스러운 시대를 겪어본 입장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놈이 그 궁리조차 저렇게 유치하고 어설픈 장난처럼 하는 모습을 보고 든 한심함 등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이 "철저히 이성적이군", 말하자면 '부정적인 의미로 미치지는 않았지만, 어설픈 계산을 버리고 미친듯이 덤벼들 각오도 하지 못했군' 이라는 식의 비아냥으로 나타난 것이라 해석할도 있는 것.[12] 이하, 따옴표 쳐 놓은 부분은 히데요시 역을 맡은 야마자키 배우가 어눌한 한국어로 말하는 부분이다.[13] 명계남이 특별출연.[14] 참고로 북한은 주체사상외에 모든 공산주의 사상은 모조리 박해한다.[15] 일본어 대사. 일본인들은 거의 알아듣기 힘든 수준. 끝의 이이가 거의 이-로 말하여진다. 직원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이기도 하다.[16] 한국인에게는 주민등록증 때문에 당연하고 무감각할 수 있지만, 아무 범죄에도 연관되지 않은 사람을 예비범죄자 취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인 반응이다.[17] 영화에서는 지문을 날인하는 동안 그 모습을 남들이 보지 못하게 가려주는 배려를 받은 선배가 난생 처음으로 남에게 고개를 숙이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고 고백한다.[18] 원작 소설에서는 처음 지문 등록을 하러 갈 때는 범죄자 취급이 기분 나빠서 일단 지문 등록 하고 나서 직원들을 좀 두들겨 패줄 생각을 하고 갔는데, 이미 다른 사람에게 얻어맞은 듯 얼굴에 멍이 들어 있으면서도 몇번씩이나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직원의 초라하고 지친 모습이나 그런 상황에서도 지문 찍는 모습을 가려주는 배려 등을 보고 주먹질을 할 마음은 싹 사라지고, 나오면서 평생 처음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게 되었다고 서술되었다. 다만 원작 내용을 보면 이것이 꼭 긍정적인 이해와 공감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빨리 달려서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겠다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고 살던 선배가 지문 날인 절차 마친 후 평생 처음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나 역시 붙잡히고 말았다'고 탄식하는 장면이 나온다. 즉 그들 개개인은 증오할 수 없는 소시민일지언정 명백하게 차별적인 사회 구조의 일부이고, 따라서 그들을 이해함으로써 조총련에서 주입받은 '쪽발이는 나쁘다' 식의 단순한 사고방식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보다 복잡하고 난해한 사회적 모순과 갈등에 사로잡히고 말았다는 것.[19] 역사적으로 보면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본작이 나온 2000년 전후만 하더라도 국가나 민족간의 갈등이 사라진 평화로운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감이 가득한 시대였기에 사쿠라이의 아버지와 같이 '입만 살아있는' 거만한 국제주의자들을 경멸하고 소시민 하나하나가 서로에게 공감함으로써 진정한 이해에 이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설득력있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2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2010년대 후반~2020년대의 일본을 보면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그 불만을 재일조선인과 같은 이질적 소수자에게 돌림으로써 넷우익이 성장하고, 이것이 일본의 우경화에 동력을 공급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사쿠라이의 아버지와 비슷한 상대적으로 좌파적 입장을 가진 기득권 기성세대들이 (그들 자신이 가진 모순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을 가로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20] 스기하라가 종종 냉랭해보일 정도로 쿨한 모습을 보여주는데도 신경쓰지 않고 친한척 달라붙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영화판의 묘사를 보면 동성애적 애정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21] 처음에는 아들의 코뼈를 부러트린 보복으로 손가락이라도 잘라받을 생각이었다고는 말했지만, 사죄나 보상의 의미로 손가락을 자르는 것은 야쿠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행태인데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는 재일조선인 출신이라고는 해도) 일반인 학생을 상대로 손가락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위험한 일이다. 차라리 치료비나 위자료 명목으로 거액을 요구하는 쪽이 야쿠자의 행태에 더 부합할 것이다. 작중 해당 내용 역시 정말 손가락을 자르라고 요구했다가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를 받고 그냥 넘어가겠다고 하는 자리에서 "원래 손가락이라도 잘라 받을 생각이었는데 한번 봐준다" 정도로 가볍게 한번 이야기하고 지나가는 것이었으므로, 이 부분은 다행히 자식의 치료(성형수술 포함)도 잘 끝났고, 피해자인 자식도 상대가 마음에 들어서 친하게 지내고 싶으니 보복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데다 사죄하러 온 상대가 사죄는 하면서도 비굴하게 굴지 않는 모습이 당당하게 보여 썩 마음에 들기도 하다는 등 여러 이유가 겹쳐 그냥 넘어가기로 마음먹은 상태에서 엄포섞인 농담삼아 한 말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수도 있다.[22] 재일'조'선인과 흔히 쓰이는 개의 이름을 언어유희로 엮어 스기하라를 카토가 키우는 개에 비유하여 조롱한 것.[23] 특히나 이 영화를 찍으면서 자신의 재일교포에 대한 생각이 확고해졌다고 한다.(...) 재일교포들을 동정했다가 자기도 재일교포들처럼 엄청난 차별에 시달릴 것 같아서?[24] 다만 혐한 발언이라는 것도 애매한 수준이고 그냥 독도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일반 일본인들 수준 정도이다.[25] 단 이후에 나온 야마모토 타로의 정치관에 입각한 분석과 그가 말한 내용에 입각해보면, 이 발언은 한국이 독도의 정당한 주인이다 는 의미의 발언이라기보다, 정말 진지하게 독도가 일본의 것이라고 생각하는거라면 외교적 압력이든 무력 시위든 제대로 행동할 것이지, 쓸데없이 한국의 신경이나 건드리는 발언 등으로 외교 마찰이나 빚지 말라는 식의 현실주의적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외국인에 대한 내국인과 동등한 수준의 복지를 주장한 적도 있어 전자의 의미가 아주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야마모토 타로 자신이 아무리 과거사에 대해 반성적이고, 설령 친한적인 입장을 가졌다 하더라도 일본인으로 일본 내에서 활동하는 이상 그 입장에서 일정한 한계를 넘기 어렵다는 점도 감안해줄 필요는 있다. 그저 개인도 아니고 배우나 정치가라는 대중의 시선에 항상 노출된 직업을 가진 인물이 자국의 공식적 입장을 완전히 부졍하고 "독도는 한국의 정당한 영토이다"고 말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주요 정당 중 과거사 반성 및 한국과의 관계 문제에 가장 전향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일본 공산당마저도 '독도는 한국의 영토이다'(=일본의 영토가 아니다)는 입장을 가진 것은 아니고, 오히려 공식적인 입장은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맞다'에 더 가깝다. 다만 과거사에 대한 반성 및 한국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독도를 한국에 양보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그 양보라는 것도 적극적으로 "사과의 의미로 독도의 한국 영유권을 인정한다"고 말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독도를 실질적으로 영유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굳이 영유권을 주장하여 한일관계를 경색시킬 필요가 없다는 쪽에 더 가깝다. 야마모토 다로의 입장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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