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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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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명목상 혼용 중인 로고
(HMD 글로벌과의 상표계약을 통해 출시되는 노키아 휴대폰에서는 현재도 이 로고가 사용되는 중이다.)
법인명 한글: 노키아 주식회사
정식: Nokia OYJ[1]
설립 1865년 5월 12일 ([age(1865-05-12)]주년)
국가
[[핀란드|]][[틀:국기|]][[틀:국기|]] (다국적 기업)
본사 위치 핀란드 에스포[2]
업종 통신 장비 제조
상장 거래소 헬싱키증권거래소: NOKIA
뉴욕증권거래소: NOK
시가총액 191억 유로 (2023년 11월)
자산 429억 4,000만 유로 (2020)
매출 249억 1,000만 유로 (2022년)
영업 이익 23억 1,800만 유로 (2022년)
고용인원 86,896명 (2022년)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
2.1. 제지업에서 통신장비 및 휴대폰 제조사업으로2.2. 심비안미고의 개발, 그러나 스마트폰에서의 몰락2.3. Windows Phone으로의 전환
2.3.1. 옹호론2.3.2. 비판론2.3.3. 의사결정 이후
2.4. 휴대 전화 단말기 부문 매각
2.4.1. 스티븐 엘롭 트로이 목마설
2.5. 통신장비 제조업종으로 전환
3. 한국과의 관계
3.1. 노키아 한국 공장
4. 제품5. Quickstep6. 기타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Connecting People
핀란드통신장비 제조 기업. 회사 이름은 설립 당시 본사가 위치했던 마을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마을은 탐페레 근교에 있다.

시류에 따라 주력 사업을 자주 변경해왔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모토로라를 꺾고 전세계 휴대폰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면서 핀란드 내에서 세계적 인지도를 가진 몇 안되는 기업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2010년대에 들어서 폭풍처럼 몰아닥친 스마트폰 열풍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매출과 점유율이 폭락하였고, 결국 휴대전화 사업부를 MS에 매각하며 한때 부동의 1위를 수성하던 모바일 시장에서 퇴출되게 되었다. 이 과정이 불과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노키아 휴대폰 사업의 실패는 '1등이라고 하더라도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면 결국 망하게 된다'(코닥)와 '영원한 1등은 없다'라는 교훈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노키아가 MS에 매각한 휴대전화 사업부분은 Windows Phone의 거듭된 실패 끝에 사실상 해체되었다. 다만 휴대전화 사업부문을 제외한 노키아 자체는, 과거에 쌓은 기술력을 발판삼아 B2B 통신장비 제조로 주력 업종을 변경하여 건재하고 있다.

2. 역사

2.1. 제지업에서 통신장비 및 휴대폰 제조사업으로

1858년 핀란드가 아직 독립하기 전이며, 제정 러시아의 일부로 로마노프 왕조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 광산기술자인 프레드릭 이데스탐의 두 번째 펄프 공장으로 설립되었다. 농노해방령이 시행될 즈음에 사업을 시작했으니 유구한 역사라 할 수 있다. 1871년에 노키아 주식회사(Nokia Aktiebolag)라는 회사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1904년 노키아에 수오멘 구미테흐다스(Suomen Gummitehdas Oy)라는 타이어, 고무장화 등을 만드는 고무 회사가 설립되었고, 이 두 회사와 수오멘 케이블 회사(Suomen Kaapelitehdas Oy)가 1967년에 합병하면서 현재의 노키아 법인이 설립되었다.

1960년대에 처음으로 전자 장비를 만들기 시작했지만[3] 그것이 주력 사업이 된 시점은 1980년대 문어발 사업 확장으로 파산 위기까지 몰리게 된 노키아가 1992년에 당시 계열사 사장이었던 요르마 올릴라를 그룹 전체의 CEO로 선임한 이후부터다. 오르마 욜릴라는 1996년까지 타이어 부서, 고무장화 부서, 제지 부서 등의 전자 장비 사업에 있어서 불필요한 사업부들을 각각 노키안 타이어, 노키안 풋웨어, 에시티 등으로 분리 매각시키면서 통신과 기술 분야 사업에 집중하게 했고, 1998년에 모토로라를 꺾으면서부터 이후 전세계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1위를 오랜 기간 동안 지켜 왔다. 본사를 에스포로 이전한 것도 이 시기이다. 이후 노키안 타이어와 노키안 풋웨어는 각각 기존의 타이어, 고무장화 사업을 이어나갔고, 에시티 또한 합병 전 제지공장 사업을 이어나갔다. 덕분에 북유럽에서는 지금도 노키안 타이어를 달고 다니는 자동차를 볼 수 있으며 노키안 고무장화도 핀란드에서 인기가 좋다. 1980년대 중반에 YLE, MTV와 합작하는 형태로 방송산업에 진출한적이 있었는데 1993년에 지분을 전부 청산하고 철수했다.

1998년 자금 30%를 출자하며 노키아벤처파트너스를 설립했다.

2000년 출시된 노키아 최대의 베스트셀러로 알려진 3310은 발에 차이는 게 3310일 정도로 굉장히 많이 생산되고 팔려 나갔으며, 그 무식한 내구성 때문에 절대 파괴되지 않는 물체로 왜곡하는 인터넷 이 있기도 했다.[4] 이외에도 저가임에도 불구하고 성능 좋은 휴대폰을 만들어왔다. 유명 보급형 스마트폰으로 1100 시리즈(무려 2억 5,000만대 이상 팔렸다.)와 C6과 C3가 있다.

이렇게 잘 나가는 동안에도 무엇보다 회사 자체가 투명도 높고 도덕적이기로 유명하다. 세금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고, 노키아가 잘 나갈 때는 핀란드를 먹여살린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노키아 CEO 요르마 올릴라는 핀란드의 경제 대통령이라 불렸을 정도. 그리고 본사 건물은 모두 다 비치는 유리로 되어 있다. 건물 디자인의 의미는 "모두가 지켜보고 있으니 똑바로 하겠다"였다.

Navteq를 인수해 지도 및 네비게이션 서비스인 Here Maps[5]를 서비스했으나, 2015년 Here 서비스 부문은 아우디, BMW, 다임러의 3사 컨소시움에 매각되었다.

2005년 노키아벤처파트너스를 블루런 벤처스로 독립시켰다.

2007년 독일지멘스와 각자의 통신장비 부문을 합병하여 조인트 벤처 형태로 '노키아 지멘스 네트웍스'를 설립하였고, 2011년에는 모토로라의 통신장비 부문을 인수하여 통신장비 부문의 몸집을 계속 키워나갔다. 2013년 노키아가 이 회사의 지멘스 지분을 전량 인수하면서 노키아 지멘스 네트웍스의 사명을 NSN(Nokia Solutions and Networks)으로 변경하였다. 이후 2014년에 다시 사명을 '노키아 네트웍스'로 바꿨다. 2016년에는 이 바닥의 또 다른 큰손인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했다. 덤으로 벨 연구소도 딸려왔다. 점점 통신장비에 있어서 에릭슨, 삼성전자와 함께 3강 체제를 확고히 하려는 모양이다. 2016년 매출은 1위 에릭슨에 근소하게 밀려 2위를 했다. 이후로도 마켓 쉐어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다가 2020년부터는 현상유지 상태에 접어들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휴대전화 사업부를 매각한 이후에는, 통신 기지국 등에 사용되는 장비를 납품하는 노키아 네트웍스[6]와 헬스케어가 주력 사업 부문이 되었다. 오래 전부터 쌓아 온 경험과 특허를 바탕으로 나름 잘 버티는 중이다. 화웨이같은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다.[7]

2.2. 심비안미고의 개발, 그러나 스마트폰에서의 몰락

파일:노키아 주식.jpg
2007년 아이폰 출시 이후 주가가 최대 90% 이상 폭락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면서부터 노키아에 위기가 찾아왔다. iPhone 1세대가 처음 출시될 즈음 노키아는 자사의 스마트폰용 OS인 심비안미고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계획에 따르면 중저가 폰에는 심비안이, 고가의 플래그십에는 미고를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계획이 심각하게 꼬이기 시작하면서 회사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심비안으로 iOS안드로이드와 경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미고는 계속해서 개발 일정이 밀리고 있었다. 결국 미고는 노키아 N9에 처음 사용된 것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사용되지 않았다. 노키아 미고의 개발배경 노키아 미고의 개발배경 보충설명

이런 고전이 계속되면서 2011년에 1분기에 매출 기준으로 애플에 밀렸다. 물론 영업이익으로는 넘사벽으로 발린다. 이쯤으로 끝나나 싶었는데 몇 주 후 삼성전자 실적이 발표되면서 삼성전자가 2등 자리를 가져갔다. 결국 3위로 추락. 다만 판매대수 기준으로는 부동의 1위였으나 2012년 1분기에서 사상 처음으로 판매량도 삼성에 밀렸다. 2007년 말에는 핀란드에서 넘사벽으로 시가총액 1위인 기업이었으나, 4년간 시가총액이 1/9로 줄어버렸다. 2012년 4월에 3위.#

재정적인 상황도 한동안 악화 일로에 있었다. 2011년 2분기에는 3억 6,800만 유로(5,57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노키아지멘스라는 자회사 때문에 2009년에 적자를 낸 것이다. 이처럼 본진이 털린 것은 15년만에 처음이다.#

구글이 전격적으로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노키아를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면서 날개없는 추락을 하던 노키아가 기적적인 주가 상승을 기록한 적도 있다.# 그러나 2012년 4월 24일 신용등급이 정크(투자부적격)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3년에 들어서도 사세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중. 2012년 4분기 실적이 좋아서 주가가 올랐는데(17%)#, 2013년 1분기 실적이 또다시 추락해서 주가는 다시 하락(-11%)#.

2020년대인 현재는 사실상 주식 시장에서도 잊혀진 기업으로 전락했다.

2.3. Windows Phone으로의 전환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2010년 초반부터 노키아에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가만 놔두면 회사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신임 CEO인 스티븐 엘롭은 미고 프로그램을 완전히 닫고 심비안을 차차 단종시켜 나가면서 2011년 제1플랫폼을 윈도우폰 7로 변경한다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 발표로 인해 노키아의 주가는 10% 가까이 폭락했다.

주가 폭락이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선택을 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가지 추측이 있다.

결국 노키아는 스테판 엘롭의 비유 그대로 불타오르는 두 플랫폼을 버리고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플랫폼으로 헤엄쳐 갈아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의문은 왜 안드로이드로 가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은 단순한데 당시 노키아는 윈도우폰과 안드로이드폰을 둘 다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노키아는 안드로이드의 채택을 위해 구글과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상황대로 안드로이드를 채택할 경우 이미 경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수많은 안드로이드 업체중 하나일 뿐이라는 입지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였고, 따라서 노키아는 구글로부터 안드로이드 생태계에서의 특권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기를 요구하게 된다.

물론 제조업체들을 최대한 공평하게 관리하면서 최대한 많은 업체들을 안드로이드 진영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입장에 있던 구글은 그러한 특별대우 요구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9] 노키아는 그러한 구글의 태도를 고압적인 것으로 판단하면서 협상은 결렬된다. 이는 공평무사한 경쟁환경이라는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존의 특권에 집착하려는 한때 잘 나가던 업체들이 곧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행태다.

2.3.1. 옹호론

여기에 대해서 노키아의 판단을 다음과 같이 옹호할 수 있다.
우선 안드로이드로 가는 게 그나마 가장 나은 선택처럼 보일 때즈음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개발하는 게 하루아침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스마트폰 OS는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시장에서 확연하게 안드로이드가 대세라고 보여질 때쯤에는 이미 버스를 놓친 격이었다는 것. 이미 당시 안드로이드 진영에는 경쟁사들이 득실대고 있었고, 문제는 그 중에서 제대로 된 흑자를 내고 있었던 것은 삼성밖에 없었다. 나머지 중 상당수는 적자를 내기에 바빴고,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간신히 본전치기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노키아의 입장에선 뒤늦게 안드로이드 진영에 참가해서 흑자를 내려면 과연 삼성에 가깝게 따라갈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었다.[10]

이미 안드로이드 점유율은 삼성이 장악했다는 점이 첫 번째 문제였고, 삼성은 SoC를 설계 가능하고 제조도 가능할 뿐더러 그 이외에도 플래시 메모리등도 생산하는 등, 스마트폰의 주요 부품 생산라인을 꽉 잡고 있다는 점과 각종 특허라는 강력한 이점이 있다. 거기다 노키아는 한때 휴대폰 시장 1등이었지만, 주력 생산폰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피처폰들인 반면, 스마트폰 경쟁은 값비싼 프리미엄 플래그십 경쟁으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노키아가 기존에 생산하던 휴대폰과는 차이가 있었다. 단순히 휴대폰 시장 1위로서의 노하우만으로 삼성과 대등한 수준의 경쟁하기에는 무리에 가까웠다. 그런 현실에서 당시에 노키아가 안드로이드 시장에 뛰어들었다간 나오는 결과는 간신히 본전치기를 엎치락뒤치락하는 어중간한 제조사로 남게 된다는 것이었다.

반면 윈도우 폰으로 간다는 것은 승산이 적지만 성공한다면 1인자로 다시 우뚝 설 수 있는 도박을 해 본 것이었다.[11]

2.3.2. 비판론

위에 적은 안드로이드 포기론에 대한 비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시기적으로 노키아의 의사 결정이 이뤄진 것은 2011년으로 당시는 아직 안드로이드가 완전한 대세로 자리잡기도 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제조업체 특유의 편중된 수익구조가 고착화되지도 않았고 삼성전자가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전이었다. 2011년에 출시된 갤럭시S2는 여전히 한국시장 정도에서만 아이폰의 대항마로서의 위치를 점했을 뿐이다. 즉 2011년에 이뤄진 노키아의 의사결정에 안드로이드 시장이 선점당해서 부득이하게 윈도우폰OS를 선택했다는 주장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둘째, 삼성전자 특유의 일관부품공급체계에 노키아가 대응할 수 없었다는 주장도 맞지 않는다. 당시만 해도 부품공급망 장악의 최강자였던 업체는 다름아닌 노키아 자신이었기 때문에 이 주장은 쉽게 논박된다.

셋째, 옹호론이 가지고 있는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결함은 방대한 연구개발 리소스를 가지고 있는 노키아의 입장에서는 안드로이드와 윈도우폰OS을 동시에 채택하는 것 자체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고 이러한 방대한 개발 리소스를 활용한 사업 다각화는 업계 1위급의 업체가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효과적인 개발 전략이다. 노키아로서는 어차피 미고와 심비안을 포기하게 되는 상황이었으므로 유휴인력은 얼마든지 공급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즉 업체즉 옹호론이 주장하는 바와 달리 안드로이드와 윈도우폰OS중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을 부득이하게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 같은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삼성전자는 당시 난립하던 모바일 OS 전부에 관심을 가지며 신제품은 한 번씩 다 내보기로 유명한 회사였고 그 와중에 자사 독자 OS까지 시장에 출시했다. 그리고 이 둘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HTC도 윈도우폰과 안드로이드 개발을 동시에 진행해 나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반론을 종합하면 이렇다. "노키아가 2011년에 부득이하게 윈도폰OS만을 선택해야만 했던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즉 노키아는 주변상황이 아닌 스스로의 판단으로 윈도폰 OS를 배타적으로 선택했고 안드로이드 OS를 버렸으며, 그리고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망하고 말았다."

2.3.3. 의사결정 이후

의사 결정과정이 어쨌든 결과적으로 노키아는 이미 시장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안드로이드 보단 윈도우로의 도박을 감행하는 길을 택했고, 안드로이드를 배제할 경우 남은 선택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폰 플랫폼뿐으로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인센티브를 이용하여 협력업체와의 협상을 하는 데에는 익숙했던 상황인지라 노키아에게 Tier-0으로서의 특권과 인센티브를 주는데 동의하게 되었으며 결국 이는 노키아-마이크로소프트 협력관계 체결에서 그대로 반영된다.

여기에서 세간의 두 가지 의문, 즉 왜 안드로이드를 쓰지 않았는가와 왜 안드로이드와 윈도폰을 동시에 채택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이 해소될 수 있는데 노키아가 얻으려고 했던 특권적 지위에 대한 요구를 노키아가 스스로 접지 않는 이상 노키아가 안드로이드를 선택할 리가 없었는데 비해 윈도폰은 그것을 수용했다는 것이 그 대답. 이 질문은 오히려 왜 노키아가 굳이 특권적인 지위를 구글에게 요구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가로 바꾸는 게 타당하다. 물론 그 이유가 명확히 제시된 적은 없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력관계 체결 협상에 성공한 후 안드로이드에 대한 경쟁의식을 숨기지 않았던 엘롭의 발언이나 엘롭 이전에도 심비안이나 미고 등에서 보여줬던 자체 OS플랫폼에 대한 노키아의 열망 등을 고려하면 노키아가 필요했던 건 확실히 자기 편이 되 줄 OS플랫폼이었지 안드로이드 같이 제조사 중립적인 OS는 아니라는 추측은 가능할 듯하다. 특히 미고나 심비안의 후속이라는 감각으로 접근하면 예전 만큼의 주도권은 쥐고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의사결정이 흘러가면서 방향전환이,더욱 힘들어졌다.[12]

그리고 그 도박은 대실패로 이어진다.

파일:external/static.guim.co.uk/ea5daa1f-c855-4727-abdc-d5aadeccf3dc-bestSizeAvailable.png

다만 윈도우폰8을 탑재한 첫번째 스마트폰인 Lumia 920Lumia 820이 나오면서 어느정도 판매량에 희망이 보이는 상황까지는 도달했으며, 스마트폰 라인업을 전적으로 윈도우폰에만 의존하는 노키아로서는 이는 희망적인 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초반에는 폭발적인 판매량을 보여준 920이 이내 차트에서 사라졌으나, 오히려 현재 노키아를 이끄는 핸드폰은 제3세계 국가에 공급하고 있는 Lumia 520Lumia 620 및 그 변형 모델들이다.[13] 2013년 2분기에는 이들이 심비안을 사용하는 초저가 라인업인 Asha의 판매량을 넘어섰으며, 이에 따라 윈도우폰 역시 블랙베리를 넘어 시장 3위 OS로 자리잡았다.

현재 노키아는 2013년 2분기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대규모 구조조정에 힘입어 상황이 1년 전보다는 안정되어 있다.[14] 그리고 윈도우폰의 시장점유율도 빠르지는 않지만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미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에서 others로 취급받는[15] 노키아로서는 윈도우폰에서 잭팟을 터뜨리지 않는 이상 예전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은 요원해 보였다.

2.4. 휴대 전화 단말기 부문 매각

현지 시간으로 2013년 9월 2일 노키아는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단말기 사업 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10년 간 노키아의 특정 분야 특허를 사용할 수도 있다. MS가 10년간 노키아 상표를 자사 휴대전화에 사용할 수 있으나 스마트폰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의 노키아 아샤는 볼 수 있으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노키아 루미아는 볼 수 없으며, 이에 2014년 10월에 마이크로소프트 루미아로 이름을 바꾸었다. 노키아 회사 자체는 2015년 12월 31일까지 어떠한 휴대용 기기도 노키아 이름으로 만들 수 없다.

노키아의 몇 몇 이사들이 MS에 합류하고, 엘롭 (전) 사장도 MS 기기부문의 수장이 된다. 정부 당국의 제재가 없는 한 인수 절차는 2014년 초에 마무리될 에정이다. 당문간 핀란드인이 노키아 본사의 임시 CEO를 맡는다.

매각 이후 노키아는 아래 사업에 집중할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노키아 모바일사업부 인수로 인해 노키아의 핸드폰 스토리는 종말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키아가 인수 발표 후 자사 행사인 '노키아 월드'의 초대장 을 공개했다. 초대장에 적힌 날짜는 2013년 10월 22일 이고 장소는 아부다비로 노키아 휴대폰 사업부문의 MS인수 발표는 2013년 9월 3일이지만 인수가 완료되는 시점은 2014년 상반기다. 즉, 그 이전에는 노키아 스마트폰은 그대로 노키아의 상표로 나간다는 뜻이다.

한편 스티븐 엘롭 노키아 최고경영자가 휴대폰 사업부를 매각 후 1,880만유로(약 270억원)의 퇴직 성과급을 받았다. 핀란드 총리와 재무장관도 이례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등 핀란드내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노키아에서도 이것을 의식했는지 엘롭에게 퇴직을 반환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그 이유가 부인과 이혼 소송 중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핀란드 법에서는 이혼 과정중의 재산을 기준으로 상대편에게 절반을 줘야한다. 그리고 노키아 이사회의 전 구성원에 따르면, 엘롭에게 지급하는 마지막 지급은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국제간부에 지급하는 것보다 훨씬 작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수후인 2014년 2월 24일, 노키아가 안드로이드폰을 내놓았다. 노키아 X, 노키아 X+ 노키아 XL 이 세개. 관련내용 다만 이 안드로이드는 순정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포크트 안드로이드, 즉, AOSP 기반의 커스텀 OS다. 하지만 이것도 노키아 X2를 끝으로 안드로이드 제품 생산을 중단한다. 노키아X 생산 중단 기사

하지만 불행히도 루머에서 새로운 루미아 시리즈 부터는 마이크로소프트 로고가 박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2014년 10월 22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노키아 브랜드를 폐기하겠다고 선언한 것. 마이크로소프트 루미아라는 이름을 달 거라고.

Nokia Mobile 사업부에서 MS로 고용승계된 26,000명은, 각각 2014년 7월에 18,000명이 감원되고, 2015년 7월에 7,800명이 감원됨으로써 결국 200명만 남게 되었다. 구글의 Android base platform 제품인 Nexus처럼, Windows base platform을 만들려는 계획이라면 200명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 듯 싶다. 결국 Windows phone의 미래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인듯. Windows phone의 시장점유율은 2013년의 3.4%를 정점으로 2015년엔 2.6%까지 내려왔다.#

2016년에 안드로이드 폰으로 복귀한다고 한다.#

피처폰 사업을 폭스콘에게 매각했다.#

노키아의 단말기 부문이 매각되면서 오히려 핀란드 경제에는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는 말도 있다. # 노키아에 쏟아붓던 공적 지원자금이 중소기업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노키아에서 쏟아져나온 고급 인력들이 그러한 중소기업들에 가담하면서 엄청난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중소기업의 수익률이 크게 높아졌고 고용률도 오히려 높아졌다고 한다. 슈퍼셀 같은 신규 스타트업들이 나타난 것이 한 사례로 꼽힌다. 다만 노키아의 우수인력들이 중소기업으로 간 덕도 있긴 하지만 핀란드의 게임산업의 규모도 고용인력도 노키아의 리즈 시절에 이미 크게 성장 중이었다. 게다가 원래 노키아가 아웃소싱을 많이 해서 핀란드 국내 고용 인력, 국내 하청업체의 낙수효과가 기업의 규모 대비 낮았다는 점도 고려대상이다. GDP가 많이 회복되였다고 해도 수직 상승한 재정적자, 질 낮은 일자리 비율의 상승 등을 고려했을 때 핀란드 경제는 여전히 노키아의 리즈 시절에 비해서는 나쁘다. 모 교수는 노키아의 사례를 들어 한국의 대기업도 얼른 망해야한다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는 핀란드가 위기를 잘 극복해서 그 이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이 회복했으니 우리도 위기를 자처하자고 주장하는 꼴이다.[17]

그러나 현실은 노키아의 몰락으로 엄청난 수의 기술자가 실업자로 전락했고 핀란드 경제에도 크나큰 타격이 되었다는 모양이다. 기사 심지어 핀란드가 그리스 다음 타자가 될 거라는 기사가 나올 지경이었다. # 노키아의 감원 규모에 비교해볼 때 슈퍼셀 같은 백수십 명 규모의 스타트업들이 이 경제적 충격을 온전히 완충하기는 어려웠을 수 있다. 또한 "대기업이 망한 후 인재들이 타국 대기업으로 가면 가지 왜 중소기업으로 가겠느냐, 해외 대기업들이 매출 올릴 기회인데 그걸 중소기업들에게 빼앗기도록 그냥 두겠느냐"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노키아의 몰락 이후 핀란드의 대 러시아 경제 의존도가 상당히 높아졌다고 한다. 1인당 GDP는 많이 회복되었지만 회복 과정에서 국가재정이 크게 악화하였고 국제경쟁력도 악화하였다. 지금도 노키아의 휴대전화기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이것은 HMD 글로벌이 개발하고 폭스콘 계열사인 FIH 모바일이 제조하여 계약에 따라 노키아의 상표를 부착한 것이다.

2.4.1. 스티븐 엘롭 트로이 목마설

스티븐 엘롭은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으로 어도비에서 근무하던 것을 MS 최고 경영자 스티브 발머가 2008년 직접 스카우트 한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이후 2010년에 노키아의 CEO가 된후 첫 개발자 회의에서 한 개발자가 "당신 혹시 마이크로소프트가 보낸 트로이목마 아니냐?"라고 물은 데서 그가 혹시 MS가 보낸 트로이 목마가 아닌가 하는 설이 나오게 되었다.

이에 엘롭은 "확실하게 말하겠는데, 아니다. 경영진 모두 의사결정에 관여했다. 그런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곳은 이사회밖에 없다" 라고 대답했다.

엘롭의 경영적인 판단은 결국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야만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사회는 엘롭이 전횡을 일삼을 경우 충분히 그것을 막을 위치에 있었다.

무엇보다도 엘롭의 마이크로소프트 근무 경력은 위에도 지적된 바와 같이 2년 정도에 불과하여 발머 같은 골수 마이크로소프트 임원과는 거리가 멀다. 즉 엘롭이 트로이의 목마를 자처할 만큼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연줄이 강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노키아 인수가 끝나가자 엘롭은 마이크로소프트로 복귀했다. 그래도 최근 적자 내던 암덩어리 휴대폰 부분을 매각한 뒤 노키아가 순식간에 흑자전환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스티븐 엘롭은 2015년 6월 부로 마이크로소프트를 퇴사한다고 밝혔다.#

2.5. 통신장비 제조업종으로 전환

기존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휴대폰 제조 부문을 매각한 이후로는 통신 장비를 제조하는 것이 주력 사업이 되었다. 2016년에는 자사 전체 매출 규모와 맞먹는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하여 포트폴리오를 강화하였다. 현재 노키아 네트웍스는 LTE/5G RAN 장비부터 IP 코어 라우터 장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통신장비 제품을 제공하고 있으며, 한국 국내에도 노키아와 알카텔-루슨트의 통신장비가 다수 도입되어 있다.

그 외에도 방대한 기술특허를 기반으로 특허 라이센싱 사업도 진행한다. 삼성전자, Apple, 화웨이를 비롯한 여러 유명 기술 기업들이 노키아와 특허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있다.

이처럼 B2B 시장에 집중하다 보니 회사는 건재하지만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접할 일이 드물어졌는데, 왕년에 B2C로도 잘 알려진 브랜드를 놀리기 아까웠는지, 최근에는 브랜드 라이센싱 사업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휴대전화로, 2017년부터 전직 노키아 직원들이 설립한 회사 HMD 글로벌에서 휴대폰과 태블릿에 대한 노키아 상표 독점 사용권을 얻어 노키아 브랜드 스마트폰과 피처폰을 제작하고 있다. 그 외에도 노트북, TV, 셋톱박스, 무선 이어폰, 보조 배터리부터 에어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자제품에 노키아 로고가 새겨져서 판매되고 있다. #
파일:노키아 로고.svg 파일:nokia_new_logo.svg
기존 로고 (1967-2023) 신 로고 (2023-)
2023년 2월, 50년 이상 사용해 왔던 기존 로고를 교체하였다. 디자인은 삼성, SK, 맥도날드, 스타벅스 등 유명 기업의 리브랜딩을 맡았던 미국 Lippincott사에서 담당하였으며, 네트워크, 디지털 기술을 혁신하는 B2B 기업으로서의 노키아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을 리브랜딩의 이유로 꼽았다. 다만 새 로고에 대한 인터넷상의 여론은 그닥 좋지 않았으며, 노키아 브랜드를 라이센싱하는 B2C 제품들은 모두 구 로고를 계속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3. 한국과의 관계


한국 시장에 진출을 못 하고 있다가 2001년 폴더폰 두 모델과 바폰[18]을 한국내 휴대폰 제조회사인 텔슨전자에 ODM 방식으로 출시를 했지만 국내업체의 견제와 뒤떨어진 기능과 잔고장 그리고 잦은 버그 때문에 신통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노키아가 주로 먹고 있는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시장은 GSM 방식을 사용하고 있고 노키아의 단말기 라인업 역시 이 쪽으로 특화되어 있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세계구 규모로 치면 듣보잡CDMA를 사용하고 있으니 노키아 입장에서는 별도로 CDMA 단말기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19]

즉, 돈들여서 CDMA 단말기 만들어봤자 한국과 미국 일부시장 외에는 팔 수가 없었기 때문에, 게다가 노키아는 GSM의 개발에 깊숙이 관여했기에 GSM의 경쟁 상대인 CDMA용 단말기 제작 및 판매에 적극적일 리가 없었다.[20] 결국 텔슨전자에 하청을 맡기고 마땅한 A/S센터를 마련하지 않은 것이 한국시장에서 망하게 된 주 이유였다. 결국 제품과 사후 서비스 모두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삼성전자LG전자그리고 연구소까지 차려 잘나갔던 모토로라와 합작 형태로 진출한 카시오&히타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철수해 버렸다. 그리고 "외산이라고 좋은 거 아님, 요즘은 오히려 국산과 모토로라, 카시오&히타치가 넘사벽임"이라는 이미지만 심어주었다.

그 뒤로 이동통신 시장이 유럽과 동일한 방식인 WCDMA로 흘러가면서 한국내에서 계속해서 노키아 폰 출시 떡밥이 나돌기 시작하지만, 역시나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한국 정부의 WIPI 탑재 의무화 장벽 탓에 결국 진출 포기.[21]

출시가 안되던 중, 정부가 WIPI 탑재 의무화를 해제하면서 2009년 4월에 6210s "내비게이터"를 KTF를 통해 출시하면서 한국시장에 재진출을 선언했다. 하지만 정작 한국 법 때문에 간판기능인 내비게이션 기능을 사용하기 위한 한국 지도가 빠진 채로 출시. 해외로 들고 나가거나 (크랙된)가민맵[22]을 이용하면 길 안내용으로 쓸 수 있다. 노키아가 위치정보사업자 인증을 받는 기적이 일어났으나 한국내서비스는 무산되었다.

어쨌든 심비안 기반의 스마트폰이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되었다는 점에 의의를 둘 수 있다. 원래는 KTF 외에 SKT로도 납품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SKT가 블랙베리 볼드를 내놓으면서 노키아 제품 출시를 포기하는 바람에 무산. 하지만 6210s 자체는 실패한 모델로는 볼 수 없는 게, 노키아가 한국내에 내놓은 물량 4만 5천대를 전부 팔아치웠다. 물론 대부분 버스폰으로 나간 것이기는 하지만 노키아는 출고가는 제대로 받고 내놨으니 손해는 보지 않은 셈이었다. 이후로 5800 익스프레스 뮤직을 출시, '가난한 자의 아이폰'이라는 별명과 함께 10만대 가량 판매하였으며 2010년 5월 25일 X6을 출시했다. N8은 SKT, KT를 통해 판매할 예정이라고 했었지만 SKT는 소식이 없고 KT같은 경우 '노키아 코리아'에서 물량 공급을 2011년 4월쯤 되어야지 가능하다고 하는 바람에 KT에서 '시장성이 없다'라고 판단하여 출시가 취소되었다.[23]

이로 인해 N8출시와 함께 오픈되기로 했던 노키아의 무료 내비게이션 시스템인 '오비맵', 노키아의 앱 스토어인 '오비스토어'의 오픈역시 무산되었다.

루미아 710 KT를 통해서 출시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 이후 2013년도까지 단 한대의 루미아도 추가 출시 하지 않았다.

2013년 4월 피처폰 아샤(asha)를 한국내 자급제 용이나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용으로 출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기사 인터넷이 가능하고 일부 EA게임도 되고 페이스북, 트위터를 사용할수 있다. 게다가 라인(메신저), 와츠앱을 사용할수 있다. 가격은 해외에서는 약 10만원 초반으로 알려저 있다. 본격 편의점폰! 출시가 확정되면 프리피아 2nd가 경쟁력에서 밀려서 끝날 것으로 보이나 노키아가 한국 내 출시를 조용히 포기했다.

2015년 기준, 현재 대치동 오토웨이타워[24]에 노키아 한국지사가 남아있으나 노키아 한국어 지원 페이지로 접속하면 글로벌 페이지로 연결되는 것[25]KT테크 AS센터[26]에서 더이상 노키아 수리용 부품이 공급되지 않는다고 밝힌 정황상, 노키아 TMC를 포함해서 노키아 코리아는 현재 Customer Care 부문을 정리하면서 소비자용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NSN B2B Support와 위치정보사업자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부서만 남아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LG U+ 2.6Ghz LTE용으로 화웨이제 장비 대신 들어온 NSN제 장비도 이곳에서 유지보수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노키아가 뜬금없게도 한국에 R&D센터를 열었다. 이미 준비 단계에서부터 국내의 관련 연구단체들과 협력하면서 적극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통신기기 제조사로서의 노키아는 한국 시장을 완벽히 포기하진 않은듯하다. 기사 마지막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U+와의 관계 역시 확인사살이나 다름없다.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볼 일이다.

2015년 8월 24일에는 공정위MS 한국 법인의 노키아 단말기 부문 인수를 조건을 달아 최종 승인했다. 인수 공식 발표이후에도 단말기 국내 출시 소식이 없었던 이유 중에 이런 것도 있었던 듯. 그러나 2016년 1월까지도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휴대폰을 포함해서 자사 Mobile Device의 한국 내 출시 관련 보도자료를 단 한 건도 내지 않은 상태다. 이는 2014년 7월 이후의 통신 3 완전 호환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전파인증의 강화로 인해서[27] VoLTE를 지원하지 않는 외산 폰들의 한국 정식 발매가 불가능해지게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마이크로소프트 모바일이 오로지 한국[28]만을 위해서 Windows 10에서 VoLTE를 지원하게 만들 의지는 없어서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다른 해외의 디바이스 제조업체도 같은 사정인데 2016년 1월 현재, Lenovo레노버 PHAB Plus는 이 문제로 인해서 한국에 발매되었다가 다시 발매가 취소되었고 소니엑스페리아 Z5도 한국 발매 계획이 있었으나 이 문제로 인해서 발매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태다.

3.1. 노키아 한국 공장

노키아 TMC 문서 참조.

4. 제품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노키아/휴대전화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Nokia Tune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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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Quick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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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 제품에 탑재되는 안드로이드 런처.

6. 기타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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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화웨이 로고.svg X X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일부, 강원도 일부, 경기도 북부, 경기도 남부 일부[9]
[ 각주 펼치기 · 접기 ]

[1] 성남시, 광주시[2] 부산, 울산 제외[3] 5G 장비 전부 삼성장비를 사용하고 LTE 장비는 노키아 장비를 사용[4] 5G 장비 전부 삼성장비를 사용하고 LTE 장비는 노키아 장비를 사용[5] 5G 장비 일부만 삼성장비를 사용[6] 5G 장비 일부만 삼성장비를 사용[7] 5G 장비 일부만 삼성장비를 사용[8] 5G 장비 설치시 기존 LTE 장비 철거 후 화웨이와 삼성장비로 교체중[9] 하남시, 김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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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핀란드어로 Julkinen osakeyhtiö(공개주식회사)의 약자.[2] 헬싱키위성도시다.[3] 이 시기는 전기 및 전자 관련 산업이 이제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심지어 반도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던 시기였다. 당연히 관련 제품은 지금과는 달리 종류도 엄청 적어 손에 꼽을 정도의 수준이었다.[4] 예를 들자면, 휴대폰을 땅에 떨어뜨렸을 때 iPhone은 화면이 박살나고, 삼성 갤럭시는 흠집만 살짝 가고, 노키아는 땅을 뚫고 들어가 지구가 두 조각으로 갈라진다.[5] 구 Ovi Maps. 한국노키아에서 위치정보서비스사업자 등록을 완료해 한국 서비스도 계획 중에 있었으나, N8은 물론 노키아 모바일 사업부 전체가 폭망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덕분에 한국 지도 데이터는 1940년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가 _데스크톱_ 한정으로 업데이트 되었다.[6] 구 Nokia Solutions And Networks(NSN). 더 오래 전에는 Nokia Siemens Networks라는 이름을 썼다.[7] IT동아 2017-10-20 "[르포: 노키아쇼크 극복한 핀란드를 배우다] 언제나 변해왔다. 노키아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8] 해당 이유가 결정적이었다는 추측이 많다.[9] 이는 안드로이드 플랫폼 코드를 만들고 배포한 후, 그에 대한 세부 수정을 주요 AP업체와 제조사가 하도록 방치하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코드 관리방식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당장 삼성의 One UI와 안드로이드 순정 상태만 비교해봐도, 기업 자체의 기술력으로 어떻게든 마개조해야 그럴듯한 기능 확장이 가능한 OS라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적당히 오픈 소스로 뿌리는 안드로이드는 특권을 줄 것도 없었다. 애초에 구글은 자회사 폰인 구글 넥서스, 구글 픽셀은 거의 순정 상태로 출시한다.[10] 삼성의 경우 이미 안드로이드 시장을 장악하고 높은 인지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 외에도 메모리와 SoC와 같은 핵심 하드웨어를 자체 설계, 생산한다는 강력한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다 노키아는 간신히 본전치기를 하던 기업들과 비교해도 출발이 늦었다는 문제가 있었다. 노키아라는 회사 자체만의 강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기존의 OS에 맞춰 설계, 튜닝된 폰을 안드로이드로 바꾸는데 들어가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발 빠르게 안드로이드 시장을 장악한 것 이외에도 강력한 강점을 여러가지 쥐고 있는 삼성전자를 따라잡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실책은 있었지만 삼성에 크게 뒤쳐지지 않은 시기에 안드로이드로의 전환에 성공한 LG전자마저도 결국 스마트폰 사업을 접을 정도였으니.[11]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 선택을 두고 애플과 안드로이드와 별개로 제3 IT 생태계를 구축한다고 언급했었다. # 또한 이런 의도를 가진 광고까지 만들었다. #[12] 결국 결정적인 문제는 안드로이드로 갈아타는게 너무나도 늦었다는 점이고 하다못해 삼성과 비슷한 시기에 뛰어들었다면 할만했을지도 모르지만, 노키아가 실수를 했음이 명백해졌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나고 말았다.[13] 문제는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업체로서의 위상을 가지려면 제3세계시장 판매량만 가지고는 역부족이고 수익성과 직결되는 ASP를 늘리는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제대로 이익을 내려면 메이저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얻어야만 하는 상황.[14] 통상 대규모 구조조정 뒤에는 재정적으로는 안정을 찾는 경우가 많다. 구조조정의 목적이 재정상황 개선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내용이다. 다만 구조조정 와중에 기술개발역량이 손상되면서 제품매출이 떨어지고 다시 구조조정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최악의 경우가 아이리버였다.[15] 피처폰까지 포함하면 여전히 노키아가 강세다. 2013년 2억 5,000만 대 판매 기록.[16] 구 NSN로 독일 지멘스와의 합작회사였으나, 이후 노키아가 지멘스 측 지분을 사들인다.[17] 애초에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창업 성과가 얼마나 뛰어난지, 핀란드가 창업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고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해온 나라인지는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기에 진지하게 들을 주장이 아니다.[18] 8887(8877)은 흑백이고 8587은 컬러인데 카메라가 없다. 3301의 CDMA 버전인 8277도 있다. 8277은 방한 외국인이나 법인 휴대전화로 판매 되었다는 썰이 있다.[19] 전통적으로 CDMA가 강했던 북미 시장에서 노키아가 힘을 못쓴 이유다.[20] 하지만 CDMA의 원천기술 보유자였던 퀄컴은 이후 3G WCDMA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 결국 3G가 활성화되는 2000년대 후반 경에는 CDMA2000과 WCDMA 칩셋시장 양쪽을 동시에 주름잡게 된다. 애초에 자기 규격이 아니라고 등한시하는 행태 자체가 기술기업으로서는 문제가 있는 행동인 셈이었다.[21] 반면 모토로라는 한국내 연구소에서 한국내수용 휴대폰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었다. 근래의 스마트폰에 비해서는 각 단말의 현지화 성향이 강했고 소프트웨어적인 부담도 훨씬 적었던 피처폰 시절에 특정 SW규격은 큰 걸림돌은 아니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22] 경로탐색은 구글지도로 좌표를 알아낸뒤 가맨맵에 좌표를 검색해서 탐색하는 방법을 이용한다고 한다.[23] 대신 해외 쇼핑몰 등에서 판매하는 언락된 공기계 단말기를 구하면 한국에서 개통해 사용 할 수 있다.[24] 현대자동차 사무실과 구글 Campus Seoul이 입주한 그 건물 맞다.[25] 이말인즉슨, 더이상 한국어 지원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뜻이다![26] 그것도 노키아 전문 AS센터가 있었던 KTM&S 홍대AS지점 기준이다.[27] 기존에는 LG U+의 통신방식이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사용되는 방식(1.8Ghz CDMA2000 EV-DO Rev.2 - Korean PCS)인 점을 참작해서 외산 폰들이 SKT와 KT에서 사용하는 국제표준 통신방식인 WCDMA 2.1Ghz만 호환되어도 전파인증 통과를 해주었으나 2014년부로 LG U+가 VoLTE를 이용한 'LTE 싱글 모드'로의 전환 작업을 완료함으로서 국제표준인 LTE로의 완전한 전환을 완료했고 이를 다시 인정해서 이동전화기기의 통신 3사 완전 호환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LTE USIM이동성제도'를 발효함으로서 2014년 7월부로 전 '통신사 호환 의무화=WCDMA 지원 의무화' 가 '전 통신사 호환 의무화=VoLTE 지원 의무화' 로 변경된 것이다.[28] 아직도 대부분의 폰 잘 모르는 한국인들에게 윈도폰이라고 하면 삼성 옴니아를 떠올리면서 쓰레기 취급하거나 '윈도폰 그거 먹는 건가요?'라고 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윈도폰에 대한 반감이 심하면서 안드로이드폰 편중현상이 상당히 심한 한국에 무작정 발매하면 당연히 고전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고, 결국 신규 윈도폰의 한국 발매 여부라는 주제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게 있어서 상당히 신중한 태도로 논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29] 비슷한 경우가 영국의 전자 주방기구 전문 업체인 켄우드. 일본의 음향 전문업체와 이름이 같다.[30] 시모어 시몬스 : "오, 노키아는 진국이지. 당신들, 일본에 존경심 가져야 해. 걔네는 사무라이 정신이 뭔질 알아…" 매기 매드슨 : "…노키아는 핀란드 회사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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