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6:51

강동성 전투

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고려의 대외 전쟁·정벌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rowcolor=#670000,#FFCECE>전쟁·정벌전투교전세력
<colbgcolor=#fedc89,#444444>후삼국​통일전쟁
조물성 전투후백제
대야성 전투후백제
공산 전투후백제
나주 공방전후백제
삼년산성 전투후백제
고창 전투후백제
운주성 전투후백제
일리천 전투후백제
여요전쟁
봉산군 전투요나라
안융진 전투요나라
흥화진 전투요나라
통주 전투요나라
곽주 전투요나라
서경 전투요나라
애전 전투요나라
삼교천 전투요나라
금교역 전투요나라
귀주 대첩요나라
여진정벌동북 9성여진족
갈라수 전투여진족
길주성 전투여진족
거란 유민들의 고려 침공강동성 전투후요
여몽전쟁귀주성 전투파일:몽골 제국 국기.svg 몽골 제국
동선역 전투파일:몽골 제국 국기.svg 몽골 제국
안북성 전투파일:몽골 제국 국기.svg 몽골 제국
처인성 전투파일:몽골 제국 국기.svg 몽골 제국
죽주산성 전투파일:몽골 제국 국기.svg 몽골 제국
충주성 전투파일:몽골 제국 국기.svg 몽골 제국
원나라의 일본원정제1차 원정파일:미나모토씨 가몬.svg 일본 (가마쿠라 막부)
제2차 원정파일:미나모토씨 가몬.svg 일본 (가마쿠라 막부)
카다안의 침입
치악성 전투합단적
연기 전투합단적
장사성의 난장사성의 난장사성
홍건적의 침공홍건적홍건적
나하추의 침공함흥평야 회전나하추
기황후 주동의 원나라군 침입수주 달천 전투최유
여진족 장수 호발도의 침입길주 전투호바투
목호의 난명월포 전투원나라 목호
왜구의 침입홍산 대첩왜구
진포 해전왜구
황산 대첩왜구
관음포 전투왜구
제1차 대마도 정벌왜구
요동정벌제1차 요동정벌파일:원나라 국기.jpg 원나라
제2차 요동정벌 (위화도 회군)파일:고려 의장기.svg 공요군
}}}}}}}}}
강동성 전투
江東城 戰鬪
강동의 역 | 江東之 役
<colbgcolor=#fedc89,#444444><colcolor=#670000,#FFCECE> 시기 1216년 (고종 3년)
장소

북계 강동성
원인 잔여 거란군에 대한 고려와 몽골의 정벌
교전국 <rowcolor=black> 고려-몽골-동진 연합
(공세)
후요
(수세)
주요 인물
고려 지휘관

파일:고려 의장기.svg 조충
파일:고려 의장기.svg 김취려
지휘관

[[후요|
大遼
]] 야율함사
몽골 지휘관

카치운
살리타이
푸타우
저고여
탕구타이
동진 지휘관

[[동하|
大眞
]] 완안자연
병력 연합군: 30,000명 병력 규모 불명
결과 고려-몽골-동진의 승리
영향 * 후요의 완전한 멸망
* 고려-몽골간 화친 성립
* 저고여 피살 사건 발생 및 전쟁 발발
1. 개요2. 평가3. 기타4. 같이보기

[clearfix]

1. 개요

1216년 발발한 거란 유민들의 고려 침공 와중, 1218~1219년 고려-몽골-동진[1]이 서로 연합하여 강동성(江東城)[2]에 침입한 거란족을 물리친 전투.『강동의 역(役)』이라고도 부른다.

2. 평가

일단 고려는 강동성에 농성했던 거란족을 물리치는 데 성공하였으나, 문제는 이후 몽골과 갈등이 시작되었다.

몽골은 고려에 큰 은혜를 베푼 듯 행세하며 해마다 고려에 과중한 공물을 요구했다. 이때 몽골 사신들은 고려에서 과장 좀 보태 소위 깽판도 부린 것으로 보인다.

이러니 고려에선 당연히 반몽정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1225년 저고여 피살 사건 등과 더불어 1231년 발발하는 여몽전쟁의 배경이 된다.

3. 기타

강동성 전투에서 활약한 고려의 장군 김취려는 수염이 배 아래까지 내려왔을 정도로 길어서 예복을 입을 때마다 두 명의 여종들에게 수염을 나눠들게 한 후 허리띠를 메었다고 한다. 당시 몽골군의 사령관이었던 카치운[3]이 김취려의 풍채와 긴 수염을 기이하게 여겨 나이를 묻고는 형으로 모시며 후대했다는 이야기가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파일:CC-white.svg 이 문단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27
, 4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단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27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4. 같이보기


[1] 금나라 말엽에 함평로 선무사 '포선만노'가 세운 여진족 나라. 이후 동진(대진)에서 동하(대하)로 이름을 바꾼다. 이시기엔 사실상 몽골의 위성 국가 노릇을 하고 있었다. 참고로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사마씨의 동진이 아니다. 아예 한자가 東眞으로 東晉과 다르다.[2] 지금의 평양 동쪽 부근 지역.[3] 고려사고려 시대를 다룬 대중역사서에서는 주로 '합진(哈眞)'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칭기즈 칸의 동생과는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