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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주산성 전투 竹州山城 戰鬪 | ||
<colbgcolor=#fedc89,#444444><colcolor=#670000,#FFCECE> 시기 | 1236년 (고종 22년) | |
장소 | 죽주산성 | |
원인 | 군사적 요충지 죽주산성에 대한 몽골군의 공략 | |
교전국 | <rowcolor=black> 고려 (수세) 승 | 원 (공세) 패 |
주요 인물 | 지휘관 송문주 | 지휘관 지휘관 불명 |
병력 | 병력 규모 불명 | 병력 규모 불명 |
피해 | 피해 규모 불명 | 피해 규모 불명 |
결과 | 고려의 승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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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몽골이 3차 침입 때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위치한 죽주산성에서 벌어진 전투로, 고려의 명장인 송문주가 열세였음에도, 몽골을 분쇄한 전투였다.2. 배경
안변, 용강, 함종, 삼등 및 안동, 동경 등지를 침범하였던 몽골군은 일단 물러갔다가 1236년에 다시 전쟁을 일으켜 대거 침입, 남하하여 9월에는 죽주산성을 포위하였다.당시의 죽주산성은 고려의 중부지방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3. 전개
송문주는 이미 귀주성 전투에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몽골군의 공성술 순서를 이미 꿰뚫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송문주는 투석기를 준비시키며, 몽골군의 투석기 배치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몽골군의 투석기 배치가 끝나자마자, 산성안에서 고려의 투석기를 갖고 몽골군의 투석기를 격파하였다.
4. 결과
몽골군이 다시 화공을 하자, 성문을 열고 일제히 공격을 가하여 수많은 적을 살해하는 전과를 올렸다. 적은 여러 방면으로 성을 공격하였으나, 결국 포위한 지 15일만에 죽주산성을 공격하던 기구들을 불태우고 물러갔다.이러한 전투 경험이 없었던 몽골군에게는 송문주의 전략이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해당 전투를 패배하게 된다.
5.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