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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0 16:24:35

안융진 전투

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고려의 대외 전쟁·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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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융진 전투
安戎鎭戰鬪
<colbgcolor=#fedc89,#444444><colcolor=#670000,#FFCECE> 시기 993년(성종 12년) 10월 이후?
장소 고려 북계 안융진(現 평안남도 문덕군 신리)
원인 소손녕의 고려 침공
교전국 고려
(수비)
<rowcolor=black>
(공격)
주요 인물
지휘관

파일:고려 의장기.svg 대도수 (중랑장)
파일:고려 의장기.svg 유방 (낭장)
지휘관

[[요나라|
]] 소손녕(동경유수)
병력 규모 불명 60,000명 미만
피해 피해 규모 불명 피해 규모 불명
결과 고려군의 승리
영향 고려 조정이 강화 협상을 진행해 거란군을 철수시킴.
1. 개요2. 배경3. 전개
3.1. 할지론을 반대하다3.2. 안융진에서 거란군을 물리치다
4. 결과5. 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여요전쟁 시기, 고려군과 거란군이 고려의 행정구역인 양계 중 서북면에 해당하는 북계(北界)에 설치한 안융진(鳳州, 현 평안남도 문덕군 신리)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973년에 이 곳에 성이 설치하기 시작해 974년에 완성했다.

2. 배경

거란이 국제적인 고립을 피하기 위해 소손녕고려에 군사를 이끌고 봉산군에서 고려군을 격파해 기세를 꺾어 항복을 요구하자 고려 조정에서는 이몽전을 사신으로 보내 강화를 요청하지만, 소손녕이 직접 와서 항복해야 강화한다고 협박하자 거란에게 서경 이북의 땅을 주어 강화하는 할지론이 논의된다.

3. 전개

3.1. 할지론을 반대하다

성종이 할지론을 따르기로 하면서 서경의 쌀을 개방해 백성들에게 마음대로 가져가게 하고 남은 곡식은 대동강에 던지려고 했으나, 서희가 넉넉한 식량으로 성을 지키고 전투에도 이길 수 있다며, 전투의 승패는 적의 틈을 잘 살펴 움직이라고 설득해 성종이 할지론을 중지했다.

이어서 서희가 거란의 의도는 여진이 살고 있는 가주, 송성 등을 빼앗으려는 것으로 옛 고구려의 땅이며, 저들에게 영토를 한 번 주면 끝없이 욕심을 부린다며 싸운 후에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지백도 영토를 주는 것을 반대하면서 사신을 보내 금은과 보물을 소손녕에게 뇌물을 주어 의중을 살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군량을 버리는 것보다 연등회, 팔관회, 선랑 등의 행사를 다시 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3.2. 안융진에서 거란군을 물리치다

소손녕은 이몽전이 돌아간 뒤에 고려 조정에서 오랫동안 답을 하지 않자 안융진을 공격했는데, 대도수, 유방이 그들과 싸워 이기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 항복을 재촉했으며, 성종이 장열을 보내자 소손녕이 다시 대신을 보내게 했고, 성종이 여러 신하들을 불러모아 거란의 진영으로 가서 말로 군사를 물리쳐 공을 세우겠냐고 물었다.

4. 결과

성종이 소손녕을 말로 설득해 거란군을 물러나게 하려고 가는 것에 대해 신하들 중에서 가려는 사람이 없었다가 서희가 나서기를 자청하며, 서희가 소손녕을 상대로 외교 담판을 벌여 거란군을 물러가게 하고 강동 6주까지 얻어낸다.

5. 매체에서

5.1. <천추태후>

제1차 여요전쟁을 다룬 드라마인 <천추태후> 1화 ~ 2화 중간, 26화 ~ 27화에서 이 전투를 다루고 있다.

전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고 하지만, 대도수, 유방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주인공인 천추태후, 강조, 김치양이 개입해서 겁먹은 이현운 대신 거란의 군대와 싸우는 등 전개 왜곡이 있다.

몰래 기습하려던 거란의 대군이 나타나자 대도수, 유방은 거란군을 상대로 대치하고 있다가 천추태후, 김치양, 강조가 이끄는 소규모 민병들이 몰래 거란군의 측면을 공격하고 거란이 군사를 더 보내 천추태후 등의 군사들이 퇴각하도록 하며, 화살을 쏴서 안융진의 군사들을 공격하자 고려군도 거란군에 맞서기로 하면서 난전을 벌이지만 거란군의 수에 밀리자 안융진성으로 겨우 후퇴한다.

거란군은 고려군을 추격한 후 안융진 성 앞에서 거란의 사자가 고려군에게 항복을 요구하며, 겁쟁이 이현운이 항복하려 하자 천추태후가 때리며 이를 막아서고 대도수,유방도 호응해서 거란의 항복 사신을 화살로 맞춘다.분노한 소적렬이 맹화유를 이용한 투석기로 성을 공격하고 화살을 쏘며, 성문에 밧줄을 걸어 거란군이 밧줄을 타서 성을 진입하거나 사다리를 타고 성을 공격한다.

도중에 강감찬이 중군사에게 겨우 허락받아 이끄는 고려 지원군이 나타나 거란군을 공격해 물러나게 하자 강조,대도수 등도 열심히 싸우는데 거란군을 추격하는 사이 그 와중에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도망치던 거란군을 깊숙히 추격하다가 숨어있던 복병 등로 인해 위기에 몰려 도망다니는 와중 거란군에게 결국 포로로 잡혀 몇차례의 시도 끝에 거란 수도까지 끌려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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