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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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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Đội tuyển bóng đá quốc gia Việt Nam
<colbgcolor=#b50017> FIFA 코드 VIE
축구 협회 베트남 축구 연맹 (VFF)
대륙 연맹 아시아 축구 연맹 (AFC)
지역 연맹 아세안 축구 연맹 (AFF)
홈 경기장 미딘 국립 경기장
(Mỹ Đình National Stadium / 40,192석)
별명 Áo đỏ (빨간 저지)
Tuyển (선택받은 사람)
Những Chiến Binh Sao Vàng (금성전사)[2]
감독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김상식 (KIM Sang-sik)
주장단
C
도 흥 중 (Đỗ Hùng Dũng)
VC
응우옌 꽝 하이 (Nguyễn Quang Hải)
라이벌 [[태국 축구 국가대표팀|
파일:태국 국기.svg
태국]]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말레이시아]]
FIFA 랭킹 119위 (2024년 10월 24일 기준 / #)
Elo 랭킹 152위 (2024년 11월 16일 기준 / #)
{{{#!wiki style="color: #FFF; margin: 5px -10px -5px"
{{{#FFF {{{#!folding [ 대표팀 기록 보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b50017> A매치 최다 출전 레꽁빈 (Lê Công Vinh)
- 83경기 / 51골
A매치 최다 득점 레꽁빈 (Lê Công Vinh)
- 83경기 / 51골
첫 국제경기 출전
파일:베트남 국기.svg
베트남 vs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
파일:필리핀 국기.svg
필리핀]] 2:2
(필리핀 마닐라 / 1991년 11월 26일)
최다 점수차 승리
파일:베트남 국기.svg
베트남 vs [[괌 축구 국가대표팀|
파일:괌 기.svg
괌]] 11:0
(베트남 호찌민 / 2000년 1월 23일)
최다 점수차 패배
파일:베트남 국기.svg
베트남 vs [[짐바브웨 축구 국가대표팀|
파일:짐바브웨 국기.svg
짐바브웨]] 0:6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 1997년 2월 26일)
파일:베트남 국기.svg
베트남 vs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
파일:오만 국기.svg
오만]] 0:6
(대한민국 대구 / 2003년 9월 29일)
파일:베트남 국기.svg
베트남 vs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0:6
(대한민국 수원 / 2023년 10월 17일)
}}}}}}}}}}}} ||
{{{#!wiki style="color: #fff; margin: 5px -10px -5px"
{{{#fff {{{#!folding [ 대회별 성적 보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b50017> 대륙 대회
AFF컵 [진출] 12회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 (2008, 2018)
아시안컵 [진출] 5회
[최고] 4위 (1956, 1960)[남베트남], 8강 (2007, 2019)[베트남]
U-23 아시안컵 [최고] 2위 (2018)
아시안 게임 [진출] 5회
[최고] 4위 (1962, 2018)
동남아시안 게임 [진출] 5회
[최고] 파일:트위터 은메달 이모지.svg (1995, 1999)
기타 대회
VFF컵 [진출] 6회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 (2022)
}}}}}}}}}}}} ||
유니폼 컬러 어웨이
상의
하의
양말

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역사4. 플레이 스타일5. 역대 감독6. 현재 선수 명단7. 코칭 스태프8. 역대 전적9. 연령대별 대표팀
9.1. U-23 대표팀9.2. U-20 대표팀9.3. U-17 대표팀

[clearfix]

1. 개요

베트남축구 국가대표팀에 관한 문서. 한국인 박항서 감독이 재직하던 시절에는 AFC 아시안컵 8강 진출(8위), AFF 미쓰비시컵 우승과 함께 FIFA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내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으나, 감독이 필립 트루시에로 바뀌고 나서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다.

현재 킷서플라이어는 조가르볼라[5]이다.

2. 플레이 스타일

동네북이자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렸던 곳으로, 2017년 10월 11일 박항서 감독이 U-23 대표팀을 겸직하는 베트남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을 했을때 현지 언론에서 부정적인 기사가 많이 실리기도 했다. 박항서 감독은 U-23 대표팀에서 먼저 실적을 내기 시작하였는 데 취임하고 3개월 후에 열린 2018 AFC U-23 챔피언십 중국에서 처음으로 준우승을 했으며, 8월에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1962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이후 56년만에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성인 대표팀은 동남아시아의 월드컵으로 불리는 2018 AFF 스즈키컵 대회에서 말레이시아를 결승전에서 1:0으로 이기면서 10년만에 우승컵을 차지하였다. 2019 AFC 아시안컵 당시 8강전에서 일본에 1:0으로 패하기는 했지만 졌지만 잘 싸웠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6] 2020 AFC U-23 챔피언십 태국 예선전에서 3월 22일 브루나이와의 1차전에서 6대0으로 대승. 3월 24일 인도네시아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극장골로 1:0으로 승리. 3월 26일 라이벌 태국전까지도 4:0으로 대파하며 조 1위를 확정지었다.

그리고 베트남의 FIFA 랭킹을 두 자릿수 대에 진입을 시켰다. 참조.
베트남의 선전에 온 베트남 국민들이 응원과 환호를 하면서 1975년 통일 이후 생긴 남북 베트남의 지역감정을 많이 희석을 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스타일은 히딩크가 임기를 종료한 후 몇 년 간의 한국의 스타일에 가장 가깝다. 정돈되지 않은 난투 스타일과 그 순위대 국가 대비 굉장히 강력한 골 결정력이 가장 돋보인다. 비슷한 순위대 국가들에 비추어 봐도 실수가 상당히 많은 편인데, 그걸 뛰어넘는 난투 스타일과 정신력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팀.

일본에게는 어느 정도 분투하는 경향이 있으나 장기로 삼는 부분에서 체격 차 때문에 밀리는 한국에게는 다소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 비슷한 문제로 이란에게도 약한 편이다. 물론 아직 그 3개국에 비할 전력이 아니기 때문에 비교가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단, 이란을 제외한 다른 중동 국가들에겐 맞불을 놓을 수 있는 실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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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사

3.1. 박항서 부임 이전

남베트남 축구팀은 1949년에 탄생되어 1975년에 남베트남북베트남에 합병될 때까지 존재하였다. 남북이 분열되어 있을 시절 남베트남은 지역예선 통과하며 1956년, 1960년 아시안컵에 진출해 모두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하였다.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는 동남아권에서 아시안게임 4위를 하고 동남아시안 게임에서도 꽤 성적을 낸 팀이었다. 남베트남 대표팀이 멸망한 1975년 이후 1991년까지 한 차례의 국제경기도 치러지지 않았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45px-Coat_of_Arms_of_South_Vietnam_%281954_-_1955%29.svg.png
남베트남 축구 협회 엠블럼

그리고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은 남베트남의 기록을 이어받는다. 베트남 통일 전의 북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은 합법적인 국가대표팀 취급을 받지 못하였고,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적색 전사들(Những chiến binh đỏ)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기록은 없다. 최종예선에 한 번 진출했을 뿐이다. 남북통일 후에 축구를 부흥시키려는 시도는 있었고, 프로리그 시스템도 갖추웠지만 축구가 인기가 많은 것과는 별개로 국대팀의 수준은 동남아권만 벗어나면 동네북이었으나, 동남아 4개국 공동개최로 열린 2007년 AFC 아시안컵에서 개최국으로 8강(8위)에 진출 할 정도로 상승세에 오르고 있다. 남베트남의 성적까지 합하면 당시 4강 토너먼트가 아닌 4강 풀리그 방식으로 진행된 1956아시안컵1960아시안컵에서 4위를 기록한 바가 있으며, 1956아시안컵1960아시안컵 당시 지역예선에서 본선 아시안컵에 들어갈 자리가 단 4자리(4강) 아시안컵[7]으로 현재 24자리 아시안컵에 들어가는 것보다 매우 어려웠던 시절로 현재보다 더 아시아 국가들의 축구 인프라 환경이 매우 열악한 관계로 당시 지역예선 참가도 어려웠던 시절이었다.[8] 특히 남베트남은 56년과 60년 각 두 대회 지역예선에서 말라야[9]와 싱가포르를 이기면서 4강 아시안컵에 진출하였으며, 대한민국과 3:5로 선전할 정도였다. 그리고 현재처럼 인터넷도 없이 상대팀과 전력을 분석하던 시절이었음을 고려하면 의미가 있는 성적이다.[10] 그리고 이 시절 남베트남은 2년전 1954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 7위[11], 1956 호주 맬버른 올림픽 지역예선까지 통과하였고[12], 1958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 7위(8강)[13], 1959 메르데카컵에서 대한민국을 3:2로 이겼고, 1962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 4위를 기록할 정도로 강호였다.

아시안게임에서 4위를 차지한 적이 있지만 박항서 감독 부임 이전까지는 아득히 먼 옛날이었을 뿐이었다. FIFA 랭킹 순위는 2022년 3월 기준 96위로 세계기준으로는 약체에 가까우나 동남아시아에선 최상위 수준이다. 역사적으로도 앙숙 관계였던 태국이 주요 라이벌로 꼽힌다.

대한민국과의 역대 전적은 2승 5무 18패로 절대 열세. 통일 이후로 한정하더라도 1승 6패로 절대 열세이기는 매한가지다. 다만 2003년에는 한국이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베트남에 0-1로 진 적이 있다. 베트남전 패배는 1959년 2-3으로 패한 뒤로 무려 44년 만이었다. 게다가 베트남은 당시 아시안컵은 포기하고 2003년 11월말에 시작될 동남아시아게임을 대비해 23세 이하 선수단, 정확하게 말하자면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23세 이하 + 와일드카드 3명으로 출전했음에도 한국이 압도적으로 경기를 지배하고도 졌기에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최근 경기는 2023년 10월 1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친선경기로 무려 0:6으로 대패하며 최다 실점 패배 타이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동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2008년과 2018년 2번 우승했으며 1998년 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뒀다. 동남아에서 제법 축구 강호로서 동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2004, 2012년 대회를 빼고 모두 4강에 진출했다. 2014년 대회는 4강전에서 말레이시아에게 1승 1패, 골득실로 뒤쳐져서 결승 진출은 실패한다. 2016년 대회에서는 또 4강전에서 인도네시아와 1, 2 차전 득점 합계 동률로 연장까지 갔지만 연장에서 내리 두 골을 먹고 졌다. 2018년에는 다시 애증의 팀 말레이지아를 결승에서 만나서 원정경기 2:2, 홈경기 1:0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호앙 아인 잘라이 그룹과[14] 아스날 FC가 후원하는 축구 교육기관 JMG와 협약으로 만들어진 HAGL-JMG 축구 아카데미로 대표되는 유소년 사업이 성공을 거두며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고 있고, 이들은 2017년 FIFA U-20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3.2. 박항서 부임 이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박항서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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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아시아 전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동남아시아에서도 변방으로 밀려났던 베트남을 동남아 최강팀으로 올려놓은 베트남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부임 이전 FIFA 랭킹이 130~140위권에서 머물던 대표팀을 두자릿수 랭킹으로 끌어올린 일등공신. 당장 동남아시아와 중동 중하위권 팀들 상대로는 충분히 겨뤄볼 만해졌고, 아시아 최상위권인 대한민국, 일본의 경우 이길 가능성이 여전히 낮을지언정 예전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은 갖춰나가고 있다.

2017년 9월 베트남 축구협회는 한국인 박항서 감독을 23세 이하 및 성인 대표팀의 새 감독으로 선임했으며, 2018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호주를 1-0으로 이기며 8강에 진출했고 8강전에서는 이라크를 승부차기 끝에 누르며 4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준결승에서도 승부차기로 카타르를 누르며 결승에 진출했는데, 현장의 베트남 관중들이 경기 종료 후 베트남 팀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박항서! 박항서! 를 연발했다. 이는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최초의 아시아 축구 연맹 주관 대회의 결승 진출이라는 것에 주목할 것.

이 대회에서 수비는 여러 문제점이 있었지만 공격력만큼은 그 어떤 팀에도 뒤지지 않았다. 만약 공격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수비에서의 문제점을 고쳐나간다면 올림픽이나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게 결코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다.[15]

박항서 부임 이후 베트남 축구의 스타일은 그동안 자신들이 약하다고 생각한 피지컬을 극복하기 위해서 티카타카 스타일에서 전방위 압박과 무한체력전, 거친 몸싸움을 비롯한 스피드를 강조하는 한국식 축구 스타일로 많이 바뀌었다. 단적인 사례로 스즈키컵 전 약 3주간의 한국 전지훈련 기간의 체력훈련으로 체력을 크게 키워놔서 이후 스즈키컵과 아시안컵 때 도움이 되었고 이후에는 중동팀과의 싸움에서도 체력싸움에서는 밀리지 않거나 오히려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선수 기용에서도 기존 밀려났던 선수들의 재발굴과 신예들을 골고루 기용하는 데 능숙하다. 키 181cm의 타깃 스트라이커 응우옌 아인 득의 재발견,[16] 응우옌 꽁 프엉의 서브 멤버로 출발했으나 뛰어난 활동량, 체력, 스피드와 전술소화 능력을 보유한 윙어인 판 반 득의 중용[17], 과거 응우옌꽝하이만큼의 유망주였으나 정체되어 있던 미드필더이자 윙백인 응우옌 쫑 호앙의 기용이다.[18]

3.2.1. 2018 아시안 게임

2018 아시안게임에서는 파키스탄, 네팔, 일본과 25강 조별리그 D조에 편성되었다. 파키스탄과 네팔이야 충분히 이길테니 16강 진출은 거의 당연했고 실제로 2연승을 거뒀는데, 최종전에서 일본까지 이겨[19]그 어떤 연령대 대표팀에서도 한 번도 일본을 이기지 못했었다!] 전승으로 조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16강전에서는 바레인마저 1:0으로 이기며 사상 첫 아시안 게임 축구 8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사실 현지 언론은 물론이고 베트남 축구협회조차 연초 AFC U-23 대회에서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아시안 게임에 대해서는 딱히 기대를 안 했으며, 심지어 베트남 방송사들은 중계권료가 비싸다고 대회 조별예선을 중계하지도 않았다[20].

베트남이 아시아 축구의 주류가 되기에는 한참 거리가 먼데다 실제로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역대 최고 성적이 16강이었던 탓으로, 현지의 분위기를 종합해 보면 아시안 게임 축구는 그저 다른 팀들의 전력을 가늠하고 자국 팀의 경험을 위한 일종의 시험 무대일 뿐이지, 현실적인 목표는 11월의 동남아시아 축구 패권[21]이였다.

그런데 아시안 게임 8강에 진출해 8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시리아마저 1:0으로 꺾고 1962년 이후 56년만에 아시안 게임 4강 진출을 달성한다! 그리고 준결승에서 박항서 감독의 조국이자 우승 후보였던 대한민국을 만났고, 최선을 다해 고군분투하면서 싸웠다. 3:0까지 끌려다녔지만 당시의 FIFA 랭킹 1위, 월드컵 디펜딩챔피언도 뚫지 못한 조현우를 돌파해 만회골을 넣고 1:3으로 패했다. UAE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패배하면서 4위에 머무르게 되었다.

동남아시아 무대에서조차 변방으로 밀려났던 베트남 축구가 아시안게임에서 무려 동메달 결정전까지 간 것도 모자라,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패한 것은 분명 엄청난 성과이다. 더군다나 아시안게임 축구는 23세 이하 대표팀이 출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베트남 축구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해외축구 갤러리 등에서는 베트남에서 베트남이 한국을 6:0으로 이기고,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만화가 유행하면서 베트남인들이 자기네가 한국을 6:0으로 이길 수 있는 강팀이라고 믿고 있다는 글이 올라오는데,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최근의 상승세로 인해 나름대로 국뽕이 좀 강해지긴 했지만 베트남인들이 만화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바보들은 아니다. 어차피 저 만화도 몇년 전 만화라서 지금은 별 의미 없다.

당장에 전 베트남 국대 감독 응우옌 탄 빈은 베트남 언론 인터뷰에서 박항서를 칭송하면서 박항서 비난 여론은 엉뚱하다고 비난을 했다. 베트남이 정면으로 맞대응하면 이길지도 모른다는 이들은 축구를 모르는 거라면서 만약 그랬더라면 거꾸로 자살과 같은 짓으로 더 크게 대패했을 것이라고 지적할 정도이다. 또한, 이 비난여론도 베트남 기자의 말로는 "그런 의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디서나 나올 수 있는 극히 일부 여론이다."라고 했다. 이 일부 의견을 한국 기자들이 부풀려서 얘기하니 경악했다는 반응도 보여줬는데, 베트남까지 가서 국제망신을 시키는 한국 기레기의 추태가 세계구급으로 놀고 자빠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3.3. AFF 스즈키컵 2018

기대하던 2018 스즈키컵에서는 10년만에 결승 진출을 달성했고 목표였던 우승을 이뤄냈다. 심지어, 박항서가 발굴한 아인득은 2018년 스즈키컵 결승전에서 결승골까지 넣는다. 같은 때 FIFA 랭킹 100위를 달성하면서 박항서 감독의 부임 조건을 부임 1년 만에 하나하나씩 달성하게 되었다.

이 대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3.3.1. 2019 AFC 아시안컵

지역예선에서 본선 24자리로 확대 된 2019아시안컵에서는 이란/이라크/예멘과 한조에 속했다. 박항서호의 최고 수확이었던 아인득이 스즈키컵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22]

이라크전에서는 전반에 2:1로 앞서가면서 분위기를 살렸으나 후반 30분경에 동점골을 허용한 후 막판 추가시간에 역전골을 허용하면서 2:3으로 패했다. 그래도 우월한 피지컬을 가진 중동팀에게 속절없이 무너졌던 과거에 비하면 체력과 경기력이 꽤 좋아졌다는 평을 받았다.

이란전에서도 나름 괜찮은 경기력을 보였으나 현격한 피지컬 차이를 절감하면서 0:2로 완패했다.[23]

이처럼 초반 2경기를 지면서 탈락 위기에 처했으나, 마지막 3차전 예멘전에서 2대 0으로 완승을 거두면서 조 3위가 되었다. 다른 조 3위 가운데 승점 3점으로 베트남과 동률인 팀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16강 진출여부는 다른 조의 결과를 지켜봐야 했는데, E조의 레바논이 북한을 4:1로 꺾으면서 베트남과 골득실이 똑같아졌다. 하지만 페어플레이 점수에서 레바논을 앞서면서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했다.[24]

16강전 상대는 가장 먼저 16강을 확정지은 요르단이라 어려움이 예상되었지만 1:1로 비기고 승부차기 끝에 4:2로 이기며 베트남 역사상 첫 본선 아시안컵 3라운드[25](8강) 진출이자 당시 16개국 진출로 진행된 2007아시안컵 8강(8위) 이후 12년만의 아시안컵 8강 진출을 이뤄냈다!

물론 8강전에서 우승후보 중의 하나인 일본에게 통한의 PK를 내주고 1:0으로 석패하면서 아쉽게도 준결승 진출이 무산되었지만, 일본이 경기를 지배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상당히 선전하면서 비록 졌지만 잘 싸웠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해줬다. 그리고, 2007년 AFC 아시안컵에 이어서 베트남 축구 역사상 두 번째 8강(8위) 기록해냈고 첫번째 토너먼트 통과와 3라운드에 진출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3.3.2. 2019 킹스컵 태국

태국과의 4강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4분 응우옌 아인 득의 극장골로 1:0로 개최국인 태국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고 결국 북중미카리브퀴라소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3.3.3.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지역예선(아시아)

2차예선에 호성적을 거두어 사상 첫 최종예선에 올라갔다. 최종예선 성적은 1승 1무 8패로 예상대로 조별리그 꼴찌를 찍었지만, (호주를 제외하고) 동남아 대표팀 역사상 첫 승리라는 업적과 동시에 승점을 얻은 두 팀의 순도가 엄청났다. A매치에서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고 사이도 매우 껄끄러운 중국을 3:1로 저격했으며, 마찬가지로 여태껏 전패를 거두던 일본을 상대로 원정에서 1:1로 비겼다. 일본전은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에 유종의 미를 확실히 거두며 역사적인 첫 최종예선을 마쳤다.[26]

3.3.4. AFF 스즈키컵 2020

4강에서 태국에게 1무 1패로 패하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하였다.

3.3.5. AFF 미쓰비시전기컵 2022

태국을 다시 만난 결승에서 2차전 0:1로 지면서 준우승으로 마무리했다.

3.4. 필립 트루시에 부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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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트루시에 감독은 일본2000 아시안컵 우승과 2001 FIFA컨페드컵[27] 준우승, 2002 월드컵 16강(9위)을 기록한 감독이다.

하지만 2023년 필립 트루시에 감독이 부임한 이후 베트남 축구는 박항서호 시절 이전으로 원상복귀되었다. 동남아시안컵에서도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에게는 6-0으로 패배하며 최다 점수차 패배 타이 기록을 세웠다. 또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대회 17위로 아쉽게 16강에 실패하여[28] 4강 신화를 한 5년 전과 대조되었다.

2023 아시안컵에 진출하였으나 3전 전패를 하며 24강 조 4위, 대회 22위로 24강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3전 전패팀 중에서 FIFA 랭킹이 가장 높은 탓에 41점이나 하락해서 94위에서 105위로 10계단이 넘게 추락, 반대로 16강에서 우즈베키스탄에게 1-2로 석패하는 선전을 보여주며 113위에서 101위로 상승한 태국에게 동남아시아 랭킹 1위 자리를 다시 내주고 말았다. 그나마 좀 봐줄 만한 것은 인도네시아는 신태용 감독이며, 일본을 상대로 역전했다가 재역전 당해서 4-2로 패배했지만 골 차이가 적었고, 일본을 꺾은 이라크 상대로도 한 골 차이로만 패배했다.

그러나, 이후 2026 월드컵 2차예선에서 인도네시아에게 원정은 0-1, 홈에서는 0-3으로 참패했다. 홈에서 인도네시아에게 0-3 패배한 것은 2004년 이후 20년 만이며, 결국 홈에서 0-3 참패를 당한 경기 직후 베트남 축구협회는 필립 트루시에 감독와 상호 합의 하에 계약 해지하였다고 발표하여 필립 트루시에 감독은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 여파로 다시 한 번 FIFA 랭킹이 115위로 급락한 것은 덤.

3.5. 김상식 부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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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플레이 스타일

박항서 감독 부임 이후 베트남 축구는 한국 축구의 스타일이 많이 이식되어서 빠른 스피드와 강인한 체력, 그리고 거친 몸싸움을 내세우는 축구로 바뀌었다. 또 박항서 감독은 3백 수비를 두텁게 하면서 빠른 역습으로 득점하는 전략을 세웠는데, 응우옌 꽁 프엉, 응우옌 꽝 하이와 같은 스피드를 갖춘 선수들이 이런 역습전략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축구 스타일은 기존 동남아 축구판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기 때문에[29]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는 이걸 "한국식 축구"라고 정의하고 있다.[30]원래 베트남 축구계에 퍼진 편견으로는 베트남은 체력과 체격이 나쁘다는 것이었지만 박항서 감독은 체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31]는 진단을 내려 오히려 그동안 편견과는 반대되는 강한 체력을 더 강화시키고 거친 압박과 몸싸움을 팀 스타일로 정착시켰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아직까지 베트남 선수들은 기본기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다. 패스 정확도와 빌드업 능력, 볼터치 등이 부족하고 전술 이해도도 떨어진다. 박항서 이전에도 베트남 축구는 빌드업이나 티키타카에 꽤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큰 성과가 없었으며 박항서 감독도 선수들의 개인기와 전술 이해도가 낮다고 평가하여 직접 패싱 게임에 참여하는 등 수준을 끌어올리려 하고 있지만 확실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런 베트남 축구의 한계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는데, 동남아권에서 충분히 먹혔던 베트남의 스피드와 체력이 아시아의 강팀들을 상대로는 그다지 돋보이지 않았다. 전술적인 한계도 여실히 드러났는데, 한차원 높은 압박능력을 가진 강팀들과의 중원 싸움에서 속절없이 밀리자 베트남 특유의 역습 전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 그나마 상대적으로 전력이 떨어지는 중국(..)과의 홈경기에서 베트남식 역습이 되살아나면서 3대1로 완승한 것과 일본과의 원정경기에서 1대1로 무승부를 함으로써 역대 동남아 최고 성적을 거둔 것이 위안거리.

이처럼 아직 강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베트남 축구의 전망이 그리 어둡지는 않다. 박항서 감독이 부임한 이후 베트남 축구가 한단계 도약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앞으로도 발전할 여지는 충분하기 때문. 2022년 기준으로 박항서 감독이 발굴한 선수들 대부분이 아직 젊기 때문에 앞으로도 상당기간 주축으로 활약할 것으로 예상되며 초보적이나마 유소년 육성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유망주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될 수 있는 토양도 마련된 상황이다.

즉 베트남 축구는 지금보다는 미래가 더 기대되는 팀이라고 할 수 있는데, 향후 베트남 정부가 얼마나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줄지가 관건.

5. 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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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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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 현재
초대
부 반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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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응우옌사이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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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대행)
쩐쥬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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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타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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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바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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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머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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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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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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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칼리스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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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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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타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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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쩐반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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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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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칼리스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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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대행)
마이득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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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쾨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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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판탄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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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대행)
반 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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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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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응우옌흐우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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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대행)
마이득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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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박항서
(박항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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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트루시에
(트루시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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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김상식
(김상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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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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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현재 선수 명단

포지션 등번호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생년월일 출장 득점 클럽 비고
GK 당 반 럼 Đặng Văn Lâm 1993년 8월 13일 25 0 빈딘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응우옌뚜언마인 Nguyễn Tuấn Mạnh 1990년 7월 31일 4 0 SHB 다낭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부뚜옌꽝 Vũ Tuyên Quang 1995년 7월 5일 0 0 빈딘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DF 꿰 응옥 하이 Quế Ngọc Hải 1993년 5월 15일 62 4 송람 응에안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도 주이 마인 Đỗ Duy Mạnh 1996년 9월 29일 39 1 하노이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부 반 탄 Vũ Văn Thanh 1996년 4월 14일 34 3 호앙아인 잘라이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응우옌 퐁 홍 주이 Nguyễn Phong Hồng Duy 1996년 6월 13일 28 0 호앙아인 잘라이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쩐딘쫑 Trần Đình Trọng 1997년 4월 25일 13 0 빈딘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호 탄 타이 Hồ Tấn Tài 1997년 11월 6일 10 2 빈딘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응우옌득찌엔 Nguyễn Đức Chiến 1998년 8월 24일 1 0 비엣텔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아드리아노 슈미트 Adriano Schmidt 1994년 5월 9일 0 0 빈딘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응우옌반비 Nguyễn Văn Vĩ 1998년 2월 12일 0 0 하노이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MF 응우옌 꽝 하이 Nguyễn Quang Hải 1997년 4월 12일 43 10 하노이 폴리스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판 반 득 Phan Văn Đức 1996년 4월 11일 31 4 송람 응에안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도 흥 중 Đỗ Hùng Dũng 1993년 9월 8일 23 0 하노이 FC 주장
파일:베트남 국기.svg
응우옌 호앙 득 Nguyễn Hoàng Đức 1998년 1월 11일 18 1 비엣텔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쩌우응옥꽝 Châu Ngọc Quang 1996년 2월 1일 0 0 하이퐁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쩐딘끄엉 Trần Đình Khương 1996년 2월 10일 1 0 호찌민 시티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쯔엉반타이꾸이 Trương Văn Thái Quý 1997년 8월 22일 0 0 하노이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FW 응우옌 꽁 프엉 Nguyễn Công Phượng 1995년 1월 21일 51 11 요코하마 FC 부주장
파일:일본 국기.svg
응우옌 반 또안 Nguyễn Văn Toàn 1996년 4월 12일 42 4 더프 산 남딘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응우옌 띠엔 린 Nguyễn Tiến Linh 1997년 10월 20일 30 12 베카멕스 빈즈엉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팜뚜언하이 Phạm Tuấn Hải 1998년 5월 19일 5 0 하노이 FC 파일:베트남 국기.svg
[32]

7. 코칭 스태프

8. 역대 전적

8.1. FIFA 월드컵

연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1930년 우루과이
축구협회 창립 이전 (프랑스령 통킹, 프랑스령 안남, 코친차이나)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1934년 이탈리아
파일:프랑스 국기.svg
1938년 프랑스
베트남국[남베트남]
파일:브라질 국기.svg
1950년 브라질
FIFA 비회원국
파일:스위스 국기.svg
1954년 스위스
불참
베트남 제1공화국
파일:스웨덴 국기.svg
1958년 스웨덴
불참
파일:칠레 국기.svg
1962년 칠레
남베트남 군사정권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966년 잉글랜드
불참
베트남 제2공화국
파일:멕시코 국기.svg
1970년 멕시코
불참
파일:독일 국기.svg
1974년 서독
본선 진출 실패[16개국]
※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1978년 아르헨티나
불참
파일:스페인 국기.svg
1982년 스페인
파일:멕시코 국기.svg
1986년 멕시코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1990년 이탈리아
파일:미국 국기.svg
1994년 미국
파일:프랑스 국기.svg
1998년 프랑스
본선 진출 실패[32개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2002년 한일
파일:독일 국기.svg
2006년 독일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2010년 남아공
파일:브라질 국기.svg
2014년 브라질
파일:러시아 국기.svg
2018년 러시아
파일:카타르 국기.svg
2022년 카타르
파일:캐나다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멕시코 국기.svg
2026년 북미
본선 진출 실패[48개국]
파일:스페인 국기.svg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파일:모로코 국기.svg
2030년 월드컵
? ? ? ? ? ? ? ? ?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2034년 사우디
? ? ? ? ? ? ? ? ?
합계 본선진출 없음

8.2. AFC 아시안컵

대회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베트남 제1공화국[남베트남]
파일:영국령 홍콩 기(1955~1959).svg
1956년 홍콩
결승리그[A] 4위 1 3 0 1 2 6 9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1960년 대한민국
결승리그[A] 4위 0 3 0 0 3 2 12
남베트남 군사정권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1964년 이스라엘
본선 진출 실패[4강]
베트남 제2공화국
파일:팔라비 왕조 국기.svg
1968년 이란
본선 진출 실패[5개팀]
파일:태국 국기(1917~2017).svg.png
1972년 태국
기권
파일:팔라비 왕조 국기.svg
1976년 이란
본선 진출 실패[6개팀]
※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1980년 쿠웨이트
불참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1984년 싱가포르
파일:카타르 국기.svg
1988년 카타르
파일:일본 국기.svg
1992년 일본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1996년 아랍에미리트
본선 진출 실패[12개팀]
파일:레바논 국기.svg
2000년 레바논
파일:중국 국기.svg
2004년 중국
본선 진출 실패[16개팀]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파일:태국 국기(1917~2017).svg.png 파일:베트남 국기.svg
2007년 아세안
8강 8위 4 4 1 1 2 4 7
파일:카타르 국기.svg
2011년 카타르
본선 진출 실패[16개팀]
파일:호주 국기.svg
2015년 호주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2019년 아랍에미리트
8강[46] 8위 4 5 1 1 3 5 7
파일:카타르 국기.svg
2023년 카타르
조별리그 22위 0 3 0 0 3 4 8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2027년 사우디아라비아
? ? ? ? ? ? ? ? ?
합계 본선진출 5회 / 4위 2회 9 18 2 3 13 21 43

아시안컵에 총 5번 진출해 18전 2승 3무 13패, 21득점 43실점, 총 승점 9점을 기록하고 있다. 2019년 대회에 8강(8등)[47] 기록하면서 24강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제치고 단숨에 역대 아시안컵 승점 순위 동남아 2위로 도약했으나, 2023년 대회에서 3패(22등)에 그치며 다시 인도네시아에게 역대 아시안컵 승점 순위를 역전당해 태국, 인도네시아에 이은 동남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8.3. AFF 챔피언십

대회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승점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싱가포르 1996
4강 3위 6 3 2 1 14 10 11
파일:베트남 국기.svg
베트남 1998
준우승 2위 5 3 1 1 8 2 10
파일:태국 국기(1917~2017).svg.png
태국 2000
4강 4위 6 3 1 2 14 6 10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인도네시아&싱가포르 2002
4강 3위 6 4 1 1 21 12 13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파일:베트남 국기.svg
말레이시아&베트남 2004
조별리그 6위 4 2 1 1 13 5 7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파일:태국 국기(1917~2017).svg.png
싱가포르&태국 2007
4강 3위 5 1 3 1 10 3 6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파일:태국 국기(1917~2017).svg.png
인도네시아&태국 2008
우승 1위 7 4 2 1 11 6 14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파일:베트남 국기.svg
인도네시아&베트남 2010
4강 3위 5 2 1 2 8 5 7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파일:태국 국기(1917~2017).svg.png
말레이시아&태국 2012
조별리그 6위 3 0 1 2 2 5 1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파일:베트남 국기.svg
싱가포르&베트남 2014
4강 3위 5 3 1 1 12 8 10
파일:미얀마 국기.svg 파일:필리핀 국기.svg
미얀마&필리핀 2016
4강 3위 5 3 1 1 8 6 10
파일:ASEAN 깃발.svg
홈&어웨이 2018
우승 1위 8 6 2 0 15 4 20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싱가포르 2020
4강 3위 6 3 2 1 9 2 11
파일:ASEAN 깃발.svg
홈&어웨이 2022
준우승 2위 8 4 3 1 16 3 15
파일:ASEAN 깃발.svg
홈&어웨이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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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본선진출 14회 / 우승 2회 79 41 22 16 162 77 145

9. 연령대별 대표팀

9.1. U-23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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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U-20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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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U-17 대표팀

9.3.1. AFC U-17 아시안컵

연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AFC U-16 Championship
파일:카타르 국기.svg
1985 카타르
불참
파일:카타르 국기.svg
1986 카타르
파일:태국 국기.svg
1988 태국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1990 아랍에미리트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1992 사우디아라비아
파일:카타르 국기.svg
1994 카타르
파일:태국 국기.svg
1996 태국
파일:카타르 국기.svg
1998 카타르
파일:베트남 국기.svg
2000 베트남
4위 7 6 2 1 3 11 13
AFC U-17 Championship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2002 아랍에미리트
조별리그 11위 1 3 0 1 2 2 7
파일:일본 국기.svg
2004 일본
조별리그 16위 0 3 0 0 3 2 5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2006 싱가포르
조별리그 9위 4 3 1 1 1 5 5
AFC U-16 Championship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2008 우즈베키스탄
예선 탈락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2010 우즈베키스탄
조별리그 12위 3 3 1 0 2 4 10
파일:이란 국기.svg
2012 이란
예선 탈락
파일:태국 국기.svg
2014 태국
파일:인도 국기.svg
2016 인도
8강 8위 6 4 2 0 2 6 15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2018 말레이시아
조별리그 15위 1 3 0 1 2 1 7
AFC U-17 아시안컵
파일:태국 국기.svg
2023 태국
조별리그 14위 1 3 0 1 2 1 6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2025년 사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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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본선진출 8회 / 4위 1회 23 28 6 5 17 32 68

[1] 협회 엠블럼이 존재하지만 유니폼에는 국기를 부착한다. 과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002 월드컵 이전까지 대한축구협회 엠블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니폼에 태극기를 부착한 것과 같은 케이스이다.[2] https://www.vff.org.vn/chu-tich-nuoc-nguyen-xuan-phuc-chuc-cac-chien-binh-sao-vang-gianh-ve-vao-vong-loai-thu-ba-world-cup-2022/[남베트남] 시절[베트남] [5] 일본의 스포츠 브랜드.[6] 대회 8위[7] 유로도 첫 대회 1960년 부터 1976년 대회까지 지역예선에서 본선 유로에 들어 갈 수 있는 자리가 단 4자리 (4강) 유로 대회로 현재 24자리 유로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웠던 시절이었다.[8] 지금과 비교하면 프로축구리그가 없던 국가들도 있었다.[9] 그 후 말라야는 1962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 동메달전(3,4위전)에서 남베트남을 이기고 동메달(3위)를 기록한다. 아시안게임 축구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10] 당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및 축구 기반 사정들이 전반적으로 열악하여 지역예선 참가도 어려웠기 때문에 서부, 중부, 동부로 나뉘어 지역예선전이 치러졌다. 비행기를 이용하여 많은 국가의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가 버거웠기 때문에 이 당시는 말이 '지역예선'이지 실질적으론 지역별로 본선 조별리그를 치르고 개최국에서 4강 결승리그를 치르는 느낌에 가까웠다. 실제로 각 지역 1위 국가들이 비행기를 타고 4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했다.[11] 1위 대만(금메달) 4승 0무 0패 16득 6실
2위 대한민국(은메달) 1승 2무 1패 15득 12실
3위 버마(동메달) 2승 2무 0패 10득 8실
4위 인도네시아 2승 0무 2패 15득 12실

5위 홍콩(12강 조별리그) 1승 1무 0패 7득 5실
6위 파키스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7득 4실
7위 남베트남(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5득 5실
8위 인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3득 6실
9위 싱가포르(12강 조별리그) 0승 1무 1패 3득 7실
10위 일본(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5득 8실
11위 필리핀(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7실
12위 아프간(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4득 12실

이 대회는 12강 조별리그에서 각 조 1위만 4강 토너먼트 진출로 진행되었다.(8강전이 없었다.)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
[12] 그러나 그 후 본선 호주 맬버른 진출 앞두고 기권하였다.[13] 1위 대만(금메달) 5승 0무 0패 11득 4실
2위 대한민국(은메달) 4승 0무 1패 15득 6실
3위 인도네시아(동메달) 4승 0무 1패 15득 7실
4위 인도 2승 0무 3패 11득 13실

5위 이스라엘(8강) 2승 0무 1패 6득 3실
6위 홍콩(8강) 2승 0무 1패 8득 6실
7위 남베트남(8강) 1승 1무 1패 8득 5실
8위 필리핀(8강) 1승 0무 2패 4득 9실
9위 파키스탄(14강 조별리그) 0승 1무 1패 2득 4실
10위 싱가포르(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4실
11위 버마(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4득 7실
12위 일본(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0득 3실
13위 말라야(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8실
14위 이란(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0득 9실

이 대회는 14강 조별리그 다음 8강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
[14] V.리그 팀 호앙 아인 잘라이 FC의 모기업이다.[15] 올림픽의 경우 AFC U-23 대회 3위까지 진출 자격이 주어지므로 2018년 대회처럼 결승에 오르기만 하면 자동으로 확정이고, 월드컵의 경우 2026년 대회부터 아시아 쿼터가 8장으로 늘어나지만 대한민국, 일본,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렇게 5개 팀을 제외한 3장의 티켓을 두고 싸워야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당장 아시아 상위권을 긴장시킬 만한 전력인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이라크를 비롯해서 시리아, 태국, 중국, 오만 등의 중위권 팀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16] 아인득의 국가대표 데뷔는 22세였던 2007년이다. 하지만 그는 리그에서 매 시즌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하는 준수한 활약과 베트남에서도 손꼽히는 우수한 피지컬을 지니고도 그 동안 베트남 국대의 성향과 너무 안 맞아서 간혹 전술 실험용이나 땜빵 형식으로 발탁된 게 전부다. 박항서 감독에게 중용되기 직전까지 그의 국대 출전기록은 11년 간 고작 26경기에 불과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대단한 것인데 박항서 감독이 부임한지 2달 쯤 되어 선수들을 테스트하는 대회에서 테스트를 하다가 지게 되자 바로 협회에서 경질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감독의 평균 임기가 8개월인 걸 생각했을 때 레꽁빈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쓸쓸히 은퇴를 바라보던 노장 공격수인 아인득을 중용한 것은 과감한 실험이라 볼 수 있다.[17] 2018년 스즈키컵에서 베트남의 득점상황 대부분이 판반득으로부터 시작된 것들이 많다. 응우옌 꽝 하이에 대한 상대팀의 견제를 분산시키면서 공격의 핵심으로 자라난 셈.[18] 응우옌쫑호앙은 거의 어쩔 수 없이 한 기용이었다. 원래 그 자리도 세대교체 때문에 부반타인이나 팜쑤언마인이 돌아가면서 들어갔고 둘 다 좋은 활약으로 완벽한 세대교체에 성공한 포지션이었는데 하필 시즌 막판에 둘이 한꺼번에 부상으로 수술받게 되어 버렸던 것.[19] 여기서 이기기 전까지 베트남은[20] 당시 베트남 축구팬들은 인도네시아 방송을 스트리밍해 보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겨서 다른 의미로 더 분통이 터졌겠지.[21] 일명 '스즈키컵'. 일본 자동차 회사인 스즈키가 스폰서라 스즈키컵으로 불린다. 유럽이 아시아 축구 매치에 관심 없는 정도로 한국도 동남아시아 축구 매치에 관심이 없다 보니 대회의 존재 자체를 박항서 감독 이슈로 처음 안 사람이 대다수일 정도로 한국 관점에서는 그냥 동네 축구 수준인 경기다. 그런 경기의 우승을 한 번 노려볼까 하는 판에 일본, 태국 등을 꺾고 무실점 전승하며 4강까지 올라간 것.[22] 공식적으로는 나이때문에 은퇴한다고 했으나, 아인득은 대회가 열리는 시점에서 33살로 아직 충분히 더 뛸 수 있는 나이였다. 아인득은 선수시절 형과 사업을 했는데 이게 꽤 잘됐다고 한다. 따라서 실제로는 이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19년 킹스컵에서 박항서 감독의 요청으로 복귀를 선언했다.[23] 이 대회에서 이란팀은 참가국 중에 평균신장이 가장 크고(184cm) 반대로 베트남은 가장 키가 작다(175cm). 수치상으로는 거의 9cm 차이가 난다.[24] 페어플레이 점수는 예선에서 경고를 적게 받을 수록 올라간다. 베트남은 경고가 5개, 레바논이 7개였기 때문에 베트남이 페어플레이점수가 앞섰다.[25] 1라운드 24강 조별리그 - 2라운드 16강 토너먼트 - 3라운드 8강 토너먼트[26] 승점만 놓고 보면 이전 최종예선에 올라왔던 태국과 같지만 승수를 챙겼다는 것과 자이언트 킬링이라는 점에서는 궤를 달리 한다.[27] 월드컵 우승국, 각 대륙컵 우승국, 개최국이 진출한 8개국 대회[28] 21강 조별리그에서 탈락[29] 기존의 베트남 축구는 신체적 한계 때문에 일본식 스시타카 스타일을 주로 벤치마킹했었다. 2018년 스즈키컵 개막 직전 여러 동남아 언론들의 베트남 국대 소개로 "그동안 봐왔던 베트남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 꼽아왔다.[30] 재밌게도 한국에서는 그런 인식이 잘 없다. 한국은 정해진 스타일이 없거나 아직 찾지 못했거나, 빌드업 축구를 주력으로 구사한다고 생각하며 위에서 정의한 스피드+난투형 축구는 스타일이 아닌 일종의 날빌, 승부수 개념으로 본다.[31] 물론 베트남 기준이 아니라 박항서 본인, 즉 한국식 기준이다.[32] 2023년 9월 19일 기준.[남베트남] 현 베트남의 국체는 북베트남을 계승했지만, 축구의 경우 북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은 FIFA의 인정을 받지 못했으므로 남베트남의 기록을 계승한다.[16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32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48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남베트남] [A] 이 대회는 지역예선에서 본선 아시안컵에 들어갈 자리가 단 4자리(4강) 아시안컵으로 현재 24자리 아시안컵보다 아시안컵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로 지역예선 통과 후 4강 본선 아시안컵 진출이었다.[A] [4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5개팀] (5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6개팀] (6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12개팀] (12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16개팀]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16개팀]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46] 2007아시안컵 당시에는 16강 조별리그 다음 8강부터 토너먼트가 시작이었지만 2019아시안컵부터는 지역예선에서 본선 아시안컵에 들어갈 자리가 24자리로 확대되어 첫 24강 본선이라서 2라운드가 16강 조별리그에서 16강 토너먼트로 바뀌었다.[47] 총성적은 1승 1무 3패, 승점 4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