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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 184 |
등재연도 | 200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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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전통 예능으로, 남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던 유랑극단이었던 남사당패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떠돌아다니면서 주로 서민 관객들을 위해 그들의 레퍼토리를 공연하였다.
2009년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되었으며, 1964년 12월 7일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남사당패의 대장격인 인물은 꼭두쇠로 불렸는데, 하술할 유명한 바우덕이가 최초의 여자 꼭두쇠였다. 경복궁 중건 현장에서 공연하고서 흥선대원군에게 천민 놀이패로서는 처음으로 종3품 직위를 받기도 하였다. 이 시기 경기도 안성시에 거점을 잡았으며 안성시 청룡사에 기거하였다.
2. 역사
남사당은 남자들로 구성된 유랑예인(流浪藝人)집단으로, 조선조 후기부터 1920년대까지 우리나라 농어촌을 떠돌아다니며 민중에게 즐거움을 제공하였다.이 남사당놀이는 우두머리 곧, 모갑인 꼭두쇠를 정점으로 풍물(농악)·버나(대접돌리기)·살판(땅재주)·어름(줄타기)·덧뵈기(탈놀음)·덜미(꼭두각시놀음) 등으로 재인(才人)·광대(廣大)의 가무백희(歌舞百戱)의 전통을 이어 왔다.
바우덕이(金巖德)는 1848년(헌종 14)∼1870년(고종 7). 조선후기의 예능인이다. 바우덕이는 열 다섯 살에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여자로써 남사당패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되어 남사당패를 이끌던 천재 예인이다. 정확히는 조선 최초의 연예인이다.
1848년 안성의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1853년에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불당골에서 남사당패에 맡겨져 줄타기, 살판 등의 남사당 놀이를 익히게 된다. 바우덕이가 15세 되던해에 안성남사당패의 꼭두쇠가 연로하여 새로운 꼭두쇠를 선출할 때 바우덕이가 어린 나이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고 한다.
이후 바우덕이가 이끄는 남사당패는 전국적으로 그 명성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에 지친 노역자를 위로하기 위해 남사당패를 불러서 공연을 펼쳤는데 그 때 뛰어난 공연으로 고종과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정3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하사받는다. 바우덕이는 이후에도 전국을 돌면서 남사당을 대중공연으로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힘든 유랑 생활 속에서 폐병을 얻어 1870년 2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1]
3. 종류
- 풍물(농악대)
- 버나(사발돌리기) : 약 40cm 가량의 나무막대로 사발을 돌리며 각종 묘기를 선보인다. 돌리는 사람과 소리꾼과의 재담도 백미.
- 어름(줄타기)
4. 같이보기
[1]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에 무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