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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7 06:59:07

대진제국지열변


大秦帝国
대진제국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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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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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제국지열변
大秦帝国之裂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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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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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제국지종횡
大秦帝国之纵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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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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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제국지굴기
大秦帝国之崛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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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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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부
大秦赋
大秦帝国之裂变 (2007)
대진제국지열변
파일:대진제국 열변.jpg
장르 중화권 사극
연출 황건중, 연예[1]
극본 손호휘
원작 손호휘 《대진제국》
출연 허우용, 왕즈페이, 고원원
음악 자오지핑

1. 개요2. 줄거리3. 문제점4. 등장인물
4.1. 진나라 : 변법지지파4.2. 진나라 : 변법반대파4.3. 위나라4.4. 기타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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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CCTV에서 제작하여 방영했던 대하사극 시리즈로, 중국의 역사학자 손호휘가 지은 소설 대진제국을 드라마화한 시리즈의 제 1편. 갈라진 천하를 통일한 통일제국 진나라의 역사를 풀어냈지만, 워낙 긴 시기를 다뤄야 하는 까닭에 기획에서는 6부작으로 나누기로 했었다.[2] 본 시리즈는 시리즈의 제 1부작이며, 진의 25대 군주인 진 효공을 중심으로, 변법을 통하여 진나라의 천하통일 대업의 주춧돌을 쌓은 상앙과 효공의 형인 영건, 귀족 대표인 감룡 등의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전개된다. 총감독은 황젠중(황건중)이며 총 51부작.

2. 줄거리

드라마의 첫 시작은 진나라위나라 사이에 벌어진 하서대전이다. 진나라 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하던 위앙[3]은 진나라 병사들이 하나같이 갑옷도 입지 않고 덤볐음에도 도망치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음을 발견한다. 함께 출전한 그의 사부인 승상 공숙좌에게 견벽거수책을 건의하지만, 원군을 이끌고 온 공자 앙[4]은 이 의견을 무시하고 공숙좌에게 무안을 준후, 총공격을 제시한다. 진나라 진영은 사기가 충천했지만, 가난한 진나라의 사정상 갑옷을 제대로 갖춘 병사가 얼마 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군량도 부족한 상황. 전투에서 진 헌공의 큰 아들인 영건이 정예부대를 이끌고 나가지만, 곧 포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둘째 아들인 영거량(훗날의 진 효공)은 경병[5]을 이끌고 공숙좌를 생포하는 공을 올리지만, 그는 계속 퇴각을 건의한다. 이 전투 다음날 진 헌공은 공자 앙의 부대가 발사한 독화살을 맞고 중상을 입고 쓰러지며, 그는 병상에서 영거량에게 군대의 통수권을 넘긴다. 영거량은 퇴각령을 내리고, 공숙좌를 포로로 끌고 간다. 상처가 어느 정도 회복된 헌공은 후계를 고민하고, 주변에서는 용감한 장수인 큰아들 영건에게 공위[6]를 넘길 것을 건의하지만, 헌공은 퇴각을 요청하던 신중한 거량을 마음에 두기 시작한다. 큰 아들과 독대를 한 그는 넌지시 다음 군주에 대한 생각을 물으며, 영건이 자신의 오른손 약지를 직접 잘라 맹세를 하게 한 후, 영거량에게 공위를 넘길 것을 선포한 후, 눈을 감는다.

공위에 오른 영거량(이후 효공으로 호칭함)은 공숙좌와 담판을 지어 함곡관[7] 일대를 비롯한 하서지역을 위나라에 넘기고 위의 침략을 멈추는 조건으로 협상을 진행하여 국력을 회복할 시간을 벌고자 한다. 그러나 군권을 쥐고 있었고 공숙좌의 정적인 방연은 위의 천하통일을 위하여 배후의 적인 진나라를 멸망시켜야 한다고 한결같이 주장하고 있었고, 탐욕스런 위혜왕을 부추겨 협약을 깨고 6국동맹을 맺어 진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한 계책을 내놓는다. 효공은 영건을 비롯한 측근들과 지혜를 모아 위기를 간신히 수습하여 6국 동맹을 흔들어 버리지만, 국력의 약함을 절실히 깨닫고 천하에 인재 모집령을 선포한다. 이를 위하여 측근 중 하나인 경감을 상인으로 변장하여 타국에 첩자로 파견을 보내고, 여동생인 형옥 공주는 자발적으로 함께 길을 떠난다.

한편, 스승인 공숙좌가 죽은 후, 그의 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남아있던 위앙은, 공숙좌가 죽기 직전 위혜왕에게 위앙을 천거하며, "쓰시지 않을거면 위앙을 죽이라"는 말을 남겼던 까닭에 방연에게 견제를 당하고 있었다. 위앙의 재능을 눈여겨 보고 있던 객잔 동향춘의 주인 백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채 위앙을 돕는 한편, 진나라에서 인재를 모집하고 있고, 그와 동향춘에서 얼마 전에 바둑을 두던 상인은 사실 진나라의 첩자라는 사실을 은근히 흘린다. 방연은 공숙좌의 사람이었던 위앙을 쓸 생각도, 곱게 살려둘 생각도 없었는데, 이를 알아챈 백설이 손을 써서 위앙은 위나라에서 탈출하여 일단 제나라의 직하 학궁으로 가서 맹자와 논쟁을 벌이며 이름을 알린다. 그러나 제나라에도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위앙은 진나라에 들어가기로 한 후, 얼굴을 튼 사이가 된 경감에게 찾아가서 효공의 인재령에 응할 것임을, 그러나 특별한 대접을 받을 생각은 없음을 알린 후, 진나라에 들어간다. 효공은 모인 인재들에게 일괄적으로 벼슬을 주는 대신, 통행증과 노잣돈을 받고 진나라의 곳곳을 한 달간 시찰한 후에 정책을 낸 사람을 채택할 것임을 알리는데, 여기에 가장 먼저 호응했던 사람이 바로 위앙. 그는 한달간 온갖 고생을 한 끝에 돌아와서 나름의 방책을 세운 후, 효공을 떠보기 위하여 궁궐에 들어가 우선 유가에서 말하는 도덕정치론을 설파한다. 그러나 효공은 시큰둥. 또 한 번의 자리를 마련해준 효공에게 이번에는 도가의 무위자연론을 펼쳐서 다시 한 번 효공을 떠본다. 영문도 모르고 답답해 죽으려고 하는 경감에게 한 번 더 자리를 마련해줄 것을 부탁한 위앙은 이번에는 제대로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고 구체적인 방책을 제시한다. 이후 효공은 원로 대신들의 반대를 막기 위하여 연기를 하며 위앙의 변법을 실시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때가 되자 위앙을 진나라 최고위직인 대량조로 임명하고 변법을 만들고 집행할 전권을 위임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상대부 감룡과 중대부 두지로 대포되는 구 귀족 세력과 진나라의 토착 부족인 맹, 서, 백 3족의 족장은 격렬한 반발을 하며 먹구름을 드리운다.

당시 전국은 변법을 도입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변법은 일종의 관습법으로 유지되던 나라의 관행들을 보다 효율적인 제도를 만들고 엄격하게 실행하는 것을 골자로 했는데, 이 과정은 당시 기득권인 각 국가의 귀족세력 내지는 토호들에게 매우 큰 손해가 되는 것이 많았기에 실행방법은 나라마다 제각각이었다. 드라마에서는 변법을 제대로 집행하는 나라로 제나라와 한나라[8] 정도가 있었는데, 진나라는 이들보다 변법을 늦게 시작했지만, 훨씬 확실하게 밀어붙이는 것으로 나온다. 이를 위해 효공이 위앙에게 얼마나 큰 신뢰를 주었고, 얼마나 막강한 권한을 주었는지가 드라마 중반 내내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사건은 변법 도입 초기에 일어났던 부족간의 다툼 문제, 그리고 효공과 위앙을 이간질하기 위하여 조정대신(주로 감룡과 두지)들이 계략을 세워 태자가 사고를 쳐 궁에서 쫓겨나게 된 사건이었다. 특히 태자가 쫓겨난 사건은 문제가 무척 심각했는데, 태자를 벌할 수 없어서 태자의 사부인 공손가는 묵형(얼굴에 글자를 새기는 형벌)을, 영건은 의형(코를 베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이 사건은 백성들에게 법의 엄정함을 심어주었으나, 영건과 공손가에게는 씻지 못할 원한을 심어주고 말았고, 이는 극중 후반부에 위앙이 숙청을 당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고 만다.

변법을 적용한 지 10년동안 진나라는 몰라보게 국력이 신장한다. 이렇게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위앙은 비밀리에 신군을 조직하고 훈련을 시작하여 위나라에게 빼앗긴 하서지역을 수복할 준비를 한다. 한편으로는 위나라의 새 승상 공자 앙을 흔들어서 방심하게 만드는 양면책을 구사하는데, 마침 방연이 그 유명한 손빈의 계략에 걸려 마릉 전투에서 비참하게 전사하여 대진 강경책을 주장하던 사람은 하서 수비군 사령관인 용가 한 사람만 남게 된다. 이를 놓치지 않은 위앙은 군사를 일으켜 하서 지역을 되찾고, 동시에 수도를 악양에서 함양으로 천도하여 진나라의 위상을 끌어올리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변법 시행으로 누적된 사회적 피로와 더불어 상사병[9]과 과로로 인한 중병은 점차 효공을 시들어가게 했고, 결국 그는 함곡관을 돌아보며 천하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만족하며 피를 토하며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태자 영사가 즉위하니, 그가 훗날의 혜문왕이며, 2부인 대진제국지종횡의 주인공[10]이다. 그는 결국 대신들을 달래기 위하여 위앙을 거열형으로 처형하는 것으로 드라마가 끝난다.

3. 문제점

아무리 주인공 보정이라고는 하지만, 상앙과 법가를 지나치게 미화하여 스토리의 상당부분을 역사왜곡으로 만들어 버렸다. 드라마 후반에 나오는 혜문왕과 상앙과의 관계 설정이 가장 대표적인 오류이며, 또한 위나라의 침공을 막기는 했지만, 결국 양패구상의 결과로 끝나는 바람에 비참하게 자살하는 것으로 나오는 신불해도 드라마의 피해자. 거기다 묵가와 진나라 왕실의 관계 설정은 말 그대로 드라마이며, 묵가 처녀와 효공의 로맨스는 선을 넘어도 아득히 넘어버린 셈이라 이 드라마에서 가장 평이 엇갈리는 부분.

기존의 세족 세력은 그 수장인 상대부 감룡[11] 정도를 제외하고는 자신들의 이득만 관심이 있는 적폐세력으로 설정하여 선악의 구도에서 벗어나 기존 보수파와 변법파와의 흥미진진한 정치 전쟁을 기대했던 사람들로 하여금 아쉬움을 주지만, 이는 역사 기록에서도 어느 정도 교차검증이 되는 면이 있어서 무조건적으로 드라마의 오류라 하기에는 애매한 면도 있다.

또한 변법 시행 과정에서 백성들이 법을 수호하자며 보여주는 모습은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해당 드라마가 공영방송인데다 중국 본토의 드라마인지라 다분히 공산당의 통치를 따르자는, 일종의 정권 프로파간다로 해석될 수도 있어서 시청하는데 있어서 보는 사람에 따라선 다소 거슬릴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전투 장면이 복붙으로 처리되었다든가, 혹은 무협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부분도 아쉬운 점. 단, 이 부분은 제작진에서 정확하게 인지하여 2부작부터 감독과 각본가가 교체되어 상당부분 개선되었다.

4. 등장인물

4.1. 진나라 : 변법지지파


4.2. 진나라 : 변법반대파


4.3. 위나라


4.4. 기타인물


[1] 약 10년 뒤 후속작 대진부를 연출하게 된다.[2] 다만 최종적으로 진시황의 천하통일을 이루는 시점에서 4부작으로 시리즈가 최종완결되었다.[3] 상앙의 본명은 여러 가지로 전해지는데, 드라마에서는 그가 옛 위(衛)나라 사람이라서 "위앙"이라는 이름을 주로 사용하며, 훗날 변법이 성공했음을 쳔명한 효공이 상읍을 봉지로 하사하면서 상앙이라는 이름과 병행하여 불린다.[4] 위 혜문왕의 동생으로, 극중에서는 상당히 탐욕스럽고 무능한 캐릭터로 나온다.[5] 갑주 없이 칼이나 창만 든 병사들로 구성된 부대. 이 부대는 극 초반에만 등장하며, 진나라의 가난을 보여준다. 물론, 변법이 성공한 이후에는 그런거 없다.[6] 아직 진나라는 왕을 선포하지 않았고, 군주는 백작위였다. 드라마에서 군주에 대한 호칭은 "진공(秦公)"이다.[7] 이 드라마의 대표적인 고증오류. 당시 함곡관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다.[8] 한나라는 상앙의 등용보다 조금 앞서 변법가 신불해를 승상으로 등용한 상황이었다.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신불해를 실패한 정치가로 만들어서 말이 많았다.[9] 즉위초에 민정시찰을 나갔다 우연히 만나게 된 묵가 처자 한 사람을 짝사랑하게 되었는데, 맺어질 수 없기에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던 것. 그의 부인은 이미 죽은 것으로 나와서 극중 효공은 죽 솔로였다.[10] 여기서는 추방되었던 10년간 변법의 힘을 깨닫고 위앙을 존경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코너에 몰린 위앙이 오히려 혜문왕에게 자신을 제물로 내주고, 그 대신 노대신들을 잡을 계책을 알려주는 것으로 상황을 설정한다. 성격도 서로 다른데, 열변에서의 영사는 매사에 신중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라면, 종횡에서의 영사는 매사에 신중하면서도 불같이 화끈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11] 상앙의 변법을 반대하고 대신 효공 이전 진나라 시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신정 개혁을 주장하였으나, 상앙을 전적으로 밀어주었던 진 효공에 의해 완전히 묻혀버리고 본인은 효공이 죽을 때 까지 긴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12] 진나라의 실무를 총괄하는 직책. 당시에는 승상 포지션.[13] 진목공때의 재상인 백리요의 자손. 학식이 깊은 현인.[14] 진나라를 구성하는 주요 부족 중의 하나. 극중에서는 맹족, 백족과 함께 늘 세트로 등장한다.[15] 상하이 사람으로 장제스 특유의 오어 말투를 능숙하게 익혔고, 이를 계기로 <서안사변>이라는 드라마에서 처음 장제스 역을 맡게 되었다. 이후로 줄곧 수 많은 작품들에서 장제스 역을 맡아 장제스 전문 배우로 장평이 나있었다. 2014년 향년 73세의 일기로 타계하였다.#[16] 이후 2부 대진제국지종횡에서도 다시 한 번 감룡 역을 맡았다.[17] 효공이 새로운 직책에 임명한다는 전교를 내릴 때, 감룡은 공손히 "명 받드나이다"라고 절을 하지만, 두지는 "뭐요? 맨날 사당에서 향이나 피우라는겁니까?!"라고 하며 반발하다 감룡이 눈치를 주어 불만 가득한 얼굴로 "명받듭니다"라고 인사한다. 감룡과 두지의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며, 두지가 얼마나 소인배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18] 얼굴에 죄인이라고 글자를 새기거나 낙인을 찍는 형벌.[19] 죄인의 코를 베어버리는 형벌.[20] 다만 실제 역사서에서는 태자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별도의 다른 벌을 받고, 이후 모종의 이유로 법을 어겨 의형을 받았다고 나와있다. 아마 실제 역사와 달리 드라마에서는 변법을 지지했던 인물로 나와 법을 어기는 모습이 나오면 이와 모순이 생기기 때문에, 태자사건을 계기로 의형을 받았다고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21] 훗날 대진부에서 조나라의 명장 이목 역할을 맡게 된다.[22] 원래 영질(嬴疾) 이라는 이복동생이 있지만 해당 작품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2부 대진제국지종횡에서는 등장한다.[23] 훗날 대진제국 시리즈 3편 대진제국지굴기와 4편 대진부에서 평원군을 연기하게 된다.[24] 함곡관과 하서 지역을 할양하고 평화협정을 맺기로 조약한 직후, 방연의 부추김으로 아예 진나라를 6국이 분할하려고 계략을 짜고, 이에 경악한 공숙좌가 펄펄 뛰며 말리나, 진나라 땅을 먹을 생각에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공숙좌가 왕을 설득하여 협정을 맺은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협정 전에는 할양할 땅을 보고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 방연의 이야기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왕의 모습이 돌연 바뀐 것은 그가 팔랑귀라는 것을 보여준다. 왕인데도...[25] 대만 출신의 배우로 이후 2편에서 다시 한 번 혜왕 역할로 나와 혜왕의 경솔함의 극치를 보여준다.[26] 사실 이 의견은 위앙이 자신의 스승을 구하기 위하여 진나라의 감옥으로 찾아와 담판을 지으면서 제시한 계책이었다.[27] 영화 적벽대전유비, 초한전기옹치 역을 맡았다. 후속작 대진부에서는 왕전으로 출연한다.[28] 드라마에서는 이름만 등장하나, 실제 역사에서는 오랫동안 위군을 이끈 명장이다. 혜왕 이후 위의 군부를 이끌었다는 기록이 있다.[29] 그가 들고 다니는 창은 특이하게 다과극이다.[30] 이후 대진제국지종횡에서 다시 나온다 죽은 용가가 부활했다![31] 공자 앙의 부대가 쏜 독화살에 맞았고, 이 상처가 악화되어 숨을 거둔다. 참고로, 독화살이라기보다는 거의 투창 정도의 큰 화살이라 고령의 헌공이 즉사하지 않은 것이 기적일 정도.[32] 후속작인 대진부에서는 순자로 출연한다.[33] 무릎뼈를 부수는 형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