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표는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을 물었을 때 개별 응답에 대한 순위를 나타낸다. 따라서 좋아하는 대통령이 여러 명일 경우 그 중에서 1명밖에 선택할 수가 없어서, 이미지는 대체적으로 호감이지만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은 아닐 경우 순위가 낮아진다. 이런 사례는 대표적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2023년 한국갤럽에서 역대 대통령에 대한 개별 평가를 조사했는데 김영삼은 노무현, 김대중, 박정희에 이어서 네 번째로 좋은 결과가 나왔다. # 이하는 갤럽 조사에 따른 대통령에 대한 개별 평가이다.
윤보선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제2공화국 시기의 상징적 대통령이라 조사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윤보선 대신 당시 정부수반이었던 허정이나 장면을 대신 넣는 경우도 있으나, 이들 역시 재임기간이 너무 짧고 인지도가 낮아 표를 많이 받지 못한다.
박정희는 긍정 61%, 부정 25%으로 보수 진영 대통령 중에서는 압도적인 1위이고 역대 대통령 전체를 통틀어도 노무현과 1, 2위를 다툰다. 보수 성향 유권자 중 80%가 긍정 평가했으며, 50대 이상의 중년~노년 계층에서도 긍정 평가가 80%를 넘는다. 특히 국민의힘 지지자와 70대 이상[2]에서는 무려 90%대로 굉장히 높은 긍정평가를 기록했다. 대체적으로 평가가 박한 반대 진영 유권자에게서도 긍정 평가가 높다. 이유는 역시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 성장이 가장 크다.[3] 거기다 이 세대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인해 전 국토가 피폐해진 상태에서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이니 더더욱.
최규하는 부족한 존재감과 짧은 재임 기간으로 인해 막연하게 존재감 없는 대통령으로만 인식될 뿐, 대통령으로서 평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때문에 윤보선처럼 조사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으며, 설령 나온다 해도 최하위권을 면치 못한다.
전두환은 긍정 18%, 부정 71%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평가가 나쁘다. 전두환 재임 시절이 대한민국 경제의 최고 호황기였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유를 전임자 박정희의 경제 정책과 당시 세계 경제의 유례없는 호황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전두환 덕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집권 과정부터가 12.12 군사반란-5.17 내란-5.18 민주화운동 무력 탄압-체육관 선거로 정권의 정당성 자체가 굉장히 떨어지고[4] 물러나서도 29만원 같은 일화로 논란이 되었다. 때문에 진보 진영에서의 평가는 말할 것도 없고, 보수 진영에서의 평가도 저조하다.
노태우는 긍정 21%, 부정 49%로 조사됐다. 특이한 점은 노태우가 역대 보수 진영 대통령 중 보수층에서의 평가가 가장 나쁘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반대 진영에서는 전두환에 비해 평가가 확실히 좋다는 얘기다.[5] 엄연한 민주화 이후 첫 직선제 선출 대통령이지만 어쨌건 전두환의 친구이자 신군부 출신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이 있다. 역대 보수 진영 대통령 중 노년 계층에서의 부정 평가가 두드러지며,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긍정이나 부정 평가보다는 잘 모르겠다는 비율이 높아진다.
김영삼은 긍정 40%, 부정 30%로 역대 보수 진영 대통령 중 박정희와 함께 긍정평가가 부정평가에 비해 높은 단 둘뿐인 대통령이다. 다만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을 조사하면 그놈의 IMF 사태 때문에 하위권을 면치 못한다. 그래도 하나회 숙청과 금융실명제 실시,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등 대통령 시절의 공이 발굴되어 뒤늦게나마 재평가되긴 했다. 전 연령층에서 긍정평가가 부정평가에 비해 높지만 젊은층인 20대와 30대에서 긍정평가 비율이 높다. 몇몇 정책이 이후 청년 계층을 어렵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지만[6], 김영삼이라는 인물이 대한민국 정치권의 고질병인 도덕성 측면에서 평가가 좋다보니 전체적인 평가는 대체로 나쁘지 않다.
김대중은 긍정 68%, 부정 14%로 부정평가가 역대 대통령을 통틀어 가장 낮다. 민주당계 정당의 중시조로 대우받는 인물이라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내에서의 평판은 좋지만 인기 자체는 노무현에 밀린다. 특이한 점은 민주당계 진영 대통령이지만 노년층에서 긍정평가가 높고[7] 젊은층에서는 상대적으로 저조한데, 전임자 시절부터 시작된 IMF 경제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실시한 영향이 컸다. 실제로 김대중의 경제 정책은 제6공화국 대통령 중 이명박 다음으로 우파의 가치관에 가까웠다.
노무현은 긍정 70%, 부정 15%로 역대 대통령을 통틀어 긍정평가가 가장 높다. 최초로 팬클럽이 생긴 정치인답게 인기가 매우 많은 편이다. 민주진영과 10대부터 40대까지의 연령층에서의 지지도가 압도적이다. 다만 연령대가 높아지면 같은 민주 진영 대통령인 김대중에 비해 긍정평가가 낮아진다.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 다른 조사에서 응답자의 56% 가량이 기타를 답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인 노무현의 업적보다는 인간 노무현의 일화와 가치관을 좋게 본 경향이 강하다.[8]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을 묻는 설문조사에서는 박정희와 1, 2위를 다투는 편이다.
이명박은 긍정 32%, 부정 54%로 역대 대통령 중 부정평가가 세 번째로 높다. 노년층에서 긍정평가가 조금 높은 후임 박근혜와는 달리 이명박은 전 연령층에서 부정평가가 우세하다. 특히 40대 계층에서의 평가가 거의 모든 대통령을 통틀어 최하위권일 정도로 나쁜데, 그들이 이명박 정부 당시 20대 중후반~30대 초반 정도의 사회초년생이었던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세대를 벗어나면 박근혜나 전두환에 비해서 평가가 좋아진다. 그보다 어린 세대는 이명박 정부 당시 유치원생 내지 초등학생이었거나 나이가 많아봐야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이명박의 경제 정책을 체감할 만한 세대가 아니고, 그보다 연령대가 높은 계층은 이미 사회에서 쌓은 재산이 많아서 이명박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으로 피해를 볼만한 세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긍정 21%, 부정 66%로 전두환 다음으로 평가가 나쁘다. 사실 집권기 중후반까지는 경제 상황이 전임 이명박 시절에 비해 좋아져서 지지율이 40% 중반대에서 오가는 등 평가가 나쁘지는 않았는데, 집권 4년차에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대중적 이미지가 엄청나게 실추됐다.[9] 또 2015년 위안부 협정, 박근혜 대통령 중국 전승절 참석 논란이라는 6공 이래 최악의 외교 실책이 이후에 재발굴되는 바람에 보수 이외의 진영에서 긍정평가는 매우 처참하다. 그래도 70대 이상 노년층에서는 긍정평가가 부정평가에 비해 높고 특유의 강성 팬덤이 완전히 죽은 건 아니라서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을 물어볼 때도 어느 정도 응답률이 나온다.
문재인은 긍정 38%, 부정 46%로 민주 진영 대통령 중 유일하게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높다. 20대와 40대를 제외한 연령층에서 모두 부정평가가 우세하며, 특히 60대와 70대 이상의 노년층에서는 역대 대통령을 통틀어 가장 부정평가가 우세하다. 부동산 정책 실패와 각종 사건사고로 인해 정권 재창출에도 실패했다. 임기 초반기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을 통틀어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으며, 임기 내내 높은 지지율과 인기를 구가했다.[10] 정권의 주요 정책이 후임 윤석열 정부에 의해 전부 뒤집히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의 성패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여지가 있다.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을 묻는 설문조사에서도 꾸준히 3~4위를 차지한다.
위 조사는 대통령의 '호감도'를 나타낸 것이지 업적을 평가한 것이 아니므로 유의하여 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와 노무현이 1위, 2위를 번갈아가면서 하는 양상이 보이는데, 이는 두 사람이 각각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대통령이라서 생긴 결과이다.
김대중과 문재인은 중상~중위권에 속한다. 문재인 당선 이전에는 김대중이 쭉 3위를 하는 결과가 나왔으나, 문재인 당선 이후로는 문재인이 1위를 차지하거나 김대중이 5위로 밀려나는 등의 순위 변동이 생겼다.
이승만,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는 중하~하위권에 속한다. 이들은 몇몇은 과오가 뚜렷한 것도 있지만 보수 성향 응답자들이 죄다 박정희로 통일하는 경향이 있어서 낮게 나오는 부분도 있다. 이승만,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은 상대적으로 장수하긴 했지만 옛날 사람인데다 지지도도 별로 안 나와서 그런지 조사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다.
윤보선과 최규하는 임기가 짧고 존재감이 없어 대부분의 조사에서 제외된다.
윤석열은 낮은 지지율로 고생하는 것치고 순위가 은근히 높게 나오는데, 이는 보수 진영의 구심점이 되는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제6공화국 사상 최초로 비상 계엄이라는 최악의 사태로 사면초가에 놓였다.
[1] 1950년대 당시 중,고등학생 이상이었던 사람들. 이보다 어리면 정부 평가보다는 단지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때문에 좋았던 옛날 편향에 노출되기 쉽다.[2] 박정희가 통치하던 1960~19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3] 그러나 박정희의 공적보다 이병철, 최종현, 정주영, 구자경의 공적이 오히려 크다는 평가도 상당하다.[4] 박정희도 쿠데타로 집권하기는 했지만 최소한 5~7대 대선은 직접 선거로 당선됐다.[5] 사실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는 의외로 긍정적인 편이다. 범죄와의 전쟁이나 북방정책 같은 굵직한 업적들이 많이 있기 때문.[6] 대학설립준칙주의로 인한 부실대학 난립 유발(대졸 메리트 급락 및 학력 인플레 초래),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로 노동시장에 비정규직이라는 개념 탄생, IMF 사태로 인한 취업 생태계 격변, 군사정권보다도 소극적인 군인 월급 인상과 병역판정검사 기준 개악으로 한국군의 병영생활 환경 악화 등.[7] 60대 이상에서 긍정평가가 역대 대통령 중 박정희 다음으로 높다.[8] 오히려 재임 당시 지지율로 보면 노무현은 민주화 이후 대통령 중에서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다.[9] 진지하게 전두환이 더 낫다는 극언까지 나돌았을 정도.[10] 임기 후반 지지율이 40%를 유지해 마이티 덕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11] 임기 초반부터 이렇게나 낮은 지지율이 나왔던 경우는 양김의 분열 덕에 당선된 노태우 정도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