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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4 21:51:33

동거정부


同居政府
Cohabitation

1. 개요2. 국가별 양상3. 한국에서4. 관련 문서

1. 개요

이원집정부제 하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다른 정당/정파에서 배출되는 경우. 넓은 뜻으로는 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부통령이 다른 정당/정파에서 배출되는 경우도 포함한다.

여야 두 당은 주로 좌파/우파일 때가 많아 '좌우동거정부'라고도 하며, 이원집정부제 가운데 프랑스가 제일 유명하기에 프랑스어를 그대로 음차하여 '코아비타시옹'이라고도 한다.

한국의 여소야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은 대통령 선거국회의원 선거의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아무래도 대통령 임기 중후반에 벌어지는 선거는 야당이 유리하기 마련이다.[1][2]

이원집정부제 하에서 대통령-총리가 같은 당이 아닌 서로 다른 동거정부가 구성되면 각각 장단점이 있겠지만, 대통령 입장에선 그다지 좋을 게 없다. 총리가 다른 당인 소위 여소야대의 정국이 된다는 의미이므로 실권에 제약이 붙기 때문이다. 프랑스나 핀란드 같은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는 조금씩 삐걱대도 그럭저럭 굴러가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에선 대통령 vs 총리 구도의 정파간 대립사태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이원집정부제 항목도 참조해보면 좋다.

한국의 여소야대와 같이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 소속당과 의회 다수당이 다른 경우는 동거정부라고 하지 않고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라고 한다.

2. 국가별 양상

2.1. 프랑스

프랑스의 동거정부는 대통령과 총리 중 총리가 사실상의 실권을 가지는 것에 가깝다.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에 대해 프랑스 헌법의 명확한 규정은 없지만, 동거정부 자체가 총선에서 집권당이 패배하고 야당이 다수당이 된 상황으로, 대의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다수당 소속 총리에게 사실상의 실권을 넘긴다는 상징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의 동거정부는 대통령이 외교, 국방에 대한 실권을 갖고 나머지 권력은 총리가 다 가진다는 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최초이자 두 차례 동거정부를 겪었던 미테랑 대통령 시절의 선례 때문으로, 이에 대한 법적인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동거정부는 1986년에 집권여당이었던 사회당과 좌파연합이 국민의회(하원) 과반에 실패하고 보수우파가 국민의회를 장악하면서 처음 발생하였다.[3] 프랑수아 미테랑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사회당 총리를 선출해 국정운영을 하고자 했었으나, 프랑스 국민의회(하원) 내각을 불신임할 수 있었기에 결코 쉽지 않은 문제였다.[4]

결국 이런 현실적인 문제로 미테랑은 우파인 자크 시라크를 총리로 임명하고자 했는데, 시라크 입장에선 제대로 기선제압을 하기 위해서인지 아예 내각운영권을 내놓으라며 프랑수아 미테랑을 압박했었다. 이때 미테랑은 쿨하게 내치 권한을 주겠다며 양보했지만, 대통령으로써 가장 중요한 권한인 국방과 외교분야(외치)만큼은 자기소관이라며[5] 선을 긋고 마무리 지었다.

이후 1988년 대선에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재선되면서, 프랑스 하원을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실시해 다시 권력을 되찾았다.[6] 하지만 1993년 총선에서 기록적인 대패를 겪고 완전 레임덕 상태에 빠졌고,[7] 우파 정치인이었던 에두아르 발라뒤르를 총리로 임명하며 동거정부가 다시 한번 구성되었다.

그리고 미테랑의 뒤를 이은 우파 자크 시라크 대통령 시기에는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지자 의회해산을 통해 의회를 다시 구성한 후, 2002년까지 안정적으로 정부를 운영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게 도리어 악수가 되어서 97년 의회선거에서 좌파가 의회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번엔 반대로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이 총리가 되며 자크 시라크가 무려 5년동안 식물 대통령이 되었다...

이 때문에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가 달라서 동거정부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이 사방에서 제기되자, 각각 쓴 맛을 본 좌파와 우파는 2000년도에 7년이던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축소해서 국회의원 임기와 비슷하게 맞추는데 합의를 보았다.[8] 이러면 대세에 따라 대선과 총선 모두 한 정파가 한꺼번에 승리할 가능성이 높고, 대통령과 총리도 같은 당에서 배출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2002년부터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가 두달 간격으로 연달아 치러지면서 대세론에 따라서 대선에서 승리한 집권당이 총선에서도 승리하면서 동거정부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2022년 대선에서 마크롱이 58%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대선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이 577석 중 247석밖에 건지지 못해서 여소야대가 되었다. 그러나 야당이 좌파 뉘프와 극우 국민연합, 우파 공화당이 세력을 나누고 있고 서로 간 입장 차이가 너무 커서 동거정부가 실현되지는 않았고 소수정부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하원이 구성되자마자 뉘프에서 마크롱의 정당인 르네상스에서 구성한 엘리자베트 보른 내각에 불신임안을 발의했지만 국민연합과 공화당이 반대하여 부결되었다.

2.2. 루마니아

루마니아는 2010년대부터 거의 모든 정부가 동거정부로, 동거정부 체제가 장기화되다 못해 아예 일반화된 나라이다.

2.3. 폴란드

폴란드는 폴란드 제3공화국 수립 이후 법과 정의당 단독 집권시기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동거정부였다. 2024년 지금도 대통령은 안제이 두다(법과 정의당) vs 수상은 도날트 투스크(시민 연단)으로 동거정부이다.

3. 한국에서

한국에서도 한번 동거정부가 구성된 적이 있었다. 1956년 5월 15일에 열린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의 이승만이 대통령에, 민주당의 장면이 부통령에 선출된 것. 당시 선거에서 러닝메이트 제도를 채택하지 않고 정·부통령을 따로 각각 선출하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결과에 격앙한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에 의해 3.15 부정선거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1960년 선거에서 사실 대통령은 이승만 당선이 확실했다. 자유당과 경쟁하던 민주당, 진보당의 경우 진보당은 진보당 사건으로 해산되었고 대통령 후보 조봉암은 사형당해 대통령 후보를 낼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고 민주당은 후보인 조병옥이 죽어 대통령 후보가 공석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주당 부통령 후보 장면이었는데, 당시 헌법으로는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이 직위를 승계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승만은 당시 80세가 넘은 고령인지라 자유당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아니라 부통령을 확실하게 당선시켜야 했다. 하지만 이미 1956년에 이기붕이 장면에게 패배했다 보니 조급해져서 부정선거를 거하게 벌인 것이다.

제2공화국 시기에도 사실상의 동거 정부가 이루어진다. 1960년 7월 29일의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압승을 거두어 명목상으론 대통령과 국무총리 모두 민주당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실상은 달랐다. 제4대 대선에서 대통령에는 민주당 구파의 윤보선이 당선되었다. 뒤이어 총리로 역시 민주당 구파의 김도연이 지명을 받았으나 만주당 신파의 반대표로 인준이 거부된다. 마지못해 윤보선은 민주당 신파의 장면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하고 2차 투표에서 장면이 총리로 선출된다.

구파와 신파는 공식적으로는 모두 민주당 소속이었지만 이들은 정치적 기반도 출신 성분도 완전히 달랐다.[9] 예를 들어 장면의 경우 흥사단 출신의 가톨릭 교육자였지만 윤보선은 구한말 유력가 해평 윤씨 집안 출신의 귀족적 엘리트였다. 당시 대통령은 공식적으로는 상징적 국가원수이자 무소속이어야 했지만 윤보선은 그런 위치로 있을 생각이 없었기에 장면 내각은 구파와 신파간의 다툼으로 각료가 끊임없이 바뀌었다.

이로부터 61년 뒤인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초창기에 인수위 없이[10] 전임 박근혜 정부의 각료들을 바로 승계받자 일부 언론에서 동거정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유시민 작가는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표현에 대해 "이는 문재인 정부 조각 때까지 인수인계 차원에서 전임 정부 장관이 남아있는 거지 동거정부의 개념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11]

4. 관련 문서


[1] 미국에서도 중간선거는 여당의 무덤이고, 한국에서도 집권 3년차 이후에 벌어지는 지방선거와 총선은 대부분 여당이 패배하였다. 예외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로 집권 4년차임에도 여당이 60%를 석권하는 대승을 거뒀다.[2] 이 때문에 한국에서도 2007년 노무현 전대통령이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하기도 했다.[3] 샤를 드골의 대통령 재임기부터 1970년대 우파 집권 당시까지는 프랑스 공산당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지방선거에선 좌파가 승리하면서도 정작 의회 선거에서 우파가 다수를 차지하던 상황이라서 동거정부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좌파연합의 프랑수아 미테랑이 집권하고나서부터는 86-88년, 93-95년 두 차례에 걸쳐 동거정부가 형성되었다.[4] 보통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내각불신임안이 없다. 혹여 대통령이 있는 나라라도, 총리가 실권자인 경우에나 내각불심안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이다.[5] 국방부와 외교부 장관임명권, 외국대사들과 군 장성 임명권, 비상대권과 핵미사일 발사권 등.[6] 이때도 사회당은 단독과반은 실패했지만, 여러 좌파정당들의 의석수를 합해 총리 선출에는 성공했다.[7] 사회당은 전체 577석 중에서 53석을 건졌다... 집권여당이 전체 의석수의 10%도 못 건졌던 것.[8] 사실 정치라는 것이 외교, 국방과 분리할 수없는 것이기에 결국 동거정부 하에서 정치적 혼란과 갈등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어느정도 현실화된 측면이 있다.[9] 구파는 다툼 끝에 신민당을 만들고 5.16 군사정변 이후에도 구파는 민정당을 신파는 재건민주당을 설립하며 갈라섰다.[10] 전임 대통령인 박근혜가 탄핵으로 임기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물러나면서 대선이 궐위에 의한 선거로 치러졌기 때문이다. 대신 국정기획자문위원회라는 이름의 인수위를 대체할 조직을 구성했다.[11] 프랑스의 사례만 봐도, 아예 대통령과 총리(내각)가 권력을 양분해서 같이 몇년은 일해야 동거정부로 불릴만 하다. 차라리 1998년, DJP연합으로 구성된 국민의 정부(1998년 2월~2001년 9월 한정)가 동거정부로 불릴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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