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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5년 9월 20일 | ||
바이마르 공화국 바덴 자유주 하이델베르크 (現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카를스루에현 하이델베르크) | |||
사망 | 1946년 6월 9일 (향년 20세) | ||
태국 방콕 | |||
재위기간 | 태국 국왕 | ||
1935년 3월 2일 ~ 1946년 6월 9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ffe800><colcolor=#D50000> 가문 | 마히돌 가문 | |
이름 | 프라밧솜뎃 프라뽀라멘타라 마하아난타마히돈 프라아타마라마티보딘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ปรเมนทรมหาอานันทมหิดลฯ พระอัฐมรามาธิบดินทร) | ||
부모 | 아버지 마히돈 아둔야뎃 (1892 ~ 1929) 어머니 시나가린드라 (1900 ~ 1995) | ||
형제자매 | 누나 갈야니 바다나 (1923 ~ 2008) 동생 라마 9세 (1927 ~ 2016) | ||
종교 | 상좌부 불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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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국의 전 국왕. 아버지는 라마 5세의 아들 마히돈 아둔야뎃이였다.2. 생애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파리, 로잔으로 옮겨다니다가 1927년 미국 매사추세츠로 갔다.[1]1928년 태국으로 돌아오지만, 이듬해 29년에는 아버지 마히돈 아둔야뎃이 향년 37세로 사망했다. 1932년에는 시암에서 시암 혁명이 일어나 전제군주제를 폐지하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했으며, 1939년에는 국명을 시암에서 타이로 변경했다.
1934년 이복숙부 라마 7세가 퇴위하면서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정작 라마 8세는 스위스에서 유학 중이었기 때문에 의회는 아누왓짜뚜롱와 차오 프라야 욤마랏을 섭정으로 임명했다. 태국 국왕으로서 태국 땅을 처음 밟고 쁠랙 피분송크람 총리를 만난 건 1938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후에도 추축국에 가담한 태국의 국가원수였으나 이때도 스위스 유학 중이라 본국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고 전쟁이 끝난 1945년에 귀국한다.
총기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는데, 이게 죽음의 단초가 되었다. 1946년 6월 9일 아침, 라마 8세는 왕궁의 침실에서 총탄이 이마에서 후두부로 관통되어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정확한 사인은 아직까지도 불명이지만 태국 정부는 오발사고라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당대에도 총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던 라마 8세가 이른 아침에 오발사고로 죽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으며 지금도 태국 현지에서는 군부가 국왕을 암살해 놓고 사고로 위장했다는 설을 지지하는 사람이 꽤 있다. 물론 태국이 열대기후라서 덥고 습도가 높으므로, 총기 관리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사후 라마 8세의 친동생인 푸미폰 아둔야뎃이 라마 9세로 즉위하였다.
3. 가계
- 조부: 라마 5세 (1853 ~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