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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봉 공화국 초대 대통령 가브리엘 레옹 음바 Gabriel Léon M'ba | |
<colbgcolor=#151D59><colcolor=#fff> 출생 | 1902년 2월 9일 |
프랑스령 콩고 리브르빌 | |
사망 | 1967년 11월 28일 (향년 65세) |
프랑스 파리 | |
재임기간 | 초대 대통령 |
1961년 2월 12일 ~ 1967년 11월 28일 | |
배우자 | 폴린 음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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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봉의 정치인이자 초대 대통령으로, 그는 가봉의 초대 총리와 가봉의 대통령(1960~1967)을 역임했다.2. 생애
2.1. 초기 생애
1902년 프랑스령 콩고 리브르빌에서 팡족의 일원으로 출생했으며 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1920년 세관원으로 식민지 행정부에 들어갔다. 음바는 이후 뛰어난 업무 실력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가봉 주민들을 돕는 활동으로 프랑스 상관들에게 미움을 샀고, 1922년 12월 경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1924년 행정부는 음바에게 기회를 주고 그를 에스튀에르주의 수장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리브르빌 인근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사건에 공모한 혐의를 받은 그는 1931년 징역 3년, 망명 10년을 선고받았다.
우방기샤리로 망명하는 동안, 그는 팡족관습법을 문서화한 작품을 출판하는등 팡족으로부터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러한 상황을 우려한 행정부는 음바를 감시했다. 한편으로 망명 중이었음에도 행정관들에게 고용되었으며 고용 후 뛰어난 업무 성과로 1942년 감형되어 브라자빌에서 일하게 되었다.
2.2. 정치 활동
1946년 가봉으로 돌아와 팡족 등 여러 부족의 지지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가봉 혼합 위원회(CMG)를 설치하고 가봉의 독립을 주장했다.1959년 2월 27일부터 1961년 2월 21일까지 가봉의 총리직을 역임했고, 1960년 8월 17일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자마자 대통령이 되었다. 이후 경제와 정치적 구조를 다지는 기틀을 마련했지만 한편으로는 친프랑스주의자라는 비판을 들었다.
정치적 적수 장힐라레 오바메는 1964년 2월 쿠데타를 통해 잠시 대통령직을 맡았으나 며칠 뒤 프랑스가 개입하면서 다시 대통령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음바는 1967년 3월 재선되었으나, 1967년 11월 암으로 사망하였고 부통령 오마르 봉고가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