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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9 22:44:40

아사하라 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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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형 / ×: 무기​징역)
교주: 아사하라 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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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
[ruby(麻原, ruby=あさはら)][ruby(彰晃, ruby=しょうこう)]
파일:external/www.mohae.kr/4ce1d5f19a4fc2f6b158ef3ef8be255a.jpg
1990년대 당시의 사진[1]
<colbgcolor=#291873> 본명 마쓰모토 지즈오([ruby(松本, ruby=まつもと)][ruby(智津夫, ruby=ちづお)])
출생 1955년 3월 2일
구마모토현 야쓰시로시
사망 2018년 7월 6일 (향년 63세)
도쿄도 가쓰시카구 고스게 도쿄 구치소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약 170cm[2], A형
별칭 신성법황(神聖法皇)[3] / 존사(尊師)
직업 옴진리교 교주
소속 종교 옴진리교
소속 정당
죄명 대량살인, 테러
형량 사형(교수형)
수감처 도쿄 구치소
1. 개요2. 생애3. 법정화4. 2차 창작 및 대중 매체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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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하철 독가스 테러' 옴진리교 교주 사형 집행…옴진리교를 아십니까_비디오머그

일본종교인.

사이비 종교 '옴진리교'의 교주였으며, 휘하 교인들을 통해 테러를 자행한 테러리스트이기도 하다. 존사(尊師, 손시)라는 존칭 겸 별칭으로 알려져 있다.[4]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아사하라 쇼코/생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법정화

파일:AS20180706004343.jpg
2004년 법정에서의 모습[5]

파일:n-images-19181-84798875468.jpg
2017년 법정에서의 모습[6]

4. 2차 창작 및 대중 매체

5. 여담


* 지상렬2011년 9월 22일 KBS2 <해피투게더> 시즌3에서 말하기를 본인이 아사하라 쇼코와 닮아서 해외에 나갈 때마다 입국심사 과정이 길어지는 곤혹스러운 일을 치렀다고 한다. 한 번은 일본에 갔었는데 여권과 본인을 번갈아 가면서 봤다고 한다. 그리고 김어준[14]박완규 역시 비슷한 오해를 여러 번 받았다고 여러 방송에서 말해왔다.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마치 언론에 미치는 영향력이 사이비 교주 같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고 한다. 물론, 아사하라 쇼코는 2018년에 이미 사형이 집행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외국에서도 입국심사가 조금은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15]

[1] 아사하라의 사진은 1995년 체포 당시 찍힌 사진을 마지막으로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법정에 출석할 때에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언론에서는 90년대 사진을 토대로 그림을 그려서 보도했다.[2] 출처 일본 사이트에서는 아사하라 쇼코의 키를 170cm로 추정했다.[3] 자칭.[4] 본래 구루를 높여 부르는 평범한 존칭이었으나 아사하라의 악행 때문에 현재는 아사하라나 그에 준하는 사이비 교주를 가리키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절대다수다.[5] 2004년 2월 도쿄지소 104호 법정에 참석한 아사히 신문 시미즈 케이타 기자가 아사하라의 모습을 그대로 스케치하여 그린 그림이다.[6] 마찬가지로 법정에 출석한 언론 기자에 의해 스케치 되었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여러 커뮤니티에 해당 사진이 아사하라가 묘사된 가장 최근이자 마지막 그림이라고 알려져 있다. 머리숱은 여전히 풍성하지만 머리 길이는 많이 짧아졌고 풍성하던 수염 역시 수형 생활이 길어질수록 교도소에 맞게 짧아진 것이 포인트다.[7] 옴진리교에서 '포아'라는 단어가 '살인', '처리'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스포일러] 저지당하기 전까지 저지른 만행도 매우 비슷한데, 교주의 목표(아사하라와 옴진리교에게는 국가 전복, 교주 김제석과 사슴동산에게는 김제석의 영생)를 위해 공공기관의 엘리트들을 포섭하고 이들을 통해 얻은 정보로 교주의 광신도들이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다.[9] 정확한 날짜로는 1989년 12월 24일.[10] 징징이의 자살에서도 비슷한 묘사가 하나 있긴 하다. 차이점이라면 실존 여부와 등장 시간의 차이.[11] 참고로 이 대학은 사가와 잇세이가 졸업한 대학이다.[12] 사실 주모자가 아닌 다른 신자들도 가족이 온전할 수는 없었다. 실형판결을 받았던 한 신자의 동생은 몇년간 소식을 모르고 살던 형이 옴진리교 사건에 관련된 것을 알고 아내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면서 이혼 이야기를 꺼냈다. 옴진리교 탈퇴자를 지원하는 모임에서 동생을 포함한 가족에게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상담을 하는 등 여러 면에서 도와줬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집을 방문해도 방에서 나오지 않고 대화를 거부했다고. 몇 년을 괴로워하던 그를,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이혼을 거절하고 남편 곁에 남은 아내가 구원해줬다고 한다. 사회적으로는 고립되었지만 그래도 아내의 지원과 이해를 받았기에 그는 다행히 재기할 수 있었다고.[13] 본문 및 앞 각주 내용 출처: 스즈키 노부모토, <가해자 가족>[14] 이쪽 또한 가공할 정도의 혹세무민하는 행보와 대중선동력 때문에 "털사하라 쇼코", "김어죽의 뉴스교단"이라는 부정적 별명이 붙는다.[15] 실제로 일본에서는 입출국 심사 시 외모가 아사하라와 닮은 사람은 더욱 주의깊게 확인한다고 한다. 옴진리교를 여전히 추종하는 사람 중 일부가 아사하라의 수염이나 사자머리 스타일을 일부러 따라하는 사례가 있어서 비슷하면 불이익 비슷한 게 있을 수도 있다. 그의 사형 이후에도 한동안은 주시를 받았다고 한다.[16] 사실 원래 앨더니의 도로명칭은 사이비 교주나 발명가 이름을 따 지었다. 존스타운이라던지.[17] 혹은 INFJ성향도 있는게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