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63년 창단되어 1966년부터 지금까지 F1에 참가하는 맥라렌 포뮬러 1 팀의 역사를 서술한 문서.2. 브루스 맥라렌 시기
1963년 뉴질랜드인 브루스 맥라렌에 의해 설립되었다. 브루스는 영국 포뮬러 원 팀 쿠퍼의 드라이버로, 당시 3곳의 그랑프리에서 우승했고 1960시즌 월드 챔피언십에서 2위를 차지했다. 그는 호주 태즈먼 시리즈에서 경쟁하고 싶어 쿠퍼 팀의 소유주인 찰스 쿠퍼와 논의 했지만 쿠퍼는 태즈먼 시리즈 규정에서 허용하는 2.5리터 엔진 대신 1.5리터 포뮬러 원 사양의 엔진을 사용하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브루스는 자신과 그의 예비 포뮬러 원 팀 메이트였던 티미 메이어(Timmy Mayer)와 같이 맞춤형 쿠퍼 자동차로 참가하기 위해 자신의 팀을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브루스는 1964년 시리즈에서 우승했지만, 메이어는 태즈매니아의 롱포드 서킷에서 열린 마지막 경주에서 비극적으로 사망하고 만다. 이후 브루스가 제렉스(Zerex) 스포츠카를 로저 펜스키로부터 구매하기 위해 테디 메이어에게 접근했을 때, 테디와 브루스는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후 테디 메이어는 브루스 맥라렌 모터 레이싱 리미티드(BMMR)를 인수하여 궁극적으로 가장 큰 주주가 되기에 이른다.[1] 브루스가 스포츠카 레이스에 참가하는 기간 동안, 북미와 영국 등지의 경주에서 필 힐과 함께 경주했고, 1965년에는 태즈먼 시리즈에 참가했지만 끝내 우승하지 못했다. 그는 후에도 쿠퍼 팀에서 운전했지만, 그 팀의 강점이 약해짐에 따라 1966년에 자신이 만드는 레이스카로 참가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이 당시 걸프 오일의 후원을 받았으며 맥라렌은 주황색을 리버리 색상으로 선택하였다.
2.1. F1 참가 초기
브루스 맥라렌은 팀의 첫 데뷔를 1966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시작했다. 다만 외곽부분의 오일 누출로 인해 9랩만 주행하고 리타이어했었지만. 1966시즌 차는 로빈 허드(Robin Herd)가 설계한 M2B였지만, 이 차는 엔진에 약점이 있어 경쟁에 취약했다. 당시 맥라렌은 포드의 인디애나폴리스 500의 3.0리터 엔진과 세레니시마 V8을 사용하였고, 세레니시마 엔진은 영국 GP에서 팀의 첫 번째 포인트를 얻어내는데 일조했지만, 둘 다 출력이 부족하고 신뢰할 수 없는 고장이 잦았다. 67년, 브루스는 BRM(F1)의 V12 엔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지만, 엔진 수급 지연으로 인해, 초기에 12기통 대신 BRM의 2.1리터 V8을 F2 카인 M4B에 사용해야 했다. 나중에는 V12 엔진을 받아 비슷하지만 약간 더 큰 M5A를 제작했었고. 하지만 어느 차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나마 좋은 결과라고 해도 모나코에서 4위에 오른게 전부였으니.2.2. 포드-코스워스 DFV
1968년, 지난 2년 동안 맥라렌은 브루스 혼자 1대만 참가한 후, 캔-암에서 맥라렌 소속으로 경주하고 있던 1967년 드라이버 챔피언이자 같은 뉴질랜드인이었던 데니 흄을 참가시킨다. 그 해 허드 디자인 팀이 촤종적으로 설계한 새로운 M7A는 코스워스의 새로운 DFV 엔진으로 구동되었으며[2] 성능이 크게 상승했다. 브루스는 브랜즈 해치 서킷에서 레이스 오브 챔피언스를 우승했고 또한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팀의 첫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였다. 흄은 두 곳의 비-챔피언십 레이스인 실버스톤 서킷에서 국제 트로피를 수상했다. 또한 68년 말에 이탈리아와 캐나다 GP에서 우승하여 팀이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서 2위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후 M7에서 업데이트된 'C' 버전으로 참가하여 1969년에 브루스는 세 번의 포디엄 피니쉬를 하는데 성공한다. 그 해, 맥라렌 팀은 M9A로 사륜구동으로 개조하는 실험을 진행했지만, 그 차는 영국 GP에서 데릭 벨이 단 한번만 참가하는데 그친다.[3]2.3. 1970~1975 시즌
브루스 맥라렌이 사고로 사망한 후 테디 메이어가 팀을 넘겨받았다.
1970년의 개막전과 2,3라운드인 남아공, 스페인, 모나코 그랑프리 이후, 데니 흄과 브루스는 각 경기에서 2위로 마쳤지만 이후 6월, 굿우드에서 맥라렌 팀의 새로운 M8D 캔-암 레이스카를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브루스가 충돌로 사망했다. 그의 안타까운 타계 후, 테디 메이어(Teddy Mayer)가 팀의 지휘권을 소유하게 되면서 기존 드라이버였던 흄은 댄 거니(Dan Gurney), 피터 게틴(Peter Gethin)과 파트너가 되었다. 거니는 캔-암의 초반 이벤트 경기인 모스포트와 세인트조비테(St. Jovite)에서 우승했으며 이후 경기에선 9위에서 3위로 올라가는 저력을 보여주었으나 시즌 중반에 팀을 떠났다. 이런 거니의 시트를 게틴이 차지하게 되기에 이른다.
1971년 독일 GP 뉘르부르크링에서 M19A를 주행하는 피터 게틴 |
이후 1971년엔 흄이 개막전인 남아프리카 GP를 이끌면서 우승 후보로 유망하게 시작하여 서스펜션 문제로 리타이어 하기 전까지, 궁극적으로 흄, 그리고 시즌 중반에 BRM(F1)으로 떠난 게틴, 재키 올리버는 또 다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이듬해 1972 시즌은 흄이 남아프리카 GP에서 2년 반 동안의 커리어 중 팀에게 첫 GP 우승을 가져다줬고, 흄과 피터 레브슨은 그해 포디엄을 10번 이상 올라가는 등의 좋은 결과로 득점했고, 맥라렌은 그해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서 3위를 차지했다.
1972 시즌 당시 맥라렌은 폐막전인 미국 GP가 열린 왓킨스 글렌에서 조디 셱터에게 포뮬러 원 데뷔를 시켜주기도 했다. 덧붙여 1970년에는 안드레아 데 아다미치(Andrea de Adamich)와 난니 갈리(Nanni Galli)만 알파 로메오의 후원을 받아 각각 M7D와 M14B에 알파 로메오 엔진이 장착된 차로 경주했고, 이 둘을 제외한 모든 맥라렌 드라이버들은 포드-코스워스 엔진이 장착된 차로 참가하였다.
그 다음 73년 시즌엔 고든 코퍽(Gordon Coppuck)이 설계한 M23이 당시 시즌을 위한 팀의 새 차로 공개되었다. 맥라렌의 이전 주력 차량이였던 M19와 로터스의 72에서 영감을 받은 인디애나폴리스에서의 M16의 디자인 중 일부가 M23에 녹아 있었다. 흄은 좋아진 성능을 바탕으로 스웨덴 GP에서 우승했고 레브슨은 영국과 캐나다에서 그의 커리어 중 유이한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했다.
1974년엔 2년 전 로터스에서 월드 챔피언을 따낸 에메르손 피티팔디가 맥라렌으로 합류했으며 말보로가 팀의 새로운 타이틀 스폰서로 들어오게 된다. 흄은 그의 마지막 경기이자 74년 개막전인 아르헨티나에서 우승했다고 피티팔디는 브라질, 벨기에, 캐나다 GP에서 우승하여 기세를 몰아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시즌이 끝나는 폐막전, 미국 그랑프리에서 4위로 통과해 타이틀을 확보한 피티팔디는 페라리의 클레이 레가조니보다 3점 앞서 우승을 이뤘다. 그는 또한 맥라렌의 첫 번째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을 획득하는데 일조하게 되었다.
다음 1975년은 팀에게 덜 성공적이었는데, 피티팔디는 드라이버 챔피언십에서 페라리의 니키 라우다에 이어 2위에 올랐고 흄의 후임자인 요헨 마스(Jochen Mass)는 스페인에서만 유일한 GP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해 말, 피티팔디는 그의 형이 운영하는 피티팔디/코퍼수카르 팀에 합류하기 위해 맥라렌을 떠났다. 맥라렌에 있던 최고의 드라이버들이 다른 팀과 계약하면서, 테디 메이어는 당시 작가인 제럴드 도날드슨이 "의심스러운 평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제임스 헌트에게 팀의 입단을 제의했다.
3. 최고의 전성기
3.1. 1976~1979 시즌
1976년, 맥라렌은 M23D를 준비하였지만 라우다는 페라리에서 다시 강해지기에 이른다. 니키는 시즌 중반에 56점으로 챔피언십을 이끌었고 헌트는 스페인과 프랑스 GP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26점에 불과했다. 하지만 독일 GP가 열린 뉘르부르크링에서 라우다는 심하게 손상을 입어 거의 죽을 뻔했으며 치료 및 회복을 위해 다음 두 경기를 놓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는 제임스 헌트에게 있어 정말 좋은 기회 였는데, 제임스는 라우다의 부재를 기회로 살려 네 개의 GP를 더 우승하여 포인트를 쌓아 폐막전 일본 GP에서 3점만 따내면 챔피언이 되는 상황을 가져오게 된다. 당시 일본 그랑프리는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열렸으며 비가 내렸고, 경기 도중 라우다는 안전 문제로 리타이어, 헌트는 3위로 체커기를 받으면서 드라이버 챔피언십에서 우승하였다. 비록 76년 맥라렌은 페라리에게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서 패했지만 당시 세기의 배틀에서 드라이버 챔피언이 더 영광스러운 의미를 가지기에 이에 대한 관심도는 낮았다.1977년, M23은 다음 차량인 M26으로 대체되었고, M23의 마지막 경기 참가는 영국 GP에서 질 빌르너브의 포뮬러 원 데뷔이자 1회성 참가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헌트는 그 해에 세 번을 우승했지만, 당시 라우다와 페라리의 강력한 조합이 너무 강한 것으로 판명되어 헌트와 맥라렌은 각 챔피언십에서 5위와 3위 자리에 그쳤다. 맥라렌에게 이런 결과가 나왔음에도 상황은 계속 악화되었는데, 로터스와 마리오 안드레티는 1978년 에 로터스 78과 79로 그라운드 이펙트 기술을 개발하여 타이틀을 차지했던 반면, 헌트나 요한 매스의 시트를 물려받은 패트릭 톰베이는 로터스가 가지고 있는 그라운드 효과가 없던 M26으로 진지한 도전을 할 수 없었다. 1978년 말에 헌트는 로터스의 로니 피터슨을 위해 맥라렌에서 방출되어졌지만, 피터슨이 이탈리아 GP에서 사고로 사망하자 존 왓슨이 맥라렌과 계약을 맺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9년에는 개선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당시 메이어에 따르면 고든 코퍽의 M28 디자인은 "엄청난, 재앙"과 "상당히 불쾌한(diabolical)"차로 묘사되기에 이를 정도로 성능이 낮아졌으며, 후속작 M29는 M28의 이런 상황을 거의 바꾸지 못했다. 탐베이는 이후 참가했던 경기들에서도 득점하지 못했고 왓슨은 간신히 15점만 득점하게되어 연말에 컨스트럭터 8위라는 낮은 결과를 얻었다.
3.2. 1980~1985 시즌
1980년 맥라렌 레이싱은 론 데니스의 레이싱 팀인 프로젝트 4 레이싱팀과 합병하게 되었으며, 이후 말보로와의 협업을 하여 그 유명한 MP4 네이밍이 탄생하게 된다. 이 때 부터 30년 이상 지속되는 멕라렌의 론 데니스 시대가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브루스 맥라렌이 팀을 창단하고 2년 후부터 1983년까지 맥라렌은 쭉 포드-코스워스 DFV 엔진을 공급 받았었지만, 1977년 르노에서 터보 엔진 시대를 여는 EF 엔진을 데뷔하고 1982년에 경쟁팀들이 1.5L 터보엔진을 쓰면서 맥라렌 역시 터보 엔진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된다. TAG[4][5]의 자본출자로 포르쉐가 설계 및 제작해준 V6 터보엔진을 1983년부터 1987년까지 쓰게 된다. 포르쉐는 당시 자신들의 F1 엔진의 대한 자신감이 충분하지 않아서 포르쉐 이름을 붙이지 않았으나, 이후 엔진의 훌륭한 성능이 드러나면서 TAG made by Porsche라는 마크가 엔진 커버 안쪽에 붙게 된다. 이 시기 론 데니스 임기 중에서는 니키 라우다가 이 엔진을 탑재한 MP4/2로 1984년 챔피언에 올랐고, 알랭 프로스트가 MP4/2B, MP4/2C로 1985년, 1986년 챔피언에 올랐다. MP4/2는 또한 맥라렌에게 1984년, 1985년 컨스트럭터 타이틀을 주었다.
사진은 슈투트가르트의 포르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TAG F1 엔진 (TTE PO1)
1985년에는 멕라렌의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만수르 오제와 론 데니스가 맥라렌 레이싱을 바탕으로 TAG 맥라렌 그룹을 세운 것이다. 한 마디로 현재 존재하는 맥라렌 오토모티브와 맥라렌 레이싱 등의 그룹 계열사들은 바로 이 맥라렌 그룹을 모태로 하고 있는 집단으로서, 우리가 아는 지금의 맥라렌은 이때 비로소 탄생했다 해도 틀리지 만은 않을것이다.
4. 혼다 엔진 1기
4.1. 혼다와 세나
사진 속 드라이버는 맥라렌 MP4/4를 주행하고 있는 아이르통 세나.
1985년 시즌 종료 후 라우다가 떠나고, 동시에 1985 시즌 후반에는 드디어 혼다 엔진의 포텐셜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1986 시즌 혼다 엔진은 1,000 마력을 안정적으로 돌파하였으며, 명실상부 그리드 최고의 엔진으로서 그리드 최고의 섀시인 FW11, 넬슨 피케와 나이젤 만셀이라는 뛰어난 드라이버 라인업을 갖추고 있던 윌리엄스-혼다의 성능이 드러남에 따라 멕라렌은 WCC 챔피언 자리를 뺏기게 되었다.[6] 케케 로즈버그가 은퇴하고 슈테판 요한슨으로 드라이버가 교체된 다음해인 87년에는 WDC 조차 큰 폭으로 놓치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로터스-혼다의 아일톤 세나에게 3위를 뺏기기 까지 하였다. 이에 맥라렌 내부에서는 이제는 윌리엄스에게, 나아가서는 혼다 탑재 차량에게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멕라렌에게는 기막힌 행운이 따랐는데, 87년 혼다는 윌리엄스 팀 내에서 피케와 만셀의 지칠줄 모르는 팀 내 경쟁에 매우 질려하고 있었다.[7] 이에 따라 윌리엄스에 이를 해결하기를 강구했지만 윌리엄스로서도 챔피언이 될 제목이었던 둘 사이의 경쟁을 멈출 수는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혼다는 윌리엄스를 떠나 새로운 팀을 찾기로 결심하게 된다. 여기서 혼다의 선택을 받은것이 멕라렌이였으며, 무엇보다 멕라렌의 커다란 행운은 87년 당시 로터스-혼다 소속으로 참가하고 있던 아일톤 세나가 혼다와의 커낵션을 통해 멕라렌으로 들어온 것이였다.
이렇게 1988년 멕라렌이 탑재되던 엔진이 혼다 엔진으로 변경된 것과 동시에,[8] 기존에 멕라렌에서 섀시를 개발하던 스티브 니콜스, 닐 오틀리에 고든 머레이가 합류하여 디자인한 불후의 명작인 맥라렌 MP4/4를 데뷔하며 이후 다시는 못 올 눈부신 황금기를 맞이했다. 해당 시즌 멕라렌-혼다에 범접할 팀은 없었는데[9], F1에서 양민학살을 시전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혼다의 RA168e V6 터보 엔진[10]을 장착한 MP4/4는 시즌 16전중 15승,[11] 15번의 폴 포지션, 12번의 프런트 로 락업, 10번의 원-투 피니시를 기록했다. 유일하게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이탈리아 그랑프리는 프로스트가 경기중 엔진 점화플러그가 하나 망가져버려고 세나가 단 2랩을 남긴 상황에서 백마커와 충돌해 놓쳤던 것이다.[12]
물론 알랭 프로스트와 아일톤 세나가 가세했던것도 이유라면 이유이지만, MP4/4는 테스트 때 부터 두 드라이버가 "이 차량이라면 반드시 이긴다." 란 생각을 가지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고성능이었다.
1988년을 끝으로 터보 엔진 시대는 NA 시대로 대체되었지만, 80년대 버블 경제로 쌓은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개발된 혼다의 V12 및 V10 엔진들 또한 강력하기는 마찬가지였고, 고든 머레이 등의 기술자들은 MP4/5, MP4/5B, MP4/6의 명기들을 개발하여 시즌을 계속 지배하였으며,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알랭 프로스트[13]와 아일톤 세나[14]에게 총 4개의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주었고, 총 4개의 컨스트럭터즈 타이틀을 얻었다.
하지만 1992 시즌을 끝으로 엔진 공급사였던 혼다가 모터스포츠에서 철수하면서 맥라렌의 황금기는 저물기 시작했다. 1993년 시즌은 혼다를 대체할만한 포드-코스워스 엔진을 썼지만 페라리와 윌리엄스-르노와 경쟁하기엔 성능이 무척 낮았고, 이에 실망한 세나가 윌리엄스로의 이적을 결정하게 된다. 이 시기 멕라렌은 워크스 지위 유지를 위하여 엔진 공급사를 찾고 있었는데, 1994 시즌의 프리 시즌에는 당시 크라이슬러 소속이던 람보르기니의 엔진을 테스트 해봤지만 테스트 도중 엔진이 폭발하는등 내구성 문제 등을 보여 최종적으로는 결렬되고 푸조한테서 엔진을 공급받게된다. 당시 푸조는 그룹C 르망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던 제조사들 중 하나로서 멕라렌은 여기에 많은 기대를 하였지만 내구레이스와 F1 같은 오픈휠 스프린트 레이스가 지극히 다른 종류의 레이스라는 사실만을 증명하고 말았으며, 포드-코스워스 엔진을 장착한 베네통-포드[15]의 슈마허에게 WDC를, 윌리엄스-르노에게는 WCC를 넘겨주고 만다.
5. 메르세데스 1기
5.1. 메르세데스 워크스 팀 시기(1995~2009)
(1998 시즌, 맥라렌 MP4/13을 주행하고 결승선을 같이 지나는 8번 미카 하키넨와 7번 데이빗 쿨싸드.)
푸조 엔진의 저열한 내구성을 경험한 맥라렌은 1995년 시즌 MP4/10에 메르세데스-벤츠 엔진을 장착하게 되었다. 이 시기 맥라렌은 단지 엔진만 공급받는 관계가 아닌, 메르세데스-벤츠와 다임러 AG에게 금전적, 물적 지원을 받는 준 워크스 팀으로 거듭나고 있던 상태였다.
엔진을 벤츠로 바꾼뒤 출전한 개막전부터 출전한 두 차량 모두 포인트 획득을 했지만 엔진의 부실한 신뢰성은 문제가 있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점점 라운드를 거듭하며 차량의 완성도를 올렸다. 그 결과로 당해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2등을 달성하여 벤츠 엔진으로는 처음으로 포디움을 달성한다.
1997년, 말보로와의 스폰서십이 종료되며 독일의 담배 브랜드인 웨스트를 새로운 메인 스폰서로 받아들여 웨스트-맥라렌 메르세데스라는 팀을 꾸리게 되면서 벤츠의 상징적인 은색컬러를 차량 리버리에 절반을 사용[16][17], 실버 애로우라는 별명을 계승했다. 개막전 호주 그랑프리에서 첫 우승, 이후 이탈리아에서도 우승을 달성하고 스페인의 헤레즈 서킷에서 열린 유러피언 그랑프리[18]에서의 원-투 피니쉬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1998 시즌 MP4/13 테스트카와 하키넨, 쿨싸드 |
1998년과 1999년에 미카 하키넨이 드라이버스 챔피언을 먹고, 1998년에는 컨스트럭터즈 타이틀을 얻으며 다시금 맥라렌도 정점에 서게 되었다.[19]
그러나 바로 다음 시즌인 2000년부터 메르세데스 엔진의 강점이었던 베릴륨을 사용한 엔진 제작이 금지되었고, 미하엘 슈마허가 이끌던 페라리에게 타이틀을 넘겨야 했다. 그나마 2000년 시즌의 경우 7승을 따내며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2001년 시즌에는 페라리에게 무려 77포인트나 뒤처진 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2002년에는 하키넨이 은퇴하면서 키미 라이코넨이 들어왔으나, 메르세데스 엔진의 낮은 내구성과 페라리의 우월한 성능으로 인해 쿨싸드가 모나코에서 1승을 따는 데 그쳤다. 컨스트럭터 순위도 윌리엄스에게 밀려나며 3위로 끝내야 했다.
2003년 시즌은 키미 라이코넨이 미하엘 슈마허와 타이틀을 두고 끝까지 경쟁했지만, MP4-17D가 성능 대비 내구성이 좀처럼 확보되지 않았기에 겨우 2포인트 차이로 드라이버 타이틀을 놓치는 고배를 마셨다.
2004년은 더욱 상황이 나빠졌는데, MP4-19가 시즌 상반 7경기 동안 8회의 리타이어를 기록한데다가 포디움은커녕 최고 성적으로 겨우 5위를 기록하면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결국 시즌 중간에 MP4-19B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업데이트를 거쳤고, 키미 라이코넨이 2004년 시즌 유일한 우승을 벨기에에서 달성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스트럭터 순위는 맥라렌-메르세데스 파트너십 기간 중 최하위인 69포인트 5위로 급락했다.
2005년에는 쿨싸드를 레드불 레이싱으로 보내고 남은 드라이버 자리에 BMW 윌리엄스에서 선전하던 후안 파블로 몬토야를 데려와 시트에 앉힌다. 하지만 몬토야가 2전 말레이시아 GP에서 부상을 당해서 3,4전 경기는 참가하지 못했으며, 3전 바레인 GP때는 페드로 데 라 로사가, 4전 산 마리노 GP때는 알렉산더 부르츠가 대신 참가하게 한다. 당시 시즌도 더블 타이틀은 커녕 드라이버 타이틀도 얻지 못한채 르노와 페르난도 알론소에게 빼앗기고 만다.
2006시즌, MP4-21 테스트카를 주행중인 몬토야 |
2006년에는 작년 2005년 시즌과 같이 키미 래이쾨넨과 후안 파블로 몬토야의 라인업으로 시즌을 치르게 되었다. 작년 2005년 시즌의 웨스트 리버리 대신 새로운 타이틀 스폰서로 보다폰을 들여왔으며, 시즌 초반 테스트카는 파파야 오렌지 컬러를 썼으나 크롬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실버와 레드 포인트의 리버리로 변했다. 이 조화가 신선하면서도 개성이 매우 강하다는 평을 받았고, 전반적으로 차량의 에어로 다이나믹과 퍼포먼스를 끌어올리기 위해 외관에 에어로파츠를 덧대고 메르세데스 엔진에 공을 들였음이 보였다. 그리고 이번 시즌부터 에미레이트 항공과 조니 워커의 스폰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몬토야와 감독인 론 데니스간의 불화가 점점 깊어지는가 싶었는데, 급기야 시즌 중반인 7월 9일에 이르러서는 몬토야가 '다음해인 2007년부터 나스카 시리즈에 가는것으로 계약했다'라며 미국 GP F1 기자회견에서 발표하면서 맥라렌과의 관계는 사실상 그날로써 끝나게 되었다. 2006년 7월 11일, 맥라렌은 몬토야가 팀을 위해 더이상 그랑프리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로써 몬토야의 F1 은퇴가 2006년 시즌부로 확정되게 되었다. 하지만 7월 14일, 프랑스 GP 기자회견에서 론 데니스는 몬토야가 여전히 맥라렌과 계약 중이며 당초 계약 만료일까지 팀과 계약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몬토야가 빠르면 2006년 후반기부터 나스카 시리즈에서 레이스를 시작할 수 있다는 추측을 함에 이어서 계약 해지를 위해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고 사임한다면, 공개적으로 그와 맥라렌과의 계약을 종료하자고 제의하였다. 이후 몬토야는 챔피언십 8위로 시즌을 마쳤으며, 팀에서 나간 직후인 11전 프랑스 GP부터 폐막전 브라질 GP까지의 남은 경기동안 페드로 데 라 로사가 몬토야 대신 참가하게 되었다. 키미는 이번 시즌엔 알론소와 같이 7번의 그랑프리를 우승했었으나 작년 시즌과 같이 고질적인 엔진 이슈와 신뢰성 문제, 그리고 엔진,기어박스 교체 페널티로 인해 매 경기마다 손해를 많이 보아서 올해도 챔피언쉽 경쟁은 포기하는 수준에 그치고 만다. 결국 이번 시즌도 작년처럼 르노와 페르난도 알론소가 더블 타이틀을 가져가게 되었다.
5.1.1. 2007 시즌
이듬해인 2007년에는 이제껏 무수히 놓친 더블 타이틀을 무조건 기필코 얻겠다는 야망 때문인지 라이코넨을 페라리로 보내고 수백여억원을 들여 작년 챔피언 알론소를 데려와[20] 퍼스트 드라이버 자리에 앉히고 맥라렌이 그동안 준비시키고 지원해주던, F1에 처음 데뷔하는 신예 루이스 해밀턴과 팀메이트가 되게 한다.MP4-22의 압도적으로 강한 퍼포먼스와 파워로 드디어 타이틀 두개를 모두 얻는것인가 싶었지만 컨스트럭터 타이틀은 그 유명한 스파이 게이트 사건으로 날리고, 드라이버즈 타이틀은 알론소와 해밀턴이 다투다가 마지막 그랑프리에서 키미 래이쾨넨이 타이틀을 홀랑 가져가 버렸다.[21][22] 2007년 시즌 내내 맥라렌을 분열시킨 알론소와 해밀턴과의 갈등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더블 타이틀을 페라리에 헌납하는 꼴이 되어버리자 알론소는 다시 친정팀인 르노로 떠났다. 맥라렌은 르노에서 데뷔한 신예 핀란드인 헤이키 코발라이넨을 데려온다.[23]
5.1.2. 2008 시즌
2008 시즌 해밀턴의 챔프카인 맥라렌 MP4-23 |
2000년부터 내구성 문제나 팀 내 갈등으로 준수한 차를 가지고도 여러 시즌에서 챔피언십을 놓쳤으나, 결국 2008년 MP4-23이 루이스 해밀턴에게 월드 챔피언, 그것도 알론소가 가지고 있던 최연소 챔피언의 타이틀을 안겼다.[24]
해밀턴은 시즌 초반 캐나다에서 라이코넨과 피트 레인에서 충돌해 리타이어하고, 프랑스에서 포인트 획득에 실패하며 잠시 드라이버 순위 1위에서 4위로 급락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영국 그랑프리에서 2위와 68초 차이를 내는 역대급 기록을 내며 다시 챔피언 경쟁에 복귀했고, 페라리의 펠리페 마싸와 경쟁하며 팽팽한 경쟁을 이어갔다.
특히 2007년 페라리에게 드라이버 챔피언을 놓친 것을 똑같이 되갚아주기라도 한 듯, 이번에도 마지막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단 1점차로 드라이버 챔피언이 결정되었다. 펠리페 마싸가 브라질에서 제일 먼저 체커기를 받으며 1위로 들어왔었지만, 루이스 해밀턴은 마지막까지 토요타의 티모 글록을 추격하고 있었다. 토요타는 조금씩 비가 오는 상황에서 남들이 피트인하는 동안 타이어를 갈지 않고 버티면서 순위를 올리고 지켜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결국 티모 글록이 마지막 코너에서 과도하게 속도를 줄이게 되었고, 이 틈을 타서 해밀턴이 추월에 성공하면서 5위로 완주, 98포인트로 펠리페 마싸를 1포인트 앞서며 드라이버 챔피언에 등극하게 되었다.[25]
하지만 세컨드 드라이버였던 헤이키 코발라이넨의 부진으로 컨스트럭터 타이틀은 또 다시 페라리에게 헌납해야 했다.
5.2. 커스터머 팀 시기(2010-2014)
그런데 벤츠가 구 혼다 팀의 전신인 브런 GP에서 메르세데스 엔진으로 2009 시즌 드라이버 & 컨스트럭터 챔피언을 얻어내며 대활약하자 이 팀을 인수, 아예 따로 자신들의 F1 팀인 메르세데스 GP를 만들었다. 초대 드라이버 라인업은 미하엘 슈마허와 니코 로즈버그. 한편 영국 팀인 맥라렌이 각각 08, 09년 챔피언인 루이스 해밀턴과 젠슨 버튼을 기용하면서 명실공히 영국(두 드라이버 모두 영국 출신) 대표 팀의 성격을 가진것에 비해 메르세데스 팀은 단연 독일 대표 팀이라는 인상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2010년부터 기존의 페라리 vs 레드불 vs 맥라렌 구도에 이어서 벤츠의 견제까지 받게 되었다.이후에 2011년에는 새로운 스폰서로 청량음료 회사 루코제이드[26]를 얻고 열심히 챔피언 배틀에 끼여보지만 다음 2012시즌까지도 맥라렌은 라이벌인 레드불과 페라리에 비해서 항상 뒤떨어졌었고 챔피언쉽 리드도 초반에는 잘하다가 중반부터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이후 맥라렌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볼수있는 해밀턴이 2013 시즌부터 메르세데스로 이적하고, 해밀턴이 떠나게 된 자리는 자우버에서 멕시코 출신의 세르지오 페레즈를 데려와 해밀턴의 시트를 대체한다. 드라이버 라인업 변경 이후 맥라렌이 가지고 있던 영국 대표팀으로서의 이미지는 사그라들었다.
2013시즌은 개막전 이후의 바레인 GP에서는 2011년 처음 일어났던 바레인 시위의 여파로 맥라렌의 타이틀 스폰서인 보다폰의 로고 대신 보다폰의 4G 명칭인 zain 로고를 대신 붙히고 출전했었으며 스페인 GP부터는 루코제이드 로고를 당시 시즌 최종전 브라질GP까지 스포일러에 다시 붙히고 나갔다. 마지막 라운드 브라질 GP에선 보다폰 대신에 미국의 이동통신사 회사인 버라이존(Verizon)의 로고를 붙혔었다. 시즌이 중후반에 접어들자 페레즈가 팀에서 기대했던 성적에 못미치는 결과를 보여주었고, 젠슨과의 조합도 그다지 좋다고는 볼수 없었다. 시즌이 종료되기도 전에 곧바로 계약 종료를 선언해버리고나서 그 자리를 소속팀에서 키우고 있던 덴마크 출신 케빈 마그누센으로 대체한다.
2013 시즌까지 타이틀 스폰서였던 보다폰이 자사의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타이틀 스폰서에서 빠지게 되어 14시즌의 리버리는 크롬 컬러 + 기존 보다폰의 빨간색 컬러 자리에 검은색과 맥라렌의 여러 스폰서들(모빌 1,에쏘,SAP[27], 걸프에어, 조니 워커 등등)의 로고로 대체되었는데 이번 시즌엔 유독 광고데칼을 그랑프리마다 거의 매번 바꿔 붙히며[28] 레이스에 참가하였다. 아마도 시즌 개막 전에 어느 한 회사와 독점적으로 계약하지 못해서 스폰을 해주는 여러 회사들의 로고들을 돌려 써가기로 했던 것이 원인일듯 하다. 테스트 기간중에 새 차량의 성능은 이전처럼 상위권안에 들 정도. 이때 프론트 노즈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이 많았는데, 노즈의 형상이 남자의 중요부분을 연상하게 된다든가
다른 팀들의 모습과 비교하면 맥라렌의 MP4-29는 스쿠데리아 토로 로쏘의 STR9, 포스 인디아의 VJM07, 자우버의 C33과 더불어 흉측한 노즈 디자인으로 인해 논란이 되었으며, 심지어 케이터햄의 CT05는 디자인이 너무 충격적이라 볼때마다 노즈를 모자이크 해야 하는것 아니냐하는 반응도 있었다.[31] 아무튼 그렇게 맞이한 2014 시즌은 개막전인 호주 GP에서 마그누센과 버튼이 나란히 2,3위에 오르며 순조롭게 시즌을 스타트하나 했지만 이후부턴 윌리엄스,페라리에게 컨스트럭터 순위에서 점차 밀리게된다.
시즌 후반부인 미국 GP부터 최종전 아부다비 GP까지는 기존의 작은 면적에 하얀색이던 SAP 로고를 노란색으로 대문짝만하게 크기를 키워서 사이드팟이나 스포일러 쪽에 데칼을 부착했다. 이때 달라진 모습으로 변하고 난 이후 뭔가 좋은일이 생기나 했었지만 그런일은 없었다(...). 아부다비 GP를 끝내고 난 결과는 페라리에 이은 5위로 마감하게 된다. 결국 호주 GP에서의 2등,3등 피니쉬가 2014 시즌에서의 유일한 포디움 입성이 되고만다. 시즌 종료 후 페라리에 있었던 2007년 전 맥라렌 드라이버인 05,06년 전 챔피언 알론소를 다시 데려오고 마그누센은 내년 2015 시즌 리저브 드라이버로 격하하게 된다.
그리고 벤츠는 맥라렌에게 2015년까지 엔진공급은 계속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이후에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MP4-12C의 괴물같은 엔진을 자체 개발한걸 보면 자기들이 알아서 때울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33]
ESPN에 따르면 결국 맥라렌은 F1 엔진 역시 직접 개발하거나 다른 공급사를 찾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한다. 독자 개발이 만에 하나 확정된다면 새 엔진 규정이 시작된 이번 2014년의 중,후반에 개발이 완료될 전망이다.
하지만 혼다가 다시 F1 엔진 서플라이어로의 복귀한다는 소문이 슬금슬금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엔진개발은 하지 않기로 하고 대신 혼다와의 단독 공급계약을 타진하겠다고 하였다. 2014시즌의 MP4-29까지는 벤츠에서 엔진을 공급받지만, 이후인 2015년부터는 혼다에게 엔진 공급을 받게 된다고 발표했다. 이제 앞으로는 맥라렌-메르세데스 체제에서 1980년대 후반 F1을 주름잡았던 맥라렌-혼다 체제로 돌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이런 결정은 훗날 맥라렌이 최악의 흑역사를 맞게 되리라고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6. 혼다 엔진 2기
"The Power of Nightmares."[34]
"악몽의 힘"
"악몽의 힘"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왔던 맥라렌-혼다 2기는 양측에게 흑역사만을 남기고 끝나게 되었다.
과거에는 혼다의 충격적인 엔진 성능에 실패 원인이 집중되었으나, 현재는 맥라렌의 실책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2014년부터 사용된 V6 터보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은 다른 파워유닛 제조사들의 경우 2011년부터 개발을 시작했지만, 혼다는 2013년에 복귀를 발표하면서 그제서야 파워유닛 개발을 시작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술 격차가 벌어진 상태로 시작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혼다는 2016년에 들어올 계획이었으며 맥라렌은 전술했듯이 2015 시즌까지 맥라렌-메르세데스의 파워 유닛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론 데니스는 "워크스가 아니면 우승할 수 없다"며 다소 성급하게 혼다와의 계약을 진행했고, 혼다와의 독점계약을 통해 톱 팀으로의 부활을 노렸다. 따라서 혼다는 예정보다 1년 이른 2015년부터 엔진 공급을 시작해야 했다.
다음으로 맥라렌-혼다가 적용한 사이즈 제로 컨셉의 문제점도 작용했다. 사이즈 제로 컨셉은 엔진의 전반적인 크기와 패키징을 희생하여 출력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지만, 대신 차량의 뒷부분을 극단적으로 깎아내 더욱 우월한 공력 성능을 기반으로 부족한 출력을 보상하려는 설계였다. 그러나 이는 2014 시즌 페라리가 F14 T에 들어간 티포 059/3에 비슷한 시도를 했다가 실패했었던 아이디어이기도 했거니와, 혼다는 전반적인 부품의 크기 축소에 더해 터보 압축기를 V-뱅크 안에 넣는 설계를 적용했기에 압축기 용량에 한계가 있는 단점이 더 크게 작용했다. 그에 더해 토큰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던 시기여서 엔진 개발에 할당할 수 있는 토큰이 제한적이었다는 점도 발목을 잡았다.
또한 맥라렌의 섀시의 대한 자신감도 어느 정도 문제였을 수 있는데, 2016 시즌 중 당시 맥라렌 레이싱 디렉터였던 에릭 불리에는 모터스포츠닷컴과의 인터뷰 중 "우리의 섀시는 페라리와 동급이며 그들과 컨스트럭터 3위 싸움을 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발언을 내놓았었다. 그러나 맥라렌의 섀시 개발 역량이 당시 팀과 동등했는지는 의문점이 있다.
윌리엄스의 경우 2013년에는 겨우 5포인트를 획득하며 컨스트럭터 순위 9위에 그쳤지만, 2014년의 경우 압도적인 성능을 냈던 메르세데스 PU106A 파워유닛에 힘입어 320포인트로 컨스트럭터 3위를 차지했다. 반면 맥라렌은 같은 파워유닛을 사용하고도 181포인트로 전년도와 같은 순위인 컨스트럭터 순위 5위로 마쳤으며 이는 155포인트를 따내 6위를 기록한 포스 인디아와 더 비슷한 성적을 낸 셈이다.[35] 당시의 맥라렌은 같은 메르세데스 커스터머 팀이던 윌리엄스에게 지고 하위권이었던 포스 인디아에게는 성적에서 추격을 당했고, 공력 성능의 불안정함과 파워 유닛의 출력 부족으로 고전하던 페라리에게도 성적으로 지던 팀이다. 즉 혼다 파워유닛의 성능과 내구도가 처참한 것도 있었지만 맥라렌의 섀시 개발 능력이 이전처럼 최상위권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이외에도 양측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도 작용했다. 아마존에서 서비스하는 맥라렌의 다큐멘터리 <그랑프리 드라이버>에서는 혼다와 맥라렌 엔지니어링 팀원들이 언어 문제로 소통이 잘 되지 않거나, 차체가 파워 유닛과 맞지 않아 설치를 할 수 없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 등 전반적인 협업 과정에서의 문제가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6.1. 테스트
2014년 11월, 야스 마리나 서킷에서 테스트 중인 MP4-29H/1X1 |
2008년을 끝으로 철수한 혼다의 맥라렌을 통한 복귀는 F1 팬들에게 과거 세나와 맥라렌-혼다의 영광을 누린 경험을 상기시키며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고, 부진했던 최근의 맥라렌-메르세데스 시절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와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했다. 2015 시즌 참가에 앞서 맥라렌은 MP4-29의 섀시에 혼다가 개발한 V6 1.6L 터보차져와 ERS 유닛들을 임시 개발하여 실버스톤 서킷과 야스 마리나 서킷에서 각각 테스트를 시행했다. 테스트한 차량인 MP4-29H/1X1은 MP4-29를 기반으로 혼다 파워유닛의 구조에 맞춰 리어 쿼터 뷰 주변의 형상을 수정했으며, 리버리의 메르세데스 엠블럼을 혼다 엠블럼으로 교체했다.
당시 맥라렌의 개발(테스트) 드라이버였던 올리버 터비는 실버스톤 테스트 주행 전, 맥라렌-혼다의 첫 스티어링 휠을 잡게 될 예정에 들떠 트위터에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 혼다 파워의 맥라렌을 운전하는 첫 드라이버가 되어 맥라렌 F1 팀으로부터 신뢰받아 영광스럽게 느낀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후 야스 마리나에서 열린 시즌의 최종 테스트 세션에서 당시 리저브 드라이버인 스토펠 반두른도 트랙을 주행하였는데, 테스트 당일날 트랙에서 8시간을 기다려놓고, 고작 주행은 3랩밖에 돌지 못하고 다시 피트로 복귀하여 첫날 테스트를 마쳐야했다. 그는 "우리는 오늘 이미 경험이 있어서 몇 바퀴 더 돌고 싶었지만 팀은 이미 상황을 분석하고 있으며 내일을 앞두고 수리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당시 맥라렌의 레이싱 감독인 에릭 불리에는 아부다비에서의 테스트에 대해 보통 이하의 결과가 나온것에 대해 차량에 전자계통의 기계 고장이 일어난것은 분명하다며 단호하게 인정했지만 차량의 시동이 걸리고, 차고에서 나와, 몇바퀴라도 주행한것에 대해서 만족한다고 발언했으나, 둘째날엔 첫날보다 더 적은 2랩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2015년 혼다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등장한 MP4-30 |
그렇게 혼다 엔진을 받아서 진행된 2015년 헤레즈 프리 시즌 테스트의 첫 날 결과는 큰 충격을 주었다. 예전의 그 맥라렌-혼다 조합이 맞는지, 아예 다른 신생 팀인가 싶을 정도로 처참한 성능을 보여줬다. 런던 연고지의 모 퍼런 구단의 타이어 저주가 떠오르는 수준.[37][38] 메르세데스, 페라리, 르노 엔진을 사용하는 팀들이 대체적으로 비슷한 랩 타임을 기록하는 동안 MP4-30은 혼자서만 무려 10초 이상 뒤쳐있었고 그마저도 다른 팀들에 비해 얼마 달리지도 못했다. 좀 더 테스트를 진행하고 시즌에 돌입해야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겠지만, 이건 아무리 그래도 기록이 너무 처참하여 예전의 명성이 무색할 수준이다.. 바르셀로나 테스트에서는 예상 외로 순조롭게 이뤄졌는데, 시동거는 것조차 버거웠던 헤레즈와는 반대로 파워유닛의 하이브리드 파츠 하나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나름 잘 달렸고 랩타임도 준수한 편이었다.
6.2. 2015 시즌
그렇게 맞이한 2015시즌 개막전인 호주 그랑프리에서 젠슨 버튼이 11위로 마감했다. 문제는 다른 차들이 모두 리타이어해 체커 플래그를 받은 차가 11대, 한마디로 모든 차들 중에서 꼴지(...)로 들어온 셈이다. 심지어 선두였던 루이스 해밀턴과는 2랩이나 차이났으며, 거기에 더해 알론소의 프리 시즌 부상으로 대신 나오기로 한 마그누센은 엔진 문제로 레이스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리타이어해야 했다. 이날 경기는 개막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팀(레드불, 토로 로쏘, 르노 등)에서도 파워유닛 문제로 인해 그리드에 차가 올라가지도 못하고 본 경기중에서도 무려 7대나 리타이어 하는등 총체적인 난국이 벌어졌음에도 맥라렌에게 있어서 매우 처참한 결과였다. 설상가상으로 2라운드 말레이시아 GP에서는 버튼은 터보 문제로, 알론소는 ERS 문제로 둘다 리타이어 하는 대수모를 겪었다.뒤이어 중국 GP, 바레인 GP를 거치면서도 상황이 나아진 것이 없어 잦은 기계적 문제와 엔진 결함 등으로 리타이어와 출발조차 할 수 없는 DNS[39]를 반복하며 혼다 엔진과 맥라렌에 대한 평가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2015 시즌 모나코에서 첫 포인트 피니시에 성공한 젠슨 버튼의 MP4-30 |
우승은 둘째치고 포디엄은 커녕 점수나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성능으로 언제쯤 포인트를 얻는지 답답한 와중에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버튼이 8위로 마감하여 드디어 시즌 첫번째 포인트를 기록했다. 반면, 알론소는 상황이 좋아질 기미 없이 데뷔 초기 미나르디에서조차 하지 않았던 4연속 리타이어까지 기록해버리는 등, 두 드라이버 모두 챔피언의 자존심을 제대로 구겼다.[40] 모두가 알던 그 명문 팀이 맞나 싶은 수준으로 성능이 나와주질 않았으니 떠나는 팬들도 갈수록 늘어갔고 이후 캐나다 GP에서도 변변찮은 순위로 마감하였다.
다음 오스트리아 GP에서는 시즌 첫 주요 공기역학 업데이트를 도입하여 페라리의 SF15-T를 닮은 원래 노즈 디자인의 프론트 윙 대신 윌리엄스의 FW37과 레드불의 RB11의 디자인과 유사한, 마치 혼다 로고의 사각형 모양이 툭 튀어나온 듯한 전면 디자인의 프론트윙으로 대체했다. 이와 더불어 바닥의 후미도 수정되었는데, 디퓨저 쪽으로 흐르는 기압을 바꾸기 위해 후륜 쪽 차체 슬롯이 일부 절단되었다. 이 업데이트 이후, 알론소는 영국 그랑프리에서 10위로 들어와 드디어 시즌 첫 포인트를 따내게 된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첫 경기인 벨기에 GP에선 알론소,버튼 둘을 합쳐 이제까지 듣도보도 못한 105 그리드 페널티[41] 라는 말도 안되는 초대형 그리드 페널티[42]를 감수하면서 ICE, TC, MGU-K, MGU-H등 파워 트레인의 거의 대부분을 신형의 업데이트 파츠로 교체하는 초 강수를 두어 수 많은 맥라렌의 팬들을 흥분하게 하였으나, 결과는 알론소 13위, 버튼 14위로 사이좋게 멸망했다.
이후에도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렇게 드라이버 챔피언십에서 버튼은 17위, 알론소는 18위에 팀 챔피언십은 27점으로 9위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들의 뒤에는 매노어-마러시아만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였다.
시즌 폐막전 이전에는 1985년부터 30년동안 스폰서 관계를 유지해온 태그 호이어가 레드불로 떠난다는 발표를 하여 스폰서쉽에 공백이 생기게 되었다[43]
6.3. 2016 시즌
2016년 바르셀로나 프리시즌 테스팅에서의 MP4-31, 드라이버는 젠슨 버튼 |
2016 시즌 차량 리버리는 지난 시즌 차량 전면의 레드 포인트 라인을 떼내고 완전 짙은 다크 그레이 원톤으로 가게 되었다. 더욱 더 미나르디 같아졌다는 반응과 올해엔 나아질거라는 반응이 교차되는 상황. 그리고 2016 시즌에는 기존의 극단적인 사이즈 제로 컨셉을 어느 정도 포기하면서 파워유닛의 전반적인 크기를 키웠고, 그나마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개막전인 호주 GP에서는 경기 도중 알론소가 하스 소속의 구티에레즈와 충돌하여 360도로 회전하며 차량이 벽에 강하게 충돌했고, 당시 너무나도 심각한 사고였기에 알론소의 생사가 걱정되던 순간이었다. 다행히 무사히 차량에서 빠져나오며 자신은 괜찮다고 하였고, 같이 충돌한 구티에레즈가 알론소를 걱정하며 무사히 피트로 복귀했었다.
이후 2번째 레이스인 바레인 GP에서는 알론소가 호주 GP에서의 사고로 갈빗대와 기흉을 부상당해 결장해야 했고, 그를 대신하여 당시 맥라렌의 리저브 드라이버인 스토펠 반두른이 투입되었다. 이날 버튼은 KERS 이상으로 인해 차량이 느려지고 이내 문제가 생기자 리타이어했으나, 반두른은 처음으로 데뷔한 그랑프리에서 포인트권인 10위로 체커기를 받으며 본인 커리어에서 첫 포인트 피니쉬를 이루었다.
이 다음 4번째 레이스인 러시아 그랑프리에서 알론소와 버튼, 두 드라이버 모두 첫 포인트 피니쉬를 이루었으며 알론소는 6위로 피니쉬하여 8포인트를 얻었다. 최종전 아부다비에서는 알론소만 10위로 들어와 체커기를 받았지만, 버튼은 은퇴전에서 레이스 도중 8번째 랩에서 오른쪽 전륜 서스펜션이 파손되어 결국 리타이어했다.
시즌 종료 후 최종 컨스트럭터 순위는 76포인트로 6위. 특히 2016 시즌에서는 모나코나 싱가포르 같은 하이 다운포스 위주의 저속 서킷에서만이 아닌, 파워유닛의 출력도 중요한 일부 고속 서킷에서도 중위 포인트권에 들어갔기 때문에 팬들은 2017 시즌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6.4. 2017 시즌, 혼다와의 이혼
론 데니스의 해임 이후 CEO로 들어온 잭 브라운[44] |
마지막 맥라렌 혼다가 된 맥라렌 MCL32 |
2017년에는 수십 년간 맥라렌에서 일하며 만수르 오제의 TAG 그룹과 함께 레이싱 팀 맥라렌을 인수하여 현재의 맥라렌 그룹을 만들고, F1의 MP4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이끌던 론 데니스가 맥라렌 그룹의 실적과 F1 팀의 실패의 책임을 지고 해임되었다.
그의 후임으로 들어온 잭 브라운은 미국의 모터스포츠 사업가로, 취임 이후 팀 전반에 걸쳐 "론 데니스 물빼기"를 진행하였다. 리버리는 기존의 블랙/레드 맥라렌 로고 컬러에서 벗어나 창단 초창기 사용했던 전통적인 리버리인 화이트/블랙을 포인트로 넣은 파파야 오렌지 컬러[45]를 부활시켰다. 1997~1998 시즌 맥라렌 MP4/13, MP4/14와 2005~2006 시즌 맥라렌 MP4-20, MP4-21이 테스트 중 리버리로 오렌지 컬러를 잠깐 채택했던 적이 있었지만, 정규시즌 중에는 웨스트/벤츠의 블랙/실버, 보다폰/벤츠의 레드/실버 리버리를 그대로 썼던 것을 감안하면 44년 만의 부활인 셈. 차량의 명명법도 론 데니스의 MP4-** 체계를 탈피하여 Mclaren의 앞 글자에서 따 온 MCL** 형식으로 바꾸었다. 이외에도 맥라렌 내부 인력을 교체 또는 해임하면서 론 데니스 체제의 맥라렌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내 사정은 더욱 안 좋아지고 있다. 맥라렌 그룹은 맥라렌 레이싱을 눈엣가시로 취급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고 팀의 거대한 스폰서도 죄다 빠져나갔다.[46]
2017년 혼다는 사이즈-제로 컨셉의 한계를 느끼고 메르세데스와 비슷한 스플릿 터보 구조로 전환했는데, 구조를 완전 뒤엎게 되면서 2016년 조금 나아지나 했던 성능과 내구도가 다시 무너졌다. 이에 따라 WCC 최종 성적은 2015년과 똑같은 9위로 다시 추락하였고, 맥라렌과 알론소는 인내심의 끝을 맞이하였다.
맥라렌은 워크스고 자시고간에 어떻게해서든 혼다를 버리고 새로운 엔진 공급처를 찾고 싶었고, 시즌 중후반에 당시 르노와 사이가 끝장난 레드불의 하부팀인 토로 로소와 엔진 공급딜 스왑을 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2018년 부터 맥라렌의 파워유닛 공급사는 르노로 바뀌게 된다.
7. 르노 엔진 시기
7.1. 계약 과정
2018 시즌부터는 혼다와 결별하고 르노의 파워유닛을 2018~2020 시즌까지 사용하기로 결정하였으며, 토로 로쏘가 공급처 공백이 생긴 혼다와 엔진 공급 계약을 새로 체결했다.# 이 계약은 여러 팀의 이해관계가 얽힌, 상당히 복잡한 삼자협상으로 인해 성사되었다. 우선 맥라렌이 혼다 엔진을 포기하고 르노 엔진으로 갈아타는 대신, 맥라렌과 혼다의 남은 계약기간을 토로 로쏘가 대신 이행하며 이 계약기간동안 혼다의 파워유닛을 토로 로쏘가 쓰는 동시에, 토로 로쏘의 기대주인 카를로스 사인츠를 2017년에 르노로 우선 빌려주는 것이다.우선 맥라렌의 경우 파워 유닛 공급사를 완전히 교체하고 싶어했기에 혼다 파워 유닛 대신 당장 내년부터 쓸 새로운 파워유닛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맥라렌의 대주주인 만수르 오제는 1995 시즌부터 2014 시즌까지 엔진을 쭉 공급해준 관계인데다가, V6 터보 하이브리드 규정 하 가장 출중한 성능을 가진 메르세데스 파워 유닛을 공급받기를 원했기에 다임러 회장 디터 체체와 접촉했다.하지만 메르세데스의 경우 이미 메르세데스/포스 인디아/윌리엄스 3팀에게 공급을 해 온 상황이었고, 계약 협상이 늘어지면서 결국 2018년에 바로 파워유닛을 공급할 여력을 확보할 수 없게 되면 계약이 흐지부지되었다.#
다음 후보인 페라리도 이미 페라리/하스/자우버 세 팀에게 엔진을 공급하는 상황이어서 급작스럽게 파워 유닛을 더 제공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에 페라리가 추가로 엔진제작과 공급을 해줄 여력이 있다고 한다 해도 맥라렌이 요청하면 거절할 것이 뻔한 것이, V6 터보로 엔진규정이 변경되기 전까지 몇 십 년 동안 맥라렌과 페라리, 이 두 팀은 서로 라이벌 관계이자 앙숙이었던 사이였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페라리가 우리는 맥라렌이 좋다고 공급해줄지 의문이 든다. 위 항목에도 서술되어있지만 2007년 시즌의 스파이 게이트부터 2008년 시즌 브라질 GP 챔프 사건, 2010~2013년에는 챔프자리를 놓고 같이 경쟁하던 팀이었는데, 페라리는 오히려 이런 맥라렌을 속으로 고소하게 생각하였을 것이다.[47]
결국 맥라렌으로서는 어디까지나 혼다보다는 낫다는 판단 하에, 극단적으로 성능이 떨어지지는 않지만 메르세데스와 페라리에 비하면 부족한 르노만이 유일한 선택지일 수밖에 없었다.
혼다 엔진을 버리는 것도 막상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혼다의 입장에서는 맥라렌의 요청으로 1년 일찍 F1에 복귀하는 리스크를 지면서까지 큰 투자를 지속했는데, 3년 동안 하위권을 전전하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혼다 파워 유닛 사용처인 맥라렌마저 혼다 파워 유닛을 버린다면 엄청난 손실을 입은 채 F1 프로젝트를 종료해야 하므로, 맥라렌은 혼다에게 상당한 위약금을 물어야 했을 것이다. 물론 혼다도 맥라렌 이외의 공급 대상을 찾고자 2017 시즌 중반 자우버와 2018 시즌부터 엔진 공급에 합의 후 러시아 GP때 공식 발표까지 진행시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우버의 팀 감독 모니샤 칼텐본이 해임되었고, 프레데릭 바쇠르를 위시한 신임 수뇌부가 들어오며 페라리와의 유대를 다시 강화하고자[48] 상호 합의 간 혼다와의 계약을 철회해서 맥라렌마저 이탈하면 혼다 파워 유닛을 받아 줄 팀이 없던 상황이었다.
한편 맥라렌은 당시 스폰서가 해마다 이탈해 가면서 재정적 여유를 잃은 상황이었고 양산차 쪽에서도 재정이 넉넉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알론소의 연봉 전액은 혼다에서 지급하고 있었고, 엔진 또한 전면 무상공급 중이였기 때문에 혼다와 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악화된 재정에 위약금으로 다시 한번 타격을 가하고, 당장 지출해야 할 시즌 운영 자금 등 비용 부담이 누적되는 상황을 의미했다. 결국 자금 사정이 열악해진 맥라렌이 수백~수천억대로 추정되는 위약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혼다가 F1에 남을 수 있도록 남은 계약을 대신 이행할 새로운 팀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편, 레드불은 V8 엔진 시기엔 르노와 함께 여러 타이틀을 획득했지만, V6 하이브리드 규정으로 넘어오면서 출력도 하위권인데 내구성조차 낮은 르노 파워유닛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 문제로 드라이버인 다니엘 리카도 등도 르노에 상당한 불만이 쌓인 상태였다.[49] 거기에 더해서 2016년부터 르노가 로터스를 인수해 워크스 팀으로 복귀하게 되었고, 이는 워크스 팀인 르노와 커스터머 팀이지만 성적이 훨씬 좋은 레드불 간의 갈등을 더욱 키우게 되었다.
그렇다고 메르세데스나 페라리가 그들의 최신 파워유닛을 강력한 챔피언 라이벌인 레드불에게 친절히 공급해줄 생각은 절대 없었다.[50]
이 때문에 레드불은 르노의 커스터머 팀 신세를 벗어나 혼다 워크스 팀으로 거듭나는 선택지를 고려하게 되었다. 혼다 엔진이 경쟁력을 보여준다는 전제 하에 레드불에게는 꽤나 매력적인 옵션이지만, 혼다 파워 유닛으로 세 시즌을 하위권에서 보낸 맥라렌의 사례가 있는데다 2017년 스플릿 터보로 엔진 구조를 다시 갈아엎은 혼다 파워 유닛은 여전히 도박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일단 레드불의 2군 격인 토로 로쏘가 혼다 파워 유닛을 쓰게 하고, 레드불은 18년까지 르노 파워 유닛을 유지하는 결정을 내렸다.토로 로쏘는 레드불의 주니어 드라이버들을 키우는 중하위권 팀이기 때문에 레드불에 비해 낮은 성적을 받는 것에 대한 리스크가 덜하므로 혼다 PU의 성능을 실험하고, 경기 중 성능이나 섀시와의 궁합을 확인할 만한 좋은 테스트베드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레드불은 성능은 낮더라도 컨스트럭터 3위 수준은 확보할 수 있는 검증된 르노 파워 유닛을 2018 시즌까지 유지하다 혼다 PU의 성능이 레드불이 만족할만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레드불 역시 혼다 파워유닛을 공급받을 계획이었다.
그리고 뜬금없이 이런 상황에서 삼자협상의 당사자가 된 르노로서는 공급처인 토로 로쏘를 잃게 되는 이 상황이 당연히 탐탁치 않을 것이므로 이에 대한 일종의 대리 보상으로써 토로 로쏘에 소속되어있던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를 2017 시즌 미국 GP부터 데려오게 되었다.[51]
결과적으로는 이런 복잡한 3자계약에서 세 계약 주체는 모두 상당한 리스크를 안게 되었다. 물론 카를로스 사인츠가 르노 팀에서 괜찮은 성적을 내며 자리를 잡고, 맥라렌은 르노 엔진을 기반으로 중위권 복귀에 성공하며, 레드불은 불만이 많던 르노와의 관계를 끊고 혼다의 워크스 팀으로 다시 거듭날 기회를 갖는 성공 시나리오도 있다. 하지만 맥라렌이 르노 파워 유닛으로 교체하고도 하위권을 전전하고, 혼다 파워 유닛이 토로 로쏘에서도 실망스러운 성적을 낸다면 레드불은 르노와 불편한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데다, 르노 F1 팀이 무너지면 사인츠의 경력에도 오점이 되는 실패의 리스크도 상당한 상황이었다.
이후 행적을 요약하면 르노는 중위권에 안착하였으나 2019 시즌부터 자사 파워유닛 커스터머 팀인 맥라렌에 순위를 역전당했고, 카를로스 사인츠는 맥라렌으로 이적하며 첫 포디움을 달성하는 등 경력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혼다 파워 유닛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성능 향상과 안정화에 성공하며 13년 만에 오스트리아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고, 토로 로쏘도 독일과 브라질에서 포디움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맥라렌은 이전의 하위권을 벗어나 포디움에도 드는 쾌거를 달성했지만, 혼다 파워 유닛의 성능이 상당히 발전했다는 점에서 씁쓸한 상황을 지켜보게 되었다.
7.2. 2018 시즌
2018 시즌 호주 GP에서 페르난도 알론소가 예선 11위, 결승 5위, 스토펠 반두른이 예선 12위, 결승 9위라는 작년보다는 그래도 좋은 기록을 내며 맥라렌-르노 엔진 시대의 첫 발을 내디뎠다. 페르난도 알론소는 경기가 끝나자 팀 라디오로 "이제 우리도 싸울 수 있다"라면서 기대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시즌이 진행되면서 모두가 걱정했던 토로 로쏘의 혼다 엔진이 예상보다 안정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단, 이는 적어도 작년처럼 터져나가지는 않는다는 뜻일 뿐, 결코 다른 엔진보다 빠르다는 것은 아니다. 반면, 맥라렌은 위에서 설명했듯이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아무리 르노 파워 유닛과 함께 하는 첫 시즌이라 해도 생각 이외로 실망스러운 모습이다.[52] 게다가 레드불이 19시즌부터 혼다 엔진을 사용하게 되면서, 만약 레드불-혼다가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맥라렌의 입장은 그야말로 난처할 수밖에 없다. 맥라렌은 혼다와 함께 한 3년 동안 성적이 곤두박질쳤고, 그동안 후원해준 수많은 스폰서들이 팀을 떠나가버렸으며, 팀은 현재 존립조차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있다. 또한, 맥라렌과 페르난도 알론소는 형편없는 성적에 대해 혼다를 가열차게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내년 레드불-혼다가 선전한다면, 3년간 고생은 있는대로 다 하고 레드불에 멀쩡한 엔진을 넘겨주는, 말 그대로 죽 쒀서 개 준 꼴이 되고 만다.
한편 팀의 메인 드라이버인 페르난도 알론소가 이번 2018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래서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가 2019 시즌부터 맥라렌 소속으로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부진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스토펠 반두른이 2019 시즌에서 방출되고, 리저브 드라이버이자 포뮬러 2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랜도 노리스가 그 자리에서 포뮬러 1에 데뷔할 예정이다.
2018 시즌에는 혼다 엔진은 생각보다 괜찮은 성능을 보여주며 나름대로 순항하고 있다. 맥라렌이 그동안 혼다를 탓한 것이 무색하게, 맥라렌보다도 공력 성능이 떨어지는 토로 로쏘와도 괜찮은 궁합을 보이며 열심히 포인트를 따내는 중이다. 특히 두 팀 모두 사실상 세컨드 드라이버가 나가리된 상태로 경쟁중이라는 점, 그리고 퍼스트 드라이버의 기량/경험 차이가 상당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 정도 차이라면 굳이 맥라렌이 성급하게 르노 엔진으로 갈아탔어야 했을까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맥라렌은 2017 시즌 20경기에서 고작 30포인트(...)를 따내는 데 그쳤다. 올 시즌 2/3가 조금 지난 시점에서 52포인트를 따냈으므로, 확실히 맥라렌은 작년 혼다 엔진보다 올해 르노 엔진과 함께 더 나은 성적을 기록했다. 문제는 맥라렌이
특히 페르난도 알론소는 계속되는 파워트레인 트러블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으며, 그렇다고 끝까지 완주한 경기에서 그다지 빨랐던 것도 아니다. 물론 혼다 엔진이 그렇게 빠른 것도, 그렇게 신뢰성이 높은 것도 아니지만, 만약 올 시즌에도 혼다와의 계약을 유지했다면 적어도 르노로부터 새로 엔진을 구입해야 하는 비용은 아낄 수 있었다. 이래저래 맥라렌의 판단이 아쉬운 대목.
이렇게 혼다 엔진을 얹은 토로 로쏘가 맥라렌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두는 빈도수도 심심찮게 보이자, 오히려 맥라렌 혼다 시절 맥라렌이 혼다 측에게 무리하게 계속 닦달하고 지나칠 정도로 타이트하게 레이스카 설계를 하는 바람에 혼다 엔진이 더 안 좋은 퍼포먼스를 보였던 것이 아니냐는 재평가의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모기업의 과도한 매출 욕심[55]과, 슈퍼카 팔아서 돈은 왕창 벌어놓고 정작 레이싱팀 지원은 나몰라라 한다는 상황으로 인해 이 팀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안 보인다며 이탈하고 있는 팬층도 간간히 보이는 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혼다가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경험이 전혀 없는 생초짜도 아니고 나름대로 F1이나 인디카, 슈퍼 포뮬러 등 다방면으로 오픈휠 레이스란 레이스에서는 독보적인 업적도 남긴데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F1에서 혼다 레이싱 F1 팀이라는 워크스 팀까지 운영한 적이 있는 매뉴팩처러이자 "엔진 서플라이어"이며, 일명 "세계 최대의 엔진 제조사"이다. 2기 멕라렌-혼다 시절의 처참한 성적은 혼다의 F1 공백기 때문에 엔진 데이터가 많이 부족해서 다른 엔진들을 따라잡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더라도, 3년 내내 맥라렌이 보여준 그 삽질이 모두 혼다의 탓이라는 것만은 이해하기 힘든 주장이다. 특히 18시즌에 혼다 RA618H 파워유닛을 쓰고도 토로 로쏘가 그전 시즌에 비해 아무렇지도 않거나 오히려 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다음해에 토로 로쏘와 같은 엔진을 쓰는 레드불 레이싱 역시 19 시즌 호주 GP에서 막스 베르스타펜이 이전처럼 포디움에 오르는 등 혼다가 맥라렌 때와는 달리 예상보다 멀쩡한 모습을 보이자, 그동안 혼다에 집중됐던 비판의 화살이 페르난도 알론소와 팀 맥라렌에게 돌아오고 있다. 2000년대 르노와 멕라렌에서 경쟁한 이후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도 개떡같은 차량만 탔던 알론소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나, 차량의 제대로 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도 모든 책임을 단순히 혼다에게만 전가시킨 채 연간 200여억 원이 넘는 추가지출을 감행하면서까지 르노 엔진으로 갈아탄 과정에는 알론소의 의중이 많이 강하게 반영된 것도 사실이다.[56]
무엇보다 위에서 말했듯이 애초에 멕라렌의 섀시 설계 능력은 2000년대 이후 정상이였던 적이 없다. 메르세데스 엔진을 가지고도 2014년 그러한 성적을 받은 것 만으로 이미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하며, 혼다탓만 하던것도 결과적으로 현실직시를 못한 것이다.
결과론적인 말이긴 하지만 맥라렌과 알론소의 두 번째 만남은 이들 양쪽 모두에게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맥라렌 쪽에서도 이에 대해 반론할 여지는 있는데, 혼다 엔진을 단 세 시즌 동안 쭉 중하위권에 처진 사이 그나마 있던 태그 호이어와 모빌 1, 에쏘, 조니 워커, 보스 등등 메인 스폰서들도 떨어져나간 데다 회장이었던 론 데니스도 혼다와의 프로젝트 실패에 책임을 물어 주주들에 의해 권한을 뺏기고 쫓겨나는 판에 혼다와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어불성설이었을 것이다.
이후 시즌 최종전이자 폐막전이며, 알론소의 마지막 F1 고별 무대가 되는 아부다비 그랑프리에서 맥라렌은 알론소 커리어의 마지막 경주를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일회성 리버리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57] 또한 몬스터 에너지 NASCAR 컵 시리즈 챔피언 지미 존슨의 가족을 경주에 초대하여 그와 그의 가족이 맥라렌 차고에서 알론소의 마지막 경주를 지켜보게 하였다. 예선전인 Q1에서는 반두른이 18위로 탈락, 알론소가 14위로 간신히 통과하여 하위권 그리드는 피했으나 Q2에서는 꼴지인 15위 기록밖에 내지 못해서 15위로 최종 배정받았다. 본선에서는 반두른과 알론소 모두 기량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순위를 각각 4그리드씩 끌어올리며 체커기를 받았다. 경기가 끝나고 알론소와 알론소의 예전 2010~12 시즌 시절 챔프 후보였으며 친구이기도 한 해밀턴과 페텔이 스타팅 그리드의 직선주로에서 도넛쇼를 선보이며 F1의 오랜 2연속 챔피언인 알론소를 배웅하는 코멘트를 하며 진정어린 인사를 보내기도 하였다.이날 아부다비로 초청된 지미도 알론소의 커리어를 축하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후에 둘은 바레인에서 서로의 차량인 맥라렌 MP4-28과 쉐보레 카마로 ZL1 1LE 스톡카를 바꿔 타보았다.[58]
7.3. 2019 시즌
2019년 시즌에는 테스트에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고, 개막전인 호주 그랑프리에서도 랜도 노리스가 예선에서 8위를 기록하는 등 지난 시보다는 어느 정도 나아진 상황을 맞이...하는가 했으나 정작 레이스에서 사인츠는 몇 랩 돌지도 못하고 또 엔진에 문제가 생겨 리타이어했고, 노리스는 치열한 중위권 싸움 끝에 12위로 밀려나 노포인트로 레이스를 마쳐야 했다.
하지만 2전 바레인 그랑프리에서는 두 드라이버 모두 Q3에 올라가고, 노리스는 P6피니시, 사인츠도 비록 리타이어 했지만 경기 초반 막스와 배틀을 하는 모습을 보이며 다시 희망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르노 엔진의 신뢰성이 오르고 업데이트도 성공적으로 진행되며 성적이 고공행진 중. 특히 드라이버인 카를로스 사인츠와 랜도 노리스의 활약이 무시무시하여 맥라렌의 부활이 거짓말이 아니게 되었다. 기존 중위권 강자인 르노, 하스를 제치고 오스트리아 GP에선 레드불 레이싱의 피에르 가슬리도 따내는 등 대선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시즌 전체를 놓고 보면 아직은 혼다 엔진을 얹은 레드불 레이싱에게는 못 비비는 중.
그러던 중 2021년 시즌부터 메르세데스의 파워 유닛을 사용할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메르세데스 커스터머로서 엔진 사서 쓰기 싫어서 워크스 지위를 노리며 혼다의 손을 잡았던 멕라렌이 돌고 돌아 다시 메르세데스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20전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사인츠가 Q1에서
7.4. 2020 시즌
테스트 일정 중 보여준 모습은 지난해와 비슷했다. 드라이버들의 반응도 지난 시즌 차보다 조금 더 빨라졌고 안정감 있으며, 경쟁력이 있는것 같다고 전했다.그러나 2월 말까지 아무일도 없이 괜찮은줄 알고 있다가 팀 일원들 중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감염자가 생겨 검사결과로 양성반응이 나와 개막전인 호주 그랑프리를 기권하였으며 때문에 바이러스의 확산이 우려된다는 FIA와 호주 정부에 따라 호주 그랑프리는 취소되었다. 이후 호주에서 발생했던 맥라렌 포뮬러 1 팀 소속의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진자가 완치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그와 밀접 접촉한 팀원들의 경우도 자가격리 이후 음성 확정을 받았다.
한편, 2021년 규정에 맞추어 모든 F1 팀들이 신규 차량 개발을 하고 싶어도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잠재적인 확산에 대한 우려 때문에 자신들의 팀 팩토리 가동이 중단되는등, 개발을 도저히 할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자, F1은 FIA와 모든 F1 팀들과 합의하여 21년 규정을 1년 연기한 2022년으로 미루고 이에 따라 내년까지도 각 팀들이 올해 개발한 차량을 그대로 경기에 투입할수 있게 하였다. 다만, 기존에 바뀌는 21년 규정의 엔진, 에어로, 연료, 스티어링, 휠, 타이어 등등에 관련된 것으로, F1카의 전체적인 구조에 관련된 종합적인 규정만 미루는 것이며, 기존의 예산 캡에 할당되는 규정들은 차량 규정연기와 관련없이 그대로 내년부터 적용된다.[59] 한마디로 내년부터 팀들간 치열한 기싸움과 엎치락 뒤치락 하는 추월쇼를 기대할수 있다는 말.
하지만, 맥라렌은 이런 규정 연기와 차량 개발 동결에 상관없이 내년 2021 시즌에 새로 바뀌는 규정에 맞추어 합법적으로 차량을 그대로 개발하여 경기에 참가할수 있게 되었다. 그 이유는 상술했듯이 바로 이전부터 파워유닛을 2021년부터 메르세데스의 것으로 바꾸기로 했기 때문인데, 규정 연기가 정해진 후, 맥라렌은 르노의 파워유닛을 1년 더 연장해서 쓸지, 아니면 계획대로 메르세데스의 파워유닛을 쓸지 고민하다 계획대로 바꾼다고 하였는데, 엔진공급사를 바꾸게 되면 필수적으로 섀시를 새로 설계해서 개발해야 하므로,[60] FIA에서는 이런 맥라렌의 상황을 이해해주어 오직 맥라렌에게만 기존의 2021년 규정의 섀시 부문에 한하여 차량을 개발할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해주었다. 한마디로 새로운 차량의 섀시 제작만 가능하고, 엔진 및 기타 하이브리드 유닛들은 2021 시즌의 메르세데스 것으로 바꾼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맥라렌의 횡재했다라고 단정짓지 못하는 것이, 기존 2021년 규정의 섀시 개발 허가는 받았으나, 설계 및 개발, 제작에 들어가는 예산 제한은 여타 다른 팀들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맥라렌에게도 빠짐없이 칼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개발 도중 예산이 문제가 될수도 있을 것이다.[61] 뿐만 아니라 2021년 2월 까지 새로운 규정의 차량에 대한 풍동 테스트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2월 중후반부터 실시되는 테스트 기간 전까지 준비가 늦어질경우 다른 팀들은 이미 전부 대기 되어 있는 반면, 맥라렌은 그때까지도 혼자 개발중이라면 골치가 아플 듯하다. 과연 이 기회를 살려 4강(메르세데스 vs 페라리 vs 레드불 vs 맥라렌) 챔피언 후보 팀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그냥 지금처럼 중위권 팀으로 도태되느냐가 이 팀의 미래를 좌우할것으로 전망된다.
7월에는 걸프 오일 인터내셔널과 계약을 새로 체결하여 스폰서십을 가져왔다.
2020 시즌의 첫 레이스인 오스트리아의 예선에서는 노리스 P4, 사인츠 P8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메르세데스 듀오-베르스타펜 바로 다음이 랜도 노리스 라는 점은 고무적.
본선에서는 노리스가 패스티스트 랩인 1:07.475를 기록하며 P3,[62][63]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가 P5를 기록하며 같은 르노 엔진을 쓰는 P8 오콘, 리타이어한 리카르도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7년 혼다 엔진으로 다시 바닥을 찍은 이후 꾸준히 성적이 좋아지는 점이 고무적이다. 또한, 2019 시즌 20라운드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사인츠가 118경기만에 포디움에 올라섰는데, 이번 경기로 2경기만에 다시 포디움에 올라섰다.
8전 이탈리아 GP는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사인츠가 P3,노리스가 P6로 출발. 경기 중반 여러가지 이유로 상위권 드라이버들이 리타이어 하거나 뒤로 밀리면서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갔다. 특히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가 1위 가슬리를 역전하여 드디어 우승하나 했지만, 가슬리를 추월하지 못하여 P2에 그쳤다.
그래도 자신에게 통산 두번째 포디움[64]이자 2020 시즌 맥라렌의 두 번째 포디움, 르노 엔진으로는 총 세번째 포디움이다.
폐막전인 아부다비에서 무난하게 란도가 P5, 사인츠가 P6로 체커기를 받으며 최종 컨스트럭터 포인트 202 포인트, 레이싱 포인트를 7포인트 차이로 다시 역전하며 3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이는 맥라렌이 마지막으로 위닝카를 만들었던 시즌인 2012년의 3위 이후 최고 성적이며, 포인트 또한 경기수가 줄었음에도 2012년 이후 최다 포인트를 득점하였다.
8. 메르세데스 엔진 시기
8.1. 2021 시즌
2021 시즌을 앞두고, 2017년에 이어 다시 한번 로고를 변경하였다. 전통적인 '스피드 마크' 로고의 색을 검은색에서 주황색으로 바꾼 것이 변경 사항이다. 엔진도 메르세데스로 바꾸었다.
섀시 네임은 MCL35M으로 결정이 되었으며, 드라이버 라인업에서는 사인츠가 페라리로 이적함에 따라, 르노에서 리카도를 데려왔다.
2월 15일, 10개 팀 중 처음으로 신차 런칭을 진행하였다. 엔진을 교체하였지만 퍼포먼스 개발 제한은 맥라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고, 리어 윙 엔드 플레이트의 디테일 수정과 패키징의 변화, 롤 후프 구조의 변경을 제외하면 MCL35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리버리 역시 파란색의 비율이 조금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MCL35와 비슷한 리버리를 적용하였다.
이후 시즌 중반의 상황은 2020시즌과 동일하게 컨챔 3위, 드라이버 챔피언쉽에서는 랜도가 보타스를 상당한 포인트로 제치고 2황의 메르세데스와 레드불 드라이버들 바로 뒤인 4위로서 매우 고무적인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2019시즌 당시 의심스러운 엔진을 쓰다 걸린 여파로 2020시즌 파워유닛의 성능이 나락으로 가버렸던 페라리가 2021 시즌에는 극적으로 나아진 모습을 보이면서 멕라렌과 제대로 경쟁하고 있다는 것이 2021 시즌과는 다른 점이다. 특히 페라리가 시가짓 서킷 등지나 FP, 퀄리파잉 세션 등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 레이스 페이스 자체는 멕라렌이 페라리보다 확실히 나은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기대하고 있던 리카르도가 여전히 새로운 차량에 적응하는데 있어 상당히 헤매고 있다는 것으로, 그래도 점점 MCL35M의 감을 잡아가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대로 2021 시즌이 흘러가기만 한다면 2020 시즌 처럼 컨챔 3위는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보타스의 성적 여하에 따라 WDC 4위 또한 힘들겠지만 실제로 모나코와 오스트리아 GP에서는 노리스가 메르세데스 듀오보다 더 빠른 적도 있었으니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
잭 브라운은 스폰서 따오는 장인이고, 포르쉐의 르망에서의 성공을 이끌던 안드레아스 자이들 또한 든든한 리더십을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론 데니스 시절 후기와는 딴판의 팀이 되었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일부 서킷에서의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의 서킷에 있어 이제 확실하게 메르세데스와 레드불을 제외하고는 최고의 성능을 가진 차량을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젠슨의 2012년 브라질 그랑프리 이후 2021년 몬자에서 다니엘 리카르도가 우승을 하였다! 금상첨화로 원투 피니시를 달성하였다. 이로 인해 몬자에서 시원찮은 성적을 거둔 페라리와의 컨스트럭터 격차를 더 벌리게 되었다.[65]
러시아 GP에서는 선두였던 노리스가 레이스 말미의 우천 뒤 타이어 전략을 완전히 미스하며 자신의 첫 우승을 3바퀴 남겨놓고 미끄러져 리드를 놓쳤고, 결국 7위로 들어오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러시아 GP 뒤로 차량 업데이트가 페라리에 비해 밀려 판도가 뒤집어졌고, 페라리는 상위권의 성적을 안정적으로 따오는 반면에 랜도의 슬럼프, 아직 차량에 적응을 못한 다니엘 등의 문제가 겹치며 컨스트럭터 3위 수성은 멀어지게 되었다.
결국 최종 275포인트, 컨스트럭터 4위를 기록했다. 초중반까지의 좋은 성적을 봤을 때 아쉬운 부분.
8.2. 2022 시즌
안드로이드와 Chrome을 새로운 스폰서로 영입했다. 이에 크롬 로고의 색상을 모티브로 휠커버가 매우 알록달록해졌다.메르세데스 파워유닛이 페라리, 혼다 엔진보다 못하는 성능을 내는 상황에서 이에 휩쓸려 성적이 매우 떨어지고 말았다.[66] 일각에서는 Chrome을 스폰서로 들이는 바람에 성능이 떨어졌다는 드립이 나오는 중.
2021 시즌 개막전 바레인 그랑프리에서 다니엘 리카도는 14위, 랜도 노리스는 15위를 완주하여 더블 노포인트를 기록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레이스 중 윌리엄스와의 배틀을 벌이는 등, 레이스카의 성능이 나락으로 치닫았음을 증명하였다.
하지만 2R 사우디아라비아 GP에서 어느 정도 수습된 모습을 보였다. 노리스와 리카도가 11위권에서 페이스를 유지하며 포인트를 정조준하였고, 비록 리카도가 기어박스 문제로 리타이어하였으나, 노리스가 좋은 페이스를 유지하며 에스테반 오콘에게 불과 0.1초 뒤진 7위로 귀중한 6점을 획득하였다.
3R 호주 GP는 새로이 바뀐 앨버트 파크 서킷에서 레이스카의 강점과 잘 맞먹은 덕도 보며 고득점을 하였다. 퀄리파잉부터 노리스, 리카도가 각각 4-7위를 기록하며 작년의 모습을 다시금 보여주었고, 레이스에서도 안정적으로 격차를 유지하며 5-6위를 차지하여 18점을 얻었다. 홈 그랑프리를 맞이한 리카도는 시즌 첫 포인트를 수확하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최종 컨스트럭터 5위를 기록하며 지난해보다 못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말미까지 컨스트럭터 3위 자리를 두고 페라리와 경쟁했던 직전 시즌과 달리 급변한 규정에 페라리, 레드불과 같은 강력한 퍼포먼스를 확보하지 못한 채로 시즌을 시작했다.
초반 바레인에서부터 나타난 브레이크 문제, 중반에는 메르세데스와 같이 지나치게 높은 드래그 수치로 인한 직진 가속력 저하로 신음하며 상반되게 강력한 직진 가속력을 가진 알핀과의 엎치락뒤치락 4위 싸움 끝에 결국 알핀에게 밀려 백기를 들었던 시즌. 한 번이기는 해도 맥라렌은 올 시즌 이몰라에서 포디움을 기록했지만[67] 알핀은 시즌 내내 포디움에 오르지 못했는데도 순위 경쟁에서 밀렸다. 예전부터 맥라렌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던 피트 스톱, 전략 문제 또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한 해였다.[68]
다니엘 리카도의 부진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컨스트럭터 순위 싸움에 있어 큰 문제점이 되었다. 홈 그랑프리였던 호주 그랑프리에서 7위로 피니시한 것 외에는 시즌 내내 부진에 시달리며 마치 2020 시즌 극도의 부진에 빠지며 페라리와의 계약 연장에 실패한 제바스티안 페텔을 연상시키는 씁쓸한 성적으로 레이트 브레이킹 등 자신의 주특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2년 연속으로 맥라렌의 열악한 자금 상황 대비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으면서도 레드불, 르노에서의 모습처럼 제대로 된 성적을 내지 못한 여파로 리카도는 맥라렌과의 계약을 1년 남겨놓은 상태였는데도 시트를 잃었고, 리카도의 시트는 리카도와 같은 호주 국적이며 르노 아카데미 출신 유망주 오스카 피아스트리[69]가 차지했다.
8.3. 2023 시즌, 반등은 이렇게!
브루스 맥라렌의 창단 60주년을 기념해 MCL60으로 명명된 2023 차량 |
시즌 개막 전 테스팅에서 끔찍한 모습을 보여주며 작년과 마찬가지로 하위권에서 출발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매체는 테스팅 기준 맥라렌의 차량 순위를 윌리엄스보다 빠른 9위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이에 CEO 잭 브라운이 직접 나서 겨울동안 원하던 목표들을 이루지 못했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아무리 올해 완성될 윈드 터널을 믿고 내년 이후를 바라보는 팀이라지만 기대에 못미치는 차로 드러났기 때문에 작년처럼 시즌 초반 업데이트가 굉장히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개막전부터 두 드라이버 모두 각종 문제에 시달리며 최하위권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특히 윌리엄스에게 훨씬 뒤쳐지는 전략, 피트스탑 속도 등 작년에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5위짜리 팀이었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모든게 엉망진창인 운영을 보여주었다. 팬들은 작년에 심한 부진을 겪던 리카도가 사실은 기량이 떨어진 것이 아니고 맥라렌이 차를 진짜로 못 만들었던 것이며, 노리스가 차를 잘 타서 팀을 멱살잡고 끌어올렸었던 것이었다고 탄식하는 중이다.
2R 사우디아라비아 GP에서는 피아스트리가 시작하자마자 가슬리와 충돌하여 나온 파편이 노리스의 차를 타격하며 두 드라이버 모두 강제 피트스탑을 했고, 결국 15위와 17위로 마무리 했다.
10R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에서 차량 업데이트를 받은 랜도 노리스가 Q3에서 좋은 성적을 따내 4번 그리드에서 출발하였고 본 레이싱에서 5위로 마쳐 맥라렌에게 필요했던 소중한 포인트를 가져다 주며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까지 수상했다. 반면 차량 업데이트를 받지 못했던 오스카 피아스트리는 13번 그리드에서 출발하여 17위로 마감하는 아쉬운 성적을 보였다.
11R 영국 그랑프리에서는 피아스트리도 업데이트를 제공받았으며 노리스와 피아스트리 두 드라이버 모두 퀄리파잉에서 나란히 2, 3그리드를 기록한 것은 물론 노리스의 경우 초반 스타트에서 막스를 제치고 잠시 1위로 달리는 등 엄청난 선전을 하며 최종 2위로 마무리하여 포디움에 올랐다. 피아스트리 또한 4위로 완주하며 맥라렌은 30포인트에 달하는 다량의 득점으로 알핀을 제쳤다.
18R 카타르 그랑프리에서 랜도 노리스의 1.8초 피트스탑으로 레드불이 가지고 있던 피트스탑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웠다![71]
시즌 초반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업데이트를 거쳐 9회의 포디움을 기록하는 등 성공적으로 복귀했고, 카타르 스프린트 레이스에서 피아스트리가 우승하는 성과를 거두며 최종 컨스트럭터 순위는 302포인트 4위로 시즌 초반 강력한 모습을 보였던 애스턴 마틴을 넘는 데 성공했다.
8.4. 2024 시즌, 드디어 되찾은 과거의 영광
McLaren MCL38 |
3R 오스트레일리아 그랑프리, 자국민 최초로 포디움에 오를 수 있었던 기회에, 맥라렌은 오스카에게 랜도와 드라이버 스왑을 지시했다. 덕분에 랜도가 포디움에 오르긴 했지만 오스트레일리아 팬들 일부는 아쉬움을 표했다.
6R 마이애미 그랑프리에서 랜도 노리스가 F1 커리어 첫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했다! 7R 에밀리아로마냐 그랑프리에서도 노리스가 후반부에 베르스타펜에게 상당한 위협을 가하며 2위를 차지하는 등, 레드불의 1강 구도를 뒤흔드는 강력한 차량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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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라렌, 아일톤 세나 사후 30주기 기념 리버리 공개. |
하지만 강력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전략팀의 역량 부족이 점차 드러나고 있을 뿐더러, 노리스의 스타트 문제로 우승이나 포인트를 잃어버리는 상황이 계속 나오고 있다.
9R 캐나다 그랑프리에서는 우천 속에서 좋은 페이스로 노리스가 선두를 차지했지만, 세이프티카 상황에서 전략이 꼬이며 우승기회를 잃고 노리스 P2, 피아스트리 P5로 마무리 했다.[72] 그래도 페라리가 더블 리타이어라는 악재가 터지며 포인트 면에서는 현재 양쪽에서 한순위 더 윗쪽인 페라리와의 WDC 그리고 WCC 포인트에서 둘다 간격이 좁아졌다.
10R 스페인 GP 퀄리파잉에선 피아스트리가 트랙 이탈로 기록이 삭제되는 등 불운을 겪었으나, 노리스는 폴 포지션을 따내는 등 차량의 경쟁력 자체는 월등한 수준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경기에서는 스타트를 놓치며 노리스가 단숨에 3위로 내려갔고, 이후에는 막스를 상대하고자 막스보다 조금 뒤에 핏스탑을 진행하는 전략을 시도했으나 이번에도 우승을 놓치게 되었다. 그나마 노리스는 샤를 르클레르를 포인트에서 앞서며 드라이버 순위 2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11R 오스트리아 GP에서는 베르스타펜이 피트 스탑에서 큰 시간 손해를 본 틈을 타 노리스가 1위 싸움을 시작했는데, 배틀이 격해지면서 서로의 움직임에 대한 불만이 라디오로 전해지는데다 노리스는 트랙 리밋 경고를 받는 등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결국 64랩째에서 두 차량이 충돌하면서 둘 다 펑크가 났고, 베르스타펜은 5위로 완주했으나 노리스는 차체 손상이 커서 리타이어해야 했다. 맥라렌은 피아스트리가 7위에서 시작해 2위로 포디움에 든 것에 만족해야 했다.
영국 그랑프리에서도 전략 실수는 계속되었다. 레이스 중반 비가 오면서 상당한 페이스로 노리스와 피아스트리가 선두를 차지했지만, 비가 더 쏟아지며 인터미디어트 타이어로 피트스탑을 진행할 때 더블 스택의 시간 손실을 우려한 전략 팀에서 노리스를 먼저 들여오고 피아스트리는 1랩 뒤에 피트스탑을 진행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더블 스택의 시간 손실보다 젖은 노면에서 슬릭 타이어로 달리는 시간 손실이 더 컸기에 피아스트리가 사인츠 뒤로 나오게 되며 레이스에서 손해를 보게 되었다.
노면이 마르고 슬릭타이어로 갈아끼는 과정에서, 40/52랩을 진행하는 시점에 전략팀은 노리스의 소프트 타이어로 가자는 말에"(1위로 달리는 중인)해밀턴을 상대할 거면 소프트로, (3위로 따라오고 있는)막스를 상대할 거면 미디엄으로 갈자"라는 내용을 전달해 노리스가 그대로 소프트 타이어를 끼도록 유도했다. 이 과정에서 노리스는 미끄러지는 실수로 4.5초라는 아쉬운 피트 스탑 시간을 기록했고, 해밀턴을 추격하려 페이스를 높였지만 소프트 타이어의 수명이 일찍 닳게 되면서 하드 타이어로 수명 걱정 없이 페이스를 높인 베르스타펜에게도 추월당하며 2위를 놓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헝가리 그랑프리, 또 전략적 오류가 발생했다. 특정랩까지 리드를 하던 드라이버에게 포지션을 양보하기로 사전에 협의를 했었는지, 먼저 이어진 랜도의 피트인 이후 오스카가 피트인을 하고 나왔을땐, 랜도의 뒤였다. 그러나 포지션을 양보하기로 했었기에 랜도에게 오스카를 보내주라는 말을 하지만, 오스카는 그래블을 밟으며 격차가 오히려 벌어졌고, 랜도는 좋은 페이스로 계속 달려나가다 레이스 종료 두랩전인 68랩에 6초 차이가 나던 오스카를 랜도가 보내주게 된다. 특정랩까지 리드하던 드라이버에게 포지션을 양보한다는 것 까지는 좋았지만, 두 드라이버 사이의 거리가 벌어지거나 하는 변수에 대한 전략은 마련해두지 않았기에 3년만에 원투 피니시 성공, 오스카의 첫 우승이 나왔음에도 맥라렌 전략팀은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여름방학까지 모은 포인트는 피아스트리 167포인트 4위, 노리스가 199포인트로 2위[73]에 컨스트럭터 366포인트 2위[74]를 달성한 상태다. 차량 성능은 최상위권이라는 데 이견은 없으나 전략이나 드라이버들의 실수로 포인트를 잃은 경우가 누적됨에 따라 컨스트럭터 챔피언 경쟁은 몰라도 드라이버 챔피언 경쟁은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후 아제르바이잔 그랑프리에서 레드불로부터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1위를 가져오면서 2014년 이후 10여년만에 챔피언십에서 선두에 오르게 되었다. 여름방학기간에 차량 업데이트가 시원찮았던 레드불이 부진에 빠진 사이에[75] 맥라렌은 노리스와 피아스트리가 함께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컨스트럭터 포인트를 쓸어담고 있다.
시즌 후반 페라리가 맥라렌을 따라잡으며 아부다비 그랑프리까지 접전을 펼쳤지만 결국 노리스가 우승하며 무려 26년만에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을 우승하는데 성공했다![76]
[1] 팀은 1963년부터 1964년까지 펠담에, 1965년부터 1981년까지 잉글랜드 콜브룩에 있었으며 영국 라이센스를 소지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브루스는 팀의 차에 전통적인 영국 레이싱 그린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대신, 브루스는 그의 첫 번째 차인 맥라렌 M2B의 외관 색상을 존 프랑켄하이머의 영화 그랑프리에서 가상의 팀인 야무라 팀을 대표하기 위해 녹색 줄무늬와 흰색으로 칠해진 컬러로 정하는 등, 기존의 국가별 색상 원칙에 근거하지 않은 색 구성을 사용했다.[2] 이 엔진은 1983년까지 맥라렌이 계속 사용한다.[3] 브루스에 따르면 M9A 4륜구동 버젼의 주행이, 마치 "누군가가 당신의 팔꿈치를 눌러 서명 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묘사했다.[4] 만수르 오제의 회사로, 멕라렌 그룹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5] 시계 브랜드인 TAG-Heuer 의 그 TAG 맞다. 풀네임 Techniques d'Avant Garde인 이 회사는 부동산부터 시계사업, 항공산업, 모터스포츠까지 문어발로 손대는 그룹사이며, TAG-Heuer의 경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TAG가 호이어 사를 인수하면서 만들어진 브랜드이다. 이후 1999년, TAG가 LVMH에 태그-호이어를 매각하면서 현재 레드불의 스폰서인 태그 호이어와 TAG사는 관계가 없다.[6] 멕라렌 또한 알랭 프로스트와 케케 로즈버그라는 이름 값만 보면 쟁쟁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으나, 86년은 케케의 마지막 시즌으로서 전성기가 지난지 오래였다. 그나마 알랭 프로스트 덕에 WDC 챔피언이 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겨우 2 포인트 차이였다.[7] 이후 멕라렌에서 세나와 프로스트의 경쟁이 가열되어 세기의 팀메이트 대결이 되고, 서로가 시즌을 번갈아가며 상대방에게 갖다 박으면서까지 챔피언십 경쟁을 한것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하기 그지 없다.[8] 이후에도 TAG는 6단 시퀸셜 변속기를 계속 맥라렌에 공급한다.[9] 혼다한테 버림 받은 윌리엄스는 저드 엔진으로 갈아타고 성적이 나락으로 간다. 다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전화 위복이 되었는데, 89년 르노와 협업을 시작한 윌리엄스는 컨챔 2위 복귀, 이후 92년에는 그 유명한 액티브 서스펜션 FW14B를 데뷔하여 양대 챔피언이 되었고, 이후 90년대 르노와 함께 황금기를 맞아 베네통, 멕라렌 등과 경쟁한다.[10] 87년 개발 당시 최대 4.0bar의 부스트로 950마력을 뽑아냈는데, 혼다 내부에서는 '반자이 부스트'라고 했다. 그러나 88년에 적용할 당시에는 FIA에서 과급차량에 연료 제한을 150L로 걸어버려서 이 규정을 만족하기 위해 부스트를 2.5bar로 낮추고 출력이 650마력으로 떨어졌다.[11] 93.75%의 승률로, 이때로부터 30년이 넘은 현재 2022년, F1 필드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메르세데스마저도 갱신하지 못한 F1 최다 승률이다.[12]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창단했던 엔초 페라리가 사망한 해가 1988년이며 이 해에 MP4/4가 유일하게 우승에 실패한 이탈리아 GP가 페라리의 홈그라운드라는 점이다. 나중에 이 경기를 두고 엔초가 이 MP4/4에게 승률 100%를 달성하지 못하도록 저주를 걸었던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실제로 이 경기에서 우승한 것이 페라리의 게르하르트 베르거였고 팀동료였던 미셸 알보레토가 2위로 들어오면서 페라리가 원투피니시를 기록했다.[13] 1989시즌[14] 1988시즌, 1990시즌, 1991시즌[15] 당시의 베네통 팀은 티렐에서 시작한 레이즈드 노즈 철학을 재빠르게 따라간 팀으로서, 매우 훌륭한 성능의 섀시들을 만들던 팀이였다. 90년대 당시의 엔진 성능 자체는 르노가 포드-코스워스보다 위였다.[16] 은색 컬러는 웨스트의 브랜드 컬러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말보로 리버리로도 유명했었다, 메르세데스의 워크스 팀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크롬 실버 혹은 로켓 레드로 구분한다. 2014년에는 파파야 오렌지로 다시 돌아갈 거라고 팬들의 설왕설래가 있었으나 론 데니스가 지금처럼 크롬 실버 리버리를 그대로 쓸 것이라고 말해 변화는 없었지만, 2015 시즌 스페인 그랑프리부터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으로 컬러를 바꾼다. 사실 지금의 맥라렌의 이미지는 대부분 론 데니스가 이뤄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며, 한때 맥라렌 오토모티브 사업(양산차 프로젝트)도 론의 영향력 아래에서 진행했던 적이 있다.[17] 여기서 론 데니스는 기술자 출신의 사업가로, 처음에는 론델 레이싱으로 모터스포츠에 진출, 이후 F2에서 성적이 죽을 쑤고 팀을 매각 한 뒤 프로젝트 3 팀을 설립해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후에 프로젝트 4팀으로 F2,F3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후에 맥라렌의 스폰서인 말보로가 주도한 맥라렌 인터내셔널 계획으로 프로젝트 4와 맥라렌이 인수합병이 되면서 F1카 이름을 MP4라고 이름붙이게 된다. 이는 후에 2009년에도 맥라렌이 BMW의 6.1L V12엔진을 공급받아 만든 맥라렌 F1과 벤츠와 협업해서 만든 메르세데스-벤츠 SLR 맥라렌 이후 처음으로 맥라렌이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한 로드카 네임에도 MP4가 붙게 되었다. 초기엔 MP4의 앞글자 M의 의미는 말보로였으나 후에 말보로가 스폰서를 떠나면서 M은 이후로 맥라렌의 약자로 정착되었다.[18] 97년 당시 챔피언 후보 1등인 자크 빌르너브를 하키넨과 쿨싸드가 추월하며 원-투 피니쉬를 한다.[19] 이 컨스트럭터 타이틀 이후 다음 타이틀을 얻기까지 무려 26년이 걸렸다. 심지어 두 현역 맥라렌 드라이버인 99년생 랜도 노리스와 01년생 오스카 피아스트리는 이 때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다..[20] 사실 알론소의 맥라렌 이적은 2005년 시즌이 끝나고 결정되었다. 2006년의 맥라렌은 무승[21] 무려 단 1점 차이였다![22] 아이러니하게도, 키미는 2006년 말, 맥라렌이 당시 르노의 디펜딩 챔피언이던 페르난도 알론소를 모셔오기 위해 방출했던 드라이버였다.[23] 그러나 하키넨, 래이쾨넨과 다르게 코발라이넨은 맥라렌 소속 이후 플라잉 핀이 되지 못한다. 맥라렌에 있다가 후에 로터스로 옮기고 F1을 떠나 슈퍼GT로 카테고리를 옮기게 된다.[24] 이 최연소 챔피언 타이틀은 곧 제바스티안 페텔이 2010년 드라이버 챔피언에 오르면서 넘겨주게 된다.[25] 만약 추월에 실패해서 해밀턴이 6위 그대로 완주하게 된다면 포인트는 동점이고, 우승 횟수가 더 많은 펠리페 마싸가 챔피언에 오르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마싸가 우승하면서 챔피언을 확정지은 줄 알고 기뻐하던 페라리의 피트 분위기는 해밀턴이 글록을 추월한 걸 본 순간 급격히 얼어붙었다.[26] 루코제이드(Lucozade)는 영국에서 개발된 건강 스포츠 음료로, 지금은 일본 회사 선토리(Suntory)가 제조해서 판매하는 영국 대표 음료이다.[27] 이번 시즌 맥라렌 차량 외관에 가장 많이 붙게 된 회사이다.[28] 호주 GP에서 중국 GP까지 사이드팟에 붙힌 데칼이 다 달랐다.[29] 메르세데스와 페라리,레드불과 윌리엄즈,자우버, 그리고 마러시아는 평범하게 생겨서 이들은 논란까지는 되지 않았다. 다만 못생겼다고 까이긴 했지만[30] F1은 2014년부터 1.6리터 터보+ERS(MGU-K+MGU-H)로 엔진 규정이 바뀌었다.[31] 여담으로 로터스 E22처럼 이상한데 역겹게 생긴(?) 모습도 나왔었다.[32] 한국 팬들이 맥라렌의 개떡같은 성능을 보고 사이드 포드에 붙어있는 독일의 소프트웨어 회사 SAP 로고를 이렇게 부른 것... 공교롭게도 Sap은 미국 영어로 멍청한 놈, 똘추의 뜻을 가지고 있다. (영국에선 Sapper가 공병을 뜻하기에 이 뜻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33] 사실 맥라렌이 MP4-12C를 비롯하여 후속인 650S, 플래그십 모델인 P1과 엔트리급인 570S,540C 등등, 여러 맥라렌 로드카들에 쓰는 M838T 엔진은 과거 닛산이 자사의 V8엔진을 기반으로 인디카 레이스및 GT레이스에 사용하기 위해 TWR,톰 워킨쇼 레이싱(Tom Walkinshaw Racing)과 공동으로 개발한 VRH엔진(이 엔진을 썼던 대표적인 레이스카는 닛산 R390)의 권리를 인수하여 엔진개발 업체인 리카르도와 함께 재개발한 엔진이다. 엔진개발을 시작한다 해도 포르쉐처럼 맘먹고 외계인을 집어넣은것마냥 개발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직접 워크스팀으로 나설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것이다.[34] 혼다가 광고할때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인 'The power of dreams'을 비꼰 표현이다. 맥라렌-혼다 시절의 저열한 엔진 성능에 실망한 팬들이 조롱조로 부르는 말.[35] 다만 당시의 윌리엄스는 대형 스폰서인 마티니를 확보하는 등 자금 사정을 안정화시켰지만, 맥라렌은 타이틀 스폰서였던 보다폰이 이탈해 안정적인 스폰서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36] 그러나 팬들 사이에서는 다소 적잖은 논란이 일었는데, 흑색 계통의 리버리는 성적이 좋지 않다는 블랙 리버리 징크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나마 중위권에서 강자였던 블랙-골드 리버리의 로터스도 점차 성적이 내려가고 있었던 것도 있고..[37] 아이러니하게도 맥라렌과 첼시 모두 영국 국적의 팀이다. 스폰서였던 요코하마 타이어와 혼다 역시 둘 다 일본 국적.[38] 그러나 정작 과거 2012년에 자우버와 첼시가 서로 스폰서십을 체결했을때 자우버는 말레이시아 GP에서 아쉽게 2등을 했지만 우승도 할 뻔 했고 중상위권으로 올라갔던 적이 있다.[39] Did Not Start[40] 우연의 일치인지 미나르디도 차량 컬러가 검은색 계통이었었다(...)[41] F1 그리드 페널티 최다 누적 기록을 갱신하였다(...)[42] 버튼은 50 그리드, 알론소는 55 그리드 페널티를 받았으나, 각각 19,20그리드로 배정받았다. 105 그리드 페널티이기 때문에 다음경기에서 남은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규정상 저렇게 형식적으로만 부과하는 것이다. 즉, 이렇게 손해를 보더라도 벨기에에서 만회하여 앞으로도 승승장구 할 계획이었겠지만 결과는 뭐 다들 알다시피...[43] 2013년엔 보다폰, 2014년엔 휴고 보스, 2015년엔 태그 호이어가, 이후 2016년엔 엑슨모빌(모빌 1), 2017년엔 조니 워커까지 떠나서 2018시즌 리버리는 그야말로 휑 비어버렸다(...)[44] 영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모터스포츠 팀인 유나이티드 오토스포츠의 소유주이며 FIA GT3 유럽 챔피언십을 비롯한 레이스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미국 출생 사업가이다.[45] 이 리버리는 1967 시즌 맥라렌 M5A를 시작으로 인디카 레이스, 그리고 1973 시즌 맥라렌 M19A까지 사용했으나 타이틀 스폰서에 의해 리버리가 바뀌며 오렌지 컬러는 한동안 사용되지 않았었다.[46] 맥라렌-혼다의 스폰서는 저조한 성적을 이유로 대부분 이탈했기에 점차 자금 사정도 나빠졌고, 두 드라이버한테서 딸려오는 스폰서들만 간신히 남았다.[47] 심지어 맥라렌과 르노의 엔진 공급 계약이 체결되자 토토 울프는 인터뷰에서 “우리가 맥라렌에 엔진 공급하는거 아니었습니까? 그럼 우린 왜 준비한거여???"라는 반응을 보인 걸 보면 서로 협상이 진행되다가 맥라렌 측에서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는 이후 르노도 버리고 다시 메르세데스로 돌아간 것에서 볼 수 있듯 조삼모사가 되었다.[48] 바쇠르는 취임 이후 페라리 아카데미 드라이버인 샤를 르클레르를 영입했고, 이후에는 페라리와의 계약이 끝난 키미 라이코넨을 데려오거나 페라리 주니어 드라이버 안토니오 지오비나치를 데려오는 등 페라리와의 협력 관계를 지속했다.[49] 한때 이 건으로 르노와 대판 싸운 뒤, 르노를 버리고 다른업체로 바꾸려고도 했지만 다른 엔진을 구할 수가 없어 강제 안식년을 갖는다는 소문까지 돌았으나, 르노는 르노대로 2016년 워크스로 돌아오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레드불은 엔진을 구할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F1 규정상 팀에 엔진이 필요하면 가장 공급팀이 적은 공급사에서 강제적으로 공급해야했기 때문에 양측의 합의 하에 르노 엔진을 태그 호이어로 리브랜딩하고 쓰기로 했다.[50] 정확히는, 메르세데스는 레드불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에어로 퍼포먼스를 보자 엔진을 절대 줄 수 없다고 하였고 페라리는 2017년 당시 1년 전 2016년에 만든 최신 엔진마저 공급하기 싫어 굳이 엔진이 필요하다면 무려 2년 전 스펙의 2015 시즌 버젼의 059/4 파워유닛을 공급해줄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F1 규정이 바뀌면서 엔진 공급사는 커스터머에게 자신들이 쓰는 것과 동일한 스펙의 엔진과 업그레이드 패키지를 제공할 의무가 생겼다. 이전에만 해도 엔진 공급사와 커스터머간에 엔진 세대차이가 나는 일은 흔했는데, 당연하지만 이는 커스터머 팀의 경쟁력을 심각하게 저해하였고, 이에 따라 FIA에서 관련 규정을 만든 것이다.[51] 물론 레드불은 3자간 계약으로 사인츠 주니어를 임대해주었기 때문에 사인츠에 대한 지원은 2018 시즌까지 계속 해주었지만 2019년 부터 사인츠가 맥라렌으로 간 후부터는 스폰을 끊은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그의 18 시즌 헬멧과 19 시즌 헬멧을 비교해보면 레드불의 스폰서 데칼이 사라져 있다.[52] 적어도 탑 3 팀 과 동급 내지 바로 뒤라던 섀시치고는 오히려 같은 엔진을 쓰는 르노나, 페라리 엔진을 사서 쓰는 하스에게도 밀리고 있으며, 때때로 자우버와의 배틀에서도 힘겨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첫 시즌이니 궁합이 완벽할 수는 없겠으나, 혼다 엔진을 처음으로 장착한 토로 로쏘는 생각보다 괜찮은 궁합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점은 변명이 되기 힘들다.[53] 특히 맥라렌이 혼다의 삽질을 참고 견딘 3년간 입은 금전적/정신적(?) 피해를 생각했을 때, 그 결과물을 엉뚱한 이들이 가져가게 된 이 상황이 억울할 만도 하다.[54] 혼다와 맥라렌의 계약에서는 엔진 및 파워트레인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과 드라이버들의 연봉을 전액 혼다가 부담했다.[55] 몇몇 사람들은 세나 이름만 들먹이며 고인팔이 하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56] 아무래도 르노에서 챔피언을 두번이나 달성했던 경험으로 미뤄보아 르노로 더욱 바꾸고 싶어했을 가능성도 적잖아 있었을 것이며, 혼다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한다.[57] 이는 1986년 포르투갈 GP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는데, 알론소가 이정도로 실로 대단하고 팀 내에서 뿐만 아니라 F1에서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수있는 대목이기도 하다.[58]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이벤트를 한적이 있었는데, 해밀턴이 맥라렌에 있었던 2011년도에 나스카 챔피언인 토니 스튜어트와 같이 서로의 챔프카를 바꿔탔던 행사를 했던적이 있었다. 아마 여기서 착안하여 기획했던듯 하다.[59] 이는 강팀과 약팀들 모두에게 일괄 적용되는 것이며, 예산이 부족한 소규모 커스터머 팀들과 모기업과 각종 스폰서들의 지원덕분에 예산이 넘쳐나 차량 개발을 무한으로 할수있는 초강팀들간의 격차를 팍 줄여 차량의 퍼포먼스를 동등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규정이다.[60] 메르세데스의 파워 유닛과 르노의 파워유닛의 구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르노 엔진에 맞게 설계된 차에 다른 엔진을 집어넣으면 잘 맞지도 않을수도 있는데 억지로 집어넣을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61] 심한 경우, 예산 책정 계산이 잘못되어 진행 도중 난항을 겪을수도 있다.[62] 커리어 첫 포디움임과 동시에 맥라렌 팀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포디움에 오른 드라이버로 등극.[63] 당시 해밀턴이 알렉스 알본과의 충돌로 5초 페널티를 받은 상태였고, 3위 해밀턴과 4위 노리스와의 격차는 5초가 넘었다. 그러나 마지막 바퀴에 노리스가 필사적으로 달려 격차 4.8초 차이로 극적인 포디움 피니시를 했다.[64] 처음은 2019 브라질 GP[65] 잭 브라운은 이 결과가 얼마나 기뻤는지 몬자 서킷과 레이스 날짜를 왼쪽 팔에 타투로까지 새겼다.[66] 이 해 메르세데스 파워유닛을 사용했던 팀들은 다 성적이 망했다. 메르세데스, 맥라렌, 애스턴마틴, 윌리엄스.[67] 랜도 노리스의 3위[68] 특히 캐나다 GP는 맥라렌의 피트 스톱, 전략 문제가 한꺼번에 나타난 대표적인 그랑프리였다. 전반기에 치고 나가지 못한 것은 이 두 문제에 발목이 잡혀 업데이트의 진전을 보지 못한 게 컸다는 것이 중론.[69] 샤를 르클레르와 조지 러셀처럼 F3, F2에서 모두 데뷔 시즌 챔피언을 차지한 특급 루키이다.[70] 두바이 포츠 월드, DP 월드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위치한 다국적 물류 회사이다. 화물 물류, 항구 터미널 운영, 해양 서비스, 자유무역지역을 전문으로 한다.[71] 2022 시즌 규정 변경으로 타이어 크기가 18인치로 더 커지며 무게와 크기가 증가해 부담이 커져 피트스탑이 느려진 경우가 많았는데, 1초대에 진입하는 고무적인 성과를 냈다.[72] 추후 인터뷰에선 노리스는 오늘은 우승했어야 했고, 마이애미 당시 세이프티카 상황과 달리 이건 우리에게 운이 아닌 순수히 안좋은 결정들로 나온 결과물이다. 단, 인터 타이어로 한랩을 더 달린건 맞은 결정이었다.라며 실망감을 드러내는 한편 팀을 변호했다.[73] 1위 막스 베르스타펜은 277포인트[74] 1위 레드불은 408포인트[75] 페레즈는 극심한 부진에 빠지며 포인트를 거의 벌어오지 못하고 있으며 그나마 베르스타펜마저 이전의 압도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76] 맥라렌이 1998년 컨스트럭터 챔피언을 차지할 당시 맥라렌의 현재 두 드라이버들은 태어나지도 않았던 때였을 정도로 긴 시간이었음을 방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