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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수입3. 단급 제도
3.1. 이명
4. 전문교육기관5. 되는 법
5.1. 대한민국
5.1.1. 아마단 제도5.1.2. 연구생/입단5.1.3. 승단5.1.4. 2016년 승단 규칙
5.2. 일본
6. 기사 목록7. 기전 목록8. 기타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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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사(, 碁士), 바둑 기사는 바둑 두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말한다.[1] 다만 사전에는 굳이 생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잘 두는 사람 역시 기사라고 부른다고 되어 있다. 꼭 바둑뿐만이 아니라 장기 등 전통적인 보드게임을 전문적으로 두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다. 바둑은 엄연히 체육 종목이지만 한국에서는 몇몇 바둑기사들에게 문화훈장을 수여하는 등 체육인이 아니라 사실상 문화예술인으로 보고 있다.

2. 수입

일반인들도 알 만큼 유명한 프로 기사의 경우 어마어마한 수입을 거두기도 한다.[2] 보통 이 경우엔 국내외에서 열리는 대회(기전)에 출전하여 받는 상금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강연/지도대국/대회 심판(혹은 참관인)/기원 등의 바둑 도장 개설 등 다양한 활동으로 수익을 내는 기사들도 많다.

하지만, 모든 프로의 세계가 그렇듯 수입이 적어 빈곤한 프로 기사 역시 다수 존재한다. 특히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 계속해서 인기가 떨어진 탓에, 종목 자체가 인기가 줄어들고 있고, 대회의 숫자도 그에 따라 조금씩 줄어드는데다 그나마 있는 대회들도 상금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라 큰 대회에서 우승을 쓸어담는 괴물급 기사 몇명을 제외하면 다른 메이저 스포츠의 상위권 선수가 받는 연봉에 비해 한참 적게 버는 수준. 대부분의 기사(랭킹 30위~50위 바깥)는 바둑을 보급하며 수익을 창출해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3. 단급 제도

원칙적으로 아마추어 바둑기사는 '급'의 단위를 사용하며 숫자가 낮을 수록 실력이 높다. 즉, 아마추어에서는 1급이 가장 실력자인 셈이다. 각 급별 차이는 '정선[3]'을 두어 둘 만한 실력 차이가 있음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어떤 기사가 1급인 사람과 정선으로 승부하여 50% 정도의 승률을 낸다면, 이 기사의 실력은 2급이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2점 접바둑을 둘 정도면 2급의 차이가 있는 것이고, n 점 접바둑을 두면 n 급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최하급은 딱히 정해진 것은 없는데, 보통 30급[4]을 최하로 친다.

정식으로 프로기사가 되는 경우 '단'을 수여 받으며 입단시 初단으로 시작한다. 또한, 정해진 승단 규칙에 따라 九단까지 오른다. 참고로, 프로기사의 단 수는 한자로 표기하는게 일반적인데, 아래 설명하는 아마추어 단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서구권의 경우 初~九단표기를 로마숫자로 한다든가 하지는 않지만, 단수 오른쪽에 d(아마추어), 또는 p(프로)라는 알파벳을 따로 쓴다[5]. 다만 언론에서는 이런 부분을 잘 모르는지, 숫자로 표기한다는 점이 문제. 초기의 한국기원에서는 급과 마찬가지로 단에도 실력 차이를 두어 아랫 단의 기사와 정선/접바둑으로 이길 정도가 되어야 승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의 바둑은 일단 프로기사가 되면 初단과 九단의 실력차이가 크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무조건 호선이다.

아마추어 바둑기사가 늘어나고 1급으로 인정받는 기사들이 늘어남에 따라, 더 상위의 급수가 필요해졌고, 아마추어에서도 단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1급에 뛰어난 실력을 보일 경우 아마1단으로, 이 중에서 더 실력이 인정되면 아마2단으로 인정하는 식이다. 단 아마추어 단의 경우 프로와 구분하기 위해서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한다. 아마추어 단은 7단이 최대인데, 고단을 받으려면 대회 수상 경력이 필수다. 다만 아마 7단이라도 프로와는 접바둑을 둬야할 정도로 기력 차이는 많이 나는 편.

한국기원에서는 1964년에 기사제도를 만들면서 아마추어'단'과 프로'단'을 명확히 했다고 한다.

3.1. 이명

각 단별로 이명이 있으며 단급 표기는 아마추어의 경우 아라비아 숫자, 프로 기사의 경우 한자로 표기함을 원칙으로 한다.
단수 명칭 의미
初단(초단)[6] 수졸(守拙) 졸렬하게나마 제 스스로는 지킬 줄 안다.
二단(2단) 약우(若愚) 일견 어리석어 보이지만 나름대로 움직인다.
三단(3단) 투력(鬪力) 비로소 싸우는 힘을 갖춘다.
四단(4단) 소교(小巧) 간단한 기교를 부릴 줄 안다.
五단(5단) 용지(用智) 전투, 기교를 떠나 지혜를 쓸 줄 안다.
六단(6단) 통유(通幽) 바둑의 그윽한 경지에 이른다.
七단(7단) 구체(具體)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추어 완성에 이른다.
八단(8단) 좌조(坐照) 앉아서도 삼라만상의 변화를 훤히 내다볼 수 있다.
九단(9단) 입신(入神) 바둑에 관해서는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십단은 단위가 아니라 십단전이라는 타이틀 명이다. 그 외에 명인, 국수, 기왕 등의 많은 타이틀이 있으며, 타이틀을 획득한 사람에게 그 이름을 붙인다.

ex) 강동윤 십단[7], 조훈현 국수[8], 서봉수 명인[9], 이창호 기성[10], 유창혁 왕위[11] 등.

이런 명칭의 원조인 일본기원에서는 5연패 이상 한 기사에게 '명예 XX(타이틀명)'이라는 칭호를 평생, 심지어 작고 이후에도 붙여준다. 혼인보 같은 경우는 제XX대 혼인보라는 경칭까지 붙고 이름도 바꿔버린다.

예) 후지사와 슈코 명예 기성(棋聖)(6연패), 가토 마사오 명예 왕좌(8연패), 고바야시 고이치 명예 기성(棋聖, 碁聖)(棋聖 8연패, 碁聖 6연패), 셰이민 명예 여류명인(9연패), 제22대 혼인보 혼인보 슈가쿠(9연패), 제25대 혼인보 혼인보 치쿤(10연패), 제26대 혼인보 혼인보 몬유(10연패) 등.

4. 전문교육기관

사실상 바둑 교육기관은 바둑기사 및 바둑 산업 관련 종사자만 양성했었으나 한국에서 바둑의 수요가 줄어드는 동시에 체스, 장기(쇼기), 보드게임 등의 수요가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하여 타 마인드스포츠 기사 및 보드게임 프로게이머 및 보드게임 제작자도 양성하는 쪽으로 진로의 다양성이 넓어지고 있다.

명지대도 바둑학과 폐과를 결정하기 이전에 마인드스포츠학과로 더욱 큰 범위를 다루는 학과로 변화하려고 시도했었고, 앞으로 바둑학과를 신설할 의향이 있는 대학들도 비슷하게 바둑 뿐만 아니라 마인드스포츠 및 보드게임 자체를 다루는 학과로 만드려는 의향이 있다고한다. 보드게임 시장이 점점 커지는 것을 고려하면 그러한 형태로 여러 대학에 개설될 가능성이 있다.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구산리에 한국바둑고등학교가 있다. 원래는 1972년 개교한 주암종합고등학교였는데, 바둑 특성화고가 되면서 2013년에 학교 이름을 '한국바둑고등학교'로 변경했다.

2018년에는 이 바둑고등학교 옆 부지에 바둑고 병설 한국바둑중학교가 개교하였다.

1997~2024년에 명지대학교 자연캠퍼스에 바둑학과가 학사 과정 뿐만 아니라 석박사 과정도 존재했으며, 2008년부터 세한대학교 생활체육학과 바둑학전공이, 2024년부터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에 바둑학과가 개설된다. 바둑 관련 고등교육기관은 한국에서만 존재하기에 중국과 일본의 바둑기사 지망생들이 한국으로 유학을 오기도 한다.

5. 되는 법

5.1. 대한민국

대한민국 바둑계에서 기사는 승단보다 입단이 어렵다고들 한다. 한국엔 입단하지 못하고 아마추어로 남아있는 재야 고수가 많다. 프로 바둑에서 단수의 고저차는 갈수록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단수가 낮은 사람은 그냥 프로 입단하고 경력이 좀 덜 쌓였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한때 한국기원도 승단을 강요하고 또 그 승단을 위해서 많은 대국 수를 요구하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 이세돌 九단(당시 三단)이 대립하여 승단 대국을 하지 않아 三단을 유지한 채로 세계기전을 휩쓸고 다녔다. 결국 승단 규칙을 개편하고, 이세돌은 국제 대회 성적만으로 九단으로 승단한 일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그때부터 시작한 이세돌 九단과 한국기원의 갈등은 승단 문제 이외에도 여러 내용으로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게 상술된 승단 사건이나 09년의 휴직 사건이다.

5.1.1. 아마단 제도

한국기원에서 공인하는 '아마단(아마추어 단)' 제도가 있다. 관련제도
아래와 같은 4가지 중 하나의 방법으로 아마단을 획득 할 수 있다.
기준은 프로기사에게 7점 접바둑을 이기거나 대등하게 경기하면, 아마1단을 인정한다고 한다. 참고로, 한국기원에서는 최대 아마7단까지 인정한다. 아마7단이면 프로기사와 '정선'으로 대등하게 경기할 수 있는 수준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아마7단은 한국기원 주관 전국대회를 세 번 이상 우승[12]해야하므로, 정말 힘들다. 따라서 사실상 명예단급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대상자가 적어 거의 안 주는 단계이고 현재 내로라하는 아마 최강자들도 아마6단이 많다. 알려진 아마 7단의 예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바둑전문기자이자 현 한국기원 부총재인 박치문이 있다. 참고로, 나이가 적은 사람의 실력이 아마7단을 근접했다면 프로 연구생과 대등한 수준이기에, 아마추어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연구생부터 시작해서 입단을 노리는 경우도 있다.

가끔 타이젬 등 인터넷 바둑 단수와 실제 아마 단수를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둘은 천지 차이다. 한국기원에서 주는 아마5단증을 받은 고수는 (정상급이 아닌) 일반적인 프로와 석 점 정도 차이가 나는 게 보통인데, 타이젬 5단이면 6점은 깔아야 한다.

5.1.2. 연구생/입단

한국의 바둑 연구생 제도는 1~10조부터 각조당 12명씩 총 120명이다. 1-5조를 1군 6-10조를 2군이라고 칭한다. 다만, 연구생수가 적어짐에 따라 6조까지만 구성하는 것으로 조정되었다고 한다. 주말 한 달 내내 리그를 통해 상위 4명 승급 하위 4명 강단. 승강단체제로 상위성적 유지 및 연구생입단대회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준다. 연구생 10조에 들어가기 위해선 연구생선발전이라는 것을 거쳐야하는데 상위성적을 낸 학생들이 새로 들어간다. 미생의 세계(딴지일보)

초창기의 입단 기준은 연구생 + 일반인 풀리그를 치러서 갑조/을조에서 전승자만 입단했다. 최소 조건이 무려 14연승(!). 1년에 딱 한 번, 그것도 최대 정원이 남자기사 2명, 여자기사 1명 해서 1년에 단 3명이었고 그나마 전승자가 없으면 정원이 남아도 입단을 받아주지 않았기에 여류기사같은 경우 박지은 九단이 입단한 뒤 4년 동안 입단자가 한 명도 배출되지 못했다.

입단 관문이 너무 좁아서 발생되는 문제가 많다 보니 시간이 지나며 입단대회 우승자를 입단시켜주는 식으로 이 문제를 개선하게 되었다. 현재는 입단대회도 많아지고 패자부활전 입단제도나 특별 입단 같은 것도 생기고 해서 남녀 합쳐 1년에 12~15명이 프로 기사로 입단한다.

입단이 너무 쉬워졌다고 발언하는 기사들도 좀 있는데, 대표적으로 이세돌 九단은 프로가 되기가 너무 쉬워졌다고 말한다. 이세돌 본인은 저 바늘구멍만한 입단 시험을 진짜로 통과한 당사자이다 보니 그렇게 느끼는 듯하다. 박영훈, 조훈현 등 이전세대 입장에서는 문턱이 굉장히 낮아졌다고 느낄 법 하다.

다만 연구생 중에서 입단이 늦었던 사람들의 경우 좀 전성기가 빨리 와서 대회 본선에 바로 나가는 경우가 있는 편이다. 위태웅 初단의 경우 2016년 2월에 입단한 기사인데도 2016년 5월 국제대회인 신아오배 본선에 바로 진출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입단한 지 3개월 된 신예가 중국랭킹 10위권인 구쯔하오 五단을 꺾고 본선에 진출한 거라 화제가 된 것.

연구생 단계에서 국제대회 본선에 일반조[13]로 진출할 경우, 입단 누적포인트 100점 제도에 따라 한국기원에서 특별입단하는 제도가 있다. 예를 들어 조인선 三단의 경우 2011년 삼성화재배 일반조 본선 진출(프로기사 3명을 꺾었다)로 연구생에서 특별입단이 허가되었다.

5.1.3. 승단

이전에는 한국기원에서 주관하는 승단대회에 참가해서 그 성적을 바탕으로 승단이 진행되었다. 한국기원의 경우 입단과 마찬가지로 승단 또한 아주 엄격하게 적용하였기에, 승단되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그래서 한중일 3국 중에서 九단의 수는 가장 적었지만, 단의 권위는 가장 높았었다. 하지만, 2003년 승단 규칙 개정 이후, 특별 승단으로 빠르게 九단에 오르는 사람이 많아지며 옛말이 되었다.

한국 바둑의 최고 원로인 조남철의 경우 승단대회를 통해서 八단까지 올랐으나, 九단에 오르진 못하고 멈추어 있었다. 그 당시의 승단 규칙으로는 八단은 四~五단과 2점 접바둑을 두어서 이기는 수준이 되어야만 九단이 될 수 있을 만큼 승단이 어려웠다. 또한, 바둑 보급에 힘쓰는 등 승단대회에 열심히 참가하지 않았기에 八단에서 멈추어 있었다. 그 사이 조훈현이 꾸준히 승단대회에 참가하여 1982년 최초의 九단에 올랐다. 당시에 조남철을 특별 승단 형식으로라도 먼저 최초의 九단으로 올렸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행되지는 않았다.[14] 1983년에 김인이 두 번째로 九단에 오른 뒤에야, 조남철은 특별 승단으로 세 번째 九단이 되었다.

문제는 이 승단대회라는게 상금이 걸려 있는 게 아니고, 적은 액수의 대국료만 지급하였다. 기사들의 규율이 엄격하던 시절에는 무조건 이 승단대회에 참가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1989년 이창호 (당시 四단)은 그해 개최된 모든 기전뿐만 아니라 승단 대회까지 다 참여해야 했고, 1년간 111국이라는 어마어마한 혹사를 기록하며 논란이 되었다. 이 당시에도 승단대회 개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이창호 본인의 성격상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점, 이창호의 스승인 조훈현은 그 험난한 승단전을 정석으로 뚫고 올라가 九단이 되었다는 점 때문에 논의는 흐지부지 끝났다. 그나마 다행히도 이창호는 1996년 유창혁과 함께 九단으로 특별승단되며 승단전의 족쇄를 겨우 풀었다.

그러다가, 이 승단 제도를 대놓고 보이콧한 기사가 등장했는데, 바로 이세돌이다. 이세돌은 승단대회로 三단까지는 올랐다. 하지만, 이후 여러 핑계를 대가며 승단대회를 불참했고, 그러면서도 三단인 채로 국제기전에서 우승을 하는 등 활약을 하였다. 이런 덕분에 승단대회 무용론이 본격적으로 언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한국기원은 2003년부터 승단대회를 폐지하고 10개 기전을 선정하여 이 대회의 예선을 승단대회로 대신하는 것으로 변경한다. 또한, 규칙에 "세계대회 우승 시 +3단, 준우승 시 +1단, 국내대회 우승 시 +2단"이라는 내용을 추가한다.[15] 이세돌은 그 후 5개월 만에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우승, 제2회 KT배 준우승, 제16회 후지쯔배 우승을 거두며 九단이 되었다.

이 특별 승단 규칙에 의해서 후배 기사들이 비교적 쉽게 승단을 할 수 있게 되었고 九단에 오른 사람도 크게 증가하였다. 또한, 어린 나이에 九단에 오르는 일도 빈번해 졌는데, 박영훈은 19세, 박정환은 17세에 九단에 올랐다. 결국 한국기원도 九단 인플레가 발생하여, 2011년 기준 전체 프로기사 254명중 22%인 55명이 九단이다.관련기사

2008년에는 한국 여자 기사 최초로 박지은이 九단에 올랐다. 2010년에는 두번째로 조혜연이, 2018년에는 최정이, 2019년 김혜민이 九단으로 승단, 2021년 오유진이 승단하여 九단이 된 한국 여자 바둑기사는 5명이다. 중국에는 1988년 九단으로 승단한 루이나이웨이가 전세계 최초이며 중국의 유일한 여자 九단이다. 일본기원대만기원에는 九단에 오른 여자 기사가 아직 없다.[16]

2011년에는 승단 규칙을 조금 더 변경해, 기전 서열에 관계없이 모든 기사가 참가하는 정규기전의 예선 첫판 결과로 승단 점수를 계산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승점제 기반으로 제도가 바뀜으로 인해서 승률이 낮더라도 오랜기간 활동하며 승수를 조금씩이라도 쌓아 가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승단을 할 수는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차민수 같은 경우 바둑기전에 거의 참가를 안하지만, 틈틈히 참가하여 예선에서 승수를 쌓았기에[17], 2014년에 五단으로 승단하였다. 참고로 입단이 1974년이었으니, 무려 40년만에 五단으로 오른 것이다.

2016년에 전면적으로 승단 규정을 갈아엎었다.

5.1.4. 2016년 승단 규칙

2016년 또다시 규정을 변경해서, 한국바둑리그 및 중국바둑리그를 포함한 모든 공식대국에서 승리 시 4점의 승점[18]을 부여하고, 각 단별로 주어진 기준 승점을 만족하면 승단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입단하여 初단이 된 후 九단이 될 때까지 필요한 승점은 총 1200점으로 공식대국에서 300승을 달성하면 된다.
구분 점수 4점 기준
初단 → 二단 80점 20승
二단 → 三단 100점 25승
三단 → 四단 120점 30승
四단 → 五단 140점 35승
五단 → 六단 160점 40승
六단 → 七단 180점 45승
七단 → 八단 200점 50승
八단 → 九단 240점 60승
합계 1,200점 300승

또한, 기존에 있든 특별 승단 규칙을 변경하여 세계대회 우승 시 즉시 九단으로 승단한다. 제한기전은 우승 시 +1단이 적용된다. 세계대회 결승진출 시 준우승 확보로 +2단이 적용되며, 국내대회 결승 진출시 준우승 확보로 +1단 적용되고, 우승 시 다시 +1단 적용된다.
구분 우승 준우승
세계대회 즉시 九단으로 승단 + 2단
국내대회 + 2단 + 1단
제한기전 + 1단 없음

이상의 내용은 한국기원 보도자료에서 발췌했다.

5.2. 일본

일본에서 프로 바둑기사로 활동하려면 도쿄일본기원이나 오사카관서기원 두 양대 협회 중 하나의 입단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입단 시험을 통과해 프로 초단이 되면 그 때부터 각종 프로 기전에 참가할 수 있다.[19]

원래 일본에서 프로 기사들이 승단을 하기 위해서는 승단 대회에서 성적을 내야 했지만 일본기원은 2003년에 이를 폐지하고 승단 제도를 개정했다. 2004년에는 관서기원도 승단 대회를 폐지하고 일본기원과 거의 비슷한 형태로 승단 제도를 개정했다.

2003년에 개정된 일본기원의 승단 규정#은 아래와 같다.[20]

6. 기사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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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전 목록

주요 국제 바둑 기전
종합 기전
(상금순)
응씨배 · 몽백합배
바이링배 · 삼성화재배 · LG배 · 춘란배
제한 기전 TV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 · 글로비스배 · 이민배 · 봉황고성배
CCTV 하세배 · 월드바둑챔피언십 · 중일 아함동산배 · 한중일 용성전
단체전 농심신라면배 · 오카게배 · 국수산맥배 · 황룡사배 · 천태산농상은행배
여자 기전 궁륭산병성배 · 센코배 · 오청원배
다른 카테고리의 바둑 기전은 아래 문서 참고
한국 기전 · 일본 기전 · 중국 기전 · 대만 기전 · 폐지 기전

8. 기타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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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종목의 전문 선수들처럼 '바둑 선수(選手)'라고 검색해도 해당 문서 등의 검색 결과로 곧바로 조회된다.[2] 대표적으로 전성기 이창호나 이세돌, 지금의 신진서나 박정환이 이런 경우다. 이창호 전성기 시절에는 국내 타 프로 스포츠 선수들보다 훨씬 잘벌었다. 이세돌만 해도 국내 프로 스포츠 선수 중 최정상급으로 잘 벌었다. 지금 바둑 최강자인 신진서는 1년에 10억정도 버는데 이제는 프로야구 선수만 봐도 10억 이상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10명이 넘는다.[3] 흑이 선수이지만 덤을 전혀 주지 않고 두는 바둑이다.[4] 과거에는 18급[5] 물론 헷갈릴 일 없는 프로바둑기사의 경우엔, 오른쪽 알파벳을 생략하기도 한다.[6] 중국에서는 一단(1단)이라고 한다.[7] 대한민국 원익배 십단전은 2013년 8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강동윤 九단이 마지막 우승자로 여기에 표기한다.[8] 조훈현 九단의 16회 우승이 최다 우승이다.[9] 프로 입단 후 불과 1년 8개월 만에 대한민국 바둑계 최고 원로인 조남철 九단(당시 八단)을 꺾고 그 후 5연패 하는등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다. 현재도 서 명인이라고 자주 불린다.[10] 2008년 19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된 대회로 이창호 九단이 19회 중 11번 우승을 거머쥐었다.[11] 이창호전관왕에 도전하던 1994년 유창혁 九단이 왕위전 타이틀을 방어하면서 이창호 九단의 전관왕을 좌절시키던 게 임팩트가 크고 4연패를 했기에 유왕위로 굳어졌다. 문제는 1995년 대회부터 2007년 왕위전 폐지 시까지 이창호가 모조리 우승했다는 것.[12] 물론 예외도 있다. 티어가 더 높은 전국대회는 우승 한번으로도 아마 7단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13] 아마조는 해당사항 없음[14] 당시 한국기원의 이사장은 조남철 八단이었다. 조남철은 승단 규칙을 완화하거나, 특별 승단으로 자신이 九단이 되는 것을 한사코 거절하였다고 한다.[15] 참고로 중국에서는 국제대회 우승시 즉시 九단 승단이라는 규칙이 있다. 제7회 응씨배 우승자인 판팅위 당시 三단은 17세의 나이에 九단이 되었다.[16] 중국, 일본 여성 기사의 승단은 四단까지는 한국과 비슷하나, 五단부터는 승단 기준이 남자 기사와 사실상 동일하여 승단이 엄청나게 까다롭다. 五단부터는 대부분 여자 대회 우승 기록이 최소 하나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며, 七단 이상 승단하기 위해서는 六단에서 최소 수백 판을 이기거나, 혹은 남녀 구분 없는 국내 대회에서 우승 정도 해야 승단이 가능한 상황. 루이나이웨이가 1985년 七단으로 승단한 이후 중국에서는 여자 기사 중 쿵샹밍이 七단에 오르고 1993년 화쉐밍이 七단을 승단한 이후 七단에 승단한 기사가 없다가, 2021년 말이 되어서야 위즈잉이 가까스로 七단에 올랐다. 일본 여자기사 역시 남자와 거의 동일한 기준을 배정받으며, 七단을 밟은 여성 기사가 단 한 명 뿐이다. 반면에 한국은 여자 대회도 많이 열려 있고, 여자 바둑리그에서 승리하여 쉽게 승단 점수를 얻을 수 있으므로 승단이 매우 쉬운 편에 속한다.[17] 차민수의 경우에는 1974년 입단후 오랫동안 初단에 머물러있다가 미국에 바둑을 보급한 공로로 四단으로 특별 승단하였다.[18] 단, 제한기전(신예, 여자, 시니어 기전 등)은 승점 1점. 중국여자바둑리그는 1점 더 추가[19] 단 입단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서 프로 기사가 되지 못하더라도 연수 기사를 거쳐 '보급 기사' 자격으로 보급 활동을 할 수는 있다. 반면 일본 쇼기의 경우 일본쇼기연맹 산하의 프로 쇼기기사 양성기관인 장려회에서, 엄청나게 치열한 리그전을 치러 四단으로 승단해야만 프로 기사가 될 수 있다.[20] 관서기원의 승단 규정도 일본기원과 비슷하지만 七단 승단 규정[21]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