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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16:18:24

사가와 규빈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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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가와 규빈3. 상세

1. 개요

東京佐川急便事件

일본의 거대 운송회사가 정치권에 광범위하게 일본정치권에 불법자금을 제공한 정치 스캔들.

같은 회사가 2001년에 나라현 경찰과 관련된 나라 사가와 규빈 사건과 구별하기 위해 도쿄 사가와 규빈 사건으로 부르기도 한다. 자민당 정권에게는 4년 전에 일어난 리크루트 사건, 동년에 일어났던 교와 스캔들과 같이 치명적인 타격을 당한 사건으로 볼 수 있으며 이를 계기로 55년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후 집권한 첫 비자민당계 총리인 호소카와의 실각도 이 사건과 연관돼 있다.

2. 사가와 규빈

사가와 규빈(佐川急便)은 페덱스나 DHL과 비슷한 일을 하는 일본 최대 규모의 택배 회사다. 리쿠르트가 일본 사회의 전통적 고용 관행을 관리 감독하는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렸다면 사가와 규빈은 일본의 우체국과 그 주무부처인 우정성에 위협이 되었다. 사업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허가가 필요했고 사가와 규빈은 그 허가를 받고자 사업을 방해하는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준 것이다. 하지만 리쿠르트 사건 이후 지난 3년간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버블 경제가 그사이에 끝났고 더 이상 예전처럼 돈을 쉽게 조달할 수 없게 되었다. 1990년 버블이 끝나고 디플레이션이 시작되면서 일본 금융계의 썩은 속살이 속속 드러났다. 정계와 금융계의 부적절한 유착관계가 노출되었음은 물론, 특히 정계와 금융계의 최상위 단계에까지 범죄조직의 영향이 광범위하게 미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3. 상세

1992년 사가와 규빈[1]이 정치권에 대규모 정치자금을 공급한 사실이 불거졌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자민당 계파인 경세회(현 헤이세이 연구회)의 좌장 가네마루 신 부총재가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정계를 물러났으며 이에 경세회 일원이자 당내 2인자 오자와 이치로 역시 사건에 연루돼 증인소환이 불가피한 위기 상황에 몰렸다. 결과적으로 당내 최대계파 경세회는 급속히 와해되어 계원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자민당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개혁성향의 일부 의원들이 탈당했다. 그렇게 생겨난 당들이 일본신당, 신생당, 신당 사키가케다.[2] #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가 구마모토현 지사 시절이었던 1982년 사가와 규빈으로부터 1억엔을 무이자로 빌린 사실과 이 자금을 유용해 구입한 아파트를 담보로 장인이 NTT 주식을 구입한 과정의 사실유무 등을 둘러싼 의혹으로 결국 1994년 호소카와는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비단 실각의 원인은 이 의혹뿐만 아니라 호소카와 내각은 국민복지세 신설 철회로 인해 연립 파트너인 사키가케, 사회당과 심각한 내분에 휩싸있었고 그의 총리직 사퇴는 이미 시간문제였다.

파발꾼의 훈도시라는 도시전설의 유래 중 하나로 이 사건이 거론되기도 한다.


[1] 사건 이후에도 영업 중인 운송기업이다. 사가와 익스프레스로 불리기도 하며 야마토 운수, 일본 통운과 함께 3대 택배회사로 손꼽힌다.[2]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신당과 신생당의 주류는 사가와 규빈 사건으로 큰 타격을 입은 경세회 출신들이다. 특히 신생당의 창당 주역 중 한 명이 이 사건에 연루된 오자와 이치로. 즉, 태생부터 이 사건과 자유로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