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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9 21:14:53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제2차 세계 대전의 독일 해군 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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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아트미랄 히퍼블뤼허프린츠 오이겐자이틀리츠뤼초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DVM_10_Bild-23-63-24%2C_Schwerer_Kreuzer_%22Admiral_Hipper%22.jpg
Admiral-Hipper-Klasse

1. 개요2. 제원3. 개발4. 장점
4.1. 높은 화력 기대치
5. 문제점
5.1. 구식 설계5.2. 빈약한 화력5.3. 부족한 장갑5.4. 신뢰성 부족한 동력기관5.5. 속력과 항속거리
6. 실전7. 동형함8. 관련 문서9. 매체에서의 등장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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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크릭스마리네의 중순양함.

2. 제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dmiral_Hipper_ONI.jpg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제원
건조 시작1935년 7월 6일
진수1937년 2월 6일
취역1939년 4월 25일
스크랩1948년 ~ 1952년
기준배수량14,247~16,170톤[1]
만재배수량18,500톤
길이202.8m
21.3m
흘수선7.2m
보일러라 몬트(La Mont) 중유 전소 고온 고압 보일러 12기[2]
터빈브롬 운트 포스(Blohm & Voss) 기어드 증기터빈 3기 3축[3]
출력132,000hp
속력32.6노트
항속거리20노트로 6,800해리
승조원1,382 ~ 1,600명
주포SK C/34 20.3cm 60구경장 2연장 주포탑 4기 (총 8문)
대공포SK C/33 10.5cm 65구경장 2연장 대공포좌 6기 (총 12문)
대공기관포 SK C/30 3.7cm 83구경장 2연장 기관포좌 6기 (총 12문)
Flak 38 2cm 65구경장 2연장 기관포좌 4기 (총 8문)
어뢰 53.3cm 3연장 수상 어뢰 발사관 4기 (총 12문)
장갑현측장갑 : 최대 80mm
갑판장갑 : 50mm (주갑판), 30mm (상갑판)
주포탑 전면 : 105mm
장갑함교 : 150mm
함재기Ar 196 수상기 3기, 캐터펄트 1기

3. 개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DVM_10_Bild-23-63-09%2C_Kreuzer_%22Bl%C3%BCcher%22.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E_Atomtest_1.jpg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2번함 블뤼허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3번함 프린츠 오이겐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군사력을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1934년에 크릭스마리네도 그 동안의 제약에서 벗어나서 쓸만한 중순양함을 개발 및 건조하려고 계획을 잡기 시작했다. 이 당시의 개발 조건으로는 주요 열강의 8인치 주포를 장착한 조약형 중순양함과 동등한 싸움이 가능한 주포 무장, 프랑스의 고속전함됭케르크급 전함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 수준의 속력, 대서양에서 벌어질 작전에 참가할 수 있는 수준의 항속거리가 있었다.

설계를 시작한 시기에는 프랑스영국을 너무 자극하지 않기 위해 배수량워싱턴 해군 군축조약런던 해군 군축조약을 준수하는 1만톤급의 조약형 순양함으로 결정했으며, 주포의 경우에도 여러가지 구경의 다양한 물건들을 검토했으나, 역시 조약을 준수한다는 의미로 타국의 조약형 중순양함과 동일한 수준인 20.3cm 주포 8문으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1934년 8월에 1차적으로 정리한 설계구상으로는 8인치 주포 8문과 현측장갑 80mm 수준의 방어력을 가지며 32노트의 속도를 달성가능한 기준배수량 10,700톤 정도의 중순양함이었다. 군축조약의 순양함 배수량 제한을 약 700톤 정도 초과했지만, 당대의 군함들은 배수량 분야에서 조약을 약간 넘어가는 것은 그냥 숨기고 발표하는 것이 일반화된 상황이었으므로 이 때까지는 조약을 엄청나게 위반한 군함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설계 초안을 검토한 독일 해군 총사령관 에리히 레더는 공격력과 방어력이 모두 빈약하다는 판단을 한 후, 공격력 측면에서는 대공화력과 어뢰공격능력 강화를 주 목적으로 삼고, 방어력에서는 주포탑과 탄약고의 방어력 강화를 중점적으로 해서 재설계할 것을 관련부서에 명령했다. 그러나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배수량의 증가가 불가피한데다가, 당시의 독일 해군은 대형함의 건조 역사가 10년 이상의 공백기까지 있어서 설계능력이 크게 감퇴한 실정이었으므로 목적 달성을 위해 엄청난 수준의 배수량 증가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가장 두꺼운 주장갑대인 현측장갑이 80mm 수준으로 개선이 없던 것에 비하면 기준배수량만 따져도 조약 따위는 없다 식의 14,050톤을 달성했고 동형함인 프린츠 오이겐은 16,227톤까지 불어난다. 기준배수량 뿐 아니라 만재배수량은 약 18,000톤을 초과해서 거의 1차대전의 순양전함급 배수량을 기록하는 대형순양함으로 체적이 불어났다. 그래서 에리히 레더는 대외적으로는 배수량이 크게 불어났다는 사실은 숨기고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은 군축조약의 규정을 지키는 10,000톤의 중순양함이라고 공개한다. 실은 이탈리아 왕국트렌토급 중순양함차라급 중순양함을 건조하면서 먼저 속인 적전이 있으나 성능은 이탈리아쪽이 더 우위였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설계가 완성된 후, 2척 건조를 시작했다. 그리고 1936년도의 독일 해군 건함계획에서는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설계를 기본 바탕으로 해서 6인치 주포를 보유한 경순양함 2척을 건조할 계획이 잡혀 있었으나[4], 소련 해군에서 180mm 주포 9문을 보유한 키로프급 순양함의 건조를 시작했기에 경순양함 건조 계획을 취소하고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추가 건조를 하기로 계획변경을 했기 때문에 추가로 3척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이들 함선중 프린츠 오이겐은 기존 동형함보다 약간 배수량이 늘어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의 배수량에 도달했으며,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5번함 뤼초(Lützow)와 4번함 자이틀리츠 (Seydlitz)는 배수량이 추가로 늘어서 만재배수량이 19,800톤까지 늘어나는 바람에 1차대전 시기의 드레드노트급 전함과 비슷해질 수준까지 배수량이 늘어났다.

4. 장점

4.1. 높은 화력 기대치

주포는 새로 개발한 SK C/34 20.3cm 60구경장 함포를 사용한다. 60구경장이라는 포신은 미국의 동급 화포가 가지는 55구경장과 일본의 동급 화포가 가지는 구경장인 50구경장을 훨씬 뛰어넘는 장(長)포신이다. 그래서 장포신에 걸맞게 포구초속 925m/s의 속도로 122kg이라는 비교적 경량의 포탄을 +37°에서 33,500m까지 날릴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다. 그리고 경량의 포탄이지만 이탈리아와 일본의 8인치급 포탄이 125kg이므로 아주 약간 가벼운 것이며 영국의 8인치급 포탄은 116kg이므로 오히려 독일의 8인치 포탄이 더 무겁다. 미국의 8인치 포탄만이 152kg로 차이가 크지만 미국의 함포탄은 초중량탄 기술을 사용해서 차이가 나는 것이므로 8인치 함포중에서는 열강 표준급 중량의 포탄보다는 약간 가볍다고 보면 된다. 사정거리만 따지자면 2차대전 시기의 최신예 전함을 제외한 나머지 전함의 주포 사정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포탄이 멀리 날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능력을 통해 스펙상으로는 타국의 중순양함을 사정거리 바깥의 원거리에서 공격하거나, 전함에게 쫓기는 상황에서도 견제용 포탄을 날려서 전함의 비장갑구획에 손상을 줄 수 있다. 실제로 프린츠 오이겐은 비스마르크와 함께 출항하여 항해중 후드와 프린스 오브 웨일스를 만났고 후드에게 명중탄을 내며 화재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화재는 비스마르크가 후드를 조준하는 기준점이 되었고 그 결과로 비스마르크가 후드에게 명중탄을 날릴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주포는 포탄을 강력한 힘을 사용해서 초고속으로 날리기에 근거리 관통력도 높은 편인데다가 협차사격시 포탄이 낙하하는 범위도 양호하기 때문에 근거리 전투에서나 중거리 이상의 전투에서나 유용하다고 당시의 독일 해군은 평가했다.

그러나 장거리 포격전시에는 초중량탄을 운용하는 미국에게 밀리고 포신의 수명도 타국에 비해서 짧은 300발 수준이다. 미국의 8인치 주포 포신 수명인 715발이나 영국의 550발보다 매우 짧은 것으로 그나마 비슷한게 일본의 8인치급 주포 수명으로 320 ~ 400발의 기대수명을 가진다. 사실 이 정도로 짧은 포신 수명이면 완벽히 전함 주포 수준이다. 당장 이 함포의 두 배의 구경을 가진 나가토급 전함의 16.1인치 주포가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8인치 함포와 동일한 300발의 수명을 가진다.

주포탑의 경우에도 새로 개발한 Drh LC/34 2연장 포탑을 사용한다. 부앙 능력은 +37°까지 가능하며, 부각은 1번 포탑과 4번 포탑은 -9°까지, 2번 포탑과 3번 포탑은 -10°까지 가능하다. 포탑선회각도는 기본적으로는 360° 회전이 가능하며, 사격가능방향은 선체에 가려지는 후방의 70도를 제외한 290°다. 발사속도는 분당 4 ~ 5발이다. 포탑 회전 및 포신 부양, 장전등의 동작은 전기식으로 작동하며, 인력으로 보조한다. 포탑 배치도 전방 2기, 후방 2기를 적층식으로 배치해서 포탑간 간섭현상을 없애고, 화력도 전방과 후방 50%, 양 측면 100%를 사용할 수 있어서 영국과 미국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파일:WNGER_41-65_skc33_pic.jpg
10.5 cm/65 SK C/33

대공포도 새로 개발한 SK C/33 10.5cm 65 구경장 대공포를 사용한다. 해당 대공포는 Dopp LC/31형 대공포대에 설치하며, 대수상용으로는 15.1kg의 포탄을 +45°에서 17,700m까지 날릴 수 있고, 대공용으로는 +80°에서 12,500m의 고도까지 도달하게 할 수 있다. 선회 및 부앙은 전기식 위주와 인력 보조로 이루어지며, 360° 회전이 가능하고 -10°에서 +80°까지 포신을 상하로 움직일 수 있다. 발사 속도는 분당 15 ~ 18 발이다. 이런 대공포를 6기 탑재해서 대공포의 숫자는 총 12문으로 동 시기의 중순양함과 비교하면 스펙상으로는 미국 다음으로 대구경 대공포가 많다.

다만 스펙과는 달리 문제점이 많았다. 포와 탄도 자체는 105mm급으로는 딱히 나무랄데 없는 대공포였으나 날이 갈수록 빨라지는 항공기에 대응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는 포신부앙속도와 포탑회전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미 해군의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 처럼 전기 모터 구동식이 아닌 유압 구동식이기 때문에 피탄을 당할 경우 화재가 발생할 확률도 높았다.

그러나 이것은 약과였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포탑인데 포좌만도 못한 반쪽짜리 포탑이었다. 포탑의 하부만 존재하는 구조기 때문에 포미를 포함한 포신 전체 및 구조물이 아무런 방어조치 없이 노출되어 사소한 피탄이나 포탄 파편이 쏟아져도 동작정지 될 수 있으며 심지어 북해의 험한 파도 먹고 바닷물이 잘 침투되어 수시로 전기고장에 시달렸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이론상 최강만 생각한 나머지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신뢰성이 없는 3축 안정식 구조를 탑재하는 바람에 신뢰성이 바닥이었으며 구경 자체도 대함전에 사용하기에는 타격력이 모자란 105mm라 구축함 상대하기도 곤란해지므로 주포도 소형함 타격하는 데 함께 사용해야 했다.

대공기관포는 SK C/30 3.7cm 83구경장 2연장 대공포좌 6기와 2cm 65구경장 C/30 2연장 기관포좌 4기를 탑재한다. 3.7cm 대공포는 단발식 장전을 하는 물건이기 때문에 스펙상으로는 분당 30발의 발사속도를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인력장전식이라 지속발사시나 실전시에는 발사속도가 크게 저하한다. 그래서 +85°의 포신부앙각도와 6,800m의 최대포탄도달거리라는 이점을 다 까먹는다. 게다가 실질적으로 대공사격의 중추는 40mm급 대공포가 담당하므로 이건 제법 심각한 문제다. 일제 군함의 대공화력의 문제도 40mm급 대공화기의 부재가 상당히 큰 문제였었다.

2cm 기관포는 탄창 장전식 기관포로 카탈로그 상으로는 분당 280발의 발사속도를 가지지만 탄창식 기관포인 탓에 수시로 재장전을 해야 했기에 실제 발사속도는 120발을 넘기지 못한다. 타국의 동급 기관포인 미국의 1.1인치 대공포나 오리콘 20mm 기관포도 탄창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1.1인치는 오리콘으로 대체되었고 20mm 오리콘은 60발짜리 나선탄창이라 장전 문제가 덜하다. 실제 분당 연사속도도 2 ~ 3배 더 빠른지라 성능면에서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측이 압도적으로 밀린다. 게다가 신뢰성 부족으로 심심하면 잼이 걸리는건 덤. 희한한 점은 독일은 3,7cm FlaK 18/36/37/43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기관포는 보판탄 및 탄창을 이용한 장전을 하는데, 육군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였으며, Ju 87 G형에 장착되기도 했다는 점을 보면 왜 이 기관포가 함선에 장착되지 않고 단발포인 SK C/30가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따라서 초기의 대공기관포들은 스펙과는 달리 대공화력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기에 지속적인 개량이 있었다. 일단 아트미랄 히퍼와 프린츠 오이겐은 3.7cm 기관포를 4문 줄이고 대신 2cm 기관포를 28문까지 늘렸으며, 프린츠 오이겐의 경우에는 1944년에 3.7cm 기관포를 완전 제거한 후, 4cm Flak 28 기관포라는 독일제 보포스 40mm 포를 15문 증설했다. 그리고 1945년에 이르면 항구방어용 부유대공포대로 사용하기 위해 20문의 4cm 기관포와 18문의 2cm 기관포로 대공기관포를 정리하였으며, 폐함상태였던 아트미랄 히퍼도 16문의 4cm 기관포와 14문의 2cm 기관포를 설치해서 고정 대공포대로 사용했다.

어뢰의 경우에는 53.3cm 3연장 어뢰발사관를 함교의 측면과 후방사격통제소 측면에 각각 1개씩 총 4기를 배치해서 12문의 어뢰발사능력을 가진다. 이는 어뢰수량만으로는 당대의 중순양함중 최고급에 속한다. 어뢰는 G7a로 24기를 보유해서 12기는 어뢰발사관내에 장전한 상태고, 재장전용으로 12기를 보유한다. G7a의 성능은 탄두중량 300kg으로 1939년에 30노트로 12,500m를 항주 가능하며, 40노트로 7,500m를 질주 가능하며, 44노트로 5,000m를 고속질주 가능하다. 이 어뢰는 전쟁중에 엔진을 교체함으로서 항속거리가 더 늘어났는데, 30노트로 14,000m을 항주 가능하며, 40노트로 8,000m을 질주 가능하며, 44노트로 6,000m를 고속질주 가능하다.

다만 초창기 독일 어뢰의 신뢰성이 높지 않아서 실전에서 기대할 수 있는 화력은 이보다 떨어질 것이다. 예를 들자면 U-39는 HMS 아크로열을 공격했는데 어뢰가 너무 일찍 폭발해서 구축함들이 잠수함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달려들어서 격침시켜버린다거나 U-56이 넬슨에게 3발의 어뢰를 발사해서 2발을 명중시켰는데 2발이 전부 불발되고 1발은 조기폭발로 호위함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광고해버려서 호위함의 격렬한 환영 인사를 받고 간신히 빠져나오기도 했다. 이런 문제가 계속 이어지자 레더 제독은 결국 어뢰 개발 책임자를 해임하게 된다. 해당 문제는 1942년 무렵에는 해결된다.

이외에도 기뢰를 운용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기뢰함으로 사용이 가능하며, 필요에 따라서 함미 갑판에 레일을 설치하고 기뢰를 투하 가능하다. 그래서 네임쉽인 아트미랄 히퍼는 실전에서 탄두중량 300kg인 EMC 기뢰 96개를 탑재한 후 기뢰 부설 임무를 수행했다.

5. 문제점

하지만 조약을 위반하면서까지 만든 물건임에도 문제점이 많은 함선이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거대한 덩치와 큰 배수량을 보유했음에도 성능이 덩치에 걸맞지도 않을 뿐더러 이미 투자한 것만큼도 나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

5.1. 구식 설계

일단 나치 독일은 대형함선의 제조기술이 10년 이상 단절된 이유로 인해 1차대전형 전함의 설계도를 완전히 그대로 답습해서 함체 구조가 구식이라는 것도 큰 문제지만, 이런 중순양함의 경우에는 그런 식으로 카피한 전함의 설계도를 축소해서 그대로 적용해 버렸다. 따라서 2차대전 시기의 중순양함 설계쪽에서 본다면 너무나도 어이없을 수준으로 배수량을 낭비하는 설계가 만들어진다.

함포를 주무장으로 사용하는 순양함 분야에서 끝판왕 취급을 받는 우스터급 경순양함디모인급 중순양함은 물론이고, 동시대로 비교 대상을 한정한다고 해도 볼티모어급 중순양함이나 차라급 중순양함을 보면 같은 수준의 배수량을 사용해도 결과가 천양지차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나마 볼티모어급의 경우에는 취역이 4년정도 늦다는 식의 변명을 둘러댈 수 있으나 같은해에 취역한 위치타급 중순양함과 비교해도 장갑이 더 빈약하다. 게다가 위치타급은 조약을 준수해서 만들어진 1만톤 내외의 배수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갑판장갑은 비슷한 수준이지만 현측장갑의 경우에는 위치타급이 6.4인치고 히퍼가 3.1인치로 절반 수준이다.

결국 구식 설계는 빈약한 무장과 얇은 장갑이라는 문제점으로 돌아왔다.

5.2. 빈약한 화력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이 채용한 20.3cm 60구경장 2연장 주포 자체는 동급의 주포 중에서는 최상위권에서 노는 함포지만, 포문 수 면에서는 타국을 능가하지 못하고 비등하거나 약간 열세였다. 좀 무리수를 둬서 10문을 장착한 일본에는 상당히 밀리고, 9문을 장착한 미국에는 그 정도까지 밀리진 않지만 대신 그쪽은 3연장 포탑 채용을 통해 취약 부위를 줄이고 8인치용 초중량탄을 도입한데다가 장갑 배치도 효율적으로 이루었는지라 공방면에서 모두 밀린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중순양함과는 포문 수가 동일하므로 화력 면에서 밀리지는 않지만 해당 국가의 중순양함은 배수량 1만톤 이내로 설계한 조약형 중순양함이므로 이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배수량을 가지면서도 포문 수가 동일하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점으로 남게 되었다.

사실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덩치를 생각한다면 8인치급 3연장 주포탑을 도입함으로서 화력을 늘리는 방안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2차대전 기간 중 중순양함의 8인치 포에 3연장 포탑을 채용한 국가는 미국 뿐이다. 물론 2차대전 개전 시점에서 미국 외에도 영국, 이탈리아 및 독일은 모두 8인치급 3연장 포탑 제조 능력은 충분히 있었다 보는 것이 정설이므로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도 충분히 8인치급 3연장 주포탑을 도입해서 포문 숫자를 12문으로 늘리는 것이 가능하였다.

문제는 3연장 포탑을 실제 채용했다고 가정했을 때 주포간 간섭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명중률 하락으로써, 3연장을 기어이 채용한 미국 또한 이 문제는 똑같았으며 초기형인 Mk.9의 경우 일제 사격 시 탄착 범위가 무려 2천 야드(1,830m) 내외까지 벌어졌다는 기록까지 존재할 정도다. 샷건 소리 듣는 리토리오급 전함의 탄착 범위가 23km ~ 30km에서 1000m 내외고 이마저도 저품질 포탄에 의한 명중률 하락 의혹이 존재하는 것을 감안하면... 3연장 주포탑을 도입할 때 산탄포 현상을 잡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매우 알기 쉽다. 미국도 펜사콜라급 중순양함에서 처음으로 3연장 포탑을 채용한 후 위치타급/볼티모어급에서 채용된 Mk.12 주포가 등장할 때까지 문제 해결에 10년 이상 걸렸다는 걸 감안한다면 그리 여유가 없는 1930년대 상황에서 유럽 국가들이 무리한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 특히 독일은 레이더나 광학장치를 사통에 연동시킨 장거리 함포사격으로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려 했던 상황이었다. 일본의 경우 명중률이 떨어지는 문제는 둘째치고 2연장 주포의 포 하나를 기준포로 잡아 먼저 사격해서 거리계산을 한 후 나머지 주포를 교대로 사격하는 교호사격을 통해 정확하게 때리면 된다는 생각도 있고 기존의 2연장포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력은 둘째치고 별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이 해군력을 재건하는 상황에서 만재배수량 2만톤에 육박하는 초(超)중순양함을 건조했으면 당연하게도 1만톤급의 타국 중순양함 1척은 압도해야 하고 2척과 싸우더라도 동등하거나 최소한 일격을 제대로 먹여서 개박살내거나 최소한 일시적인 전투불능상태로 만든 후에 신속하게 이탈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 실책이 크다. 독일 해군의 상황이 안좋아서 도와줄만한 동료 군함이 적거나 없다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일반적인 중순양함보다 매우 강력한 무장을 가질 필요성이 충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1만톤급의 조약형 중순양함 1척과 비슷한 무장만을 갖춘 것 자체가 비판받기 딱 좋다.

그리고 이미 배수량이 더 적고 크기도 작은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에 28cm C/28 3연장 주포탑을 2기나 탑재해서 운용하고 있는 실적을 볼 때 일본 제국 해군모가미급 중순양함이 15.5cm 3연장 주포를 20.3cm 2연장 주포로 교체가 가능하도록 미리 설계시부터 반영한 것을 생각해서 28cm 급 주포를 탑재할 수 있도록 설계시부터 감안하였다면 초중순양함에 걸맞는 화력을 달성하면서 화력만 놓고 보자면 충분하게 제 몫을 다하는 군함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든다.

5.3. 부족한 장갑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갑판장갑은 상갑판은 최대 30mm 두께로 선체 중앙부위가 가장 두꺼우며 선수와 선미쪽으로 점점 얇아지면서 12mm 까지 줄어든다. 주갑판은 최대 50mm로 상갑판과 같은 방식으로 20mm까지 감소한다. 현측장갑은 최대 80mm 두께의 중앙부 장갑을 가지며, 선수와 선미로 갈수록 70mm 두께까지 줄어든다. 선체 내부에는 20mm 두께의 어뢰공격 방어용 장갑과 격벽이 있다.

주포탑은 전면 105mm, 측면 70mm, 상면 70mm의 장갑을 가진다. 10.5cm 대공포좌는 포방패와 포 자체의 보호용으로 10 ~ 15mm의 장갑을 붙였다. 장갑함교는 150mm의 전면 및 측면과 50mm의 상면장갑을 가지며, 후부장갑함교는 30mm의 전면 및 측면장갑과 20mm의 상면장갑을 가진다. 대공지휘소는 기총소사 방어용으로 17mm의 장갑을 가진다.

솔직히 말해서 만재배수량이 2만톤에 육박할 정도로 불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초기 계획인 기준배수량 1만톤에서 현측장갑 80mm 수준이라는 목표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 신기할 뿐이다. 구식설계가 가진 비효율성이 여기서 드러난다. 따라서 동시대 중순양함들 중 미국의 볼티모어급이나 이탈리아의 차라급과 비교하면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이 배수량은 큰데 장갑두께는 매우 모자란 수준이다.

영국의 요크급, 엑서터급 중순양함의 경우보다는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장갑이 두껍지만 덩치를 생각하면 당연히 그게 맞는데다가 영국의 중순양함들은 군축조약을 준수하는 기준배수량 1만톤에 맞춘 것이고 영국은 경순양함에 집중하고 중순양함은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서 보듯이 함종 자체를 폐함시킬 계획까지 가지고 있었으므로 전혀 개발 및 투자하지 않아서 엑서터가 최후의 영국제 중순양함이 될 지경이었으므로 그렇게 상태가 안좋은 것이다.
심지어 영국의 타운급 경순양함은 경순양함인데도 불구하고 현측장갑이 114mm이므로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현측장갑보다 장갑이 두껍다. 갑판장갑도 초기에는 38mm고 나중에는 76mm로 강화되어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을 넘어섰다. 타운급 경순양함은 개량해서 배수량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기준배수량이 10,565톤이고 만재배수량이 12,980톤이며 6인치 3연장 주포탑 4기로 총 12문을 탑재하는 경순양함인데 만재배수량이 2만톤에 육박하는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보다 방어력이 더 높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국은 군함의 숫자가 많으므로 숫자의 우위로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을 상대가능하다.

일본 제국의 중순양함들도 장갑이 얇지만 적어도 이쪽은 8인치 주포를 2연장 주포탑만 써서 10문 탑재하기 때문에 주포탑을 5기나 탑재하는데다가 산소어뢰도 갖추고 속력도 높일 필요가 있어서 그런 것이고 장갑이 얇은 것도 기술력이 없는 게 아니라 어차피 장갑강화해도 관통당하니까 차라리 파편방호만 하자는 식의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기술력을 총동원하고 배수량을 크게 늘려도 장갑의 두께를 제대로 못늘린 나치 독일과는 차이가 엄청나게 나는 것이다.

여기서 어차피 조약형 중순양함도 장갑 얇은 것은 마찬가지니 별 문제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재배수량이 2만톤에 육박하는 초중순양함 주제에 장갑이 얇으면 덩치만 커서 피탄면적만 엄청나게 커지는 바다의 표적지 그 자체가 되버린다. 실제로 바렌츠해 해전에서 네임쉽인 아트미랄 히퍼가 경순양함의 주포인 6인치급 포탄 3발을 피탄당했는데 그 중 1발이 기관부에 1천톤이나 되는 침수사태를 일으키며 속력이 28노트로 떨어질 정도로 피해가 컸다. 초중순양함이 경순양함 주포도 제대로 방어를 못하는 수준이니 매우 심각함을 알 수 있다.

5.4. 신뢰성 부족한 동력기관

동력기관 문제를 언급하기 전에 반드시 배경지식을 짚어야 한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독일의 함선용 동력기관 기술력 자체는 충분했지만 그걸 군함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밀리터리 측면에서의 신뢰성 면에서는 크게 떨어졌다는 내용이다.

함선의 동력원은 보통 3가지로 나뉜다. 디젤엔진, 가스터빈, 증기터빈. 다만 세계대전 당시에는 가스터빈 엔진이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며, 당시 거의 모든 군용함정은 증기터빈을 사용했기에 여기에서는 증기터빈만 다루도록 한다.

증기기관을 군함에 추진기관용으로 쓰기 시작한 이래 2차대전까지 고출력을 요하는 군함의 추진기관은 증기터빈이 대세였다. 이 증기터빈을 돌리기 위한 액체를 증발시켜 증기를 만들어 공급하기 위해 등장하는게 보일러. 증기기관의 구조는 대강 보일러(석탄, 혹은 중유를 사용. 원자력 함선의 경우는 여기에 반응로가 있다.) - 터빈 - 기어박스 - 프로펠러 순. 보일러에서 나오는 증기를 이용해 터빈을 돌리고, 그 터빈이 프로펠러를 구동하는 식이다.

그러므로 보일러의 화력은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증기터빈에서는 출력과 바로 직결된다. 밑천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증기터빈은 필연적으로 일정이상의 용적을 추가로 요구하게 된다. 이 문제는 증기터빈의 출력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더 커지게 되며 제한된 함선 내의 공간을 대량으로 잡아먹게 되므로 함선을 설계하는 입장에서는 큰 골칫거리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증기터빈 자체도 꽤 고급 기술이 필요한데 증기 터빈의 날개의 형상과 재질에 따라 추진기관의 효율이 매우 차이가 나므로최대한 오차를 줄이는 방향의 가공이 요구되었다. 이문제는 방향은 다르지만 항공기 엔진과 선풍기같은 날개의 형상과 재질에 영향을 받는 다른 기계들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1차대전 당시에는 세계에서 수위권에 들어가는 기관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구축함들에겐 온도 450도/ 압력70kg/평방 센티미터의 초고압 보일러를 쓰고 비스마르크에는 450도/100kg/평방 센티미터짜리 보일러를 사용. 대부분의 국가들이 2개 장착할 공간에 2개를 1개로 묶어서 넣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기술은 1차대전 때부터 독일이 애용하는 기술로서 1차대전 당시 영국은 보일러 2개를 쓸때 독일은 그 보일러 2개를 하나로 묶어서 크게 하나를 만들어 영국은 보일러 6개 들어갈 자리에 보일러 3개가 들어가게 만들었다.(쾨니히급 전함이 그 예시) 그리고 보일러를 2개를 1개로 붙임으로써 생기는 여유공간에 보일러 배치로 인한 남는 여유 공간을 수중방어구조로 재활용했기 때문에 영국은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을 건조하기 전까지는 독일보다 수중방어력이 낮았으며 이후에도 비슷해진 수준이지 극복을 하진 못하였다.

1차대전의 패배로 독일은 군함에 관련된 기술을 개발및 유지하기가 곤란해졌다. 그러나 증기터빈은 군함 외에도 고속 여객선이나 발전소에도 쓰이므로 건함기술이 정체되어도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분야이다. 이는 1929년 독일이 쾌속 정기 여객선 브레멘을 건조하여 블루리본 타이틀을 갱신한 사례나, 비스마르크급 전함 가운데 비스마르크에는 자국 블룸&포스 사의 터빈을, 티르피츠에는 스위스 BBC사의 터빈을 썼는데 두 함의 속도나 항속거리가 큰 차이가 없었음을 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식으로 영국보다 보일러 총 숫자는 적지만 더 튼튼하게 만들어 용적이 커졌지만 그 대가로 증기압이 커진 독일 전함들은 증기압을 과부하 시키면 평시 출력의 최대 1.5배까지 나오게 되었다. 샤른호르스트의 기관부 일부가 터틀백 방어구조 밖으로 돌출된 이유도 고출력을 요구해서 배치한 엔진과 추진기관 문제. 덕분에 24도의 각도로 포탄이 선체에 명중하면 매우 취약해진다.

물론 이런 식으로 하면 기관에 대한 배려가 다른 기관들을 쓸 때보다 훨씬 더해져야 한다. 독일 해군이 애용한 라 몬트식 증기 보일러는 450℃/80atu(증기압)의 출력을 가졌으며 이 성능은 거의 모든 국가들이 엄두를 못 냈던 것이지만 제대로 다뤄주지 않으면 애물단지가 되어버린다. circulating pump(강제순환펌프)에 가해지는 부담이 워낙커서 배관과 물 저장고의 내구도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기 때문. 때문에 숙련병이 아니면 다루기가 힘들다. 전후에 프린츠 오이겐을 타국군이 관리했는데 이 문제로 인해 인수한 지 얼마 안지나서 12개 중 11개가 고장났다.

독일은 여기에 만족 못하고 벤슨식 보일러로 1934A급 구축함 Z9 ~ Z16에 차기 보일러를 개발해서 넣었는데, 이 보일러는 510℃/110atu(증기압)이라는 비교할 대상을 찾기가 힘들 정도의 출력을 가지지만 위의 문제가 도저히 감당 불가능할 정도로 커져서 결국 못버티고 이후에 건조된 구축함들은 전부 바그너식으로 바꾸어버렸다.

독일이 2차대전에서 이런 방식의 증기터빈을 사용하는 동안 타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미국은 450도/40kg/평방 센티미터의 성능을 가진 보일러를 소머즈급부터 기어링급까지 썼고 전함들도 비슷한 보일러들을 썼다.

일본은 전함급에 온도 300도/압력 20kg/평방 센티미터의 스펙을 가진 보일러를 썼고(야마토급, 공고급, 항공모함 아카기급 등), 구축함급에는 350도/30kg/평방 센티미터의 성능을 가진 보일러를 썼다. 시마카제에는 400도/40kg/평방 센티미터의 성능을 가진 신형을 장착 하였는데 신뢰성과 내구성이 많이 떨어져 보일러의 배관이 잘 못 버텨서 교체하는데 많은 비용을 들이고 증기누출사고도 많이 벌어졌으며 함의 최후도 결국은 보일러가 부하를 이기지 못해 폭발하는 바람에 침몰하였다.

영국은 Admiralty boiler라는 온도 300도/압력 20kg/평방 센티미터의 성능을 가진 보일러를 사용했다. 독일은 보일러 배치로 인한 남는 여유 공간을 수중방어구조로 재활용했기 때문에 영국은 퀸 엘리자베스급을 건조하기 전까지는 독일보다 수중방어력이 낮았으며 이후에도 비슷해진 수준이지 극복을 하진 못하였다.

중요한 점은 군함에 적용되는 기술력은 최첨단의 상위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뢰성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거친 바다에서 비숙련병이 운용하면서 제대로 된 정비를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게 중요한데 1차대전의 패배로 인해 군함 분야의 기술력 단절이 10년 넘게 지속되고 설계국이 붕괴되다 시피 한 나치 독일의 상황에서는 자신이 가진 기술력이 군함용으로 전쟁에서 사용이 원할할 정도의 신뢰성을 가졌는지 판단하지 못할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비스마르크급 전함이 바로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서 민간분야의 신뢰성과 밀리터리쪽 신뢰성이 나누어진다. 민간분야인 상선, 화물선, 여객선 같은 종류는 사실상 자신에게 익숙한 곳만 가거나 정해진 코스를 정해진 시간에 왕복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경제속도로만 주로 항해하며 숙련된 인원이 운용하고 충분한 정비시간을 가지며 선박이라는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무리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맞추어진 민간용 부품과 기관들은 거친 환경에서 제대로 정비도 못받고 급가속과 급감속, 급속선회를 밥먹듯이 하는 전쟁상황에서는 신뢰성을 유지하기가 매우 곤란해진다. 민간분야의 내구성과 신뢰성이 군용 스펙을 따라잡거나 능가하기 시작한 시기는 빨리 잡아도 2000년대부터며 현재도 일부 분야는 채산성이 없어서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은 만재배수량이 2만톤에 육박할 정도로 큰 초중순양함급이므로 속도가 빠를 필요성이 더 높았다. 배수량이 커진만큼 기존의 조약형 중순양함이 가지는 기준배수량 1만톤급 중순양함과 같은 속력을 내려고 해도 동력기관의 출력이 매우 높아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선체의 절반 정도를 보일러와 터빈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보일러의 작동 증기 온도는 450℃로 열강들이 채용한 함선용 보일러 중에서도 매우 높고, 중유 전소 보일러 12기에 고압 터빈, 중압 터빈, 저압 터빈 총 3기를 기어 드라이브에 연결하여 1세트로 1축를 담당한다. 이런 세트를 3개 탑재해서 3축 추진으로 최대 출력 132,000hp을 발휘했다.

하지만 설계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서 온갖 문제점이 터지게 된다. 설계나 기획 단계에서 다 문제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으면 시제, 초도, 시험평가를 할 이유가 없으며 사용자 피드백을 받을 이유는 없다. 당장 조선업 내에서도 소조, 중조, 건조, 탑재, PE 등 조선업 선체, 의장, 선체/의장품질, 생산물류, 자재, PNL가공, 의장품 샵장, 개발 등등 부서들 및 선급들은 존재할 가치도 없으며 엔지니어라는 직업자체가 아예 필요가 없어진다.

현대에 들어와서 컴퓨터로 프로토타입 제작 전에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도 1980년대 쯤에 미국에서 항공 / 우주쪽 CAE기술이 산업계로 파급된 뒤부터나 해볼만해진 수준. 그마저도 컴퓨팅 파워 한계와 인력풀 한계 때문에 현재 주어지는 수준의 시간과 자원만으로는 완벽하게 만들 수는 없다. 그리고 군사기술 같은 건 시뮬로 해결이 안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만재배수량 3만톤이 넘어가는 함선들은 전시 아니면 대량생산이라는 개념이 희박하기 때문에 가뜩이나 프로토타입이라는 것도 애매하다. 설계만 가지고 완성된다면 캐드로 설계하는 사람들의 가치는 엄청나게 높아진다. 즉 무언가가 설계도만으로 완성된다는건 잘못된 생각이다.[5]

기술력이 크게 향상된 현대에도 설계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이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는 군함을 계속 건조하면서 피드백을 받고 뜯어고치고 개선점을 차기 함급에 반영하는 식의 끝없는 시행착오와 개선이 반복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베르사유 조약으로 그런 것이 금지되어 설계부터 건조 및 운영까지 10년 이상의 공백이 생긴 나치 독일이 그걸 제대로 할 리가 없다.

그리고 이 속도에 대한 요구로 적함의 공격에 대비해서 보일러와 주기관을 분산배치하는 시프트 배치를 하지 않고 보일러 - 터빈 단일구조로 기관을 배치한 것도 또다른 문제였는데, 이렇게 하면 1발의 어뢰가 기관부에 명중하거나 1발의 포탄장갑을 관통하고 기관부로 돌입할 경우라도 보일러가 파손되건 터빈이 파손되건 간에 일시에 모든 동력을 상실하고 고정표적으로 전락해버릴 위험이 있었다.

결국 이런 문제는 실전에서 동력기관의 절대적인 신뢰성 부족 사태로 나타난다.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이 자매함마다 보일러와 터빈의 종류와 숫자가 차이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해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온 고압 증기를 사용하는 보일러는 수관의 재질에서 유래하는 구조적 고장 문제가 있고 터빈의 복잡한 내부 구성은 구조적 결함을 일으켜서 연비의 저감에도 실패하였으므로 결국 최후까지 근본적인 개선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초도함인 아트미랄 히퍼는 스펙과는 달리 고속항진을 지속하면 동력기관에 문제가 계속 발생하므로 프린츠 오이겐에서는 기존의 라 몬트식 보일러의 세팅을 조정해서 증기 압력을 떨어뜨렸으나 기관부 고장의 빈도가 약간 줄어들었을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트미랄 히퍼와 프린츠 오이겐이 어느 정도 기관부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카탈로그상의 스펙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 침공으로 획득한 프랑스 해군의 브레스트 해군창에서 프랑스인으로 구성된 군함 전문 보수 전문가가 수리를 담당한 후의 일이었다. 그제서야 군함에는 적용하지 말아야 할 섬세한 기술력이 적용된 곳을 파악하고 개선할 수 있었던 것이다.

5.5. 속력과 항속거리

속력의 경우에는 고온 고압 보일러를 채용해서 출력을 증대시키는 방법을 썼다. 이는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에 사용한 디젤엔진은 항속거리는 매우 길어지지만 반대급부로 신뢰성이 떨어지고 고속항진시 반응성이나 출력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배수량이 2만톤에 육박하는 거체를 최대 속력 32노트로 가속이 가능하다. 해당 속도는 고속전함아이오와급 전함의 33노트보다는 낮지만 2만톤급의 거체를 가진 것 치고는 상당히 빠른 편이다.

하지만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화력을 가진 중순양함이나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장갑을 관통 가능한 경순양함중에서 32노트 속도나 그 이상을 내지 못하는 순양함들은 별로 없다. 속도도 비슷하고 무장도 비슷하면 피탄면적이 넓은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이 쉽게 따라잡혀서 집중사격을 맞고 개박살난다는 소리다. 만일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이 덩치에 걸맞는 11인치(28cm)급 함포를 주포로 삼았다면 자신보다 덩치가 작은 중순양함 이하의 군함들을 주포의 사정거리와 위력을 발휘하여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었겠지만 8인치 주포 8문만으로는 그런 것이 불가능하니 따라잡혀서 두들겨 맞게 된다. 방어력도 경순양함의 6인치 주포에 관통될 지경이니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기 쉽다.

심지어 알래스카급 대형순양함은 기준배수량 3만톤에 만재배수량 3만4천톤 수준에서 12인치(305mm) 3연장 주포탑 3기 총 9문을 보유하고 측면장갑이 230mm고 갑판장갑도 102mm이며 33노트(약 61km/h)의 최고속도를 가지며 항속거리도 15노트(약 28km/h) 순항시 22,000km에 도달하여 어떤 면을 보아도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을 압도한다. 알래스카급 중순양함도 돈 많이 들어가는 이유 때문에 볼티모어급 중순양함의 확대 개량형으로 만들어져서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으로 성능이 더 좋고 건조목적도 중순양함 킬러로 만들어져서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에게는 그야말로 천적이 따로 없다.

항속거리 측면도 불충분하다. 네임쉽인 아트미랄 히퍼는 실제 항해에서 19노트로 6,500해리(약 12,038km)를 기록하였다. 설계시 요구 성능은 중유 3,050톤 탑재, 20노트로 6,800해리(약 12,593km)를 항해하는 것도 달성 못한 것이다. 실전에서도 대서양 전투에서 통상파괴전을 실시할 때 항속거리가 불충분하다는 보고가 올라올 지경이었다.

6. 실전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은 노르웨이 침공에서 처음 실전 경험을 했으며, 그 후에는 주로 통상파괴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중 동형함인 프린츠 오이겐은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장비한 8인치 함포를 후드에 명중시켜 약간의 화재를 발생시킨다. 이후 전함 비스마르크는 해당 화재를 확실한 조준점으로 잡아서 후드를 공격하여 침몰시켰다. 후드 침몰의 결정적 원인은 프린츠 오이겐이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래 동형함 단락에서도 보듯 이후의 전과는 상당히 초라했다.

7. 동형함

함명 건조 비고
아트미랄 히퍼 기공 1935-07-06
1945년 5월 3일 공습 이후 자침
진수 1937-02-06
취역 1939-04-29
블뤼허 기공 1936-08-15
1940년 4월 9일 작전 중 격침
진수 1937-06-08
취역 1939-09-20
프린츠 오이겐 기공 1936-04-23
미국에 양도 이후 1946년 12월 22일 핵실험 참가 및 침몰
진수 1938-08-22
취역 1940-04-01
자이틀리츠 기공 1936-12-29
1945년 1월 29일 자침
진수 1939-01-19
취역 미완공
뤼초 기공 1935-07-06
1940년 2월 11일 소련에 매각[6]
진수 1939-07-01
취역 미완공

함급의 네임쉽으로 이름의 유래는 독일 제국 해군 제독 프란츠 폰 히퍼.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블롬 운트 포스사가 아트미랄 히퍼를 건조하였다. 첫 실전인 노르웨이 침공에서 영국 구축함 글로우웜에게 충각공격을 당하는 대굴욕을 당했으나[7], 그 뒤로는 그럭저럭 무난한 해군 함선의 삶을 살며 나름대로 독일 해군의 주요 작전에 얼굴을 비췄다. 이후 1943년 바렌츠 해 해전에서 기관부에 치명상을 입고 수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바렌츠 해 해전아돌프 히틀러의 대형함 해체 명령으로 인해 끝내 수리되지 못하고 퇴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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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아트미랄 히퍼. 1945년 5월 19일에 촬영된 사진이다.

다만 함의 손상이 전체적으로 심각한 편은 아니었기에 히퍼는 그나이제나우와는 다르게 해체만은 면했다. 이후로는 쭉 방치된 상태로 고정 대공포대로 사용하다가 1945년 5월 3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시에서 영국 공군의 공습에 의해 격침, 항구 내에 착저한다. 전후 스크랩.

이름의 유래는 게프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 히퍼급 중 가장 수명이 짧았던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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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침되는 블뤼허.

노르웨이 침공 당시 수도인 오슬로를 점령하기 위한 함대 소속으로 나갔다. 당시 해당 함대의 기함이었고 함대사령관 오스카 쿠메츠 역시 승선 중이었으나, 오슬로 근방의 피요로드에서 노르웨이군의 구식 해안포 요새가 날린 사격과 그 요새에 설치되어있던 육상설치형 어뢰발사대의 어뢰를 맞고 많은 수의 승조원들 및 육군 산악사단 병력들과 함께 전복되면서 허망하게 격침되었다.

이름의 유래는 사부아 공자 외젠의 독일어식 명칭.

함급중에서 가장 유명한 함. 위에도 나왔지만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화재를 일으키면서 후드 격침에 상당한 공을 세웠다. 이후 영국 해협 돌파작전에 참여했는데 이 작전에서도 혼자서 아무런 피해 없이 독일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이후로는 특별한 활동 없이 동부전선에서 함포지원사격 등 임무에 종사하다 동프로이센 대탈출 당시 쾨니히스베르크를 방어하는 독일 육군에게 포신이 닳도록 지원사격을 했으며 철수하는 민간인 선박을 엄호했다.

종전후 미국에 배상함으로 넘겨진 다음, 크로스로드 작전에 표적으로 사용된다. 실험 종료 후 손상이 너무 심해 예인되던 도중 침수가 발생해 콰제린 환초 인근에서 전복되었고, 이 상태로 방치되었기에 현재까지도 잔해의 일부분이 수면 밖으로 노출되어 있다. 스크루 1개만 이후 이 함 승조원 출신 참전자들의 요청으로 독일로 돌아와 전시중이다.

경순양함 라이프치히를 박아버린 에피소드도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이야깃거리 참조.

이름의 유래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자이틀리츠.

미완성함. 95%까지 건조가 진행되다가 중단된 후, 한동안 물자 부족으로 방치되다가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절차에 들어간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작업도 지지부진하다가 끝내 미완성한 상태로 남았다.

그러다가 소련군이 동프로이센까지 진격하자 쾨니히스베르크의 항구를 못쓰게 할 목적으로 자침했으며 나치 독일이 패망하자 전후 전리품으로 소련에 넘겨진다. 소련은 이 배를 완성해보거나 뤼초를 완성시키기 위한 부품 조달에 써 보려고 했지만 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자 스크랩 처리했다.

이름의 유래는 보불전쟁 때의 프로이센 장군 루트비히 아돌프 빌헬름 폰 뤼초.

마찬가지로 미완성함. 건조가 중단된 상태에서 1940년에 독일이 소련에게 판매하기로 결정한다. 뤼초는 소련에 넘어간 후에 페트로파블롭스크라고 함명이 변경되었으며 조선소가 있는 레닌그라드에 도착했다. 이 때까지는 독일과 소련간의 관계가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아서 건조를 지속하기로 결정했고 부품도 독일에서 상당량을 수입하기로 했지만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운명이 바뀐다.

이 전쟁에서 뤼초는 미완성된 상태로 독일군의 공격으로부터 레닌그라드를 수비하는 부유포대로 활용되었다. 덕분에 독일군은 자신이 판매한 독일제 중순양함을 공격해서 격침시키는 삽질을 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1941년에 침몰한 뤼초는 1942년에 인양해서 수리했으며, 1944년에는 탈린으로 함명이 바뀐 상태에서 레닌그라드 포위망 파괴작전에 투입하였다. 물론 이때까지도 미완성된 상태에서 임시 부유포대였다는 것은 침몰당하기 전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훈련시설 겸 부유병영으로 활용하다가 1953년에서 1960년 사이에 스크랩 처리했다.

8. 관련 문서

Admiral Hipper-class cruiser

9. 매체에서의 등장

파일:WFC_Ships_PrinzEugen.png

* 워썬더에서 1번함 어드미럴 히퍼와 3번함 프린치 오이겐이 5티어 중순양함과 프리미엄 장비로 등장한다.
파일:warthunderAdmiral Hipper.jpg

10. 관련 문서



[1] 동형함 사이에도 차이가 상당히 크다.[2] 동형함마다 다름[3] 동형함마다 다름[4] 이 계획이 월드 오브 워쉽에 나오는 8티어 프리미엄 순양함 마인츠의 모티브로 추정된다[5] 만약 설계만 가지고 전부 될 거라면 온갖 군함 설계도를 쏟아내는 중국은 자국이 건조하는 군함에 대해 아무 걱정없이 살았을 것이며 미국도 프리덤과 인디펜던스급이 생산축소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천급도 5인치 함포를 그 체급에 올려놨더니 함교에서 느껴지는 진동과 소음이 너무 심해 작전수행에 너무나 큰 지장을 주는 관계로 각골지통의 노력을 통해 겨우겨우 20%까지 정도 진동 및 소음 감소에 성공했지만 함교 내에서 귀마개가 없으면 주포를 쏠 때마다 귀부터 시작해서 정신을 제대로 못차리는 문제는 끝내 해결해자 못했다. 이 문제는 대구급에 와서야 겨우 해결했지만(사실 함체가 커져서 해결된 측면도 있다.) 그 대구급조차도 초도함은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겨 후속 건조시 수정해야 했다.[6] 매각 이후 소련 해군에 의해 페트로파블롭스크로 함명 변경[7] 물론 글로우웜은 격앙된 히퍼 승조원들에게 영거리 직사사격으로 폭침한다.